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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 불교계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 손혁재
손혁재 재가연대 자문위원
[31호] 2006년 06월 10일 (토) 손혁재 nurisonh@naver.com
1. 머리말

   

2007년 12월에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대통령 선거는 특정한 정치인이 당선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이끌어갈 바른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고 국민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17대 대선의 가치인 것이다.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선거 때가 되면 불교계에 선거 바람이 불어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선거 바람은 불어올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교계는 어떻게 맞이하여야 할 것인가? 불교계는 대통령 선거가 세속적인 일이라 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맞이해서는 안 된다.

불교가 세속의 권력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해서는 안 되지만 현실을 나 몰라라 외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불교가 관심을 갖지 않아도 대통령 선거는 치러지고 누군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것이다. 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의 질이 결정되며 불교계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세속적인 일이지만 불교계가 대통령 선거 나아가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관심을 기울여야할 부분은 불자 대통령이 탄생할 것인가 하는 데 있지 않다. 불자 대통령의 탄생은 좋은 일이다. 불자 대통령을 통해 불교의 교세가 확산될 수 있다면 그것도 굳이 막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자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거나 불교 공약이 그럴듯하다고 해서 지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섣불리 불자 대통령이나 불교의 확산을 꾀하는 것은 자칫 불교를 통속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불자의 당선이 불교의 발전에 꼭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불자 대통령도 있었고 불자 정치인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불교의 개혁과 발전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봉은사 사태 때 권승 무리들이 내세운 명분이 노태우 후보가 불교신자라는 것이었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불교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없었다는 것이 교계의 평가이다. 또 개신교 신자이거나 천주교 신자였던 대통령이나 총리가 개신교나 천주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불교신자냐 아니냐를 떠나 특정 후보자가 한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꼭 필요한 인물인가를 봐야 한다. 불교 현안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표를 담보로 한 밀실 거래가 아니라 당당하게 현재 한국불교, 나아가 모든 종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불교와 정치

불교에서 정치를 바라보는 근본 입장은 무엇인가? 삼계를 떠난 수행자가 속세에서 벌어지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 또한 불교이기에 초연하게 지낼 수만은 없다. 이제는 불교가 계속 산중에만 머무르면서 사회 정치 문제에 등을 돌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불교의 기본 교리가 고통 속의 중생을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원래 승과 속은 둘이 아닌 하나(僧俗一如)이다. 그러나 산림불교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 불교는 세속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상당히 강했다. 특히 해방 이후 종단 정화 과정에서 권력이 강하게 개입했고, 이 때 권력과 밀착한 권승 집단이 나타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과거처럼 권력과 결탁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실 정치에 적극 관심을 갖고 할 말은 해야 한다. ‘출세간의 종교’, ‘산중 불교’라는 인식이 강해서 현실정치에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장 큰 서원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는다”는 유마경의 말은 불교의 정치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

<법구비유경>에서도 “여래가 세상에 온 것은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약사여래의 본원도 남에게 매여 자유롭지 못하거나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이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뜻이다.

불교의 기본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에서도 불교의 정치관을 읽을 수 있다. ‘상구보리’를 위해서는 세속적 사회를 떠나야 하지만 ‘하화중생’을 위해서는 세속적 사회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밖에도 부처의 가르침 가운데 곳곳에서 정치관을 읽어낼 수 있다. “보살이 보시 바라밀을 닦고 있을 때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고 의식에 궁핍한 중생을 보면 바로 다음과 같은 서원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그곳에 따르고 그 때에 따르는 방법으로 보시바라밀을 닦아야겠다.

그래서 내가 이윽고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는 내 불국의 중생에게는 절대로 이와 같은 궁핍이 있게 하지 않겠다. 의식이나 생활용품은 충족하여 모자람이 없고, 마치 천상계와 같이 만들어야겠다라고.” “가정에 상류 중류 하류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나의 불국에는 이와 같은 우열이 없게 하겠다는 원을 일으켜야 한다.”

