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사람들이 서로 돕는 것이 사회복지이다. 사회복지의 대상자를 중심으로 사회복지를 정의한다면 ‘사회복지란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상부상조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체로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고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소위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한 과정에 상부상조라는 전통적 용어 대신에 사회사업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회사업이란 말은 초기에는 한국 전쟁 이후 많은 고아들을 수용하는 시설을 경영한 기독교 계통의 사업을 일컫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 한국 사회에서는 기독교계의 조직이나 인사들이 사회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한국불교는 사찰을 중심으로 전통적 의미의 구호사업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나 워낙 대규모의 원조사업이 미국과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사찰의 구호사업은 미미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60~70년대의 본격적인 근대화의 결과로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가 사회문제화되고 1980년대부터 사회복지라는 용어가 화두가 되는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특히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 환란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복지가 제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불교는 사실상 오랜 옛날부터 사회복지를 실천해왔다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 과부, 고아, 홀로인 노인)에 대한 구휼 등은 불교를 국교로 하던 고려시대에 사찰을 중심으로 상부상조 활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을 겪으면서도 불교의 상부상조 활동은 그러한 전통을 이어왔다. 그러나 근대 한국 사회에 이르러 사회복지라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면서 서양 학문의 이론과 방법론을 빌려 좀 더 체계적으로 구호활동을 펼치는 국가적 차원의 상부상조 제도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드디어는 불교복지라는 용어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특히 조계종단의 불교 개혁운동 이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설립되어 많은 종합사회복지관 내지는 전문복지관을 운영하게 된 것도 불교사회복지 발전의 큰 계기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이러한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를 대변하는 한국 정부의 복지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왔는가, 아울러 그 특성은 무엇인가, 불교복지는 그러한 과정에서 어떻게 반응하였으며, 향후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정책 방향에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좋겠는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 한국 복지정책의 발전과 전망

1) 한국 복지정책의 발전과 특성
(1) 한국 복지정책의 발전
한국 복지정책의 발전은 대체로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선사업 단계요, 둘째는 잔여적 복지 단계, 그리고 셋째는 제도적 복지 단계라 할 수 있다.
자선사업 단계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61년 5·16 전까지 한국 사회가 제도적 변동을 겪던 시대를 말한다. 즉, 자본주의 제도가 인간과 시대정신에 영향을 끼쳤던 상황 속에서 사회복지 역시 자선사업 중심의 사회사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자본주의제도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정치경제 시스템화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미국의 사회사업이 도입된 것이다. 특히 해방 후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동족상잔의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대량의 구호대상자가 발생하자 1952년부터 1957년까지 한미 공동으로 실시되었던 난민정착사업과 UN 등 우방국가로부터 보내온 난민구호물자 등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시대를 자선사업 단계로 부르는 것은 그와 같은 연유에서이다.
두 번째는 잔여적 복지 단계이다. 1960년 4·19 학생혁명을 계기로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의 장면 정권은 1년 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 후 전두환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대까지는 부족한 정통성(legitimacy)을 업적을 통한 효율성(efficiency)으로 보충하고자 했다. 박 정권은 민정이양이라는 대국민 약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생활보호법(1962), 산재보험법과 의료보험법(1963)에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이 법들은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었으므로 실제로 서민이나 중산층을 위한 내용을 지니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았다. 생활보호법은 65세 이상의 고령자, 18세 미만의 아동, 임산부, 불구자, 폐질자, 기타의 요보호자 등에 한정되었고, 산재보험은 500인 이상의 종사자가 있는 대기업에서만 적용하도록 하여 사회보험으로서의 성격이 매우 희박하였다. 의료보험은 임의적용으로 하여 사회보장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강제적용의 원리가 배제된 채 통과되었다.
