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용불교, 불교와 사회의 새로운 통로찾기

1. 들어가기

지난 1996년 11월에는 조계사에 약 2,500여명의 사부대중이 모였다. ‘민족문화와 수행환경수호를 위한 범불교도대회’라는 명칭의 집회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 집결한 것이었다. 당시 조계종 사회부의 집계로 전국의 약 40여개 사찰에서 환경문제와 관련된 분쟁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다.

조계종에서는 이와 같은 사태를 분명한 종교적 가치에 대한 침해로 규정했다. 동시에 이러한 환경가치의 침해는 오랫동안 민족과 함께 해온 역사문화적 침해로 연결된다는 사회적 메시지도 담고 있었다.

이 사건이 후 약 10여 년의 세월 동안 불교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안이 끊이지 않고 있어왔다. 1999년에는 실상사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지리산댐백지화’운동이 있었고, 2002년에는 불교환경연대의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새만금삼보일배’가 있었다. 그 뒤 2003년에서 2005년까지는 천성산과 지율 스님이 정토회와 함께 많은 국민대중들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2005년과 2006년에는 ‘불자 황우석 박사’가 전하는 ‘생명공학논란’이 사회를 흔들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불교계는 확실하게 환경, 생명운동에 있어서 사회적 역할을 증명하게 되었다.

물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평가는 정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본다면, 불교사상과 불교계의 역량은 지나간 역사적 가치를 지켜가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의 과정은 향후 미래사회의 생명과 환경의 가치를 창조하는데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만이 우리들의 뇌리에 남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큰 사회적 이슈는 그 이전에 많은 사부대중들의 노력과 실천활동에 의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해인사 골프장’을 막아서 팔만대장경을 지키고자 하던 해인사의 눈 푸른 스님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1996년의 조계종의 결집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90년에 접어들면서 정토회에서 진행한 각종의 ‘생태학교’ 및 ‘공동체학교’ 각종의 ‘워크샵과 세미나’가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았다면 불교계의 환경, 생명운동의 초석은 놓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사부대중공동체의 활동’ 그리고 정토회와 불교환경연대에서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빈그릇운동’ 등이 확보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평가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의 흐름의 특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불교계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을 향한 사부대중들의 실천활동과 노력은 그 자체로서 매우 소중한 경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이 같은 흐름에는 지워버릴 수 없는 뭔가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존재한다. 아직까지 불교계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의 흐름이 불자대중들의 주체적이며, 대중적인 운동으로 꽃피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스님들과 또한 적지 않은 재가활동가들이 불자대중들과 함께 하고자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불교계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의 주체는 몇몇 명망성 있는 스님들과 환경운동가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던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괴리를 벗어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몇 가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중에 가장 큰 문제가 아마도 불교사상과 한국불교의 신행문화 그리고 각종의 조직문화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그에 입각한 여러 가지 ‘철학과 운동방법론’에 대한 검토, 확립작업이 될 것이다.

최근 응용불교학 혹은 그 중에서도 ‘불교생태학’에 대한 문제가 불교학자 및 관심있는 실천활동가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내용이 이러한 관심의 원인이 되고 있지 않나 싶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관한 한 불교환경운동가의 관찰에 입각한 견해이다. 그러므로 학문적 엄밀함에 입각하지 못했다. 또 이 글은 그 동안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에 대한 나름의 맥락을 짚어보며, 그것에 입각해서 불교계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의 특징을 파악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계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의 특징과 불교(생태)학의 특징에 대한 거리를 파악해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연 불교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이 불교(생태)학과 어떻게 접점을 형성하고 있는지, 그 둘 간의 발전적 전망을 위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갈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제안을 해볼 것이다.

2. 종교계 환경(생명)운동의 흐름과 맥락

1)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흐름과 생명운동의 분화과정


1990년을 전후로 시민운동은 한국사회의 중심적인 사회운동으로 부상한다. 환경운동도 또한 대형오염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환경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시민운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지난 90년대 초반 낙동강에서 방류된 페놀에 온 국민들이 놀랐던 예는 환경에 대해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즈음 세계의 여러 정치지도자 및 NGO 대표들이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모여 ‘지구환경선언’을 진행했다. 지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국제간의 노력이 함께 해야 할 정도로 지구환경은 위기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80년대 후반에 활동을 시작했던 ‘공해추방운동연합’이 우리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고도성장시대의 이면에서 함께 했던 ‘물과 공기와 땅’에 대한 우리사회의 몹쓸 짓이 비로소 우리사회의 시야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80년대 초창기에는 이렇듯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대형오염사건에 대한 사후 대책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90년대를 넘어서면서 환경운동은 한 번의 변화를 거친다. ‘사후약방문’식의 환경오염이 아니라, 미리미리 자연환경과 생태계파괴가 예견되는 ‘대형개발사업’들에 대하여 방지를 하자는 것으로 나아갔다. 자연히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의 흐름은 ‘동강댐반대운동’, ‘새만금반대운동’, ‘경인운하반대운동’ 등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어 갔다.

