1. 들어가는 말

불자가 되려면 반드시 삼귀의계(三歸依戒)와 오계(五戒)를 수지해야 한다. 삼귀의를 하지 않고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기초가 부실한 땅 위에 높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삼귀의를 서원할 때 그 느낌이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입문 후 수행해 나아가는 데도 많은 차이가 있다.
삼귀의의 대상은 바로 삼보인데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스스로 어떠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가? 삼보가 아닌 다른 대상에 귀의하는 것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왜 모든 법회의식에 가장 먼저 삼귀의를 하도록 했는가? 부처님께서는 왜 처음 입문하는 제자에게 빠짐없이 삼귀의를 큰 소리로 발원하게 했는가? 삼귀의의 의의를 떠올릴 때마다 만일 삼귀의가 부실하게 이루어지면 우리의 수행이 방향을 잃게 되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승단과 교단을 이루고 정진하는 데 틀이 와해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종단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삼보 귀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하겠습니다.’의 부처님과 가르침에 귀의하는 데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거룩한 스님에게 귀의하겠습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흔연히 귀의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고, 승가에 귀의하고 보시를 하더라도 가려서 신심과 원력이 장대하고 지계가 청정한 스님에게만 귀의하고 보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 나온 말들 중에는 ‘거룩한 스님에게 귀의하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잘못된 것으로 ‘거룩한 승가에 귀의한다’로 고치고, 승가를 출가승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사부대중(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더 나아가 종단분규가 심해서 여법한 승가상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지계정신이 미미해서 청정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불교 교단 초기 가장 먼저 우바새와 우바이가 된 경우는 부처님과 법, 이보(二寶)에 귀의했던 예를 따라 불자들도 이보에 귀의하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교단의 일부 승려들이 승려답지 못한 행동을 함으로써 실망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로 근본적인 가르침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일이며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이다. 일부 승가의 문제로 여법한 청정한 승가까지 인정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은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며 불자이기를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삼귀의의 대상인 삼보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삼보에 대한 정의를 폭넓게 공유하여 바람직한 신행관을 정립하기 위해서, 삼장에 기록된 삼보의 정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불교에 초래되는 삼보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승가와 재가가 상생하는 조건이 원만히 이루어져서 교단 내 사부대중의 신심이 하나로 모이기를 바란다. 아울러 바람직한 출·재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바람직한 교단의 모습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삼보(三寶)

1) 삼보의 정의
불교에서 보배롭게 생각하는 세 가지로서 부처님과 법과 승가를 삼보라 한다.
첫째, 불(佛)이란 buddhā이며 범어로 불타(佛陀) 혹은 부타(浮陀)·불태(佛馱)·보타(步他)·부도(浮圖)·부두(浮頭)라고도 한다. 이를 뜻을 따라 번역하면 각자(覺者)라고 하며, 각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각찰(覺察)과 각오(覺悟)이다.
둘째, 법(法)이란 dharma이며 달마(達摩)·담무(曇無)·담마(曇摩)라고 한다. 법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자체해법(自體解法)과 궤모해법(軌摸解法)이다.
셋째, 승(僧)이란 sangha이며 승가(僧伽)라고 한다. 이는 특별히 사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형태를 가리키는데, 이를 번역해서 중(衆)이라고도 하고 화합중(和合衆)이라고도 한다. 화합중은 육화(六和)를 구족한 4인 이상의 대중을 말하며 한 사람을 승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대중을 이루어 사는 법을 숭상한 때문이다.
 당(唐)의 도선율사(道宣律師)가 지은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에 의하면 “남산율종에서는 네 가지 종류의 승가를 말하는데 4인승·5인승·10인승·20인승이다. 첫째, 4인승은 설계·결계 등을 할 수 있고, 둘째, 5인승은 중앙이 아닌 변방에서 수계나 자자 등을 할 수 있다. 셋째, 10인승은 중국(불법이 흥한 곳)에서 수계가 가능하고 넷째, 20인승은 승잔죄의 출죄갈마가 가능하다. 1인에서 3인까지는 별중(別衆)이라 하고 승수에 들지 못한다.”고 했다.
