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자제공덕회의 활동

1. 들어가는 말

적지 않게 부담이 가는 글을 쓰게 되었다. 사회복지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문외한인 데다가, 대만의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서 대만불교계를 둘러보고 몇 편의 글을 쓴 일이 인연인 되어서, 이 글의 필자로 부름을 받게 된 것 같다.

2009년과 2011년의 방문에서 모두 자제공덕회를 방문하였으나 “자제공덕회는 다 알 수 없다.”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특히 현황의 통계적 파악은 불가능하다. 이미 일목요연한 현황파악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조직과 지업(志業)이 방대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것들의 범위는 세계적인 데다가, 그 운영 역시 분권화(分權化)된 채, 현장조직 중심으로 자치(自治)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글에서 제시하는 자제공덕회의 현황에 대해서는 통계적으로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다만 이 글의 초점은 현황파악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다소 양해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 자제공덕회, 불교사회복지 맞는가

1) 사회복지 개념의 확충
‘불교사회복지의 모범사례로서 자제공덕회를 살펴보자’는 취지에서 글을 쓰려고 할 때 봉착하게 되는 부담감 내지 어려움의 근원은 사실 자제공덕회 그 자체에 있다. ‘과연 자제공덕회를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조직으로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 찾기에서부터 이 글의 실마리를 풀어가기로 한다.

사회복지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개념은 아동복지, 청소년복지, 노인복지, 장애인 복지와 같은 세대별 복지활동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현실일 터이다. 그보다 좀 더 넓혀서 잡는다고 해봐야,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사업법’에 정해져 있는 다음과 같은 범위 정도에서 그칠 듯하다.

사회복지사업이라 함은 다음의 법률에 의한 보호, 선도 또는 복지에 관한 사업과 사회복지상담,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 직업보도, 무료숙박, 지역사회복지, 의료복지, 재가복지, 사회복지관 운영, 정신질환자 및 한센병력자 사회복귀에 관한 사업 등 각종 복지사업과 이와 관련된 자원봉사활동 및 복지시설의 운영 또는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말한다.
 
물론 자제공덕회 역시 1966년에 ‘불교극난(克難)자제공덕회’로 그 첫걸음을 시작했을 때, 사회복지사업에의 투신이었음은 분명하다. 증엄(證嚴, 1937~ ) 상인은 대만의 동부도시 화련(花蓮)의 어느 병원에서 돈이 없어서, 원주민 임산부가 피를 흘리면서 유산을 하는 데도 병원으로부터 어떤 치료도 받지 못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때부터 상인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게 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구제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구빈(救貧)과 구병(救病)은 분명 사회복지활동임에 틀림없다. 즉 자제공덕회는 사회복지활동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사실이며, 그런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자제공덕회를 사회복지활동의 조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은 사회복지 외에도 너무나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제공덕회에서는 자선, 의료, 교육, 인문을 4대 지업으로 삼고 있는데, 그 조직을 간략히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국내 자선
                    중국대륙 자선
                    골수줄기세포 자료센터
                     국내 분회
                     해외 분회
                     화련 총원
                     관산(關山) 분원     
                     옥림(玉林) 분원
                     대림(大林) 분원
                     대북(臺北) 분원
                     대중(臺中) 분원
                     자제대학
                     자제대학 부속고등학교         
                     자제대학 실험초등학교
                     대북자제청매(淸邁)중초등학교
                     대남(臺南) 자제중학교
                     대남 자제초등학교
                     대애(大愛)TV
                     경전 잡지
                     중국어 정기간행부
                     홍보부
                     외국어 정기간행부