2000년대를 즈음하여 이러한 환경운동이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는 특히 종교계의 영향이 컸다. 종교계의 환경운동은 사실 시민사회의 환경운동과 같은 맥락에 서 있지는 않았다. 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생명, 생태주의적인 사상적 경향을 가졌다. 이러한 영향으로 초창기 종교환경운동 단체들은 대체로 생명운동의 경향성을 띠게 되거나 전면적으로 생명운동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은 공동체의 파괴, 생태 환경문제 등 인류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생명평화’라는 이념을 정립한다. 즉 인류에게 생명위기를 초래한 현대사회의 문명은 죽임의 문명임을 선언하며, 이의 극복을 위해 생명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의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이념적 경향은 기존의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충분한 내용적 자양분이 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은 ‘생명평화’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귀농운동, 유기농업운동, 생활공동체운동, 생활협동운동, 생명민회운동, 대안에너지운동, 생태지역공동체운동 등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와 같은 실천을 통해 마침내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은 자신의 전문적인 영역을 이념적, 실천적으로 정립하게 되었다. 기존의 환경운동으로부터의 분화의 과정이었다.

이런 영역들을 조금 더 일별하자면, 시민운동 차원의 환경운동이면서도 녹색대안을 모색하는 녹색연합의 생태공동체운동, 신과학운동을 하는 미내사클럽 등의 지역화폐운동 등을 볼 수 있다. 그밖에도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생태공동체를 꿈꾸는 간디학교, 푸른꿈 고등학교 등 다양한 실험들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기존 환경운동도 환경공해 고발, 환경정책 반대 등의 네거티브 캠페인에서 갯벌, 유전자 조작 문제, 습지보존, 생물종 다양성 등으로 자연생태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 생명을 살리려는 '살림'의 이슈를 제기하며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생명운동은 1990년대를 거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고 있는, 기존의 사회체계를 떠받드는 근본가정 자체를 흔들면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모색하는 각종 대안문화운동 - 도농직거래운동, 생태마을만들기운동, 지역통화운동, 생산자협동조합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생태여성주의운동, 공동육아운동, 탈학교운동, 대안학교운동, 가정학교운동, 대안기술운동, 명상과 수련 공동체의 등장, 동성애자 운동, 소수문화운동, 언더그라운드 운동 등 -의 중심적인 테제로 부각되고 또한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의 자양분을 제공해 나가며 분화와 확산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2) 우리나라 종교환경(생명)운동의 흐름

세계종교단체들의 환경활동은 이미 1970년대 초에 시작하였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되었다. 대략적으로 1980년대는 종교의 교리를 생태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것, 생활실천활동 및 저항운동에의 종교 참여를 주요 의제로 하였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의 의제는 ‘지탱가능한 발전’이란 인류 공동의 합의에 어떻게 영적 차원(보편적 표현으론 생태윤리)을 결합시킬 것인가에 놓여 있었다. 이 의제를 논하기 위해, 각 종교의 수장급 성직자들을 중심으로(종교인들만으로 제한된 것이 아님) 과학자, 철학자, 활동가, 정부지도자 및 정치인들 간의 국제협력을 도모하는 회의들이 발의되고 개최되었다.

1992년을 넘어서면 이런 종교인들의 활동은 보다 구체적인 주제와 영역들로 분화되었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다루어졌다.

잠시 살펴보자면, 우선 가톨릭 쪽의 움직임이 가장 앞섰다. 특히 가톨릭농민회는 1980년대 말 전국적인 이슈를 담당하는 전국농민총연합이 결성되면서 운동방향을 생명공동체운동으로 전환하고 본격적으로 생명운동에 뛰어든다. 기존 농민 조직을 유기농업운동의 기초로 삼고, 유기농업과 협업 공동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가톨릭 각 교회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생활협동운동을 실천한다.

