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법 서울대 강사

1. 들어가는 말

종교와 예술은 그 발생에서부터 본질, 그리고 용도에 이르기까지 동질성을 갖는다는 주장이 지금까지 동서양의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논의되어왔다. 반대로 기독교의 성상파괴운동이나 이슬람교의 성상 부정, 그리고 중국 선종의 ‘불립문자’ 주장 등 예술적 형상화가 종교에 필수적이지 않거나 더 나아가 부정적이라고 간주했던 경향도 만만치 않게 존재했다. 어떤 입장이건 종교와 예술의 관계에서 종교적인 것은 항상 미적인 것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모더니즘이 등장한 이래 이 관계는 뒤바뀌었다. 더 이상 예술은 종교에 봉사하거나 종교적 내용을 주제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19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는 창조적인 종교예술작품이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현대예술가들이 더 이상 종교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관심을 가질 경우조차 고전적인 의미의 종교적 이미지나 상징으로 그들의 종교적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아데가 지적하듯이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세속화된 현대예술의 상황에도 해당된다.

다른 한편에서 여전히 특정 종교에 봉사하는 종교적 용도의 예술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부분 창조적인 자기형식을 창출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상징들을 복제 재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렇게 현대의 종교예술은 현대예술의 중심에서 벗어나서 관습적이고 이차적인 것으로 격하되어 버렸다.

최근 들어 불교계 안팎에서는 이처럼 조금 식상하고 시대에 뒤진 듯한 주제인 ‘종교와 예술’에 대한 담론이 증가하고 있다. 그것은 1980년대 이래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불교가 포교의 폭을 문화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는 상황과, 한국사회에서 산업의 중추로 자리잡아가는 문화산업이 불교를 우리문화 고유의 컨텐츠로서 새롭게 주목하는 상황이 만나면서 발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화산업의 예에서 보듯 이 흐름은 불교 내부에서 발생하기보다 불교 외부에서 불교를 하나의 소재로 개발함으로써 추동되었는데, 이것은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부각시키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불교만큼 풍부하고 다양한 소재를 가진 분야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구나 최근 서구에서 불고 있는 웰빙 조류는 이러한 경향을 사회적인 트랜드로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불교 내부에서도 불교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불교문화와 불교예술을 포교와 신행의 길잡이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 한 가지 현상으로 승가의 생활방식에 착안한 템플스테이를 비롯한 일련의 문화행사들이 불교행사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사찰에 전해지는 성보를 영구적이고 체계적으로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인식됨에 따라 전국 사찰에 성보박물관이 건립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학계에도 영향을 미쳐 2004년 선문화학회의 창립과 2006년, 2007년 연이어 개최된 ‘불교와 문화’를 주제로 한 한국불교학회 워크샵, 또 2007년 봄호 불교평론의 ‘불교와 예술’ 특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 논의들은 주로 불교예술의 현황을 살펴보고 그 발전적 방향으로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졌으나 아직까지 미학적 논의나 문화사적 논의로 심화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 오래 전부터 미술사학계에서 꾸준히 연구되었던 불교미술 연구의 양적, 질적 성장과 함께 미술사학계와 미학계에서 논의되었던 ‘한국적인 미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이 심화되면서 한국미의 구성요소로서 불교예술에 관한 연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담론을 주도했던 한국미학예술학회는 2006년, 2007년 두 차례 불교미학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2007년 심포지엄 기조발제에서 장미진은 불교미학과 예술론에 대한 논의가 한국미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미학 연구의 연계선상에서 본 학회는 2006년 봄 심포지엄에서는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전통 예술과 사상에 넓은 지반을 이루는 불교예술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재인식하고 불교예술과 이를 통해 추출할 수 있는 미학적 단초들을 탐구하기 위해 <불교미학과 불교예?gt;이라는 주제로 기획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종교가 더 이상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대예술, 현대문화의 현실 속에서 유독 불교계에서 이처럼 활발하게 종교와 예술에 관한 담론이 행해지는 것은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예술에 대한 담론이 왜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가’와 ‘그것들을 다루는 방법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성찰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예술에 대한 담론은 이미 형성된 예술현상을 토대로 구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반대로 담론들이 예술현상을 주도하고 예술창작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담론들이 불교예술을 역사적 과거에 제한시키거나 현재 불교계에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실천을 단순히 추인하는 데 불과하다면 그것은 오히려 불교의 현시대적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세속화시킬 수도 있다.

