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본주의 구원의 길

송재운
동국대 명예교수
‘도덕 없는 경제’ 이것은 마하트마 간디(Gandi, Mohandas Ka-ramchand, 1869~1948)가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딱 들어맞는 말이 되었다.

간디는 나라가 망할 수 있는 ‘7대 사회악’으로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도덕 없는 경제,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 양심 없는 쾌락을 들었다. 간디의 이 7대 악은 1930년대 인도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면 새롭고도 일면 절실한 정치적,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는 격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특히 ‘도덕 없는 경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 세계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론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은 기업에 특히 도덕성이 문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대표 등 정치, 경제 분야 거물급 인사와 유력 학자들이 모여 세계경제의 발전 방안 등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모임이 ‘다보스 포럼’이다. 그런데 지난 1월 말 열린 이 포럼에서는 ‘자본주의 위기와 그 해법’이 주 의제였다.

 여기서 논의된 것을 일부 요약해보면 자본주의 위기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에 있고,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노·사·정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불만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빈부(貧富)의 양극화가 더욱 큰 문제라는 발언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도 바로 빈부의 양극화에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정부의 정책에도 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더욱더 근본적인 것은 가진 자들의 불건전한 도덕성에 있다. 즉 부자들의 ‘절제 없는 탐욕’에 있는 것이다.

 1년에 수조 원씩 벌어서 이익을 챙기는 대기업들이 그들의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외손자 등 모든 족벌을 동원하여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남 생각하지 않고 막대한 자본력을 밑바탕으로 마구잡이 사업을 벌인다. 재벌들이 동네 골목마다 ‘마트’를 열어 재래시장은 물론 구멍가게까지 망하게 하고 이것도 모자라 빵집, 커피점은 물론 심지어 떡볶이, 순대 장사까지 하고 있다니 참으로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돈을 버는 데에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한다. 재벌 2, 3세들이 국가나 사회에 공헌할 사업 같은 것은 생각도 않고 그저 쉽게 중소 상인들의 밥그릇을 뺐고 동네 상권(商圈)까지도 모조리 쓸어 간다면 그야말로 이 나라는 재벌공화국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망한다.

기업의 사업 다각화에도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고 대의명분이 서야 하는 것 아닌가. 어느 경제학 교수의 말대로 골목상권까지 싹쓸이하는 지금의 상황을 방치한다면 재벌들의 경제권력이 국가 권력을 능가하고 시장경제는 왜곡될 것이다. 또 국민은 재벌들의 절제되지 않은 탐욕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개혁이 필요하다.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기 얼마 전 기독교 교리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한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의 질문 하나.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이 말은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대한 물음이다. 이에 대하여 가톨릭의 한 신부님은 “그건 나눔을 강조한 예수님의 메시지다”라고 답하고 있다. 부자도 이웃과 잘 나누면 천국에 가고 그렇지 못하면 못 간다는 뜻이겠다. 이 성경 구절을 보면 예수 당시에도 부자들의 탐욕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오늘날 부자들은 예수님의 이 메시지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교에는 이타자리(利他自利) 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타는 남을 잘살게 돕는 것이고, 자리는 곧 내가 사는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대승의 보살도이다. 우리 말의 ‘살림살이’는 이 가르침, 즉 이타자리를 뜻한다. ‘살림’은 남을 도와 살리는 것이고 ‘살이’는 나 스스로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살림살이를 잘한 집안으로 우리는 통칭 경주 ‘최부자 집’을 꼽는다. 최부자 집은 9대 진사(進士), 12대 만석꾼을 지낸 집안이다. 지금은 재산이 다 영남대에 들어가 있지만, 최부자 집이 4백 년 이상을 만석꾼으로 부와 명예를 누려온 데는 그 집안 나름의 독특한 철학(家訓)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마라.
(문반의 신분은 유지하되 부와 권력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만석이 넘으면 나머지는 소작인의 몫으로 하여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연간 수입 3천 석 중 1천 석은 접대에 썼다.)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매입하지 마라.
 (흉년이 들면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전답을 헐값에 팔게 되므로 이를 사서 그 들을 아주 못 살게 하면 안 된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는 인연법의 공생을 위해)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살림살이의 내부 경제권을 가진 부녀자들에게 절약, 근검을 익히게 하기 위해)

이상에서 본 최부자 집의 가훈은 동양 전통의 유교적으로 보면 인의(仁義)의 큰 실천이요, 불교적으로 보면 두말할 것도 없이 무한한 이타자리의 보살행이다. 그리고 서구의 개념으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미국 경제의 중심 월가에서는 “상위 1% 부자들의 탐욕 때문에 나머지 99%의 사람들이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군중 시위가 근래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시위대들의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부자들도 이런 비판을 받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려면 최부자 집 가훈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귀중한 정신 자산인 ‘살리며 사는’ 우리말 ‘살림살이’를 깊이 새겨 몸소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일본에서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80) 교세라 그룹 명예회장은 얼마 전 방한 중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처님의 말씀에 만족을 알라고 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것 때문에 발전도 하지만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본주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법률과 규칙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욕망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이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다. 배가 불러도 사냥하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는 사자(獅子)의 절제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요약하면 그의 경영철학은 자비와 사랑, 그리고 절제이다.

 ‘살리며 사는’ 대승의 보살도,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그리되면 부자들도 자연 존경받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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