그리고 그 영역을 확장하여 우리 밀·우리 콩·우리 농업 살리기 운동으로 폭을 넓히고 ‘반생명적이고 대립 경쟁적인 도시산업문명의 유일한 대안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생조화하는 유기순환적인 농적(農的) 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먹을거리 직거래, 도농공동체운동 등을 펼쳐나간다. 또한 1991년 말에는 "반생명적·반사회적·반인간적 한국 사회의 도덕적 부패상"을 극복한다는 취지로 가톨릭재단인 서강대에 생명문화연구소가 설립되어 '낙태' 등 종교계의 도덕적 관심사를 생명운동의 이름으로 이슈화시킨다.

개신교 환경운동은 19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 YMCA가 근대화에 따르는 환경파괴의 문제를 제기하고,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기장여신도회전국연합회 등을 시작으로 교회여성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면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1982년에, 비록 사회단체의 형태를 띠기는 하였으나, 환경운동을 부문운동이 아닌 전체운동으로서 펼쳐나갈 ‘한국공해문제연구소’(현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었다.

1998년 기독환경운동연대가 ‘녹색교회 21’을 제정하고 그 다음해 19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홍보하고 교육한 것은 생태적 삶과 녹색교회를 위한 실천적 노력들을 이끄는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이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인적, 물적 자원은 물론이고 이미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있는 교회는 물론 교단, 지역연대조직들이 환경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함은 물론 이들의 실천을 하나로 엮는 네트워크가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회의 녹색화를 모색하는 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된다.

개신교 환경운동의 주체들은 개인, 지교회, 지역-교회-연합, 교단, 전문환경단체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기독인들은 신앙적 동기에서든, 대응적 동기에서든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교회, 기독시민단체, 기독환경단체, 사회단체 속으로 파고 들어가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쩌면 그 수나 힘을 가늠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개신교인이 전 인구의 25%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실천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운동을 대중화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원불교의 환경운동은 크게 보아 서울을 중심으로 한 환경연구회 흐름과 영광지역을 중심으로 한 천지보은회의 흐름, 그리고 원불교 청년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한생명회의 활동 및 원불교 재가운동 단체 등의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환경연구회는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해 왔는데, 이들은 80년대 사회 변혁시기에 원불교 교리와 사회운동의 이념을 함께 고민하던 청년운동의 맥을 이어서 이를 환경운동으로 풀어 보려했던 집단이다. 이들은 주부환경학교 및 살림답사 기행 그리고 원불교 환경법회 등의 활동을 전개하면서 녹색장터 및 생협운동 등 실천적 활동까지 환경운동을 다양하게 전개하였다.

영광지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원불교대학생연합회 및 영광 성지 사무소를 중심으로 영광핵발전소 반대운동이 전개되면서 활발한 반핵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는 이론 및 다양한 활동으로 전개되었던 서울의 활동과는 달리 지역 문제와 핵문제라는 문제에 집중하면서 단일 문제 해결에 대한 활동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원불교 청년회는 30주년을 맞아 보다 사회 실천적인 청년운동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서 ‘개벽, 통일, 환경'의 구호를 내걸고 환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를 통해 한생명회가 만들어졌다. 한생명회는 전주, 익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환경캠페인, 봉사활동 등 다양한 실천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각 단체들마다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오던 원불교 환경운동은 199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원불교 재가단체인 봉공회, 여성회 등의 관심과 참여로 활기가 더해졌다. 이는 그동안 소수의 진보적 사회운동 활동가 및 청년들을 중심으로 이끌어져 오던 환경운동의 구도가 다수의 평신도들로 확산되어 가는 구도로 개편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단 전체의 환경운동을 아울러 통합하고 서로 연계하기 위하여 원불교 중앙환경운동 조직인 원불교천지보은회가 창립되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의 종교환경(생명)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생명평화이념’의 경향성이다. 두 번째의 특징은 ‘대안사회와 대안적 생활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론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세 번째의 특징은 자연과 농업, 농촌의 가치에 대해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자는 사회적 제안을 깔고 있다.

종교계 생명운동세력의 이러한 특징들이 모여서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일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불교생명운동의 특징에 대하여

