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를 위한 불교의 역할을 기대하며

1. 협동조합은 무엇이 다른가

FC 바르셀로나의 독특한 운영 구조
제2의 마라도나로 칭송받는 세계적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가 소속된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팀은 조금 특별한 출생 배경을 갖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많고, 큰돈을 들여 유명선수를 사오기보다는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을 잘 운영하여 선수들을 길러 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1899년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탄생한 이 팀은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다 죽은 구단주를 대신하여 ‘시민정신’을 대표하는 축구팀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 협동조합 축구팀이다.
현재 구단의 주인은 출자금을 낸 조합원 17만 명이다.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6년에 한 번 구단주인 회장을 선발한다. 이 선거는 스페인 언론에서 대단한 관심거리이다. 이 팀의 특징은 유니폼에 절대 광고를 싣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다국적 기업의 광고 제안을 거절하고 오로지 유니세프(UNICEF)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뛴다. 대부분 유럽의 프로축구가 영리화되어 이익 창출에 혈안이 된 반면, 이곳 FC바르셀로나는 이익 창출이 목표가 아니라 축구 자체의 근본정신을 내세우고 있다. 더욱이 유니세프로부터도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 아동 문제를 지원하는 의미로 구단은 5년간 수익의 0.7%인 200만 유로를 유니세프에 후원하고 있다. 돈벌이는 관심 없는 이상한(?) 축구팀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팀이 이럴 수 있는 것은 바로 협동조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협동조합은 또 있다. ‘선키스트’는 오렌지 재배농가들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미그로’는 스위스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으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스위스의 국민기업이자 협동조합이다.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통신사인 ‘AP통신’도 1848년 6개의 뉴욕 신문사가 모여 시작했지만, 현재는 1,700여 개 신문사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여 만든 협동조합 통신사이다.

사업체이자 결사체인 협동조합
일반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자본을 투자하여 만든 투자자소유의 회사’라고 한다면 협동조합은 ‘실제 고객이 모여 설립한 이용자 소유의 회사’이다. 또한 영리회사가 ‘물질적 결합조직’이라고 한다면 협동조합은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인적인 결합조직’이다. 따라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일반 기업과 같지만, 자본이 중심이 아닌 사람들에 의한 결합체이다.
1986년 설립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이 1995년에 발표한 협동조합의 정의는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을 통하여 조합원들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결성된 자율적 결사체이다.” 다시 말해 정치, 경제, 사회적 약자들이 협동의 원리로 힘을 모아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적 삶의 질서를 만드는 결사체이다. 일반 기업이 단순히 영리와 이윤의 논리로 움직이는 데 반하여 협동조합은 영리를 추구하지만, 조합원들의 필요를 추구하는 협동적 결사체의 성격을 갖는 조직이다. 사업체적 측면과 결사체적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사의 성격 때문에 협동조합에 ‘운동’이라는 용어가 따라다닌다.
