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언저리에서 맴돌다 결국 그렇게 끝나고 말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다. 잡아당김도 밀어냄도 다가서지도 돌아서지도 못하고 마주치면 어정쩡한 모습으로 머뭇거리다 허둥대다 스쳐버리는, 부처님 앞의 필자 형상이 그러하다.

늙어 여유 생기면 부처님 경전 독파하고 그래서 불심(佛心)에 깊이 침잠해 보리라던 생각을 종심(從心)이 되도록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이제 그 마음조차 희석되고 있음에 죄송해서다.

다섯 살 적, 됫박 쌀 끌어안고 절에 가는 어머니를 따라가 이마를 콩콩 찧으면서 부처님께 절을 했다. 스님들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열여덟 살 적, 폐결핵과 신경쇠약으로 휴학하고 지리산 대원사에서 두 달여 정양생활하면서 새벽예불에 참여하고 주지 스님의 출가(出家) 권유를 꾸준히 받았다. 어머니는 그 절의 총무 스님에게 필자를 양녀로 안겨주고 불명(佛名)까지 받았다. 병치레 잦은 딸의 명줄을 부처님께 의지하려는 간절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스님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병은 완쾌되었고 이후 50년이 흘렀다. 관광 일정에서 혹은 지방행사 중 일행들과 사찰에 들리게 되면 다소곳이 조심스러워진다. 부처님께 배례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인데 무심한 시선으로 법당 안의 건축구조며 단청 등을 살피는 일행들 속에서 돌출행동을 삼가게 된다. 그러나 표정과 행동이 편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 죄송해서다. 법당 밖에서 합장한 채 시선을 아래로 깔며 속으로 끊임없이 죄송하다 되뇐다. 경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어 마냥 부끄럽고 진정 죄송해서다. 친^외가를 비롯 모태 적부터 기복신앙이었던 불교의 정서가 혼신에 저려 불손함이 편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라졌다. 빈정거릴 수도 있는 일행이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배례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아니 한다. 자유스러워진 것이다. 경전을 끝내 정독하지 못했어도 부처님 언저리에 들어서면 그저 마음 편안해지고 미소 머금어지는 그 자체로 만족한다. 긴 세월이 안겨준 감성의 경직이나 다양한 삶의 변화와 공연히 분주해진 마음 탓일 수도 있으리라.

한 달이면 두세 차례 천리 밖 산막(山幕)으로 내달린다. 지리산 자락의 산 중턱에 흙집을 짓고 주변으로 감나무 모종도 심고 온통 풀밭인 채마밭을 가꾸다 말다 하면서 나날을 보낸다. 백여 미터 떨어진 작은 암자에서 목탁소리가 들려오면 입술이 절로 벌어져 미소가 머금어진다. ‘나무아미타불……’ 입속으로 읊는다. 어쩌다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혹여 쇠북 소리라도 더 들려오지 않을까 귀 기울여본다.

한낮에는 흙마당으로 고라니 한 쌍이 가로지르고 더러는 산꿩이 새끼들을 거느리고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산 중턱이라 온종일 사람 구경을 할 수 없고 봄에는 산나물꾼들이 집 앞 오솔길을 지나간다. 고구마 감자라도 심어 놓으면 멧돼지 무리가 먼저 시식하고 옥수수는 알이 여물기도 전에 결딴낸다.

상추 열무는 아우성을 지르듯 여린 잎사귀를 흔들고, 멧돼지가 헤갈쳐 놓은 빈 감자밭도 사나흘 후면 시퍼런 풀들이 완전히 점령한다. 빈틈없이 밀집한 땅속의 생명들이 세상의 틈새 나기만 기다리는 듯 솟구치는 속도가 과히 경이롭다.

그런데도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다. 넉넉해진다. 머릿속은 텅 비워져 희비애락 흔적 없이 무심해지고 투명해진다.

능선을 훑어오는 산바람 속으로 또 다른 인연의 나를 본다. 알 수 없는 환희가 서서히 가슴을 차오르고 전신을 휘감아, 살아 있음이 진정 행복하여 명치께가 쩡해진다.

문득, 이승의 불국정토가 바로 여기가 아닌지 혼자 그렇게 생각도 해본다.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