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1922~1996)‧서경수 (1925~1986)]

1. 시작하는 말

한국불교의 개혁과 진로 모색이라는 주제를 다루려 할 때 우리는 불가불 만해 한용운의 유신론을 떠올릴 밖에 없다. 만해 스님의 유신론은 모든 유신 담론의 주어가 되기 때문이다. 그만치 만해 한용운(이하 만해로 호칭)의 유신론은 한국불교 개선을 위한 선구적 역할과 선언적 기능을 했다. 또 그의 유신론 속에는 오늘의 불교개혁을 위한 거의 모든 소재들을 내포하는 것이어서 그에 따른 쟁점 또한 만만하게 해결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만해의 유신론은 선도적이었으며 우리의 불교 현장을 꿰뚫는 것이었다. 그의 불교 개혁론이 발설된 지 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무도 이 틀을 벗어날 새로운 불교 현장 파악의 시각이나 논지를 전개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며 같은 시대를 호흡했던 불연 이기영 교수·혜안 서경수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경우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활동했으며 우리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이 두 교수를 선정한 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직접 만해의 유신론을 접하며 그에 따른 논지를 펼치면 되었지 ‘왜 이기영·서경수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유독 이 두 교수에 국한시켜 우리 시대의 유신론을 재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인 것이다.

오늘의 한국불교 현장에 대한 쓴 비판의 목소리는 이 두 교수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또 이분들이 쓴 단편적인 논설문들이 폭넓은 감명을 준 것도 아니었다. 더욱 선언서 같은 성격을 띠고 일정한 운동을 이끈 것도 아니었다. 더 나아가 개혁과 유신에 대한 담론이 다른 것과 차별 지을 만큼 특징을 지닌 독자적인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아마 그런 특징과 호소력을 지닌 것이라면 법정 스님의 〈부처님 전 상서〉이거나 휴암 스님의 호소가 더 큰 감명과 파장을 일으켰을 것 같다. 적어도 불교인들 내부의 핵이라 할 스님들에 의한 발설로 볼 때는 더욱 그러했고 “부처님 전 상서”라는 수사적 표현은 거의 선언적 호소력마저 지녔다. 그리고 아직도 불자들 사이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기영(李其永, 1922~1996)
그럼에도 이 두 교수를 선정한 배경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정의 타당성과 그분들의 위상, 그리고 주장한 배경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로 생각된다. 그래야만 불교개혁이란 표제 아래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불교 현장에 대한 갖가지 비판적 담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가자란 위치, 곧 불교내부인-승려가 아니라는 상대적 위치, 또는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제3의 시각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는 비판자의 입장을 확보할 수가 없다. 또 하나의 대상화가 얼마나 현실을 적확히 드러내고 자기 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곧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잘잘못의 지적은 물론 그것을 주체적인 내면화를 거쳐 개선하지 않으면 결국 ‘지적 객관성이거나, 투명성’을 이유로 잘못된 대상을 손가락으로 지적하며 질타하는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를 근거로 삼을 때 우리와 함께한 두 분의 불교유신의 담론은 분명히 음미할 소재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두 분은 우리와 모든 면을 함께 공유한 분들이다. 곧 세속의 재가 불자라는 점과 이미 작고하셨지만(서경수 1986년, 이기영 1996년 작고)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아직도 거의 같은 사회·문화·정치적 분위기를 호흡한 분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대적인 불교학을 자신의 학문 영역으로 삼았으며 서구적 근대 의식을 그대로 반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한국불교/학을 보는 시간·장소의 현실감/현장성이 우리와 동일하고 경우에 따라서 한국불교를 접근하는 방법마저 큰 차이 없는, 우리와 동일한 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경수·이기영의 유신론은 지금의 우리, 곧 재가불자 교수·지식인들이 보는 불교유신론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고 우리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분의 해당 논설문을 그대로 읽으며 공감의 폭을 확대하면 당연하지 또 하나의 글로서 이분들의 진술이거나 담론을 논의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곧 공유성의 내용에 관한 것과 어떤 맥락(Contexts)에서 공유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함께 보고 있으며 무엇을 비판하고 있으며 또 그 비판들의 근거는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이다.

첫 번째 공유성의 특징은 소위 불교의 근대성론이다. 한국불교의 근대성론은 많은 논의의 소재를 지니고 있지만 간결하게 우선 불교는 과거에서 벗어나 근대화되어야 하고 현대화되어야 한다(Buddhist Modernism, Modernist Buddhism)는 것이다. 곧 전통적인 양태와 행태에서 벗어나 시대와 현실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두 분 유신론의 전제이다.

두 번째 공유성의 특징은 현장성이다. 한국불교는 역사적 현장이나, 지금의 현장에서 일탈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위상 변화는 개화기, 일제강점기와 맞물려 있고 해방 이후의 한국 현실의 변화와 표리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국불교의 전통은 구한말을 벗어나며 일제기와 해방 이후 큰 위상 변화를 일으켰고 그에 따른 불교의 변화는 과거와의 확연한 거리를 갖게 한다.

