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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가* / 이창숙
[52호] 2012년 09월 01일 (토) 이창숙 1hwasun@hanmail.net

1. 부처님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붓다는 여성은 그 본성상 결코 열반을 얻을 수 없다든가, 남성과는 달리 아라한이 될 수 없다든가 하는 말을 한 일이 없다. 도기(道器)로서의 여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를 거쳐 대승불교에 이르는 사이, 경전에 나타난 여성관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변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붓다 재세 시와 입멸 직후에는 아라한이 되어 해탈의 노래를 거침없이 부른 여성들이 있었고, 비구들이 ‘여래의 아들’이라는 자각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비구니들도 ‘여래의 딸’이라는 자각을 갖고 있었다. 불멸 후 1백 년경부터 불교 교단이 20여 개의 부파로 갈라졌던 부파불교의 시대에 오면 불교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하락하여, 여자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여성불성불설이 제기된다. 서기 1세기 전후에 일어난 대승불교의 초기에는 여자가 남자로 변해야 부처가 된다는 변성남자성불설이 나타났고, 중기 대승불교에서는 여자가 여자 몸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여신성불설이 나타났다.

이와 아울러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비구니에게 팔경법이라는 것이 주어졌는데, 이는 한마디로 비구니가 비구를 공경해야 할 8가지 계를 말하는 것이다. 계율이란 불교 교단의 기강인데 이 면에서 비구니를 확실하게 비구의 하위에 두었던 팔경법은 여성을 차별하는 근거로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오늘날 이 팔경법은 현실적으로 거의 사문화되었다고 보지만, 비구니를 통제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다.

불교의 여성관은 불교 사상의 전개, 그리고 전개의 배경인 교단 및 교단이 속해 있던 사회에서 여성을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며 변천해 왔다고 본다. 경전의 결집, 전승, 해석에 있어서 그 주체자는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전적으로 배제되었기 때문에 그 주체자들의 가부장적인 사고가 이에 반영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2. 초기불교에서의 여성

어느 때 마아간디야라는 바라문이 자기 딸을 데리고 붓다에게 와서 아내를 삼아 달라고 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해 붓다는 “나는 이전에 갈애와 혐오와 애욕이라는 세 마녀를 보고도 그들과 성교를 하고 싶다는 기분을 가지지 않았다. 물과 배설물로 가득한 이 여자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여자의 발조차 건드리고 싶지 않다.”라고 거절했다.

반면 코살라의 파세나디 왕과 같이 있던 자리에서, 왕비가 딸을 낳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왕의 안색이 안 좋아지는 것을 보고, 붓다가 왕에게 충고를 했다. “왕이여, 딸이 아들보다 더 나은 자식이 될 수도 있다. 그녀가 자라서 현명하고 덕이 있으며 시어머니를 잘 공경하고 진실한 아내가 된다. 그녀가 낳은 아들이 위대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거대한 왕국을 통치할 수도 있다. 고상한 아내의 그와 같은 아들이 그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라고 하면서 여성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옥야라는 여성이 설법의 대상이 된 일련의 경전(《불설옥야녀경》 《옥야녀경》 《옥야경》)에서는 ‘여인신(女人身) 중에는 십악사(十惡事)가 있다.’고 했다. 그 내용을 여자의 일생에 대비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탄생―부모에게 기쁨을 못 준다.
②성장―부모에게 양육의 재미를 못 준다.
③결혼―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며 부모와 이별한다.
④임신과 출산―고통이 따른다.
⑤결혼생활―배우자를 두려워한다.
⑥노년―자손의 질책을 받는다.
⑦대인―사람을 두려워한다.
⑧일생―자유가 없다.