이러한 삼보가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데, 가까이는 삼유(三有 또는 三界: 欲, 色, 無色)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사(二死: 分段生死, 變易生死)를 맑게 하고 희유하게 세상사를 홀로 통달하게 하므로 삼보라고 한 것이다.

2) 사종삼보(四種三寶)
사종삼보는 이체삼보(理體三寶), 화상삼보(化相三寶), 주지삼보(住持三寶), 일체삼보(一切三寶)이다.
첫째, 이체삼보에서 불보는 오분법신을 말하는데 계·정·혜는 인을 쫓아서 이름한 것이고 해탈과 해탈지견은 과를 쫓아서 이름한 것이다. 법보는 사제(四諦) 가운데 멸제의 무위법이며 승보는 성문(聲聞)의 초과에서 3과(아나함)까지는 나누어서 진제를 보고, 무학인 제4과(아라한)에서는 한 가지로 진제를 보는 공덕이 있으므로 이화합승(理和合僧)이라 한다.
둘째, 화상삼보에서 불보는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셔서 이 세계에 계시므로 화신여래로써 주를 삼은 것이고, 법보는 부처님께서 연포(演布)하신 사제 등의 가르침을 뜻하고, 승보는 교진여 등 녹야원에서 처음 제도된 5비구 등을 말한다.
셋째, 주지삼보에서 불보는 형상으로 이루어진 탑이나 부처님 형상 등을 말하며, 법보는 전적으로 전하는 삼장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말하며, 승보는 계법(戒法)을 통해 구족된 승체(僧體)와 삭발염의를 통해서 나툰 승려의 모습을 말한다.
넷째, 일체삼보에서 불보는 시각(始覺)의 관지(觀智)라고 했는데 《중치비니(重治毘尼)》에서 “실상의 지혜로써 모든 법의 비공 비유와 역공 역유를 깨달아서 쌍망쌍조해서 삼지(三智)를 원만히 깨달은 까닭에 불보라고 한다”라고 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시각의라는 것은 본각을 의지한 까닭으로 불각이 있고, 불각을 의지한 까닭으로 설함에 시각이 있다”라고 했다. “법보는 본각(本覺)의 이체(理體)이다”라고 했는데 《중치비니》에서 말하기를 ‘깨달은 바의 법성의 이치가 삼재(三諦)를 구족한 까닭에 법보라고 한다’라고 했으며 《대승기신론》에서는 “각의라고 말한 것은 심체가 망념을 여읜 것이고, 이념상이란 것은 허공계와 같아서 두루하지 않은 바가 없어서 법계가 한 모습이다. 곧 이것이 여래평등법신이니 이 법신을 의지하여 본각이라 말한다.”라고 했다. 승보는 시각과 본각이 둘이 아니(始本不二)라고 했다.
《중치비니》에 말하기를 “이 각혜가 이사와 더불어 화합함으로 승보라고 한다.”라고 했으며, 《대승기신론》에서는 “시각과 본각이 둘이 아니니 곧 이의 체와 사의 수가 한 가지이니 시각의 도가 원만하면 도는 곧 인의 뜻이요 이러한 위 가운데 인이 원만해서 과가 이루어짐에 이르면 본각과 시각이 다름이 없다.”라고 했다.

3) 삼장 및 주석서 등에서 말하는 승보
지금까지는 삼보를 개략적으로 설명했으나 본 논문은 삼보 가운데 승보와 귀의승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주 목적이다. 따라서 관계로 불보와 법보에 관계되는 내용은 생략하고 바로 승보에 대한 기록을 언급하고자 한다.

(1) 율장을 통해 본 승보
율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승보는 승가이다. 승가는 비구승을 주로 말하는데 비구니교단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비구승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사분율장 수계건도》에 보면 5비구가 깨달음을 얻은 다음 교단의 모습을 “그때 이 세간에는 6명의 아라한이 있었는데 5명은 제자이고 여래 지진 등정각은 여섯째가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야수가가 깨달음을 얻은 다음 교단의 모습은 “그때 세간에는 일곱 분의 아라한이 있었는데 제자가 6명이고 여래 지진 등정각은 일곱째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에 5비구와 야수가는 단순히 비구가 아니었다.
