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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현행 승려복지, 승가정신에 합당한가 / 이혜숙
[53호] 2013년 03월 21일 (목) 이혜숙 hesook56@hanmail.net

1. 글의 배경

불교종단의 종책 결정에서 하등의 권한을 갖지 못한 재가자의 입장이면서도 출가수행자의 기본적인 생활여건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 지금까지 출가수행승에 대한 기본적인 지원 보장이 논의되어 온 방향은 무엇보다도,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문제와 보장의 종류와 수준 그리고 지원할 대상자의 자격요건 등이었다. 조계종의 경우, 종단 중앙과 각 교구본사의 관계에서 지원금을 조성하는 책임과 그 비율에 쟁점이 있고, 우선지원자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 등에서 쟁점이 있다. 조계종단에 비해서 스님(교역자)의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천태종과 진각종의 경우나, 종단 구성원인 단위사찰의 독자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는 태고종의 경우는 상황적 특성 때문에 또 다른 쟁점들이 대두된다. 이 글은 독신수행 원칙의 조계종 출가수행승을 주로 염두하고 논의할 것이다.

종단 안팎에서 승려복지는 대개가 ‘재정 마련’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다루어지는 실정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출가수행승에 대한 기본적 보장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승가의 ‘수행공동체 정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를 여기서 차례로 짚어볼 것이다. 이른바 속인(俗人) 공동체인 일반사회에서조차도 오늘날은 남의 자식, 남의 부모를 가리지 않고 다 함께 돌봐야 한다는 데 합의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기중심 혹은 가족중심이어서 속인이라는 칭호도 감수하는 재가자들이 사회적 부양에 대한 합의를 하고, 소득재분배와 여러 가지 공공 서비스를 위해서 부과되는 복지세를 수용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이행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속인들도 상생과 공생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출가수행자의 승가 안의 생활상은 어떠한가? 오늘날의 승가 안에는 엄연히 빈부차이가 있어서 일미화합(一味和合)과 평등성을 내세우기가 곤란하다. 원론적으로는 수행자들 사이에서 혹은 문중들 사이에서 승물(僧物) 축적으로 인한 빈부차이가 생기는 것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따로 있는 것 같다. 어쩌다 곤궁에 처한 도반을 수행동지(修行同志)로서 보살피려는 이타적 마음 상태가, 공동체 차원으로 볼 때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발우공양으로 상징되던 공생공존의 승가다운 가치가 많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런 시각에서 필자는 작금의 승려복지에 관한 주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혼용되는 어휘들의 개념을 정리하고, 주요 종단들이 마련하고 있는 지원제도를 간략하게 소개한 뒤에, 현재의 경향 가운데서 제기되는 질문을 다루어볼 것이다.

2. 용어의 개념 규정

그간에 여기저기서 사용된 용어들을 보면 주로 승가복지, 승려복지, 승려노후복지가 있다. 잘 알다시피 승가는 사부대중 즉 남녀 각각의 출가중(出家衆)과 재가중(在家衆)으로 구성되고, 출가중의 구성원이 승려이다. 그러므로 ‘승가복지’라고 말할 때는 출·재가를 막론하고 사찰과 종단에 소속하는 모든 불자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의 개념이어야 할 것이다. 스님과 종무원의 복지 외에도 재가불자가 사찰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복리적 요소를 개발한다면, 승가복지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아직까지는 재가불자의 복리를 포함한 승가복지의 개념으로 확대해서 논의되는 경우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승려복지’라고 하면 그 대상이 출가중으로 제한되고, 비구와 비구니는 물론 사미와 사미니를 포함한 복지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불교종단 가운데서도 태고종이나 진각종과 같이 혈연권속이 있는 승려와 교역자의 경우는 ‘승려복지’의 범주와 또 다른 요소들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승려복지 중에서 특히 ‘승려노후복지’라고 하면 더 한정된 범위로서 출가중이 일정한 기준 연령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그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가 되겠다. 조계종 승려복지법은 우선 65세 이상의 노스님들에 대한 서비스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종래의 ‘승려(노후)복지’라는 말을 대신하여 ‘수행생활 기초보장’이라는 용어를 권장하는 입장이다. 원칙상 스님들은 의식주를 마련하려고 승가공동체에 소속해 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할 목적으로 귀의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복리(福利)를 구할 리가 없다고 본다. 그런 스님들에게 ‘복지’라는 일반사회의 용어를 붙이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더욱이 요즘의 복지는 최소한의 생계보장으로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라는 차원으로 확장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는 수행자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어로 해석될 수도 있다.