1) 생명운동으로 기획된 불교계 환경운동 그리고 부족함

불교계의 환경운동도 또한 생명운동의 경향성을 강하게 띈다. 특히 다른 종교환경운동들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탓에 불교계의 환경운동은 좀더 나아가 스스로를 ‘생명운동’임을 자처하면서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를 잠시 돌아보면, 가장 먼저 살펴 볼 수 있는 곳이 정토회이다. 정토회는 초창기 주로 생명담론을 확산시키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정토회 소속으로 1988년 개원한 불교사회교육원은 "인간은 자연에서 왔고, 자연에 의해 살려지며, 자연과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임을 체득하게 함으로써 자연과 조화되는 순환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생명존중 사상의 교육의 장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면서, 생태공동체를 소개하고 확산시키는 데도 힘을 기울인다. 불교환경교육원의 활동에서 주목할 점은 생태환경교육과 더불어 승가의 공동체적 전통과 선불교의 수행 경험을 토대로 수련 프로그램을 생태교육에 도입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이밖에도 1999년 창립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만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수행운동 및 수행공동체 형성, 생활협동운동, 각종 환경 생태 교육, 대안학교, 농장공동체 등 다양한 대안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의 사회적 확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생명운동의 흐름을 ‘생명평화’라는 말과 실천양식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생명운동의 새로운 실험을 진행할 즈음하여 불교계의 90년대 후반기는 이전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전 국가의 개발계획은 주로 대규모 주택지와 인구가 집중된 도시지역에 집중되었었다. 그런데 90년대를 넘으면서 국가와 개발업자들의 개발대상지가 바뀌었다. 이제는 산과 계곡으로 향했다.

대규모의 댐과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골프장과 아파트단지, 위락시설이 사찰의 정문 앞과 지하를 위협했으며, 심지어는 몇몇 사찰을 수몰의 위험으로 내몰았다. 이 과정은 우리사회에서 국토생태계의 전면적 파괴 작업과 지역민들의 생존위협과 괘를 같이 하면서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불교계의 ‘수행환경 및 민족문화’의 파괴에 대한 반대운동과도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이제 불교환경운동은 더 이상 불자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으며,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사회적인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내용적으로는 환경문제를 ‘생명과 평화’의 내용으로 승화시켰으며, 형식면에서도 중앙의 일부 단체들의 힘과 지혜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고 지역민과 많은 종교인들의 관심과 동참의 방식으로 바꾸어 갔다.

최근 20년 가까이 불교환경운동은 급격히 양적 팽창을 이루어 내었다. 불교환경운동의 선택은 곧바로 우리사회의 가장 큰 환경사안을 만드는 구조가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불자대중들의 인식과 실천이 이러한 불교환경운동의 양적팽창을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계의 환경운동은 생명운동의 철학과 활동원리로 기획되었고, 시도되었다. 그러나 불교계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너무나도 ‘개발주의’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이 일을 풀어갈 불교계의 단체들의 현실과 활동가들의 상태는 ‘생명평화의 실천’과 ‘대안의 논리’로 일관되게 풀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불교적 인식은 국가기구의 건설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을 넘어서서, 생명과 평화에 대한 대안적인 제안이 함께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정직하게 표현해서 우리 불교환경운동은 현재까지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수반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반대’하는 운동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2) 불교환경운동에서 불교생명운동으로의 진화

우리사회는 80년대의 주요 사회문제였던 사회불평등의 문제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 거기에 90년대 이후에는 ‘생태건강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추가되고 있다. 매년 심해지는 도시의 공해와 물의 오염 그리고 먹을거리의 오염 등이 도를 넘어서고 있기에 그러하다.

우선, 텔레비전에서 비쳐지는 자연재해나 이상기온이 산업사회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현대문명과 관계가 깊다는 진단은 우리를 불안케 한다. 인간의 편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빗어낸 비극적 상황을 예측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두 번째로는 생태건강성의 위협은 먹을거리로부터 비롯된다. 물과 공기, 먹을거리의 오염으로 요즘 아이들은 아프다. 매일 받는 밥상은 농부의 고마움을 느끼는 대신 오염으로부터 안전한지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또 다른 형태의 ‘생태건강성’의 문제는 에너지위기로부터 비롯된다. 날로 높아가는 석유에너지 가격이 걱정이다. 현대사회는 석유에너지에 의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구조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석유’를 많이 사용하여 공업생산물을 생산하고, 수출하여야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더욱 걱정이 크다. 만일 고유가가 충격적으로 우리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나라가 능히 이 시련을 견디지 못하면 ‘오염된 공기와 물 그리고 먹을거리’라는 걱정보다 훨씬 더 큰 ‘지구차원의 생태건강성’에 대한 위협이 현실화 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주변 현실은 엄중하다. 불자들은 근본에서 생각하도록 배워왔다. 올바른 관점과 바른 문제의식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기본이다. 화려한 도시의 일상을 지탱하는 뿌리는 ‘식량과 에너지’이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지속적으로 사회에 공급되어야 일상이 가능하다.

