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의례 이대로 좋은가

― 《석문의범》을 중심으로

1. 불교의례의 범위와 정의

한국 불교의례를 논할 때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의례(儀禮)’란 용어의 범위와 정의에 대한 문제이다. 어떤 것이 불교적 의례이며, 어디까지가 가장 불교적 의식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사전적인 뜻으로 ‘의례’의 ‘의(儀)’는 1차적으로 ‘형(形, 모양)’과 ‘용(容, 얼굴)’이란 뜻을 가지기 때문에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절도를 갖춘 예식이란 의미이다. 즉 ‘불교의례’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얼굴과 움직이는 모습 하나하나에 잘 본받아 담아내는 법’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불교는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의 명령으로 순도(順道)가 불경과 불상을 소수림왕 2년(372) 고구려에 가지고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공인된 이 불교는 인도에서 직접 온 불교라기보다는 중국을 통한 전래이다. 그 이후 한국불교는 1,600여 년 이상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하며 우리의 불교로 발전하며 변용되어 왔다. 중국을 통해 새로운 불교를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직접 인도를 방문하는 구법활동을 통해 진정한 불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당 의정(義淨, 635~713)은 671년, 광주(廣州)를 출발하여 인도와 남해의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낙양으로 돌아와 《대당남해기귀내법전(大唐南海寄歸內法傳)》을 남기며, 중국의 의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32 讚詠의 禮

중국 땅에서는 예로부터 서로 전하기를 禮佛의 이름 제목만을 단지 알 뿐 德을 찬탄하는 것은 흔히 소리 내어 드러내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이름을 듣고 단지 그 이름을 자세히 들었을 뿐 지혜의 높고 낮음을 알지 못했다. 讚歎은 그 德을 갖추어 펴는 것이기 때문에 德의 크고 깊음을 몸에 익히게 된다.

경전을 배우기 전에 몸에 익히는 과정으로 불찬(佛讚)을 제시하며, 당시 인도와 중국불교가 가지고 있는 예경법에 대한 인식을 적고 있다. 부처님의 본생을 찬탄하는 게송을 소개하고 풍송(諷誦)하여 덕을 몸에 익히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하였을까? 신라와 고려의 의례에 대한 자료는 아주 미약하여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고려사》에 나타나는 불교 행사는 83종류이며 1,038회가 넘는 밀교적인 도량을 설치하였으나, 절차와 내용에 대하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의례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다비법을 체계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들 들면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의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와 나암진일(懶庵眞一, ?~?)의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 등이다. 이 서문에 ‘단지 이것은 중국에서 숭상하는 법과 동방의 예가 부합하지 않아 요지[要]만을 초(抄)하여 냈다’라는 내용으로 보아, 중국과 한국의 의례에 서로 다른 점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석문의범(釋門儀範)》을 다루려고 할 때에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송주편·지송편·신비편 등 상당 부분 진언과 관련된 독립된 장을 시설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고려시대에 설행된 많은 밀교 의식에 대한 경전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진언과 주문을 여러 의례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행하게 되는 시기는 4~6세기경 굽타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부처님은 처음부터 바라문교의 주술과 의례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인도 전통 속에는 독충과 뱀 등과 같은 것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호주(護呪)의 빠리따(paritta)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불교 내부에서 대승불교가 출현하고 불상을 조성하게 되며, 점차 사회적인 관습들을 부정하기가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밖으로는 베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인도의 토착적인 종교와 다양한 신앙형태를 포섭한 힌두교가 나타나게 된다. 이 힌두교는 고대로부터 행해왔던 생활규범과 관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굽타 왕조는 바라문의 부흥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자 불교는 불교 속으로 바라문교의 의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되고, 힌두교의 신들은 불교의 판테온(pantheon, 신전)에 흡수되어 보살(菩薩)과 명왕(明王)으로 바뀐다. 이런 경우 받아들이는 내용들은 사람이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이해가 달라지며 환경에 따라 특정지역의 문화로 나타나게 된다. 전통과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불교에서는 의례의 전통과 범위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를 받아들여 익히고, 우리의 체계에 맞도록 해석하는 흐름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석문의범》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는 한상길의 〈한국 근대불교의 대중화와 석문의범〉(2008)과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의 ‘제2부 의례문화를 변용하다’(2011)라는 제목 정도이다. 그리고 이 연구자들은 일상 의례로서 생활불교의 제창, 전통의례의 절차와 방법의 간소화·한글화 등이 불교계의 큰 호응을 얻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모두 근대화라는 여정에서 의례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또 밀교적인 영향을 지적하기도 한다. 《석문의범》 하권의 서문을 풀이하여 선·화엄·천태·밀교·정토 등의 모든 사상을 다라니 중심으로 신앙화한 의례서가 《석문의범》이라는 것이다. 《석문의범》에서 행해지는 삼단(상·중·하)의 불교의식은 밀교의 삼단(금강계·태장계·별존) 만다라의 삼단 내지는 불부(佛部)·연화부(蓮華部)·금강부(金剛部) 등 삼부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려에서 성행한 밀교가 《범서총지집(梵書總持集)》→《진언집(眞言集)》→《비밀교(秘密敎)》로 이어져 《석문의범》에 영향을 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기존의 연구는 근대화 과정의 대응, 단순한 밀교의 영향 등을 지적하고 있지만, 의례집에 담겨 있는 사상을 분석하고 그 속에 한국적 불교는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본고는 위와 같은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석문의범》의 의례가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본받아 담아내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의례 또는 염불을 시작하는[始] 교(敎)로서 황엽보도문(黃葉普渡門)을 교리적 측면에서 다루고자 한다.