협동조합의 역사는 사업적 측면과 결사적 측면의 역동적인 균형을 이루면서 발전해왔다. 그런데 사업은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정한 기반을 잡게 되면 스스로 동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운동체이자 결사체로서의 측면은 매 순간 그 정신이 강조되고 의지를 되새기지 않으면 결국 사업적 관성에 포섭되어 협동조합 본래의 성격을 잊어버리고 영리와 기업이윤만을 추구하는 사업체로 전락하게 된다. 오늘날 농협을 비롯하여 신협 등이 협동조합을 표방하지만 협동체로서 성격보다 사업체로 각인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2. 저성장시대 협동조합에 주목하는 이유

왜 협동조합을 주목할까
유엔은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했다. 최근에 미국이나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도 협동조합이 새로운 기업운동이자 사회운동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은 150년의 협동조합 운동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 듯하다. 아마도 이것은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된 유럽 재정위기가 곧 자본주의의 위기로 등장하게 되었고, 2011년 9월 말 미국의 월가에서 세계적으로 확산된 ‘1%를 배격하는 99%의 협동경제’의 움직임이 촉매가 되어 새로운 돌파구로서 협동조합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다소 극적이다. 이제까지는 협동조합법 제도에서 후진국을 면치 못했던 한국이 2011년 말 갑작스럽게 협동조합 법제도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나라당이 거의 3분의 2의 의석을 점유하고 있던 국회가 유럽에 뒤이어 세계 두 번째로 ‘협동조합 기본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기획재정부가 앞장섰고, 특임장관실에서 ‘협동조합 기본법 제정연대회의’ 등을 통해, 시민사회단체와 의견을 조율하면서 입법 통과를 지원한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은 2011년 12월에 입법통과 되고 2012년에 발효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 협동조합 관련 행정은 급속도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하철 곳곳에는 5명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독려하는 광고도 볼 수 있다. 대단히 반갑고 바람직하고 고마운 일인데, 한편으로 얼떨떨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하며 불안하기까지 하다. 대체 왜 이럴까? 이렇게 급조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저성장시대에 양극화가 심해지고 비정규직이 늘고 있으며, 고용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적 압박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협동조합이 가지는 신규 고용창출 능력과 고용유지 능력에 대해 기대를 하는 듯하다. 협동조합운동가인 김성오는, 행정당국은 대기업과 주식회사의 대주주들이나 금융위기를 조장했던 부도덕한 CEO에게 요구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협동조합과 협동조합 관계자들에게 읍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쟁사회의 실패로 협동사회에 희망을 걸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돈이자 자본으로 계산한다. 물건의 가격도 그것이 가진 정성과 땀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판매자와 구매자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며 인간의 능력도 기술도 돈으로 환산된다. 모든 것이 돈이 중심인 사회, 그것이 자본주의이다. 이 자본주의는 사회의 기본적 작동원리를 경쟁(competition)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한 것은 다윈의 자연진화론을 사회적으로 적용하여 사회진화론을 펼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이다. 그는 자연계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도 역시 경쟁과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가 정당화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친절, 배려, 부모님의 사랑, 친구와 동료 간의 우애, 신의와 어머니들의 가사노동, 자원봉사 등 세계는 돈으로 부여할 수 없는 수많은 무불노동, 그림자노동이 사회의 두터운 기반이 된다. 자본의 영역은 사실 그 위에 떠 있는 작은 배 정도일 뿐이다. 그럼에도 마치 자본주의가 사회 구석구석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고 규정하여 자본주의 시스템만 바꾸면 세상이 변혁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등장한 사회주의도 70~80년간은 인간의 희망이 되었지만, 그 역시 의미 있는 전망이 아니었다는 것을 1990년대에 들어서야 확인하게 되었다.
한편 크로포트킨은 그의 저작 《상호부조론》을 통해 사회는 부분적으로 경쟁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협동과 상호보완의 측면이 더 규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자연계에서 협동과 협력을 하는 종(種)만이 진화의 가장 마지막으로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협동적 관계만이 인간이 미래사회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생산력 중심의 두 사회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놓은 생태위기 시대에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크로포트킨의 상호의존과 협동은 사회관계의 의미 있는 중심으로 부각되었고, 바로 그 일환의 하나로 협동조합이 각광받으며 주목되고 있다.
