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들을 통해 본 중국불교 사상사

《중국불교의 거사들》
운주사, 2013년 3월,
372쪽, 15,000원
1.

중국불교에 관한 여러 책이 있지만, 중국불교의 토착화 과정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서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중국의 역사가 복잡하고 또한 수많은 인물과 다양한 사상들이 어우러져 있어서 단행본에 이 모두를 소개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더러는 중국불교사라 하면서도 명·청 대 이전 불교계의 사상만을 다루기도 한다.

최근 이러한 경향과 다르게 일반인들도 중국불교사상의 흐름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김진무 선생의 《중국불교의 거사들》이 바로 그 책이다. 그간 중국불교사상과 불교와 유교 및 도교와의 교섭사 등에 대한 많은 저서와 역서를 출판해온 김진무 선생이 ‘거사로 보는 중국불교사’란 기치를 들고 370쪽에 달하는 일종의 중국불교사상사를 출간한 것이다. 그간 닦아온 내공이 한껏 돋보이는 책으로 불교 전공자인 필자가 보기에도 많은 것을 생각게 하고 배울 점 또한 많다.  

얼마 전, 막 출간된 《중국불교의 거사들》이란 책을 가지고 김진무 선생이 직접 연구실에 찾아왔다. 일전에 중국불교의 거사들에 대해 불교계 신문에 연재한다는 말은 듣긴 했지만 글의 내용을 접하진 못했었다. 책의 내용 중에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던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서문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중간에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최근 개인적으로 대승불전에 대한 강독모임에서 《유마경》을 읽고 있고, 보조 지눌의 《화엄론절요》에 대한 번역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지겸과 구마라집, 승조, 도생, 혜원 등 《유마경》을 번역하고 주해를 달았던 인물들과 《신화엄론》의 저자인 이통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있던 터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 참고할 바가 많았다. 또한 기존의 번역서에서 보았던 글과는 다르게 중국불교를 바라보는 김진무 선생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어 재미를 촉발시켰던 것도 같다.

우선 재가자의 입장에서 ‘거사’들이 주연이 되어 엮어가는 ‘중국불교사’가 가능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흥미롭고, 또 이를 통하여 한 권의 중국불교사상사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러한 발상이 한국불교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는 사색의 여지를 제공해준다.    


2.

이 책은 단순히 거사의 생애와 일화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일종의 ‘중국불교사상사’이다. 중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에서부터 근대에 이르는 70명 내외 거사들의 생애와 사상 및 활동들을 중심으로 드라마틱한 중국불교의 전개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간 중국불교사의 조연으로만 생각해왔던 거사들이 저자에 의해 새로운 주역으로 각색되고 있다.
분명 가장 나중에 쓴 글로 보이는 서문에는 이 책을 출판하는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중국불교는 그 초전의 상황부터 철저하게 ‘경세’의 필요성에 의하여 수용된 것이고, 이러한 성격은 전체적인 중국불교사를 통하여 견지되고 있다고 하겠다. (중략) 이러한 중국불교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당연히 뛰어난 고승대덕들의 활약이 두드러지지만, 그에 못지않게 재가 거사들의 역할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절대 권력을 가진 황권에서는 교의의 발전보다는 ‘경세’의 유용성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고, 그것을 중재할 수 있는 입장을 가진 이들이 바로 ‘거사’들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중국불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황권과 경세의 유용성’에 있다. 그리고 그 중재자로서 ‘거사’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불교신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경스럽게 보일 이 같은 저자의 관점은 학문적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생각해보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구분을 통하여,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를 대승불교로 이해하려 하면 곧 난관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 인도 대승불교와 중국 대승불교 사이에 존재하는 크나큰 성격의 차이를 설명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불교교단의 형성이 황권의 유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국가적 차원에서 발생했다는 점과 그러기에 거사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저자의 지적은 분명 동아시아불교를 새롭게 이해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에 대한 나름의 논증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실린 글은 2008년부터 2년여에 걸쳐 불교계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의 장점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즉 제한된 지면 탓으로 글이 늘어지지 않고 핵심적인 내용만을 잘 요약하고 있으며, 신문에 연재된 글의 성격상 문맥이 매끄럽고 이해가 용이한 장점이 있다. 반면 좀 더 길게 설명이 필요하거나 많은 중요한 인물들이 생략되어 있어서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시기를 나누고 매 시기 중요한 인물들을 안배하여 적당한 분량으로 단행본으로 엮어낸 것은 또 다른 장점이다.


3.

신문에 연재된 글이 아무리 인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엮어 하나의 저술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분명 하나의 저술로 손색이 없다. 저자의 숨은 노력이 그 과정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거사’에 대한 개념 정의를 시도한다. 인도불교에서 ‘거사’의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밝힌 후, 구마라집과 천태지의와 혜원 등이 사용하고 있는 ‘거사’의 개념을 소개한다. 그리고 거사란 ‘불교의 가르침에 머무는 선비’라는 저자 나름의 개념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여 이후 소개될 거사들의 외연을 획정하고 있다. 