이 ‘여인신 중의 십악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인도 사회의 여성 생활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악사(惡事)라는 것이 여성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악사라기보다는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편견이 여성에게 가져다주는 고통들이기 때문이다. 여성 자신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임신과 출산의 고통뿐이다. 나머지는 사회와 남성이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인식하지 않고 편견을 가지고 대함으로써 여성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 질곡의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에서는 자식은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꼭 필요한 존재였는데 그 자식의 범주 안에 딸은 들어가지 않았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 태어나는 딸은 거의 저주나 재앙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딸은 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존재였다. 딸을 결혼시키지 못하면 부모의 망신이 되고, 결혼시키게 되면 결혼식 비용의 과다한 지출로 파산지경에 이르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아들을 좋아하고 딸을 부담스러워했던 풍조는 고대로부터 있었던 것으로 불교 시대에까지 이어져 초기경전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붓다는 엄격했던 카스트제도를 부정했다. 붓다는 사람은 출생에 의해서 귀하고 천한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서 귀하고 천한 것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런 사상과 모순되는 여성에 대한 붓다의 위와 같은 부정적인 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붓다 설법의 특징은 설법을 듣는 대상자의 근기에 맞추는 수기설법(隨機說法)이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이해도, 고민하는 문제, 설법이 펼쳐지는 환경 등과 설법의 내용은 관련을 갖는다. 중생을 교화하는 출가한 각자(覺者)에게 와서 딸을 아내로 삼아 달라는 마아간디야라는 바라문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이에 대한 붓다의 대답은 여성에 대한 멸시라기보다는 이 비상식적인 제안에 대한 부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십악사를 열거한 《옥야녀경》은 교만한 옥야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경이 설해진 전후 사정은 다음과 같다. 급고독 장자가 며느리를 보았는데, 그 이름이 ‘옥야’이고 부유한 장자의 집 딸이었다. 그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시댁에 버금가는 집안의 딸이었던 모양이다. 친정의 세력을 믿어서 그랬는지 미모인 옥야는 성품이 오만방자해서 시집와서 시부모와 남편을 잘 섬기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권위로도 며느리의 교만한 성품을 누를 수 없었던 급고독 장자는 부처님만이 며느리를 제도할 수 있다고 믿고 부처님을 집으로 초청한다. 부처님이 오시자 온 가족이 나아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부처님을 맞이하는데 옥야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부처님이 신통으로 옥야 앞에 나타나시니, 그 위엄에 눌려 두려워하며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여기서 부처님이 옥야에게 하신 설법의 내용이 ‘여인신 중의 십악사’이다.

이를 두고 붓다가 여성의 삶을 폄하했다고 간단하게 규정지을 일은 아니다. 만일 붓다의 인식이 그러하다면 더 이상의 설법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옥야의 참회를 받은 붓다는 우바이 십계를 수지케 하고, “착한 아내는 이 세상에서 영예를 얻고, 복을 받아 천상에 태어나고, 천상에서 수명이 다하면 다시 세간의 왕후 자손에게 태어나고, 나는 곳마다 일체의 존경을 받는다.”라고 하여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의 원리는 여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됨을 가르쳤다.

둘째, 불교 문헌의 전승 문제와 여성 문제와의 관련성이다. 불교 교단 자신은 제일, 제이, 제삼의 결집 전설을 전승해서 교법의 연속성을 주장하지만, 근대의 학자 가운데 이 전설을 그 형태대로 승인하는 이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전승의 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변형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일찍이 올덴베르크(H. Oldenberg, 1854~1920)는 경전 전체의 발전사를 3단계로 구분하면서 거기에는 삭제, 전환, 변형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여성 문제에 적용해 본다면 붓다 자신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능력을 인정했는데, 경이 결집되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붓다의 직제자를 비롯한 전승자 내지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삭제, 전환, 변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경전의 결집에 비구니가 참가했다는 기록이 없고, 부파의 전승 과정에서도 그 주체자들은 남성이었으므로 남성의 가부장적인 사고가 여성에 대한 것을 변형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붓다의 직제자에게서도 이미 여성에 대한 보수성이 발견된다. 한역 율전의 제일 결집 전설에 의하면 붓다 입멸 후 아난(阿難)은 가섭(迦葉)으로부터 문책을 당한다. 아난의 죄목 가운데 하나가 붓다에게 권청하여 여인을 출가케 한 것이다. 아난의 권청이 있었다고 해도 여성 출가가 궁극적으로 부당한 것이라면 붓다는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조가 여성 출가를 허용한 것에 대한 간접적인 반대 의사의 표현이고 직제자들의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이 노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딸이 아들보다 더 나은 자식이 될 수 있다.”는 붓다의 말은 팔리 5 니카야 가운데 여성에 대한 언급에서 유일하게 여성에 대해 긍정적인 표현이다. 이에 대해 1930년에 《원시불교에서의 여성(Women Under Primitive Buddhism)》이라는 저서를 내어 서구 사회에 불교의 여성관을 처음으로 알린 영국의 불교학자 호너 여사(I.B. Horner)의 주장을 살펴보자. 호너 여사는 위의 책에서 “이 말이 비구들의 (경전의) 편집을 거치면서 빠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구체화되거나 반복된 일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여기에 비구들의 말이 아닌 고타마의 진정한 말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라고 역설적인 논평을 가하고 있다. 붓다의 진정한 여성관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게 하는 논평이라 하겠다.