 

서경수(徐景洙, 1925~1986)
세 번째 공유성은 앞에서 제기된 근대성·현장성을 근거로 할 때 한국불교의 전통(Tradition)과 정통(Authenticity, Orthodoxy)은 다시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논의이다. 특히 승가(Samgha, 僧伽)에 대한 재해석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승가의 존재 방식은 이미 부처님의 승단 형태이거나 역사적으로 변모되고 확대 해석된 공동체의 형태를 일탈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 자체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경수, 이기영은 불교 유신을 위한 글을 어느 불교학자보다 많이 쓰고 있다. 이기영의 경우 《다시 쓰는 한국불교 유신론》(1998년, 한국불교연구원 간행)이란 제목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정도이고, 서경수는 많지 않은 유고 가운데 상당량의 논설이 한국불교 개혁에 대한 것이 주 테마를 이룬다(2010년 《불교를 젊게하는 일》 活불교문화단 간행). 나는 서경수·이기영의 유신에 대한 견해를 이분들의 모든 논설을 통해 종합적으로 보려 한다. 그리고 이분들의 종교적 행위까지도 포함시키려 한다. 행위도 하나의 텍스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파행적 현장, 일탈된 현실, 그에 따른 구체적 개선책의 나열을 중요시하기보다는 그러한 낱낱의 사항들이 앞에서 제시한 3개의 관점이나 틀에서 어떻게 그 특징이 부각되고 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를 논의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분들이 처한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맥락에서의 주장일 수밖에 없고 근대 불교학자의 한국불교 현장에 대한 해석이라 이해되기 때문이다.

 


2. 과거의 부정, 과거의 긍정

한국불교에 대한 평가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과거에 대한 부정과 거부에 있다. 현재 있어야 할 자리, 지켜야 할 자리에서 일탈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실 부정의 논지, 그것이 한국불교가 갖는 위상이고 그것을 효시적으로 발설한 분이 만해이다.

서경수 역시 만해의 유신론을 기리는 글(〈만해 사상과 오늘〉 《법륜》 122, 1979. 4)에서 우리가 즐겨 인용하는 만해의 선언적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유신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요.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란 말을 다시 되풀이하며 자신의 논지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곧 파괴란 새로운 창조의 어머니이며 새로운 시작이란 말로 자신의 불교 현실에 대한 비판을 펼친다. 따라서 파괴되고 부정된 마당에서 “불교가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구태의연한 불교가 왜 아직도 잔존해 있는가”를 묻는다. 철저한 전통에 대한 부정과 거부, 그리고 한국불교의 과거 지향성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동양 역사와 함께 늙어온 불교는 과거를 되돌아 보는 회상속에서 ……과거적 존재로 굳어버린 인상을 지닌다. 모든 종교는 강한 보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거 지향적 성향을 농후하게 띠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안주하고 과거로 역행하려는 한국불교의 면모는 문화재적 가치만을 지닌 유형문화재로 전락했으며 그런 행태가 사찰 보수, 거대 불상, 거대 법당의 조성 같은 대작불사의 유물적 존재로 떨어졌다고 진단한다.

불교 교단은 결코 유형문화재가 아니다…… 오늘을 사는 종교라면 오늘의 시간을 호흡하며 오늘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불교는 어쩐지 오늘의 문제보다는 어제의 문제, 더 거슬러 지난 과거의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다…… (불교는) 어제의 시간에 사는 유물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과거 지향의 불교에서〉 《법륜》 135, 1980.5)

과거에 대한 부정은 따라서 근대화되고 현대적 여건에 합치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이 점에서 이기영의 경우는 “왜 불교는 현대화되어야 하는가”라는 근대화 담론의 질문을 던진다(〈불교 현대화의 길〉 《다시 쓰는 한국불교유신론》 p.249). 곧 과거 전통에 대한 서경수와 동일한 수준의 비판과 함께 근대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제기되는 불교적 근대/현대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지 연대상의 문제이거나 불교의 초기, 고대, 중세, 전근대, 근대라는 표준적인 시대상의 구분만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 당시의 초기 불교, 난숙한 발전을 거듭하던 부파불교, 중관·유식불교 시기이거나 근대의 물결 속에 타자화되어 학문의 대상으로 바뀐 근대기의 불교와 같은 사상적 변천을 겪는 불교 발전의 한 시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경수·이기영이 강조하는 불교적 맥락에서의 근대/현대란 근대성(Modernity)의 다양한 계획들과 그것이 가져다준 서구적인 틀과 서로 공유되고 있다. 종교 행태의 틀에서 나타나는 이전 시기의 전통적 의례·의식이거나 미신적 요인들이 제기하는 문제점들, 그래서 그런 요소들을 제거시킨 형태들을 지시한다. 그리고 수직적 신분 관계보다는 평등한 관계와 지역성을 넘어선 보편성을 표방하고 공동체적인 집단의식보다는 한 개인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근대적 가치관들이다.