전두환 정권 역시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후 부족한 정치적 정통성을 메우려 사회복지에 관심을 보였다. 전 정권은 민주·정의·복지 사회의 실현이라는 구호와 함께 1981년 노인복지법, 아동복지법, 장애자복지법, 1982년 유아교육진흥법 등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 관련법들은 실제적으로 서비스 대상 전체를 포함하는 복지의 보편성이나, 서비스 내용의 포괄성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세 번째는 제도적 복지 단계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 이르는 이 시기는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제도와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의 요구가 더 이상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며 시대적 과제임을 누구에게나 각인시켜 주었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파장은 사회복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지금까지의 형식적인 복지제도의 운영을 가급적 내실 있게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한편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국정의 목표로 삼아 제도적 복지시대를 확실히 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2000년부터 공공부조 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 시행함으로써 국가가 국민의 최저생활을 권리로서 보장하는 정책을 펼쳤다. 공공부조는 사회보험 및 사회복지서비스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회보장의 하나이다. 공공부조는 1961년 제정된 생활보호법에 의하여 생활무능력자에 대해서만 최저생활을 보장했다. 이것이 IMF 환란위기 이후 국민의 정부에 들어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뀌면서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저소득층에 대하여 국가가 생계, 의료, 교육 등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게 한 것이다.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면 수급자가 될 수 있었으며, 일을 통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자활지원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수급자 선정에서 친척 등 부양자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는 등,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국민의 빈곤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이 제도는 한국이 제도적 복지의 단계에 자리 잡게 된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1999년 1월 국민건강보험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2000년 7월부터는 모든 의료보험조합의 관리운영이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 단일화되었다. 또한 1999년 4월부터는 본격적인 전 국민 연금시대가 막을 올렸고, 산업재해보상보험은 1998년 상시근로자 4인 이하의 농업, 임업, 수렵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근로자 1인 이상을 고용하는 전 사업장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였다. 한국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민의 정부에 이르러 사회복지의 제도적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2) 한국 복지정책의 특성
첫째, 한국 복지정책의 특성으로는 이념적 복지혼합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국민의 정부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실시하고 사회보험제도와 사회복지서비스의 확충을 위한 노력을 경주한 결과 한국은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제도적 복지국가의 반열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념적인 면에서 볼 때 국민기초생활보장을 국가가 책임진다거나 모든 국민에 대한 건강보험제도 실시 등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성격이 있는가 하면,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수용한 노동유연성의 확대를 통해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한 점과, 근로연계복지를 강조하는 점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근래에 들어와 보육정책과 아동교육에 대한 정책 등을 보면 제3의 길에서 표방하는 사회투자국가적 성격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념의 혼합된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전체적으로 복지혼합(welfare mix)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독특한 행보가 바로 한국적 복지국가의 모형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 측면에서 평가하여 한국적 복지모형이란 말도 가끔 등장하고 있다. 물론 복지혼합 현상이 한국만의 특성은 아니며, 전반적으로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한 영국 등 선진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다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압축적으로 동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복지혼합의 특성이 좀 더 잘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둘째, 비형평성 문제다. 이것은 공공부조, 사회보험(연금보험,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정부 지출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대체로 이들을 포함하는 전체 공공사회지출은 보건복지부 자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10년사〉(2010)에 따르면, GDP 대비 6.9%로서 OECD 평균 20.6%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부조가 전체 공공사회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1%로서 OECD 평균 7.3%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이 말은 공공부조가 전체 복지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큰 편이라는 뜻이다. 즉, 공공부조 수급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요소 소득 비율은 한국이 높다. 한국 수급자의 공공부조급여 35%, 사회보험급여는 3%, 시장소득은 46%이다. 스웨덴의 공공부조 수급자는 공공부조급여는 18%, 사회보험급여가 58%, 시장소득이 40%이다. 독일은 공공부조급여는 23%, 사회보험급여의 비중이 26%를 넘고 시장소득이 64%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수급자는 전적으로 시장에 의존하는 편이어서 공공부조급여(7%)나 사회보험급여(4%)의 비중이 모두 작다. 우리나라의 공공부조 수급자의 경우는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해 공공부조급여 비중이 크고 사회보험급여가 적어서 제도 간 비형평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도 사회보험의 기능이 대폭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사회적 배제의 문제이다. 공공부조의 경우, 무엇보다 수급자 자격획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부양의무를 지닌 아들, 딸의 실제 도움도 받지 못하면서 수급자도 되지 못하는 빈곤 노인들이 방치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은 포괄해내지 못하는 사회적 배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 1990년대 후반부터 국민연금 가입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도 급속하게 늘렸지만, 실질적으로 비가입 상태에 있어 보험급여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속하는 인구가 많다는 점에서도 사회적 배제의 문제가 나타난다. 고용보험 가입자가 2010년 7월 현재 1,000만을 넘어섰다 하나 가입률이 41%에 불과하여 아직도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내지 일용 노동자가 10명 중 6명꼴인 셈이다. 한편 산재보험은 1964년 도입돼 40년 가까이 흘렀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고용보험과 마찬가지로 피보험 대상자를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기준 우리나라의 산재보험 피보험자는 1,253만 명으로 취업자의 50%에 불과하다.
