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지음 《대승계의 세계》

1. 대승불교와 대승계

《대승계의 세계》
조계종출판사, 2012년 11월,
558쪽, 28,000원
우리나라의 불교는 대체로 대승불교권으로 분류된다. 최근 남방불교가 관심을 끌면서 그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흐름도 없지 않고, 또 계율의 문제를 기준으로 삼으면 ‘사분율(四分律)’을 비롯한 초기불교의 계율을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의제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불교 전통이 보살(菩薩)을 중심에 두는 대승불교의 그것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승불교라는 개념은 한편으로 북방불교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지역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석가모니 입멸 후 경과 율의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된 부파불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붓다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실천운동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좌부와 대중부의 분열 이후 더 복잡하게 분열된 부파들이 지엽적인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 몰두하거나 승가 안의 권력 투쟁 같은 비불교적인 목표들에 매진하고 있을 때, 주로 대중부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일부 개혁적 승려들과 재가자들이 힘을 합해 불교개혁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가 대승불교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등장한 대승불교는 당연히 승가 공동체 중심의 계율에 대해서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는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그 구체적인 결과물이 우리에게 대승계(大乘戒)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불교 또한 이 대승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삼학(三學)의 공부와 수행과정을 이끌어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런 당위적 요청에 비하면 한국불교계의 대승계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거나 심지어 왜곡되어 있기조차 하다. 승가와 재가불자들 사이의 관계설정에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고, ‘율장은 금서’라는 과도한 의식으로 인해 재가자들이 율장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스님들이 있기도 하다. 재가자들의 경우에도 계율은 스님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승가 공동체를 전제로 해서 성립된 율(律)로 한정 지을 경우, 계율은 주로 스님들이 지켜야 하는 일종의 공동체 생활 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계(戒)의 경우에는 그것이 주로 마음속에 지니는 내적 기준이자 깨달음을 향하는 열망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사부대중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지녀야 하는 것이다.

대승계는 이러한 계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계율이다. 대승계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그런 점에서 한국불교가 사부대중 공동체를 살려나가는 과정에서, 또 그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설정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계율 자체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적을 뿐만 아니라 대승계 또는 보살계에 대한 관심은 더욱 적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한국불교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나온 원영 스님의 《대승계의 세계》는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반가운 마음을 금치 못하게 하는 좋은 소식이다. 물론 이 책은 온전한 저서는 아니다. 대승경전에서 대승계와 관련되는 것들을 뽑아서 모아놓은 후에 각 장마다 그 경전과 대승계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는 편저서이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그 아쉬움은 60쪽에 가까운 총론 ‘대승계의 탐구: 현대 불교윤리의 정초를 위하여’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있다.

2. 보살계로서 대승계의 구체적인 내용

붓다를 지향하는 초기불교의 수행자 모형이 아라한이라면 대승불교의 그것은 당연히 보살(菩薩)이다. 이 보살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 생을 살아가는 붓다를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깨달음과 중생을 위한 자비실천을 분리하지 않는 수행자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아라한과 비교하여 보살이 지닌 차별적인 특징 중 하나는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분하지 않는 점이다. 누구라도 깨달음의 경지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이 출가자들에게 제한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보살사상의 핵심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승가 공동체를 전제로 해서 성립된 율보다는 마음으로 받아서 지키는 기준이자 원칙으로서의 계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대승계는 곧 보살계가 되기도 한다.

편저자 원영 스님(이하 편저자로 칭함)은 이 대승계가 기원 전후에 편찬된 각종 대승경전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삼취정계 개념을 빌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는 어떤 행위를 금하는 형식으로 제시된 율의계(律儀戒)이고, 둘째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기 위한 다양한 수행과 종교의식 등을 행하는 과정과 관련된 선법계(善法戒)이며, 세 번째는 도움이 필요한 다른 중생을 위해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돕는 중생계(衆生戒)이다.

편저자는 이러한 대승계가 포함된 방대한 대승경전을 섭렵하면서 먼저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는 일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보살이 행하는 모든 종류의 바라밀과 실천을 전제로 해서 경전을 살펴보면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기 때문에 누구나 직면하게 되는 곤경이기도 하다. 편저자는 이러한 어려움을 ‘계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과 ‘남을 돕는 윤리적 실천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선별함으로써 극복해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준들이지만, 여전히 두 번째 기준이 지닌 모호성, 즉 그 외연(外延)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아 있다.

두 가지 기준을 전제로 해서 찾아낸 대승계의 세계는 《화엄경》에서 시작된다. 이 경전의 〈십지품〉 중에서 특히 두 번째 경지인 이구지(離垢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열 가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금강장 보살의 법문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정직하고 부드럽고 참을성 있는 마음과 다스리고 고요하며 순일하게 선한 마음, 그리고 혼란스럽지 않고 그리움이 없으며 넓고 큰 마음이 바로 이 열 가지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서 두 번째 경지에 들어가면 거친 마음으로 생명을 해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며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과 이간질하는 말, 성품이 나쁘거나 꾸미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더 나아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삿된 생각을 내지 않게 된다.

