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그동안 건강하게 잘 계시는지요?

지난번 불국사에서 뵈온 그날, 스님께서 주신 크림빛의 이쁜 염주 팔찌, 고마웠습니다. 제 손목에 감아주시던 따스한 그 마음도 오래가겠지요. 그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겐 거짓말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당신 건강 좋아지라고 이 선물 주더라!”고요. 아내 손목에 그 크림빛 염주를 감아줬죠. 순간, 아내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표정으로 바뀌더군요. 그러면서 “나는 무슨 선물을 스님께 해야 하죠?”라고 묻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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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불국사는 언제 보아도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신비한 공간입니다. 천년의 신비가 아직도 숨 쉬고 있어요. 자연과 인공이 딱 물린 아름다운 석축뿐만이 아니고, 관음전 뒤뜰의 시리도록 청신한 고요도 좋고, 불국사의 아름드리 오래된 소나무, 느티나무들도 나를 황홀하게 합니다. 신비 속의 아름다운 숲, 그리고 ‘금강경 오가해’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자 덕민 스님! 스님이 계시니까 불국사는 저에겐 ‘황홀 플러스’입니다.

저는 불국사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과 느티나무 숲과 덕민 스님과 스님의 소쩍새를 사랑합니다. 초등학생들처럼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푸르게 푸르게 숨을 쉬고 있는 불국사의 나무들. 신성한 시편들입니다.

스님을 방문할 때, 저는 일주문 뒤편, 낙엽이 수북이 깔린 호젓한 길을 걸어서, 청운교 앞 늙은 소나무 숲을 지나서, 강원 쪽으로 갑니다.

그 오래된 나무들은 불국사의 낮과 밤을, 비와 서리를, 햇빛과 폭풍을, 천천히 흘러가는 토함산 산안개들을 오래오래 봤겠지요.

나무들이 들려주는 불국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만일 타임머신을 탈 수 있다면, 김대성이란 신라의 위대한 인물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를 만나 불국사 건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꼭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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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민 스님, 스님께선 언젠가 제게 ‘석굴암 소쩍새’ 얘기를 했었지요.

석굴암의 산사에 계실 때, 새끼 소쩍새 한 마릴 정성스레 키운 얘기를 했지요. 이놈이 나중에 성장해서 달 밝은 밤이면 스님이 이사 온 불국사, 창가에까지 날아와 오래오래 운다고 하셨지요. 그 소쩍새와의 아름다운 인연 이야기를 하셨지요.

스님, 소쩍새와의 특별한 경험은 저에게 신선한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소쩍새 한 마리의 존재감이 새롭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토함산 산사의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선방을 나와 소쩍새를 만나러 가는 스님의 발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그 소쩍새에게 먹이를 주며 대화를 나누는 스님의 인간적인 모습도 떠오릅니다. 새와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니까 새와 인간도 결국 한 통속이 맞겠죠, 스님?

저도 새를 좋아합니다. 제가 사는 시골, 경주 배반동 누옥 ‘고원재’(한옥)에, 작년까지만 해도 밤마다 가슴이 붉은 딱새 한 마리가 투숙객으로 왔었지요. 주인 허락도 없이 숙박비도 내지 않고, 자고, 새벽이면 몰래 어디론가 날아가곤 했어요.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또 고원재 처마 밑으로 도둑같이 돌아와, 누옥의 천장 한구석에서 몸을 쉬었다가 가는 아주 묘한 놈이었어요.

새 한 마리가 나와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잔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푸근해 왔지요. 그 딱새가 밟고 온 달콤한 새똥 냄새와 풀 냄새, 바람 냄새까지 집안에 풍기는 것 같고…… 하여튼 마음 한구석이 따뜻했습니다. 그놈이 방바닥에 흰 똥을 갈겨 놓고 가기는 해도.

나는 또 엉뚱한 생각도 했지요. 저 새가 혹시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의 외로운 영혼이 아닐까? 그래서 내 누추한 집에 찾아오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서 늘 조심스레 밤마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몇 달 뒤, 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요즘도 나는 놈을 기다리지만 감감무소식입니다. 지금도 참 궁금합니다.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 왜 안 오는지…… 사랑하는 친구를 만났는지…… 죽었는지…….
덕민 스님, 소쩍새와 스님! 소쩍새와 스님의 만남은 고독한 영혼끼리의 아름다운 만남이겠지요. 얼마나 스님을 그리워했으면 불국사 스님 방까지 찾아왔겠어요.

말도 못하는 그 소쩍새 한 마리!(스님은 그놈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셨지요?) 울음만 들어도 안다고 하셨지요? “초저녁에 우는 소쩍새는 달이 하도 밝으니까 놀래서 울고, 새벽녘의 소쩍새는 지쳐서 힘이 빠져 슬프게 탄식한다”고 하신 그 말씀,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은 그 소쩍새, 죽었는지 병들었는지 보이지 않고, 대신 뻐꾸기란 놈이 창가에 찾아온다고 하셨지요.

박용래 시인의 시처럼 요즘 시골집 주위에서 뻐꾸기가 허드레로 울곤 합니다. 언제 들어도 뻐꾸기 소리는 스님 방 앞 파초 잎사귀처럼 푸르게 푸르게 몸을 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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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최근에 어떤 여론조사를 보니까, 가장 되고 싶은 직업 1위에 ‘시인’이 올랐다고 하더군요. 시인이 1위가 된 이유가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는군요.

스님도 제가 보기에 시를 좋아하고, 시를 잘 쓰는 시인 같아요. 얼마 전 타계하신 법정 스님도 제가 보기엔 좋은 시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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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몇 년 전, 스님의 《금강경》 강의(경주불교문화 센터)가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강의를 들어도) 《금강경》 그 깊은 뜻을 잘 몰랐습니다.(잘 모르긴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저는 그때 강의 내용은 접어두고, 노자의 《도덕경》을 줄줄 외우시고, 왕유, 두보의 당시들을 줄줄이 꿰차고 계시는 스님의 강의에 그만 압도당했습니다. 그때 저는 ‘덕민 스님께서 시에도 대단한 고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저같이 불교 교리도, 《금강경》도 잘 모르는 형편없는 문외한에게도 언제나 허심탄회하게 친구처럼 대해 주시는 덕민 스님. 스님이야말로 불국사의 ‘소쩍새 부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외람된 이런 생각을 용서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손수 끓여주시는 담백한 ‘와인빛 차’를 마시며, 스님의 《금강경》 이야기와 노자의 《도덕경》을 밤 깊도록 듣고 싶습니다.

언제, 소쩍새를 만나러 불쑥, 불국사 숲으로 쳐들어가겠습니다.
 
올여름은 무척 덥겠다는 기상 예보가 있습니다.
스님, 내내 강건하시길 빕니다.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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