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이란?

한국불교는 2012년이 되면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교단으로 출범한 지 50년이 된다. 한국불교는 조계종의 출범 이후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1,700년 이래로 가장 괄목할 발전을 이루었다.
조계종이라는 교단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자랑스러운 교단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이 기간 중 한반도 내에서 형성된 사찰자산을 국가 법률에 의해 승계하여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일무이한 단체인 점.
둘째, 국가(정부)가 아닌 승단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교단인 점.
셋째, 한반도(현재는 남한) 내의 전래의 전통사찰과 승려, 신도를 동일한 종헌 종법으로 규율하는 점.
넷째, 교단의 주축인 승가가 ‘출가하여 청정한 생활을 하는 비구, 비구니’로 구성되어 있는 점.
다섯째, 승가는 사찰의 부동산과 동산 등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공적이면서 공동적으로 소유하고 관리를 하는 점.
여섯째, 구현하고자 하는 불교적 가치가 선불교의 정신을 중심으로 하되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등의 모든 가르침을 포괄하는 점.
일곱째, 대중포교와 사회적 실천을 통해 불교를 사회와 역사 속에 구현하고자 하는 점.(이사무애를 제고(提高), 대승불교의 성불도생(成佛度生)을 실천, 민족통일과 문명사의 새로운 흐름을 대비, 불일을 만고에 빛나게 하고, 삼보를 법계에 유전케 함―종헌 전문(前文)에서)

이상의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교단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조선왕조가 무너지던 190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정화불사를 거쳐 마침내 1962년 역사적인 최초의 불교교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종단관을 가진다 할 때는 이상과 같은 조계종의 교단적 성격과 그 역사적 흐름을 잘 아는 것을 뜻한다.

조금 번다하지만 그동안 대한불교조계종 출범을 최초의 불교교단 출범이라는 의미로 역사적 해석을 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과정과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해 보겠다.

조계종은 한국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교단이다. 조선왕조 말기인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던 교단설립 운동의 최종결과로 1962년에 출범된 교단이며, 그 교단의 이름이 조계종인 것이다. 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불교도들에 의한 자율적인 교단이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찰과 승려에 관한 사항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 감독했다. 가까운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이라는 국가법령에 그 구체적 감독 내용과 승인 사항이 규정되어 있었다.

예컨대 “승려가 되려는 자는 3개월 이내에 예조에 보고하고 베 30필을 납부하면 도첩을 발급한다” “선종과 교종은 3년마다 승려를 선발하는 시험(승과)을 치러서 각 30명씩 지도자를 배출한다” “사찰의 주지는 선교양종에서 예조에 복수로 추천하면, 예조는 이조에 문서를 이첩하고 이조가 심사하여 최종 주지를 발령한다. 주지 임기는 30개월이다. 주지가 잘못을 저지르면 주지는 물론 추천한 자까지 처벌한다”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에서 사찰과 승려에 관한 사항을 직접 관장해왔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혹독한 억불숭유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경국대전》의 내용들은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중종 시대인 16세기부터는 일시적인 시기를 제외하고는 도승(度僧)제도 자체를 금지하였고 승과(僧科) 또한 폐지되었다. 국가에서 관장하여 시행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승려가 되는 길이 공식적으로 없어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비공식적으로 승려가 배출되었기에[私度] 사회적 수준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조시대인 당시에는 사찰과 승려를 관장하는 불교 자체적인 교단이 있었을 턱이 없으니 도승(度僧)제도를 불교계가 스스로 직접 주관하여 시행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왕조가 망해가던 1902년에 와서야 국가법령(국내사찰 현행세칙)을 새롭게 제정하여 국가가 사찰과 승려를 관리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사사관리서(寺社管理署)라는 관청이 설치되어 전국 사찰을 지역과 규모를 나누어 피라미드 형식의 체제로 관리하고자 하였고, 승려가 되는 절차를 새롭게 정하여 승려증(도첩)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이때 전국의 승려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뿐, 관리 능력을 상실한 조선왕조는 1904년 사사관리서를 폐지하였으며 국내 사찰 현행 세칙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이러한 시기에 이르러서 조선의 승려들은 근대화의 큰 흐름을 읽고 이제는 국가가 아닌 승려 스스로가 교단을 만들어 사찰과 승려에 관한 사항을 직접 관리하고자 했다. 마침내 1908년 3월 전국 각 도의 사찰대표 52인이 모여 전국 사찰과 승려를 자율적으로 통할하고자 하는 기구, 즉 교단을 만들었으니 그 교단 이름이 ‘조선불교 원종(圓宗)’이었다.