3. 비구니팔경법의 문제

불교가 흥기할 즈음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관념이 압도적으로 인도 사회를 지배했다. 당시 인도에서 여성들의 평범한 의무는 결혼하는 것이었는데 남성들은 대개 장례식을 주재할 사제자의 대를 잇기 위한 목적으로 결혼했다. 그러므로 남성들은 그의 아내를 단지 아이 낳는 이로 여겼으며, 당시 인도인들은 여성을 남성과 동물 사이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존재로 생각했다. 여성을 남성과 현실적인 관계가 있는 존재로 생각했으나 여성과 남성은 유(類)에 있어서는 같으나 신분에 있어서는 다른 존재로 생각했다. 따라서 여성을 정신세계의 동반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붓다는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였다. 붓다의 양모였던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석가족의 여인 5백여 명과 함께 와서 출가하여 도를 닦으려 하니 여성도 교단에 받아들여 달라고 하였을 때, 이에 대해 붓다는 처음에 세 번 거절하였다. 세 번씩이나 거절을 당하고도 물러나지 않고 덥고 먼지 많은 먼 길을 다시 찾아온 이들 여인을 애처롭게 여긴 아난이 붓다에게 여인들의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자 붓다는 이번에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아난은 “여자들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아도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즉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여성은 출가하여 수행해도 성도할 수 없기 때문인가 하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붓다는 여성도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여성을 도기로서 긍정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비구니가 비구를 공경해야 할 8가지 계율을 설정하였다고, 여러 경전과 율전이 기록하고 있다. 이때에 제정됐다는 팔경법의 내용을 《사분율》에 의거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비록 백세 비구니일지라도 처음으로 수계한 연소 비구를 보거든 마땅히 일어나서 맞이하고 예배하고 깨끗한 자리를 권하여 앉게 하라.
②비구니는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지 못하며, 또 비구의 파계, 파견, 파위의 등을 비방하지 못한다.
③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드러내거나 기억시키거나 자백시키지 못하며, (비구가 하는) 멱죄(覓罪), 설계(說戒), 자자(自恣) 등을 막지 못한다. 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하고 비구는 비구니를 꾸짖을 수 있다.
④식차마나(式叉摩那)가 계를 배워 마치면 비구로부터 비구니계를 걸수(乞受)하라.
⑤비구니는 승잔죄僧殘罪)를 범하였으면 마땅히 이부승(二部僧) 중에 보름 동안 마나타(摩那埵)를 행하라.
⑥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들에게 가르침을 청하라.
⑦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하안거를 하지 마라.
⑧비구니가 안거를 마치거든 마땅히 비구들에게 가서 보고 듣고 의심한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자자하여야 한다.

팔경법은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의 출가의 조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팔경법을 수지하는 것 자체가 수구족(受具足)이었다. 〈비구니건도〉에 의하면 백사갈마의 작법에 의해 구족계를 받았던 비구들이 고타미에게 “그대는 화상도 없고 백사갈마에도 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족계를 받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비난하자, 고타미가 붓다에게 물었다. 거기서 붓다는 비구들을 모으고 “고타미가 팔중법(팔경법)을 받은 것은 곧 구족계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마하파자파티 고타미 이후에는 여성이 출가할 때 마하파자파티 고타미가 화상이 되어 비구 승가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비구니 승가가 확립되고부터는 비구니의 구족계는 우선 비구니 승가에서 10인의 비구니로서 백사갈마(白四羯磨)의 작법을 행하고, 이어서 화상니가 같이 비구 승가에 가서 거기서 다시 백사갈마의 작법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비구니의 구족계는 두 번 행했다.