출가수행생활의 기초적인 요소라고 하면, 평생 스님들의 기본생활 경비, 발병 시 치료 및 간병비, 거주·교육비 등이 포함된다. 실제 승려복지의 시행에서는, 종단의 재정 등을 이유로 65세 이상 노스님의 치료와 요양을 지원하는 방침이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찍이 젊은 스님들 사이에서도 노후에 대한 염려 때문에 수행과 포교에 여러 가지로 지장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을 보더라도, 승가공동체로서는 어떻게든 현재 출가수행자의 기초생활에 필요한 지원을 마련해야 할 책임성과 당위성이 있다. 

 3. 출가중을 위한 보장책의 개요
 
종단에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지려면, 그것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는 법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불교종단의 행정적 최상위법을 종헌이라고 부른다. 그 하위에 여러 가지 종법들이 있고, 종법에 근거하여 시행령이나 세칙을 만들어서 보장정책으로 선언했을 때, 소속 종단의 출가중을 위한 수행보장이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실현되어 갈 것이다.

조계종 종헌의 경우 “본 종은 승려의 노후생활 보장과 건강유지를 위한 승려노후복지원을 설치한다”(제116조)라고 되어 있다. 진각종의 경우는 종헌이 좀 더 세분된 조항들을 두고 있다. 즉 제108조는 “본 종은 스승의 노후 수도, 휴양을 위한 기관으로 기로원(耆老院)을 둔다.” 제109조는 “본 종은 스승의 생활과 교화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스승복지회를 둘 수 있다”. 그리고 제110조는 “본 종은 스승 상호 간의 친목과 상부상조를 위하여 우용사(佑勇社)를 둔다” 하고, 그 설립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종법으로 정하기로 되어 있다. 태고종의 종헌 제44조에 의하면, “본 종의 사회복지사업을 관장하기 위하여 사회복지원을 둔다”고 되어 있고, 제77조에는 “본 종은 종도의 상부상조를 위한 공제사업과 사회복지를 위한 후생시설 및 단체를 설립 운영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태고종 종헌 제44조에 규정된 사회복지사업은 대외적인 것으로 이해가 되고, 77조의 규정은 스님과 신도를 위한 대내적 복지사업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계종은 최근에 승려복지법(2011년 3월 10일 제정, 4월 1일 공포)과 그 시행령을 제정 공포하였다(2011년 8월 25일). 승려복지법 제1조에 의하면, “본 종의 승려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후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불법 홍포와 종단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에 따라서 조계종 스님들을 위한 수행생활 기초보장의 매뉴얼이 제작 배포되었다.