20세기 초에 한국의 불교인들이 승려를 자율적으로 규율하고 사찰을 자주적으로 관리·운영하고자 하는 교단을 만든 것은 근대적 의식에 눈뜬 당시 불교인의 크나큰 역사적 성취였다.

그러나 원종 출범으로 시작된 교단설립 운동은 제대로 완성되어 시행도 못한 채 일제 강점기를 맞아 국가법령인 사찰령을 통한 국가(총독부)의 통제시대로 환원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교단설립 운동은 일제 총독부 치하에서도 임제종 설립(1911년),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설립(1922년),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 개최 및 종헌·교무원 규정·교정회법·종회법·법규위원회법·승니법규 등 제정(1929년), 조선불교선종 종헌제정(1934년), 조선불교조계종 및 태고사총본산법·승적법·종회법·포교법 등 제정(1941년)으로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다.

일제 치하에서 지속적으로 시도했던 이러한 교단 형태의 조직들은 사찰재산과 주지 인사를 관장하는 권한을 가진 명실상부한 교단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협의체의 수준에 머물렀고, 실질적인 인사권과 재산권 등은 여전히 사찰령에 의해 총독부가 행사했다.

해방을 맞아 비로소 승려에 의한 자율적인 교단을 출범시켰으니(1946년) 교단 이름이 ‘조선불교’였다. 조선불교교헌을 제정하고 중앙총무원 조직, 도 교무원 설치, 교구제 실시, 재산통합조치(중앙 5: 교구 3: 사찰 2) 추진 등 의욕적인 불교교단을 만들고자 했으나 이 또한 해방공간의 사회적 갈등과 혼란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 남북의 두 개 정부 수립, 한국전쟁의 격변을 거친 후 1954년부터 불교계는 다시 교단 설립을 위한 대작불사에 들어갔다.

1954년부터 시작된 교단설립 운동을 그동안 정화불사(淨化佛事)로만 호칭하였다만 그것은 교단설립 운동의 한 측면만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당시의 운동을 많은 사람들이 ‘정화운동’ 또는 ‘정화불사’라고 이야기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근대 불교사의 큰 맥락으로 본다면 1954년부터 시작된 정화불사의 본질은 1908년 이후부터 50년간 진행되어 왔던 미완의 불사인 교단설립 운동이다.

이 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광복운동과 건국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10년 일제에 병합된 이후 36년간 지속적인 국권회복 노력을 하였는데, 그 노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됐다고 본다. 한 측면은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일제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또 한 측면은 왕조사회가 아닌 현대적 민주국가를 지향하되, 자유시장주의국가로 할 것인지 아니면 공산주의국가로 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경쟁적 노력을 벌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해방 이후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졌다.

이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해방을 맞은 한국불교도 두 가지 측면의 과제가 있었다. 국가의 지배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교단을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으며, 두 번째 과제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교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1950년대가 되어 국가가 직접 종교단체를 관리하는 것이 헌법에 의해서도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불교도는 이제 당연한 권리로서 자율적인 교단을 설립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굳이 자율적인 교단설립이라는 첫 번째 과제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하여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 과제인 교단의 정체성 문제는 시급히 정리하여야 할 점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불교계가 추진하고자 합의된 교단의 정체성은 승려는 청정독신 비구승이라야 한다는 점과 무소유공동체, 그리고 선불교의 정신으로 모든 불교의 가르침[諸宗]을 포괄한다는 점, 그리고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하나의 종헌종법으로 통합하는 종단승가를 구축한다는 점 등이었다.

여러 가지 정체성의 문제는 앞서 언급한 조계종의 일곱 가지 특성으로 최종 구현되었지만 1950년대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승려의 청정성 확보 문제였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 ‘정화불사’라는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 보면 20세기 초부터 진행된 일련의 불교운동은 국가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불교교단을 설립하겠다는 근대적 노력이었다. 또한 1954년부터 시작된 ‘정화불사’의 취지는 교단설립에 필요한 정체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제는 1950년대의 정화불사를 보는 시각도 큰 틀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즉 비구승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교단청정운동인 정화불사 또한 교단설립 운동의 한 축이며 그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던 각종 불교단체와 기구의 창립, 그리고 해방 후와 정화불사 시대의 노력을 ‘종단을 재건하기 위해서’라고 하거나 ‘종단을 새롭게 정화하기 위해서’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과정과 노력은 ‘사상 최초의 교단설립 운동’이었다고 해야 한다.