부처님의 초기 교단에서 최대의 교화는 3가섭의 형제들을 교화한 일이었다. 대가섭을 비롯한 500명의 제자들을 교화하는 모습에 “저희도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출가하여 범행을 닦고자 합니다.” 하니, 부처님께서 “잘 왔다, 비구여! 나의 법 가운데서 마음껏 범행을 닦아 괴로움의 근원을 끊어라.” 하셨고 그들은 곧 구족계를 받은 사람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모두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이 비구승이 되었으며 선래 비구에 해당된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부처님께 귀의하는 부분에서도 이미 구족계를 수지할 때에 과위를 증득했음을 알 수 있다.

(2) 대승보살계에서 말하는 승보
① 《범망경》 보살계에서 말하는 승보
《범망경》 보살계포살본의 예경삼보(禮敬三寶)에서 불보는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제불(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시방과 삼세에 두루한 일체제불께 일심으로 정례합니다)”이고, 법보는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존법(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시방삼세에 두루한 일체존귀한 법에 일심으로 정례합니다)”이며. 승보는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성승(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聖僧, 시방과 삼세에 두루한 일체의 성승에 일심으로 정례합니다)”라고 예경삼보를 하고 있다. 승보를 성승에 국한시키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② 우바새계경에서 말하는 승보
《우바새계경》 〈수계품〉에 “우바새계는 아주 심히 어려우니라 ……만약 승가에 의지하면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외도의 삿된 무리에 의지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만약 삼보께 귀의했다면 이 사람은 곧 모든 중생에게 두려움을 없게 해준 것이니, 능히 무포외(無怖畏)를 베푼다면 이 사람은 곧 우바새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라고 삼보에 의지할 것을 밝히고 있다.
〈정삼귀품〉에서 삼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삼귀의란 어떤 것인가? 선남자야. 불, 법, 승을 말하는 것인데 불(佛)이란 능히 번뇌를 부수는 인과 바른 해탈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법(法)이란 곧 이 번뇌를 부수는 인과 진실한 해탈이며, 승(僧)이란 번뇌를 부수는 인과 바른 해탈을 품수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바새계경》에서도 삼귀의계와 삼보에 대한 중요성을 곳곳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삼보는 모든 불자들이 목표로 해야 하는 일이므로 삼보께 귀의하기를 원하고 세 차례의 발원을 통해서 삼귀의계를 구족하게 된다. 《우바새계경》이 재가불자의 계율에 관한 최고·최대의 경전임을 생각할 때 《우바새계경》에서 선양하고자 하는 지계정신은 대단히 중요하며 재가불자들의 일상과 수행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재가불자이기 때문에 능하게 실천할 수 있는 답안을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③ 아함부 경전을 통해 본 승보
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삼보품〉에 보이는 승보
“성스러운 대중에게 귀의하는 덕이란 것은 이른바 대중이 많이 모인 형상이 있는 무리이다. 중생 가운데 여래의 대중 스님(衆僧)이 대중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위로서 능히 미칠 자가 없다. 첫째,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 가장 높아서 위가 없으며 다음으로 법을 받들어 섬기면 탐욕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현성중(賢聖衆)을 공경히 받들면 이것이 가장 좋은 복전이다…… 이 삼귀의를 갖춘 사람은 도에 나아감도 또한 어렵지 않으리.”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서 승보라 한 것은 출가 대중을 말하는 것이며 삼귀의 대상으로서 스님은 여법하게 수행을 잘하여 중생의 복전이 될 만한 스님으로 이미 삼현·십지위에 도달한 현성승과 4인 이상의 승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 장아함경(長阿含經)의 《유행경(遊行經)》에 보이는 승보
장아함경에 수록된 경전 가운데 가장 긴 경전으로 《유행경》이 있다. 이 경전은 부처님의 최후 여행 가운데 일어났던 갖가지 일과 부처님의 열반 모습을 기록한 경인데 부처님께서 바이샤리에 가셨을 때 암바파리라는 여인이 부처님께 음식 공양을 올리고 법을 듣게 된다. 이 법문을 듣고 감동한 여인은 삼보에 귀의하기를 발원하고 오계를 지킬 것을 맹세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끝 부분에 보면 “저는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스님네에게 귀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아함경과 율장에서는 보시와 지계는 천상에 나는 원인이 된다고 모든 우바새 우바이에게 강조해서 가르치셨는데 이는 삼귀오계를 받은 재가불자가 능하게 할 수 있는 일이고 잘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출가 스님에게는 생략한 부분을 특별히 강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재가인이 가장 능하게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보시하는 일과 삼귀오계를 받아서 스님들의 수행생활을 돕고 스스로 허물을 줄이는 부분이라고 부처님은 판단하신 것으로 보인다.
