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 지음 《불교와 국가》

《불교와 국가》
국학자료원, 2013년 4월,
614쪽, 42,000원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불교학계에서 김광식 교수만큼 새로운 저작을 끊임없이 선보이는 학자가 또 있을지 의문이다. 그는 앞서 25권의 저서를 출간하였으니, 이번이 26번째이다. 그중 한 권을 제외하고 모두 근현대불교와 관련된 책이다. 저자가 근현대불교 연구서로 첫 책을 출간한 이래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우물을 깊고 넓게도 팠다. 어찌 보면 그에게 책의 출간은, 연구자로서 존재 증명, 인정 투쟁의 중대한 양상이다. 그의 기나긴 저작 리스트를 들여다보면 척박한 연구 환경과 관심의 부재 속에 이루어진, 쉴 틈 없는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이번 책은 《불교와 국가》이다. 시대는 물론 근현대에 한정되어 있다. 구체적 시기는 식민지기에서 1994년까지에 이른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근현대 공간에서 불교와 국가 사이에 전개된 역사적 내용은 이중성, 다면성을 갖는 것이다. 요컨대 불교의 존립, 성쇠에 있어서 국가 권력과의 관계는 중요한 관건이다.”라고 전제한 후 “본 저술은 한국 근현대 공간에서 ‘불교와 국가’ 간의 상관성을 고민한 필자의 학문적 보고서이다.”라고 책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불교의 항일의식’ 2부는 ‘불교의 민족의식’ 3부는 ‘불교와 국가권력의 대응’ 4부는 ‘10·27법난의 사회사’이다.

1부 ‘불교의 항일의식’은 4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있다. ‘법정사 항일운동의 불교사적 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불교의 민족운동’ ‘백초월의 항일운동과 진관사’ ‘백초월의 항일운동과 일심교(一心敎)’이다. 이와 함께 2부(‘불교의 민족의식’)에 수록된 것은 7편의 논문이다. ‘오성월의 삶에 투영된 선과 민족의식’ ‘홍월초의 꿈; 그의 교육관에 나타난 민족불교’ ‘한용운 민족사상의 연원’ ‘최남선의 ‘조선불교’의 정체성 인식’ ‘김성숙의 정치이념과 민족불교’ ‘탄허의 시대인식과 종교관’ ‘한국종교연구협회의 설립과 이능가’ 등이다.

1부와 2부는 불교계 항일, 민족운동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실과 인물 활동을 발굴하여 연구사적 의미가 충분하다. 이제까지 한용운, 백용성 등에 한정되었던 불교계 항일, 민족운동 관련 주제를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관련 사실과 인물들을 발굴하면서 다양한 자료와 인터뷰를 활용하고 있어서, 새로운 연구 자료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도 학계의 연구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3부(‘불교와 국가권력의 대응’)는 3편의 논문으로 ‘식민지 시대의 불교와 국가권력’ ‘1945~1980년간의 불교와 국가권력’ ‘민주화 운동기의 불교와 국가권력’이다. 논문의 제목과 성격으로 본다면, 3부가 이 책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식민지 불교를 다루면서는 “기존의 항일, 친일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성, 다의성으로 식민지 불교를 바라보고 그 연장선상에서”(p.441), 일제하 불교의 흐름을 조선불교 조계종, 조선불교 선종, 만당, 대각교로 대별하여 살피고 있다.