진각종은 종헌의 하위법으로서 기로원법, 우용사법, 수도원법을 제정하였다. 기로원법은 일찍이 1964년에 최초로 제정되었고, 퇴직한 스승(교역자)을 위하여 ‘그 공적에 대한 예우와 봉양’을 목적으로 ‘휴양과 수도처’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같은 연대에 제정된 우용사법은 재직 중인 교역자들의 ‘상호부조와 친목을 도모하고 복리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 규정이다. 그리고 특기할 것은, 진각종의 종헌 제111조에 의거하여, ‘무의탁자와 연로한 교도(敎徒)를 수용 보호하여 여생을 수도정진에 힘쓰고 평안한 노후생활을 영위토록 하는’ 공동수행생활 거주시설에 관한 수도원법을 1993년에 제정하였다. 앞서 필자가 ‘승가복지’라는 용어에서 출가자와 재가자를 아울러 서비스 대상으로 삼는 개념을 언급한 바 있는데, 진각종의 수도원법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천태종의 경우에도 종단에서 상주하며 장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재가신자들에게 그 봉사기간에 따라서 연금성격의 급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태고종에서는 하위법인 ‘사회복지원법’이 2002년에 제정되었지만, 종도(宗徒)의 복리를 위한 전문적인 종법은 제정된 바 없고, 종무원법에서 복무에 관한 규정들을 원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1990년도에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사찰 간의 상부상조로 이상적인 불교공동체 조직을 위하여 공조체제를 강화할 목적’(제3조)의 사업들을 명시하고 있다. 스님(교역자)의 수행생활을 지속적이며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특히 태고종과 천태종의 경우, 관련되는 종헌의 규정과 구체적인 종법들이 구비되어야 할 것이다. 종단의 종헌−종법−행정적 시행령 및 규칙 등에 이르는 발전 과정이 상당한 시간을 요하게 되는 것을 보아왔다. 진각종의 경우처럼 자세한 관련법들이 이미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차례 행정적 지침들이 수정될 필요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법적 근거로 시행되는 종단별 승려(교역자)에 대한 보장제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장 서비스의 대상자에 관련해서 천태종은 비구 150명, 비구니 240명(2011년 기준)에 대한 서비스를 승납별 차등원칙으로 제공한다. 진각종은 정사 104명, 전수 110명(2011년 기준)에 대한 서비스를 승납별 차등원칙으로 제공한다. 태고종은 등록사찰이 3,200여 개소에 이르지만 그중 80% 이상이 사설사암의 성격이라서, 보장 문제는 개별적으로 감당하고 종단 차원의 집계가 없다. 한편, 현재 약 14,500명의 출가중(승려와 예비승려)을 둔 조계종은 그들 중에서 ‘무소임·무소득자’이며 ‘65세 이상’이라는 조건에 맞는 대상자에 한하여 승납별 차등원칙으로 서비스를 우선 지원한다. 지난 2009년 12월 기준으로 소임을 맡은 조계종 스님들의 수는 전체 약 14,100명 가운데 대략 4,070명(18세~60세 한정인 경우)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10,000명 정도의 무소임·무소득자 가운데서 65세 미만의 스님들에 대한 지원책이 별로 없는 것이다.

 둘째, 보장되는 서비스 내용과 관련하여, 조계종은 2011년 10월부터 스님들에게 국민건강보험(재적 스님 전원)과 국민연금보험(18세~60세 스님)의 가입을 의무화하고, 소정의 연금보험료와 질병 치료비를 지원한다. 2014년 4월부터는 65세 이상 노스님들에게 소정의 수행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천태종 스님들은 승납별로 매월 25만~3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국민건강보험에 전원 가입되고, 보험료와 질병 치료비는 종단에서 전액 지원한다. 단, 사찰에서 소임을 맡은 스님은 어느 정도 추가적인 지원금이 있는 것으로 안다. 진각종의 교역자들은 직급별로 매월 150~3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소속된 심인당의 지역가입자로서 전원 건강보험에 가입되고, 건강보험료나 질병 치료비 등은 각자의 월 급여에서 자부담한다.

조계종 외의 종단에서는 ‘요양 및 간병수발’이 아직은 종단적 관심사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노령자가 많은 편인 조계종단은 국가의 노인요양보험제도와 연계하여 스님의 요양 수발을 지원할 계획이다. 즉, 노인요양보험법의 규정에 따라서 수혜자로 등급 판정을 받고 세납 65세 이상으로서 종단과 협약을 맺은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스님들을 위하여, 장기요양급여 대상자 본인 부담액 및 비급여의 50%를 종단이 지원한다. 조계종단이 협약을 맺은 노인요양시설은 2011년 9월 현재 전국적으로 총 21개소가 있다. 그러나 요양 및 간병 서비스는 단지 노령 스님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다. 태고종이나 진각종의 경우는 유사시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조계종 독신수행자의 경우에 사고나 질병으로 장기간 도움이 필요한 사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종단 차원의 생애 전반에 걸친 지원대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태고종, 진각종, 천태종의 경우는 스님(교역자)의 수행공간인 거주처의 수요와 공급 면에서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조계종은 연령층을 막론하고 수행생활의 거처가 안정되지 못하는 현실이 수차례 조사보고 되었으므로, 노령 이전부터 스님들의 수행에 필요한 거처가 안정되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위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 페이지의 〈표 1〉과 같다.