1990년을 전후하여 동서독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오랜 갈등과 대립은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완승으로 끝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약 20년 뒤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의 재정위기는 미국 국민 99%의 분노를 사 급기야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라는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전 세계 25개국 400여 개 도시에서 ‘국제행동의 날’이 열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양극화와 소득불균형이 심각해지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최대의 화두가 될 정도였다. 역사적으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항상 경제공황과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회보장과 사회주의 요소를 추가하면서 갈등을 줄이면서 발전해왔다. 이제 한국은 청년실업과 경제민주주의, 양극화와 불균형적 사회구조를 더 이상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압박, 그들의 자발성에 의존하여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저성장시대에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돈에 의존하는 삶이 아니라, 사람 간의 협동에 의존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등의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3. 협동조합의 시작과 운영원리

협동조합은 어떻게, 왜, 시작되었는가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본과 임노동 관계, 주식회사, 시장제도 등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에 대항하여 약자들인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와 소상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협동조합이다. 그 시작은 역시 영국의 맨체스터 근처의 랭커셔 주 로치데일(Rochdale)이란 도시였다. 1844년 소비자협동조합 형태로 시작된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The 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이 그것이다. 1800년대는 영국 산업혁명의 절정기였지만 노동자들의 생활여건은 실로 비참했다. 일곱 살이나 여덟 살이면 일을 해야 했고, 그저 야학이나 주일학교 정도에서 공부할 수 있을 뿐, 보통 하루 17시간씩 일을 하고 여성들도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해야 했다. 또한 상인들은 나쁜 품질의 물품을 높은 가격에 팔았고 노동자들은 영양실조와 병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당시 노동조합 결성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노조지도자들은 끌려가 고문과 핍박을 받거나 직장에서 쫓겨나야 했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공권력과 직장폐쇄, 주동자 해고였다. 그래서 1843년 찰스 하워드를 중심으로 파업에 실패한 노동자들이 모여 실패와 좌절을 딛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이 ‘소비자협동조합’의 설립이었다. 이들이 1844년 12월 21일, 토드레인 거리에서 밀가루, 버터, 설탕과 오트밀을 파는 조그만 가게를 연 것이 협동조합의 역사적 시작이었다.
협동조합 가게는 성공적이었다. 속을 염려 없이 아이들을 안심하고 가게로 보내고, 주부들은 연말보너스로 작은 비상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남자들은 함께 만나서 의논할 장소도 생겼다. 6년 뒤인 1850년에는 조합원 수가 600명이 되었고, 가구, 정육점, 신발, 벽판, 양복점 같은 코너도 신설하여 장인들의 일거리도 만들어졌다. 이후 제분공장도 만들고, 2.5%의 적립금으로 도서관과 남성회관도 열고 강연회도 유치했으며, 생산협동조합, 건축협동조합, 상호금융은행 등이 추진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 전역에 로치데일을 모방한 협동조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1877년 영국에는 1,661개로 협동조합 숫자가 불어났고 100만의 조합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비자협동조합 모델은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으로 확산되었다.
영국에서 소비자협동조합이 시작되었다면 프랑스에서는 노동자협동조합이 시작되었다. 1831년 파리에서 목수들이 협동조합을 처음 만들고 금세공인, 석공, 제빵사 단체들이 조합을 결성하였다. 1884년 29개 조합의 참여로 노동자들의 생산협동조합 자문협의체가 발족했으며, 1904년에는 359개 조합 중 200개 조합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이 조합들의 다수는 파업 과정에서 기존의 자본주의 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는 생산협동조합과 노동조협동조합들의 실험적인 노동자 공동체가 태동했다.
독일은 산업화로 인한 화폐경제의 확산으로 농촌 지역에 고리대금업의 횡포가 심해 그에 대한 해법으로 신용협동조합과 상호금융은행이 발달했다. 1849년 라인 계곡의 안하우젠 마을의 촌장이자 기업인이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라이파이젠이 농촌 지역에서 신용협동조합을 시작하였고, 도시에는 상호금융은행인 민중은행이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샤를 지드(Charles Gide)는 협동조합을 자본주의 해독제로 본 전형적인 이론가로, 경쟁은 악이며 처방전은 협동조합이라고 보았다. 특히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는 사적 자본의 폐기, 경쟁 및 가격체제의 배제를 주장했다. 영국 협동조합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로버트 오언 (Reobert Owen)이다. 그는 ‘협동’이라는 용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한 인물로, 미국에 ‘뉴하모니’, 영국에 ‘뉴라나크’, 스코틀랜드의 ‘오비스톤’과 같은 수많은 협동조합 공장, 협동조합 공동체를 만들었다. 협동조합 방식의 공장을 만들려는 그의 시도와, 노동량에 기초해 상품을 교환하고 생산수단은 공유재산으로 하자는 제안은 이후 마르크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마르크스는 이들 오언과 푸리에, 생시몽 등의 사상을 유토피안(공상적) 사회주의로 불렀다. 이들은 인류에게 이상적 사회를 꿈꿀 수 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 사람들이었다.