한국 전통문화 가운데 불교문화와 예술이 다른 전통에 비하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불교의 사상적, 문화적 우수함뿐만 아니라 그 전통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는 현재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시대 불교에 주어진 가장 절실한 과제는 전통의 전승과 재창조이다. 바로 여기에 불교예술에 관한 담론이 역사적 과거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만약 불교예술의 의미를 역사적 과거에 한정시킨다면 불교는 과거의 형식 속에서 형해화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더 나아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실제적인 불교예술 창작의 방향을 왜곡시켜서 불교예술을 불교 자체에도 충실하지 못하면서 미적으로도 우수하지 못한, 시대에 뒤떨어지고 주변적인 예술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이처럼 불교예술에 대한 담론이 전제하고 있는 방법과 개념에 문제는 곧 예술실천의 문제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올바른 불교예술에 대한 이해와 그 현시대적 지평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불교예술에 대한 담론이 기초하고 있는 방법과 개념에 대한 반성이 시급히 요청된다.

2. 동양적인 것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최근 들어 미술계의 동양예술과 사상, 특히 선불교와 도교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는데, 선불교 및 명상 수행이 서양에서 역수입되고 있듯이 동양예술에 대한 관심 역시 서양에서 역수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동양 또는 불교에 대한 환호를 반가워하기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동양적인 것일까?

실제로 서양에서 역수입된 동양예술에 대한 관심은 서구지향적인 사고의 소산이며 서양에 의해 전유된 서양예술의 한 양식을 수용한 것에 다름 아니다. 서구에서 수입된 동양사상과 동양예술은 서양인의 눈에 의해 굴절된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이란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담론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서구 패권정치의 한 장치이다.

그것은 “서구문화 안에서 동양에 행사하는 일종의 지적 권위”로 볼 수 있다. 순수하게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요소와 관계가 없더라도 그것은 서구 제국주의와 연관된 문화적 형식이자 지식체계이며, 낯선 문화적 전통들을 서구에 동화시키기 위한 지적 매개물이다. 그것은 동양인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하지는 않으나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괴감을 느끼게 하는 통합적 지식체계를 창조함으로써 서구에 권력을 부여한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전략은 명백히 서구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동양의 문화적 생산물을 전유하는 것이며, 서구의 소비를 위해 동양의 전통을 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서구문명 자체의 한계를 타파하기 위한 전복적이고 반문화적인 대안으로서의 성격도 갖는다. 60년대 이후 서양에서 일고 있는 불교에 대한 관심은 대안 문화적 성격을 띤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서구 자체의 파열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역으로 동양에서 힌두교, 선불교, 유교, 도교와 같은 동양적 전통을 부활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오리엔탈리즘은 자신들의 전통을 탐색하려는 아시아 학자들을 격려하고, 기능을 상실하여 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식체계를 복원하도록 고무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였다.

실제로 타자의 시선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그것은 자신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게 하고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사회가 아니라 동양세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식민논리의 내면화에 있다. 이런 위험은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수입된 동양적인 것에 대한 동경은 동양사상과 예술을 모호하고 낭만적이며 신비한 어떤 것으로 숭배하는 낭만주의와 결합하여 동양을 정태적이고 탈역사적 탈사회적인 것으로 고착시켜 버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재 한국예술이 추구하는 ‘한국적인 미의 본질 추구’ 역시 실제로는 서구지향적인 것이며 그 결과 국적 불명의 탈역사적, 탈사회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문화에 대한 시각 역시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선문화에서 살펴볼 수 있는 선의 세계, 즉 정신이나 사상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존의 관점에는 명상, 절제, 여백, 무욕, 무아, 깨달음, 고요함, 자연스러움, 무기교, 순수함, 비어 있음, 내심의 평정, 초세간적 생활, 맑음 등 많은 항목들이 언급된다.

