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프랑스의 시인이자 미술비평가인 보들레르(1821~1867)는 글쓰기 관례를 벗어나는 거침없는 작업으로 19세기 중반 당시 이미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가이다. 그가 죽고 난 후 약 백오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보들레르에 관한 연구가 왕성하게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연구들이 보들레르의 작업과 작가 자신에 대한 풍부한 설명을 제공해 왔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풍부한 설명은 보들레르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면서, 결국 하나의 통일된 시각으로 보들레르를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보들레르의 글쓰기나 사고가 일관된 방향으로 설명되지 않는 만큼, 보들레르와 그의 저작에 대한 상이한 논의들은 연구자들 사이에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실제로 보들레르와 그의 작업들에 대해 진행된 다양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우선 그의 에로틱한 성향에 대한 분석이나 사회주의적 성향에 초점을 맞춘 현실주의자(le réaliste)로서 보들레르에 대한 이론을 들 수 있다. 또한 이론가에 따라서는 보들레르를 상징주의자, 탐미주의자, 무신론자 혹은 가톨릭 신자로 주장하는 논의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모던한 예술가, 고전적인 예술가라는 상반되는 이미지의 보들레르를 그려내기도 한다. 심지어 장 폴 사르트르나 로만 야콥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이들은 보들레르를 반동주의자로 보기도 하고, 이브 본푸아와 그의 학파는 보들레르를 성인으로 다루기도 한다. 한편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미국의 네오마르크스주의자인 프레데릭 제임슨은 보들레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논하기까지 하는데, 이유는 다르지만 프랑스 불문학자인 앙투안 콩파뇽 또한 제임슨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보들레르를 해석하는 시각이 다양한 만큼, 그 시각에 비친 보들레르의 이미지는 다양함을 넘어 서로 배치(背馳)되기까지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여, 필자는 한국 선불교의 불이론(不二論)의 관점, 특히 지눌(1158~1210)의 입장에서 보들레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고려 중기 선사 지눌은 800여 년 전에 성(聖)과 속(俗)이 다르지 않으므로 궁극적인 진리(vérité ultime)가 인습적인 진리(vérité conventionnelle)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한참 후인 19세기 중반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던 대도시 파리의 시민인 보들레르는 물론 지눌의 주장에 대해 전혀 알 리 없었겠지만 지눌의 가르침과 매우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 속의 두 사람, 다시 말해 약 650년의 시차와 한국과 프랑스라는 엄청난 공간적 거리를 두고 있는 지눌과 보들레르의 주장은 어떤 점에서 유사하다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더욱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지눌의 불이론(不二論)인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지눌은 고려 의종 때의 승려이자 선종(禪宗)의 중흥조이다. 그는 선(禪)과 교(敎)에 집착하지 않는 바른 깨달음을 얻는 방법으로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제창하였다. 지눌이 이러한 방법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알기 위해 우리는 우선 당시 한반도의 불교 상황으로 시선을 돌려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는 자신의 뿌리인 인도에서 출발하여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거쳐 다양한 성격의 종파로 분화되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 서구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불교는 사실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의 형태였다. 이성 중심주의로 대표되는 서구의 사유 전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지식인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는데, 특히 정신분석학 분야를 공부하던 이들이 불교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 비판의 표적이 되었던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불교를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는데, 그 불교는 일본의 불교학자인 스즈키에 의해 틀이 잡힌 것이었다. 스즈키의 불교는 중국이나 한국의 선불교와는 달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신비로운 정신성을 추구하는 종교의 형태를 띤 것이었다. 왜 하필이면 일본의 선불교가 유럽 지식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왜 필자는 일본 선불교가 아니라 지눌의 이론을 설명틀로 삼아 보들레르의 회화론을 설명하려는 것일까?
