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H 오스틴 저, 이성동 역 《선과 뇌의 향연》

제임스 H 오스틴 저,
이성동 역
《선과 뇌의 향연》
“이 책은 선 수행이 뇌의 정신 생리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는 뇌과학자의 기대를 담고 있다”(469쪽)

20세기 초반부터 동아시아의 이민자를 중심으로 서양에 전해진 불교는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심리학자, 의학자와 같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1950년대에는 에리히 프롬 등의 신프로이트학파의 심리학자들이 일본의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에 의해 소개된 선불교와 정신분석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통해 《선(禪)과 정신분석》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 테라와다 불교의 마음챙김 명상 또는 위빠사나 명상이 서양에 알려졌고, 1979년 이후, 존 카밧진에 의해 시작된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 프로그램이  의료 현장에서 만성통증 환자나 다양한 증상의 환자들에게 시행되었고, 임상적인 효과를 거두면서 서양의료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불교명상을 포함한 다양한 동양의 명상이 심신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은 상식이 되어버렸다. 명상은 임상적 치료 효과는 물론 행복증진에도 효과가 있음이 다양한 연구로 드러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종교 체험 가운데 명상 체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뇌 영상 촬영 기술이 급격한 속도로 발전을 이루면서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명상 체험을 하는 인간의 뇌에 대한 구체적이고 신경생리학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서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의 대가인 위스콘신 대학의 리차드 데이비슨 박사의 다양한 불교명상(마음챙김 명상, 티베트 명상)에 대한 연구가 유명하다.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오스틴(James H. Austin, 1925~ ) 박사는 생물학자−인본주의자로 출발하여 뇌과학자 경력을 쌓았고, 우연히 참선을 경험했다고 한다.(695쪽) 명상을 하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변할까? 특히 선 수행했을 때 뇌는 어떻게 변화할까? 하버드 의과대학 신경과 임상 의사이며 선불교 수행자인 제임스 오스틴 박사는 1974년 자신의 선 체험(견성체험)을 신경학적으로 재구성하여 면밀히 살펴보는 방법으로 선과 뇌의 상호관계를 40년 가까이 탐색해왔다. 그 성과로 첫 번째 저술인 Zen and the Brain은 1998년에 출판했고, 이번에 우리말로 번역된 Zen-Brain Reflections은 2006년에 출판되었다. 이후 Selfless insi-ght(2009), Meditating Selflessly: Practical Neural Zen(2011)을 저술했다.

오스틴은 기존의 신경과학자들과 달리 종교적 체험과 과학적 연구를 병행하면서 독특한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수행하는 뇌과학자이다. 명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때 부딪히는 문제와 한계에 대해서는 《명상의 정신의학》(안도 오사무 저, 김재성 역, 민족사, 2010)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정신과 의사인 안도 박사는 실제로 명상하는 과학자의 연구 성과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오스틴 박사는 명상을 체험한 신경과학자라는 점에서 그의 연구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내면적인 자기 관찰을 통해서 마음의 문제에 접근해가는 방법(1인칭적 접근법)을 위주로 하고 있다면, 서양의 심리학 및 정신의학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로서의 심리현상을 밝혀나가는 접근법을 중시한다. 이러한 접근법을 3인칭적인 접근법이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The Universe in a Single Atom(New York: Morgan Road Book,2005, Ch.6: pp.119-137)에서 1인칭적인 접근법과 3인칭적인 접근법 모두 의미가 있으며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스틴의 연구는 1인칭적인 경험에 대한 뇌과학적인 3인칭적인 접근을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오스틴 박사는 불교와 명상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오랫동안 해온 본인의 선 수행 체험을 바탕으로 선과 뇌의 상호관계를 자신의 경험과 학문적 연구 성과를 융합하면서 풀어내고 있다. 그의 핵심 탐구 영역은 선이란 무엇이고, 선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실제로 인간의 뇌는 어떻게 작용하며, 선 수행과 깨달음의 경지에서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이다. 오스틴 박사는 선이 갖는 신경 생물학적 기반과 그 신경 생물학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 체험 현상을 단순화시키려는 의욕을 가지고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선과 뇌과학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이 두 분야가 서로를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아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명상과 뇌의 가소성(변화 가능성)을 소개한 대중적이 책 가운데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Train your mind, Change your brain, 원서 출판 2007, 샤론 베글리 지음, 이성동, 김종욱 옮김, 서울: 북섬, 2008)가 있다. 이 책을 보면 2001년 이후에 진행된 오랫동안 수행을 한 티베트 승려들에 대한 리차드 데이비슨의 연구는 달라이 라마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총 9부로 구성된 《선과 뇌의 향연−선 체험을 한 뇌과학자의 뇌와 선에 대한 연구서》의 각 부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제1부에서는 선의 역사와 ‘내면의 자아’에 대해 고찰해본다. 제2부에서는 명상에 대한 몇 가지 연구에 초점을 맞추면서 일반적 뇌파와 뇌 영상 연구가 갖는 한계와 호흡명상, 화두, 선 교육에 대해 검토한다. 제3부 뇌를 향한 여행에서는 뇌에 관한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하면서 대뇌 변연계의 편도체를 다루고, 주위 변연계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최근 연구와 명상하는 뇌에 대해 고찰한다.