④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승보
가. 《대승이취육바라밀경(大乘理趣六波羅密經)》의〈귀의삼보품(歸依三寶品)〉에서 말하는 승보
“승보에도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세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제일의승(第一義僧)이니 이른바 제불성승(諸佛聖僧)은 법과 같이 주하여서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고 능히 태울 수도 없고 사의할 수도 없어서 일체중생의 좋은 복전이다. 복전이라 하지만 받은 바가 없고, 모든 공덕법이 항상 변역하지 않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제일의승이라 한다.
둘째는 ‘제2의 성승(聖僧)’이라 한 것도 이른바 수다원향(須陀洹向)과 소다원과(須陀洹果), 사다함향(斯陀含向)과 사다함과(斯陀含果), 아나함향(阿那含向)과 아나함과(阿那含果), 아라한향(阿羅漢向)과 아라한과(阿羅漢果), 벽지불향(辟支弗向)과 벽지불과(辟支弗果), 팔대인각(八大人覺), 삼현십성(三賢十聖) 이와 같은 것을 이름하여 제2의 성승이라 한다.
셋째는 ‘제3의 복전승(福田僧)’이라 한 것은 이른바 비구, 비구니 등이 금계를 수지하고, 다문한 지혜가 있어서 천의수가 능히 중생을 덮어주는 것과 같으며, 또 광야의 모래벌 가운데서 목이 말라 물을 구할 때에 포연한 단비가 쏟아져 내려 때에 맞추어 충족함과 같으며, 또 큰 바다에서 일체의 뭇 보배가 모두 그 가운데서 나오는 것과 같이, 복전승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능히 유정에게 안온쾌락을 주며, 또 이 승보가 청정하고 더러움에 물듦이 없으므로 능히 중생의 탐·진·치의 어둠을 멸하는 것이 보름 밤의 둥근 달의 광명을 일체 유정이 우러러보지 않는 자가 없는 것과 같고, 또 마니보주가 능히 유정의 일체 좋은 원력을 만족게 함과 같으므로 이것을 제3의 승보라 한다.”
이러한 삼보에 대해서 어떻게 귀의할 것인가를 밝힌 부분을 보면 “이 세 가지 승보에 일체 유정이 어떻게 귀명할 것인가? 마땅히 제일의제(第一義諦)인 무위의 승보에 귀명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무루의 승보에 귀의하면 능히 유정의 일체 고를 면하는 까닭이며, 또 유정으로 하여금 마땅히 이러한 무루의 공덕을 얻게 할 것이니 내가 귀명하는 불·법·승보는 삼악도의 고를 겁내지 않으며, 또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기를 발원하거나 구하지 않고, 유정을 구하여 생사의 고로부터 벗어나기를 발원할 것이니 이것을 귀의승보라 한다.”
이와 같이 《대승이취육바라밀경(大乘理趣六波羅密經)》의 〈귀의삼보품〉에서는 제1의 승·제2의 성승·제3 복전승의 세 가지로 승보를 분류하고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필경에는 생사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열반을 얻을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발심하여 대승행을 수행하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삼보에 귀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1의승은 최상승의 이치로써의 승보이고, 제2의 성승은 삼현·십성 등의 지위점차에 오른 모든 승보를 이야기하며, 제3 복전승은 현성위에 오르지는 못하였으나 금계를 수지하고 널리 삼장을 연찬해서 청정무염하고 중생의 탐·진·치 삼독심을 멸해주는 범부승을 제3의 복전승이라고 분류했다.