그런데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와 5백여 명의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붓다가 이 팔경법을 제정했다고 보는 데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팔경법의 내용은 비구와 비구니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만 규정짓고 있다. 출가의 절차로서 치러야 하는 구족계를 대신하기에는 너무 편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구니의 지위를 비구의 하위에 두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드러나고 있다. 팔경법을 말하는 같은 《사분율》 〈비구니건도〉에는 계율의 근본정신이 과연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어떤 비구가 수도를 그만두려는 것을 알게 된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는 ‘비구니는 비구를 꾸짖지 못한다’는 붓다의 가르침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도 비구를 꾸짖지 못한다. 이에 마하파자파티 고타미는 붓다에게 나아가 비구니는 비구를 절대로 꾸짖지 못하는가를 묻는다. 이에 대한 붓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비구니가 비구를 절대로 꾸짖지 못하는 것이 아니오. 비구니는 비구에게 욕을 하지 말아야 하며, 꾸짖지 말아야 하며, 소견을 깨트렸다, 계를 범했다, 위의를 깨트렸다 하여 비방하지 말아야 하오. 이렇게 꾸짖지는 못하오. 고타미여, 보다 높은 계를 지니게 하거나 보다 높은 선정을 닦게 하거나 보다 높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 배워 묻고 경을 외우고 하는 따위의 일은 꾸짖어도 좋소.”

둘째, 4, 5조에는 식차마나, 육법 이부승 등의 말이 나오는데 이러한 말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면 팔경법이 후대의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의 출가를 허락하는 시점에서는 아직 비구니 교단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없었는데, 이를 가정하여 이부승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며, 또한 이 시점에서는 식차마나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차마나는 사미니에서 비구니가 되기 전 만 18세에서 20세까지 2년간 학법(學法)의 기간에 있는 여성으로 비구니 내지 사미니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 있을 수 있는 출가자인데, 아직 비구니도 없는 시점에서 식차마나에 대한 언급까지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 교단의 계율은 오늘날의 헌법이나 단체의 정관처럼 규칙을 정해 놓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에 대한 계율을 제정하는 수범수제(隨犯隨制)의 형태였다. 그런데 팔경법에서 보면 아직 비구니 교단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데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문제를 가정하여 비구니의 비구에 대한 태도가 규정되어 있으며, 식차마나에 대한 언급까지 있다.

셋째, 팔경법의 내용이 비구니 구족계(348계)에도 보이고 있으며, 만약 범했을 경우의 벌의 경중에는 너무 차이가 많은 모순이 있다. 위에서 살펴본 《사분율》의 비구니팔경법 8가지 조목과 구족계를 비교하면 《사분율》의 제5 조목을 제외한 모든 조목이 구족계 중 바일제(波逸提)의 내용과 같다. 178조의 바일제가 제정된 동기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사소한 사건들을 일으켜서 제정된 것이다. 178조목 가운데 비구와 비구니 사이에 문제가 생겨서 제정된 것이 11조목이다. 그중 8조목이 이미 제정된 것으로 되어 있는 팔경법과 같은 내용을 어겨서 바일제가 된 것이다.

팔경법이 제정된 취지는 앞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여인 출가의 허용 조건이었다. 교단의 형태가 바뀌는 일대사의 조건부이고, 마하파자파티 비구니의 출가 시에는 구족계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계를 범한 이가 범계에 관련된 재물을 내놓거나 혹은 다른 이에게 참회함으로써 죄가 없어지는 가벼운 바일제에 팔경법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팔경법이 구족계를 대신할 만큼 중요한 법이라면 그 벌도 엄중해야 할 것이다. 이 두 계 사이에 모순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비구니팔경법의 내용으로 보아 후대의 부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은 여러 학자에 의해 제시되었다.