한편, 두 번째 논문 ‘1945~1980년간의 불교와 국가권력’에서는, ‘해방공간’ ‘정화공간’ ‘산업화 공간’으로 나누어 ‘불교와 국가 권력 간의 전개된 상관성’을 시기별로 고찰하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해방공간의 불교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과 대응, 협조관계를 노정하였다고 보았다(p.480). 교단과 이승만 정권과의 유화적 관계는 농지개혁법의 개정을 통해 사찰의 경제적 피해를 보완해 주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도움을 받았던 관계로 “사찰령 철폐나 기독교 중심의 종교정책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할 수 없는 체질”이 되었다고 분석하였다(p.481). ‘정화공간’에서는, 불교와 국가권력이 사찰령, 불교재산관리법을 놓고 각자의 존립, 이익을 추구한 기간이었다고 하면서, 사찰령의 존속을 이승만 정권이 정화운동 과정에서 불교문제에 개입, 간섭, 관리할 수 있었던 조건으로 설명하였다(p.482). 마지막으로 ‘산업화 공간’에서 불교와 국가 권력의 대응은, 기본적으로 불교재산관리법과 공원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이때 불교는 국가의 관리를 받지만 지원과 이익을 얻었고 조계종단은 유신체제를 인정하면서 유화적인 상호관계를 유지하였다고 보았다(p.484). 세 번째 ‘민주화 운동기의 불교와 국가권력’에서는 불교계 재야·단체의 입장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인식변화를 다루었다. 10·27법난이 불교계가 국가권력을 재인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1994년 종단개혁은 그 대립의 성격을 완전하게 변화케 한 사건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4부(‘10·27법난의 사회사’)는 ‘10·27법난의 발생 배경과 불교의 과제’ ‘10·27법난의 역사적 교훈과 사회적 과제’ 두 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들 글에서는 10·27법난의 발생 배경을 외인론과 내인론으로 나누어 균형 있는 시선으로 살폈으며 향후 법난과 관련된 과제와 사업 등에 대한 저자 개인의 의견을 상세하게 피력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서의 내용은 크게 1·2부와 3·4부로 구분할 수 있다. 1·2부는 주로 식민지기와 해방 후의 항일, 민족의식을 다룬 것이고, 3·4부는 한국 근현대기 불교종단과 국가의 관계를 종합하고, 시기별 중요 사건을 중심으로 개설적 수준에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근현대기의 ‘불교와 국가’라는 주제에 대한 종합적 이해는, 구체적 사실 확인과 수많은 사료의 검토 결과로 축적된 연구 성과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검증과 분석의 잣대로 논의할 능력도 부족하거니와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지닌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이 책의 주제는 ‘불교와 국가’인데, 주제에 대한 구체적 개념 규정이나 일관된 논지 혹은 분석틀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 자체에 대한 논의와 문제의식이 충분히 서술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지적될 수 있다.

또한 ‘민족’ ‘항일’ ‘국가와의 관계’라는 개념을 저자만의 구체적 규정, 정의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에서, 어떤 경우는 종단의 입장과 국가의 불교 정책을, 어떤 부분에서는 재야단체의 주장과 정권의 불교탄압을 배치하고 있다. 저자가 말한 ‘불교와 국가’ 혹은 ‘불교와 국가의 상관성’에서, ‘불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교단, 불교계 인사, 불교단체 등, 이 책에서 ‘불교’라는 이름으로 호명된 이들의 정체는 가변적이다. 또한 ‘국가’는 경우에 따라 국가의 불교 정책, 정권의 기호 혹은 국가에 의해 규정된 종교 환경 각각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불교와 국가’를 논의하면서 포함하고 있는 이들 범주는 적절한가, 또는 충분한 것인가? 또한 불교와 국가의 관계에서, 식민지기와 해방 후의 단절성과 연속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나 충분한 설명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같이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하여 명확한 개념 규정, 일관된 서술 관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둘째, 이 책은 앞서 나온 저자의 《민족불교의 이상과 현실》(도피안사, 2007)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저자는 앞서 제창한 바 있는 ‘민족불교론’을 이 책을 통해 재확인, 구체화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1·2부에서 각 인물의 활동을 다루면서 이들의 활동을 ‘민족불교론’으로 수렴하고자 한다. 저자는 호국불교를 대신하여 ‘민족불교론’을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통섭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제시하였고(pp.222~225), 이 책에 수록된 인물들의 활동과 불교사의 흐름을 ‘민족불교론’의 실례로서 등장시키고자 한 것이다.