⑤ 각종 논서에 보이는 승보
인도에서 보살의 칭호를 받은 논사들이 논서를 저술하기에 앞서 삼보의 가피를 비는 뜻에서 지은 귀명게(歸命偈)에서 귀의의 대상인 승보를 기술한 것을 열거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귀명게 가운데 특수한 예를 살펴보자. 실역의 《삼저미부론(三底彌部論)》은 “일체지(一切智)에 귀명합니다”라고 불보에만 귀의한다고 기술했고, 각길상지보살(覺吉祥智菩薩)의 《집대승상론》은 “묘길상보살마하살에게 귀의합니다”라고 승보인 문수보살에게만 귀의한다고 하였으며, 의적보살(義寂菩薩)의 《집체법보최상의론(集諸法寶最上義論)》에서는 “일체 부처와 모든 법장에 귀명하고, 일체의 지혜와 광대하고 심히 깊은 이치에 정례합니다.”라고 불과 법에 귀의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사들은 귀명삼보를 갖추어서 기술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부처님의 직제자인 존자대목건련(尊者大目乾連)의 《아비달마법온족론(阿毘達摩法蘊足論)》에서는 “불법승에 머리를 조아려 절합니다.”라고 하여 삼보에 귀의함을 간단하게 기술하였고, 정의보살(淨意菩薩)의 《십이인연론(十二因緣論)》에서는 “모니존(세존)과 묘법과 비구승에게 귀명합니다.”라고 하였는데, 비구승은 모든 스님을 함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 율장과 아함경, 대승경전 및 각종 논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승보는 지상보살과 여법하게 수계와 지계를 엄정히 하고 결계와 포살을 실천하는 청정승가는 비록 범부승이라도 승보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3. 승단과 승가의 역할

1) 승단과 결계
결계(結界)는 불교 승단의 운영상 불가결의 개념이다. 이 결계의 개념과 적용이 없으면 율의 규정 대부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중요하다. 결계란 승단의 공간 영역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율 규정에 의하면 승단이라는 것은 4인 이상의 비구(비구니)에 의해 구성된 집단으로 되어 있다. 즉 불교는 출가 수행자가 4인 이상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것을 기본으로 성립된 종교이다. 4인 이상이 되지 않으면 별중으로 화합승가가 아니다. 또한 남녀의 혼성집단은 인정되지 않으며 구성인원의 수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눈다. ① 4인중 비구승가 ② 5인중 비구승가 ③10인중 비구승가 ④20인중 비구승가 ⑤과(過)20인중 비구승가 등이다. 이들 대중의 숫자에 따라서 갈마(羯磨)할 수 있는 내용이 각기 달라진다. 5인중 비구승가에서는 불법이 흥하지 않은 변방에서 수계를 할 수 있고, 10인중 비구승가에서는 구족계 수계를 할 수 있으며, 20인중 비구승가에서는 승잔죄를 범한 대중이 있을 때 출죄갈마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니살기바일제나 바일제를 범했을 때 참회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적정 인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에는 일만 삼천여 명의 비구·비구니가 재적승으로 수행하고 있다. 조계종 승려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행하는 모든 비구·비구니를 일컬어 사방승가라 하고, 한 결계 안에서 정진하고 포살 자자를 하고 화합해서 문제에 대한 갈마를 하는 승가를 현전승가라 한다. 사방승가에서는 율이 그 역할을 하기 어렵고 주로 현전승가에서 효율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율 가운데에서도 건도(犍度)는 여러 가지 행사와 의식의 진행방법 등을 상세히 정하고 있는데, 현전승가 구성원의 전원 참가를 필요로 한다. 포살이나 자자와 같은 행사는 현전승가 전원이 출석해야 성립된다.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미리 대중에게 참석 못하는 사정을 밝혀야 한다. 또 중요한 안건을 결정할 때에도 전원 출석을 원칙으로 하며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위임[欲]을 해서 그 위임이 갈마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회의를 갈마라고 하는데 갈마는 원칙적으로 승단 비구(비구니)의 전원 출석에 의해 집행되며 의결은 전원일치로 승인된다.