이 중에서 자선과 의료의 지업들은 사회복지활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 언론 출판이 중심이 되는 인문지업 역시 ‘사회복지활동’으로 집어넣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에 국제재난구호, 사회봉사, 골수이식, 환경보호를 더하여 8대 지업을 말하기도 한다. 국제재난구호나 환경보호 같은 활동 역시 사회복지에 들어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자제공덕회는 NGO로서의 성격 역시 가진 셈이다. 아니 현재 우리가 자제공덕회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재난구호단체로서 그것이다. 지진 등 대형 재난이 일어났을 때, 그곳이 어디든지 가장 먼저 재난의 현장에 도착해서 구호활동을 벌였다는 자랑스러운 무용담을 답사 중에 여러 번 듣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도저히 자제공덕회를 단순한 사회복지 조직으로만 볼 수는 없게 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과연 사회복지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복지에 해당하는 말을 산스크리트어에서 찾아본다면 ‘로카상그라하(lokasaṃgraha)’가 될지 모르겠다. 힌두교 성전 《바가바드기타》에 등장하는 이 단어의 의미는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끌어안는 행위를 말한다. 즉 세계의 복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세상을 좀 더 향상시키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 포용하여 해결함으로써 인간의 삶의 결을 질적으로 향상하려는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은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제공덕회는 비록 좁은 뜻의 사회복지로부터는 멀리 벗어나 있지만, 인간세상을 위한 복지행(福祉行, karmayoga)을 좀 더 넓게 펼쳐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오히려 사회복지라는 좁은(?)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세계로 그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자제공덕회는 사회복지가 가야 할 길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2) 불교를 넘어서는 복지
다음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과연 자제공덕회의 사회복지실천을 ‘불교의’ 그것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자제공덕회의 창시자이자 지도스승(指導師傅, 이 뜻은 자제공덕회에서 스님을 부르는 존칭인 ‘上人’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 있다) 증엄 스님은 스님이다. 불교인으로서, 보살행에 대한 당위적 자각을 갖고서 이 일에 뛰어든 것은 틀림이 없다. 또한 동참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상인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느 회원의 말처럼, “스님이 한 팔을 움직이면 천 개의 팔이 움직이고, 스님의 눈이 무언가를 바라보면 천 개의 눈이 바라본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적으로 자제공덕회 안에서 스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양적으로 대단히 미미하다는 점에 있다. 증엄 스님을 비롯한 비구니의 수는 20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자제공덕회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 중에서도 불자의 수는 6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다. 실제로 2010년과 2011년 자제공덕회를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은 자제위원은 본인을 가톨릭교도로 소개하였다. 우리에게는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러한 사람들이 40%나 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자제위원은 본인의 종교에 대해서 ‘불교를 잘 이해하는 가톨릭’이라고 밝혔다. 박인석은 이 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 가운데 재난구호와 같은 자원봉사활동은 비단 불교도뿐 아니라 기독교, 천주교를 믿는 이들 역시 동참하는 보다 보편적인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제공덕회의 조직 가운데 승가조직을 제외한 재가조직에 대한 이해는 이전에 언급한 불광산사와 일정 정도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자제공덕회 안에서 출가와 재가가 차지하는 비중, 재가 안에서 타 종교의 비중 40%가 차지하는 의미 등을 생각할 때 과연 자제공덕회의 사회복지활동을 ‘불교의’ 사회복지활동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교’사회복지의 개념과는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증엄 스님이 부재할 경우에, 그때에도 자제공덕회가 ‘불교’사회복지의 조직으로 남을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가 복지 실천의 주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불교 역시 불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자제공덕회의 종교적 성향 역시 반드시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불교로부터 출발하였지만, 불교의 한계를 넘어서서 다른 종교인들까지도 참여를 가능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제공덕회가 모범적인 사회복지조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한다.(다만 자제공덕회는 불교 안의 위상을 염려해서인지 ‘자제종’이라는 종파적 자각을 더욱 깊이 해 가고 있음도 2011년 답사 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여전히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3) 사회구제의 종지(宗旨)
마지막으로 하나 더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자제공덕회의 불교는 과연 모범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증엄 스님은 근대 중국불교(대만불교를 포함해서)의 대표적인 학승으로 이름 높은 인순(印順, 1906~2005) 스님을 의지하여 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승려가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회복지에 투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강원에서 교학공부를 깊이 한 것도 아니고 선방에서 오래 선수행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근래에는 “일찍이 불교사에서는 사회구제를 종지로 내세운 종파는 없었다. 이제 우리 자제종(慈濟宗)이 그 제일세(第一世)가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교판을 세우고 종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구제를 종지로 내걸고 있는 불교교단을 모범이라 할 수 있을까? 선불교 전통이 강한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회의적 시선 역시 당연한지도 모른다.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 중에서 하화중생만을 말하고, 지혜와 자비라는 두 개의 날개 중에서 자비만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라는 시각 역시 가능하긴 하겠다. 자비와 지혜를 함께하고, 깨침과 보살행을 함께할 수 있는 불교가 더욱 바람직하다는 관점 역시 가능하겠기 때문이다.

