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는 17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불교는 한국 역사의 오랜 전개과정에서 한국인의 심성과 가치관 형성에 크나큰 역할을 담당했고 현세의 복락은 물론 내세의 평안에 대한 절박한 염원을 해소해 주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불교는 개신교, 천주교에 비해 종교적 지분, 사회적 위상 면에서 열세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새로운 동력을 찾는 일 또한 쉽지 않은 현실이다. 전통종교, 민족종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기득권도 근현대 역사의 굴곡 속에서 상당 부분 잃어버렸고, 전통은 유교, 근대는 기독교라는 상식적 구도하에 불교의 위상이 크게 추락한 지 오래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벌어진 전통, 민족, 서구 종교의 각축장 속에서 불교는 민족주의나 호국의 발현보다 근대적 문명개화와 호교를 위해 매진하였고, 철학과 종교가 결합된 근대성의 탐색에서 불교의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사찰령과 같은 식민지 체제의 정치적 종속을 겪으면서 결국 남게 된 것은 근대화, 대중화로 포장된 식민지 유산의 잔재와 친일의 전력이었다. 해방 이후 민족불교의 화려한 탄생이 기대되었지만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기독교 편향정책과 미국을 배후로 한 개신교의 복음주의 세례 속에서 전통불교는 더욱 위축되었다. 또한 친일잔재의 청산과 청정수행 전통의 회복이라는 기치하에 일어난 불교정화는 그 상징성과 떳떳한 역사적 명분에도, 그 이면에는 교학과 의례 등 오랜 불교전통의 단절과 인적 수준의 저하가 초래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계는 1970~80년대에 정치권력과의 타협과 1980년의 법난을 동시에 경험하였고 종권과 사찰 운영을 둘러싼 각종 폭력사태로 언론을 도배하기도 하였다. 한편 한국사회의 민주화 성취와 궤를 같이하여 1994년에 개혁불사가 단행되었고 이후 기존의 구태를 벗어나 사회, 대중과 함께하는 개혁적 민족종교로 거듭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한국불교는 수많은 격변을 경험하였고 개악이 아닌 개선의 길로 한 걸음씩 전진해 왔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책임은 무거운 상태이다.
2,50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을 인류와 함께해 온 불교는 세계종교이기도 하지만 방대한 철학적 사상체계이고 또한 붓다 이후 수많은 시대와 다양한 지역을 거치면서 성립된 다문화적 문명복합체이다. 그렇기에 불교를 배우는 길은 신앙과 수행, 가치의 실천과 아울러 사상과 역사, 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 포함된다. 한편 한국사의 전체 흐름에서 볼 때 불교는 토속신앙과 고대적 관념의 절충, 극복을 통해 개인의 심성과 내세 문제에 관한 보편적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대를 디자인하는 큰 역할을 하였다. 자연의 법칙성과 도덕을 결합시킨 사회윤리이자 정치이념인 성리학, 서양에서 창출된 근대의 합리적 이성과 제도 및 과학문명이 미친 영향과 마찬가지로, 불교 또한 한국사가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던 것이다. 현재에도 불교는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 세계에서 전근대와 근대의 접점 찾기, 탈근대의 가치 모색, 인간과 문명의 21세기적 비전을 찾는 데에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다만 전통의 부활과 미래가치의 생성은 관습의 복고나 막연한 기대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탈주체적 해체가 내재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서양철학이 근대에 들어 우월한 보편적 지위와 권력을 획득한 것도 오랜 세월 이어진 철저한 자기부정과 해체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점에서 불교의 온전한 재활을 위해서는 반전통, 반불교의 뼈를 깎는 성찰과 치열한 자기투쟁이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한 당위적 대안으로서 동양주의나 배타적으로 불교의 우월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불교의 정신과도 맞지 않으며 무책임하게 관념적 허상만 키울 뿐이다. 
다행히도 불교는 무아와 연기를 핵심 개념으로 성립되었고 무자성과 공, 인과론적 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철학적 코드와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치유할 수 있는 종교적 보편성을 담보해왔다. 더욱이 최근에는 서구에서 과학으로서의 마음(무자아)과 경험으로서의 마음(인간존재에 대한 믿음) 사이에 놓인 괴리와 고뇌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적, 실천적 가치체계로서 불교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또한 환경 및 생태 문제, 자연과학적 시공간 관념 등에 불교의 이념과 교리를 접목시키거나 상호 유사성을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지친 개인의 심신을 치유하기 위한 명상심리와 실천수행 분야에서도 불교는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는 아시아의 구태의연한 전통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시대에 적합한 세계주의적 보편성과 포스트모던의 미래적 가치를 담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불교의 장래는 밝으며 나아가야 할 길 또한 매우 분명하다. 첫째, 불교 본연의 가치인 평등주의와 평화주의, 공동체주의와 이타주의를 성찰적으로 자각해야 한다. 둘째, 교육과 포교, 재정운영과 사회복지, 장례의식과 사후관념 등 불교가 직면하고 있는 현안 문제에서 일반의 상식에 부합하는 수준의 공익성과 소통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한국사회와 한국인, 한 걸음 나아가 아시아인과 세계인에게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상생의 가치와 미래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불교는 마음(정신과 몸)의 치유와 실천, 이타적 가치와 공동체적 삶의 추구, 비폭력과 평화, 호혜적 공조와 공생 등 많은 영역에서 한민족과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며 현실종교로서 또한 보편적 가치체계이자 지속가능한 문화코드로서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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