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 100km 가 남은 지점에서 남긴 부부의 사진.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 그런 공간이 있어서,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니!

 힘들고 낯설었으면서도, 무언가 익숙한 느낌도 주었던 그 길! 끝내고 돌아서면서 다시 가고 싶어졌던,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리워져서 되돌아보는 길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스페인어로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뜻)’ 우리 부부는 이 길을 걸었다. 2009년 5월 12일부터 6월 7일까지 27일간 500여km를.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기독교의 3대 성지의 하나이다. 카미노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 장 피 드 포르’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프랑스길이다. 그 길이가 798.6km이다. 그 길에는 가리비 안내판과 노란 화살표가 있다.

이 이정표만 따라가면 보통 800km라고 하는 그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리고 순례자들의 숙소, 알베르게가 1백여 개가 있다. 순례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을 만들면 알베르게에서 잘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자는 비용은 시영 알베르게는 3~5유로, 사설은 6~9유로이다. 기부금으로 내는 곳도 있다. 알베르게는 침대 하나를 받아서 잠만 자는 곳이다. 먹는 것은 그 동네의 사정에 맞춰서 각자가 해결한다. 하룻밤만 재워준다.

대부분의 순례자는 아침 7시 전후해서 알베르게를 나와 오후 1~2시경에 걷는 것을 끝내고 알베르게로 들어간다. 침대 하나를 배정받으면,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옷을 빨아서 널고, 그때부터 쉰다.

1993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 길의 유래는 이렇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곱은 스페인에서의 선교활동을 마치고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기독교의 확대를 두려워한 유대 왕에 의해 서기 44년에 참수됐고, 그의 제자들이 산티아고로 유해를 운반했다.

그로부터 800여 년 후 9세기에 한 수도사가 산티아고에서 야곱의 무덤을 발견했다. 이 소식은 기독교도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당시 아스투리아스의 왕이었던 알폰소 2세는 이곳에 성당을 건조한 뒤 자신이 최초의 순례자가 되어 오비에도에서 무덤을 향해 떠났다. 이후 야곱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유럽 각지로 퍼져 많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를 방문, 전성기에는 연간 50만 명이 찾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순례의 증표인 가리비를 지니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성지로 향했다. 이 순례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스페인》 중앙북스)

순례자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NHK의 어느 프로그램에서였다. 특히 순례자를 재워주는 숙소가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정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는 먼일처럼 여겨졌다. 몇 년 후 그 순례자의 길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책으로, 글로 순례자의 길을 소개하고, 순례자의 길을 벤치마킹한 제주올레도 생겼다.

걷기는 우리 집에서는 이미 오래된 생활습관의 하나였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차차 진화해서 걷는 시간이 기도의 시간이 되었고, 행선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 집 거사는 그때 마침 퇴직 후에 시민선방에 다닌 지 10년이 된 때였고, 나는 30대 초부터 불문에 들어와 수행이라는 것을 붙들고 있는 터였다. 안거 후의 용맹정진이라 할까. 우리는 집중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감히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문화의 맨바닥에 우리를 내던져 시험을 쳐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숨은 의도를 품고 거사와 보살이 그 길에 들어섰다. 70대의 부모가 낯선 땅에서 800km를 걸어보겠다고 하니, 자식들도 걱정되는 눈치였다. 공항에서 헤어지면서 그랬다. “이제부터 우리 서로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자. 만날 때까지 각자 자기를 지키는 데만 집중하자.”

새벽 5시 30분쯤부터 일어나서, 소리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짐을 꾸리고,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하고, 신발 끈을 조인다. 침낭, 갈아입을 겉옷과 속옷 한 벌씩, 알베르게에서 쉴 때 입는 가벼운 옷 하나, 약간의 비상약, 세숫비누, 빨랫비누, 치약, 수건 각 한 개씩, 플라스틱 숟가락과 나무젓가락, 작은 보온병, 물통, 플라스틱 컵, 그리고 약간의 먹거리가 전부인 배낭을 몸에 맞게 조율한다.