흰 여백의 화폭 속에 선 하나만을 통해 표현한 그 함축적 의미가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탁월한 압축미와 절제미는 그 어느 회화보다 폭넓은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원리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이 작품에 반영된다면 종교나 순수예술이라는 영역을 떠나고 시대를 초월하여 어떤 공통된 특성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도 종교화, 선화, 만다라에서 추상화나 초현실주의적 기법이 발견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위의 논의들은 대개 서양미학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되는 작가들의 관점을 그대로 나열하거나 불교의 특징을 선험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비추어 현대예술의 불교적 특징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불교예술, 특히 선화의 특징을 여백, 절제, 순수성, 무기교, 초세간성 등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초역사적이고 탈사회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이 관점이 문제되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그것들이 열거한 특징들이 아무리 긍정적이더라도 고정불변한 어떤 것으로 규정된다면 이는 동양문화, 또는 불교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자생적 생명력과 주체적 작용을 사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구의 지배가 사라진 다음에도 동양문화를 과거의 것으로 고착시켜서 불교문화는 과거의 산물이고 현대문화는 곧 서구문화라는 등식을 성립시킨다. 그 결과 불교는 과거의 유물로서만 기능하고 현대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화와 예술적 표현을 창조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더 나아가 불교의 현대화된 형식을 서구에서 역수입하게 하는 막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오리엔탈리즘은 복잡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식민지배와 연계되어 있다. 그것은 동양을 신비화시킴으로써 불모로 만든다. 동양인들은 동양을 알기 위해 서양의 지적 전통에 의존해야 한다. 그 결과 동양인들은 서양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출신지인 동양에 대해서도 무지하게 된다.

서양문화의 관점에서 불교예술을 바라보는 입장은 불교예술의 다양한 양상들, 예를 들어 인도문화와 중국문화에서 나타나는 불교예술의 차이를 모두 무화하고 하나의 단일한 특징으로 설명한다. 예를 든다면, 위의 인용문에서도 나타나듯이 인도의 종교화와 만다라, 선화 등을 모두 하나의 특징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불교예술은 영원하고 동일한 성질을 갖는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선화는 인도의 종교화나 만다라와 달리, 구체적인 인물과 산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 표현의 소탈함은 ‘形似’와 ‘神似’라는 중국예술 고유의 비평개념과 불교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종교적 체험도 지역과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표현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불교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한 예로서, 만약 이러한 다양함과 포용력을 배제하고 불교를 과거의 단일한 한 형식으로 고착시킨다면 불교의 창조성은 과거의 형식 속에 사장될 것임에 분명하다. 바로 이 점에서 서구에서 역수입된 불교문화에 대한 관점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것은 서양에서 역수입된 불교예술을 서양에서 수입된 것이기 때문에 배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서양 현대의 문제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현대미술의 문제들에 더 깊이 접근하고 거기서 다시 불교가 그 문제 해결에 할 수 있는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실제적으로 현재 한국예술계에 만연한 불교와 불교예술에 대한 오해와 서양예술의 잘못된 적용, 한국예술이 안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을 해결하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3. 야나기와 불교미학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불교미학이라는 좀 더 학문적인 주제를 내건 담론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미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한국미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이 많은 부분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빚지고 있듯이, 불교미학에 관련된 논의 역시 야나기가 자신의 민예미술론을 정초하기 위해 불교에서 차용한 ‘불교미학’이라는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자비(eleos/엘레오스)’의 개념 및 ‘불이 일여’, ‘법열’, ‘삼매(THEIA와 MANIA)’, ‘내심경’, ‘유심낙’, ‘무상적정’, ‘공과 일체’ 등의 개념에 대하여 미학 연구의 기초개념 범주로 새롭게 살펴봄으로써 불교미학의 정초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불교사상에 함축된 미적 체험의 근거와 원리들을 통해 ‘어떻게 해서 미, 추를 분별하는 것을 뛰어넘는 철저한 의식의 부정이 절대자유로 가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不二美가 진정한 의미의 자재미이고, 진정한 극치의 미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미적 체험 일반에서 거론되는 ‘의식의 부정성을 통한 진정한 자유의식’, ‘몰아’를 전제로 한 미의식의 오묘한 경계 해명의 한 계기를 마련해준다……

