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종
서울대 교수
최근 교과부가 받아들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의 청원에 대하여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를 출판하는 인정교과서 업체 대부분에서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이다.’라는 기술과, ‘말(馬)의 진화’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일반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 일은 저명한 국제적 과학학회지인 《네이처》에서 ‘한국, 창조론의 요구에 항복’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룰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한국고생물학회와 한국진화학회 추진위원회는 공식 반박문을 발표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도 교진추의 이런 행태에 대하여 깊은 우려와 반박의 논거를 담은 ‘창조론 계열이 추진하는 과학 교과서 진화론 부정에 대한 시정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런 상황의 전개는 교진추의 지적이 과학 교과서의 불충분한 과학적 사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생물 교과서에 있는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의 입장을 반영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상황이 교과서에서 진화론과 창조론, 더 나아가 과학과 종교의 문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진추의 개정 청원서를 보면 교과서의 과학적 내용을 지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교진추도 자신들의 청원은 단지 진화론의 오류를 수정하려는 과학 학술 논쟁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 이번 상황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이나 ‘과학에 대한 종교의 간섭’이라는 세간의 시각에 대하여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성경 권위에 도전하는 진화론의 실체를 과학적 견지에서 밝혀 궁극적으로 진화론 교과서를 개정하는 목표’를 갖고 있는 교진추의 구성과 진화론을 가르치면 잘못된 세계관을 지니게 된다는 그간의 언급을 볼 때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종교적 의도를 감추고 과학적 측면을 강조해서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것일 뿐이다. 교진추는 이러한 문제 제기를 계속하고, 기독교계의 언론 매체들은 논란에 대한 균형 잡힌 보도라는 미명하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사람들은 두 관점에 대하여 각각 충분한 근거에 의거하여 논쟁이 되는 대등한 이론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행태는 2008년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졸속 타결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지적에 대하여 정부가 전혀 근거 없는 거짓 내용을 강조, 유포하고 이를 주요 언론사들이 선전함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마치 대등한 과학적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한 상황과 유사하다.

돌이켜보면 이번 교진추의 행태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교과서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과 생물학적 진화론에 대한 논란은 그 역사가 길다. 일부 기독교계가 성서의 창조론에 근거하여 과학 교과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고 이를 법정 소송까지 몰고 가는 행태가 미국에서 벌어진 바 있다. 결국 위헌으로 최종 결론이 났지만, 1980년대 초 미국 남부 일부 주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공립학교 과학시간에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뿐만 아니라 2004년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시 교육위원회는 ‘진화론은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일한 과학이론이 아니기에, 생물학 시간에 지적설계론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면서 교과과정을 바꾸었다가 법원의 제재를 받은 사례도 있다.

이렇게 과학과 종교를 혼재시키는 일부 기독교계의 입장은 국제적으로 창조과학회, 그리고 지적설계론으로 모양을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국내 창조과학회는 현 대통령이 장로로 있는 소망교회를 포함해 온누리교회, 순복음교회 등, 대형교회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또한 창조과학회를 창립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김영길 한동대 총장에게 ‘과학기술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카이스트를 비롯한 특정 대학의 적극적 지원도 잘 알려져 있다. 카이스트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창조과학회의 창조과학전시회를 위한 공간을 교내에 제공해 왔다. 이번 교과서 사태도 그런 맥락에 놓여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되며, 이는 분명히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이고, 더 크게 본다면 종교와 과학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편, 이번 교과서 사태가 현 정권과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현 정권 들어서 그동안 한국 사회에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종교 차별과 여권 정치인들의 계속되는 기독교 지지 발언을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과학 교과서에서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도그마로서의 종교적 내용을 입증 가능한 과학으로 포장한들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기에, 이번 교진추의 황당한 행태는 다른 나라의 전례에서처럼 국내 과학계의 건강한 대응을 통해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생명과학자이자 종교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 입장에서 이번 상황의 전개와 각 관련 단체의 입장을 볼 때, 그동안 종교와 과학 관계에서 유야무야 남겨졌던 부분에 대하여 이제는 우리 사회가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양자의 근본적인 관계 설정이 정리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지금처럼 종교와 과학의 시각이 다를 때 과연 그 둘을 대등하게 놓고 서로 각자의 논리로 설명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과학 내용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종교와 과학에 대한 성찰 부족,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과학주의(scientism)에 대한 자각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과학은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얻은 지식체계이다. 근대과학은 분석적 환원주의에 근거하지만, 반증적 이해를 위한 과학계의 많은 입증 과정과 실증적 자료에 의해 연구되고 뒷받침된다. 다시 말하면 과학연구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research)에 의해 학계에서 인정되고 수용된 것이 과학(science)이다. 반면 종교는 진리와 이를 위한 지혜를 추구한다. 대상에 대해서는 직관과 체험을 통한 총체적인 관계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과학적 분석보다는 이러한 진리의 체험을 통한 신념체계라는 특성을 지닌다.