한국불교 중흥의 길을 향하여

이상과 같이 ‘조계종이란 한국불교 전체를 아우르는 교단이다’라는 의미로 정리했을 때 한국불교 중흥의 길은 이제 새로운 시각과 방향, 그리고 내용으로 전망할 수가 있다.

교단이라는 입장을 바탕으로 불교중흥을 추진한다는 것은 종헌 전문(前文)에 서술하고 있는 “교단이 수행과 전법의 영겁기단(永劫基壇)이 되도록 한다”라는 취지와 부합하는 일이다. 이러한 입장에 섰을 때 우리는 무엇을 자성하고 쇄신해야 할 것인지가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부각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조계종을 기반으로 한국불교 중흥을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시대 조계종의 역사적 책무이기도 한다.

그럼 교단의 입장에서 무엇을 자성하고 쇄신할 것인가?

크고 작은 과제가 여러 가지 있겠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서 첫째로는 한국불교가 1,000년 전에 형성된 종파불교를 벗어나 현대불교적 회통불교로 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며, 둘째로는 조계종이 이념이나 종교적 가치를 구현해야 하는 단체일 뿐만 아니라 사찰, 교구, 종단을 관리·운영해야 하는 교단임을 고려하여 종단운영 시스템의 일대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제와 관련된 대표적인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명칭의 적합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교단의 명칭은 교단의 진로와 내용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에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한국불교중흥의 길을 말함에 있어 교단 명칭 문제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계종은 서두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한국불교의 유일무이한 교단이지만 ‘조계’라는 그 명칭은 선불교의 특정 가풍만을 표현하고 있고 ‘○○종’이라는 것은 종파불교의 명칭으로 그 당시의 역사적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불교가 중흥하고 세계 속에 그 교화를 넓히려 할 때 제약하는 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살펴보자면 교단의 명칭을 ‘○○종’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종(宗)’이란 ‘사상적 특성’ ‘가르침을 펼치는 가풍’을 뜻하는 말로서 예컨대 ‘임제종’이라 하면 ‘임제 스님의 선풍(禪風)’을 뜻한다. 그래서 임제 스님의 가르침과 선풍을 추종하는 선사는 ‘나의 가풍은 임제종이다’ 혹은 ‘나는 임제종 승려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개 중국 당송시대의 운문종, 위앙종, 조동종 등의 표현들은 교단 이름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각각 운문 스님, 위산 스님, 동산 스님의 가르침과 그 선풍을 표현한 것이다.(중국은 역사적으로 교단이 있어 본 적이 없다.)

선불교의 역사에 나타나는 다양한 ‘○○종’뿐만 아니라 불교학 또한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시대와 지역에 따라 수많은 경전들과 논서들이 각각 별도로 유통되어 유포되는 과정에서 화엄종, 천태종, 법상종 등 다양한 사상적 종파불교가 형성되었음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과거 중국, 한국, 일본불교사에서 ‘○○종’이라고 표현함은 교단의 명칭이 아니라 불교의 특정 교학이나 특정 선사의 선풍(禪風)을 뜻했다.
그런데 이러한 종파불교는 일본이 유독 심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특정한 불교종파의 가르침을 펼치는 스승과 그 제자들이 거주하는 사찰들이 연합하여 각각 ‘○○종’이라 표방하면서 그 사찰을 ‘○○종 사찰’이라 하고, 스님들을 ‘○○종 스님’이라 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 메이지유신 이후에 근대적 서구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각 불교종파들이 개별 사찰을 법인화하였고, 법인으로 된 사찰을 다시 연합법인으로 묶어 종파별로 따로 교단을 만들었는데 그때 그 종파불교의 교단 이름을 ‘조동종’ ‘본원종’ ‘정토종’ 등 ‘○○종’으로 했던 것이다.

