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방학을 맞아 금년 2월 말까지 미얀마(버마)에서 약 82일간 있다가 왔다. 7박 8일은 주요 불교유적지를 답사하고 약 75일간은 잘 알려진 몇몇 위빠사나 선원에 머물렀다. 미얀마는 불교국 가운데에서도 불교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필자는 인도에서 9년 동안 동북아시아는 물론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부터 유학 온 스님들과 함께 공부한 바 있다. 인도불교 연구 가운데에서도 초기불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자연히 초기불교전통의 상좌부(Ther-avada) 불교권인 스리랑카와 동남아 스님들과 많이 접촉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미얀마 스님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미얀마 스님들의 해박한 빨리 경전 지식과 지계(持戒)의 삶이 감동을 주었다. 때문에 나름 미얀마 스님들을 통해 미얀마불교를 그런대로 안다고 자부하였다.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인도에서 미얀마 스님들을 통해서 알았던 미얀마불교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 가운데 매우 인상적인 불교전통 가운데 하나는 탁발 문화였다. 직접 참여하여 체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여러 가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양곤의 마하시 선원, 모든 대중이 새벽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좌선과 경행을 한다. 이후 아침공양을 기다리는 행렬은 법랍순으로 출가 스님들이 그리고 재가자가 그 뒤를 따른다. 스님들은 여섯 시 이전에 공양을 마치고 곧바로 가사를 수지하고 발우를 가슴에 안고 맨발로 길게 줄을 맞추어 선다. 탁발을 위해서다. 70~80명의 스님이 100m에서 150m 정도로 밤색 가사 장삼을 두르고 고정된 시선과 침묵을 지키며 단정하게 서 있다. 이는 보는 것만으로 장엄하다. 출발에 앞서 감독 스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위의를 점검하는 일이 끝나면 모두 합장정례로 독경한 후 떠난다. 탁발행렬은 먼동이 틀 무렵 얕은 어둠을 가르고 일주문을 지나 미끄러지듯 민가로 내려간다. 이때 일주문을 벗어나면 언제나처럼 하늘에서는 온갖 새들이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지저귄다. 많은 이들이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지켜본다. 기품이 흐르는 가사에 발우를 가슴에 안은 채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킨 채 일렬로 걸어가는 탁발 행렬은 보는 것만으로도 장중하다. 신심과 환희심이 일어난다.

탁발 행렬이 어찌나 장엄해서인지, 외국인 누구도 감히 뒤따라 함께해 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지도 물어보지도 못한다. 며칠 동안은 먼발치로 구경만 하다가 드디어 하루는 용기를 내어 따라가 보았다. 다녀온 후 한국 스님들과 외국인 수행자들이 나에게 제지하지 않더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탁발 행렬의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따라다니다 언제부터인가는 중간과 앞을 다니면서 탁발의 전모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탁발은 약 한 시간가량 소요된다. 탁발의 동선은 매일 거의 같았지만 특별히 시장통과 다른 곳으로 향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 장소가 이미 알려져 있어 공양을 올리는 재가자들 또한 탁발 대열이 지나는 도로변에 대기하고 있다. 보시를 올리는 재가자는 공손한 자세로 언제나처럼 신발을 벗고 주걱으로 쌀밥을 한 스님 한 스님에 정성스럽게 배분하고 모두 지나갈 때까지 바라보며 합장하고 서 있다.

또 어떤 이는 곧바로 땅바닥에 엎드려 떠나가는 탁발 행렬에 삼배를 올린다. 발우에 주로 쌀밥을 올리지만 반찬과 찌개류는 스님들을 따르는 재가자인 정인(淨人, kappiyākaraka)이 큰 그릇을 가지고 뒤따르며 받는다. 어느 집 앞에서는 밥이 아닌 쟁반에 물 한 잔씩의 공양을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스님들은 보시물을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다. 대열의 선두에 있는 스님이 재가자의 보시물을 가볍게 접촉하는 의식을 치른 후라야 차례로 올리고 받을 수 있다.

이는 원래 재가자에 의한 공양물만을 들게 되어 있는 율 조항 때문이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출가자는 재가자 없이는 음식을 들 수가 없다. 이는 항상 출가자는 재가자와 함께하도록 한 붓다의 장치가 바로 원래 불교의 탁발문화인 것이다.