2. 《석문의범》의 간행과 구조

1) 간행

고려 건국 초기부터 시작한 대장경 판각 사업은 동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불교의 완성으로 나타난다. 초조(1011)·재조(1237)·금서밀교(1328)대장경은 당시 최고의 자료와 기술을 모은 집합체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많은 불교행사가 설행되었다. 반면 조선시대는 불교 활동이 위축되어 갔으며, 병자·임진 양란(兩亂)은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배층은 이러한 사회불안 요소를 종교적 의례로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유교는 예악을 강조하였으며, 불교는 의례집을 정비하여 편찬했다. 휴정(1520~1604)과 유정(1544~1610)으로 이어지는 법맥에서는 《운수단가사(雲水壇謌詞)》 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석문가례초》 등도 편찬되며, 다양한 의례집들은 진허팔궐(振虛捌闕)의 《삼문직지(三門直指)》(1759)를 지나 백파긍선(白波亘璇, 1767~1852)에 의해 《작법귀감(作法龜鑑)》(1826)으로 정리된다.

이후 한국불교의 의례는 《작법귀감》을 모범으로 삼는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서구 종교의 전도 방식에 자극된 불교는 전통의식을 살릴 수 있는 간결한 새로운 의범(儀範)을 필요로 하게 된다. 당시 이와 같은 불교계의 절실한 상황은 《불교시보》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朝鮮佛敎寺院內에 所謂 要集이라고 해서 朝暮禮懺集이니 志磐集이니 梵音集이니 龜鑑이니 雲水各壇이니하는 冊이 비록 잇지마는 擧皆는 板本이 아니고 手寫에 依한 것이라 誤字落書가 非一非再며 그뿐만아니라 各冊으로서 노나저잇기때문에 不知不覺時에 큰儀式이잇게되면 如干不便을 늣기는것이아니다。그런데 安震湖講伯은 벌서부터 此에늣긴바가 잇서서 崔就墟和尙과 權相老 金泰洽兩先生과가치 協力하야 佛子必覽을 編輯刊行하드니 이것이 絶版됨을 따라서 今番에는 두번재 權金兩先生과가치 다시 曾前에 漏落된資料를 增收하야 釋門儀範이라고 改題하야서 堂堂한 偉容으로써 出版界를놀래게하였다.

의례를 위한 여러 가지 의례집이 있었지만 필사에 의해서 잘못된 글자가 생기고 그림을 누락시키고, 또 여러 종류로 나누어져 있어 매우 불편하다고 쓰고 있다. 당시는 요즘과 같은 인쇄물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목판본을 필사한 의례집이 유통되었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사용하던 요집들은 조모예참집(朝暮禮懺集), 지반집(志磐集), 범음집(梵音集), 작법귀감, 운수각단 등이며, 요집의 내용을 뽑아서 편집한 《불자필람(佛子必覽)》(1931)은 곧 절판되었다.

《불자필람》 첫 페이지 ‘발간의 취지’에 의하면 연방두타(蓮邦頭陀) 최취허(崔就墟, 1865~?)가 주관하여 김현곤(金炫坤)과 안진호가 편집하였으며, 퇴경 권상로(1879~1965), 대은 김태흡(1899~1989)이 교정하여 간행하고 있다. 그리고 후원은 한용운(1679~1944)이 하였다고 한다.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1910)에서 염불당을 없애야 하고, 나한독성, 칠성, 시왕, 신중, 천왕, 조왕, 산신, 국사 등을 미신이라고 하였다. 또 재공양 의식과 시식이 너무나 번잡하고, 평상시 의식이 너무 혼란하다고 하며, 하루 한 번 대종을 5회 치고 법당에 모여 절을 세 번 하는 삼정례(三頂禮)만을 주장한다. 불교를 미신이며 도깨비 연극이라고 주장하던 만해가 《불자필람》을 후원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의례집의 형식은 상·하 2권으로 상단은 한문으로 하단에는 한글을 달아서 읽기 쉽게 하였다. 범례에서 “본서는 독자의 편의를 종(從)하야 선한양문(鮮漢兩文)으로 상하단에 분록(分錄)함”이라고 하여 편집 방식에 대한 의도를 설명한다. 의례문을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한 방식은 《석문의범》에서도 이어진다.