현대 협동조합의 발전과 종류
19세기 중반에 유럽과 미국에서 치즈 등 유가공 부문의 농협이 가장 먼저 탄생하였다. 초기에 농협은 농축산물의 판매와 가동, 영농자재 등의 협동조합과 농기계 공동이용협동조합, 농업 공동생산협동조합 등 다양하게 나타났다. 낙농 부문 협동조합은 유럽에서 80%에 달할 정도였고, 덴마크만 해도 농업협동조합은 95%의 점유율을 차지했다고 한다.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비율은 떨어졌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농협이 중요한 협동조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농협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대부분 식민지시대 제국주의의 농업개발 수단이나 정치지배의 목적으로 하향식으로 설립, 운영되어 탈식민지 이후에도 개발연대라고 일컬어지는 개발독재 정권들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우리나라 농협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농협은 1957년 만들어진 이래, 2011년 기준으로 230조 원, 자회사 25개, 지역조합 1,178개, 중앙임직원 1만 8천 명, 전체 조합원 240만 명으로 ICA가 선정한 세계 10대 협동조합에 포함될 정도의 규모이다. 하지만 결사적 성격보다 주식회사의 성격에 치중되고 협동조합의 원칙을 지키고 있지 않아 진정한 의미의 협동조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노동자 협동생산조합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 발달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주물제조, 안경제조, 택시운전 등 세 부문의 대규모 노동자협동조합과 340개의 소규모 노동자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이탈리아도 25개 제빵 협동조합, 153개의 공업조합이 있고 현재는 볼로냐 등지에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특히 1950년 이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Mondragon) 복합체에서 노동자협동조합은 집중적으로 발전되었다. 협동조합도 다양하여 북유럽의 주택조합, 핀란드의 임업협동조합, 미국의 전력공급협동조합, 브라질의 의료협동조합 등이 발달되었다. 그뿐 아니라 사회주의체제에서도 협동조합이 발달하여 콜호즈, 중국의 인민공사, 북한의 협동농장, 유고의 자주관리기업 등이 그러한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협동조합과 다소 운영이 달랐고, 이들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모두 해체되었다.
이 외에도 대안적이며 이상적인 공동체적 협동조합이 있다. 오언이 실험했던 뉴하모니 공동체나 우리나라에서 1960년 초에 시도된 백운산농장, 그리고 화성의 야마기시 농장 등이 그것이다. 특히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에서 자유주의적 협동조합들 사이에 강력한 협동과 연대를 통해 노동의 주권과 평등을 실현하고자 시도된 곳도 생겨났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협동조합 복합체로, 2만여 명이 거주하며 100여 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연합을 이루었다. 또 한 곳은 이탈리아 북부, 38만 명 인구의 도시 볼로냐인데 이곳은 400여 개 이상의 협동조합들이 연대하여 발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소비자협동조합, 신협, 농협뿐 아니라 대학과 은행, 연구소 등이 모두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서로 깊은 연대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볼로냐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모색을 고민해왔던 운동가들이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적 경제 모델로 주목했던 곳이다.
협동조합의 운영 원칙
주식회사는 투자자인 주식 소유자의 기업이다. 따라서 ‘주주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이용자 소유의 기업이다. ‘조합원의 필요를 극대화’하는 것이 존재의 목표이다.
협동조합의 운영 원칙은 초기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에서 시작된 6개의 원칙에,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1개의 원칙을 추가하여 1995년 맨체스터에서 협동조합 7대 원칙을 제정하였다.

(1) 첫 번째는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회원 가입’이다.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으로 성, 사회, 인종, 정치, 종교의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화개방(Open Door)을 원칙으로 한다.
(2) 두 번째는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의 원칙이다. 주식의 보유지분에 따라 권한이 생기는 자본주의 주식회사와 다른 점이 이것이다. 협동조합은 출자를 많이 했든 적게 했든 어떠한 경우라도 1인 1표이다. 따라서 총회나 이사회에서, 모든 조합원은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다.
