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연구의 굳건한 섬돌 하나를 보태다

 《만해 한용운 연구》
김광식
1.

만해 한용운은 격동의 한국 근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가 남긴 족적은 다양하고도 선명하다. 그의 종교는 석가모니, 사상은 간디, 시는 타고르에 비견되는데, 따라서 선승·혁명가·시인의 일체화로 평가된다. 만해는 승려로서는 불교개혁을 외쳤고, 시인으로서는 ‘님’을 추구하였으며, 독립운동가로서는 일제와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채 올곧게 간난한 투쟁을 계속하였다.

비록 분야는 달랐지만, 각 분야에서 그가 지향한 초점은 한곳으로 응집되어 조국 독립의 불꽃을 일으켰다. 만해는 조국과 민족이 처한 현실을 아파하였고, 그 모순의 주체인 제국주의 타파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제 강점기에 만해 같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불행이었지만, 그가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2.

만해에 대한 관심은 당대부터 지대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서거와 해방 이후부터 진행되었다. 그에 대한 연구 논저는 그의 궤적만큼이나 다양하여 가히 ‘만해학(萬海學)’이라 할 만하다.

 이 같은 만해 연구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이 산출되었다. 10여 년간 만해 연구에 진력해 온 김광식 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가 낸 역작 《만해(萬海) 한용운 연구》가 그것이다. 저자는 역사학 전공자로서 불교사 연구에 천착해왔다. 만해에 대한 전인적 연구를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특히 불교에 대한 이해 없이 만해의 생애와 사상, 민족운동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편린적일 위험성이 있다. 그런 만큼 만해 연구에 양수겸장을 갖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만해의 불교사상이 심오하고 민족운동가로서 활동의 폭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만해 연구에서 양수겸장을 갖춘 몇 안 되는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본서의 구성을 보면 저자의 연구 범위가 광대하고 깊음을 잘 알 수 있다. 본서는 3부로 나누어 12편의 논문과 부록을 수록하였다.

제1부는 승려이자 불교개혁가로서 만해의 불교사상과 지향을 논의하였는데, 저자가 본서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만해의 불교개혁론은 《조선불교유신론》(1913)과 〈조선불교개혁안〉(1931)에 잘 구현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불교개혁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자료의 철저한 분석은 필수적이다. 《조선불교유신론》은 “한 번만 불교계를 들여다보아도 구역질이 난다”고 자책하며 조선불교계의 현상을 비판하고 당면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18장으로 구성된 본서는 자유·평등사상에 입각하여 불교개혁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이자, 불교이론과 불교자유사상에 대한 승려 교양서의 성격도 지닌다.

〈조선불교개혁안〉은 1910년대 이래 만해의 불교개혁론의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8장으로 구성된 이 논설은 통일기관의 설치와 사찰의 폐합, 경론의 번역, 대중불교의 건설, 선교의 진흥을 논의하고 있다. 《조선불교유신론》과 비교해 보면 불교 개혁의 연속적 바탕 위에서 민족주의적 요소가 강화되고 있어 식민지 현실을 반영한 개혁론임을 알려준다. 저자는 이 논저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 의미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근대 불교를 추구한 만해의 지향점임을 밝혔다.

제2부에서는 민족운동가로서 만해의 민족의식과 민족운동을 논의하였다. 여기에서는 먼저 임제종운동 주도, 3·1운동 주도,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 집필, 신간회 참여, 민족불교 지향 등 민족운동을 일별하였다.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은 그가 3·1운동으로 피감되어 옥고를 치르던 1919년 7월 10일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에 의해 작성한 것으로, 상해에서 발행되던 〈독립신문〉(1919년 11월 4일 자)에 게재되며 널리 알려진 것이다. 5장으로 구성된 이 논설은 만해의 독립사상을 잘 보여주며, 3·1운동기 독립운동 관련 논설의 백미로 평가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만해의 장엄한 법정투쟁을 설명하였다.