이러한 시대인식에 입각하여 불교계의 생명운동 그룹은 ‘귀농운동, 공동체운동, 밥상살림운동, 빈그룻운동, 푸른사찰운동, 생협운동’등을 통해 우리스스로의 생활속에서 새로운 ‘철학과 생활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친화적, 공동체 지향적 과제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농업을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우리국토의 생태계균형을 맞추는 일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유가 시대를 넘어서는 지혜로운 선택이기도 하다. 나아가 아토피로 아픈 세대인 우리아이들의 건강을 지켜내는 선택이기도 하다. 향후 고실업사회를 살아가야 할 세대에게 중요한 일자리를 만드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 일은 가장 크게는 지속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받고 있는 ‘산업도시문명’을 대체한 새로운 ‘생태문명’의 기초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생활속 생명운동들은 대부분 새로운 가치와 그에 걸맞는 생활방식을 찾아가는 운동형태들이다. 기존의 대규모 환경정책들에 대한 반대와 저항운동을 조직하는 방법과는 다른 결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를 보자면, 시민운동이나 기존의 환경운동이 시민들의 참여의 도를 높이거나 정책을 제시하는 등 사회에 부분적인 수정을 가하는 운동의 형태였다. 그리고 생명운동의 경우는 기존의 사회체계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수정하기 위한 인간의 전면적인 변화(회개, 각성, 깨달음)를 요구하며, 그것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를 '세계관의 변화 혹은 영성'에서 찾고 있다.

4. 불교생명운동과 불교(생태)학의 거리와 접점(接點)

이 장에서는 불교계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의 흐름을 불교(생태)학의 흐름과 비교하면서 살필 것이다. 대략적으로 한국불교의 학자그룹 혹은 ‘불교학계’에서 환경운동 혹은 생명운동의 흐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에 취임한 홍기삼 동국대 총장의 취임사를 통해서이다.

그 이후 동국대학교는 ‘에코포럼’ 프로젝트를 2004년 10월 이후 꾸준히 추진하였다. 에코포럼은 18회의 월례포럼을 5기에 걸쳐 진행하고, 세 번에 걸친 쟁점심포지엄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지난 2006년 5월에는 동국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주체가 되어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지식기반사회와 불교생태학’이라는 주제로 진행하였다.

또 불교평론에서는 ‘불교생태학에 대한 철학적 모색’이나 ‘외국의 생명윤리에 대한 소개’류의 논문들을 다루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활동과 그것을 통해 나타난 각종의 문헌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현재 진행되었던 몇 가지 사안을 가지고 불교생태학과 현장의 환경사안과 불교생명운동 흐름간의 간극과 접점에 대하여 고민해 보고자 한다.

1) 불교계 주요 환경관련 사안과 불교(생태)학 - 천성산살리기운동과 관련하여

천성산살리기운동은 생명가치와 경제가치에 대한 종합적 대안이 필요한 문제였으며,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한 차원 나아가는 문제였다. 이 과정에서 불교계는 앞의 문제에 대하여는 우리사회와 마찬가지로 대답을 찾지 못하였고, 후자의 문제에서는 ‘도롱뇽’을 소송의 주체로 사회화 시켜내는 과정에서 약간의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동국대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에코포럼’에서는 천성산살리기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지난 2006년 6월 4일 ‘제2회 쟁점심포지엄’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었다. 이 심포지엄의 주제는 ‘천성산이 제기한 문제와 그 해법’이었다. 이 주제는 다시금 세 가지 소주제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소주제는 ‘도롱뇽소송을 통해 본 우리나라 환경정책 및 법제도적 문제’였으며, 두 번째는 ‘천성산이 드러낸 대한민국 국가와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문제와 그 해법’이었고, 세 번째는 ‘천성산 환경영향평가의 기술적 문제와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방안’이었다.

여기에서 살필 수 있는 것은 우리 불교학계는 당시 천성산살리기운동의 ‘가치문제’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과정과 절차상의 문제’에 보다 더 주안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실 ‘천성산살리기운동’의 1차 주체였던 지율 스님과 많은 환경, 생명운동단체들은 이 문제는 ‘가치문제’로 다루어가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정부당국과 지율 스님 그리고 지율 스님과 불교계, 지율 스님과 기성의 환경단체 간에 생겨났던 의사소통의 단절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천성산살리기운동을 통해서 본다면 불교생태학은 아직까지 대사회적, 대불교적 환경사안에 대하여 현장과 긴밀하고 적합하게 결합하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환경관련 사안에 대한 시급한 대응과 현장성 있는 ‘포럼운영’을 위한 문제의식은 읽을 수 있었다.