제4부 의식에 대한 탐구에서는 감각, 정서, 조건화, 중독, 사랑, 성욕, 공감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5부 요동에서는 의식의 변화에 대한 이론과 변성의식 상태를 유발하는 약물 사용이 적절한지 검토한다. 제6부 몰입에서는 다양한 몰입 경험에 대해서 알아본다. 제7부 통찰적 깨달음에서는 핵심적 통찰에 해당하는 견성과 깨달음, 지혜에 대해 설명한다. 제8부 존재의 열림에서는 존재 자체를 실현한 경지인 대각의 경지, 자비, 명상수행으로 함양되는 내적인 성숙을 소개한다. 제9부 ‘달빛을 가리키며’에서는 저자의 견성 체험과 ‘달빛’의 은유와 역대 선사들의 관련성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본다.

한글로 번역된 책은 본문과 주석을 포함해서 850쪽에 이른다. 읽는 것만도 쉽지 않지만,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뇌과학과 불교교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명상체험이 요구된다. 다양한 명상연구 성과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이 발행될 때까지의 뇌과학적인 명상 이해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에는 네 가지 문답(12장 67장, 87장, 102장)이 실려 있다. 이 문답을 통해서 저자는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있다. 신경과의사로서 선 수행을 하면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저자는 몇 개의 문답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왜 자아에 그렇게 강조점을 두는가이다. 답은 자아는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라고 하며, 대부분의 불교문헌과 신경학 문헌에서 자아의 핵심적 기능과 그 층위에 대하 잘못 알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아성의 개념은 뇌가 신체 이미지−신체 자아−를 그 잠재적인 주요 축으로 표상함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신체 이미지는 소마(soma, 몸)로 표상되며, 아이들은 신체의 틀을 따라서 정신적 자아의 표상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과잉조건화된 정신 속에서만 우리는 세상을 보게 되고 좋고 나쁨을 판단해서 행동하게 된다. 자아를 육체와 정신으로 구별하는 단순함을 명상을 통해 넘어서게 되면, 몰입 초기 표층적 상태에서 신체 자아의 감각이 사라진다. 하지만 견성(見性)의 후기 상태에서는 신체적 자아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론적 개념이 대부분 변화해 버린다. 저자는 이렇게 견성을 체험하면서 분리적인 주관적 자아(I)−객관적 자아(me)−나의 것(mine)이 작동하는 방식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얼마나 과잉 조건화되었는가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질문 “명상 수행의 기본 메시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은 실제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과도한 신념(overbe-liefs)’이라고 하는 수행원리(doctrines)의 생리적 기반 즉 신경학적 기반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선은 규칙적인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우리를 산만한 생각에서 해방시켜 주고, 현재 이 순간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더욱더 잘 알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며, 우리가 진정 누구이고 어떻게 단순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직관을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선이란 존재의미에 대한 깨달음이며, 화두와 같이 전환점이 되는 말이 깨달음의 촉박 자극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299쪽)

또한 질문자가 불교는 종교철학 영역에 속하는데, 이 책은 뇌과학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자, 저자는 첫 번째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하며, 이 책은 선 수행이 뇌의 정신 생리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는 뇌과학자의 기대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해부학에서 시작하여 신경회로와 핵, 단일 신경세포와 수용체에 이르는 현대 신경과학의 연구성과들에 따르면, 매일의 규칙적인 명상수행과 간헐적인 집중 수행의 결과로 인격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질문은 책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질문으로 선 수행에서 단계마다 뇌가 달리 반응하는 핵심적인 방식을 요약해 달라는 것인데,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태어나서 우리의 뇌는 ‘자아’와 ‘타인’을 구별할 수 있게 분화되고, 4세 무렵, 외부세계에 더욱 정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변화를 시작하여, 타인의 태도에 직관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발달한다.