사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고통이 환영적인 ‘자아(le moi)’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불교는 세상 삼라만상 모든 것에 실체(substance)가 없으며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 실제의 세상은 공(空, le vide) 위에 서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실체도 없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불교의 시각에서는 우리가 ‘자아’라고 믿는 것도 실은 허상일 뿐, ‘자아’를 자아라고 믿는 주체(sujet)도 ‘자아’라고 동일시할 대상(objet)도 없다. 결국 불교가 말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이고 영원하지 않으며, 전생에서 지은 복이나 죄를 현생에서 받게 된다는 인과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인간 삶의 기저에 깔려 있는 덧없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평온한 상태 즉 해탈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석가모니 사후에 그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졌고, 그 결과 많은 불교 유파가 생겨났다. 석가모니 사후 2세기 후, 그 유파들은 크게 대승불교와 상좌부불교라는 두 개의 흐름으로 정리된다. 상좌부불교는 보수적이고 승려 중심적이며, 무신론적 성향이 짙고 철학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인 데 반해, 대승불교는 진보적이고 속가제자에게도 해탈의 문호를 개방한다는 점에서 보다 민주적이며, 유신론에 더 가깝고, 신앙행위와 종교의식을 허용한다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대승불교의 흐름 가운데 공(空)사상 위에 세워진 중관사상과 인간의식을 첨예하게 분석해낸 유식사상이 후에 중국으로 전해져서 중국 선불교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중관사상이나 유식사상과 같은 인도의 대승불교가 불교의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사유 속에서 단계적으로 발전해온 데 반해, 중국으로 유입된 불교는 인도로부터 파편적으로 전해진 불교 경전과 이미 중국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기존의 사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발전되었다. 말하자면, 크게 유행하고 있던 유교사상과 도교사상이 조금씩 전해지는 불교사상과 적당히 혼융되는 과정에서 중국불교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불교는 인도불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그 결과 불교의 경전이나 비서(秘書), 신비스런 제의에 가치를 두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직접 바라보도록 하는 독특한 전통을 만들어냈다. 결국 이렇게 모양새를 갖춘 중국의 선불교가 한반도와 일본으로 유입되게 되는데, 이 중국의 불교는 그나마도 당시 한반도와 일본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변화하게 되었다.

1) 일본 선불교에 대한 비판적 접근
필자는 앞에서 잠깐 일본의 선불교를 유럽과 미국의 정신분석학자들이 받아들였던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일본 선불교의 이론화 작업은 스즈키와 교토학파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된 일본의 선불교는 현재 그들의 불순한 의도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필자는 스즈키와 교토학파가 정리한 일본 선불교가 우리의 관심사인 보들레르 회화론을 설명하기에 마땅치 않은 점을 지적하기 위해 보편주의, 포스트-오리엔탈리즘, 내셔널리즘의 입장에서 일본 선불교를 비판해보고자 한다.
스즈키와 교토학파는 선(禪)의 본질이 신비로운 정신성의 경험에 있는 것처럼 설명함으로써 그들의 선불교를 정파를 넘어선 정신적 경험, 더 나아가 종교적인 것조차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성의 체험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일본 선불교를 종교와 철학 그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스즈키가 보편주의의 입장에서 일본 선불교를 포장하려 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서구의 논리적 철학에 대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열등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서구의 침략기 동안 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우월한 정치력, 기술력, 군사력으로 무장한 서구인들의 제국주의 앞에서 일종의 자괴감에 시달렸다. 따라서 서구적 교육을 받고 자란 아시아의 지식인 1세대들은 그들 고유의 사상을 서구적 이론의 틀로 설명하는 것을 초미의 관심사로 삼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스즈키와 교토학파가 일본 선불교를 보편주의의 입장에서 정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야심이 단지 일본 선불교를 보편주의로 포장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일본 선불교를 일본인들의 우월한 정신성의 정수로 둔갑시켜 전 세계에 선전하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작은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일본 선불교의 핵심을 신비로운 정신성의 경험이라고 설명하는 중에 그들은 서구와 비서구의 대립, 즉 물질과 정신의 대립이라는 낡은 틀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하고 그들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오리엔탈리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스즈키와 그의 동지들이 서구 지식인들에게 그들 종교의 뛰어남을 증명하려 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예수회의 선교사들이 불교를 지성적 시스템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과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현대의 이론가들은 스즈키와 교토학파가 취했던 이러한 입장을 포스트-오리엔탈리즘이라 부른다.