한국불교는 역사적으로 오교구산 등 다양한 선풍을 표방하는 선문(禪門)과 특정 경전을 존중하는 교학적 종파가 있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회통적 입장이었고 일본불교처럼 사찰과 승려가 별도로 분리되어 조직화된 경우는 없었다. 아마 일본은 근대 이전까지 정치제도가 봉건제와 막부제 등으로 지방자치를 시행했지만 한국은 통일신라 이후로 군현제를 근간으로 한 중앙집권제를 시행해 온 오랜 정치적 전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가 앞서 언급한 대로 1908년 처음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통할하는 자체적인 교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교단 명칭을 ‘조선불교원종’이라 했다. 한국불교는 종파불교의 전통도 없는데 일본불교의 교단제도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종’이라는 종파불교적 교단 명칭을 짓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그나마 ‘원(圓)’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특정 종파가 아닌 모든 불교를 아우르는 통불교를 지향하는 뜻을 담았다 하겠다. 어쨌든 원종 설립 추진 이후로 한국불교는 100년 가까이 교단 명칭을 정할 때마다 ‘○○종’이라는 일본의 종파불교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962년 교단 출범 때 ‘대한불교조계종’으로 교단 이름이 정해진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힐 때 그 한계의 핵심은 한국불교를 특정한 종파불교의 굴레 속에 갇히게 한다는 것이다.

‘조계’라는 말이 가지는 선종사에서의 독보적 위상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불교가 중흥하고 세계에 그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는 선불교의 뜻만 표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조계종은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이 기간 중 한반도 내에서 형성된 사찰 자산을 국가 법률에 의해 법률적으로 승계하여 소유하고 관리하는 유일무이한 교단임을 감안할 때, 조계종이라는 명칭에 국한됨으로써 다양한 불교의 가르침(화엄, 법상, 천태, 정토 등)을 기반하여 형성된 불교자산을 승계하여 관리하는 법률적 주체로서 지위에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는 통일한국의 시대를 대비해서라도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교단 명칭의 문제는 조계종 출범 50주년을 맞은 현단계에서 한국불교중흥을 추진하는 자성과 쇄신결사의 일환으로 종단적(교단적) 차원에서 신중한 검토를 거쳐 공론화하여 해결할 우선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둘째, 조계종의 종지(宗旨)의 그릇을 보다 크게 만들어 그 내용을 풍부하면서도 이 시대 한국불교가 구현하고자 하는 뜻을 담아내야 한다.

현재 조계종의 종지라고 하면 대개 ‘조계’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조계선풍을 진작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럴 때의 조계선풍은 육조혜능 스님의 유명한 게송의 한 구절인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있으랴?)”에 나타나 있다고 본다.

만일 이러한 조계선풍을 진작하는 것이 오늘날 조계종 종지로 정의된다면 조계종이라는 한국불교 교단의 포괄적 성격과 역할에 비추어 볼 때 불교의 사상적인 한 측면만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조계종 종헌 제2조에 규정되어 있는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한 근본교리를 봉체하며 /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그 종지로 한다”라는 내용에서 앞의 부분은 빼고 뒷부분 일부만 인용하여 “‘직지인심 견성성불’이 조계종의 종지이다”라는 이야기도 한다.

이 경우는 선불교의 조사선 가풍을 오늘날 조계종의 종지라고 하는 것으로서 앞의 경우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이전의 조계종은 선종가풍을 뜻하는 용어였지만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은 교단의 명칭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근자에 오면 간화선이 조계종의 종지요 정체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간화선은 조계의 선풍(禪風)이 침체해진 선불교 후기에 형성된 참선수행의 여러 방법론 중의 하나인데 이를 조계종이라는 교단의 종지라고 생각함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불교가 간화선이라는 선불교의 특정 수행법만을 사부대중에게 일반화시키려 하는 것도 불교의 가르침을 부분적으로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지(宗旨)’라는 용어에서 ‘지(旨)’의 의미는 뜻, 취지, 목적이라는 의미이다. 즉 종지는 ‘종단의 목적과 취지’라는 뜻이다. 따라서 종헌 제1조는 명칭과 연혁을 서술하고 있고, 제2조는 조계종이라는 교단의 목적과 취지를 밝히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단체를 규율하는 정관의 내용도 대개 명칭, 목적 등의 순서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와 같다.

이렇게 볼 때 현행 조계종 종헌 제2조 종지 조항의 해석은 ‘본 종단은 석가세존의 근본교리를 잘 깨닫고, 마음 밝혀 성불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뜻이 된다.