   

셋째, 보장 서비스에 필요한 재정과 관련하여, 천태종· 태고종· 진각종은 주로 종단(사찰·심인당)의 일반예산을 지출한다. 수행생활 보장의 목적으로 ‘승보공양 동참’과 같은 방식으로 특별기금을 조성하거나, 교구 단위로 재적 스님들을 직접 지원하는 경우는 조계종뿐이다. 그에 따라서 조계종은 교구별로 재적 스님의 숫자와 재정 형편이 문제가 된다. 종단 차원에서 승려복지법과 관련 시책을 만들기 전에 이미 교구별로 시행해온 재적 스님들에 대한 서비스를 보면, 조계종이라는 하나의 승가공동체이면서도 불균형과 편차가 심하게 드러난다. 2009년 현재 직할교구인 조계사에 재적 승려가 가장 많아서 전체의 약 26%(3,520명)를 차지하고, 그다음은 제12교구 해인사로 약 12%(1,600명)를 차지하며, 이어서 제15교구 통도사가 약 8%(1,150명), 가장 적은 곳은 제23교구 제주관음사 약 0.7%(100명)를 차지한다.

교구별 재적 스님들에게 수행연금이나 활동비를 지원한 교구는 당시 조사된 19개 교구 중 11개 교구로 파악되고 있다. 예컨대, 제2교구 용주사는 승납별로 차등을 두어서 1인당 최고 50만 원에서 30만 원까지 매월 수행연금을 지급하고, 제4교구 월정사에서는 재적 스님들에게 총 2,400만 원의 지원금, 제24교구 선운사에서는 4,950만 원 등이 지원되었다. 2011년의 새로 만든 시행제도 역시 자세히 알고 보면, 승려복지를 위한 재정은 각 스님이 소속한 교구본사가 90%를 부담하고 중앙종단의 승려복지회는 10%를 부담한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조계종과 관련하여 ‘종단 지원’이라고 말한 부분은 사실상 교구본사들이 주 책임자이다.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넷째, 스님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전달하는 조직체계와 관련해서, 중앙종단과 각 스님 사이에서 직접 서비스가 전달되는 방식(중앙집권형)이 있고, 혹은 교구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지역분권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지, 스님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효과적· 효율적·통합적으로 전달해야 하고, 이용자(스님)는 서비스에 접근하기가 쉬워야 한다. 조계종은 ‘승려복지회’라는 직렬 체계와 교구 단위의 분권형이 병합된 전달구조이다. 그 체제가 조계종 스님들의 생활 패턴에 부합하여 잘 가동될지 여부는 좀 더 진행되고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태고종은 개별 사찰들의 책임과 권한이 상대적으로 크고 강력해서 서비스 전달체계도 분권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각종 역시 심인당 단위로 기초적인 보장을 담보하므로 분권형이라 할 수 있지만, 중앙종단으로 집중시키는 정책구조와 통제력이 상당히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본다. 천태종은 중앙집권형의 전달체계가 훨씬 지배적인 것 같다. 불교종단들이 특히 국가와 연계된 서비스를 활용하려면 전달체계 안에 전문인력을 배치하여 그 역할에서 전문성과 책임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4. 검토할 문제들