(3) 세 번째는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의 원칙이다. 조합원들은 공평하게 협동조합의 자본을 만드는 데 참여하며, 그것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조합 가입 시에 조합원들의 낸 납입자본의 규모에 따라 배당이 이루어지지만, 그것도 제한하게 되어 있다. 영업이익은 회사의 유보금을 적립하고 일부 잉여금은 조합원이 조합이용 실적에 따라 편익을 제공하는 데 사용한다. 또한 일부는 다른 협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이탈리아는 매년 잉여금의 3%를 협동조합의 상호원조를 위한 기금으로 적립한다.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원칙이다.
(4) 네 번째는 ‘자율과 독립’의 원칙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 의해 통제되는 자율적이고 자조적인 조직이다. 다른 조직과 약정을 맺을 때도 조합원들의 민주적 통제가 보장되고 협동조합의 자율성이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5) 다섯째는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의 원칙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선출된 대표자, 경영관리자, 조합직원들에 대해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로치데일은 잉여금 2.5%를 연구와 조합원 교육으로 배정함). 이것은 조합원을 단순히 소비자나 혜택을 누리는 사람에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훈련, 홍보 및 정보제공을 통해 협동과 공공성을 높이고 운동적 결사의식을 높이기 위한 원칙이다.
(6) 여섯째는 ‘협동조합 간의 협력’ 원칙이다. 주식회사는 수많은 다른 기업과 경쟁을 위해 기업합병 등 다양한 방식의 변화를 도모한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협동조합 간에 서로 손을 잡는 협력이 협동조합을 살아남게 하는 방법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7) 일곱째는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의 원칙이다. 이것은 로치데일 원칙에는 없던 것을 맨체스터 총회에서 추가한 것으로 조합이 속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이다. 협동조합은 지역적 근거가 대단히 중요하며 그곳에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은 ‘소유자이면서 이용자’이다. 따라서 ‘이용’하는 사람(조합원)들은 조합을 만들 때 반드시 일부라도 출자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농무부는 ‘이용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며 이용 구조를 기준으로 이익을 배분하는 사업체’로 정의하기도 했다. ‘이용자 통제’라는 말은 공동소유를 위해 조합원들이 직접적으로 또는 이사회 등 대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협동조합을 지배한다는 말이다. 협동조합에서 소유와 통제의 분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목적은 조합원이 노동이나 자산 제공 또는 상품, 서비스를 편히 받는 등, 조합원의 이익과 보상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지, 자본주의 기업처럼, 투자 대비 수익을 창출하는 조직이 아니다. 또한 생산자협동조합의 경우는 조합원이 출자한 소유자이고, 동시에 자신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이다. 즉 사용자이자 노동자인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협동조합은 자신들이 소유자이자 이용자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공동선을 향한 공동 행동을 위해 ‘마음과 마음이 만남’을 일으키는 협동을 중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다. 차가운 피가 도는 주식회사와 달리 따뜻한 피가 도는 곳이 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이 사업체의 성격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사체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주식회사의 경영 노하우나 기업조직구조는 협동조합에 적합하지 않다. 기업 출신 임원에게 익숙한 구조가 아니므로, 협동조합운동은 협동조합기업을 경영한 지도자를 별도로 교육하고 준비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4.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의 기대와 우려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
한국은 작년인 2012년 12월 1일 자로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었다. 훨씬 오랫동안 노력해온 일본의 운동가들은 우리나라를 퍽 부러워하고 있다. 유럽에 이어 세계 2번째로 제정된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UN이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하고 한국이 그 행사를 유치하게 되었던 것도 이유가 되었으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등 고용불안,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 되어주길 기대하며 협동조합기본법이 서둘러 발의되고 시행된 것이다.