포괄적이고도 함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불법을 펼쳐야 하는 조계종의 종지로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면 종단의 종지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사부대중이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 내용도 오늘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간략히 예를 들면 “본 종단(교단)은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깨닫고, 마음 밝혀 성불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함을 지향한다. 특히 사부대중은 2,600년을 이어온 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한반도에서 1,700년간 형성되어 온 불교 재산을 보호하며 불법을 오늘날의 가르침으로 되살려 한국의 민족통일과 새로운 문명사에 대비하여 노력하며, 이 땅의 어려운 이웃과 고통받는 중생이 있는 곳에 우리 모두가 아픔을 함께하며 동체대비의 대승보살도를 실천하여 불국정토를 이룩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예문은 소략한 것으로 우리 교단의 취지와 목적을 다시 새롭게 정리하게 될 때는 전문적 검토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 한국불교를 사회적 자비 실천을 하는 현대불교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불교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불교들이 21세기 현대사회에 와서도 여전히 천 년, 이천 년 전 과거의 불교에 안주해 있다. 뜻있는 학자들이 역사상의 여러 종교 중에 불교가 가장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가르침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색하다. 첨단 과학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불교를 적극 수용하지 않는 이유도 불교를 너무 낡은 옛날 가르침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기본적 공부 방법은 한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문불전을 해석하고, 외우고, 음미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데, 이 방법은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문제가 많다. 일단 그 한문이 1,000년, 2,000년 전의 불교관으로 번역되고 저술된 중국 언어라는 점에서 내용적인 면에서나 언어적인 면에서 현대적으로 소통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20세기 이후에 집적된 현대불교학의 성취를 교재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지게 한다.

공부하는 내용이 천 년 이전의 불교교학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특정 종파불교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한국불교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점은 초기불교 시대의 불교학의 범주에만 주로 머물고 있어 현대적인 응용이 부족한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의 남방불교나 특정 종파불교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불교, 중국불교, 티베트불교, 베트남불교 등 아시아 불교의 공통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회통불교의 정신으로 시대마다 불교 가르침을 종합해냈던 전통이 있었다. 게다가 한국불교는 조선시대의 500년 억불탄압으로 인한 교학적 공백 때문에 장기간 유지·전승된 특별한 교리체계가 없어 전통적 도그마로부터 일단 자유롭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불교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하는 노력에 비교적 큰 제약이 없다는 큰 장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한국불교중흥 대토론회(불교역사문화기념관).
이제 한국불교가 특유의 포용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2,600년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회통하여 현대적 불교로 만들어내 한국사회는 물론 세계로 펼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여타 아시아 불교국이 과거 전통의 무게에 못 이겨 옛날 방식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을 때 한국불교만이 현대적 불교를 만들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불교를 현대화한다는 것은 과거의 불교를 바탕으로 오늘의 불교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만 머무는 불교에서 세계로 넘나드는 불교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은둔하는 불교,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불교, 기도(기복)만 하는 불교, 명상(참선)만 하는 불교에서 연기적(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사회적 자비를 실천하는 한국불교를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이제 2,000년 전 인도시대의 불교관과 중국 당나라 송나라 시대의 불교관을 현대사회의 불교관으로 그 내용과 언어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 또는 한국불교의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따져볼 수 있는 풍토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교육과 연구에 대한 교단의 과감한 투자와 노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불교인들이 기존의 낡은 권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힘을 모아 성원하는 것이다. 이제 각성된 불교 대중들이 소수의 종교적 권위를 타파하고 전면적인 불교혁신과 불교현대화에 나설 때이다.

넷째, 종단(교단)의 운영 시스템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

현재의 종단 시스템은 1962년 체제에서 시작되어 1994년에 크게 개편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를 십 년이나 넘긴 오늘날의 한국불교 현실에서는 근본적으로 종단 시스템을 혁신해야 할 때가 되었다. 기존의 체제와 내용으로 지금까지 큰 발전과 중흥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진작부터 한계에 봉착했다.