이와 같이 불교는 한반도에 전래된 이후 의례를 통해서 사회변화에 대응하며 변화를 추구했다. 특히 《석문의범》은 일본불교와 서양 종교에 직면하여 비판과 후원이라는 이중 논리 속에서 의식을 행하는 현장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목적으로 편집되었다. 비록 간행과 출판에 참여한 일부 인사는 친일 행적으로 인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한마음으로 만든 결과물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고려시대부터 유통되었던 지반문(志磐文) 등과 밀교의식을 포함하고, 조선시대에 편찬된 범음집·작법귀감·운수단 등을 참고한 것은 전통성을 가지고 사회변화에 대응하려던 당시의 의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2) 구조

《석문의범》은 상하 2권 1책으로 《불자필람》을 수정 보완하여 제목을 달리한 것이다. 《석문의범》의 형식은 선한양문, 상하양단으로 분록하여 읽기 편하게 하였으며, 여기에 또 다른 형식을 더한다. 전통적인 경전 분류 형식의 분과를 택하여 내용에 따라 의미가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불자필람》과 《석문의범》의 제목을 도표로 만들어 비교하면 아래 별표와 같다.

서문·범례·목록·부록 등을 제외하면, 본문의 내용은 교(敎) 18편과 선(禪) 4편 총 22편을 시설하고 있다. 시(始) 즉 시작하는 것으로 교를 황엽보도문(黃葉普渡門)이라 하고, 종(從) 즉 마치는 것으로 격외염롱문(格外拈弄門)이라고 하여 별칭으로 부른다.

황엽보도문의 ‘황엽(黃葉)’은 《열반경》 〈영아행품(嬰兒行品)〉에 보이는 비유이다. 열반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며, 불신(佛身)은 상주(常住)하고,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고, 일천제도 성불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런데 〈영아행품〉에서는 부처님과 보살들의 진실한 행을 젖먹이의 행동인 영아행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영아는 일어남[起]·머뭄[住]·옴[來]·감[去]·말함[語]·말[言]을 잘할 수 없다. 여래도 법의 모습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몸을 행함에 움직임과 흔들림이 없고, 대열반락에 이미 다다른 것 등과 같이 한다. 모든 중생이 종류가 각각 달라 말한 것이 같지 않지만, 여래는 방편을 따라서 설하고 또 모든 인(因)으로 알게 한다는 것이다. 일어나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것은 영아의 본래 모습이다.

그런데 보살은 이러한 영아의 모습으로 행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장안관정(章安灌頂, 561~632)의 《대반열반경소》에서는 〈영아행품〉 다섯 가지행 가운데 네 번째를 다음과 같은 뜻으로 설명한다. 〈영아행품〉은 지(智)와 물(物)을 잘 분별하여 체(體)와 용(用)을 쓰는 법을 보이는 품이다. 열반에는 대소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와 물을 잘 알 때 소의 영아행을 시설하여 대의 여래행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마치 우는 아이에게 누런 버드나무를 보이며 돈을 준다고 하면 울음을 그치듯이. 누런 나뭇잎은 금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버드나무 가지는 망령된 상(常)이고, 누런 잎[黃葉]은 망령된 정(淨)이고, 나무로 만든 소와 말은 망령된 낙(樂)이고, 나무로 만든 남자와 여자는 망령된 아(我)인 것이다. 열반의 상락아정도 중생이 나쁜 업을 짓지 않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주장이다. 즉 중생을 제도하려고 여래행으로 열반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석문의범》에서 안진호가 설정한 황엽보도문은 어린아이에게 가짜 돈을 보여서 울음을 그치게 하듯이 여러 불교의식문을 보여서 방편을 보인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 18편은 영아에게 보이는 시작[始]으로 방편일 뿐이지 보살행의 완성은 아니다. 종은 격외염롱문에 있는 선인 것이다.

다음은 격외염롱문의 뜻을 살펴보자.

글자 그대로의 뜻이라면 일정한 격식이나 관례를 벗어나서 가지고 노는 것을 말한다. 즉 황엽보도문에서 보이는 의식의 방편으로 격식과 형식과 벗어나 선의 도리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격외염롱문 4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일 불화조두(佛話祖頭)
제이 좌선의식 장노자각종색선사좌선의(長蘆慈覺宗賾禪師坐禪儀)에서
제삼 좌선심득 기일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에서
제사 좌선심득 기이 박산무이선사경어(博山無異禪師警語)에서