1) 수행생활 공동체로서 근본을 지키는가

이제 독신수행 승가인 조계종 승려복지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기로 한다. 조계종단은 14,500명 정도의 출가중으로 구성되고, 그중에 65세 이상인 노스님은 약 1,800명, 제방선원에 머무는 수좌는 약 2,200명 정도, 크고 작은 종무기관(사찰, 부속기관 등)의 소임을 맡은 대중은 4,100명 선이다. 약 3,065 개소(2011년 등록기준)의 사찰을 근거로 한국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재가신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단 차원의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접하기 어려운 터라 드문드문 발표된 조사보고서를 통해서 짐작된 수치이다. 이러한 조계종이 바야흐로 승려복지법과 그 시행령을 공표하고, 종도들의 수행생활 보장을 제도화하게 된 것은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다. 과거 10년 이상 총무원의 새 집행부가 구성될 때마다 ‘승려복지’가 화두인 것처럼 알려졌으나, 종도들의 기대와 달리,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간간이 스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들을 요약하면, 평상시 수행생활에서도 최소한의 용돈이 필요하고 특히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 시에는 대책이 없어서 수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오늘날, 그나마 조계종 재적 승려의 93%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국민연금은 20% 가입이라고 하는데 소임이 없는 스님들은 그 보험료를 어떻게 조달하였을까 궁금할 뿐이다. 승가 생활의 기초적인 여건에 대해서 최소한의 보장도 기약이 없는 종단의 현실 때문에, 누군가는 노후의 보험성격으로 사설사암을 꿈꾸게 되고, 또 누군가는 큰 결의로써 떠나온 속가(俗家)를 돌아보며 지원을 청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실제로 한 조사에서는, 수행자이지만 노후생활이 염려된다는 반응이 65%를 넘었다. 당시 가장 시급한 문제로서 응답자의 30%가 ‘거처 안정’을 들었으며, 다음으로 28%가 생활비 문제, 26%가 질병 치료 등을 염려하였다. 소위 승려복지 대책은 노후에 이르러서야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수행자들에게 당장 수행생활의 발판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수행자가 수행할 거처를 찾지 못해서 걱정되고, 수행공동체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사암(私庵)을 지어서 따로 살 궁리를 하게 된다면, 이미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앞에 소개한 바 있듯이, 조계종의 승려는 약 14,500명이고 사찰은 약 3,070개소라고 하는데, 거칠게 계산해보면 한 사찰에 평균적으로 4~5명이 모여 살 수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 스님대중이 수십 명 이상 함께 살 수 있는 규모의 사찰도 적지 않으므로, 나머지 사찰들에서는 4명 이내의 공동생활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재가자의 살림살이에서 종종 쓰는 표현으로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사찰이 운영되고 있다면 그 안에서 기본적으로 스님 몇 명 정도는 특별한 추가비용이 없어도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젊어서나 늙어서나 스님들이 갈 곳이 없다고 말하게 되는 그 상황의 배경적 요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크게 두 가지를 추정해본다. 첫째는 승가의 수행공동체적인 규율의 하나인 ‘승물과 대중공양(승보공양)의 원칙’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승가(사찰)에서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을 자세하게 밝혀놓은 것이 《사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등의 율장이다. 그 내용 가운데는 삼보 중 불보, 법보에 공양된 것을 함부로 사용하면 죄가 된다는 것과, 출가중에게 보시된 승물(僧物)에 대해서도 그 분배와 사용규칙을 설명한 부분들이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중 예를 들면, 스님의 거처를 새로 만들게 될 때 스님대중의 처분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들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보시로 받은 승물이나 심지어 자연에서 얻은 수확물들일지라도 사방에서 수행 정진하는 승가의 도반들과 함께 나누고 공양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만일 비구가 스스로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시주(施主)가 없이 자기가 지으려 한다면 의당 한도에 맞게 지어야 한다. ……반드시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가서 장소를 지시받아야 한다. ……시주가 없이 스스로 짓더라도 여러 비구들의 지시를 받지 않고 한도에 지나치는 이는 승가바시사이니라. 만일 비구가 큰 방을 지으려 하는데, 시주가 자기를 위하여 지어 주려고 하거든 의당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가서 장소를 지시 받아야 한다. ……시주가 자기를 위하여 지어 주려 하더라도 여러 비구들을 데리고 가서 장소를 지시 받지 않으면, 승가바시사이니라.

절을 새로 세우려는 비구는 스님들에게 다 알리고, 그 절 안에 심어서 얻은 꽃과 과일은 부처님께 올리며, 그 가지와 잎과 잔잔한 열매는 스님들에게 주고 또 일체 중생에게 보시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승속을 불문하고 다 죄를 범함 이 된다(2,405면). ……시주가 본래 보시한 하나의 털과 한 알의 낱알도 시방세계의 출가한 범부와 성인에게 공양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먹고 쓰도록 하여 밤낮으로 도를 닦게 하기 위한 것이지 속인(俗人)에게 공양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런 까닭에 종(鐘)이 울려 퍼지면 그 하나의 메아리에 멀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와서 음식을 먹고,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이 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함께 도업(道業)을 이루는 것이니, 가만히 시주(施主)를 힘입어 얻는 수익은 그지없다(2,877면).

