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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중국 근대 모택동 사상과 불교 / 김제란
[52호] 2012년 09월 01일 (토) 김제란 redhairran@hanmail.net

1. 중국 근대와 불교

동아시아에서 근대란 단순한 시대 구분만은 아니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서양의 충격이라는 세계 체제적 시각과 동아시아의 시각을 결합해 보아야 하고, 따라서 동아시아의 모든 근대 사상은 동서 문화의 충돌이라는 시대적 산물이다. 근대 사상가들은 내적으로는 과거를 변혁하고, 또 외적으로는 서양을 비판하는 동시에 배워야 하는 모순된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반(反)봉건, 반(反)제국’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 변혁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적군인 서양을 비판하는 동시에 배워야 했던 것이다. 중국 근대 사회주의 역시 이러한 과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으며, 마르크시즘이라는 서양 변혁 철학을 받아들이되 중국 전통사상을 결합한 중국화된 마르크스주의인 모택동(毛澤東, 1893~1976) 사상의 출현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택동은 중국 근대 대표적인 혁명가로서,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중국혁명의 실천 경험, 그리고 중국 전통철학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를 완성한 사상가로 평가된다. “우리는 역사를 끊어서는 안 된다. 공자부터 손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마땅히 총괄해서 이 진귀한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입장이고, “옛사람과 외국인을 계승하고 참조하는 것을 결코 거절해서는 안 된다. 설령 봉건 계급과 자산 계급의 것들이라 해도!”라고까지 강조하였다. 그는 주저인 《실천론》(1937)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과 중국 전통의 지행(知行) 관계를 결합시켰다. 《모순론》(1937)에서는 《역(易)》과 도가 사상에 근거하여 만물은 대립 통일되어 있으며, 모순의 인식 과정을 거쳐 인류 인식이 높아진다고 보았다. 기본적으로 모택동은 중국 전통문화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계승하여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중국 전통사상을 사회주의 문화와 현대화를 위한 도구로 삼겠다는 현대중국의 방침은 모택동 사상이 전통 철학에 대해 갖고 있는 수용적 태도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중국 전통사상 중 불교에 대한 모택동의 평가를 살펴봄으로써 모택동 사상과 불교의 관련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모택동 사상 중 중국 전통사상과의 관련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유학과의 관련성, 그중에서도 《역》과 《도덕경》에 나타난 소박한 변증법과 모택동의 모순 이론을 연관시키는 부분에 집중되어 왔다. 반면에 모택동 사상과 불교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유물주의를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불교는 ‘관념론’ 또는 ‘유심론’이라고 격하되었고,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는 가치관하에서 불교는 전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택동은 선불교(禪佛敎), 특히 혜능 사상을 일찍부터 연구하였고, 《육조단경》을 여러 차례 읽고 때로는 외부 시찰 때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모택동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전적인 비판의 대상인 불교를 어떠한 점에서 긍정하고 활용하려 하였는지 찾아보려 한다. 

2. 모택동의 불교 일반에 대한 평가

1) 비판계승론: 인식 발전의 필요 단계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철학사를 유물론과 유심론, 변증법과 형이상학의 투쟁사로 본다. 그리고 두 진영의 철학적 대결은 사회의 적대하는 계급 간의 이해 충돌을 철저히 반영한다고 한다. 그에 대하여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인류 사회의 생산 활동이 점차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해 나아가며, 이에 따라 인간의 인식도 자연계나 사회를 막론하고 한 걸음씩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발전한다.”라고 철학사를 인식의 발전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입장에 설 때 과거의 모든 철학사상은 다음 단계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가 된다. 가령 전적인 비판 대상이라도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중국 전통사상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이나 부정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를 제시한다. 

모택동은 중국 전통사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였다.

중국은 장기간에 걸친 봉건사회 속에서 찬란한 고대 문화를 창조했다. 이 고대 문화의 발전 과정을 정리하여 봉건성의 잔재를 제거하고 민주성의 정화를 흡수하는 것이야말로 민족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민족의 자존심을 높이는 필수 요건이다. 다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함께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고대의 봉건 통치계급이 지닌 모든 부패성과 고대의 우수한 인민 문화, 즉 민주성과 혁명성은 구별되어야 한다. 중국의 현재의 새로운 정치, 경제는 고대의 맑은 정치, 경제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며, 중국의 현재의 신문화도 고대의 구문화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자기의 역사를 존중해야 하며 역사를 단절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러한 입장은 바로 전통철학을 대하는 자세가 무조건적인 긍정이나 부정이 아니라 그 내용을 잘 선별하여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비판계승론’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철학에 대하여 “어떤 예외도 없이 배척해서도,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답습해서도 안 된다. 항상 비판적으로 살펴서 중국의 신문화 추진에 이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 모택동의 생각이었다. 이것은 불교 등 전통사상을 철저히 비판해서 없앤 뒤에 새로운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철저재건론’이나, 전통사상의 우수성만을 강조하고 이를 현대에 되살려야 한다는 ‘유학부흥론’과는 전혀 맥을 달리하는 견해이다.