그러나 이 근대불교란 미래를 향해 앞으로만 나아가는 진보주의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분들의 전통 부정은 부처님 당시의 불교를 지양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의 부정과 과거의 긍정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먼 과거인 원형에 대한 부정이기보다는 가까운 과거에 대한 비판으로 아시아의 근대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다. 곧 불교에서의 근대는 가까운 과거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부처님 당시의 먼 과거는 오히려 소급하여 복귀되어야만 하는 원형이 되는 것이다.

이기영의 〈불교 현대화의 길〉이란 표제 아래 묻고 있는 ‘현대화의 필요성’과 ‘무엇이 현대인가’라는 질문은 이러한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확연히 설명한다.

불교는 그 자체가 영원한 실상을 지닌 것인 까닭에 현대화와 같은 고식적인 수단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불교의 영원성만을 논하여 역설적으로 현대화를 조소하는 경향을 취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불교는 영원한 것이다. 그 영원한 것을 현대의 한계적 상황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교는 너무 시대적 영향을 많이 받은 산물인 까닭에 현대와 동떨어진 것으로 나타나는 일이 많다. ……불교는 현대화되어야 한다.(〈불교 현대화의 길〉 《다시 쓰는 한국불교유신론》 pp.249-253)

곧 우리가 안고 있는 불교의 근대적인 문제점만을 문제시하는 것이지 원형으로서의 부처님의 이상은 그대로 유지, 복원되기를 바란다. 이기영은 이런 문제점을 항목화하고 있다. ①현대는 과학 기술의 시대 ②현대는 자본주의적 체계와 공산주의적 반발의 이념 갈등의 시대 ③현대는 민주주의 정신의 개인주의의 시대 ④한국은 세계적 컨텍스트 속에서 주축의 변두리를 돌며 예속과 모방과 방황의 시기를 겪는 근대/현대 사회의 특성으로 지목한다. 따라서 그는 이 근대 속에서 한국불교가 자기 몫을 다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곧 불교 근대화의 프로그램을 나름대로 제시하는 것이다.

1) 과학적 이해와 적용을 위해서 ①불교 교리에 대한 합리적 연구와 이해, 곧 앞에서 지적한 신화적 도참·기복 불교의 극복은 선결 문제로 제기되고 ②승려 교육의 현대화와 ③현대적 적응 기제로서 승려의 노동과 보살행적 생산·분배에 관여하는 일이 거론된다.

2) 대중화의 방안으로 ①역경 사업과 출판물을 통한 홍보 ②의식과 장엄의 과다한 전시적·미신적 경향으로 치닫는 일을 경계한다.

3) 현대 사조와의 대화라는 항목 아래 서양 사조의 적극적 이해는 물론 우리 것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급선무이고 따라서 사대적 모방은 지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유신론을 작성할 때의 이기영은 국외 유학에서 귀국한 지 6년이 되는 시기이다(1966년 1월 《세대》 발표). 상당 부분 서구적 근대성과 서구 불교학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밑그림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부정으로서 근대성이란 기본과 서구 불교학적 관점에서의 한국불교에 대한 관찰과 비판, 그에 따른 개혁 시도의 항목들이 거의 총괄적으로 들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불교 내부인(승려, 승단 소속의 직책 소임자)으로서 현장과 현실에 토대를 둔 구체적 개선 방안들이냐 하는 점과, 그 지적 사항들이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는지 살펴보면 오히려 지나친 근대화 이념형(Ideology)에 사로잡힌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기영의 방안들은 실제로 서경수의 현장에 입각한 비판에도 그대로 합치하는 내용들이다. 곧 “부처님을 대신하여 부처님의 사상과 교리를 오늘의 사회에서 구현”되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서경수는 “탈현장적”이고 “탈현실적이고 초시간적 유토피아”에 있는 것이 불교의 이념이 아니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속의 나라’인 가상의 세계가 불교의 교설이거나 불국토의 실현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불교가 현실에 자리하기를 주장한다. 부처님을 과거에서 찾는 원형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부처님을 이 현실에서 재현시켜야 한다고 갈파한다.