2) 불교계 생명운동의 주요의제와 불교(생태)학 - 생명공학논란과 관련하여

앞에서도 살폈듯이 생명운동은 사회적으로 격렬하게 벌어지는 환경분쟁 혹은 생태분쟁 사안과는 약간 결을 달리하는 영역이다. 불교생태학을 모색하는 흐름과 불교계의 생명운동의 주요흐름을 비교해 보는 것도 ‘불교생태학’과 ‘현실운동’간의 간극과 접점을 살피는데 있어서 필요할 부분일 것 같다. 흔히 환경운동은 주요의제가 ‘대형개발정책에 대한 비판’, ‘각종의 환경오염사안에 대한 대응’, ‘정부부처의 개발위주의 환경정책에 대한 비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생명운동의 주요의제는 ‘성장위주의 산업문명’에 대한 ‘대안철학과 대안의 삶의 방식’을 제안하고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실천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 환경운동의 문제가 산업사회의 오염에 대한 위기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면, 현재의 생명운동의 중요한 문제의식은 ‘새로운 대안문명’, ‘생명평화의 대안세상’이라는 인식으로 분화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지난 2005년을 달구었던 황우석 박사 사건을 통해, 생명조차도 이제는 완벽하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환된 우리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불교사상이 생명윤리논란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과 원칙을 가지고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흐름이 있었다. 조계종사회부와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 공동으로 주관한 ‘생명윤리연구위원회’의 토론회를 통해 불교계의 여러 학자와 단체활동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그러나 이 토론회에서도 생명공학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생명윤리’와 ‘안락사’ 부분에 관해서는 연구위원회 차원의 단일안이 제시되지 못하였다. 대신 찬반의 의견이 각기 논거를 가지고 개진되었다. 그리고 생명공학과 직접적으로 인연이 없었던 ‘사형제도’, ‘낙태’ 등의 문제는 단일한 의견이 제출되었다.

당시 이 사안에 대하여 불교계에서는 도법스님과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 주로 비판적인 발언을 하였다. 도법스님과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는 생명공학의 문제가 그것의 효용성 이전에 ‘불교사상적으로 적합한 기술인가?’라는 문제제기와 ‘생명공학을 대신하여 농업과 생태적인 기술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에 대하여 메시지를 제안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당시의 풍토에서는 ‘음모론’과 ‘국익론’등에 의해 한쪽으로 소외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두 번째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지금까지 불교생태학은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불교생태철학’의 범주와 ‘국제사회의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소개하는 활동을 주로 진행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의 ‘에코포럼’을 보면, 지금까지 제1기서부터 제5기까지 ‘시스템과 상호의존성’, ‘욕망과 생명’(이상 1-2기의 주제), ‘지속가능한 발전 1-3’(이상 3-5기의 주제)라는 주제로 진행하였다. 이것과 대비되어 우리사회의 환경, 생태문제는 이와 같은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생명윤리연구위원회’의 활동과 ‘에코포럼’의 운영은 불교학자와 불교환경, 생명운동 활동가 그리고 일반사회학계와 종단의 기구 등이 공동으로 모색한 소중한 경험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경험이 현실속의 구체적인 환경, 생태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불교계가 운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응용불교학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치 않으면 모를까, 기왕에 사회문제에 나선 것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더욱 성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아직까지는 불교생태학의 고민영역과 현실속의 우리사회의 환경, 생태문제 간에는 먼 간극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극조차도 불교생태학을 개척하고자 하는 주체와 환경, 생태문제를 사회적으로 실천활동을 통해 풀어가고자 하는 활동가들 간의 적극적인 만남이 있다면 점차 좁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5. 불교생명운동과 불교학의 접근을 위하여

현대문명에 대한 진단과 이 진단에 따른 대안의 가치관과 대안의 생활문화, 대안의 사회체제를 구성해 가는데 있어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은 커져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더 진행되리라고 예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봤듯이 이러한 불교계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과제중의 하나가 여러 가지 불교환경, 생명운동의 흐름과 불교학의 접근이 될 것이라고 본다. 어찌됐던 이 두 가지 흐름이 한편에서는 상호도움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상호자극을 받으며 상호보완의 관계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노력이 불자대중들의 환경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이론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과제를 살펴보겠다. 이 과제는 동시에 몇 가지 제안이기도 할 것 같다.