저자는 거사불교와 관련된 자료로 다섯 종류를 제시한다. 첫째는 ‘거사전’의 유형이다. 팽제창의 《거사전》과 고명잠의 《선각집》 주시은의 《거사분등록》 심태의 《불법금탕편》 그리고 하수방의 《명공법희지》 등이 그것이다. 둘째는 명승의 사적을 기술하면서 저술 및 사적을 함께 기재한 자료이다. 승우의 《홍명집》과 도선의 《광명홍집》 등을 비롯한 수십 종이 그것이다. 셋째는 거사들이 스스로 찬술한 호법론이다. 이사정의 《내덕론》과 장상영의 《호법론》 등이 그것이다. 넷째는 각 종파의 사서와 전기이다. 도원의 《경덕전등록》 등이 그것이다. 다섯째는 각종 소설과 개인 문집이다. 유의경이 찬술한 《세설신어》 안지추의 《안씨가훈》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소개함으로써 이 책에 실린 글들의 객관적 근거를 확보함과 동시에 학자들로 하여금 거사에 대한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중국불교의 토착화와 거사불교’ 제2장 ‘남북조시대의 거사들’ 제3장 ‘수·당대의 거사들’ 제4장 ‘오대·10국과 양송의 거사들’ 제5장 ‘요·금·원대의 거사들’ 제6장 ‘명·청대의 거사들’ 제7장 ‘근대의 거사들’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불교를 일곱 시기로 나누고, 매 시기 대표적인 거사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그리고 각 장의 첫머리에는 당대의 불교계 상황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들어 있다. 이는 ‘경세’를 키워드로 하여 시기별로 중국불교사를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불교사상사를 전공한 저자의 안목이 이 몇 개의 절을 통하여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중국불교의 토착화, 불유도 삼교융합, 북조 황제들의 봉불과 폐불, 남북조 시기 배불논쟁, 수의 건국과 문제의 불교부흥, 오대·십국 군신들의 폐불과 봉불, 양송 군주들의 불교정책, 요·금·원대 제왕들의 불교정책, 명대 제왕들의 불교정책, 중국 근대불교의 아버지 등의 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기술로 인하여 거사들의 활동과 역할이 중국불교계와 사상계에 끼친 남다른 영향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거사들의 성격상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교섭 및 상호영향에 대한 관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들 거사들의 생애와 활동을 단순히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불교사상사의 관점에서 이들이 끼친 영향과 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매 시기 중국불교사상의 주요 쟁점과 특질을 제시하고 거사들에 의한 불교와 도교, 불교와 유교의 상호교섭 및 주요 사상의 성립과 영향관계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유발시킨다.


4.

이 책은 중국불교사상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용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불교사상과 선학을 전공하는 평자의 입장에서도 많은 관련 지식과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일단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돈오성불론’과 관련하여 사령운과 도생에 대한 내용이다. 도생의 ‘돈오성불론’을 적극 옹호하고 선양한 인물이 사령운이었다는 점과 이어지는 백련결사의 주역 유유민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불교계를 주도한 구마라집과 혜원 사이의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양무제는 달마와의 만남을 통하여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는  불교거사로서 양무제의 활약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즉 그가 삼론종의 승랑에게 귀의하였으며 도사 도홍경과 밀접하게 교류하였다는 사실은 선종은 물론 교종과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또 수나라 시기 《역대삼보기》의 저자 비방장 거사에 대한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이 북조를 중심으로 기술되었다고 하는 점, 그 정신이 불교 중심주의이며, 불교사에서 편년의 시작이라는 점과 이 책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모순된 부분이 있음에도 유행하게 된 경위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초기 선종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선종 관련 거사들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우두선, 보당선, 북종선, 하택종, 마조종 등과 관련된 많은 거사들의 활동은 선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정보들을 가져다준다. 특히 각 종파의 선사상과 정치적 상황과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거사들이 활약하고 있는 점을 설명한 것은 선종사 연구에 있어서도 일정한 공헌을 한 셈이다.   

송 대의 이학(성리학)이 불교의 불성론과 수행론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많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송 대 이학가들이 거사전에 언급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주돈이, 소옹, 장재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호, 정이천, 주희까지 불교의 거사로서 거사전에 소개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는 학문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사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원나라의 공신 야율초재와 명나라의 기승 도연선사 요광효 및 유가의 이단자 이탁오 등에 관한 내용은 그 자체로 상당한 흥미를 자아낸다. 또한 원, 명, 청 등의 거사들에 대한 내용은 이 시기 불교계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끝으로 근대불교의 거사로서 양문회, 구양경무, 여징, 탕용동에 대한 소개는 근현대 중국불교계와 사상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현대 중국불교가 어떻게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 수수께끼가 이 네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풀리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 준다.
이 외에도 또 다른 여러 궁금증은 직접 이 책을 읽으면서 해소하기 바란다. ■

 

김방룡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전북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석사), 원광대학교 대학원 졸업(박사). 주요 논문으로 〈보조지눌과 태고보우의 선사상〉 〈진심직설의 저서에 대한 고찰〉 등과 저서로 《보조 지눌의 사상과 영향》 등이 있다. 보조사상연구원 연구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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