위의 인용문에 등장하는 개념은 모두 야나기의 불교미학에 나타나는 개념이며 이를 통해 해명하려는 ‘미의식의 오묘한 경계’ 역시 야나기 이론의 틀을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미학’과 ‘불교미학’에 관한 담론이 오리엔탈리즘의 변종이라는 혐의를 사고 있는 야나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은 곤란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예술계와 미학계를 위해 야나기는 분명 넘어야 할 산이다. 야나기 미학사상과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장차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리라 생각된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중심으로 한국미학의 원류가 되었던 경성제대 미학과의 학문적 성격과 그 뿌리가 되었던 일본 동경제대 미학과의 초기 모습을 복원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연구가 결실을 거둘 즈음에 야나기의 문예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가능할 것이며, 그것은 한국미학의 자기반성과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야나기 사상 전반에 대한 검토나 ‘한국미’나 ‘민예미술론’에 관한 야나기나 그 밖의 한국인 논자들의 논의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우선 불교미학에 관련된 문제만 단편적으로 지적하는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야나기 문예이론은 한국적인 미를 탈역사적이고 탈사회적인 고정불변의 본질로 상정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심리적 유형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한국미학전사에 대한 논문에서 이미 밝혀졌듯이 일본 미학의 선구자인 大西克禮과 大塚保治 및 그의 제자인 竹內敏雄 등이 받아들였던, 당시 독일에서 유행했던 심리주의적 미학이론가인 분트와 유형학을 주장했던 딜타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유형학적 미학이론의 영향 아래 와카(和歌), 노(能), 하이꾸(俳句), 다도(茶道)에 나타난 미를 <비애>(あはれ), <유현>(幽玄), <한적>(さび)으로 규정하고 서양미학에서 전개된 미적 범주론을 축으로 한 미, 숭고, 후모르의 파생 보조범주로서 설정하여 일본미학의 기초 개념으로 규정하였다. 야나기의 조선미에 대한 규정 역시 당시 일본 미학계에서 유행했던, 미의식을 통해 심리유형을 규정하려는 경향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처럼 야나기의 조선미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그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완전히 배제시키고 숙명적이고 고정불변한 민족성으로 환치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야나기 이후 ‘한국미’에 대한 담론은 야나기를 부정하건 긍정하건 모두 한국미를 한민족 특유의 미의식 유형으로 이해하려는 야나기의 방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데, 바로 여기에 야나기 담론이 끼친 폐해의 심각성이 있다. 비록 그의 한국미와 민예미술에 관한 논의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조선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 하더라도 그 이후 조선미에 관한 담론이 모두 야나기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야나기의 이론은 서양의 오리엔탈리즘과 동일한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야나기의 한국미에 대한 발언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자부심과 영감을 주었듯이 그의 불교미학 이론 역시 불교미학을 구성해보려는 현대 학자들에게 유사한 영향을 줄 만큼 매혹적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나기의 불교미학에 대해서도 식민지배의 논리가 아닌가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로 불교미학을 몰규정적이고 탈역사적인 것으로 몰고 간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이런 논의 방식이 현재 행해지고 있는 불교미학 담론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미에 대한 야나기의 논의와 유사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야나기는 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의 민예미술의 사상적 근거를 대표적인 타력신앙 경전으로 알려진 아미타경에 나오는 법장비구의 사십팔원 가운데 ‘무유호추(無有好醜)의 원(願)’에서 찾고 그에 따라 자신의 불교미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호추(好醜)’를 ‘미추(美醜)’라고 번역하고 이 서원을 미추의 이원을 허락하지 않는 구경의 세계에서의 비원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야나기는 ‘불이(不二)’라는 불교 개념을 차용하여 민예품의 미가 비이원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런 종류의 미는 서양에 존재하지 않는 동양 고유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했다.