인간의 삶이란 이성에 의한 과학적 사실만으로, 또는 감성이나 느낌, 혹은 믿음만으로 구성되었다기보다는 이들의 총체적 집합이다.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 어느 것만으로 이루어졌거나 항상 특정한 면만이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서 그런 다양하고 복합적인 측면을 모두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수용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은 과학을 가르치는 생물 교과서이다. 진화론이 이미 많은 검증을 거친 과학적 사실임에도 교진추의 입장처럼 올바른 세계관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 과학 교과서에 창조론도 대등하게 기재해야 한다면, 교진추와 같은 논리에 근거하여 과학자들도 성경에 창조론과 함께 진화론을 기재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누구나 그 황당함과 우스꽝스러움에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지금 교진추의 행태는 이와 같다. 특정 종교인들이 벌이는 일종의 폭력이다. 믿음에 기반한 도그마를 폄훼할 이유는 없지만, 이처럼 종교적 도그마에 대한 믿음이 일으킬 수 있는 폭력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창조론자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과학적인 것으로 증명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굳이 과학이 되려는 종교의 저의는 자신들의 신념 체계를 과학으로 증명해야 그 권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그들이 그만큼 과학을 더 확실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창조과학자들이야말로 종교적 믿음을 과학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천박함으로 가득한 전형적인 과학주의자의 변형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조계종단이 발표한 성명서를 바탕으로 교진추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거를 볼 때 그 취지에는 백분 공감하지만, 종교와 과학에 대한 종단의 일천한 이해가 눈에 뜨인다. 종단의 종회 성명서에서 교진추가 사용하는 동일한 논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회 성명서에서 언급되는 진화론은 성주괴공과 더불어 미래를 보장하는 유용한 이론이다. 더욱이 “모든 생명체는 오직 우리 지구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고 뉴턴의 이론을 부정하는 것이다”라는 성명서 내용은 지나친 감이 있다.

진화론은 생명현상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분자유전적으로도 입증된 과학적 이론이자 사실에 대한 기술일 뿐이고, 외계 생명에 대한 내용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 추정에 불과하다. 뉴턴의 이론 역시 근대적 세계관이라면 몰라도 양자세계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이론이다. 그렇기에 성명서에서 굳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인용하고 더욱이 이미 생물학자 사이에서도 부정된 진화의 발전 개념에 근거하여 교진추의 논리를 반박하는 모습은 종단 역시 이들이 비판하는 교진추와 비슷한 일종의 과학주의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과학으로 증명되어야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시각을 종단 스스로 지니고 있음을 실토한 셈이기에 일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창조론이 과학으로 증명될 수 있음을 주장하는 행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과학은 끊임없이 기존의 과학적 사실을 회의하고 부정하면서 발전해 간다. 종단은 지금 사안에 대하여 단지 진화론과 창조론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과학과 종교라는 차원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아야 했다. 현시대를 규정하고 있는 과학자본주의 시대에 종단 내부에서 보다 치열한 종교와 과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2012년 9월

우희종(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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