넷째, 불충분성 문제이다. 수급자에게 지급하는 최저생계비는 최저생활을 하기에 부족하며,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도 불충분하다. 근로장려세제는 공공부조제도를 보충하기 위하여 수급자보다는 생활정도가 낫지만 여전히 빈곤한 차상위 계층을 주 대상으로 하여 2008년 도입되었다. 저소득 근로자 가구가 근로를 많이 할수록 급여를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실제로 그 급여가 연 최대 120만 원으로 제한되어 있어 빈곤을 완화하기에는 불충분한 수준이며, 대상도 제한적이어서 그 기능을 다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취업 근로빈곤층에 대한 지원제도로서 근로장려세제의 대상과 급여를 대폭 확대하여 근로빈곤층에 대한 일차적인 지원제도로 자리 잡게 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로 동기 저하 문제를 완화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사회복지서비스 부문에서 나타나는 중복성의 문제이다. 2010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개최한 ‘사회복지시설 특성화·다기능화 전국 확대 대비 공청회’는 그러한 사회복지서비스의 중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복지서비스 중복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이 공청회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와 보건복지부가 대전 중구, 전남 담양군 등 전국 8개 시·군·구에서 사회복지시설의 획일적 운영에 따른 기능 중복과 지역 간 시설인프라 불균형 최소화를 위해 민간사회복지 전달체계 개편 차원에서 추진되었던 사업의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나타난 주장은 수요자 중심의 민간사회복지 전달체계 구축을 위해 사회복지시설의 기능을 지역별 여건에 맞게 특성화·다기능화하는 시범사업은 같은 지역에서 2개의 사회복지관을 통해 대상별 특성화를 추진한 결과, 특정대상에 대한 전문적 서비스 제공이 서비스 품질 제고는 물론 서비스 불균형 해소에도 큰 성과를 보였다는 것이었다. 또한 사회복지시설의 편포 현상이 초래한 지역의 불균형적 복지 수준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과거에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미비한 상태에서 복지시설이 무분별하게 양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업무의 중복성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3. 한국 불교복지의 대응 방향

1) 한국 불교복지의 현황과 특성
(1) 한국 불교복지의 현황
위와 같은 한국의 복지정책 정향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불교복지는 과연 어디쯤 와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불교복지는 이제까지 정부의 복지정책에 발맞추어 새롭게 태어나고 있으며, 불교와 사회복지와의 조화를 실천을 통해 이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계기는 1994년의 조계종단의 불교개혁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젊은 승려들이 시작하여 원로 스님과 재가불자들까지 함께하였던 것으로 이후의 불교 운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95년 2월 25일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의 설립을 계기로 하여 많은 사회복지관을 운영하게 된 것도 그러한 종단개혁운동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민주화 운동의 진작과 더불어 사회복지의 제도적 발전이 이루어졌듯이 불교계 역시 민주적 개혁운동이 전개되어 본래 불교의 자비와 보시의 진면목을 찾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복지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1사찰 1복지관 운동도 나타나게 되었고, 급기야 기독교나 천주교의 앞서 가는 복지사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많은 복지시설이 설립되면서 불교계 복지시설의 약 80%가 이 시기에 운영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0년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재단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면서 ‘불교사회복지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특별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종교계의 사회복지시설은 종단별로 동일한 작성 기준에 의해 파악되지 않고 있으므로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기는 하나, 종단별 통계를 그대로 인용할 때 천주교 1,264개, 불교는 1,148개(원불교 190개 포함), 기독교(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감리회) 1,097개로 나타나 있다. 이 자료로 종단별 수평적 비교는 어렵겠지만, 불교계의 짧은 사회복지 참여 기간을 참조할 때 상대적으로 큰 기여를 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부분의 불교 사회복지시설은 노인, 영유아, 장애인 중심의 시설로서 71%를 차지하고 있어 향후 아동·청소년, 다문화/이주노동자 관련 사회복지시설의 점진적 확충이 필요한 상태이다. 