 승단은 이처럼 갈마에 의해서 온갖 결정을 했는데 전원출석에 전원합의가 필수적이었다. 전체 승가가 한곳에 모일 수 없기 때문에 모이기 좋은 소집단으로 분할해서 갈마를 하게 되었는데, 전원이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정도의 범위를 기준으로 했다. 이 승단이 모일 수 있는 범위를 바로 계(界)라 하고 갈마를 통해서 계를 맺는 것을 결계라고 한다. 따라서 승단과 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승단이 있으면 반드시 계가 결정되어 있어야 하므로 계가 없는 승단은 청정승단이 아니며 화합승단이 아니고 별중이라 한다. 그러므로 결계하지 않은 청정승단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활동 단위인 승단이 지나치게 중요시된다면, 불교 본래의 이상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한 단일 집단인 불교 세계의 존재는 그 의의가 옅어져 버리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승단의 개념은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된다.
첫째는 현전승가로서 계를 영역으로 하는 현실적인 승단이다. 그 뜻은 눈앞에 존재해 있는 승단이라는 의미이다.
둘째는 사방승가로서 모든 불교계가 하나의 승단이라는 의미로, 이 승가는 실제 어떠한 행동이 이루어지는 승가는 아니지만 불자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개념이며 출가자들의 참다운 소속 집단이다. 신심 있는 불자의 공양에도 현전승가에 하는 경우와 사방승가에 하는 경우가 있다.
출가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사방승가의 현실적 효용은 큰 편인데, 한 현전승가의 승단에서 다른 현전승가의 승단으로 이동했을 경우에도 현전승가에 있는 모든 사방승가의 소유물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망승(亡僧)의 재물도 현전승가가 나누어 쓸 수 있는 사소한 물건들은 현전승가에서 나누어 쓸 수 있으나 사방승가에서 관리해야 할 승물은 사방승가의 재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리고 청정승가의 조건은 결계 안에서 동일설계 동일갈마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청정승가라고 할 수 없다. 청정승가는 재가불자들이 공양 올린 시주물을 받을 권한이 있고 또 소임자는 평등하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출·재가의 모든 불자들이 숙지하고 있다면 출가자는 어느 곳을 가도 모두가 주인이며, 주인의 권한과 의무를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다. 결계 안에서 수행하는 대중 가운데 자신의 범계를 참회하는 방법과 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또 죄를 벗어나기까지 중지되어 있는 여러 가지 권한에 대해서도 율장에서는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율장에서 언급된 내용에 하자가 있는 스님이 아니면 현전승가나 사방승가의 승단 운영원칙에 따라서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마땅하다. 이러한 모든 제도 운영은 결계를 바탕으로 현전승가의 영역이 뚜렷이 마련되고 현전승가와 사방승가의 구별이 뚜렷해질 때 좀 여법하게 운영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제도의 복원은 시급하며 절실한 과제이다.

2) 승보의 자격유지 조건
승보는 수계를 통해서 출가 수행자로서 자격을 획득하게 되고, 4인 이상의 대중이 모여 포살 자자를 하고 화합해서 갈마를 함으로써 청정승보의 자격이 주어지며, 수지하겠다고 약속한 여러 가지 오편칠취의 계목들을 잘 지킴으로써 그 자격이 유지되며, 성문과 연각과 보살 지위를 증득함으로써 승보의 자격이 유지된다.
승단과 교단을 구분해 보면 승단은 비구·비구니·식차마나니·사미·사미니 오부중으로 나눌 수 있고, 교단은 우바새·우바이를 더해서 칠부중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칠부중은 식차마나니·사미·사미니를 빼고 사부대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첫째, 수계를 통해서 출가 수행자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고 했는데 승단의 구성원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비구의 조건에 대해 살펴보자.