그는 가상의 세계는 흔히 복락이 충만한 그런 평화스럽고 안정된 세계일지 모르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 장소’는 평화나 안정과는 너무 동떨어진 상황이고 고통으로 점철되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원시불교의 ‘모든 것은 고통스럽다’는 고(苦)의 철학은 부처님의 현장에서 나온 발설이며 불교의 기본 가르침임을 환기시킨다. 현실을 떠난 교설은 가공의 다리일 뿐 그 가상의 무지개를 따른다면 “현장을 상실한 허상의 종교로서 역사적 시간에서 소외된 토우적(土偶的)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질타한다. 곧 그는 “불교는 항상 현장에서만 존재해 왔고 그것이 불교의 본질이며 종교로서의 기능”이라고 강조한다. “현장의식이야말로 종교 존재의 이유이고 그것의 결여는 불교이기를 거부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불교, 그 현재와 미래〉 《불교를 젊게 하는 일》 pp.135-157) 이러한 그의 발언은 오늘의 불교 현실에 대한 적확한 지적이 되기도 하며 동시에 본질론적 실체론을 극복한 불교해석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오늘의 한국불교는 “자기가 설 자리조차 상실하고 역사의 미아가 되고 만다. 역사의 미아가 된 종교는 자기 자신조차 구제할 힘이 없는 무력한 종교다. 대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불구의 종교”라고 단정한다. 과거에로 복귀의 면모만 보이는 오늘의 한국불교는 “오늘의 문제보다는 어제의 문제에 더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그 종교는 오늘의 시간에 사는 유물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질타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경수의 현장의 불교는 가까운 과거의 부정이기도 하지만(근대론), 먼 과거로의 복귀(부처님 당시)를 주장하고 또 무상, 무아로서의 현장 속의 불법의 재현을 추구한다. 곧 부처님의 말씀은 오늘의 메시지(지금/여기)이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면에서 새로운 불교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불교는 과거의 유산을 자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문제’를 무어라고 한마디 변증할 줄을 알아야 한다. 불교가 ‘현대의 문제’를 변증한다는 말은 불타의 말씀이 현대에 와서 다시 정확히 발음된다는 뜻이다. 불타의 말씀이 현대에 다시 정확히 발음되게 하는 것이 현대불교의 사명이다.(《불교를 젊게 하는 길》 p.133)


3. 현장의식의 재현

서경수의 과거 지향성에 대한 비판은 그 반대급부로 현장의식의 결여를 제기한다. 파괴와 거부 끝에 다시 회복되어야 하는 불교라면 이 불교는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고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를 되묻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 역사적으로 2,500년 이상 존속해온 불교, 그래서 시대마다 불교가 있어 온 이유를 되묻는 서경수는 현장의식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자명한 사실에 대해 되묻는다는 것은 역설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역설적으로 불교를 현장에 위치시키려 한다. 시대마다의 불교 존재 이유는 역사적인 사항이기보다는 역사적 요청과 실존적 계기에서 요구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곧 불교는 부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바로 불교를 요구하는 중생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서경수는 만해의 《님의 침묵》 가운데 “중생은 석가의 님”인 것을 다시 부각시킨다. 석가가 중생의 님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고 중생이 오히려 석가의 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석가가 님을 찾아서 중생의 편으로 와야 한다. 다시 말해 불교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어서 불교는 사회와 중생에게 직접 다가와야 한다. 서경수가 불교는 왜 존재하는가의 역설적 질문과 항변은 이런 현장의식의 문제를 신랄하게 제기한다.

마치 릴케가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관을 거부하며 인간이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 것을 환기시킨다. 곧 신은 하나님의 현존을 요구하는 인간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 하나님, 제가 없으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릴케는 항변한다. 릴케는 만해나 서경수와 같이 중생의 입장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서경수의 현장의식이나 요청적 불교의 현존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현장성은 서경수에게 이르러 철저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인으로까지 발전된다.

대개는 파행적 불교 현상에 대한 비판을 시도할 때 자신이 불교 신자이거나 단순한 불교학자로 정체성을 밝히면 불교유신과 개혁에 대한 발언의 입지는 확보되는 것이다.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객관화되고 타자화시킨 사건들에 대한 비판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듯하다. 따라서 불교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서경수는 자신에게 허용된 불교 비판의 입지마저 비판한다. 소위 비판의 상식화된 비판 매너리즘을 질타하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글의 제목인 ‘불교계에 바란다’는 말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비판에 대해 비판자가 얼마나 참여되어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는 ‘내가 내 가정에 바란다’거나 ‘내가 나에게 바란다’라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기도 하고 아무런 의미 전달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나는 나의 뜻과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참여하지 그것을 남에게 말로 발설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의 현장이 객체화되고 타자화되어 비판과 담론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참여 없이 언급되는 비판이나 담론은 마치 내가 나에게 바라는 허구적인 위선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바란다’는 말은 어떤 이상을 설정하고 그 이상을 지향하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어…… 이상론에만 치우칠 우려가 있다. ……무지개 같은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미학적 계시를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현실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이상론은 신선한 자극제적 구실을 한다.(불교계에 바란다〉 《불교를 젊게 하는 길》 p.173)

서경수는 철저하게 허위성을 배제시키고 있으며 나의 실존적 변화, 나의 참여가 결여된 어떠한 이상론도 불교 현실에 대한 온당한 비판이나 유신론이 될 수 없음을 항변한다. 서경수의 이런 발언은 이미 자신이 ‘참여된 현장’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의 글은 흔히 날카롭다거나 풍자적(Satire)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런 투철한 현장의식, 참여의식이 그렇게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만해의 경우이거나 법정·휴암 스님들의 경우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이분들은 바로 현장 속에서 말하고 참여 속에서 발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상투어처럼 되어 버린 유신·변혁·개혁이란 말의 진부한 객체성을 질타하며 정치화된 구호에 식상하고 있다. 그것이 서경수가 지적한 ‘내가 나에게 바란다’는 식의 ‘불교계에 바란다’는 말의 허구성인 것이다.
서경수는 계속해서 말한다.