아울러 이들 사회복지시설의 과반수가 서울, 경기, 경북에 집중 분포되어 지역 간 복지서비스 격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시설 종사자들은 대개 여성(76%), 20~30대(77%), 대졸/전문대 졸업(83%), 5년 미만 근무자(80%)였으며, 연봉은 대개 1,500만 원~2,000만 원 43%, 2,000만 원~2,500만 원 32%였다. 시설 종사자에게 필요한 지원 사항으로 첫 번째는 적정급여(53%)였고, 둘째가 자기계발(19%)인 것을 보면 이들의 급여가 현재 적정하지 않으며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기계발을 위한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끝으로 불교계 사회복지시설의 총수입 규모는 2009년에 약 2,928억 원이었고, 시설당 평균 세입이 약 6억 원이었다. 이 중 과반수가 정부 보조금이고, 사업수입은 15%, 요양급여 수입 13%, 후원금 6% 수준이었다. 동년도 지출은 인건비가 약 50%, 사업비가 30%였다. 이러한 사실은 국고 보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사회복지서비스가 이루어지는 초기 단계의 성격상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법인전입금 확충이나 사회적 기업 등, 복지경영을 통하여 부족한 급여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일이다.
(2) 한국 불교복지의 특성
한국 불교복지의 특성은 첫째, 불교가 보시의 종교라는 데 있다. 불교라는 동양종교와 사회복지라는 서양 학문의 접합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도 불교 자체가 매우 복지적인 보시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 복덕이 무량하다는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남을 도와주고도 티를 내지 않는, 즉 도와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며, 생색을 내는 순간 복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누천년에 걸친 환과고독에 대한 구휼의 전통은 불교의 전유물만은 아니지만, 조선시대 500년의 숭유억불 시기에도 지속되었던 불교적 전통의 구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일본강점기의 선교사들에 의한 교육사업과 사회사업, 그리고 해방 후 미국의 남한 진주와 함께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쟁고아와 상이군인 등을 위한 미국식 사회사업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전개됨으로써 불교는 구휼의 내적 전통만 지닌 채 한동안 사회사업 현장에서 밀려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불교와 복지의 결합은 보시가 중심에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불교복지는 보시를 통해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부상조의 체계이며, 대승적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다.
둘째, 한국 불교복지의 특성은 불교가 지니고 있는 생태성이다. 불교의 본질적인 사상 가운데 하나는 화엄사상의 핵이라고 알려진 인드라망 공생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드라망 공생체는 심층생태학보다 더 심층적인 생태학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불교생태학의 결정체이다. 이는 획일성을 지닌 공동체(共同體)가 아닌, 인간과 자연까지를 포함하여 다종다양함을 근본으로 하는 인드라망에 의해 함께 살아가는 공생체를 지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복지를 일컬어 불교생태복지라 하겠다.
필자는 〈생태와 불교복지의 만남〉이란 논문에서 불교생태복지를 “깨달음과 나눔을 중심으로 자연 생명의 평화적 공존과 번영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주관적 복지, 즉,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불교와 복지의 만남은 생태를 중심으로 연결될 때 그 의미가 빛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불교생태복지를 다시 정의한다면 그것은 “깨달음과 나눔을 통한 공생체(共生體)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셋째, 한국 불교복지의 특성은 현실지향성이라 할 수 있다.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호국불교임을 자처해온 측면이 적지 않으며 많은 왕사와 국사를 배출한 종교이다. 그리고 조선시대를 빼고는 근대 한국에 들어와서도 두 번의 법난이 있었음에도, 국가를 대변하는 정부와 잘 지내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를 위해 크게 기여하지 못한 측면도 비판받아야 할 일이기는 하나 한국 불교의 현실지향성이 나타난 한 형태일 수 있다. 나아가 근래에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지나친 불교 차별에 한때 갈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대체로 불교는 부처님의 대승적 가르침과 방편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잘 적응해왔다고 하겠다.