예컨대 모택동은 중국철학사 발전 단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중국의 학술 발달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능동적 발달기로서, 주대 말엽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는 수동적 발달기로서, 불교가 크게 흥하여 일시를 풍미한 수당 시기이다. 셋째는 능동과 수동을 겸한 발달기인데 주자, 정자, 장재, 주렴계 등이 나온 성리학 대명기이다. 이 시기는 모두 불교를 숭상한 데서 시작하였고, 불교에서부터 육경(六經)으로 돌아갔으므로 능동적이면서 수동적 발전기이다. 송원 시기가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왕국유의 관점을 따른 것인데, 모택동이 보기에 중국철학사의 이러한 생명력은 불교라는 외래 철학을 흡수하여 변화시킨 데 기원한다. 불교는 송명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단계로의 변화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철학을 ‘인식의 발전사’로 파악할 때 불교는 중국철학사가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발전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며, 민중의 아편인 종교이기 때문에 무조건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서구 마르크시즘과는 달리 비판적 ‘계승’의 대상으로 파악되었다.

2) 평가의 원칙: 개방 정신

모택동이 불교를 비판적 계승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개방 정신’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외국의 장점을 받아들이면 우리 문화에 발전이 있게 된다. 중국적인 것과 외국적인 것이 결합하면 상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수대, 당대의 구부악(九部樂), 십부악(十部樂)이 있고, 다수의 서역 음악이 있으며, 고려^인도에서 온 외국 음악이 있다. 외국 음악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음악이 사라지지 않으면, 우리 음악은 계속 발전한다. 외국 음악을 우리가 소화해서 그 장점을 흡수하면 우리에게 이익이다. 문화에서 외국에 대한 것을 모두 배척하거나 전반적으로 흡수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여기에서 모택동이 강조하는 것은 개방 정신이다. 그는 불교에 대해서도 “중국 민족은 종래 외국의 뛰어난 문화를 수용하였다. 당대 삼장법사는 만리장정하며 후대보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서방 인도로 가서 불경을 얻었다.”라고 불교가 개방적 태도로 임한 것을 칭찬하였다.

모택동이 ‘개방 정신’을 얼마나 중시하였는가는 당대의 한유(韓愈, 768~824)와 유종원(柳宗元, 773~819)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유는 불교를 오랑캐의 법일 뿐이라고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불교를 반대하기 위하여 유학인 《대학》에서 ‘치국, 평천하’의 주장을 개인의 도덕 수양과 긴밀하게 연결시켜 이를 개인의 도덕적 수양의 결과로 본 반면에, 불교에서는 개인의 종교적 수양만을 강조할 뿐 ‘치국, 평천하’를 언급하지 않고 출세 원칙을 제기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는 중국의 봉건사회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학설은 금지해야 하고, 더욱이 불교 같은 외래 학설이 중국의 전통 선왕(先王) 학설을 능가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964년 모택동은 한유의 불교에 대한 태도가 대단히 불만족스럽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한유가 유학자의 입장에서 새 이론 체계를 세워 불교와 대항한 것은 그의 탁월한 점이지만, 단순히 불교를 비판하고 원시 유학에의 복귀를 주장하는 것은 사상의 변증법적 발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억지를 쓰는 태도’라는 것이 모택동의 견해였다.