저자의 ‘민족불교론’은 조성택 교수에 의해 비판된 바 있었고, 2011년 12월 말 〈법보신문〉 지면을 통해 몇 차례 치열한 논쟁을 거치기도 하였다. 이 논쟁은 기존의 한국불교사 연구 관점, 기술 태도 등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기회이자, 근현대기 한국불교가 당면한 ‘근대성’과 ‘정체성’의 추구라는 시대적 과제 수행에 대한, 연구자 간의 해석과 관점의 차를 선명히 인식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여기에서 저자의 ‘민족불교론’과 그것을 구성하는 개념의 내용에 대해 평가하거나 재론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필자의 능력과 지면의 성격, 한계를 벗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민족불교론’의 제기와 논쟁 과정을 거친 후 발표된 이 책에서, 저자 자신이 ‘민족불교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대, 진전시켰는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불교대중화와 불교사회화의 이념이 결합한 ‘민족불교론’을 통해 다양한 근현대 불교사의 인물, 사건, 행위성을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러한 실제의 예들을 이 책에서 드러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러한 저자의 의도나 목적이 일관적으로 반영되었다거나, ‘민족불교론’ 비판에서 제기되었던 여러 문제들, 즉 ‘민족불교론’ 개념 자체가 지닌 모호성, 역사 현실에 대한 평면적 해석의 문제 등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자가 주장하는 실례(實例)의 확보가 곧 ‘민족불교론’의 확장과 강화에 충분하다 할 수는 없다. 또한 이 책의 제목인 《불교와 국가》라는 주제에 가장 근접한, 제3부 ‘불교와 국가권력의 대응’에서 과연 ‘민족불교론’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정작 ‘민족불교론’을 구체화시켜야 할 국면에서, 불교와 국가권력의 상관성은 국가의 불교 정책과 대응이라는 표면적 이해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일종의 작업가설로 제기했던 ‘민족불교론’을 이제는 구체화, 정교화시키고 더욱 적실한 개념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의 나열, 주장의 동어반복만으로 저자의 주장이 강화될 수는 없다. 현재까지 저자가 피력하고 있는 ‘민족불교론’에 대한 인상은 많은 내용을 담고자 하지만 지나치게 성기고 단순한 그물이다. 그물은 넓고 탄탄해 역사상의 수많은 사실들을 포괄할 수 있겠지만, 빠져나갈 예외들이 많을 뿐 아니라 복잡하고 다면적인 역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화된 틀로써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에 대한 엄밀한 규정과 역사현실에 대한 보다 적실하며 다양한 해석의 시도를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역사 인물, 사건들이 지닌 다층적 의미에 대한 입체적 해석과 날카로운 통찰을 기대하고 있다. 저자의 ‘민족불교론’은 한층 더 정확한 개념어의 사용, 절제된 서술 방식, 세계불교사에 대한 확대된 시야를 통해 심화되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된다.      

긴 세월 동안 먼지 쌓인 문서 더미와 노사(老師)들의 머릿속에서만 잠자고 있던 새로운 사실과 사건, 인물들을, 세상의 빛에 처음 드러내는 일처럼 역사학자로서 흥미진진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흥미진진한 작업을 저자는 17년째 해왔고 우리 모두 그 덕으로 근현대 불교사 이해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저자에게 큰 빚을 지고 있으며, 한국불교 연구사에 있어서도 그가 남긴 족적은 그 누구보다 뚜렷하다.
이제는 보다 공시적, 통시적 역사상의 성찰과 논리의 심화를 통한, 밀도 있는 저자의 역사서술을 접해보고 싶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자의 충성스런 독자들은 새로운 저자의 저작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

 

이경순 
신구대 강사. 서강대학교 사학과,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졸업. 서강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선우도량 한국근현대불교사연구회 간사 역임. 논문으로 〈일제시대 불교유학생의 동향〉 등이 있고, 공저로 《조계종사: 근현대편》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등이 있다. 현재 조선후기사로 박사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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