사회복지라는 서양 학문에 대한 적응도 비교적 현실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1981년 원광대학교에 사회복지학과가 설치된 바 있고, 1987년 동국대학교 사회대학(경주캠퍼스)에 사회복지학과가 설치되었다. 1990년에는 중앙승가대학에 사회복지학과가 설치되었으며, 2007년에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내에 사회복지학과가 설치됨으로써 비교적 많은 스님들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가 되고 각종 사회복지시설과 기관에 종사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설치되기 시작된 불교계 사회복지시설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천여 개에 이르고 있으며 교세에 걸맞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정부의 사회복지관 위탁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 짧은 기간에 많은 사회복지관을 불교계에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불교복지의 현실지향성이 잘 나타나고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2)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복지정책의 전망
(1) 새로운 사회적 위험
테일러 구비(Taylor Gooby)는 New Risks, New Welfare(2004)라는 책에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란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겪는 경제사회적 변화의 결과로서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위험’이라고 정의하면서, 네 가지 위험을 들었다. 첫째는 저숙련 여성 근로자들이 일과 가정을 지키기 어려운 위험이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많아짐으로써 동시에 많은 저숙련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의 문제도 심각해지고 가족의 위기도 커진다.
둘째, 노령화의 위험이다. 노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연금과 의료서비스, 그리고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이 절대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2000년에서 2030년 사이에는 유럽의 노동인구 중에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73%가 되리라는 전망이 OECD 보고서에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 복지국가에서 연금보험의 수요 폭발로 인한 자금 고갈 등의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다. 노인에 대한 돌봄의 문제가 여성들이 아니라 남자나 민간부문이나 국가가 대신 노인을 돌보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셋째,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위험이다. 이들은 저숙련과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다. 유연전문화 등, 컴퓨터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저숙련 직종이 감소하고, 나아가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저임금을 강요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과 고용의 연계를 통해 저학력 노동자에 대해 지속적인 사회적 배제의 위험을 가한다.
넷째, 민영화 서비스의 증대로 시민들이 저질의 불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험이 증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보육시설보다는 공공보육시설이 더 서비스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새로운 복지체제(new welfare regime)를 필요로 한다. 에스핑 앤더슨은 복지국가 위기의 핵심은 외부적 충격으로 노동시장과 가족의 안정성이 동요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후기산업사회의 노동시장은 유연성을 요구하면서 불안정을 창출해내고 있어 청년과 여성은 직업을 갖기가 어려워 가족의 불안정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직업 경력이 많은 남성들은 조기퇴직이냐 실업이냐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으며 이는 노령기의 소득 불안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결국 가족, 국가, 시장의 복지 삼자 관계의 재구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후기산업사회로의 구조변동과 새로운 위험 요소는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 혁명으로 인한 기술혁신은 한국을 IT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그로 인한 직장여성 문제, 저숙련 청년 노동자의 문제, 노인 문제 등은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특징지어지는 한국의 사회변동은 산업사회의 문제가 채 가시기도 전에 후기산업사회의 문제가 겹쳐지면서 사회문제 역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혼존 상태를 나타냄으로써 더욱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노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족한 노동력의 보충과 농촌 총각의 결혼 문제 등으로 인한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은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북한이탈주민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도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2) 복지정책의 전망
한국의 복지정책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복지혼합의 문제를 한국적 복지 모형으로 다듬어 내는 노력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부문별로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비형평성과 사회적 배제, 불충분성과 사회복지서비스의 중복성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2012년 말에 대통령선거가 있으며 어떤 당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복지정책의 기본 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총선에서 여야가 다 같이 복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경제민주화를 표방했던 것으로 보아 대강의 방향은 유사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중층적 사회문제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혼재하고 있으므로 그 해결은 일단 복지혼합의 문제를 일괄할 수 있는 이념적 틀을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필요가 있다.