지금 이 시각에 살고 있는 현장이 나에게 주어진 삶의 전부라고 하면 나는 이 현장에서 나의 전부를 던져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다. ……오늘 이 현장에서 내가 ‘어찌’ 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인생 전부를 말해 준다. 내일이 없다는 시간의 단점은 이 현장과 대결하는 각오를 요청한다. 언제 어디서 죽음이 오더라도 선뜻 죽어 줄 수 있는 각오이다.(〈오늘의 한국불교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불교를 젊게 하는 길》 p.155)

이런 현장의식과 참여의식에 이르면 그가 사용하는 불교 교설의 이상적인 경지를 기술하는 관행어들인 보살, 자비 등의 말은 전혀 다른 색깔을 띠게 된다. 소위 대승불교의 고정적인 교설의 상투어를 극복하는 것이다. 내가 참여되어 있는 보살행과 내가 함께 가고 있는 현장에서의 자비행은 이상적 관념어이거나 이상향의 무지개는 아니다. 그것이 서경수의 현장의식이다. 이런 발언 내용의 변화는 이기영에게서도 똑같이 감지된다. 초기의 불교 개혁안이 근대적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는 논지에서 전개되었지만 후기의 발언에 이르러서는 이기영은 그와 동일한 참여된 그리고 실천을 전제로 하는 발언을 한다.

나는 불교의 이상을 두 가지로 표현하기를 즐겨왔다. 하나는 귀일심원(歸一心源)이요, 또 하나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이다…… 일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나의 삶의 목표요, 중생을 요익하는 것 또한 나의 삶의 목표인즉…… 하나는 보다 외면적이요, 동적(動的)인 일면을 드러낸다면 하나는 보다 내면적이요, 정적(靜的)인 일면을 드러낼 뿐이다. 이 두 가지는 분리해서 생각해도 안 되고 분리해서 신행해도 안 된다.(〈한국의 불교 어디로 가는가〉 《월간조선》 1981년 9월호)

원효 사상의 대강령일 터이지만 이기영은 단순히 원효 사상을 종교사상으로서 소개하고 한국사상을 현양시키는 차원에서 이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발언을 할 때 그는 우선 자신의 참여 현장으로서의 불교의 실천행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상은 바로 신행으로 이끌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단순한 신앙고백의 언표는 아니다. 바로 현실참여에 대한 자신의 태도 결정이다.

나는 불교를 이렇게 이해하고, 이렇게 믿고 있으므로 우리 불교 전체에 대해 이 두 가지 일의 진전을 기대해 볼 수밖에는 없다. 1970년대에 기대했던 것이나 1980년대에 기대하는 것이 다를 수가 없다. 우리 불교계, 그런 것이 어디 따로 있는가?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계가 그것일 따름이며……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살펴보고…… 그 허물을 발견하고 철저히 아파하자.(〈80년대의 불교계에 바란다〉 《법시》 1980년 1월호)

그는 일찍이 제안한 유신안과 개혁안이 아무런 작동을 하지 않음을 보고 또 자신이 지적한 사항들이 근대성의 객체화된 사항들일 뿐 그것이 종교적 내면화로 이끌기에는 먼 거리에 있음을 자각한 듯하다. 그는 어쩐지 우리 불교계는 밤낮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어 무엇을 어떻게 전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곤혹스러운 발언을 한다. 그러나 이 곤혹스러움의 내용은 바로 외형적 변화의 시도를 내면화할 수밖에 없는 전환적 태도로 비친다.

이 내면화는 자기 참여를 전제로 한 발언이 된다. 그는 무엇을 안타까이 기대하고 무엇에 실망하고 낙담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며 “영원한 현재”를 상정한다. 이 “영원한 현재”란 아마도 부처님이나 선사들의 깨침의 경지이겠지만 그 경지는 정지된 것이 아닌 ‘흐름’ ‘움직임’ ‘일함’ ‘말함’ ‘생각함’이며 한마디로 ‘생활함’이라고 정의한다. 철저한 현실 생활 속의 참여된 불교적 생활을 지시한다. 이러한 참여 속의 “생활함”을 통하여 앞에 인용한 원효의 귀일심원·요익중생의 이념을 언급하는 것이다. 분명히 불교의 이상으로서의 객체화된 이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종교적 경험과 실천 그리고 궁극적으로 참여된 현장의식에서 나온 발언이다.