그러나 스즈키와 교토학파는 일본 선불교를 일본인들의 우월한 정신성의 정수라는 미명하에 전 세계에 선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대한 그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꼼수를 부리기 위해서도 일본 선불교를 이용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월한 정신성을 갖춘 일본 민족이야말로 아시아를 선도할 만한 자격이 있으며 아시아의 다른 형제국들은 일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내셔널리즘을 표방하는 데에도 자신들의 선불교를 이용했던 것이다. 결국 일본의 선불교는 스즈키에 의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본 선불교는 보들레르의 회화론을 설명하는 데 부적절하다.
이제 우리는 서구에서 마치 유행과도 같이 번져나간 일본 선불교가 우리의 관심사인 보들레르 회화론을 설명하기 위한 설명틀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선불교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인 지눌의 이론으로 우리의 관심을 돌려보고자 한다.
2) 지눌의 불이론(不二論)
한국 선불교의 불이론, 특히 지눌이 말하는 바의 불이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자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 선불교는 인간의 언어에 대해 불신했는데, 이는 문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공안(公案)이라는 독특한 선수행(禪修行) 방식을 낳았다. 공안이란 인간 언어가 가진 이원론적 성격, 예를 들어 기표/기의의 대립 같은 것들에 의해 야기되는 환영적인 분별(discernement)을 없애기 위한 도구로 고안된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 선불교의 공안은 인간 언어가 갖는 단점에 대한 대안으로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독특한 성격을 갖게 된다.
우선, 공안은 하나의 대상을 하나의 의미, 즉 인간의 인식 범주로 국한하려는 인간의 의식작용을 억제하기 위해 언어를 완곡(oblique)어법이나 수행적(performatif) 발화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선문답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도통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들이 바로 그 사례이다. 공안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될 수 없는 인간 언어 사용을 통해 그것이 일반 언어와는 달리 인간 인식의 범주나 고정된 의미로서의 언어가 아닌 특수한 성격의 언어가 되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선문답은 도대체 의미를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소리들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실제로 선수행에서 공안은 일반적인 인간 언어의 사용법과는 달리 진리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도록 돕는 한편, 환영적 세계에 대한 집착을 끊도록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의 선사들은 진리가 논리적인 방식으로는 논증될 수 없으며, 그 결과 진리가 인간의 언어로는 경험될 수도, 표현될 수도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선승들은 선 수행자들에게 스스로를 일상의 모든 인식적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신이 아닌 타자와 합일을 이룰 것을 권고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공안의 역할이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 그중에서도 특히 문자를 경계하라는 중국 선불교 선사들의 가르침과는 달리, 그들의 선문답은 공안집으로 기록되고, 후학들에 의해 학습의 대상이나 심지어는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 선불교의 불립문자 전통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중국불교 내의 역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공안의 역설은 중국 선불교가 갖고 있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중국 선불교의 목적이 사물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데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 언어와 문자에 대한 무조건적 금지는 결국 인간 언어와 문자 언어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또 다른 집착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선불교는 바로 이 부분, 중국 선불교가 안고 있는 공안의 역설이라는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인간의 언어란 원래 선과 악,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언어가 선하거나 악하게 되는 것은 곧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언어란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끌기도 하고 또 그것을 방해하기도 하는 잠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 모든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인간 언어에 대한 다른 입장으로 인해 진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간 언어에 대한 전통적인 불신에도, 한국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시로 표현한 오도송(悟道頌) 또한 선수행자를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는 일종의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처럼 언어의 중립적 성격을 주장하는 한국 선불교의 흐름 속에서, 지눌은 불교 경전공부와 선수행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사실 지눌이 주장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 수행론은 중국 선불교 전통에 비해 불이론에 보다 충실하다는 특성을 갖는다. 그는 경전공부와 선수행을 병행하고 선수행을 통한 깨달음 이후 자비를 실천할 것을 주장하는, 이른바 이중적인 수행론을 제시한다. 지눌은 그의 ‘돈오점수’ 수행론을 통해 삼라만상에 내재하여 있는 불변성(immutabilité)과 상대성(relativité)의 공존을 인정함으로써 중국 선불교에서 폄하되었던 불교 경전의 가치를 재해석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점이 지눌의 수행론이 불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함을 보여주는 충실한 지점이라 하겠다. 성과 속이 다르지 않음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궁극적인 진리가 인습적인 진리 속에 이미 있음을 상기해본다면, 경전 속에 쓰여 있는 진리 또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지눌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세(samsara) 속에 해탈(nirvana)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불성(佛性)이 있듯이, 진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쓰인 글귀 속에조차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불이론에 충실한 지눌의 입장이다.