처음에 붓다는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의 요청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사분율》에서 4바라이의 첫째로 ‘음행하지 말라’를 교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붓다의 교단은 불음행을 엄격히 지키고 있었다. 이러한 교단에 이성이 참가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타락의 요인이 증가하는 것이 된다. 또한 당시 출가자의 생활양식(①걸식 ②분소의(糞掃衣) ③수하좌(樹下坐) ④진기약(陳棄藥))과 여성을 연관시켜 보면, 특히 숲 속에서 여성의 독좌 수행이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종교상의 성자였지만, 교단의 관리자이기도 한 붓다로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율전의 기록을 보면 비구니 승가가 형성된 후에 남녀의 문제가 제기되어 계율이 정해진 기록들이 적지 않다. 여성에 대한 출가가 허용된 이후 비구와 비구니 교단 사이에는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불음행을 엄격하게 지켰던 불교 교단에 여성이 참가함으로써 외부로부터의 비난도 많아지는 등 교단의 양상이 달라졌던 것이다. 비구니 교단이 형됨으로써 발생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은 그 책임이 비구니에게 돌려지고, 비구니 교단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 비구들이 팔경법과 같은 계율을 제정하여 비구니 교단을 비구 교단의 하위에 두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1, 제2 결집에 비구니가 참가했다는 기록은 없다. 비구니의 계율은 비구 승가에 의해 결집되었으므로 비구니에 대한 비구들의 의식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여성을 교단에 받아들여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정신세계의 동참자가 될 수 있게 하였다. 붓다가 세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끝내는 허락을 받아낸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와 그의 추종자인 5백여 명 여성들의 용기는 불교의 역사를 빛낸 등불이다. 바라문 교권 제도 아래서 엄격했던 카스트제도를 부정했던 붓다의 평등사상만이 가능케 한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 대해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붓다의 언설을 들어 붓다가 여성을 차별했다고 할 수는 없다.

4. 《장노니게(長老尼偈, Therīgāthā)》

성도(成道)에 있어서 성의 차별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문헌으로 《장노니게(長老尼偈)》가 있다. 《장노니게》는 《장노게(長老偈, Theragāthā)》와 함께 붓다의 제자인 비구니들과 비구들의 게송을 모아 놓은 초기 불교문학 작품집이다. 붓다 재세 시부터 후의 아소카 왕 시대 이후에 이르기까지 2~3백 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이 게송들이 구두로 전해지다가 기원전 80년경에 문자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전해 온다. 보수적인 남성 중심의 교단에서 이 기록들이 살아남아 후대에 전해졌다는 것은 초기의 불교인들이 이 문헌을 성전에 넣을 만큼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며, 그것은 다시 말해 당시의 비구니들의 위상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비구니를 포함하여 73명 비구니의 게송 522수가 수록되어 있다. 《장노니게》에 나타난 당시 여성들의 생활상은 “육신을 굽게 하는 세 가지−절구통, 절굿공이 그리고 포악한 남편”이라는 말이 집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끝없는 육체노동과 가난, 그리고 편견에 시달리고 있었음이 게송의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다. 게송의 작자 가운데는 한 남자를 남편으로 했던 모녀도 있었고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 그 빚을 갚기 위해 첩이 되었던 여성도 있고 기생도 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이들 여성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장노니들은 교단에 들어오면 그들이 속해 있던 카스트를 초월하여 ‘여래의 딸’로서 존재하게 된다. ‘나는 여래의 아들’이라는 비구의 자각에 대하여 ‘나는 여래의 딸’이라는 자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것은 당시 일반 사회의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던 평등권이었다. 그들은 세속의 삶을 청산하고 불법 안에 귀의하면서 평등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장노니들의 게송 어디에서도 아라한이 된다는 최고의 목표에 대한 의심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여성이기 때문에 아라한이라는 목표를 가질 수 없다든지 하는 자기 비하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딸, 아내, 어머니라는 여성의 역할에서 오는 제약이나 고통에 대한 호소는 있으나 여성에 대한 본질적인 열등감은 없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잘 안정되고 지혜가 솟아날 때, 바르게 진리를 관찰하는 데 있어 여인이라는 점이 무슨 장애가 될까 ?”라는 당당한 의식도 보여주고 있다.