그래서 대개 과거에는, 혹 지금도 사찰에 따라서는 여전히, 찾아오는 객승을 위한 사방승물(四方僧物)로서 음식, 의복, 약, 숙소를 제공하고 아울러 운수여비를 보시하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보시와 승보공양의 규범은 출가중의 실질적인 필요들에 부응하는 장치요 보장제도였으며, 동시에 출가중 상호 간에 승보(僧寶)의 예우와 신뢰와 지지를 상호보장하는 계기가 되어서, 독신수행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대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근래 조계종단이 승려복지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승보공양 동참’의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행여라도 그것이 재가중이 출가중을 위해 일방적으로 공양하는 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스님들이 다른 스님들을 공양하고 돌보는 데 누구보다 더 모범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승가의 기본정신이다.

재가자의 풍속으로도 제 살림이 곤궁에 처하면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을 하였듯이, 종래에는 출·재가를 막론하고 사찰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것이 불교승가의 공동체적 정신이고 문화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게 아름다운 전통이 일부 거짓되고 행색만 출가수행자인 사람들에 의해 종종 악용되어 사찰에 부담이 되고 소란을 일으킨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사례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방법은 종단적으로 지침을 세워서 막아나가면 될 소극적 측면이고, 여전히 수행자가 수행자를 공양하는 정신과 생활문화는 적극적으로 유지하고 보강해가야 할 불교승가의 유산이고 자산이라고 본다.

이쯤에서 필자가 좀 더 솔직히 말해야 할 것이 있다. 현대사회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폐해를 깨우쳐 불교를 포교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부처님의 교리를 이런저런 말씀으로 알리는 것보다도 승가 구성원들이 서로서로 염려하고 돌보며 제대로 불자답게 사는 모습을 그대로 이 시대의 모델로 보여주면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승가는 그것을 어느 정도로 잘할 수 있을까. 다시, 상대적으로 젊은 출가중의 첫 번째 근심거리인 거처 문제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교구별로 소속 스님이 비교적 많은 경우와 적은 경우가 있다.

훌륭한 수행법을 이어서 은사를 모시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형편이 좋은 수행처를 따라서 그렇게 모이기도 할 것이다. 하여간에 조계종이라는 큰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 아래서 사찰과 스님을 연결하는 데 더 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공식 등록된 사찰이 3,070개소라면 실제는 그 이상으로 많을 것이 틀림없다. 일단 조계종 스님이라면 조계종 사찰의 어디서든 생활할 수 있도록 무조건 허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하면 곧 예상되는 반응이 ‘절 살림이 어렵다’는 걱정일 것이다. 한국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와 인지도를 가진 조계종단의 어느 사찰이 출가중 너덧 명도 모여 살기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면, 아마도 그 절은 문을 닫아야 옳을 것 같다. 한편에서는, 새로 출가하려는 발심행자가 점점 줄어서 언젠가는 스님이 없어 빈 사찰들이 생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데, 또 한편에서는 출가중이 여하간에 대중과 더불어 살려고 하지 않고, 독살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들린다. 바로 그 점이 여기서 필자가 제기하는 두 번째 문제이다. 모름지기 출가수행자는 공동체 안에서 살면서 정기적으로 수행을 점검하게 되어 있다. 일정 시기에 별도의 장소에서 집단적으로 하는 안거와 포살, 자자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수행생활의 점검을 법답게 하려면 최소 4인의 갈마승(羯磨僧)이 있어야 한다. 출가수행 자체가 승가대중과 더불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찰이 크든 작든, 대중이 모여 살아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의 하나로 필자는, 부처님의 유훈을 담은 《대반열반경》에 특별히 ‘비구가 퇴보하지 않는 법’이라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비구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이는 한, 비구들이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승가의 업무를 보는 한……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온 학습계목들을 준수하고 있는 한…… 승가의 아버지요 승가의 지도자인 구참(舊參)이요 출가한 지 오래된 장로비구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기는 한…… 비구들이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갈애가 생겼더라도 그것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비구들이 숲속의 거처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비구들이 개인적으로 각각 마음챙김을 확립해서 아직 오지 않은 좋은 동료수행자들은 오게 하고, 이미 온 좋은 동료 수행자들은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는 한, 비구들은 퇴보하는 일이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된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오늘날은 새삼스럽게 경율문을 인용하면서까지 재확인해야 할 상황이 된 것 같아서 난감하다. 승가공동체 안의 수행의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가끔 속가 형태의 거처에서 혼자 사는 스님들에 대한 우려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대중이 있는 사찰에서 그 스님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택한 거처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출가수행자다운 선택은 아니다. 간혹 일반 학교에서 수학하거나 기타의 사정 때문에 스님들이 단기간의 독살이를 택하는 경우라면, 절차를 밟으면 양해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종단이 노스님들을 위한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승가의 어떤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자생적으로, 사찰과 속가의 중간쯤 되는 형태의 생활공간들이 생겨났다. 소위 노인복지 분야의 실버타운이나 그룹홈 형태의 출가수행자 처소들인데, 거기에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점이 있다.