1) 환경과 생명문제의 과학적 인식 확산에 공동대응

환경문제와 생명문제에 대한 전세계적인 흐름에 대하여 간략히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런 발전의 영적 차원은 1990년대 유엔이 개최한 일련의 세계회의에서 채택된 행동계획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예로 아젠다21(Agenda 21, Chapter 6.3 및 6.23)은 “개인들이 건강한 물리적·정치적·영적 발전을 포함하여 자신의 완벽한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야만 한다”고 하면서 “(발전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후 연속적으로 채택된 선언문과 행동계획들은 이런 요청을 강화시켜 나갔다. 1995년 채택된 사회발전에 관한 코펜하겐 선언문(Copenhagen Declaration on Social Development, #3)은 “우리 사회가 보다 효과적으로 개인·가족·공동체의 물질적·영적 필요들에 반응하는 일이 시급하며, 이는 수년 동안 지속되어온 확고부동한 과제”라고 확인하고 있다.

 같은 해 채택된 북경 세계여성대회 행동강령(Platform of Action of the Fourth World Conference on Women, Chapter 2, #24)도 “종교, 영성 그리고 신념이 수백만 여성과 남성들의 삶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음”에 동의하였다. 헤비타트 의제(Habitat Agenda, Chapter 1, #4, Preamble)에서 세계 정부들은 “영적이고 윤리적인 비전에 기반한, 보다 큰 안정성과 평화의 세계에 도달하는 데 참여하겠다”고 서약하였다.](종교사회단체들의 환경활동 활성화에 관한 연구, 환경부, 2001년 12월)

위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미 90년대 이후 세계의 여러 지식인, 실천가, 종교인들은 21세기를 맞아 점차 종교성과 영성 등의 가치가 인류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선언하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불자들의 경우도 점차 이러한 흐름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대처할 필요가 있겠다.

뿐만 아니라 이미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환경운동과 특히 생명운동의 흐름에 있어 불교계의 위상과 역할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러한 흐름은 불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는 불자들도 스스로의 사회적 역할을 찾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환경과 생명’에 관한 태도와 입장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몇 가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반드시 ‘환경과 생명’에 관한 사안과 그에 대응하는 여러 가지 사회운동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보다 많은 불자대중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1차적인 정보의 축적과 확산의 과정은 반드시 애정을 가진 불교학자와 불교지식인 그룹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둘째, 이어서 불자대중들에게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의 여러 가지 주제들이 일관된 가치관과 실천방법론을 가진 이론체계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본다.

 불교환경운동과 불교생명운동은 바로 이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대중적인 불교운동의 일환으로 제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불교학자와 중진스님, 불교생명운동활동가, 외부 전문가 그룹간의 활발한 의사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불교계는 환경과 생명문제에 대한 사회적 발언의 필요성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현재 불교계는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종단차원에서는 보다 확고한 정책의지를 가지고 이 요구에 대한 대응기구를 실질화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종단의 정책의지 못지않게 중견스님, 불교학자, 불교계의 환경단체와 생명운동단체들 간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2) 불교생명운동 단체의 대중화와 다양화

불교계의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 사실 가장 중요한 주체는 불교계의 다양한 ‘환경, 생명운동단체’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불교계에 기대하고 있는 것에 비해 불교계의 ‘환경, 생명운동단체’들의 현실은 아직까지는 대중적이지도 못하고 다양한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이 이러하니 불교생명운동과 불교학의 건전한 접근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불교생명운동단체들의 더 많은 노력이 되어야 한다.

사실 불교학자나 특정분야에서 정진하고 있는 스님들이 보다 많은 불자대중과 사회대중을 만나는 공간이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대학이나 종단에서 환경문제와 생명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불자대중들을 만나는 공간을 확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적으로 각종의 불교환경단체와 생명운동단체들은 다양한 방식의 대중강좌와 각종의 전문강좌를 개설하여 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이 여러 불자대중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갈 필요 있겠다. 나아가 이런 경험이 쌓여진다면 나아가 공동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어 단체와 불교학자들이 교류하고, 스님들과 각종의 불교환경단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더욱더 넓게 펼쳐나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3) 불교생명운동과 학문세계와의 인적교류

