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1학기가 끝나는 여름방학식 날이었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성적표를 나눠 주었다. 나의 성적표엔 ‘수’가 없었다. ‘우’ 몇 개와 ‘미’ 몇 개, 그리고 없던 ‘양’도 하나 보였다. 그동안의 성적표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날의 성적은 너무 초라했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왠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식에게 부모란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길목’ 같다. 존재 자체가 들고 있는 회초리이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민’이란 걸 했던 것 같다.
나는 성적표를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우’ 몇 개를 ‘수’ 몇 개로 고쳤다. 그때는 그럴 수 있었다. 작게 써진 ‘우’의 ‘ㅇ’ 위에 ‘ㅅ’을 얹어 ‘수’를 만들었다. 어머니에게 성적표를 내밀었을 때, 가슴은 터질 것 같았고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성적표를 훑어보신 어머니는 칭찬도 꾸중도 없는 얼굴로 “양은 없었잖아…….” 하셨다. 그런대로 용서의 범위에 들어간 것 같았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성적표를 보였다. “없던 양이 있네.” 아버지도 그 한 말씀으로 성적표를 접었다. “좀 더 정신 차리고 해.”
잠이 오질 않았다. 무사히 넘어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성적표를 받았을 때보다 더 많은 걱정이 나를 괴롭혔다. 지옥이었다. 성적표를 받았을 때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열어 놓은 창문 너머에서 풀벌레가 울었다. 나는 울었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난생처음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관세음보살.” 나도 모르게 평소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불렀다. 그 밤에 내가 기댈 것은 뜻도 모르는 어머니의 ‘관세음보살’뿐이었다.
어머니에겐 공책이 한 권 있었다. 그 공책은 바를 ‘正’ 자를 써나가는 공책이었는데, ‘正’ 자 한 획은 관세음보살 108번이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긴 염주를 한 바퀴 돌리고 나면 어머니는 바를 ‘正’ 자 한 획을 쓰셨다. 그렇게 해서 쓰인 ‘正’ 자가 공책에 빽빽했었다. 어머니는 힘든 일이 있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특히 ‘正’ 자를 많이 쓰셨던 것 같다. 나는 그때 관세음보살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벽 늦게까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하루는 너무나 길었다.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공책을 펴놓으시고 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고 계셨다. 다시 밤이 오고, 다시 잠은 오질 않았다. 또 새벽 늦게까지 관세음보살을 부르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지옥이었다.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다. 여름방학을 이렇게 계속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잠이 들었을 때, 나는 일어나 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지옥에서 나가고 싶었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성적표를 꺼내 들고 조용히 안방 문을 열었다. 주무시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잠든 어머니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혼자 울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두운 방에서 나는 울었다. 그토록 무섭고 두려운 밤은 없었다. 한참을 울고 있을 때, 뒤척이던 어머니가 나를 보셨다. 어둠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는 일어나 앉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셨다. 어머니는 울고 있는 나의 손을 잡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내 손에 들려진 성적표를 본 어머니는 내 손을 다시 꼭 잡고 나를 보았다. 나는 말 없는 눈과 눈이, 마주 잡은 손과 손이 그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때 알았다.
“엄마…….” 어머니는 당신의 눈물로 아들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알았다. 아침에 얘기하자.” 나는 지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상을 물리고 어머니와 앉았다. “관세음보살.”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불렀고 나는 목멘 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이제 안 그럴게요.” “그래, 알았다.” 성적표를 손에 들고 계시던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성적표가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방학식 다음 날 엄마가 학교에 다녀왔었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며칠 못 잤다.” 어머니도 며칠 동안 지옥에 계셨던 것이다. 일주일 동안 어머니의 공책에 바를 ‘正’ 자가 꽤 많이 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네가 먼저 얘기해줘서. 엄마의 걱정은 네가 끝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 주길 바라면서 며칠 밤을 보냈다. 이제 네가 먼저 이야기했으니 엄마는 괜찮다. 선생님도 따로 말씀하지 않으실 거다.”
나는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눈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20여 년이 흐른 뒤, 불교계 신문사에 근무하게 되면서 관세음보살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알았을 때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관세음보살은 듣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 어머니와 나는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찾았고, 어머니와 나는 지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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