첫 번째 불화조두는 부처님의 말과 조사의 시작이란 뜻이다. 이 제목에 걸맞게 내용은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왕궁에 내려와 모태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칠보(七步)의 탄생, 아침에 별이 뜨는 것을 보고 깨달음, 영산회상의 설법 등으로 이어지고, 선병(禪病)의 병통, 살불살조의 참회, 용녀의 성불, 그리고 불의 진정한 뜻으로 ‘건시궐’ (乾屎橛)’이란 공안으로 맺는다. 부처님의 탄생, 견성과 설법, 열반으로 이어지는 일생과 선법의 전래를 축약하고 전개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석문의범》의 ‘불화조두’는 무의자(無衣子) 혜심(慧諶, 1178~1234)의 《선문염송》에서 발췌하였다. 《선문염송》 ‘고칙 1’에서와 같이 ‘세존’으로 시작하는 12칙과 ‘고칙 53’의 ‘《능엄경(楞嚴經)》’ 고칙에서부터 불이 무엇인가를 묻는 ‘고칙 1078’까지 21칙으로 끝을 맺어, 총 33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33칙이 《선문염송》의 순서로 되어 있지만 《석문의범》에서 7번째는 법왕법을 보이는 모습(제6칙)과 32번째는 용녀성불에 관한 내용(제770칙)을 가지고 와서 순서를 바꾸고 있다. 제7의 법왕법은 칠불 중에 현세에 오시는 석가모니불의 의미이며, 32번째를 용녀의 성불과 33번째 불에 관한 칙을 놓아 평등한 성불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보다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

첫 번째 편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장노자각종색 선사의 좌선의는 좌선의 뜻에 대하여, 휴휴암주의 좌선문은 좌선하는 방법에 대하여, 박산무이 선사의 경어는 좌선에서 생길 수 있는 병에 대하여 경책하는 글이다. 잘 알려진 글로서 좌선하는 올바른 마음 자세에 대한 내용이다.

이와 같이 《석문의범》은 시작을 교학으로 하는 것이며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보살행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부처님이 오신 본래의 뜻으로 이를 황엽보도문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은 선의 수행으로 이어지며,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다는 인간평등의 불교 정신을 드러낸다. 이 선의 도리를 잘 익히는 것을 격외염롱문이라고 하였다. 《석문의범》에서는 한국불교가 선교양종으로 이어온 정신은 물론 당시 남녀평등 즉 자연인으로서의 평등을 담아내려는 시대적인 흐름의 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또 교에서 시작하여 선으로 맺어 한국의 전통적인 불교관인 교선일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의례문에 담긴 교리 내용

교학으로 시작하는 18편의 황엽보도문에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자세하게 분석하여보자. 《석문의범》은 《불자필람》을 수정하고 개정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불자필람》의 ‘발간의 취지’에서 최취허는 “팔만의 법장이 많이 있지만 아침과 저녁에 암송할 과(課)가 없고, 삼천의 대계가 펼쳐져 있지만 진과 속이 서로 함께 이용하는 서(書)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하며, 그래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유를 설명한다. 범례에 의하면 편집의 의도가 더욱 선명해진다. 《석문의범》의 범례는 아주 짧은 데 반하여 《불자필람》의 범례는 약 2배가 된다. 이는 《불자필람》의 형식이 예전의 것과는 다른 부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범례 중에서 전체적인 맥락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철자법과 읽기, 탈자·오자·도치된 내용을 제외하고, 형식이나 의미에 영향을 주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一. 本書는 圓滿을 主로 하야 淨口業眞言으로 開法藏眞言지 朝誦에도 此를 記入함.
② 一. 諸經所載에 依하야 現行보다 差違된 곳도 不無하니 至心歸命禮를 志心歸命禮云云으로 改書함이 卽其禮이압.
③ 一. 葬式에 路祭卽發靷이란 舊式과 永訣이란 新式을 兩存하엿스니 取捨는 任情함.
④ 一. 欲建曼多羅先誦 七字가 解釋文句이고 眞言이 아니기에 本書는 此를 細書하야 正文이 아닌 것을 明示함.
⑤ 一. 在來로 山神竈王 등 各壇에도 擧佛이라 함과 神衆歌詠에 佛陀를 贊德한卽 佛身普徧諸大會云云等妄發句數를 削除하고 各壇의 擧佛을 擧目이라 하며 寶雲老德의 新製歌詠인 欲色諸天云云等의 句節을 記入함.

위의 범례의 내용은 새로운 것에 대한 안내이다. 조송(朝誦)에 진언을 첨가하여 새로운 형식을 만들기도 하고(①), 장례식에 영결과 같은 새로운 문화의 용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③). 지심(至心)을 志心으로 바꾸기도 하고(②), 또 거불과 거목의 개념을 분리하여 불의 단과 그렇지 않은 단에 차별을 두어 예의 뜻을 살리려고 하고 있다(⑤). ‘욕건만다라선송(欲建曼多羅先誦)(④)’과 ‘즉불신보편제대회운운(卽佛身普徧諸大會云云)(⑤)’과 같이 오해가 있고 불필요한 부분은 의미에 부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러한 내용들이 실재 의례문에 어떻게 적용되었나 하는 세부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매우 아쉽다.
이러한 변화의식은 《불자필람》과 《석문의범》의 목차를 비교해 보면 더욱 많을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