선만의 불교가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하고, 또 선과 보살행을 함께하자는 불교는 그보다는 좀 더 왼쪽으로 있는 중도라고 한다면, 자제공덕회와 같이 사회구제만을 하자는 불교는 가장 왼쪽에 있는 불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제종이 그 제1세로 자임(自任)하고 있음에도, 실제로 그런 사례가 불교사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수나라 때 신행(信行, 540~594) 스님이 일으켰던 삼계교(三階敎)의 불교가 정히 그러하였다. 상구보리를 운위하는 것은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불교인은 오직 하화중생하는 것만이 붓다의 출가정신을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스스로의 깨침과 같은 실존적인 문제는 어떻게 할까?” 여전히 우리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그 해답은 “행위 속에서 스스로를 비워가면 된다.” 앞서 ‘로카상그라하(度世)’라는 힌두교의 개념을 소개하였지만, 그 말은 정히 바로 그러한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세간(로카) 속에서 행위를 하되 행위의 결과를 바라지도 않고, 행위의 대상에 대한 집착도 없이 행위를 함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행위의 길(karmayoga)이라 하거니와, 이는 정히 대승불교의 보살행에 함축되어 있는 생각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제종의 불교는 그 나름으로 불교사에서 큰 실험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의미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의 모든 불교가 자제종의 불교와 같이 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렇게 사회구제를 종지로 삼는다고 해서 이상한 불교, 불교 안의 이단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자제종의 불교에서 우리는 자극을 받고 착안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다.

3. 자제공덕회가 성공한 까닭

자제공덕회의 모든 활동을 불교사회복지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자제공덕회의 활동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차례이다. 이러한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내가 볼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1) 지도스승의 리더십
자제공덕회는 창업자 증엄 스님을 제외하고서는 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증엄 스님이 부재 시 자제공덕회는 어떻게 될까?”라고 하면서, 그 미래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물론 자제공덕회는 이미 지도스승의 카리스마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단체는 아니다. 조직과 시스템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고의 의결기구라 할 수 있는 ‘재단법인자제자선사업기금회’ 직속으로 다음과 같은 각종 조직이 있다.

          명예이사(榮董) 모임
          위원
          자성대(慈誠隊)
          자제교사 모임
          환경보호자원봉사자
          자제대학 청년모임
          외국어 자원봉사자(外語隊)
          자제인 의사회
          자제국제인조원조회
          자제경찰가족모임

이는 앞에서 표로서 제시한 4대 지업의 사업별 조직과는 다른 성격의 인적 조직이다. 4대 지업의 사업단위와 이들 인적 조직은 저마다 의결기구를 갖추고 운영된다. 또 해외와 국내의 지부 역시 독립이사회를 갖고 있는데, 중국 대륙을 포함해서 현재 51개의 이사회가 존재하고 있다. 증엄 스님은 이 51개의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바쁜 형편이라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제공덕회의 성장과 그 지업을 성공으로 이끈 데에는 증엄 스님의 원력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외면할 수는 없다. 나는 이미 증엄 스님의 리더십에 대해서 관세음보살과 같은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비구니 스님이기에 가능한 어머니 같은 리더십, 관음적 리더십으로 스님의 리더십을 평가한 일이 있다.

그에 더하여 여기서 하나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스님의 지도력은 결코 사판적 지도력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사회복지는 분명히 사판의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흔히 사판적 역량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고, 널리 대중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점을 나는 다른 대만불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증엄 스님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판을 하면서도 이판을 중시하고 있음은 증엄 스님이 4대 지업의 하나로 인문(人文)을 넣은 까닭이기도 하다.