사미가 20세가 되면 비구계를 수계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이 의식을 구족계라고 하는데, 구족계 의식이야말로 승단에서는 중요한 의식이다. 이 의식이 바르게 집행되지 않으면 승단은 새로운 비구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 결국 승단은 소멸해 버린다. 또한 불교가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승단을 만들 경우에도 먼저 이 의식을 바르게 집행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현재 동남아 국가들의 불교에 비구니 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티베트불교에서 비구니 교단의 복원을 고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출가자에게는 계와 율이 있으나 재가자에게는 계만 있고 율은 없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재가불자는 범계에 대한 책임이 없고 범계를 하더라도 교단 내의 지위에 아무런 변화도 없다.
둘째, 4인 이상의 대중이 모여서 포살과 자자를 하고 화합해서 갈마를 함으로써 청정승가의 자격이 주어진다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미 결계 부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현전승가의 활동 공간을 결계를 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조건이 여법하게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청정화합중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간단한 갈마를 통해서 결계와 해계를 할 수 있으나 그 차이는 참으로 크다.
수계나 설계(포살)나 자자 등의 여러 가지 갈마들이 절차상의 조그마한 문제로 인해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4인 이상이 모여서 포살과 자자를 하며 화합해서 살아가는 대중은 비록 현성승이 아니라도 승보로서 존중받게 된다.
셋째, “수지하겠다고 약속한 여러 계목들을 잘 지킴으로써 그 자격이 유지되고, 범했을 경우 여법한 참회를 통해 청정성을 회복함으로써 승보의 자격은 유지된다”는 부분을 살펴보면, 비구·비구니는 그 범계의 경중(輕重)에 따라서 바라이·승잔·니살기 바일제·바일제·백중학 등으로 크게 나눌 수가 있다. 중벌에서부터 가벼운 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범계로 인해서 발생한 죄와 벌,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까지를 바라제목차 부분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바라제목차 부분에서 미처 언급되지 못한 부분은 다시 건도 부분에서 보완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는 어떤 종교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율장을 제정했고 전수되어 운용하고 있다. 현재의 사회법과 비교해 보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방대한 내용과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율장 정신이 전승되고 있는 승가는 참으로 여법하고 세상의 복전으로 존중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승단은 이러한 여법한 틀을 훼손치 않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정진하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재가불자가 아무런 갈등 없이 승보에 귀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단 몇 명이라도 여법한 승가가 존재한다면 이는 세상의 큰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청정승가를 중심으로 쉼 없이 정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맺는말

삼귀의의 의의와 승가의 역할이라는 주제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삼귀의의 대상인 삼보의 개념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불교는 수행 전통이나 역사 등에서 여러 장점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은 계율 관련 교육의 부재와 연구 성과의 미미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우리 교단 내에서 율사는 계를 지키는 사람이고 다른 대중들은 잘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인식하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 비구·비구니계를 받았으면 이를 잘 지키는 것은 모든 수행자의 의무이다. 수계를 함으로써 비구·비구니라는 신분이 주어지고, 그로 인해서 여러 가지 권한과 의무가 따르게 된다. 이 권한이 파계를 원인으로 해서 정지되거나 소멸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제재가 따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종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우리 승단의 현실이다.