인간 언어에 대한 가치 판단, 즉 인간 언어가 깨달음에 도움이 되거나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태도에 달린 것처럼, 우리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것이 글로 쓰여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처럼, 불이론에 충실한 지눌의 가르침은 단박에 깨닫도록 하는 선수행과 점진적 수행으로서 경전공부를 병행할 것을 권한다. 깨달음 없는 경전공부는 진리를 구하는 이를 타성에 젖게 하기 쉽고, 꾸준한 경전공부 없이는 깨달음을 역동적인 상태로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 즉 부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은 순간적인 것이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타성에 젖은 나쁜 습성은 점진적으로 떨어낼 수밖에 없다. 이에 덧붙여, 깨달음에 뒤이은 점진적 수행은 수행자로 하여금 이미 얻은 깨달음을 일상생활에 적용해보도록 하고, 또 그의 시선을 타인의 고통으로 돌리게 한다. 실천적 자비가 없는 깨달음은 순수하게 이론적 상태에 머물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눌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을 통한 점진적 수행을 통해서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한국 선불교, 그중에서도 지눌의 불이론이 말하는 것은, 궁극적 진리가 우리 현실의 삶 속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진리에 대한 깨달음 또한 순간적인 동시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눌의 가르침 속에 불변성과 상대성이 공존하는 방식이다.


3. 지눌의 불이론과 보들레르 회화론

보들레르는 물론 지눌의 가르침을 알았을 리가 없었겠지만, 보들레르 또한 불변성과 상대성이 공존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이에 대한 깨달음을 진리라 부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러한 진리를 발견하게 된 예술가가 이것을 예술을 통해 널리 알리기를 바랐다. 그는 우리가 예술작품 속에 진리를 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 속에 구현된 진리 또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었던 것 같다. 우리가 언어에 부과하는 선과 악의 문제는 언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태도에 달렸다는 지눌의 주장처럼, 우리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것이 매체를 통해 물질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보들레르는 주장한다. 결국 지눌이 자신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을 통한 점진적 수행을 통해서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보들레르 또한 ‘도취(ivresse)’를 통해 깨닫게 된 진리를 ‘상상력(imagination)’을 통해 세상에 알림으로써 예술가가 될 것을 주장한다.

1) 불변성과 상대성의 공존 : 모더니티 개념(notion de modernité)
보들레르는 19세기까지 이어져 온 서구의 미 개념에 반대한다. 그가 보기에 전통적인 미 개념은 철학과 종교를 그것의 기준으로 삼아 지성을 매개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도덕적 내용이나 교훈 등을 포함하는 이미지만을 미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보들레르의 입장에서 보자면, 서구의 전통적인 미 개념이란 결국 감성(sensibilité)을 이성작용의 일부인 것으로 여기는 잘못을 범해 왔을 뿐이다. 보들레르에게 진정한 미적 경험은 서구의 합리적 사유의 전통, 즉 이성 중심주의를 벗어날 때에만 가능하다. 이렇듯 이성주의에 기반을 둔 미 개념에 반대하는 보들레르는 그 자신의 미 개념을 제시하기에 이르는데, 그는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조건들, 다시 말해 미적 확실성을 담보하는 모든 이성적 수단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미 개념을 전개한다. 이성적 기준을 탈피하는 보들레르의 미는 즉흥적이고 알려지지 않은 것(l’inconnu)을 그 대상으로 삼게 되는데, 보들레르는 예술이라는 분야에서 사람들에게 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철학이나 종교를 내세우는 대신에 기존의 이성적 판단 기준을 대신하는 새로운 기준을 보이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미 개념에서 출발하는 보들레르는 당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바를 모더니티 개념과 더불어 제시한다.