조사보고에 의하면, 요양 서비스가 필요할 만큼 신체적으로 심각하게 불편한 단계가 아님에도, 스님들 개개인이 수천만 원씩 하는 보증금을 내면서 사중(寺衆)을 떠나 생활하고 있다. 물론, 스님들이 많이 모여 생활하기 때문에 법당도 잘 갖추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 안의 생활이 사찰에서와같이 규율과 정진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불교수행자에게도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처럼 ‘퇴직’ ‘은퇴’의 개념이 있는 것인가. 퇴직이란 일정한 소임이나 보직으로부터 물러남을 뜻하는 것이므로, ‘평생수행’이어야 하는 불자로서 은퇴라는 개념이 적절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보면, 스님은 출가생활을 중단하고 재가로 환속하기 전까지는 사중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가 없다. 어쩌다 어떤 사찰이 어떤 이유로 스님들을 기꺼이 환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님이 사찰을 떠나 있으면 안 된다. 일련의 상황들이 더 악화되기 전에, 종단 행정가들은 모든 스님이 산하 사찰에서 거리낌 없이 거주하며 수행할 수 있도록 승가공동체다운 방도를 마련해내야만 한다.
 
2) 수행생활 기초보장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앞에서 필자는 현재 조계종 스님들이 염려하는 ‘거처 불안정’ 문제를 원론적으로 짚어보았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찰이나 특정시설을 더 많이 지어야 수행자의 거처가 안정될 것으로 보는 대신에, 승가 안에서도 ‘공정 분배’ 혹은 ‘평등 공양’이 우선 그 해결책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 사찰재정이 투명하지 않은 데다 엄밀한 조사를 거치지 않아서 필자의 주관적인 추정이지만, 현재의 승가가 총체적으로는 심각하게 빈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 정밀하지 않은 통계였지만 10년 전 조계종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분석결과, 응답자들이 평균적으로 기대한 매월 보시금의 수준보다 실제로 받은 보시금의 평균액이 더 많았다. 그것은 스님들이 받은 보시금액의 편차가 크고, 총체적으로는 스님들의 기대수요를 상회할 만한 금액이 승가에 보시되고 있다는 의미로 추정해볼 수 있는 결과였다. 이런 편차가 기정사실이라면 종무행정가들은, 특정한 대상자(處)들에 쏠려 있는 정재(淨財)를 여법하게 관리해서 승보를 평등하게 공양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다.

거처 문제와 더불어 생활비와 질병 치료비를 걱정하는 출가중으로 돌아와서 논의를 계속하자. 출가중의 수행생활을 보장할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최근 조계종 승려복지법의 규정에 의해서 ‘승려복지회’라는 별도기구가 신설되었고, 그 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체로 교구들이 각각의 본·말사에 소속된 출가중의 수행생활을 90% 정도 책임지게 되어 있다. 나머지 10%는 중앙종단이나 스님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행정적인 책임분담이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논할 생각은 없고, 승가의 원칙상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물론, 아무리 부처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해도 당장 그대로 이행하기 쉬운 사안이라고 볼 만큼 필자가 순진하지는 않다. 예컨대, 스님들이 거처를 정하고자 할 때도 스스로 지역적 선호가 있을 것이고, 사찰의 생활 여건상 차이가 문제 될 수 있고, 소속된 문중 간의 거리가 문제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스님이 스님을 우선 존중하고 무조건 돌보는 것이 출가승가의 원칙이요 승보공양의 출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불교계의 노령화를 지적하였고, 조계종의 승려복지 모형설계에서도 노스님의 비율이 너무 높아 13%나 된다(2009년 12월 기준)고 걱정하였다. 당시 일반사회의 노령인구비는 11% 선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조계종 집단이 더 노령화되어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노령인구의 단순비율보다도 문제는 노인에 대한 부양비중이다. 소위 15세~64세 미만의 생산가능 인구에 비교해서 노년인구의 비중이 얼마인가 하는 것이다. 2012년 현재 조계종은 대략 스님 100명당 부양할 노스님이 15명이고(=65세 이상 노스님 수/64세 미만 스님 수×100), 일반사회는 생산가능 인구 100명당 부양할 노인이 16명으로, 조계종단 내 부양비중이 오히려 더 낮은 편이다. 게다가 일반사회의 속인들은 노인부양뿐만 아니라 유소년(0~14세)부양도 사회적 책임으로 나눠서 지고 있어서, 합하면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총 36.5명을 부양할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 세간의 상황을 알고 보면 불교수행자로서 수행공동체의 도반을 서로 배려하고 부양할 책임에 대해서, 소위 속인들이 부담하는 것보다 더 과중하게 느끼고, 그 책임을 회피한다면 곤란할 것 같다.