불교계가 한국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 ‘올바른 정치 구현’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것’, ‘불자들이 원하는 것’과 무관하게 종단 지도자들이 종단의 이익이나 지도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권력과 유착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종단이나 종단 지도자의 이름으로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스님들도 정책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가질 수 있고, 이를 직접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다.

다만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 참여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참여나 지지가 마치 불교계 전체의 참여나 지지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정책을 불교계의 관점에서 검증할 수는 있지만 불교계 전체가 특정인을 지지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부산에서 열린 ‘모든 절이 다 무너지도록 기도하라’는 모 선교행사에 영상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두고 종단차원에서 비판하고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 후보를 종단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

정치인은 자신이 믿는 종교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을 화합시키고 묶어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특정 종교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통령은 안 된다. 더욱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정치인이 공개적인 종교활동과 언행으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대통령이 특정 종교를 믿는 것은 자유이다. 다만 이로 말미암아 종교에 대해 불평등한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 국교가 인정되지 않고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정교분리의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국가 최고 지도자라는 지위에 걸맞지 않게 지나친 개신교 편향적 언행을 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육군 제17사단의 훼불 사건과 1996년 4월의 방화 사건이라든지 또 종단개혁 과정에서도 공권력 투입이 지나쳤고, 조계사로 피신한 한국통신노조 간부들을 연행한다는 핑계로 조계사에 경찰이 난입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종교적 편향을 지닌 정치인이 자칫 종교분쟁을 가져와 마침내 국민 통합을 저해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불교는 오랜 호국불교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호국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다. 불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호국불교란 국가 발전을 불교 발전으로 보는 현실 국토 완성의 의지가 나타난 호국사상이다. 호국불교가 결코 왕권에의 굴복이 아님은 불교가 배척당했던 조선 시대에 나타난 승병의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 이후 불교는 일부 권승(權僧)이 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타락한 것으로 비쳐졌다. ‘닭벼슬보다 못한 것이 중 벼슬’이라는 것이 불가의 오랜 가르침이었다. 권승의 무리가 이 가르침을 잊어버리고 권력에 빌붙어 종권(宗權)을 제멋대로 휘둘러왔다. 종권을 둘러싼 종단 내부의 다툼이 정치권력의 부도덕한 음모와 맞물려 불교를 타락시킨 것이다.

불교 타락의 뿌리는 일제시대의 사찰령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일제 총독부는 우리 불교계를 손아귀에 넣기 위하여 사찰령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친일 주지를 임명하였다. 이렇게 권력에 예속된 불교는 해방 뒤에도 권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을 ‘보살의 화현’이라고 추켜 주는 작태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하는 과정에서 친일파를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친일 승려들이 득세함으로써 왜색 불교 친일 불교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친일 승려들이 이승만 정부에 밀착되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불교를 정화시킨 공은 정당하게 평가해 주어야 한다. 불교정화를 통해 비구승의 전통을 회복하고 승려들의 타락과 부패를 척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화방식이 타율적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된 측면도 있다. 이승만 정부가 불교정화를 시작한 시기는 1952년 7월 1일 피난수도 부산에서 정치 파동을 일으킨 끝에 발췌개헌안을 억지 통과시킨 직후였다.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하여 불교정화를 시작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불교정화가 자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권력에 의지함으로써 권불유착의 소지가 마련되고 고질적인 종단 내분이 시작되었다.

3. 17대 대선을 맞이한 불교계의 과제

17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불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불교가 세속적인 일에 너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정치가나 출마자들만 관심을 가질 일은 아니다.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이 국가의 앞날과 국민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올바른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정치와 국가의 주인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불교계는 대통령 선거를 강 건너 불 보듯이 하지 말고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대통령 선거에 불교도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불교계에서는 대선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가. 대선 국면을 맞아 불교(종단, 사찰, 스님 및 재가신도를 포함하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가 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나 불자 대통령 또는 불교에 우호적인 대통령의 선출이라든가 이에 따른 불교계의 위상 향상을 주장하는 정도이다.