같은 경전의 〈정행품〉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지침들이 제시되고 있다. 집에 있을 때 마음 쓰는 법에서 시작해서 자연을 보았을 때나 사람을 만났을 때, 더 나아가 마을에서 걸식할 때와 누워 자고 쉴 때 마음 쓰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 속에서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면서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즐거운 놀이에 모일 때
중생은 법으로써 스스로 즐기고
놀이가 진실이 아님을 알고자 해야 한다.(97쪽)

잠자고 쉴 때
중생은 몸이 편안함을 얻어서
마음에 움직임과 어지러움이 없기를 원해야 한다.(123쪽)

대승계를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경전은 《범망경》이다. 편저자의 해설에 따르면, 이 경전의 핵심 내용은 내 안의 불성(佛性)을 찾는 대승계이자 나 자신과 깨달은 존재자로서의 붓다가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되는 범망계로 요약될 수 있다(470쪽). 동아시아 계경을 대표하는 경전으로 꼽히기도 하는 이 경전은 10중계(重戒)와 48경계(輕戒)라는 두 차원의 계를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 10중계는 생명이 있는 것들을 죽이지 말 것,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 것, 음행하지 말 것, 거짓말을 하지 말 것, 술을 팔지 말 것,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 것, 자기를 칭찬하지 말고 남을 비방하지 말 것, 자기 것을 아끼려고 남을 욕하지 말 것, 성내지 말고 참회하면 잘 받아줄 것, 삼보를 비방하지 말 것 등이다. 48경계는 ‘스승과 벗을 공경하라’에서 시작해서 ‘법회가 열리는 곳에는 반드시 가서 들어라’ ‘복과 지혜를 함께 닦으라’ ‘여법하지 못한 자리에서 설법하지 말라’ ‘스스로 불법을 손상시키는 일을 하지 말라’와 같은 48개의 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도 편저자는 “대승불교가 일반인을 위한 불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60쪽)라는 전제 속에서 재가자들을 위한 계경인 《유마경》과 《우바새계경》의 핵심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우바리여! 망상이 오염된 것입니다. 망상이 없으면 곧 청정인 것입니다.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염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러한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청정입니다. ……또 모든 법은 한순간도 머무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아지랑이나 물 속에 비친 달과 같이 망상으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계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이 계를 잘 지켜나가는 사람이야말로 해탈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345-346쪽)

편저자가 《유마경》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제시하고 있는 유마힐의 이러한 지적은 진리의 깨침과 계를 지키는 일 사이의 동일성을 강조하고 있는 획기적인 관점이라고 할 만하다. 모든 것이 아지랑이나 물속에 비친 달과 같이 망상으로 인해 생기는 것임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이 곧 계를 잘 지키는 일이고, 그것은 동시에 해탈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재가보살 유마힐의 관점은 대승계 또는 보살계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3. 대승계에 근거한 새로운 불교윤리는 가능한가

그 외에도 다양한 대승계경을 찾아 제시하고 있는 편저자의 의도는 서론과 총론에 잘 드러나 있다. 그 의도는 “현대사회에서 드러나는 각종 윤리적 과제에 적용할 수 있는 ‘현대불교윤리’의 정초를 다지고자 한다면 이 책에서 보이고 있는 대승계 사상을 꼭 참고했으면 하는 바람”(서문, 13쪽)과 “이제 불교인들은 ‘자비’의 정신을 현대적 사회이론으로 발전시킴은 물론, 대승계를 현대사회의 윤리관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할 때”(총론, 74쪽)라는 편저자의 강조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편저자의 바람은 현대사회의 윤리문제나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절박성을 지니고 있다. 재가 공동체에 생계를 의존해야 했던 출가공동체의 생활규범을 담고 있는 율장을 통해서도 현대적 의미 확장이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과 적용 범위의 문제 등으로 인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에 비해 대승계는 그 자체로 재가와 출가를 넘나들 수 있는 마음의 계라는 점에서 현대적 적용 가능성이 좀 더 커질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편저자의 지적처럼 천오백 년을 ‘무심한 종교적 언어’로 이어오며 구체적 현실에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자비를 ‘현대’ 특히 ‘현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하는 방안이다. 이 책은 그런 방안을 구체적으로 다룰 수 없는 구조와 특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한국불교의 전통 속에서 대승계가 어떻게 정착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대승계가 중국불교의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성립한 것은 확실하지만, 원효의 수많은 보살계 관련 논서들이 보여주듯이 일정 부분에서는 한국적 전통의 보살계로 재정립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승계의 보편성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위치한 지점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불교의 계맥(戒脈)에 대한 한층 더 적극적인 관심이 요청되는 시점임에 틀림없다. 그것에 더하여 현대 한국의 사회 현실에 대한 주체적이면서도 객관적인 분석이 뒤따른다면, 대승계에 기반한 새로운 불교윤리의 가능성은 폭넓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

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동 대학원 졸업(윤리학, 도덕교육학 석사·박사).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윤리를 수학했으며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1, 2》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 등이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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