모더니티란 일시적인 것, 덧없는 것, 우연한 것, 이것이 예술의 절반을 이루며, 나머지 반쪽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들레르가 그의 모더니티에 부여하고자 했던 특징은 크게 보아 상반되는 시간성의 공존, 즉 현재의 특성인 일시성과 시적 영원성의 공존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일시성이란 늘 가변적 성질과 관련되는 데에 반해, 영원성이란 불변성을 담보로 한다. 이렇듯 상반되는 성질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보들레르의 예술론은 이렇듯 상반되는 두 성질을 함께 둠으로써 빚어지는 역설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보들레르의 모더니티에 관해서만 이야기해보자면, 보들레르는 영원성이나 일시성 둘 중 어느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구속하는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심지어 서로 반대되는 두 성질을 긴장 관계 속에 두는 것으로 그의 모더니티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긴장 관계는 선불교 불이론(不二論)의 특징이기도 하다.
자아 속에서 평등제법(平等諸法)을 자각하도록 하는 불교적 세계관의 맥락에서는 성(聖)과 속(俗)이 둘이면서 동시에 둘이 아닌 이중적인 모습을 띤다. 특히 평상심이 곧 도(道)라는 선불교의 전통에서는 성속불이(聖俗不二)의 불이론적 특징이 더욱 잘 드러난다 하겠다. 사실 선불교의 불이사상에서는 성과 속의 양자가 대립이나 대치의 구도가 아니라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성과 속의 어느 한 편이 소멸됨으로써 대립이 평정되는 방식이 아니라, 성과 속이 대립됨과 동시에 양자 간에 무차별의 동일성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말하자면, 변증법적인 긴장과 조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불이(不二)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성립되는 역동적인 장으로 남게 된다. 보들레르 모더니티에서 보이는 일시성과 영원성의 관계 또한 속에 해당하는 일시성과 성에 해당하는 영원성이 역동적인 방식으로 공존하는바, 불이론의 역동적 상태와 매우 유사하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들레르의 예술가는 모더니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또한 보들레르의 예술가는 어떻게 일시적인 현재와 시적 영원성을 함께 두게 되는 것일까?

2) 타자와 하나 되기와 홀로되기(solid/taire) : 보들레르의 회화론
보들레르는 ‘1855년 만국 박람회’ 비평에서 화가가 전통적으로 확립되어온 이성적 시스템에서 벗어나 작업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현대적 화가는 역사적 사실이나 신화를 기백 년 동안이나 그려오면서 굳어진 이성적 시스템, 즉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임무를 벗어 던지고 화가 당대의 일상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화가의 일상은 과거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였다. 기차와 공장 등의 기술문명이 가져다준 엄청난 속도감과 물질적 풍요로움은 어제와 다른 오늘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새록새록 깨닫게 해 주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있다는 사실은 보들레르로 하여금 그의 예술가가 현실의 삶으로 뛰어들어 일상의 삶으로부터 미적 가치를 추출해내도록 요구하게끔 했다. 보들레르는 정녕 예술의 영원함이 현실, 즉 일상적인 삶의 찰나 속에서 포착되는 현재로만 채워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보들레르는 그의 화가에게 낮 동안 대도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일상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밤이 되면 화실로 돌아와 낮 동안의 관찰을 통해 남은 인상을 그릴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화가가 대상과 하나가 되는 동시에 거리를 두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들이다. 우선, 현재로서의 일상적 삶의 모습을 관찰할 때, 보들레르의 예술가는 늘 그것을 “새롭게 보아(voir tout en nouveauté)”야 한다. 낯익은 일상이 달리 보일 때까지, 다시 말해, 일상이 숨겨왔던 본 모습을 보일 때까지 화가는 치열하게 관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들레르가 말하는 ‘새롭게 보기’이다. 하지만 이때의 관찰은 과학적 관찰과는 다르다. 보들레르에 따르면 낯익은 일상의 본모습인 진리와의 조우는 우리가 대상으로 삼는 어떤 것과 하나가 될 때에만 가능하다. 일단 보들레르의 예술가가 일상적인 어떤 대상의 이면, 즉 그 대상의 참모습을 만나게 될 때, 그 대상의 이미지는 일상적으로 대상에게 부여되었던 이러저러한 이미지와는 다른 성격을 얻게 된다. 요컨대, 우리가 우리의 이성으로 그 대상에게 부과했던 이미지, 즉 이성적 시스템 속의 그 사물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그 사물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된 대상은 그 대상에게 주어졌던 기존의 정체성(identité)을 벗어던질 수 있게 되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될 수 없다.