《속고승전》을 저술한 도선율사는 고승들을 영역별로 분류했는데 계율을 연구하고 선양한 스님들의 전기를 〈명율편(明律篇)〉에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율사는 계율을 잘 지키기도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계율을 잘 이해하고 그 뜻을 분명히 알아서 대중 가운데 청정치 못한 사람이 있으면 청정성을 회복하게 하고, 새로운 교단에 구성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법하게 교육, 수계해서 불조 혜명의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을 바라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대중이 화합하지 못하면 화합시키고, 율장에 대한 정미로운 연구를 통해서 수행자가 생활하는 가운데서 늘 계율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틀을 갖추어 주는 것도 율사의 역할이다. 다양한 시대 변화로 인해서 야기되는 환경 문제, 생명윤리 문제 등의 많은 문제에 대해서 불교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교단 및 종단운영을 율장을 바탕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권(중앙종회·호법부·초심 재심 호계위원회·소청심사 위원회 등) 안에서 여러 역할을 해 주는 것도 율사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선율사는 명율편에 율사 스님들의 행적을 소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가와 재가 대중의 위상을 바로 하여 바람직한 승단의 모습을 모색하기 위해 제기한 이 논고의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귀의계의 대상인 삼보의 정확한 개념을 정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특히 삼귀의계 가운데 귀의불과 귀의법에 대해서는 별로 이의가 없지만 승보에 귀의하는 일에서만큼은 조금은 주저하게 되는 우리 현실을 감안해 볼 때 그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까닭에 삼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하고자 삼보의 정의와 사종삼보, 삼장 및 주석서 등에서 말하는 승보의 조건 등을 살펴보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가지 전적에 한결같이 승보란 현인과 성인의 위(位)에 오른 분과, 범부승이라 하더라도 4인 이상의 대중이 결계를 하고 동일설계 동일갈마를 하는 수행생활을 해야 승보의 자격을 갖춘 청정승가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 승보란 사부대중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혹은 스님들만 국한되어야 한다, 혹은 현성승이라야 한다, 범부승도 화합승가로서 동일설계 동일갈마를 하는 청정승가는 승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등 여러 논의가 있는데,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주지삼보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승보란 사부대중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율장 정신으로 볼 때 맞지 않고, 범부승까지 승보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주지삼보의 입장이 반영된 의견이다.
다시 정리하면 승보는 출가대중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고, 귀의승은 바로 여법한 출가 비구·비구니에게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출가대중 이외에는 현성위에 오른 이(문수, 보현 등)가 귀의의 대상이다.
둘째, 삼귀의의 역사에서 제정 과정이나 삼귀의계의 중요성을 《우바새계경》을 근거로 살펴보았다. 이에 따르면 오계는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으나 삼귀의계는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삼귀의계의 수지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길 때 우리는 바로 부처의 지위에 이르게 된다. 재가불자는 부처님께서 판단하신 대로 재가인으로서 능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실천하고 출가자는 출가인으로서 역할과 의무를 다할 때 승보로서 존경받게 된다.
출가 수행자가 좀 더 여법해지고, 율장의 가르침대로 교단을 운영하고, 그로 인해서 청정성이 유지되고 모든 종도로부터 존경받게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행보다는 더욱 계율을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구족계를 수지한 사람이 계목과 범계 조건, 출죄 및 참회법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계율 교육이 꼭 필요하다. 옛 스님들은 구족계를 수지하고 5년간 계율공부를 할 것을 권했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그러한 율장 정신이 틀을 갖추어 원하는 사람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계율 전문도량의 역할도 반드시 필요한 내용 중의 하나이다.
재가불자의 계율 교육도 반드시 강화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삼보·삼귀의례 및 교단 운영의 틀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까닭에 일어나는 오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율 공부를 통해서 보시와 지계는 천상에 태어나는 원인이 되고, 특히 청정승가의 후견인으로서 부처님께서 재가불자에게 부촉하신 보시로써 출가 수행자를 후원하고 그 인연으로 출가 수행자가 이루어 낸 깨달음의 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재가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계율 교육의 강화와 율장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권장하셨던 수행자상을 구현하고 그러한 모습의 교단을 운영하는 것이 불자들로부터, 전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귀의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렇게 될 수 있다면 불자들 또한 아무런 갈등 없이 승보에 귀의하게 될 것이다.
셋째, 승단과 승가의 역할 부분에서는 승단의 특징, 승보의 자격유지 조건 등을 언급하고 재가불자와 출가 수행자의 의무와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 서로 공감하면 긍정적 역할이 가능한 공감대가 마련될 수 있다. 이러한 공감대의 틀을 바탕으로 서로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잘 활용하면 바람직한 교단운영은 충분히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 불교 중흥의 주체가 되고 부처님이 인가하는 가장 여법하고 수승한 수행자가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출가 수행자와 재가불자가 각기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스스로에게 주어진 여건을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는 바람직한 승단과 재가불자의 관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바로 삼귀의계의 역사와 역할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데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덕문
통도사 영축율학 승가대학원장. 통도사 승가대학, 봉선사 능엄학림, 파계사 영산율원 연구원 졸업.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행자교육원 유나, 대한불교조계종 계단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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