‘승려노후복지’가 행정적 과업의 우선순위로 대두되는데, 고작 1,900명 이내의 노스님 중 요양과 간병이 실제로 필요한 분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지도 않은 채 요양시설 건립 등이 언급된다. 그런 방향으로 외모(外貌)를 만들기에 앞서서, 예를 들자면,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학과 졸업생 스님들이 노스님들의 유사시에 물리적으로 부양할 용의와 책임감을 보여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 노력을 포함해서 스님 100명이 15명의 노스님을 부양하느라 지극히 애쓰는 모습을 재가중이 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한량없는 존경심으로 승보를 공양할 것이다. 그 100명의 출가중에 100명 혹은 200명 등의 재가중이 마음을 보태어, 승가공동체는 수행자의 존엄성을 보장하면서 아름답게 굴러가리라 믿는다. 불자로서 우리는 승가가 이기적인 세간을 향해서 인류에 모범적인 공동체가 될 것을 기대한다. 그 점에서는 종단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찰운영의 책임 여부에 상관없이 명색이 수행자라면 누구든지 다시 한 번 부처님의 법대로 자신의 수행생활을 점검해봐야 한다.

5. 맺음말

불교종단이란 ‘수행공동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복지’와 달리 수행의 성취에 가치를 두는 출가중의 기대와 평가를 반영할 지표들이 필요하다. 그에 관해서는 사실 누구도 출가중에게 제대로 물어 확인한 적도 없는 것이 아닌가. 세속적 잣대로 출가수행의 외형만 헤아리는 것이 요즘의 ‘승려복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필자는 몇 가지 원색적인 제안을 하면서 맺음말을 삼으려고 한다.

첫째, 사중에 스님이 4명도 되지 않는 사찰은 그 용도를 변경하거나 폐쇄하면 어떤가. 그 사물을 부동산으로 처분하고 무진재(無盡財)로 삼아서 출가중의 수행생활 보장기금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둘째, 노인을 쓸모없게 보거나 별도로 취급하는 것은 오늘날 터무니없이 경쟁적인 세속의 관점이다. 승가는 오히려 노스님을 가까이 모시면서 생로병사의 살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노스님을 뒤로 멀리 감추려는 작업보다 앞에 모시고 공경하는 과업에 힘쓰기 바란다.

셋째, 사찰이 허물어진다고 불교의 맥이 끊길 리야 없겠지만, 법사(法嗣)가 흐트러지면 바로잡기가 쉽지 않을 터이므로, 종단은 무엇보다 앞서서 수행자들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수행에 매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산중에 이름 없는 수행자가 혹여 병이 들어서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없을까, 모름지기 종무 책임자들은 널리 염려하는 마음으로 살피고 쓸데없는 호사와 낭비를 삼가야 한다. 넷째, 재가중은 출가중으로부터 법(法)공양을 받고, 대신에 재(財)공양을 드릴 책임이 있다. 자신이 가깝게 인연 지은 스님에게만 공양하지 말고, 항상 스님대중에게 공양하는 마음으로 보시해야 한다. ■

 

이혜숙 / 금강대 응용불교학과 객원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학과 철학박사.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박사 수료.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사회복지사협회 국제교류위원 등 역임. 저서로 《종교사회복지(편저)》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운동(공저)》 역서로 《불교사회복지학》 등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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