복지혼합이란 이념의 혼합이라는 뜻이며, 이것은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섞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좌우의 이념이라는 용어 자체가 산업시대의 산물임을 생각할 때, 세상이 이미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들었으므로 이념적 이념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념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행복’, 나만의 생존이 아닌 우리의 ‘공존’, 획일성을 지닌 공동체(共同體)가 아닌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는 ‘공생체(共生體)’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보건복지부의 최근 복지정책의 방향을 살펴보면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경우는 이제까지의 정책 방향에서 비형평성과 사회적 배제, 그리고 불충분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사회복지서비스 분야는 대략 사회투자국가의 정책 지향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후기산업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러한 기저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특히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4항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사회서비스로 바꾸면서 “사회서비스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복지, 보건의료, 교육, 고용, 주거, 문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상담, 재활, 돌봄, 정보의 제공, 관련 시설의 이용, 역량 개발, 사회참여 지원 등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라고 소개하는 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사회복지서비스와 사회서비스의 차이점은 대상 수급자 등을 빈곤계층에서 서민·중산층까지 확대하고, 서비스 내용을 기본적 생활보장서비스에서 국민의 일상생활 지원과 인적자본 확충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까지 포괄하며, 재정지원 방식을 공급자(기관) 지원에서 수요자 지원 방식을 병행하는 것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나아가 비용 부담도 정부 지원 중심에서 본인 일부 부담을 도입하고 있으며, 서비스 제공 방식도 시설보호 중심에서 재가 서비스까지 확대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복지정책의 방향은 대체로 근대산업사회에서 발생했던 문제점 해결과 동시에 후기산업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구조적 문제의 해결도 함께 시도하는 복지정책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유연전문화의 생산체제와 저출산·고령화 사회가 초래하고 있는 직장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를 해결하고, 특히 아동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통해 빈곤의 대물림 현상을 예방하겠다는 것은 사회투자 정책의 장점이다. 한편 기초노령연금이나 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제도를 충실하게 보완해 나가겠다는 것은 사회민주적 정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놓치고 있는 점은 빈곤가정의 부모에 대한 소득보장적 지원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복지급여가 불충분하고 사각지대가 많아서 비정규직 노동자 등, 빈곤가정에 대한 기본적 소득보장이 충분히 선행되어야 하며 그래야 아동 보육정책 등도 그 효과가 있을 것이다.

3) 한국 불교복지의 대응 방향
(1) 공생체주의(Co-livism)
한국의 국가를 대신하는 정부의 복지정책이 어느 정도는 사회민주주의적 제도적 복지의 초보적 수준에 들어섰으나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강하며, 사회투자국가적 성격과 함께 사회서비스의 확장 등, 복지혼합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사회보장기본법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복지체제를 한국적 복지모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한국의 이와 같은 복지기술(welfare technology: WT)을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벤치마킹해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후기산업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저출산·고령화 경향이 심화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실업자 문제, 직장여성들의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 나아가 청소년들의 자살 문제나 학교폭력, 성폭력 등 사회문제가 속출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분명 새로운 종합적 복지모델을 요구하고 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경향신문〉 2012년 4월 27일), OECD 2012년 보고서는 한국이 고소득국가군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으나 성장만으로는 불평등 완화에 한계가 있으므로 동반성장과 사회통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2007년 현재 GDP의 7.6%로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고 있으나, 복지지출 증가율은 1990~2007년까지 연평균 11%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신장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복지제도 도입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은 꼭 필요한 분야에 복지비를 지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정책적 문제점과 불교복지의 특성을 함께 고려할 때 향후 한국 불교복지의 대응 방향은 ‘공생체주의’ 복지이념을 표방하고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필자는 “공생체주의는 인간 집단의 획일성만을 강조하는 ‘공동체’와 달리, 인간과 자연까지를 포함하여 다종다양함을 근본으로 하는 인드라망에 의해 함께 살아가는 ‘공생체’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글에서 공생체라는 개념은 공동체와 달리 ‘인간과 자연이, 인간과 인간이 서로 다르지만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아가는 생활단위’라는 의미로 쓴 것이다. 공생체주의의 구체적 대응 분야는 다음에 논하는 바와 같이 양극화를 해소하고, 소수집단의 복지를 강화하고, 새로운 지역복지와 새로운 대안가족 복지를 지향하며, 불교생태복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실상사에서 1999년부터 주관하고 있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운동’과 같은 것을 그 유사한 예로 들 수 있겠다.