이 단계에 이르면 문제가 되는 대상의 이미지는 기존의 이성적 시스템이나 구속적 관계들에서 벗어나게 되어 다른 모든 이미지들과 무차별적으로 동일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동일성은 ‘같음’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 그 형상들이 분명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것에 부여된 어법 혹은 정체성, 이를테면 그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했던 이성적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그것들 간의 다름 혹은 차이를 입증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무차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동일성에 대한 이러한 논의를 지눌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바로 ‘분별하는 망념이 없는 일심(一心)의 상태’ 즉 ‘깨달음’의 상태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친밀한 어떤 대상의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낯선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성적 시스템에 물들지 않은 시선이 필요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보들레르는 ‘도취한 어린아이(l’enfant ivre)’ 또는 ‘회복기 환자(convalescence)’ 개념을 도입한다. 일상의 기저에 숨겨진 ‘기이함(l’insolite)’을 발견해내기 위해서 화가는 그의 일상을 달리 보아야 하고, 일상을 달리 본다 함은 ‘도취한 어린아이’나 ‘회복기 환자’가 그러하듯 일상을 난생처음 보듯이 관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들레르가 도취(ivresse)라는 용어로 나타내고자 하는 바이다.
이렇게 볼 때, 일상적인 대상에서 기이한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한 보들레르의 노력은 마치 화두를 부여잡고 정신을 하나로 모아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선승의 작업과 유사하다. 왜냐하면 이때의 관찰은 나와 거리를 둔 대상으로서의 진리를 보는 것임과 동시에, 대상과 하나가 된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와 대상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 그 순간이 바로 진리를 경험하는 순간이며, 나와 대상이 하나 됨의 경험이 보들레르가 말하는 진리의 내용이다. 이성/지성의 역할이 분별에 있고 그 분별을 담당해 왔던 것이 서구 이성 중심주의라 할 때, 보들레르는 분별 너머에 있는 진실한 이미지를 발견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발견된 진실한 이미지들이 예술의 모습으로 구체화되기 위해서 보들레르의 예술가는 다시 자아로 되돌아와야 한다. 조우한 일상의 진리를 예술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온 자아로서 예술가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고독은, 서구적 전통에서는 이성적 사유를 위한 필수조건이지만 보들레르에게는 그렇지 않다. 진리를 깨달은 예술가에게 고독(solitaire)이란 도취의 또 다른 이름이며, 합리성이라기보다는 직감과 더욱 가까운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합일의 순간을 통해 자아와 타자가 다르지 않고, 순간과 영원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 보들레르는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즉 불이론의 진리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경험하게 된 진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인 한편, 초월적이거나 세상과 동떨어진 것 또한 아니기에, 바로 그 진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보들레르는 합리적 이성이 아닌 인간의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한다. 보들레르는 이제 상상력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다.

3) 진리의 소통가능성 : 상상력(imagination)
보들레르의 예술가는 고독 속에서 낮 동안 경험했던 일상의 사건들, 즉 얻어진 진리를 떠올리고 그 인상들에 시적인 직감을 연결 짓는다. 이 시적인 직감을 일컬어 보들레르는 상상력이라 부르는데, 바로 이 상상력을 통해서 예술가가 경험한 진리는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보들레르에게 상상력은 깨달음, 즉 진리의 발견과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현대예술(l’art moderne)의 주제가 되는 도시, 군중, 일상은 오로지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해서만 시적인 것, 즉 영원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를 지각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인 상상력은 과거의 망각과 즉시성에의 동의를 가정한다. 공안의 경우에서처럼, 진리가 어떤 매체를 통해 재현되게 되면 그것은 자신에 내재했던 진정성(l’authenticité)을 잃고 관람의 매 순간 즉각적인 경험의 순간에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찰나적 경험인 진리에 대한 경험은 재빨리,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재현되어야 한다. 시간을 끌게 되면 합리적 지성이 습관처럼 개입하게 되고, 결국 진리를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보들레르는 상상력이야말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고 보며, 그리하여 상상력에 인간의 능력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이라는 지위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물론 보들레르가 물질적 요소를 통해 진리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완전히 믿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리기 위한 물질적 요소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보들레르는 그의 예술가가 경험했던 진리, 즉 타자와 하나 되기(solidaire)의 경험을 홀로되기(solitaire)의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예술작품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또한 그러한 예술작품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진리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도록 하고, 그리하여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게끔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보들레르가 그의 예술가에게 부과했던 소명이었다. 