불자 대통령의 선출이 아니라면 불교계는 어떤 방식으로 대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지난날의 선거에서 불교계 일부 단체와 불교 언론이 벌인 후보초청 정책토론회 같은 것이 좋은 본보기이다. 지금까지는 각 후보의 공약을 일방적으로 들어보는 수준에 그쳤으나 이제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공약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불교계만의 이익을 위한 공약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1995년 현재 2천2백60만 명 정도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50.7%에 해당된다. 이 가운데 불교 신자가 1천32만 명(23.2%)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개신교 876만 명(19.7%)-천주교 2백95만 명(6.6%)의 순으로 나타났다. 2003년의 통계청 조사는 구체적인 인구수는 나와 있지 않지만 종교인구 비율은 1995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구 비율로 볼 때 대통령 선거에서 불교계의 영향력이 가장 크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역대 선거에서 불교계는 그 비중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단지 공략하기 쉬운 표밭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이다. 역대 선거에서 불교계는 이른바 선거 바람에 많이 흔들렸다. 불교계의 지지를 얻기 위한 각 후보들의 노력이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불교계가 선거에 이용되면서 불교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위상이 흔들렸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나타났던 상무대 80억원 비리 사건이다.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과 조기현 전국신도회장이 개입한 이 사건은 종단 개혁을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불교계가 권력에게 얼마나 우습게 보였나를 증명해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상무대 비리의 핵심은 신성해야 할 사찰이 검은 돈의 세탁 장소로 이용당했다는 점에 있다.

이 같은 부끄러운 일은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도 있었다. 불교 내부의 갈등이었던 이른바 봉은사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봉은사 사태의 본질은 권승 무리들이 여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빌붙어 벌인 충성경쟁이다. 권승들은 사찰 법당에다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위한 기도”라는 현수막을 공개적으로 내걸고 법회를 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자 권승들이 공권력을 동원해 반대세력을 탄압한 것이 바로 봉은사 사태이다.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불교계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여당의 김영삼 후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자 후보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지역성이나 기존의 친여적 속성을 뛰어넘지 못했고, 또 당시 권력과 밀착해 있던 서의현 총무원장과 조기현 신도회장의 역할이 컸다. 서의현 총무원장은 대통령 선거 이전에도 “3당 합당은 구국의 결단이며 김영삼 대표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지도자”라느니 “불교 중흥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개신교 장로인 김영삼 후보는 지나친 기독교적 편향을 보여 주었다. 김영삼 후보는 1987년 13대 대선 때 “청와대에 찬송가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 “주일날 유세를 하지 않겠다”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이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처음에는 반(反)김영삼 정서가 강했다. 13대 대선 결과 노태우 후보의 불교계 추정 득표율이 45.4%인데 비해 김영삼 후보의 득표율은 그 절반이 약간 넘는 24.5%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불교계는 오히려 정주영 후보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반김영삼 정서가 친김영삼으로 바뀐 것은 권불유착 때문이었다.

