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불교가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 많은 사람에게 진면목이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지금을 불교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기독교 문명으로 점철되어 온 서구 세계에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이 일본의 선불교이든, 중국불교이든, 아니면 한국불교이든, 티베트불교이든 간에 이제 불교는 명실상부하게 많은 서구인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불교도 세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의 세계관이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의미 있는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불교의 세계화는 한편으로는 바람직할 일이기도 하지만, 이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불교도 새로운 시대 상황에 따라 새롭게 변화되어야 하는 점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세계화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하면서도 비정한 경쟁 구도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교가 개개의 인생에게 삶을 살아가는 지침을 형성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적 세계관이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소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중차대한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불교가 갖는 풍부함이 현실의 다양한 욕구와 함께 변화되고 변용되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야만 한다는 새로운 과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여러 가지 과제 중에서 불교가 과학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불교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과학의 시대이다. 과학 정신이라는 인류 역사상 전혀 새로운 정신이 우리의 사고와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 나는 불교가 직면한 여러 문제 중에서도 과학이라는 현상을 불교의 틀 속에서 어떻게 해석해 내야 하느냐는 과제가 아주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불교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근대 과학 이전에 덧붙여진 사고까지 불교가 계속해서 함께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불교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많은 변용의 과정을 거쳐 온 불굴의 종교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불교는 티베트,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훌륭하게 적응하였고 많은 사람에게 인생에 대한 영감과 지침을 주었던 동시에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잘 알다시피 이러한 적응과 변화의 과정을 거쳐 불교 정신은 세계 역사에서 찬란한 문화로 평가받는 선불교와 티베트불교를 창출하였다. 흔히 말하듯이 유일신 사상이 없는 불교는 여러 다양한 정신적 세계관과도 잘 융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무상, 고, 무아라는 불교의 대원칙은 모든 것이 변화하는 시공간의 다양한 현상에 무한히 적응할 수 있는 기본 틀이다.
근대 이후 인류 역사에서 과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등장하였고, 이 흐름은 세계 역사 전체를 조망해보면 다른 어떤 역사적 사건보다도 파급력이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의 진보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진리 파악이라는 기존의 종교적 세계관 내지 철학이 형성한 분야에까지 과학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자연과학의 발전과 함께 수많은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에서 차용한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을 채택하였고, 철학적 세계관도 과학의 발전과 함께 바뀌어 왔다는 것은 과학철학사를 통해 익히 잘 알려진 바이다.
과학의 진리 탐구는 외적 사물에 대한 것이고, 불교의 수행은 내적 마음 세계에 대한 진리 파악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진리를 향한 열정은 동일하지만 진리 탐구의 대상은 서로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견해에 전부 동의할 수 없지만 일정 부분 타당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부이든 일부이든 간에 진리 탐구라는 관점에서 불교와 과학은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불교와 과학 서로가 자신들의 외연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달라이 라마의 활동은 많은 감동과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과학자들과의 대화에서 특히 불교와 당장 연관성을 갖는 분야에서 서로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진리 탐구라는 과학 정신이라는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과학과 연관해서도 불교 정신이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게끔 기존의 불교를 넘어서는 범위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천주교의 역사에서 예수회는 기독교의 정신을 여러 학문 분야에 접목해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다시 연구하여 성서적 신학과 접목하여 오메가 포인트라는 성서적 관점을 도출하기도 하였다.
불교가 갖는 유연성과 통합성, 그리고 인간정신의 무한한 탐구 정신을 과학적 사실에 접목한다면 대단히 많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심리학 내지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개념 틀을 형성하는 데도 불교의 사상이 중요한 의미를 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갖는 면역학적 다양성과 풍부함을 무궁무진한 불교의 화엄 정신과 비유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 있는 비교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양자물리학적 사고가 이미 불교에 존재했다는 식의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불교의 진리 탐구 정신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교의 세계화가 현대 과학 및 여러 사상과의 다양한 접목과 변화의 과정과 함께 간다면 불교는 더욱더 인류의 진화와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에 붙어있는 수많은 역사적인 퇴적물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것이 정말 진정한 의미의 불교 진수인지, 아니면 그 시대적 상황의 부산물인지를 탐색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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