붓다가 출가와 재가,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가르친 근본 교설들이 비구니들의 게송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붓다 교단의 평등성은 설법의 내용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비구니들은 사성제라는 진리에 가장 많은 감화를 받고 있었다. 인간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 고통을 없애려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으며,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외치는 비구니가 적지 않다. 장노니들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고통과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 즉 이중고에 대해 토로하고 있으며 그 고통의 원인은 잘못된 견해와 욕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노니게》의 영역자인 리스 데이비즈 여사는 구원, 열반, 아라한과의 성취가 장노니들의 시에서 표현되고 있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괄호 안의 숫자는 표현이 나와 있는 게송의 수)

A.해방 제거의 부정적인 모습으로는

a.열반(5) b.자유(17) c.안락, 죄의 종료(11) d.생성 또는 생의 끝(9) e.갈망의 종료(10) f.휴식(3)으로 나타났다.

B.긍정적인 모습으로는

1)주관적으로는
a.정신적인 교화가 ①빛(12) ②통찰력(8)으로 마음에 그려지고 b.느낌의 상태는 ①행복(5) ②냉정, 고요, 만족(12) ③평화, 만족(11)으로 마음에 그려지고 c.의지의 상태는 ①자제(14)로서 마음에 그려진다.

2)객관적으로는
a.진실(3) b.최고선(1) c.최고의 기회(1) d.절제된 생활(2) e.최고자와의 영적인 교섭(6) f.취미에 맞는 일을 하는 것(5)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표현 가운데서도 ‘더 이상 몸을 받지 않는 것’은 모든 게송에서 직접적인 표현이 없는 경우에도 항상 내재하는 인식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리스 데이비즈여사는 《장노니게》와 《장노게》를 비교 분석하여 장노니의 시에서 성취된 목표가 ‘해방’ ‘자유의 획득’ 등으로 마음에 그려진 비율(23%)이 장노의 시에서 이에 일치하는 비율(13%)보다 높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그 ‘자유의 획득’이나 ‘해방’은 죽음과 재탄생의 순환인 윤회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많은 여성들이 아라한의 과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장노니게》에는 2명의 재가 여성도 과위에 오른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들은 과위에 오르자마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다. 이러한 사실로서 초기불교에 있어서 재가 여성의 성도를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성도가 출가자만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5. 부파불교의 여성불성불설(女性不成佛說)

부파불교에서는 여자에게는 오장(五障)이 있다고 한다. 여자는 제석천과 범천과 마왕과 전륜성왕과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사상이다. 《불설초일명삼매경》에서는 여자가 이 다섯의 인격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열거하고 있는데, 요점은 여자의 성품이 천박하고 수행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파불교에 이르러 붓다에 대한 탐구는 과거불 사상을 낳았다. 붓다와 같은 인격은 왕자로 태어나서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만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유정류로 태어나서 윤회를 거듭하면서 수많은 부처 밑에서 수행하고 이타행을 베푼 결과로 금생에 부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붓다의 과거세의 행적을 말하는 본생담이 만들어지고 붓다 이전에도 이러한 인격이 있었다는 과거불 사상이 생겨났다. 붓다의 전생 수행시대(보살시대) 가운데 제2의 수행시대에 속하는 백겁수행 시대에 석가보살은 그 수행의 결과 남자로 태어나며 32가지의 묘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 32상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다. 32상 가운데 제10상인 음마장상(陰馬藏相)은 여래의 남근이 말처럼 감추어져 있다는 것인데, 여자에게는 남근이 없으므로 부처가 될 수 있는 32상을 구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파불교의 여성관으로 여인오장 가운데 하나인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근거는 이 32상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법음을 직접 들은 직제자들은 붓다에게서 초인적인 면모와 인간적인 면모의 양면을 보았을 것이며, 그 양면이 포함된 인격으로서의 붓다에 대해 귀의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특성이 많은 32상과 같은 모습으로 붓다를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붓다 자신은 외모라는 것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설법을 남기고 있다. 손제자 시대에 이르러 스승을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32상설이 생겼다고 본다.