우리나라 협동조합기본법을 소개하는 사이트에 협동조합의 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소비자협동조합’은 유기농산물처럼 자신이 원하는 맞춤형 물품과 의료, 돌봄, 보육등의 서비스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생산자협동조합’은 소비자협동조합과 연계하여 직거래및 사전계약재배등을 통하여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고, ‘근로자협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협동조합 설립을 통해 고용불안정문제 해결과 임금수준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경제적 효과’로는 창업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확대,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물가안정, 경제위기 시 경제안정 효과를 기대하며, ‘사회적 효과’로는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여 ‘복지시스템’을 보완하고 ‘일을 통한 복지’에 기여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의 협동조합기본법은 일반 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5인 이상의 구성원이면 설립할 수 있으며 원칙적으로 사업의 종류에는 제한이 없다. 일반 협동조합은 영리법인으로 되어 있고, ‘시도지사’에게 신고를 해야 하며, 금융 및 보험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업종과 분야에 제한이 없다. 그러나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이며 ‘기획재정부’의 인가를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사업은 공익사업 40% 이상을 수행하고, 지역사회의 재생, 주민권익 증진 등 취약계층 사회서비스, 일자리 제공, 국가나 지자체의 위탁사업 등 공익증진사업을 하게 되어 있다. 
일반 협동조합은 잉여금의 100분의 10 이상을 적립하게 되어 있고 배당이 가능한 반면, 사회적 협동조합은 잉여금의 100분의 30을 적립해야 하며 배당은 금지되어 있다. 이제까지 농협이나 수협 등 8개 분야에만 설립할 수 있던 협동조합을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일반법으로 만든 것이다. 이로 인해 정부는 사회적 기업과 자활단체 등의 복지사업을 보완하고 복지전달 체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소액, 소규모 창업이 활성화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청소, 택배, 퀵서비스, 재활용 종사자나, 대리운전자들도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고 캐디, 학습지교사, 돌봄근로자 등의 보호가 강화될 것이며, 자영업자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협동조합 설립 방법과 과정
일반 협동조합은 5인 이상의 조합원으로 발기인을 모집하여, 목적, 명칭, 조합원 등 14가지 필수항목이 들어간 정관을 작성한 뒤, 설립 동의자를 모집하고 창립총회를 열어 ‘시도지사’에 설립 신고를 한다. 발기인이 이사장에게 사무인수인계를 한 뒤, 출자금을 납입하여 관할 등기소에 설립등기를 하면 협동조합의 법인격을 부여받게 된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절차가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중앙행정기관’에 제출하여 설립인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3개 이상의 일반 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은 각각 연합회를 구성할 수 있다. 협동조합 간의 연대를 도모하고 복리증진과 상호부조, 공동소유 및 민주적 운영 등 협동조합의 기본원칙이 연합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기획재정부는 발표하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연대협동조합, 또는 공익협동조합으로 불린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투자이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업 및 서비스의 효용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향상이 목표지만, 사회적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제공과 일자리 창출, 지역재생 등의 사회적 목적 실현을 목표로 한다. 또한 조합원은 전통적 협동조합과 달리 특정 이해관계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생산, 공급하는 재화 및 서비스의 이용자나 노동자, 후원자 등까지 조합원이 될 수 있다.

고용확대와 협동조합
과연 한국의 협동조합은 기본법 제정을 통해 기대한 것처럼 고용천국을 보장할 수 있을까? 물론 대부분 노동자협동조합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고용확대’이며 대부분 ‘일자리연대’의 성격을 갖는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원칙 중 제7원칙인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에서 가장 큰 기여는 곧 일자리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 효과에서 협동조합은 야수적인 자본시장의 고용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정적이다.