모든 운동과 활동은 사람간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된다. 불교생명운동과 불교학간의 만남은 사람간의 만남이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둘 간의 접근은 이 두 가지에 종사하는 사람들 간의 접근이 쌓여져야 지속적인 교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불교생명운동 활동가들이 불교(생태)학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장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불교생명운동 활동가들에게 불교이론학습과 생태, 생명이론에 대한 학습을 체계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교육체계는 없다. 따라서 현재 각종 불교단체들의 활동가들의 경우 개인적인 학습과정에 크게 의존하여 활동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서는 몇몇 단체들에서는 자체 내에 활동가교육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으나, 이러한 교육의 커리큘럼도 자기단체의 역사와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활동가로써 정립되기 위해서는 자기단체의 시각과 논리를 전체 사회역사적 맥락과 불교운동의 흐름과 맥락속에서 소화할 수 있는 학습이 되어야 한다. 학문을 담당하는 불교계의 각종 대학이나 교육전문단체들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함께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불교학자들이 각종의 불교환경단체와 불교생명운동단체들에 참여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다양화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많은 일반사회의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들에는 각종의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불교계의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그리고 생명운동단체들에는 불교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실사회의 다양한 ‘환경과 생명’에 관한 사안들은 상아탑에서 적절하게 대응방법론까지 마련해 가기에는 한계가 많다. 그렇기에 불교학자나 뜻있는 분들이 현실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안들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경험의 축적이 학문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현실개입은 여러 형태의 불교생명운동, 불교환경운동 단체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6. 불교생태학의 활성화를 염원하며

우리사회의 80년대는 사회적 평등과 국가적 자주성 실현이 최대의 과제였다. 일단 이 두 가지 과제를 평등성의 실현이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가 국내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면 뒤의 것은 국가 간에 적용한 문제로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평등성의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일면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앙정부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노동자 - 민중’의 사회적 공민권 획득이라는 절차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사회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지역정부의 민주화, 경제의 민주화, 가정의 민주화, 성역할의 민주화 등이다.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직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지역주민들이 지역정부의 좀더 주체가 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정부와 중앙정부간의 관계도 좀더 민주적인 관계가 될 필요가 있다. 경제적으로 우리사회는 ‘20대 80’의 흐름을 막을 필요가 있으며, 가정속에서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속에서 민주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우리사회에서 90년대는 모색의 시대였다. 하나의 축이 세계화에 대한 모색의 시기였다면 다른 하나의 축에서는 이 땅의 진보와 민주주의적 발전에 관한 새로운 모색의 시기였다. 이 기간에 하나의 축에서는 다운사이징, 아웃소싱, 노동의 유연화, 자본의 자유화, 무역의 세계화를 준비했다면, 다른 축에서는 지속가능한 생존과 생태적 각성, 생명평화의 원리, 지역사회 민주화, 풀뿌리민주주의 운동 등에 대해 성찰하고, 준비하는 시기였다. 90년대를 통해 우리사회는 앞의 축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어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생명평화의 패러다임은 80년대와 90년대를 맥락적으로 연속적으로 보되, 이 둘을 동시에 지양하는 성찰의 과정에서 생겨난 사고방식이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각성은 우리사회가 전쟁과 강제적 근대화의 비극을 통해 아직도 영향을 받고 있는 역사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각성은 인류역사적으로 적대적인 양극체제 속에서 길들여온 삶의 패턴을 넘기 위한 몸부림으로 생겨난 것이다.

생명평화는 8-90년대의 성찰과 각성의 결과이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대안의 역할도 있다.

생명평화의 눈으로 보는 21세기 우리나라의 중요 과제는 ‘사회적평등성’과 ‘생태적 건강성’을 동시에 지켜가는 일이다. 이일의 선두에는 우리사회가 현재 우리농촌과 농업에 대한 제대로 된 위상정립을 통한 ‘제대로 된 대접’을 하는 작업이 서 있다.

우리사회가 농업농촌에 대해 제대로 대접할 줄 알게 되면, 거기에는 산업사회가 필연적으로 배태한 ‘20대 80사회’의 문제를 풀 열쇠가 있으며, ‘저성장 고실업’사회를 풀어갈 지혜가 숨겨져 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가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가 실현될 수 있는 초석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이제 우리사회는 이런 꿈을 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불교(생태)학의 흐름은 현재까지 주로 철학과 세계관 그리고 국제적인 환경운동의 흐름에 대한 소개, 환경문제의 구조적 인식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불교생명운동의 흐름은 보다 생활속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 둘 간의 거리만큼 불자대중과 불교생명운동 간에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활발한 사람들 간의 교류가 이 간극을 메워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이정호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정책위원장(준)의 소임과 불교생협연합회(준) 운영위원장 소임을 맡고 있다. 그동안 불교계의 활동으로는 ‘북녘동포돕기 불교추진위 집행위원’, ‘지리산살리기범불교연대 정책실장’,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장’, ‘한국종교환경회의 운영위원’ 등의 역임하였고, 대외적인 활동으로는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기획위원’, ‘한국환경회의 운영위원’, ‘천성산살리기시민환경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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