반면에 모택동은 한유와 동시대 사상가인 유종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유종원은 (한유와) 달리 불교^노자 사상을 출입하였고, 유물주의를 견지하였다.”라는 지적이 그 근거이다. 유종원은 불교^도교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불교^도교 인사들과 광범위한 교유 관계를 가졌을 뿐 아니라, 유학^불교^도가 사상이 동일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불교는 진실로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 때로 《역(易)》과 《논어(論語)》와 부합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불교에 부부, 부자의 윤리 관계가 없고 승려가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점을 좋게 보지 않았으나, 돌 속에 옥이 들어 있는 것처럼 불교에도 합리적인 핵심이 있다고 보았다. 모택동은 유종원이 불교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한 점에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모택동이 외부의 것에 대한 ‘개방 정신’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개방 정신이 결국 사상의 변증법적 발전을 이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3. 선불교에 대한 긍정

1) 깨달음의 ‘주관적 능동성’: 자기주도적 현실 참여에의 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선불교를 주관 유심주의로 판단한다. 사물의 변화는 순수하게 주관적 마음에서 생겨난 것으로, 예컨대 바람이 불어서 깃발이 움직이는 것은 마음(주관)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환상이고 실제는 나의 마음이 움직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보기에 선불교의 진리는 인류의 감각과 사유의 대상이 아니며,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신비의 경지일 수밖에 없다.

또한 혜능 이후 후기 선종은 선종의 주관적 유심주의를 신비주의적인 측면으로 발전시켰다고 보았다. 그들은 감각, 경험, 언어, 문자, 이성적 사유의 인식에서의 작용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이로부터 반과학적인 신비주의적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신비주의, 직관주의는 완전히 반과학, 반상식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그들의 선불교에 대한 평가이다. 임계유는 특히 선불교의 목적은 선이라는 방법을 통해 객관 세계의 진실성을 부인함에 따라 사람들에게 현실 사회에서의 투쟁을 팽개쳐버리게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모택동은 이러한 평가에 반대하였다. 그는 선불교의 목적이나 효과가 현실 사회에서의 투쟁을 무화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사회의 투쟁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당대(唐代)의 불교 《육조단경》에는 혜능 화상이 하북인이고 문자를 모르지만, 대단히 학문이 있으며 광동에서 경을 전하고 일체가 공(空)임을 주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철저한 유심론이다. 그러나 그는 주관 능동성을 확연히 드러내었고, 이것은 중국 철학사상에서의 일대 전진이다. 당 말의 난세에 인민들은 의탁할 사상이 없어 크게 유행하였다.

모택동은 선불교를 일체가 공임을 주장한 주관 유심론으로 파악하였다. 혜능은 북종의 돈오점수 방법을 반대하고 ‘돈오’만을 강조하여, 외부 조건의 제약을 부인하고 단지 내심에서의 깨달음을 말하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모택동이 말한 혜능의 주관적 능동성이다. 즉 외부 조건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관 안에서의 깨달음이며 이를 통해 자신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 불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혁명 과정에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인 ‘주관적 능동성’ 즉 자기주도적이고 능동적인 현실참여에의 힘을 불교에서 발견하고 이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혜능은 자성(自性), 자기 속의 정토(淨土)를 강조하였다. “동방에서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염불해서 서방에서 왕생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서방에서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어느 나라에 왕생하기를 빌어야 하는가? 어리석은 범부가 자기 성품을 깨닫지 못해 자신 속의 정토를 알지 못하여, 동쪽을 바라거나 서쪽을 바라기도 한다. 깨달은 사람은 어느 곳이건 한 가지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도 ‘머무른 곳에 따라 늘 안락하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모택동이 혜능이 일체를 부정하고 서방정토를 부정하였다고 한 의미이다. 즉 혜능의 선불교는 객관 세계를 부정하거나 서방정토의 부재를 주장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은 어느 곳이건 한 가지이다”는 깨달음의 주관적 능동성, 자기주도적 적극성에 대한 강조에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선불교가 지향하는 것은 자기 속의 불성, 자기 안의 정토를 깨닫는 것이지 서방정토나 외부의 유토피아로 가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모택동은 높이 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자의 선불교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로 선종은 당시 지배 계급이 필요로 하는 논증, 즉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합리적이라는 것을 논증하여 사회 변혁의 의지를 무화시켰다는 데 있다. 선불교는 이론적으로 봉건 질서의 합리성을 천명하고, 유심론적 입장에서 기본 범주를 해석했다는 것이다. 모택동의 선불교에 대한 평가는 이와 같은 기존의 평가와는 상반된 것이다. 오히려 사회 변혁과 현실에의 투쟁에 선불교가 가진 주관적 능동성을 강조하여 긍정적 역할을 하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 혁명 과정에 필요한 ‘혁명 정신’과 중국 전통의 선불교가 가진 ‘주관적 능동성’ 즉 자기주도적 적극성을 연결시켜 실제 혁명 과정에 필요한 힘을 가지려는 모택동의 의도가 전제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선불교는 나도 없고 너도 없는 마음의 깨달음을 곧바로 지향하는 만큼, 자기주도적인 적극성으로 현실 참여, 사회혁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2) 민중성과 ‘평등’ 사상: 근대적 가치와의 접점