탁발로 수거된 음식물은 점심공양으로 선원의 수행자나 정인들에게 평등하게 재분배된다. 그리고 보시자들 또한 이를 안다. 왜냐하면, 탁발하는 중간마다 절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가 밥과 과일 또는 다른 보시물을 큰 용기로 모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들의 편의를 위해 보시물을 한꺼번에 선원으로 배달하지는 않는다. 모든 스님에게 똑같이 차례차례 배분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쌀밥의 경우 한 스님 한 스님의 발우에 덜어 담아 드린다. 마찬가지로 바나나 등과 같은 과일 한 조각씩, 한 봉지의 커피믹스, 한두 개의 초콜릿, 몇 조각의 비스킷 등이 한 스님 한 스님의 발우에 올려진다. 어느 경우에는 소화제와 같은 약품도 보시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약국을 하는 집에서 작은 약병을 차로 가지고 와서 차례차례 올린다. 음식을 올릴 수 없는 사람은 한 묶음의 지폐를 준비해 와서 음식 대신 한 장 한 장 발우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돈을 바로 올리는 모습은 드물게 볼 수 있다. 정인이 따르는 시장통의 탁발인 경우 정인이 유리로 된 발우에 돈을 바로 수거해 버린다. 정인에 의해 사찰 운영에 쓰인다 한다. 원래 계율상 스님들이 직접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돈과 재무에 관한 사찰 운영은 재가자로 구성된 고파카(Gopaka)라는 사찰운영위원회에서 담당한다. 불교의 출발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정한 정인 제도의 연장이다. 

매일 이루어지는 공양물의 종류와 내용은 대부분 그날그날 소비할 수 있는 조리된 음식과 과일 그리고 생필품인 경우가 많다. 축적이 가능한 보시물은 계율에서 인정하고 있는 약품과 같은 것이다. 가끔 한 번씩 시장통의 탁발은 보통 때와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모두 자신이 취급하고 있는 물품의 한 봉지, 한 묶음씩을 성의껏 올린다. 예를 들면, 계란장수는 계란을 하나씩 봉지에 담아 올리고, 어떤 가게는 비스킷 몇 봉지나 사탕 몇 개, 라면 몇 봉 그리고 커피믹스 몇 봉지나 몇 다발씩을, 그리고 약국은 간단한 상비약을, 과일장수는 사과 서너 개나 바나나 한 묶음을, 곡물 가게는 쌀 한 바가지를 올린다.

또한 서민이 이용하는 미얀마의 시장통에는 각 가정의 불단에 꽃을 올리기 때문에 꽃 가게가 많은데 꽃장수는 장미나 국화 등의 꽃 몇 송이를, 건어물 가게는 생선 말린 것 한 묶음 따위를 올린다. 그날 소비할 수 있는 정도만을 보시한다. 이러한 시장 사람들의 소박한 보시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작은 것에 감동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빠옥 선원에서는 한국 스님들과 함께 마을로 내려가 탁발하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7~8명의 한국 스님들과 탁발을 마치고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스님들께 한국에서 마을로 내려가 탁발을 해 보신 적이 있었느냐 물으니 모두 없다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탁발은 너무나 신심 나는 일이라 한다. 한 스님은 “미얀마 스님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라고 한다. 왜냐하면 매일 지극 정성의 공양물을 받게 되는 이유로 마음 자세가 흐트러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빠옥 선원에서만 7년 이상 수행하고 있는 한국 스님은 “어린이들의 고사리 손으로부터 보시를 받게 될 때마다 어깨가 천근만근 무거워져요. 허튼 생각을 일으킬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또한 어느 스님은 미얀마 선원에 오랫동안 머물지만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은 300~400명, 많게는 700~800명 이상의 대중이 모여 수행하는데도 어디에서도 큰 소리가 나오지 않고 언제나 온화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한다. 그야말로 화합중(和合衆)이란다. 그러한 이유로는 탁발문화로 인해 스님들이 ‘얻어먹으며 수행하고 있다는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 저절로 겸허한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한다.

이후 내내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나라도 금지했던 탁발 행사를 복원하거나 부활해 보는 방안을 말이다. 매일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한 달에 초하루나 보름 또는 육재일에 집단적으로 하되, 큰 절은 사하촌 가게들을 시작으로 점차 주변 마을별로 확대해 나가는 방법을, 그리고 도회지에서는 지역 사암연합회에서 아파트 단지별로 또는 동(洞)이나 구(區)별로 시행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때 사적인 개인 탁발은 기존처럼 엄격하게 금지하고 집단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인 탁발 방식이면 괜찮을 것 같다. 축적 가능한 물건이나 현금은 받지 않고 그날그날 소비할 수 있는 생필품과 조리된 음식만을 받는 율 조항 정신을 이행한다면……. 이를 통해 일반사회와 불교의 유기적인 관계를 좀 더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출가를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 사부대중이 모두 신앙공동체 또는 수행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장이 될 것이다!

서울의 경우 한 달에 몇 번이라도 그날 모인 음식물(밥, 떡, 빵, 과자, 사탕 등)을 서울역 광장이나 시청 앞 등의 광장에서 장엄한 대중공양의 장을 연다면 어떨까. 한쪽에서는 스님들이 줄 맞추어 발우공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루 한 끼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노숙자나 거지 등 누구라도 함께 밥을 나눌 수 있다면! 이렇게 대중공양의 밥회(?)가 법회로 나아가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최근 들어 한국불교의 문제점과 개혁안이 여러 측면에서 한층 더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탁발 문화의 복원은 불교 본래의 건강한 생명력과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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