규모는 커졌지만 내용이 부실하며, 역동성은 있지만 방향이 없다. 현재 조계종은 1,000명 미만의 스님들이 힘겹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람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친다. 이래서는 한국은커녕 조그만 지자체 규모에서조차 전법교화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50년, 100년 뒤를 말할 것 없이 당장 5년 뒤, 10년 뒤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착수해야 할 때이다. 그 주요 내용은 사부대중이 종단(교단)운영에 적극 참여하고 불교중흥의 노력을 다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중앙종무기관을 효율적이고 내실 있는 기구로 만드는 일: 불교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운용하여 예산규모를 대폭 늘려야 하고, 교단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행정시스템을 구축해야 함.

2. 교구제도를 전법 포교의 책무와 연계하여 시행하는 일: 현행 24교구를 국가의 기초자치단체(약 270개)와 대응하여 획정하되,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는 총무원이 관련 사무처를 별도로 두어 직접 관할하고 부산, 대구, 광주, 울산 등 여타 광역시는 인접한 교구들이 협의회를 통해 공동으로 관할하는 방법. 그리고 북한지역 포교와 지원을 위한 특별교구도 설립해야 할 때임.

3. 비구니 스님도 전법교화 현장에 적극 나서고 종단 운영에도 적극 참여하여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일: 비구 스님 중심으로 종단을 운영하기에는 규모도 커졌고 다양한 전문성을 필요로 함. 그리고 비구니 스님이 우수한 전법교화의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임.

4. 전문 종무원제도를 만드는 일: 종단운영과 관리를 위해 사찰, 교구, 중앙종무기관, 종단 산하 시설과 단체에 순환 임용될 수 있는 전문 종무원제도를 도입해야 할 단계임.

5. 재가불자들의 불교적 활동(불교시민단체 등)을 적극 지원하는 일: 언필칭 이천만 불자들의 불교적 실천이 한국불교 중흥으로 직결된다는 인식으로 지원 육성하고 조직화, 네트워크화할 필요가 있음.

6.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제도를 현대에 맞게 전면 쇄신하고, 젊은 출가자를 교단이 전적으로 지원하여 육성하는 일: 젊은이들이 보다 쉽게 불교교단에 참여하여 보람 있는 삶을 살며 훌륭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출가의 문을 폭넓게 열어야 하며, 승가의 청규와 규범, 사찰환경과 종단풍토 또한 현대적 문화로 대폭 개선해나가야 할 것임.


맺는말

한국불교가 20세기 들어와 조계종이라는 사상 최초의 통일된 단일교단 설립에 성공하여 50년이 흘렀다. 해방 후에 불교 재산과 사찰이 국유화되지도 않았고, 불교계가 본산제로 분리되거나 개별 사찰로 사유화되지도 않았다. 훌륭한 선조 스님들의 판단과 위법망구(爲法忘軀)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무소유 공동체인 조계종이라는 교단을 구성할 수 있었음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 같은 일은 소수의 세력으로 출발한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을 거치며 중국 인민의 마음을 얻어 마침내 중국 대륙을 통일해낸 일과 비견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정화불사 기간의 고초는 힘겨웠고, 최종적으로 교단설립으로 나타난 결과는 뜻깊었기 때문이다.

정화불사와 조계종 출범 이후의 50년 역사를 분쟁의 역사로 매도하는 일도 있는데 이 또한 조계종이라는 교단 설립의 역사적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해방 후 전쟁도 겪고 어려운 시절과 분쟁의 시절을 거쳐 왔지만 오늘날은 분단의 상태나마 현대적 민주국가로 어엿이 성장해 온 역사이듯이, 한국불교도 대한불교조계종을 통해 1,700년 역사를 승계하여 오늘과 같은 발전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조계종은 다시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되었다. 조계종은 지난 5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그 내용과 형식을 전면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현재 조계종의 종파불교적 사상적 정체성과 낙후된 교단 운영시스템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안 된다.

반드시 지금, 이 시기에 한국불교의 내용과 형식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

이제 다시 때가 되었다. 종단의 지도자와 전국의 교구 스님들과 불자들이 한목소리로 한국불교의 자성과 쇄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사의 정신으로 한국불교를 새롭게 중흥하자고 한다. 국민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고 불자들은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남은 것은 종단의 지도자들인 스님들이 결단하여 현실적으로 추진할 때이다. 한국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출발하자. 

현응 / 조계종 교육원장. 1971년 해인사로 출가해 종성(宗性) 화상을 은사로 수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위원회의 국역연수원에서 수학했다. 봉암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해인사 승가대학 강사, 해인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깨달음과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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