《불자필람》의 목차

上篇
朝禮鐘頌 香水海 四聖禮 行禪祝願 神衆壇儀式 朝誦呪 昔禮鐘頌 小禮懺 中壇儀式 夕誦節次 小心經 大心經 華嚴經略纂偈 法華經略纂偈 法性偈 總歸眞言 如來藏經實相章句 華嚴經百八陀羅尼 觀音菩薩四十二呪 地藏菩薩讖蒲陀羅尼 北斗呪 地藏願讚二十三尊 懺除業障十二尊佛(十惡懺悔) 茶毘文 沙彌十戒 居士五戒 比丘尼八敬戒
下篇
諸佛通請(上壇勸功 上壇祝願, 中壇勸功 神衆祝願) 彌陀請(闍維時彌陀請) 觀音請 地藏請 獨聖請 十六羅漢請 七星請 神衆請 山神請(山神經) 龍王請(龍王經) 現王請 四天王請 神衆壇作法(三十九位 一白四位) 侍輦節次 對靈式 諸對靈 灌浴 常住勸功 觀音禮文 觀音施食 救病施食 華嚴施食 宗師施食 常用施食
附錄 : 布敎方式 入敎樣式(入敎願 信徒名簿 信徒證) 說敎樣式 講演樣式(讚佛歌) 三大紀念式(慶祝歌) 追悼儀式 花婚儀式 往生歌 新年歌 淨土符食法 三長六齋日 入厠五呪 成道齋山林參考 金剛般若波羅蜜纂

《석문의범》의 목차
上卷
第一章 禮敬篇 : 大雄殿(香水海禮 小禮懺禮 五分香禮 七處九會禮 四聖禮 講院上講禮 大禮懺禮 觀音禮文禮) 極樂殿 八相殿 藥師殿 龍華殿 大藏殿 觀音殿 羅漢殿 冥府殿 神衆壇 山王壇 竈王壇  七星壇 獨聖壇 現王壇
第二章 祝願篇 : 行禪祝願 上壇祝願 中壇祝願 生祝式 亡祝式
第三章 誦呪篇 : 朝誦呪 夕誦呪 般若心經 (附 小心經)
第四章 齋供篇 : 常住勸功 靈山齋(附 食堂作法) 各拜齋 生前預修 水陸齋儀
第五章 各疏篇 : 建會疏 開啓疏 大會疏 三寶疏 上壇疏 十王疏 使者疏 行牒疏 聖位疏 冥位疏 緘合疏 五路疏 中位疏 下位疏 回向疏 風伯雨師疏 孤魂疏
                   
下卷
第六章 各請篇 : 諸佛通請(附 眞言勸功) 彌陀請(附 火葬彌陀壇) 藥師請 彌勒請 觀音請 地藏請 羅漢請(附 羅漢各請) 七星請(附 七星各請) 神衆請(附 中壇勸功) 山神請 竈王請 獨聖請 現王請 帝釋請 四天王請 風伯雨師請 伽藍請 龍王請 井神請 太歲請
第七章 施食篇 : 對靈(四月日對靈(附 侍輦節次) 齋對靈(附 灌浴節次)) 施食(奠施食 觀音施食 救病施食 華嚴施食) 靈飯(宗師施食 常用施食(附 獻食規))
第八章 拜送篇 : 三檀都拜送 三檀各拜送 神衆拜送
第九章 點眼篇 : 佛像點眼(點筆法 證明唱佛) 羅漢點眼 十王點眼 天王點眼 造塔點眼 袈裟點眼(皮封式)
第十章 移運篇 : 掛佛移運 袈裟移運(附 通門移運 三和尙請) 佛舍利移運 僧舍利移運 金銀錢移運 經函移運 說住移運 施主移運
第十一章 受戒篇 : 沙彌十戒 尼八敬戒 居士五戒
第十二章 茶毘篇 : 在來式 永訣式 埋葬式 名族式(附 崩騰式)
第十三章 諸般篇 : 朝禮鐘頌 夕禮鐘頌(五更頌) 成道山林(海印及十度圖 同說明) 祝上作法(附 通謁) 各種幡式 三冬結制榜 齋時龍象榜(六所榜) 講院普說榜(講目) 入厠五呪 痰惡草說 十八地獄頌 因果經抄 同種善根說 鶴立蛇橫 看堂論
第十四章 放生篇 : 放生儀軌(放生序) 七種不殺 七種放生
第十五章 持誦篇 : 百八陀羅尼 讖蒲陀羅尼 四十二呪 華嚴經略纂偈 法華經略纂偈 總歸眞言 實相章句 十二尊佛
第十六章 簡禮篇 : 布敎方式 入敎樣式 說敎儀式 三大紀念 住持晉山式 華婚儀式 追悼儀式
第十七章 歌曲篇 : 參禪曲 回心曲 別回心曲 白髮歌 夢幻歌 古人無常詩 參禪念佛料揀 神秀大師偈 慧能大師偈 文殊降魔偈
第十八章 神秘篇 : 呪文各種(腹藏緣起) 符書各種 (符 吉凶各種)