‘우리가 하루를 살 수 있는 소유물은 이 정도면 족한데,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사는구나! 서울 가면 그 많은 물건부터 털어내야지.’ 하고, 한 번씩 다짐했다. 날마다 새로운 길이 우리 앞에 전개된다. 길뿐만 아니라, 먹는 것과 잠자리, 만나는 사람들이 새로워진다. 오늘 하루도 이 길이 무사하고, 우리뿐만 아니라 이 길을 걷는 모든 순례자가 무사하기를 비는 기도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 오늘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좋고 나쁜 것을 간택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좋은 인연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쁜 인연을 원망하지 않으며, 천천히 걸으면서, 이 길이 우리에게 행선의 길, 기도의 길이 되기를 발원한다.

* 사진설명 : 페르돈 고개의 철조각 순례자상

스페인의 5월 아침, 쩡한 공기와 푸른 하늘, 떠가는 구름까지도 깨끗한 풍광 속에서 걷고 있다는 환희심이 인다. 길가의 들꽃들도 아름답다. 바르를 만나면 까페 콘 레체(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듬뿍 넣은 것) 한 잔을 시키고 배낭에서 먹을거리를 꺼내 곁들여 먹으면서 잠시 쉰다. 점심은 식당에 들어가서 먹기도 하고, 길가에 있는 의자나 풀숲에 앉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먹거리로 해결하기도 한다.

네다섯 시간쯤 걸어서 정오가 가까워지면 슬슬 힘들어진다. 다리도 발가락도 아프고, 짐도 점점 더 무거워진다. 길가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들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도 조금씩 평화를 잃어간다. 오늘 가는 알베르게는 침대가 3층이라는데, 너무 늦어서 3층 침대를 배당받으면 불도 못 켜는 밤중에 내려올 일이 있을 때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드는 날도 있다.

좋고 나쁜 것을 간택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힘을 잃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한 발짝씩 내디디면 드디어는 도착한다. 오늘도 해냈다는 안도감에 마음에 다시 평화가 돌아오고, 침묵 속에서 스페인의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그 길에 들꽃과 맑은 풍광에 취하는 순경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짐이 너무 무거워 다음 알베르게까지 택시로 짐을 배달시켰다(비용은 7유로). 그런데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짐이 오지 않았다. 여기서 짐을 잃어버린다? 이쪽 관리인이 저쪽에 전화하더니 짐이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거였다. 이쪽 관리인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했다. 36유로를 내면 자기네가 직접 택시로 가서 가져다줄 수 있다.

아니면 지금은 안 되고, 내일 그쪽에서 우리가 가는 다음 알베르게로 직접 보내줄 수 있다는 거였다. 분명 그쪽 관리인의 실수인데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는 이 황당한 제안.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36유로를 내고 오늘 짐을 받는 쪽을 택했다. 원망하지 말자, 수업료라고 생각하자. 다음 알베르게에서 우리는 짐을 줄였다. 스테인리스의 등산용 물컵도 버리고, 비행기에서 얻은 아까운 튜브 고추장도 버리고 책도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찢어버렸다. 이제 다시는 짐은 배달시키지 않겠다!

순례의 끝 무렵, 거사가 가슴이 뜨끔뜨끔 아프다고 호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며칠 전 그늘 한 뼘 없는 메세타 지역을 걸을 때, 갓난아기의 걸음처럼 한 발짝씩 비틀비틀 걷는 거사의 뒤를 따라가며 얼마나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외쳤던가. 순례자의 무덤 여럿을 보아온 터였다. 며칠 전 60대의 이탈리아 순례자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두려웠다. 결국 서러움의 울음이 터져 버렸다. 나도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길바닥에 세 번이나 벌렁 누워버린 날도 있었지만, 내가 힘들 때보다는 상대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괴로웠다.

고마움의 눈물도 흘렸다. 앞서 가던 스페인 여성이 되돌아와서 내 짐을 받아주던 일, 길을 못 찾아 망연히 서 있는 우리에게로 어떤 젊은이가 부리나케 다가와서 ‘무엇을 도와줄까요?’ 하고 묻던 일. 힘든 것, 손해 보는 것은 참아냈지만 모욕을 참아내지 못해 화를 낸 순간도 있었다. 곧 알아채고 참회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 나를 내려놓는다는 일이 이리도 어려운 것을! 순경계와 역경계가 날줄과 씨줄처럼 엮여 있어, 맨땅을 구르는 우리에게 흙을 묻히기도 하고 털어주기도 하던 그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황혼녘의 우리 부부에게 어떤 힘든 순간이 다가와도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되찾아주는 값진 체험이었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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