또 이와는 별도로 김영삼 후보 진영은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 아래 민족불교중흥회라는 선거 조직을 만들어 전국 사찰에 수백만 원에서 수십만 원에 이르는 시주금을 내놓았다고 당시 언론은 보도했다. 이를 보면 김영삼 후보 측의 불교계 표 공략이 주로 돈 잔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17대 대선을 앞둔 지금도 그런 일들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사찰을 방문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선덕여왕 이후 여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박근혜 뿐”이라는 덕담(?)을 한 스님이 있다고 한다. ‘필승’이라는 글씨를 써 준 스님도 있다고 한다. 어떤 교계 지도자 스님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방문하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오면 마중도 안 나가고 차갑게 대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불교가 종단 차원에서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자칫 권력의 불교 간섭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계는 선거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른 대통령 만들기 운동이나 부정선거감시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예전의 선거에서도 불교 단체들이 ‘공명선거실천협의회’를 결성해 공선협과 손잡고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불자들은 불자 후보라든가, 불교 공약을 따져보기 전에 대통령 선거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지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 깨끗한 선거에는 유권자 개개인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투표는 그저 한 표를 던진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올바른 한 표를 찍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돈을 받고 표를 파는 행태를 계속 보이는 한 후보들은 돈 선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돈, 지역감정, 색깔론, 흑색선전 등 비합리적 요소에 흔들리면 정치인들은 그런 것들을 계속 이용하려 할 것이다. 깨끗한 선거는 유권자의 적극적이고도 자발적인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17대 대통령 선거는 극심한 지역갈등과 계층갈등, 그리고 남북갈등을 통합하고 조정하며, 개혁의 과제를 적극 추진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이다. 따라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이 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인지, 그 과제 해결을 위해서 다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품성은 무엇인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선거의 의의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유권자들은 ‘좋은 대통령’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요소들에 의해서 당락이 결정되는 낡은 선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들이 ‘공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공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다고 평가된 후보들 가운데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누가 가장 잘 갖추었는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공인으로서의 자격’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주요한 공직을 맡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한다. 바로 도덕성과 청렴성, 그리고 납세와 병역 등 국민의 기초적 의무 이행에 흠이 없어야 한다.

이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첫째, 국정수행 및 통합조정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둘째, 민주성과 개혁성을 갖고 있는가. 셋째, 일관성과 책임감을 지녀 신뢰할만한가. 넷째,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가.

대통령은 다양한 국민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수렴해서 국정운영에 반영시켜야 한다. 사회에서 또는 정치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갈등과 이해관계의 대립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역할도 차기 대통령이 떠맡을 숙제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지역갈등을 조장하거나 남녀 차별적 언행을 하는 정치인,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남북문제를 접근하는 정치인, 민생안정과 복지확대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정치인은 다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 또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소신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모든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등 공인이라면 국민 앞에 한 발언과 약속을 정치생명을 걸고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고위직 인사들의 말 바꾸기와 약속 지키지 않기, 소신을 저버린 행동에 대한 국민의 환멸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만큼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동의 신뢰성과 책임성은 각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국민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에게 강한 도덕성과 신뢰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밖에 대통령에게 필요한 능력과 자질로 맡은 일에 대한 뜨거운 정열, 국정전반의 식견,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앉히고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인재를 받아들이는 용인술, 통솔 능력, 결단 능력,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용기 등을 꼽을 수 있다.

4. 맺음말

과거 정치권에 비춰진 불교계의 인상은 ‘총무원만 잡으면 불교계는 끝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후보들이 불교계에 약속한 정책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불교계 스스로가 자초한 업보다.

불교계가 불국토 실현이 목적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특정 정권, 특정 개인 정치지도자에게 매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인들로 하여금 불교를 쉽게 보고 불교정책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든 것이다. 정치인을 탓하기에 앞서 불교계의 책임이 크다.

오늘날에는 정치와 행정, 국가 권력이 국민의 삶에는 물론 불교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불교는 국민의 고통에 함께 하거나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사회적 구실에 소홀했다. 종교가 사회에 대하여 할 말이 있으면 하고 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한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인간성의 상실로 황폐해진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고통 속의 중생을 구원하고 불국 정토를 구현한다는 기본 교리에서 볼 때 불교가 대통령 선거나 정치를 세속의 일이라 하여 비켜서서는 안 된다.

손혁재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정치학 박사. 전불련 중앙위원, 재가연대 자문위원, 달라이라마 방한 준비위원회 대변인, 안양불교청년회 지도법사 역임. 현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경기대학교 정치교육원장. 저서로 《새천년 한국시민사회의 비전》 《김대중 정부개혁 대해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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