요컨대, 보들레르는 자아와 타자가 다르지 않고 순간과 영원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론의 진리를 꿰뚫고 있었으며, 예술작품을 통해 그 진리를 알리려 애썼던 것이다. 지눌이 주장했던 공안 수행이 인간 언어의 가치를 폄하하지만은 않는 것처럼, 보들레르 또한 예술 각각의 고유한 매체를 간과하지 않는다. 보들레르는 회화와 시를 통해 진리가 세상에 전파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지눌이 주장했던 것처럼 성(聖)과 속(俗)이 다르지 않고 그래서 궁극적인 진리가 인습적인 진리 속에 이미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예술작품 속에 구현된 진리는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진리의 소통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눌이 자신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과 자비의 실천을 통한 점진적 수행을 통해서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보들레르 또한 ‘도취’를 통해 깨닫게 된 진리를 ‘상상력’을 통해 세상에 알릴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우리는 한국 선불교의 불이론적 이원론과 보들레르의 미술론을 통해 궁극적 진리가 우리 현실의 삶 속에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진리에 대한 깨달음 또한 순간적인 동시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불변성과 상대성, 영원과 일시성이 공존하는 방식이며, 이 지점이 바로 지눌의 불이론적 이원론과 보들레르 미학이 맞닿은 부분이다.


4. 맺으며

지눌과 보들레르 사이의 이러한 유사함을 바탕으로 지눌이 말하는 바의 수행, 즉 불이론에 충실한 선수행법으로 보들레르의 예술론을 살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보들레르와 지눌은 공히 진리를 깨닫는 데 있어 인간의 합리적 이성작용(l’intelligence rationnelle)은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둘째, 깨닫게 된 진리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맛보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살행이다. 불교에서 보살은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으되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이 다 해탈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이들을 보살피고 가르치기 위해 세상을 떠나 열반에 들 수 없는 이들이다. 보들레르 또한 당대의 예술가, 즉 화가 또는 시인에게 진리를 몸소 경험하고 경험한 진리를 상상력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구현하여 널리 알릴 것을 요구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살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불이론적 시각은 이제까지의 보들레르 연구가 가져다준 서로 상반되는 보들레르의 이미지들을 재구성하도록 해준다. 요컨대, 이 시각은 지금껏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보들레르의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역동적인 조화를 통해 재조명될 가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불이론의 도입은 보들레르에게 고유한 역설(paradoxe)에 대한 재해석 또한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사실 1990년대 이후, 학계에서는 보들레르의 사고 전반에 흐르는 역설에 대한 논의가 끝없이 행해졌고, 그 결과 보들레르의 사고와 저작에 역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일반화되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 즉 서로 상반되는 것들의 공존이라는 이 개념은, 진리와 현상, 주체와 객체를 서로 다른 것으로 보는 이원론이 팽배한 서구의 사유 전통 속에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서구인들에게 진리란 서구 형이상학 전통에서 상정되는 일종의 근원적 존재로서 이때의 진리는 단일하고 영원하며 부동하고 불변하는 존재여야 하는바, 이러한 진리를 알아보기 위한 인간 주체 또한 역설적 존재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보들레르에게서 역설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 역설 속에서조차 일종의 논리적인 내적 통일성(unité interne)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나타나게 되었다. 서구의 합리적 사유의 전통 속에서 역설이란, 사실은 마뜩지만은 않은, 보아 넘기기 어려운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역설을 기꺼워할 수 없는 서구의 사유 전통이 갖는 한계의 원인을 이원론으로 보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선불교의 불이론, 특히 지눌의 불이론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결과 우리는 보들레르의 역설이 역동적인 긴장 관계 속의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어 타자들과 소통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조희원
덕성여자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미학과, 동 대학원(미술이론 석사), 프랑스 파리 1대학 미학과(비교미학 박사) 졸업. 주요 논문으로 〈예술의 자율성 : 보들레르와 그린버그의 비교를 통하여〉 〈보들레르와 모더니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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