실제로 서경수·이기영의 현실참여, 불교로의 참여 행위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무엇보다도 이 두 분은 서구적 불교학을 가장 선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기영이 이미 1950년대 중반에 유럽에서 근대적 불교학을 공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불교학계에서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에티엔느·라모트(Etienne Lamotte) 밑에서 학위를 하고 귀국했다. 아마 근대 서구 불교학을 그대로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서경수는 종교학적 입장에서 불교를 터득하고 있다. 역시 서구적 종교학의 방법론을 몸에 익히고 있으며 학위 논문 역시 불전 고전어를 통한 논문을 작성했다. 그리고 서경수는 무엇보다도 한국 근대불교사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고승들의 행장을 수집하여 구술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대학생 불교 활동에 깊이 관여하며 불교 실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서구 근대 학문을 몸에 배게 하고 동시에 그것의 한계성을 간파하는 것이다. 단순히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 불교를 믿게 되었다는 신변적인 변화가 이분들에게 일어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서구적 불교학 연구의 한계를 숙지했으며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한 흔적이 도처에서 드러난다. 주지의 사실로 불교는 동양에서는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현장에서 실천되는 현존의 종교이지만 서구인에게 불교는 발견되고 색출되는 종교였다. 그리고 그것은 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창안되고 책장 속에 보존되는 종교였다. 마치 아메리카 대륙이 그곳에 엄연히 존재하였지만 서구에 의해 발견되어 새로운 미국으로 창안된 것과 흡사한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리고 이 창안자들은 대부분 시발자들에게서 흔히 드러나듯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 어린 호의성(Curious Preference)에서 시작되었고 따라서 심각하게 따져볼 틈도 없는 편향성(Unargued Preference)만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어떤 학문적 정당성도 없이 불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불교학의 발단은 영국 빅토리아조 후기인 19세기 중반에 시작된다. 빅토리아조에 불교학이 학문으로 정착했다는 사실은 불교학 연구 내용과 그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곧 낭만주의의 배경과 영국의 인도 지배라는 제국주의라는 통치 형태가 맞물려 있다. 지적 호기심과 낭만적 상상력만이 불교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인도에 대한 현지 지배가 불교를 발견한 또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문적 체계를 성립하게 되기까지는 전통적 문헌 속에서의 조직적 색출 작업이 수반되었다. 소위 서구가 아시아를 석권할 때 드러나는 두 가지 패턴, 곧 한편으로 선교활동을 통해 서구적 가치를 밀어 넣는 일과 다른 한편으로 문헌적 작업을 통해 역사적 맥락을 끊어버리면서 불교를 끄집어내는 이원적 작업이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밀어 넣고’ ‘끄집어내어’ 창안하는 일이 거의 동시에 행해졌고 그것이 오늘날 서구 불교학의 탄생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런 작업의 결실들이 오늘날 우리가 아무런 검토 없이 사용하는 불교의 ‘시원성’과 ‘원형’에 대한 탐색이다. 그리하여 고전불교(Classical Buddhism)를 설정하며 역사적으로 원시불교(Primitive Buddhism)이거나 초기불교(Early Buddhism)라 명명하고 순수불교(Pure Budd-hism)의 이념을 표방하게 만들었다. 그런 원형의 순수한 불교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존재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현행의 불교를 신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원형에서 일탈되어 있고 순수한 형태에서 일그러져 있고 역사적인 변천을 겪는, 무엇인가 잘못된 의식을 지니게끔 한다. 현장의 불교를 믿는 우리 불자들은 따라서 무엇인가가 잘못된 불교를 믿는 것으로 내몰리고 있다. 서구적 불교학이 의도적으로 이런 의식을 조장한 것은 아니지만 서구적 방법론을 따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교적 입지를 그렇게 평가하게 된다.

이런 현장 결여적이면서 신행의 실상이 제거되고 역사적 변천을 도외시한 진공관 속의 불교, 곧 문헌 속의 불교로 추상화한 것이 서구 불교학의 모순이었다. 곧 서구 불교학의 한계와 그 태생적 곤경은 서구가 자랑스럽게 주장하는 언어·문헌학 강조의 그 방법론에 있었다(졸고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종교문화비평》 8호, 2005).

이기영과 서경수는 누구보다도 근대불교학의 강점 못지않게 그것이 지닌 태생적인 한계까지 숙지하고 있었다. 동시에 한국적 여건 속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서구적 학문 전통 속에서 터득했다고 생각된다. 그것이 이 두 분으로 하여금 현장을 중요시하는 태도로 이끌었고 현실에 참여하게끔 했다. 그리고 이기영은 이미 1974년에 ‘한국불교연구원’을 설립하여 그 연구원에 구도회(求道會)를 병설했다. 서경수가 동참한 것은 물론이다. 학술 연구와 신행의 강조는 서구적 근대 불교학의 입장에서 볼 때 이율배반적이고 상호모순적인 형태로 비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서구 불교학의 방향과 문제점, 특히 우리의 현장 불교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한 시도였다. 그리고 연구원의 모토는 공동연구, 공동수련, 공동참여였고 이 이념은 아직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최근 서구 불교학 연구의 신세대들이 오히려 이런 신행과 학술 연구의 결함을 보완하려는시도를 하고 있다. 소위 불교신학(Buddhist Theology)을 창안하고 있다. 불교+신학이란 학문의 이종교배와 같은 신조어를 만들고 있다. 신학이 연구하는 방법을 불교학에도 병행시키자는 것이다(졸고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Buddhist Theology)인가〉 《종교문화비평》 제3호, 2003).