증엄 스님은 자제공덕회의 소의경전이라 할 수 있는 《무량의경(無量義經)》을 직접 강의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펴내고 있다. 또 각종 저술은 물론이고 대애(大愛)TV를 통해서도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면서 자제공덕회 활동에 동참한 모든 사람에게 불교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사회복지라는 사판(事判), 즉 세속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을 이판(理判), 즉 수행과 분리된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 스님의 인식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원들 역시 사회복지의 참여에서 이타의 기쁨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문제까지도 해결하고 해소해가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 자리(自利)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경지에까지 나아가게 될 때, 자원봉사 참여자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게 된다. 스스로 가속도가 붙게 되고, 이웃들을 끌어들이는 단계에까지 나아가게 된다. 결코 사회복지를 사판의 차원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사판 속에서 이판을 발견하고 이판에서 다시 사판으로 나아가는 이사(理事)의 순환 내지 회통(會通)을 우리는 착안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증엄 스님은 일하면서 공부했고, 공부하면서 일했던 것이다. 이때 공부라는 것은, 반드시 대학이나 제도의 학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가 그렇게 했듯이 현장 속에서 공부하는 독서, 현장의 눈으로 텍스트를 새롭게 해석해 내는 ‘실천적 독서법’을 스님 역시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해석된 경전의 말씀은 다시 대중들에게 전해져서 공감을 얻고, 공감한 대중들이 다시 그 실천에 동참하는 순환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2) 중간지도자 양성
자제공덕회의 조직은 놀랍기만 하다. 외부인으로서는 정확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다. 기본적으로 자제회원이 있는데, 매월 정해진 회비(대만달러로 100달러)를 내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자료는 전 세계에서 400만 명이라 하고, 어떤 자료는 전 세계에서 700만 명이라 한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자제공덕회 본부나 증엄 스님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지도하는 중간지도자가 있다. 자제위원인데, 이들은 약 4만 명이라고 한다.

자제공덕회의 성공을 조직의 측면에서 찾는다면, 이 자제위원 제도의 정착이 가장 큰 요인이 된 것으로 필자는 평가한다. 자제위원의 조건과 임무는 다음과 같다.

조건: 첫째, 정지정견(正知正見)을 갖추고 불량한 기운이 없어야 한다. 둘째,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부유한 이를 가르치는 일(救貧敎富)’에 시간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부처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고 스승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는다(以佛心爲己心; 以師志爲己志).”라는 말을 깊이 체인(體認)하여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거지가 단정하고 마땅해야 한다. 넷째, 일을 행함에 정성스럽고 진실한 정신을 지켜야 하며, 반년 이상의 교육(培訓)위원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임무: 첫째, 자선기금을 내도록 권함에 있어 자비희사(慈悲喜捨)와 발고여락(拔苦與樂)의 정신을 발휘한다. 둘째, 저소득가구를 방문 조사한다. 셋째, 재난이나 병환이 있는 가정을 위문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위원들은 각자가 소속된 지역 분회의 각종 활동과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

이 중에 주목할 것은 자제위원의 활동 중에 모금이 있다는 점이다. 모심(募心)과 모금(募金)을 병행하는 모습은 고대와 중세의 일본불교에 보이는 권진(勸進)의 역할과 정히 동등한 것이다.

이 ‘중간지도자 양성’이라는 점만은 자제공덕회로부터 한국불교가 꼭 배웠으면 좋겠다. 우리의 경우 흔히 어떤 절에 다니든지, 어떤 불사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어떤 사회복지 단체에 참여하든지 간에 회원들은 지도자만을 바라본다. ‘지도자와 회원의 관계’ 속에서만 회원은 존재하고 만다. ‘회원과 다른 회원’ 혹은 ‘선배회원과 후배회원의 관계’는 매우 엷다. 만약 회원이 ‘뒤로 돌아서서’ 다른 회원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순간 중간지도자가 된다. 지도자와의 관계에서는 회원으로서 1대1이 되지만, 다른 회원과 또 다른 1대1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더욱이 다른 회원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고 한다면, 이 조직은 기하급수적으로 커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역할을 하는 중간지도자가 자제공덕회에서는 자제위원이고, 일본불교에서는 권진이다.

1인의 자제위원은 40여 명의 자제회원을 직접 관리한다.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고 하신 부처님의 전법선언을 자제위원들은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잘 안 된다. 그런데 자제공덕회는 부처님을 뒤로하고, 지도자를 뒤로하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나선 중간지도자 양성에 성공했던 것이다. 결국 이들 4만의 자제위원들이 자제공덕회를 지켜가는 기둥이 될 것임은 의심할 수 없다. 〈타임(Time)〉은 2011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The World’s Most Influential People)’ 100인 중의 한 사람으로 증엄 스님을 선정했는데, 스님을 일컬어 “자비로운 군대의 사령관(Commander of a compassionate army)”이라면서 그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표현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증엄 스님은 수백만의 자제회원이 아니라 4만의 정예화된 자제위원을 지휘하는 자제군(慈濟軍)의 사령관이기 때문이다.