《불자필람》의 목차는 당시 유통되던 여러 종류의 의례집 가운데 《작법귀감》과 가장 유사하며, 실제 내용도 많은 부분을 참조한다. 상·하 양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법귀감》은 상권은 각 청(請)과 시식(施食), 신중례(神衆禮), 계(戒) 등의 의식이 있고, 하권은 분수(焚修)·축상(祝上) 작법과 가사와 불상점안, 각례왕공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자필람》도 《작법귀감》과 같이 상·하 양 권의 체제이다. 상권은 사성례, 행선축원, 조석송주절차, 약찬게류, 단독으로 쓰이는 주(呪) 등 매일매일 행하는 일상적인 예경의 의례내용이다. 예념절차 또는 작법절차라고 하여 조석예불에 쓰이는 여러 가지 의식들도 모았다. 《불자편람》 상권에 나타나는 특징이며, 내용으로는 《작법귀감》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권의 청과 시식은 《작법귀감》 상·하편에서 청과 시식 그리고 작법과 十王·羅漢·七星 등의 내용으로 구성하고 있다. 부록은 설교방식, 신도증, 찬불가, 결혼의식 등으로 당시 포교나 통과의례 등을 새로운 형식을 빌려 불교의례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형식으로 볼 때, 서구종교의 영향에 자극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작법귀감》을 참조한 《불자필람》은 가사와 불상에 대한 내용은 빠지고, 상권에 조모작법절차를 먼저 놓아 예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사와 불상점안은 편집 당시 ‘불자필람’이란 제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불자편람》 상권은 매일매일 행하는 예경과 예념절차 또는 작법절차인 조석예불 등을 강화하고, 하권은 《작법귀감》의 내용을 필요에 따라 재편집하고 있다.

《석문의범》은 《불자필람》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다. 《석문의범》의 범례 마지막에 “一. 佛子必覽 刊行後에 數處錯誤됨을 發見하였음으로 本書에는 此를 正誤함”이라고 한 것을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들이 많았던 것을 알게 한다. 《석문의범》의 특징은 내용 분류이다. 《불자필람》의 내용을 종류에 따라 분류하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예경(禮敬)·축원(祝願)·송주(誦呪)·재공(齋供)·각소(各疏)·각청(各請)·시식(施食)·배송(拜送)·점안(點眼)·이운(移運)·수계(受戒)·다비(茶毘)·제반(諸般)·방생(放生)·지송(持誦)·간례(簡禮)·가곡(歌曲)·신비(神秘) 등 18편으로 나누고 있다. 《불자필람》에서 생략되었던 점안과 이운 의식을 편을 달리하여 다시 살려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석문의범》 18편 모두를 짧은 논고에서 다룰 수 없으므로, 이전부터 독립된 의례집을 가지고 있는 재공·시식·배송·점안·이운 등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본 논고에서는 의례집의 출판의도를 범례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거나 새로운 개념의 편명, 그리고 진언을 언급하는 편들을 중심으로 범위를 한정하였다. 예경편은 이미 《불자필람》에서 개괄하였으므로 생략하기로 하지만, 내용 변화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밝혀둔다. 

송주편은 조송주, 석송주 그리고 반야심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석송주 처음에 범례에서 정구업진언에서 개법장진언까지 기입한다고 한 것을 놓는다. 그리고 조송주에는 능엄신주, 관자재보살여의륜주, 불정심다라니, 소재길상다라니와 준제진언부터 각종 발원문 등이 실려 있다. 석송주에는 범례에서 제시한 진언과 10원(願), 6향(向), 12보살, 신묘장구대다라니, 사방찬, 참회게, 그리고 준제진언부터는 조송주와 같은 방식이다. 결국 조석송주에는 요즈음 독송하는 《천수경》의 송주문이 대부분 들어 있다. 반야심경은 발우를 펴는 식당작법이다.