(2) 양극화 해소
무엇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옆에서 질병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런 이웃들을 두고 나만 행복해질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드라망에 의해서 우리 모두는 자연과 더불어 하나임을 깨닫고 상부상조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발간된 자료(〈한국사회의 양극화와 사회자본〉 2009)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7.44배의 소득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그 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으며 OECD 주요국들 중에서 멕시코 11.53배, 러시아 8.37배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도 한국은 0.352로서 멕시코(0.494), 러시아(0.434), 미국(0.368), 에스토니아 (0.361) 4개국 다음으로 높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이 가장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며, 50%가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적, 정책적 문제는 불교복지와는 무관하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야말로 국가를 대변하는 정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복지가 인드라망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 공생체임을 상정한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해서 무심하게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불교 관련 연구소에서도 양극화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하며, 그것을 줄일 방법을 불교적 공생체주의적 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전국적 국가적 차원이나 단위가 아니더라도 지역사회 차원의 불교적 공생체 안에서라도 양극화를 줄이고 비정규직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불교 계통의 모든 기업체나 기관, 시설 등에서라도 양극화를 줄이고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운동을 하고, 현금이 아닌 지역사회 화폐를 통한 현물이나 서비스의 교환, 또는 불교적 사회적 기업의 확산을 통한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3) 소수집단의 복지 강화
불교가 깨달음과 보시의 종교라 할 때, 그 일차적 대상자들은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결혼이민자, 이주노동자, 북한이탈주민들로서 다문화사회의 주역들이며, 한국불교가 품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다. 그들이 한국의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각종 문화사업 프로그램과 자활노동, 그리고 사회적 기업 프로그램을 창의적으로 실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 성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 등, 폭력사회의 희생자들을 줄여나갈 수 있는 비폭력 평화 공생체의 실현을 위한 정신적 복지 프로그램과 나눔을 통한 인드라망의 공생체 훈련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고 실천하여 치유와 행복의 실현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돌봄 서비스는 향후 남북통일의 기초가 될 인력자원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인적 물적 자원 투자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현재 2만 명을 넘고 향후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심리적 괴로움과 남한 문화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종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대부분이 기독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또한 남한 사회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이 부족하고, 언어 문제나 문화 차이로 인한 충격을 받는다. 길거리의 간판이 전부 영어로 쓰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몰라 적응이 힘들다는 그들의 고통은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시각에 의해서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있다. 독일 통일의 교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정치·경제적 통일보다는 한 민족 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이 우선되어야만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불교복지가 여타의 종교에 비하여 이 분야에 대한 노력이 특히 부진한 것을 볼 때 향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4) 새로운 지역복지와 대안가족 복지공생체 강화
불교복지의 새로운 대응 방향의 하나는 새로운 지역복지와 대안가족의 복지공생체를 위하여 진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전략의 부정적 측면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지역복지와 새로운 대안가족 복지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쟁 국가를 벗어나 공생체적 지역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서 양극화 해소와 소수집단의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 공생체주의의 중요한 대응 방향임을 논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양극화와 소수집단이 있는 지역사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또한 대안가족의 복지를 강화하는 새로운 차원에서부터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앙드레 고르가 지적하고 있다시피 복지제도가 지나치게 개인화되어 국가의 힘이 가족을 고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아동도, 여성도, 노인도, 근로자도, 모두 다 국가가 따로따로 관리해야 한다면, 지역도 가족도 더욱 해체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역복지는 전반적으로 세계화와 함께 국경의 의미가 상대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지역사회의 공생적 의미를 살려 가면서 새로운 형태의 대안가족을 지지해주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미래는 가족구조가 바뀌는 시대이다. 1인 가족 수가 2인 가족 수를 능가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은 점점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주는 따로 하더라도 취사와 보육과 놀이를 함께하는 작은 거주 공생체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농촌 지역뿐만 아니라 오히려 도시 지역에서 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규모 아파트가 아니라 소규모 거주 공생체 단지를 만들되 세대별 거주가 독립적으로 가능한 공간을 만들되 취사와 보육과 놀이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인간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노인이 더 늙은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도 가능하고, 노인과 젊은 부부, 청소년, 아동 등이 필요에 의해 상부상조하는 새로운 대안가족 복지공생체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화폐의 사용이나, 자원봉사 점수의 저축, 또는 재능기부와 같은 방법으로 이런 환경을 촉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5) 불교생태복지의 강화
거칠게 표현하자면 18세기는 자본주의 시대요, 19세기는 민주주의 시대이며, 20세기는 복지국가의 시대랄 할 만하다. 그렇다면 21세기는 환경의 시대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녹색당이 힘이 없으나 역사의 발전 과정을 볼 때, 그리고 한국의 사회변동 속도가 서구 300년의 역사를 단 30년으로 단축할 정도로 빠른 것임을 볼 때,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환경문제의 해결이 중요하다는 데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정치적으로 녹색당과 같은 정당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날도 올 수 있다고 본다.