모택동이 선불교를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육조단경》을 민중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근거 중 하나는 혜능이 노동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육조단경》에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대단히 궁핍하여 시장에서 땔나무를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곽붕은 불교 종파 창시자들 중 집안이 빈한하고 출신이 경미한 사람은 혜능 한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물론 이것은 단편적인 시각일 수 있다. 인간은 결코 출신 성분만으로 기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 꼭 민중성이나 평등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부나 물질에 더욱 집착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모택동이 혜능이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사상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혜능 사상이 민중적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선불교는 민중적인 종교였다. 수당 시대 선불교를 제외한 종파들은 번잡한 주석과 승원철학식의 연찬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은 광대한 토지를 점유하고 노비들을 거느렸다. 불교가 한편에서는 세속의 부귀를 버리고 물질적 향락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사원경제가 급격히 발전한 상황이 되자 승려들은 사치하고 타락해갔다. 당시 불교가 마주친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그 내부에서 선불교가 일어난 것이다. 선불교에서는 큰 배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심지어 혜능과 같이 글자를 몰라도 종교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승려 대부분은 서민 가정에서 출가하였으므로 생활이 검소하였다. 숱한 장원을 점유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의 수행도 요구되지 않았으며, 지나치게 많은 경전을 암송할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선불교가 주관 유심론이었다는 점이다. 주관 유심론이 갖는 의미는 그들의 주장은 논증할 것도 없고 경전에서 논거를 가져올 필요도 없이, 다만 개인의 주관적인 신심에 의거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택동이 선불교를 민중적이라고 평가한 또 다른 근거는 혜능이 불성론을 통하여 평등사상을 긍정하였다는 점에 있다. 불성론은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불성론은 선불교를 포함한 중국불교 전체의 특색이기도 하다. 혜능은 불성이 지역이나 민족을 나누지 않고 동일하게 모든 사람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고 보았고, 그런 근거에서 하층 민중들의 성불 가능성을 강조하였다. 《육조단경》에는 혜능이 오조 홍인을 만났을 때 홍인이 그를 남해인이라고 무시하자, 그가 “사람은 남인과 북인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없다. 남쪽의 오랑캐는 스님과 다르지만, 불성에 어찌 차별이 있겠는가!”라고 반박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러한 불성론의 사회정치적 의미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다. 모든 사람이 불성을 가지고 있고 계급, 지역과 관계없이 성불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론은 바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택동은 선불교에서 이러한 불성론의 평등주의를 중시하여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이 평등사상은 봉건주의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근대적 개념으로, 중국 근대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의 하나가 바로 민중의 평등성이기 때문이다. 이 불성론의 평등사상은 근대적인 평등 개념과 만남으로써, 서구 마르크시즘과 중국 전통사상이 만나는 중요한 접점을 제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화엄불교에 대한 비판

1) 상대주의와 궤변론 비판: 보수주의의 위험

모택동은 선불교에 깊이 관심을 기울였지만, 상대적으로 화엄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가 임계유 편 《중국철학사》의 화엄종에 대한 분석에 대한 언급이다. 《모택동철학비주집(毛澤東哲學批注集)》에 보면, 〈화엄종의 상대주의와 궤변론〉 챕터에 대한 모택동의 주가 실려 있다. 주에서 모택동은 화엄종의 ‘일다상용(一多相用)’ 관점을 분석하고 임계유의 논리를 긍정하였다.