기독교 신앙인이 아니면서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는 일이 얼마나 신학의 깊이와 폭을 더할 수 있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인가? 불교학을 언어·문헌학적 객관성만 표방하며 연구하고 가르칠 때 서구 불교학은 많은 한계에 직면한다. 그러나 불교학이 객관성만을 표방하고 있어야 한다는 그런 이해 방식이 아직도 우리 학계에 상존하고 있다. 또 우리는 쉽게 서구의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이기영은 그런 점을 한마디로 “내용을 드러내기 위해 방법이 있는 것이지 방법을 위해 내용이 굴곡을 갖는다는 것은 본말의 전도이다”라고 서구 방법론에 대한 지나친 편향을 질타했다(필자의 증언). 그것이 이기영으로 하여금 선도적인 원효 연구를 진척시킨 원동력이다.

재생성이 가능한 그리고 신앙을 심화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이 불교에 대한 연구이며 불교학이 아니겠는가? 결국 서경수·이기영은 근대적 서구의 학문을 통해 실천·참여·현장성을 터득한 지극히 한국적 불교학자들이었고 불교유신에 대한 발언 역시 이런 현장/현실 참여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요즘 정착되어 가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한국적 발단을 튼 것이다.


4. 전통의 거부와 정통으로의 복귀

한국불교 1,600년은 풍성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키고 보존해야 할 귀중한 우리의 자산일 수밖에 없다. 이 전통은 우리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신념을 주고 행동의 지침을 마련하고 있어 불교 공동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단위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전되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한다. 곧 전통의 부활이 주장된다. 그러나 이 전통은 또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근대화의 걸림돌이 되어 한편에서 전통의 사라짐을 목도하는 것이다. 전통의 부흥과 전통의 소멸이라는 두 가지 현상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살릴 전통과 폐기해야 할 전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언급한 과거 지향적인 전통(Tradition)은 분명히 사라져야 할 전통이지만 거기에 귀속되어 있으며 복원 또는 환원시켜야 하는 정통(Authenticity, Orthodoxy)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곧 한국불교의 근대화라는 명제를 놓고 볼 때 우리와 가까운 과거에 속하는 항목들은 현실에 맞게 개혁을 해야 할 대상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먼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곧 정통은 회복되어야 하고 환원시켜야 할 항목으로 제시된다. 서경수는 오늘의 불교는 더 새로워져야 한다는 표제 아래 “오늘의 한국불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부처님의 사상과 교리를 오늘의 사회에서 희생적으로 구현할 현대적 보살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부처님의 사상과 교리”는 불변의 것으로 본질을 변형시킬 수는 없다. 그것을 정통(Authenticity)이라 할 수 있고 우리는 이 정통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전통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의 사회에서 현대적 보살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다. 서경수의 불교개혁은 존중되어야 할 정통이 아닌 사라져야 할 전통에 대한 신랄한 비평이다. 우리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신념을 주고 행동지침을 마련하는 보존과 회복의 전통이 아니라 창의성과 인간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구속적인 전통의 소멸을 주장하는 것이다. 만해가 말한 파괴는 오히려 창조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파괴의 대상으로서의 전통인 것이다. 이 전통은 억압과 배제의 수단이 되고 있다.

부처님을 대신하여 부처님의 사상과 교리를 구현한다는 것은 정통으로서 부처님을 대신하여 창의와 인간 가능성의 구현을 가로막는 전통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개혁의지이고 불교유신의 내용이다.
이 전통과 정통의 갈림길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는 승가(Samgha)의 문제이다. 서경수는 오늘을 사는 승가가 우물 안의 개구리의 미망을 깨우치지 못하고 오히려 승가 자체가 우물 안의 개구리 위치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속적 명예와 명성, 향락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보는 출가 수행자들의 집단이 승가이며 승가의 권위는 세속적 정치권위를 넘어서거나 정치권력과 밀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승가이다. 그러나 한국의 불교, 승단은 호국불교란 이름 아래 왕권의 비호와 왕조와 밀착이 심했다고 진단한다. 호국(護國)이 호왕(護王)으로 바뀌고 민중의 안녕이 왕실의 안녕과 권력유지의 염원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존속해 온 이런 형태의 승가는 나의 이익, 내 가족의 이익, 내 나라의 이익을 표방하는 자세를 벗어나 정통의 승가인 세계 인류와 뭇 생명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세로 바뀔 것을 서경수는 항변한다. 한편 이기영은 새로운 현대적 승가관을 정립시키고 있다. 구태의연한 전통 승가관에 사로잡힌 데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하나의 상식으로 되어 있지만 승가는 출가 비구·비구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4부대중으로 구성되어 재가 남·여 신도들도 포함되는 것은 물론 광범위한 인간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 지도 오래되었다. 원효의 회통적 해석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 찬불가에 이르러 귀의승(歸依僧)을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란 현대문으로 번역시킨 횡포는 하나의 희극으로 보인다. 승가는 실로 다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것을 정신적인 수련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때 불교 수련과 불교적 생활은 거의 모든 인간 활동에 걸친 무한한 가능성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기영은 승가관의 한국적 오해를 넘어서 율장의 계율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곧 계율은 소극적 금계 사항이지만 적극적 이타행의 실천을 위해 널리 중생을 섭수(攝受)하려는 목표가 설정되면 그것은 삼취정계(三聚淨戒)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인 계율의 준행을 위한 섭율의계(攝律儀戒)는 하나의 행동의 지침으로서의 준거의 틀이 되겠지만 섭선법계(攝善法戒)에서 이상적인 여러 규범을 제시하고 최종적으로 섭중생계(攝衆生戒)에 이르러 어떠한 행위·행동의 결과도 상황에 따른 해석과 포용의 이해가 필수적인 것을 강조한다. 일종의 ‘상황윤리’를 제시하여 인간의 모든 행위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승가관의 확대, 계율의 원융한 해석이 가능할 때 불국토는 실현된다고 말한다. 곧 이기영은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불교를 헛믿었다. 그 믿음의 목표가 정확하거나 뚜렷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반이니 성불이니 하는 것의 의미를 관념적으로 해석해온 경향이 많았다. 필자는 열반과 성불의 의미를 현실 속에서의 불국토 실현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한국불교 어디로 가는가〉)라고 불국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한다.