주식회사는 규모가 클수록 주식배당이 낮아지거나 자신이 구입한 주식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영자에게 비용을 줄이도록 압박하고 응하지 않으면 경영자를 해고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임금 비용을 줄이는 것은 이윤이 많든 적든 무조건 좋은 일이 된다. 이와 달리 협동조합은 배당에 대한 기대가 많지 않고, 훨씬 유연하고 온건하기 때문에 고용 감소에 대한 압박이 훨씬 적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협동조합이라고 할지라도 고용확대를 위해서는 계속 성장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렇게 이익을 남겼다고 해도 그 잉여금을 신규고용을 늘려 노동시간을 줄이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결정을 하는 대신, 자신들의 배당을 높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정규노동자를 신규로 뽑는 것보다 부족한 인력을 비정규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신규노동자의 고용은 곧 기존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운동가 김성오는,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협동조합 창업에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라고 요청한다. 왜냐하면 개인사업자의 창업 실패는 개인에게 피해가 그치지만, 협동조합은 출자한 조합원 전체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스페인 몬드라곤의 경우 노동인민금고라는 막강한 지원 배경이 있음에도 신규창업은 최소 2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정부가 3년 또는 5년간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일부라도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분명 시장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협동조합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재정지원, 업종별 기술연대, 공동판매와 공동구매, 공동브랜드 전략, 기존 협동조합과의 연대와 정부기관과의 관계정립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네트워크 안에 고용 안전성을 보충하는 다양한 공제조합 등 별도의 장치와 기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


5. 협동조합의 운동성과 지역성 그리고 불교의 역할

협동조합은 왜 ‘운동’인가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경제적 필요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필요와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열망을 조직화하고, 참여를 필수로 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윤리가 협동조합을 통해 실현될 수 있기를 협동조합 운동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1980년 레이들로(Laidlaw) 박사가 정리한 보고서이다.
그는 협동조합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어야 하지만, 특히 지역사회 단계에서 다목적 종합협동조합에 중점을 두면서 여러 규모의 다양한 협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전 지구적인 위기를 앞두고, 세계협동조합의 연대를 통해 식량문제 해결과 기아의 극복 등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과대포장, 낭비, 농약 사용, 식량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문제, 농지의 보호, 식량정책, 제3세계 소농과 소작농 문제에 대한 원조 등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일자리를 위해 다양한 협동조합이 많이 설립되어야 하며, 특히 협동조합 지역사회(Cooperative Community)의 건설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주택, 저축, 신용, 의료, 식품, 일용품, 탁아, 유치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협동조합, 보험과 금융, 신탁 업무와 함께 식당과 장례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소협, 제과와 이미용실, 수선, 세탁소, 수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협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취미, 오락, 음악 등의 문화활동 공간을 경제활동의 공간과 최대한 일치시켜 주민 간 교류를 촉진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도록 도시 안에 협동조합 커뮤니티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목적의식이 분명한 행동으로서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협동조합은 이제 다양한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서로 의존하고 협력하여 발전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 협력은 지역을 단위로 서로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 협동조합의 지역화 전략은 지역사회에서 물리적, 인적 환경적 지원을 발굴하고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역자립의 주체성과, 지역의 통합성을 높이고 공동체성을 강화하여 이를 통해 지역 정착성을 높여 사람들끼리 서로 끈끈하고 깊은 교류와 유대를 고양해 협동조합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지역의 상호부조를 형성하여 안팎의 변화와 충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만약 협동조합이 갖는 사업적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결사의 성격, 운동의 성격을 축소하거나 외면한다면, 농협과 신협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 일부 생활협동조합은 협동조합 간의 연대 원칙도 어기고, 서로 코앞에서 경쟁하듯 매장을 내며 일반 기업과 다를 바 없는 공격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앞에도 언급했듯이 사업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관성과 탄력을 받게 되면 일정하게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결사체이자 운동체로서 성격은 항상 강조되어 초심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제 협동조합이 성공한 몬드라곤의 경우 돈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아리에타 신부의 가톨릭적 영성이 협동조합의 수많은 난관과 유혹을 뚫고 큰 발전을 이룬 동기가 되었으며, 일본의 코프코베의 성공에는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의 기독교적 영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살림과 원주협동운동은 정신적 지도자인 ‘무위당(無爲堂) 장일순’의 모심[侍]의 생명사상이 협동조합을 성공시킨 영성이라고 한살림생협의 ‘모심과 살림 연구소’ 소장 주요섭은 주장한다. 단순히 사업적 이익과 성장에만 집착하는 것은 올바른 협동운동이 아니다. 명실상부한 협동적 사회, 협력적 사회,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 의도적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최근 서울시는 ‘협동조합도시, 서울’을 선언하고 ‘협동조합 활성화 기본계획’을 발표하여 성장기반 생태계를 조성하고 공공성이 강한 7대 전략분야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향후 10년간 8,000개의 협동조합을 확대하고 경제규모를 지역 내 총생산(GRDP) 5% 규모인 14조 3,700여억 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협동조합 성공의 관건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발성에 기초한 수많은 정신적 열정과 영성이 바로 기반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협동조합 수의 확대의지와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외적인 분위기가 내발적인 에너지보다 앞질러 나가 조응하지 못할 때 협동조합의 열기는 급속히 냉각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필자는 우려한다.

