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기원정사에서 한 달

새벽 다섯 시, 광풍이 섬을 휘저으니 요사채가 들썩이고, 문 틈새를 비집어드는 바람소리는 여자의 비명처럼 날카롭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섬 자락에는 하늘이 걸리고 바다가 일어선다. 이 작은 섬에서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 평화롭고 예쁜, 작은 섬 같았던 여인 세희. 그녀의 운명도 그랬다. 어느 날 태풍이 호되게 몰아친다. 어린 가슴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회오리를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처참하게 생매장을 당한다. 세월이 이 여인의 흔적을 지워나갈 때, 홀연히, 그녀는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 ‘자신의 섬’을 되찾기 위해, 하늘을 가르는 위력으로 회한의 복수를 시작하기 위해서.

세희는 내 소설 〈파란 비 속으로〉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민주화 이전의 시대에 의문사를 당한다. 세희의 운명을 추적하는 것이 이 소설의 기둥 줄거리이다. 〈파란 비 속으로〉에는 불교와 기독교가 ‘해탈’과 ‘구원’이라는 메시지로 하나가 되어 엮이는 대목이 있다. 나는 기독교, 불교, 토속신앙까지 섭렵해 글을 퇴고해야 할 처지였다. 마침 마라도의 기원정사에서 창작스튜디오를 개설하여 문인들에게 개방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 달 동안, 기원정사는 기꺼이 나의 소설을 마무리 지을 유배지가 되어주었다.

마라도는 접시 모양의 작은 섬이다. 동쪽은 해발 39미터의 절벽이 심해에서 우뚝 고개를 들고, 차츰 서쪽으로 빗겨 내리는 평지라서 해풍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지형이다. 기원정사는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경내 초입에는 해수관음 석상이 우뚝 서 있고, 대웅전 앞에는 아담한 해수관음 청동상이 있다. 기원정사는 20여 년 전 일붕 서경보 스님이 남북통일 발원을 기원하며 건립하였고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에 소속되어 있다. 경전에는 ‘국토의 최남단에는 해수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기록도 있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 마라도가 가지는 상징성을 발현하고자 기원정사(주지 석혜진)는 해수관음 상주 도량으로서뿐만 아니라 평화의 섬 역할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갤러리를 열어 매년 작가 초대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문인들에게는 문학적인 공간을 제공해 마라도에 문화의 향기를 심고 있다. 나는 마라도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첫 문인이 되었다.

기원정사 요사채에 문인 다섯 명이 모여들었다. 방마다 제주 고유의 지명을 붙였는데, 내 방에는 ‘왕이눈’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아침 예불시간에 맞추어 산책을 나설 땐 자잘한 파도로 길동무를 삼는다. 40분 만에 섬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면 글과 씨름이 시작된다. 우리는 발자국 소리도 조심스럽게 서로를 배려하며 창작에 몰입한다. 눈을 들면 창틀 밖에 파릇한 잔디가,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수평선이 평화롭다. 관광객이 경내를 돌아보면서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린 영락없는 유배자다.

‘나무 관세음보살’과 ‘나무아미타불’을 구분하지 못하는 내게 혜진 스님은 큰 도움을 주셨다. 특히 내 소설 속에서 천도재를 올바르게 풀어낼 수 있도록 이 사찰에 모셔져 있는 영가의 천도재에 직접 참관, 함께 축원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소설 속 여인의 아린 운명을 놓고 한 달간 가슴앓이를 했다. 떠도는 영가가 유난히 많다는 마라도, 그 아픈 영혼들을 보듬는 기원정사. 세희의 영혼도 이곳에서 안식한다면 좋으리라.

그런데 태풍 ‘무이파’가 마라도를 지워버릴 기세로 덮쳐오고 있었다. 그날, 파도 높이가 9미터로 전조를 보일 때, 태풍이 오면 지금의 두 배는 될 거라는 말에 두려움보다는 왠지 소년 같은 설렘이 앞섰다. 이제 그 설렘에 이끌려 태풍 무이파를 온몸으로 맞는 것이다. 새벽부터 비바람이 요사채를 마구 후렸다. 아침이 밝자 바다에 접한 소법당으로 비바람을 뚫고 내달린다. 법당의 창틀 안에서 바다를 휘젓고 있는 거대한 무이파의 몸짓을 확인할 참이다.

창밖의 아침바다는 말 그대로 난장이다! 강한 바람에 실린 빗줄기는 비수로 난분분하고, 무게를 못 이긴 먹장구름은 바다를 갈라 섞여든다. 먼바다가 서서히 일어나 섬 앞바다를 빨아들이면서 웅장한 물 벽으로 융기한다. 바다가 송두리째 들리고 있다! 누가 파도를 인생에 비유하는가.

무이파는 사흘 밤낮을 요동치면서 바닷속 퇴적물을 송두리째 되돌려놓는다. 섬을 둘러싼 검은 현무암에는 바닷속에서 되돌려진 잡살뱅이들과 스티로폼이 끝도 없이 피어나 하얀 ‘꽃섬’이 된다. 꽃섬이지만 슬픈 얼굴을 가진 ‘세희의 섬’. 그러나 산더미 파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수관음상은 여전히 미소를 짓는다. 마치 고층빌딩과 함께 함몰되면서 끝까지 미소를 머금었던 여인, 세희 처럼! 무이파는 결국 떠날 것이고, 섬은 다시 관광객을 맞는 짜장면집과 함께 평온한 일상을 맞을 것이다. 태풍을 다스려 섬을 지키는 이 누구일까. 나는 이곳에서 소설 다듬기를 거듭했으나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대자연의 숨결 앞에서 나는 너무 왜소했고, 이후 글이 되질 않았다.

모진 풍파를 다 받아내면서도 자연의 순리대로 존재하는 동화 같은 섬. 내가 또 이런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날이 있을까. 생에 마지막 기회였을 그 기간을 난 정녕 살리지 못한 채 자발적인 유배를 마감한다. 해수관음보살의 따스한 품안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섬, 마라도. 상처 위에 핀 꽃섬이 아니라 진정 아름다운 꽃섬으로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점점 멀어져가는 해수관음상의 얼굴에 세희의 미소가 피어나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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