부파불교 시대에 불교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붓다 재세 시에 비해 상당히 저하된 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호너 여사에 의하면 붓다 재세 시에 인도 여성의 지위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이전보다 평등을 더 누리게 되었고, 여성들의 활동이 가사, 사회, 종교라는 일정한 영역 속에 제한되어 있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지위는 향상되었다. 여성은 더 이상 노예와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여성을 남성과 동물 사이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존재로 여기던 인식은 사라졌으며, 남성과 여성은 인간이라는 공통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이 뚜렷해졌다. 이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붓다의 사성평등관이었다. 불교적인 가르침에 젖어 있는 남성들이 여성도 지성과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붓다의 법을 따르는 남성들의 입장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물 사이의 중간 정도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고집한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러나 여성을 비하하는 인도인의 관념이 너무 뿌리 깊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하고, 폭넓게 존경받았던 고타마의 노력에 의해서조차도 완전히 제거되지가 않았다.”고 호너 여사는 지적하고 있다. 붓다에 의해 향상되었던 여성의 지위는 붓다 입멸 후 시간의 경과와 함께 서서히 저하되어 갔던 것이다. 호너 여사에 의하면 베다 시대와 불교 시대의 여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점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이 불명예라는 강한 생각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지만 불교 시대에 상당히 줄어들었다. 부파불교 시대에 형성된 불신관(佛身觀)과 하락한 여성의 지위가 맞물려 여인오장과 같은 것이 생겨났다고 본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붓다를 숭앙하는 깊은 마음에서 불과(佛果)를 넘보는 불손을 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파불교에서는 남성에게도 붓다와 같은 성불의 도에는 제한이 있었다. 여성이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크게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6. 대승불교의 변성남자성불설과 여신성불

보살사상과 여래장(=佛性) 사상은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사상이다. 대승불교의 주체자는 보살이며, 누구라도 보리심을 일으키면 보살이 될 수 있고,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켜 수행을 쌓아가면 성불에 이를 수 있는 근거는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 대승경전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대승불교의 지지자로 표현되고 있다. 선남자^선여인이라는 말이 대승경전의 도처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대승 교단에서 여성의 지위는 부파불교의 그것과는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교리적으로도, 교단적으로도 부파불교에서 말한 여성의 불성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직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보살행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이에 대해 여자는 남자의 몸으로 변해야 성불할 수 있다는 변성남자성불설(變性男子成佛說)이 나온다. 《법화경》의 〈제바달다품〉에 나오는 용녀의 변성남자성불은 《법화경》이 대승경전에서 가지고 있는 비중에 힘입어 가장 널리 회자되는 변성남자성불설이다.

변성남자성불설은 《법화경》 이외에도 여러 경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설정되어 있다. 부파불교의 여인오장을 부정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변성남자성불을 말하는 경우가 있고(《불설초일명삼매경》 《불설용시녀경》), 변성남자성불을 말하면서도 공사상에 입각해서 남녀의 차별을 부정하는 경전들(《수능엄삼매경》 《무구현녀경》 《장자법지처경》)이 있다. 대승의 수행자는 남녀의 차별에 얽매이지 않고 공의 입장에 서서 평등을 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변성남자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율배반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자로 태어나기 위해 수행해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을 밝히고 있는 경전들(《전녀신경》 《현수경》 《대보적경》 《정신동녀회》 등)이 있다. 그 덕목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불도 수행에 뜻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닦아야 할 것으로, 남자라고 하여 이런 수행을 하지 않아도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 또한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대승의 교리에 입각해 볼 때 변성남자성불설은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다면 대승 교단은 왜 이렇게 석연치 않은 형태의 변성남자성불설과 같은 것을 만들어냈을까. 대승경전이 편찬된 시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르러 완성된 마누법전을 보면 여성은 모멸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당시 인도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알 수 있다. 대승교단 역시 인도 사회 전반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여성에 대한 편견을 아주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변성남자성불설은 당시 사회와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설정한 타협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여성이 얼마나 모멸적으로 취급되고 있는가를 고려한다면 변성남자성불설은 인도 사회로서는 오히려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역설도 가능할 것이다.

중기 대승경전 가운데 재가의 신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마경》과 《승만경》에서는 여자의 몸으로도 성불이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특히 여래장 사상을 말하고 있는 《승만경》에서는 설법의 주체가 부처가 아닌 재가의 결혼한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 여주인공의 설법을 사자후라고 하여 부처의 지위에 올려놓고 있다. 사자후란 부처의 설법에만 쓰는 말로서 부처의 설법만이 사자후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설법의 내용이 결정설이고 무외(無畏)의 설이며 말한 대로 행하고 행한 대로 말하는 언행이 일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주인공인 승만 부인은 부처 앞에서 설법을 하고, 부처는 그 말의 내용이 옳음을 하나하나 증명해 준다. 승만 부인의 설법 내용은 대승 정신에 입각해 보아도 한 치의 틀림이 없다.