제반편은 조석예불에 송주하는 법, 축상작법, 용상방, 보설방, 입칙오주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특히 성도절과 그 부록의 해인급십도도(海印及十度圖)와 설명은 십바라밀 정진과 정진도설(精進圖說)이라고 하여 의상 스님(625~702)의 법성게, 해인도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법성게를 송할 때 구래부동명위법명위승(舊來不動名爲法名爲僧)의 2구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찬(讚)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침과 저녁에 정진하며 법성게를 송(頌)할 때는 체용(體用)을 드러내기 위해서, 아침에는 종체기용(從體起用)이기 때문에 좌로 돌고, 저녁에는 섭용귀체(攝用歸體)라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고 한다. 또 담악초설(痰惡草說)이란 항목은 비록 《유마경》에서 설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현행의 《유마경》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1795년 간행) 제58권 앙엽기(盎葉記)에 의하면 동일한 내용의 글이 있고, “담악초라는 것은 지금 연초(煙草)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병이 생기고 요사하게 되어 수행을 방해하는 5종의 풀은 먹지 않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담악초이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씹어서 즙을 먹는 담배를 땀바코(힌디어, tobacco)라고 한다. 5종의 풀은 모두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초이다. 만약에 이를 먹는 자는 모두 아비지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즉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권유하는 의미에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이 제반편에는 매일매일 의례로 꼭 해야 할 조석예불과 하는 방법,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적고 있다. 반면에 송주편에서는 매일 송해야 하는 진언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방생하는 의식과 방생의 의미는 방생편을 설정하여 설명한다. 지송편에는 누구나 암송할 수 있는 다라니, 42화천수진언, 약찬게 등을 모아 놓아 놓고 있다. 송주와 지송편은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송주편은 조석에 해야 하는 송주이며, 지송편은 다라니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신비편에 속하는 내용이다.
《석문의범》의 간례편과 가곡편은 《불자필람》의 부록을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 수록한 것이다. 서구적 형태를 내용으로 하는 의식의 절차와 양식은 간례편으로 하고, 전통적인 우리의 시가인 곡(曲), 경책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詩), 깨달음을 담고 있는 게(偈), 서양음계로 새로 만들어진 가(歌) 등을 묶어 가곡편에 싣고 있다. 곡조가 있는 것만을 묶어 하나의 장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물결에 대한 반응과 대응책으로 현장에서 바로 의례를 할 수 있도록 반영한 결과이다.

《석문의범》에서 민속과 습합한 것이라고 가장 오해를 많이 일으키는 신비편을 살펴보자. 신비편은 크게 주문(呪文)과 부서(符書)로 되어 있다. 주문은 불정존승다라니소청(佛頂尊勝陀羅尼所請)과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 그리고 출생공양주(出生供養呪)가 있다. 불정존승다라니는 당탑(幢塔)을 만들고 그 탑에 새겨 넣던 다라니이다. 이는 다라니가 새겨져 있는 탑의 그림자만을 스쳐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거란에서 유행하던 다라니신앙의 한 형태이다. 고려시대에 많은 불정도장을 개설하였던 것에 미루어 연관성을 추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불자필람》에는 실려 있지 않았던 것으로 새로이 추가된 것이다.
출생공양주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佛敎에神秘는 卽呪文과符書이라(呪文을或眞言或陀羅尼라 하나 其實은 한가지) 그르면 誦呪編에 千手四大諸眞言이며 持誦篇에 四十二呪等이 全部神秘篇에 屬할 것이나 煩重을 避하야 重重記入지 아니하고 但多字에 尊勝呪와 一字에 出生呪을 選入함

신비편에는 주문과 부서가 있으며, 송주편의 천수·사대진언은 물론 지송편의 사십이주도 모두 신비편에 해당한다. 18편 가운데 3편이 신비편에 속하는 결과가 된다. 《석문의범》은 많은 부분의 내용이 진언과 관계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복장연기(腹藏緣起)가 실려 있는데, 화취진언(火聚眞言)으로 불상을 조성하는 법과 의미를 적고, 용허 스님이 《조상경(造像經)》을 만들게 된 경위를 언급한다.

부서는 《불자편람》에는 대장경에서 뽑은 ‘왕생정토부식법(往生淨土符食法)’과 《사천왕경(四天王經)》의 ‘삼장육재일(三長六齋日)’의 2항목만이 있었으나 《석문의범》에서는 여기에 북두칠성부를 부가시키고 있다. 북두칠성부는 대정신수대장경 21권 no.1307 《불설북두칠성연명경》의 부와 경문 내용이다. 7개의 별에 12지를 배당하고 7개의 별에 이름과 불을 배당하여 자기가 태어난 날에 의미를 부여하여 연명하는 뜻이 있다.

고대인도에서는 문법학으로 성명(聲明, śabda-vidyā), 공예나 산력(算曆)으로 공교명(工巧明, śilpakarma-vidyā), 의학이나 주법(呪法)으로 의방명(醫方明, cikitsā-vidyā), 논리학으로 인명(因明, hetu-vidyā), 자기가 속한 파의 종지를 배우는 내명(內明, adhyātma-vidyā)은 세간의 법술로서 꼭 배워야 하는 다섯 가지 학문이었다. 그런데 북송시대 종의(從義, 1042~1091)가 찬한 《천태삼대부보주(天台三大部補注)》에서 인도 오명(五明)을 내오명(內五明)이라고 하고, 다시 외오명(外五明)을 시설하여 성명, 의방명, 공교명, 주술명, 부인명이라고 한다.

앞의 4가지는 동일하며 다섯 번째를 부인명(符印明)이라 하여 배워야 할 세속적인 학문이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 유통한 《불조통기(佛祖統紀)》 연사칠조전(蓮社七祖傳)에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불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부(符)는 중국 일행 스님(683~727)과 관련된 경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몸에 병이 있을 때 지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등으로 그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세속적인 학문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이 중국에 전래되며 다시 중국 점성술의 요소가 강한 도교의 요소들과 만나서 불교의 한 요소인 부로 변용되고 있다.