3) 생산불교
자제공덕회의 지업 내용이나 활동 상황을 보면, 큰 비용이 소요됨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두 차례의 답사 당시 많은 사람들이 1년의 예산 규모에 대해서 질의했으나, 안내를 담당한 자제위원은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대외비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그 규모를 다 파악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재정운영 역시 분권화되어서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응철은 대만의 어느 학자의 논문을 인용하였다고 그 출전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모연금의 금액을 말한 일이 있다.

자제기금회가 2006년 모연한 금액은 경상모연금의 경우 대만 화폐단위로 2006년 77.5억 원, 2007년 91억 원, 2008년 97.7억 원 등으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국제적인 재난이 발생할 경우에는 이와 별도로 모금을 실시하는 데 1999년 대만지진 때에는 62.3억 원, 2004년 동남아 해일 피해시 26.1억 원, 2008년 중국 사천성 대지진 19.5억 원, 2008년 2.4억 원, 2009년 45.8억 원 등을 모금하였다.       

우리로서는 얼른 감이 안 잡히는 액수인데, 김응철은 논문의 각주를 통해서 2008년 모금한 97.7억 원이 우리의 “현재(2011년 봄-인용자) 환율로 환산하면 약 4,300억 원 정도에 달하는 거액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모금과 함께 동시에 이루어지는 생산에 대해서다. 자제공덕회에서 1년 동안 생산을 통해서 얻는 수익이 각기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알 수는 없다. 또 모금과 생산을 통한 수익이 자제공덕회의 지업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문제는 그러한 비율이나 액수에 있지 않다. 모금 이외에 생산을 행하고 있다는 점, 바로 그 점에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모금과 더불어 생산은 증엄 스님이 사회구제활동에 나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정사정사(靜思精舍)에서 양초와 미숫가루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공장들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2009년 자제정사를 방문했을 때에도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을 보았던 것이다. 세월 따라 생산물품의 종류 역시 다양해졌다. “각종 선식의 보급, 의류, 문방사우, 초, 도시락, 친환경 생활용품 등 매우 다양”해졌으며, 현재는 “약 30여 종류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의 경우에도 포교와 사회구제를 위하여 자금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생산불교에 나섰던 사례가 있다. 용성(龍城, 1864~1940) 스님의 북청광산 투자였다. 공히 생산불교를 선보였지만, 용성 스님은 실패를 했고 증엄 스님은 성공을 했다. 그보다 더욱 큰 차이는 용성 스님의 모델과 증엄 스님의 모델이 서로 다르다는 데서 찾아질 수 있다. 어떻게 다를까? 투자를 통한 생산과 노동을 통한 생산의 차이다. 투자는 돈이 하는 것이지만, 노동은 사람이 한다. 투자는 투자한 사람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노동은 노동하는 사람을 바꾸어준다.

스님이 노동을 하면 그 스님은 어떻게 바뀌는 것일까? 중생을 위하여 봉사하는 마음이 되고, 중생을 향하여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다. 노동이 곧 봉사이고, 노동이 곧 부처님에 대한 공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노동은 결국 이타행임과 동시에 자리행의 수행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노동하는 스님’이 구현해 내는 수행자상(像)이 필요하다고 본다. 겉으로 보면 “노동을 하지 말라”고 했던 인도불교 당시의 계율과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노동을 통해서 중생에게 봉사하는 마음이야말로 부처님의 출가정신에 부합함을 알 수 있다.