야나기의 불교미학 이론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서양미학의 개념을 그대로 동양미학의 개념으로 환치시킨다는 점이다. 첫째, 야나기는 ‘호추(好醜)’를 ‘미추(美醜)’라고 해석하였는데, ‘호(好)’와 ‘미(美)’를 환치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좋고 싫음이라는 주관의 규정을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대상의 성질에 대한 규정으로 삼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우선 지적될 수 있다. 둘째, 동양의 ‘미’ 개념이 서양의 ‘Beauty’와 동일한가? 야나기는 동양사상, 특히 불교사상에서 ‘미’ 개념은 조화와 균제, 대상의 형식적 속성을 말하는 서양의 ‘Beauty’와 다르며 그것이 예술의 본질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Beauty’의 번역어인 ‘미’를 불교사상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런데 야나기 불교미학의 더 큰 문제는 미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을 동일화하여 가치의 절대성과 상대성을 혼동함하고 초월론 논의를 현상의 영역으로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 선악의 표준을 보더라도 정도의 차이이고 입장의 차이이며 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충효와 같은 이념에서도 시대와 나라에 따라 얼마나 내용을 달리하고 있습니까. 따라서 불교에서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인연에 응해서 어떠한 모양으로나 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원래는 무기이니 백지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성은 선인가 악인가가 아니라 인연에 따라 선악 어느 쪽으로도 바뀌는 성입니다. 마찬가지로 미추의 차별도 어떤 입장을 고집하면 그것에 기초하여 하나는 아름답고 하나는 추하다는 판단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입장과 판단은 조금도 자율적인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입장이라면 많은 것 중의 하나의 입장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입장 없는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것 중의 하나의 입장이라면 상대적인 것이라서 결코 절대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는 정토를 볼 수 없습니다.
야나기가 주장하는 가치의 절대성은,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가치의 상대주의적인 무차별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각각의 입장에 따라 미와 추, 선과 악이 규정되기 때문에 모든 입장은 동일하며, 그러므로 만약 하나의 입장을 취한다면 결코 절대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최고의 입장은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나기의 바램과 달리 이 논리는 절대성에 대한 논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가치상대주의로서, 야나기의 가치상대주의 논리의 위험성은 미와 추의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다시 말해 그가 주장하듯이 추가 미가 되지 않고서 추 그대로인 채 미가 되고 미가 미 그대로인 채 추가 된다고 함으로써, 선과 악에 대한 판단도 유보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미와 추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가치의 절대성, 가치의 비이원성이며 이것이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양의 탁월한 논리라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바로 이 점에서 야나기의 불교미학의 논리는 도덕의 차원과 미의 차원을 동일화함으로써 식민통치를 옹호하는 논리로 작용하게 된다. 그 때문에 오리엔탈리즘의 변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더 나아가 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미가 절대적 가치에 접촉하는 한 영원한 것과 맺어져야만 합니다. 이 영원한 것을 ‘성스러운 세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도 종교의 본질과 만나야만 합니다. 미의 법칙과 믿음의 법칙은 다르지 않습니다.
야나기가 불교철학의 모든 개념에 ‘미’라는 접미사를 덧붙여 ‘불이미’, ‘자재미’, ‘타력미’ 같은 신조어를 만들고 그것을 불교미학의 기초개념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는 미가 곧 종교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젊은 시절 브레이크에 열광했던 유미주의자 야나기를 떠올릴 수 있다. 끝내 유미주의자로 남아 있었던 야나기의 미에 대한 탐닉, 조선의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는 사실상 식민주의자의 연민이며 식민통치의 잔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최면제와 같은 것이었다.

이 경향은 불교미학이라는 외투를 쓰고 있을 때 가장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민예품을 아미타불의 정토라는 초시간적 초사회적인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불교미학에서 역사적 사회적 관점을 배제하고 영원한 본질을 찾았는데, 이는 ‘한국미’에 담론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야나기는 불교미학에 영원성을 부여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불교미학을 과거에 대한 담론으로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불교를 삶의 현상에서 이탈시켜 영원한 타자로서 현실 저편에 안치시킨다.

그 결과 불교는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처럼 화석화된 과거로 고착될 뿐 아니라 현시대와 공감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형식을 창출해내는 역량도 빼앗기게 된다. 이렇게 해서 동양, 또는 불교의 신비는 영원히 신비인 채 자기화 되거나 해명될 수 없는 것으로 고착화되고 만다. 야나기는 이렇게 하여 미와 예술에 관한 담론에서 예술의 사회적 실천이나 현실적 연관을 배제하고 자신의 미학이론을 탈사회적이고 탈역사적인 것으로 완성시켰다.

야나기 불교미학의 또 다른 문제는 불교의 다양한 예술 현상에 기초한 이론 구성이 아니라 조선의 도자기 작품(그는 이런 종류의 예술작품을 민예품이라고 지칭한다)에서 그가 느꼈던 예술체험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으로서 구성했다는 점이다. 그는 불교미학을 체계화하기 위해 불교 경전이나 불교 수행의 관점에서 ‘미적인 것’의 의미를 찾는 노력 없이, 법장비구의 ‘무유호추원’ 하나를 들어 불교미학을 구성하였는데, 과연 그것이 ‘불교미학’이라는 이름이 합당할까?

그러므로 오랜 세월 다양한 지역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낸 수많은 예술적 성과들에 근거하지 않은 채, 불교 철학적 개념과 미적 개념을 동치시키는 방식으로 불교미학을 구성하는 야나기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현재 이루어지는 불교예술에 대한 담론 역시 불교에 대해서도 미학에 대해서도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필자가 불교미학 논의에서 경계하려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4. 종교적인 것과 미적인 것

종교예술에 관한 이론을 구성할 때 가장 기초적인 문제는 ‘종교적인 것과 미적인 것은 동질적인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 사상가들마다 제각기 다른 결론을 제시해 왔다. 헤겔은 양자가 모두 절대정신의 자기표현이지만, 미적인 것은 감각적인 표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종교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헤겔의 입장에서 볼 때, 종교적인 것은 미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래서 미적인 것보다 우월하다. 이 질문에 대한 야나기의 대답은 무엇일까?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는 믿음과 아름다움을 동치시킨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종교적인 것이다. 불교미술을 평가하는 한국미술사학자들의 관점도 야나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믿음의 일치라는 야나기의 주장은 일반적인 종교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예술작품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모든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종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아름다움과 종교적 감정의 일치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처럼 어떤 예술작품을 미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와 종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양립하기 어렵다.