불교 협동조합운동의 현황과 지역사회에서의 가능성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는 자신의 진리를 깨달은 후 40명의 신자를 중심으로 저축조합운동을 전개하여 자급자족 체제의 교단운영을 지향하며 농·공·상업의 산업기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불교에서도 1990년 사회주의가 붕괴할 때, 미래의 사회운동을 고민해오던 젊은 운동가들이 당시 정토회 산하 조직인 한국불교사회연구소에 모여 수년간 협동조합을 연구하고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그래서 《몬드라곤에서 배우자》와 《일하는 사람의 기업》 등 협동조합 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저술하기도 했다. 당시 구로공단 근로자나 재활용산업 종사자, 택시기사들을 중심으로 노동자·생산자협동조합을 결성을 주도해왔던 불교사회연구소 사무국장 김성오는 오늘날 협동조합운동의 중심에 서 있다. 
한국불교의 생활협동조합은 1995년 영담 스님과 이금자가 중심이 되어 만든 석왕사생협이 대단히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현재는 경기두레생협의 이름으로 9개 매장, 15,500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어 1999년 도법 스님과 이정호를 중심으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 인드라망생협이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인드라망생협은 협동운동으로서는 늦게 시작되었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생협학교와 귀농학교를 운영하고, 실상사에 장기귀농학교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귀농자들을 꾸준히 배출하여 실상사 지역의 생산자 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며, 초기부터 실상사작은학교와 지역영농조합 등 다양한 지역운동을 벌이면서 도농 간의 유대와 교류를 확대해왔다. 불교운동뿐 아니라 풀뿌리 자치를 위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007년 6월에는 대전불교생활협동조합이 설립되었고, 대한불교청년회의 ‘연꽃소비자협동조합’도 2009년 11월에 창립되었다. 전북불교협동조합이 2012년 11월 30일 발기인대회를 하면서 준비에 착수했고, 인천지역의 불교생협인 ‘자비의 손’도 2013년 출범하는 등 2012년의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를 전후로 불교에서도 협동조합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불교계의 이런 활동이 협동조합 붐에 편승한 유행이나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미래 불교의 새로운 발전 방향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협동조합운동은 ‘지역화 전략’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의 한국불교도 지역사회에서 도덕적 지도력을 발휘하며 지역공동체의 촉매 역할에서 위상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협동조합의 비전과 한국불교의 비전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불교는 지역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생협을 비롯하여 바이오메스 등의 대체에너지를 위한 협동조합, 교육과 의료, 협동조합지원센터, 도시락 배달서비스 등, 다양한 조합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은 그 운동성으로 인해 불교의 지역화를 모색하는 젊은이들의 활동 터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생과 청년들로 하여금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들도록 사찰이 독려하고, 사찰과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적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다양한 지역사회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불교가 지역사회의 지도력을 갖추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6. 나가면서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의 비인간성,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협동적 경제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공동체를 촉매하는 좋은 매개가 된다.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글로벌 저성장시대에 들어섰다. 저성장시대에는 결국 자발적인 청빈, 주체적인 가난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마음과 물질적으로는 사람끼리 의존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희망이다. 더욱이 정신적 각성, 영성과 깨달음이 협동조합운동의 동력이라고 볼 때 불교는 바로 그 정신적 엔진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불교가 미래의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면, 협동적 미래사회를 지역 내에서 만들어나가는 활동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

 

유정길
협동조합 한살림 ‘모심과 살림연구소’ 이사, 정토회 에코붓다 전 공동대표. 20여 년간 환경과 생태, 국제개발, 남북문제, 평화 등 문명전환을 위한 대안사회의 모색 등 환경운동과 대안사회운동에 헌신해오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이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발행 《민주》 기획위원, 계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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