불교복지는 불교의 화엄사상에 기초하여 온 우주의 생명을 인드라망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생명으로 본다. 이것은 심층생태학보다 더 심층적인 종교적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심층생태학은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와 기술중심주의(technocentrism)가 환경 재앙의 발생을 지연시키거나 환경문제에 의한 손실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뿐이라고 본다. 따라서 심층생태학은 인간중심주의와 기술중심주의를 포기하고 생물중심적 평등 규범을 통해 모든 생명체가 똑같이 생존하고 번창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물질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적 자아를 벗어 버리고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영적 성숙을 지향한다.
불교는 이러한 생태학적 관점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불교복지라는 의미는 바로 불교생태복지라 표현해도 무방한 것이다. 다만 용어의 정확한 사용을 위하여 불교생태복지를 “깨달음과 나눔을 통한 공생체(共生體) 활동”이라고 한 것이다. 정부의 정책도 앞으로는 환경복지 정책을 가장 중요하게 취급할 날도 올 것이다.
환경문제의 기술적 해결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해야 한다고 보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은 기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불교적 생태복지의 입장과는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사회에 맞는 슬로시티(slow city)의 적정기술 사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인드라망에 의해 하나가 되는 생명체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되며, 그러한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4. 나가는 말

이제까지 한국의 복지정책이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 그 특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불교계의 대응은 어떠했으며, 향후의 전망은 어떠한가를 논하여 보았다. 대체로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복지정책이 자선적 단계에서 잔여적 단계로 그리고 제도적 단계로 발전해 왔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복지는 복지혼합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구체적으로 비형평성, 사회적 배제, 불충분성, 중복성의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다만 이것은 또 한편으로는 한국적 복지모형으로 불릴 정도로 어느 정도 정리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한편 한국의 복지정책은 후기산업사회로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저숙련 여성 근로자들의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 저임금의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문제, 민영화에 따른 저질의 사회서비스 가능성 등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하여 사회투자국가로의 정부정책 방향을 정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불교계의 복지 현황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정부의 복지정책을 잘 소화하여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으로 묘사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불교 자체가 보시의 종교라는 특성과 현실지향성이라는 특성이 있음으로써 가능했다고 보았다. 나아가 무엇보다도 불교복지가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생태학적 측면을 향후의 발전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함에서 공생체주의를 표방하고 양극화 해소, 소수집단의 복지, 새로운 지역복지와 새로운 대안가족 복지공생체의 강화, 그리고 불교생태복지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21세기가 환경의 세기인 만큼 깨달음과 나눔을 통한 공생체 활동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런 모든 것은 전반적으로 시민사회의 도덕적 성숙과 공생체 활동을 통한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최경구 /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회장,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경기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장, 교수회 회장 등 역임. 현재 경기대학교 대학원장,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이사. 주요 논문으로 〈환경복지국가연구: 지속가능성의 패러다임과 사회복지의 결합〉 등과 저서로 《조합주의 복지국가》 《한국사회의 이해》 《사회문제론》 《21세기 사회복지정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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