임계유의 견해는 화엄종에 변증법적 사상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약간의 변증법적 요소도 상대주의와 궤변론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비판적인 것이다. 화엄종 승려 지주 계급은 당대의 봉건제도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결코 변증법을 바로 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증법의 근본 원칙은 모택동이 말하였듯이 “사물의 모순 법칙, 즉 대립하는 부분의 통일 법칙은 유물변증법의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다.”이지만, 화엄종 사상은 다만 상호 관계와 상호 제약, 부분과 전체 따위에 대해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선악이나 시비를 포함한 모든 것이 원만무애하게 평화 공존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된다. 즉 화엄종에서 억압자와 피억압자, 농민과 지주, 황족과 평민은 모두 우주 관계의 그물에서 빠뜨릴 수 없는 그물코가 된다. 결국 화엄종은 필연적으로 모순의 대립과 투쟁이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상대주의와 궤변론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화엄종 비판이다. 구체적으로 “화엄종이 근거한 《화엄경》은 많은 범주, 예컨대 육상(六相: 總^別^同^異^成^壞)으로 세계 사물의 상호 의존, 제약, 수량, 변화, 소장 과정을 설명하였는데, 그 목적은 객관 세계를 유심주의적으로 해석하여 객관 세계의 물질성을 부인하는 데 있다.” 이처럼 임계유의 화엄종에 대한 견해는 객관 세계의 물질성을 부인하는 유심주의 관점에서 개별과 일반의 차별을 혼합하는 데 그칠 뿐이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모택동은 화엄종에 대한 임계유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특히 모순의 대립을 통해 발전해 갈 개별적 존재를 부정했다는 점을 비판하였다. 임계유는 레닌의 말을 인용하여, 일반은 단지 개별 중의 존재에서만 있을 수 있고 개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레닌은 변증유물주의 입장에서 인류 인식 과정 중의 개별과 일반의 관계를 밝혔다. 개별과 일반에는 내재적 연관성이 있으며 분할할 수 없다. 개별과 일반에 내재적 연관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화엄종은 결국 변증법적 요소가 있다는 관점이 되지만, 유심주의에 전도된 입각점에서 그들은 개별 사물이 객관적 존재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사물을 벗어난 ‘연관성’ 즉 연(緣)에 주의를 기울이고, 개별과 일반의 관계를 과장하여 관계를 절대화하고 심지어 ‘개별적’ 존재를 말살시킨다. 그들이 말하는 관계, 즉 연(緣)은 단지 객관 사물을 외재적 관계를 가지고 배제하므로 유심주의적이다.” 모택동은 레닌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어찌 그리도 정확한가!”라고 주석을 달아 전적으로 찬성하였다. 화엄종에서 관계를 절대시하고 개별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국 봉건과 제국주의라는 현상태를 그대로 긍정하는 보수주의로 연결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2) 불완전한 ‘변증법적’ 사유

임계유는 레닌의 주관주의와 변증법의 구별에 대하여 “변증법 중에서는 상대와 절대의 차별도 상대적이다. 객관 변증법에서는 상대 중에 절대가 있다. 주관주의와 궤변에서는 상대적인 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고 절대적인 것을 배척하게 된다.”고 인용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경전 작가의 과학적 논단 중에서 도출해보면 상대주의, 유심주의, 궤변론, 불가지론은 일맥상통한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에서는 객관 세계의 존재, 발전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고, 세계의 물질성, 물질의 운동과 발전, 그리고 그 규칙이 모두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의 주관적 의지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리를 부인하면 반드시 유심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모택동은 이러한 레닌의 언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 평가하고 있다. “상대 중에 절대가 있고, 절대는 단지 상대 중에 존재할 뿐이며, 보편은 단지 개별 중에 존재할 뿐이고, 영원은 단지 잠시 중에 존재할 뿐이다. 이것들을 떠나 어떠한 객관 변증법을 말하더라도 앞에서 여러 차례 레닌의 말을 인용한 것이 어찌 스스로 모순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언급은 모택동이 임계유의 절대^상대의 관계에 관한 서술에 결코 만족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변증법적 유물주의 관점에 따르면, 상대적인 것 중에 절대적인 것이 있고 절대적인 것은 단지 상대적인 것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런데 모택동이 보기에 임계유의 견해는 세계의 물질성, 물질의 운동과 발전, 규칙을 상대적인 것을 떠나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변증법적 유물주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상대를 초월한 그 어떤 존재로 절대를 파악할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택동은 화엄종의 변증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긍정하였다. 그는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의 상호 연관을 말하는 변증법과 불교, 특히 화엄종의 일다상용(一多相用)의 연기 사상을 연관시켜 받아들였다. 물론 화엄종의 변증법적 요소는 불완전하지만, 인식사의 한 단계로서 인식을 심화 발전시키는 적극적인 작용을 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계유는 화엄종에서 세계가 객관적인 존재임을 부인한 것은 범주가 객관 사물의 보편적 본성을 반영한 것임을 부인한 것이라고 보았다. 화엄종에서 대립하는 범주는 개념의 유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모택동은 이 논의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이처럼 모택동의 화엄종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임계유와 일치하지만, 그보다는 화엄종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5. 세계화 시대, 모택동 그리고 불교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종교를 관념론적인 유희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객관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관적인 마음이 만들어낸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현실감과 역사성, 사회성을 망각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불교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모택동 사상은 불교를 포함한 중국 전통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모택동이 지향하는 사회주의와 불교는 상이점과 함께 공통점도 많이 존재하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실제로 모택동은 불교를 교조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판적 계승’의 견해를 취하였다.