실제로 예술은 특정한 종교적 교리를 가진 구체적인 문화적 맥락 안에서만 종교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원시종교의 성상들은 21세기 한국인들에게 종교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들은 이국적이거나 특수한 형식을 가진 미적인 대상으로 감상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성상들 역시 불교라는 종교의 틀 속에서만 종교적으로 작용한다. 불자가 아닌 사람들이 불상을 종교적 예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도 어렵겠지만 불자가 불상을 미적으로 관조하는 경우 역시 흔치 않다.

최근 불교계에서 건축되고 있는 성보박물관은 불교예술을 바라보는 종교적인 태도와 미적인 태도의 이율배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물관이라는 맥락에서 전시품은 성상이건 아니건 관람의 대상이거나 기껏해야 미적 관조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성보박물관은 각 사찰에 전해지는 성보를 잘 보존하여 그 가치를 영속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성보박물관 관계자들(스님들)은 관람자들이 전시물을 성보로서, 예경의 대상으로서 바라보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이미 ‘관람’이라는 말 자체에 세속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듯이, 박물관에 전시된 성보들은 종교적 예경의 대상이라기보다 하나의 사물, 또는 미적 관조의 대상으로 처리되고 있다.

심지어 성보박물관을 관람하는 관람자들은 불자라 하더라도 박물관이라는 맥락은 성보를 예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관람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마치 미술관의 맥락에서 먹다가 버린 코카콜라 병이 예술작품으로 감상되듯이, ‘박물관’이라는 건축의 맥락 속에서 전시물은 세속적인 것, 즉 역사적 유물 또는 예술작품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 건축된 성보박물관은 원래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바처럼 종교적인 태도와 미적인 태도가 맥락 의존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성보박물관 건축이 종교예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충돌하는 시선을 조화시킬만한 건축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보여진다.

예술이 예술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현대예술은 종교적인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렸다. 그럼에도 엘리아데를 비롯한 많은 종교학자들은 현대예술에서도 종교적인 것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속화된 사회의 맥락에서, 또는 불교라는 입장을 떠나서도 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이제 야나기가 했던 것처럼 미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의 직접적인 동일화가 아니라 양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양자를 관계 맺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불교예술과 불교예술에 대한 담론이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5. 맺는 말

이상으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불교와 예술에 관한 담론들이 내포하는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물론 위에서 지적한 문제가 모든 담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특히 필자가 야나기의 불교미학을 거론한 것은 그의 이론이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염려했던 측면은 그것이 불교예술을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것으로 고착화시킴으로써 불교예술을 과거의 형식으로 제한하고 그 창조적 역량을 사상시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전되어 온 불교예술의 특징을 한두 가지 특징으로 뭉뚱그린다면 불교예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되지 못하며 나아가 불교예술이 종교적 실천에서 갖는 의미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를 통하여 동양문화 또는 불교가 통합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는 관념은 사라지고 점차 풍부하고 다양한 지적, 문화적 현상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클라크가 지적하듯이 “특히 동양을 어떤 영원한 본질로 여기며 마치 하늘나라를 바라보듯 응시하는 관점은 폐기처분되어야 한다.” 동양은 다양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요소와 지적 운동의 장이며, 자신의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역사의 주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불교 역시 동양의 여러 나라에 사상적, 문화적 자양을 공급하고 동양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융합되고 다양한 문화 현상을 발생시켰다는 점이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창고 속에 간직된 보물의 가치를 알지 못한 채 멍하게 서양을 추종하거나, 아니면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자만하기만 할 뿐 그것을 갈고 다듬어 우리 삶에 유용한 형식으로 재창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태도도 지양되어야 한다. 불교와 예술에 대한 담론이 이 시대의 독창적인 불교문화 창출에 기여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불교를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낭만화, 신비화시키는 것이다. 불교예술에 대한 담론은 바로 이 점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명법
서울대 불문과 및 대학원 미학과 졸업. 현재 서울대와 운문사에서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 <송대 예술관에 끼친 선종의 영향-의경과 시서화일률론을 중심으로>(박사논문) <불교의 언어비판과 그 극복> <북송시대 文의 부활과 불교의 과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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