 3. 나가면서-탈정치와 보시주의

“자제공덕회의 사회복지활동을 불교사회복지로 볼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자제공덕회의 성공요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 찾기를 시도하였다. 각기 세 가지씩 모두 여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그 여섯 가지는 모두 우리 불교의 사회복지 활동, 아니 더 나아가서 우리 불교의 어떤 국면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가져다주리라 생각된다. 나로서는 부지런히 따라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부담스런 주제의 글이긴 했으나, 이윽고 이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좀 더 여유가 있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 두 가지만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자제회원들이라면 누구나 받아 지녀야 하는 ‘자제십계(慈濟十戒)’ 중에서, 열 번째 계율인 “정치적인 데모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의 함의(含意)에 대해서이다. 자제공덕회는 애당초부터 구빈과 구병으로 출발했을 때, 현실사회체제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그 체제로부터 낙오된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불광산에서는 “긴급한 재앙은 구제하지만 가난은 구제하지 않는다(救急不救貧).”라고 말하고, 보다 근본적인 가난구제책은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제공덕회는 현재의 고난을 해결해 주려 노력한다. 어쩌면 성운(星雲, 1927~  ) 스님이 비구 스님이고 증엄 스님이 비구니 스님이기에 발생한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증엄 스님의 리더십에서 강한 모성을 지닌 관음을 떠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렇게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는 까닭에 핵과 같은 거대담론에 대해서는 당연히 발언하지 않고, 분리수거와 같은 생활 속의 환경보호만을 추구한다. 이에 대해서는 평자들마다 그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의견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보다 진보적인 환경운동과 같은 노선을 띄지 않았기에, 중국 대륙을 비롯한 재난구조의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었고, 정치적으로 노선분열이 극심한 대만사회에서 중심을 잡고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는 체험담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2011년 1월 자제공덕회의 내호(內湖) 환경보호센터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답사팀이 탄 버스가 도착하자, 일렬로 도열하여 기다리고 있던 중년 여성 회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준다. 그분들이 우리 일행을 안내해 주었다. 그때 한 자원봉사자가 “이분들은 이렇게 몸으로 매일같이 자원봉사를 하지만, 재정적으로도 많은 보시를 하신다.”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필자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실례될지 모르지만, 보살님께서는 작년 1년 동안 자제공덕회의 활동에 얼마나 보시하셨습니까?” 그 자리에서는 웃기만 하더니, 한적한 곳에 이르자 필자에게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여주었다. “Ten Million Dollars.” 대만달러로 천만 달러라는 것이다. 당시 환율로는, 우리 돈 4억 2천만 원 정도로 계산되었다.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은 대만의 유명한 전자회사 회장님이 아닌가. 당시의 이야기를 필자의 여행기(〈대만불교의 겉과 속 3〉)에서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으로 제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보시한 금액이 막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엄청난 거금도 놀랍기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만, 보다 더 크게 충격적인 사실은 1년에 4억 2천만 원을 보시하는 보살님 역시 다른 분들과 똑같이 자제공덕회의 유니폼을 입은 채 정문 옆에 도열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 차가 보이는 순간부터 함께 박수 치면서 우리를 맞아주고 노래를 불러 환영해 주고, 직접 우리를 안내해 주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보시를 하면서도 특별대우를 기대하지도 않고 특별대우를 하지도 않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똑같이 줄지어 서서 기다리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박수 치면서 노래하는 이곳, 여기서 저는 이 보살님의 하심(下心)을 보았고, 특별대접을 하지 않고 평등하게 줄지어 세우는 증엄 스님의 법력을 보았습니다.    

앞에서 ‘자제위원의 조건’ 중에 ‘제빈교부’라는 말이 나왔음을 기억한다. 교부, 즉 부유한 이를 가르쳐서 제빈, 즉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일에 동참케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증엄 스님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자제공덕회에 내는 보시에는 저마다 형편과 능력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노동을 통해서, 몸으로 봉사해야 하는 일에서는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이 일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증엄 스님의 제빈교부를 말하다 보니 비노바 바베(Vinoba Bhave, 1895~1982)가 떠오른다. 그는 인도의 부자들을 설득하여 토지를 기부받아서 가난한 이들의 공동소유로 삼게 하고, 경작게 하였다. 이를 위하여 13년 동안이나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면서, 모두 합하면 스코틀랜드 정도 되는 넓이의 땅을 헌납받았다.
비노바 바베나 증엄 스님이나 공히 자본주의의 모순 타파를 위해서 제3의 길, 즉 보시주의(布施主義)가 어느 만큼 가능한지를 실험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두 분 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점에서 세계화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나 저항 이상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필자는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김호성 /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동국대 불교대학 인도철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학위를 마쳤다. 일본 북쿄(佛敎)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개인적으로 ‘일본불교사연구소’를 만들어서 소장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대승경전과 선》 《천수경의 새로운 연구》 《불교해석학연구》 등이 있으며,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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