첫째, 모택동은 불교의 ‘주관적 능동성’, 자기주도적 현실 참여에의 힘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는 중국 혁명 과정에서 물러서지 않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진 혁명가를 필요로 하였고, 이를 깨달음을 중시하는 불교의 주관적 능동성 속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험난한 혁명의 실전 경험 속에서 외부 조건의 제약을 넘어서서 내면의 의지로 이를 타개해가는 자세를 불교에서 찾으려 하였던 것이다.  

둘째, 모택동은 불교가 갖는 ‘민중성’ 즉 국가의 주권을 일부 계층만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이 가지는 민주적 성격을 적극 평가하였다. 민중성은 봉건주의나 제국주의와 정면으로 상치되는 개념으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그는 불교의 이러한 민중성이 근대혁명이 지향해야 할 점과 완전히 일치하였기 때문에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셋째, 모택동은 불교의 근원적인 ‘평등’사상에 주목하였다. 논자는 봉건주의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철학적 개념인 평등의 개념에 주목하여, 모택동의 선불교에 대한 긍정을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와 연관시켜 해석하였다. 모택동은 선불교에 대한 수용을 통해 서구 마르크시즘의 근대적인 평등 개념과 불교의 근원적인 평등을 동시에 받아들임으로써 혁명의 핵심적인 가치를 담보하려 하였다.

넷째, 모택동은 불교의 변증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의 상호 연관을 말하는 변증법과 불교, 특히 화엄 불교의 일다상용(一多相用)의 연기 사상을 연관시켜 받아들였다. 물론 모택동이 파악한 불교의 변증법적 요소는 완전하지는 못한 것이고, 유심주의적이며 개별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어서 현실의 보수화를 강조하는 불완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인식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로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와 같이 비판적 계승에 바탕을 두고 ‘개방 정신’으로 대한 모택동의 불교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인 것이며, 이를 통해 모택동 사상과 불교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 근대사회의 전반적인 변혁 작업에 불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중국 근대에 불교는 전통사상과 서양 사상과의 만남에서도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였다. 모택동은 당시 중국 사회가 필요로 했던 반봉건^반외세의 과제를 해결하는 혁명의 과정에서 중국 전통사상인 불교를 활용하려 하였고, 그런 측면에서 불교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라는 입장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대는 ‘세계화’라는 말로 표현되는 글로벌 자본주의,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이다. 현대 중국은 신흥 강국으로서 영향력이 날로 거세어지고, 세계 어디에서나 중국산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일 달러 숍’의 저가품들은 거의 100% 중국산 제품으로 채워져 있으며, 고가품들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글씨를 찾기 어렵지 않다. 한 작가는 《중국산 제품 없이 1년간 살아보기(A Year without Made in China)》라는 책에서 어떤 물건이든 중국산을 피하기 어려웠고 이제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세계 자본주의가 원활히 진행하도록 하는 원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가능하게 하였던 중국 근대 혁명가인 모택동 사상이나 그의 불교에 대한 평가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불교에서 이 미친 듯한 세계화의 조류에 저항할 수 있는 어떤 요소를 뽑아낼 수 있는가? 모택동이 불교 속에서 본 자기주도적 현실 참여에의 힘과 민중성, 평등사상, 변증법적 요소를 끄집어내어 우리 자신과 세계 변혁의 힘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

 

김제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려대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철학과 박사(동양철학 전공). 한림대 부설 태동고전연구소 수료.  주요 논문으로 〈熊十力 哲學思想 硏究: 동서문화의 충돌과 중국 전통철학의 대응〉(박사학위논문), 〈송대 성리학에 미친 불교의 영향〉 〈명대 심학에 미친 불교의 영향(Ⅰ)(Ⅱ)〉 〈현대신유학의 철학적 과제〉 등이 있다. 《논쟁으로 보는 중국철학》(공저) 등의 저서와 번역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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