선 수행은 이런 태생적인 발달 성향을 지속시켜 주는데, 평안함과 명료함 속에서 성인 수행자의 뇌를 재훈련시킨다. 수행은 마음챙김이라는 세련된 기법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랜 수행은 자기 훈련과 마음챙김을 더욱 발달시켜 서서히 자아 중심적인 문제들을 드러나게 한다.

수행을 더욱 집중적으로 할 때, 스트레스 반응이 야기되면 뇌의 정서적 본능적 반응 등에서 큰 요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요동은 짧은 순간의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의 급작스런 변화에 기인해서 각성 또는 수면의 주기적 흐름을 넘어서게 된다. 이러한 내적 몰입의 단계를 거치면서 시각, 청각 및 신체적 자아의 이미지가 상실되는데 이는 견성 체험과는 다르다, 다음 단계로 일어나는 견성 체험은 통찰지의 특수한 형태인데, 짧은 순간, 모든 자아 중심적인 회로가 차단된다.

 자아 중심성은 정신적 자아가 과잉조건화된 것이다. 자아 중심 회로가 차단되는 반면, 대상 중심 회로로 들어가는 감각적 메시지는 유지되며, 그때 놀라운 의미로 가득 찬 정신적 공명으로 채워진다. 견성의 무공포감은 편도와 그 주변의 주된 연결 회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경험된다. 정신적 자아의 죽음과 영원성의 느낌은 시상과 이에 상응하는 전두−측두−두정엽 회로와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고 한다. 견성의 비이원적 일원성은 세계는 새롭고 놀라운 궁극적, 객관적 실재와 하나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체득하는 것이며, 양 대뇌 반구의 다양한 회로가 이런 통합적 기능에서 서로 얽히고 떨어지기도 한다. 견성에서 일어나는 초기 및 후기의 연속 과정에 대해서는 93장, 95장에서 정리하면서 표11(694쪽)에서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견성의 일곱 가지 현상에 대한 작업가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300쪽)

△자아의 중심적 정신 축과 육체의 자아−연관성 개념의 소실
△개인적인 미래 계획의 소실
△소유하고자 하는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행동의 심오한 소실
△한때 의미 있는 관련성이라는 점에서 ‘논리적’ 연속성을 형성했던 시간 개념의 소실
△편도체를 통해 형성되었던 조건화된 공포 반응의 소실
△이전 경계의 소실과 함께 고정된 범주 구별의 상실
△좌측 전두엽 편재의 일부와 연관된 즐겁고 긍정적인 정서 획득

이처럼 선 체험을 분석하면서 뇌과학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한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 명상의 길을 탐구하는 데 마음이 넉넉한 신경생물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80쪽) 진정으로 명상 체험은 뇌과학의 연구에서 ‘성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두 분야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서로가 서로를 조명하게 된다.(79쪽)

저자는 미래의 뇌과학은 긴 영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며, 신비화를 줄이고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 전통이 걸어온 길과 그것이 신경 생리학의 이해에 얼마나 빛을 던져주었는지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744쪽)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 여전히 뇌과학이 연구해야 해서 규명해야 할 영역이 남아 있고, 후학이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마음챙김 명상이나 선과 같은 불교수행에 대한 이러한 신경생리학적인 이해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뇌파나 뇌영상이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명하려면 명상수행자와 뇌과학자의 상호 협조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심도 있는 연구 성과가 나올 때를 기대해본다. 끝으로 이러한 전문적인 책을 펴낸 출판사 관계자들과 번역하신 이성동 선생님과 감수를 하신 미산 스님과 김성윤 교수께 독자로서 감사의 뜻을 표한다. ■

 

김재성 /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 서울대 철학과 졸업, 동경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불교학연구》 편집위원장, 한국심리치료학회 운영위원,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선임연구원 등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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