승만 부인은 대승보살도를 천명하여 부처로부터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으며 그 성불의 수기를 자신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대승보살도를 실천하는 선남자와 선여인, 즉 일체중생에게 확대하고 있다. 즉 정법을 지키고 정법대로 살기 위해 몸과 목숨과 재물을 아끼지 않는 이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불할 수 있고 중생의 첨앙을 받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승만경》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일체중생에게 성불의 가능성인 여래장이 있다고 말하는 여래장계 경전의 주인공으로서 재가의 결혼한 여성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승만경》은 불교 경전 가운데 여성의 위치를 가장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경전이며, 승만 부인은 가장 이상적인 불교의 여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7. 맺는 말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경전에서 여성이 어떻게 보이고 있으며,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불교의 여성관은 불교 사상의 전개에 따라 변천했음을 알 수 있었다. 붓다 재세 시에 여성은 정신세계의 동참자가 되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성도 비구니가 되어 비구 교단과 나란히 비구니 교단을 형성했다. 이는 종교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어느 종교의 역사에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교조에게 그와 같은 요청을 했는가. 이 여성들이 비구니가 되어 수행하면서 마음의 역정을 담아낸 《장노니게》는, 또한 세계 종교의 역사에서 둘도 없는 문서이다. 그 진지한 종교적 열정과 솔직하게 털어놓는 인간적인 고백 앞에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면서.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불교 여성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다. 여성을 도기로서 인정한 붓다의 평등사상이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바꾸어 놓은 증거물이 아닐 수 없다.

붓다 입멸 후 스승의 설법을 체계화했던 부파불교에 오면 여성에 대한 비하가 심해지고, 드디어는 여인오장설이 나타난다. 부파불교에서는 남성도 성불의 도에는 제한이 있었는데, 여성불성불설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에 대한 편견일 뿐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불성사상과 보살사상의 힘으로 부파시대에 하락했던 여성의 지위가 회복되는데, 초기에는 석연치 않은 형태의 변성남자성불설로, 중기에는 《승만경》을 앞세운 여신성불로 결론을 맺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 온 이 흐름을 조망할 때, 그 변천은 결국 남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 사상, 불교 교단을 이끌어 온 주체자는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교조인 붓다가 여성을 인정한 사상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희석되고 후계자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 여성관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불교가 속한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도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중간에 부정적인 여성관이 있었더라도 《승만경》을 앞세운 여성성불설은 붓다 사상으로 회귀이다. 승만 부인은 정법의 실현자로서 거기에는 남녀 차별적 인식은 없다.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에서 시작된 불교 여성의 역정은 승만 부인에게서 이상적인 정법의 실현자로 회향한다. 불교에서 여성은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가부장적 인식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일반 사회의 경우 여성들의 위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어서 젊은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외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종교의 보수성은 아직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끗이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한다. 불교교단은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남녀 평등관에 입각해서 여성 불자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역할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 불자 자신들은 불교에서 여성이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런 시점에 와 있다.

어느 집단이 다른 집단을 차별하거나 억압하는 근저에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기심이 있다. 이기심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 차별이나 억압이라는 행태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남성의 이기심이 여성을 비인간화시킬 때, 남성도 같이 비인간화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기심은 수행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사회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불교인에게 수행은 무엇인가. 수행자의 마음은 이기심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고, 남자, 여자라는 차이 너머에 있는 그 평등성을 볼 줄 아는 마음이며, 남녀가 대립하기보다는 더불어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유연한 마음이다. 여성 불자들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수행력을 높여 열린 사회의 주도자가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여성 불교를 기대한다. ■

 

이창숙
불교여성개발원 자문위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석사^박사). 대한일보를 거쳐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 중, 1974년 노동조합 결성에 참가, 해직되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강사 역임. 주요 논문으로 〈인도불교의 여성성불사상에 대한 연구〉(박사학위 논문),〈불교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사회교육적 기능〉 〈불교 페미니즘의 회복을 위해〉 등이 있고, 공저로 《1974년 겨울: 유신치하 한국일보 기자노조 투쟁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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