부처님의 정통으로의 복귀는 과거적인 전통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현장에 있음을 또다시 강조하는 셈이다. 서경수의 “역사적 현실에서 역사적 전환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두 분의 표현과 서술 방식은 달라도 그 의도와 뜻은 동일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유성은 두 분의 유신론을 읽을 때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육박해 온다. 우리도 함께 공유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유신의 계보는 그대로 만해에 닿아 있고 시대와 여건에 따른 서술 방식만이 차이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5. 나가는 글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왜 서경수와 이기영뿐이겠는가 하고 되묻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두 분이 지금의 우리와 모든 면에서 공유하고 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굳이 차별 지어 특징을 찾아낼 이유가 없는 점을 지적했다.

불교유신과 관련된 사항들, 곧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 전통사회가 겪는 문제점들이 서경수·이기영에게서 그대로 제시되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자본주의적 체제, 빈부 격차와 계층 간의 갈등에서 유래되는 분배의 문제 등이 결국 보살의 이타적 행위이며 부처님 말씀의 현장에서의 재해석이 필요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재해석은 근대적 불교학이 제공하는 개념들을 사용하였다. 상당 부분 서구의 근대성을 따라야 하며, 동양 사회의 전통과의 단절 내지는 차단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그 맥은 결국 만해의 “파괴는 창조의 어머니”라는 표어와 맞닿고 있었다.

이분들의 선언서가 중요한 것이기보다는 이들이 입각해 있는 컨텍스트(脈絡)가 더 중요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분들의 맥락적 위상을 전통과의 차단과 서구적 근대성의 도입, 그리고 서구 불교학이 지닌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으로 그분들에게서 현장의식과 참여의식을 찾았다. 곧 불교의 현장의식은 서구 것의 도입과 수용만은 아니었다는 특징을 추적해 보았다. 그들은 교설의 객관화보다는 부처님 교설을 자신에게 내면화시키며 학자로서의 참여의식에서 불교 고유 용어들을 재해석하고 있었다.

살아 움직이고 재생이 가능한 한국불교의 활력을 확인하는 작업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구 불교 연구의 틀을 극복하는 일이고, 지방적인 것(Locality)으로서의 불교의 민족문화적 가치를 글로벌한 단계로 이끄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불교연구원 설립에 구도회를 병설시키고 학생재가불자, 교사불자 모임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전통문화 보전을 위한 개발반대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자신의 종교 확대라는 고식화된 포교이거나 이어령식의 자신의 신변적 체험을 통한 간증적 종교 귀의를 권하는 선교적 내용은 아니었다.

이분들은 불교가 유물관리적 상태로 소개되고 문화재적 가치만 현양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곧 불교는 타자화시키고 사물화시키는 서구적 방법론에 의해 재단되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나의 사상, 나의 신행, 나의 것의 재활이어야 했고 그것의 재생성됨을 모토로 하였다고 본다. 불교 교설을 내면화시키고 적극적인 현실참여를 시도한다. 가히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한국적 유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만해 한용운의 불교 유신론은 일부 불교 종단에 대한 개혁이거나 구한말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자신을 정비하는 행정적인 지침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특히 서구 근대의 영향에서 파생된 근대 불교학의 훈련을 받은 이기영·서경수에게 만해의 유신 정신은 불교학 학문의 틀을 바꾸는 계기마저 주었다.

이기영·서경수의 불교유신론은 현대의 우리와 모든 점을 공유하며 함께 실천불교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민용 / 한국불교연구원장.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인도사상사)·박사과정(인도불교사), 하버드대 박사과정(불교사상사) 이수. 동국대 객원교수, 영남대 국제교류원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미국 속의 불교와 불교의 미국화〉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인가?〉 등이 있으며, 역서로 《성스러움의 해석》이 있다.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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