부록으로 길흉지정일에 삭발일, 목욕일, 세족일, 시현일, 예배일, 하강일, 오납일, 길일 등을 첨부하고 ‘세안이주회수용(洗眼以奏灰水用)’이라고 설명한다. 물을 사용하여 모든 것을 씻어버리는 쇄수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거병방(去病方)이라 하여 구병시식을 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병명과 날짜를 적어 놓고 있다. 시식편에서 구병시식을 놓고 있으므로 좋은 날을 택하여 법식을 펴는 것이다. 신비편의 내용은 보다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현세 이익적이고 신비적인 경향은 밀교초·중기 잡밀에서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들인 요소들이 중국을 거치며 도교와 습합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현행 의례문의 역할과 기대

지금까지 불교의례의 정의와 범위 《석문의범》의 구조 및 교리의 내용 등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의식을 담고 있는 의례집이기 때문에 각각의 의례에 대하여는 보다 자세한 분석은 필요로 하지만, 큰 틀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는 있었다.

《석문의범》 신비편은 가장 비불교적 요소로 인식되어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내용에 대한 연구가 척박하고 또 밀교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내린 결론이다. 한국불교는 중국의 불교 변용에 또 우리의 변용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전개 방식은 아주 달랐다. 중국은 종파적인 불교를 지양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선교 양종의 형태를 취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불교는 불복장의식, 신중신앙 《천수경》 무상계 등 우리만의 불교를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다. 《석문의범》 역시 ‘불교의식을 전부 망라하여 다시 다른 책자를 열람의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편집의 의도를 밝힌다. 인도불교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다라니신앙, 송주, 공양 등을 강조하며 하나의 통일체로 묶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또한 다른 나라의 불교에서 볼 수 있는 발상이다.

교의 시작으로 선의 실천에 들어가는 구조인 《석문의범》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930년대 서구 종교와 일본 불교의 유입으로 변혁기를 맞이한 불교계는 사용하기 용이한 의례집을 발간하기로 한다. 《작법귀감》의 내용을 저본으로 하여, 당시 유통되던 다양한 종류의 의식집들을 하나로 묶어 한 권의 《불자필람》을 출판한다. 그러나 부족한 내용과 오류가 많았기 때문에 수정·보완하고 의식의 내용을 교 18편, 선 4편으로 분류하여 총 22편으로 구성한 《석문의범》으로 개정하여 개판한다. 현장에서 사용이 편리하도록 한문과 한글을 상하단으로 병기하며, 다양한 의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권으로 최소화하였다. 또 내용은 교의 방편과 선의 실천으로 한국불교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교는 《열반경》 영아행품에서 상락아정을 황엽에 비유한 보살행의 방편을 황엽보도문으로 하고, 선은 《선문염송》의 법왕법과 용녀성불의 고칙으로 누구나 성불할 수 있는 평등사상과 동시에 그 실천 방법인 여래행을 격외염롱문으로 보인다. 의례 방편과 참선 실천으로 구조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황엽보도문의 특징은 예경과 진언의 강조이다. 조모작법절차 등의 예경과 송주·지송·신비 3편의 진언이다. 아침과 저녁에 해야 하는 송주편, 다라니의 지송편, 주문의 불정신앙과 부서의 외오명은 모두 신비편에 속한다. 힌두교의 요소를 재해석한 밀교와 도교의 요소를 재해석한 부서의 쓰임이다. 불교적으로 재해석되어 인도와 중국, 한국 등에서 오랫동안 불교적인 쓰임을 가져온 것들이다. 또한 서구적 의식의 절차와 양식은 간례편에 싣고, 전통적인 곡(曲)·시(詩)·게(偈)와 서양 음계를 사용한 가(歌)를 가곡편으로 구성하였다. 이는 서구문화를 받아들인 대응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석문의범》은 전통의 계승, 사회변화에 대한 적응,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진언이 특징으로 나타나는 몇몇 편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이지만, 비불교적 요소로 보이는 것들조차도 지역의 전통문화를 불교적으로 재해석한 내용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긍정적인 사고의 전환이란 황엽과 같은 방편을 방편으로 바르게 아는 것이다. 그 결과 본래 부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지송하는 의례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의례가 불자들에게 종교적 감흥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행해져야 하며, 의례가 불자들에게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석문의 의무이며, 의범에서 보이는 가치와 역할이 아닌가 한다. ■


태경 
조계종 교육원 교수아사리.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석·박사) 졸업. 제4교구본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균여의 원통 논리와 그 실천(박사학위 논문)〉 〈대승육정참회의 성격과 구조〉 등과 저서로 《조상경》 《초기화엄사상사》 《(알기쉬운) 불교용어 산책》 등이 있다. 현재 동국대 강사이며 조계종 포교원 의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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