저자 글쓰기의 특징 중 하나는 매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해당 주제에 대한 문제점이나 향후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저자는 만해의 민족운동에 대한 연구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만해의 민족운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함과, 3·1 독립선언서 기초자와 관련된 논의가 대부분인 연구의 편향성을 지적하였다. 또한 만해에 대한 연구가 지나치게 대중화와 교양화의 ‘이질적인 흐름’에 치우쳐 학문성이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역시 타당한 지적이다.

제3부에서는 한용운의 아들 한보국과, 한용운의 제자 김용담에 대해 논의하였다. 만해는 일찍이 〈남모르는 나의 아들〉(《別乾坤》 5권 6호, 1930)을 통해 아들의 존재를 공개한 바 있다. 한보국은 6·25 때 월북하였는데, 분단 상황으로 말미암아 《한용운전집》(1973)의 편찬 시 6·25 때 행방불명된 것으로 기술되고 연구도 진행되지 못하였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한보국의 삶과 민족운동, 해방공간과 6·25 당시의 활동, 월북 후의 생활 등을 명료하게 조명하였다. 만해의 상좌 김용담(1898~ ?)에 대한 논문은 만해 사상의 계보학에 대한 저자의 관심을 보여준다.

부록으로 첨부한 〈《한용운전집》과 고대문학회〉는 박노준 교수(한양대 명예교수)가 《고대교우회보》(2006. 1. 10)에 기고한 글을 재수록한 것으로, 전집 편찬의 당사자로서 그 경과를 설명한 글이다.

본서에서 돋보이는 것은 저자의 뛰어난 문제의식과 철저한 실증주의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만해 연구에서 실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해의 연구에서 아직도 실증의 유효성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적 추세와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실증은 역사연구의 기본이다. 근래 들어 실증을 과거의 역사연구 방법론쯤으로 치부하여 어쭙잖은 논거로 함부로 해석과 판단을 시도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만해의 연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철저한 개별적 실증의 토대 위에서 종합적 판단을 시도해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는 시대나 주제에 관계없이 유효하다 할 것이다.

3.

평자는 1992년 《한용운의 생애와 독립투쟁》(독립운동가 열전 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을 저술하고, 그와 관련한 몇 편의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만해 연구의 어려움을 체득한 바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평자가 지적하고 논의하는 내용들은 저자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는 학계가 함께 숙고해야 할 것이거나, 평자의 자기변백이라 함이 타당할 듯하다. 서평을 겸하여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본서는 저자가 10여 년간 천착해 온 만해 연구 논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이럴 경우, 서두에서 기존 학술지에 발표한 사항(학술지명, 발표년)을 밝힐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저자의 학문 역정, 특히 만해 연구에 대한 성숙도와 경향성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본서는 3부로 구성되었지만, 저자의 연구와 관심 영역에 따라 불교사 관련 부분인 제1장에 치중되었다. 따라서 《만해 한용운 연구》라는 책명이 꼭 부합하지 않는 느낌이 있다. 만해 연구의 중요한 축인 문학을 전혀 논급하지 않았으니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만해의 불교개혁과 민족운동을 선명히 드러내는 책명을 붙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제2부의 제명으로 ‘한용운 민족의식의 다면성’이라 한 것도 개념이 모호하다. 다면성이란 여러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인데,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저자는 만해가 강렬한 민족주의 인식을 지니고 다방면에서 다양한 독립투쟁을 주도했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일 텐데, 그렇다면 민족의식의 다양한 발현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개별 논문을 묶다 보니 구성이 중복되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조선불교유신론》과 〈조선독립의 서〉가 여러 차례 목차에 나타나는 것이 그 한 예이다.

저자는 만해 연구에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강조하였고, 본인도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다. 만해의 3·1운동 참여와 역할 중, 〈독립선언서〉 공약삼장 추가 여부는 여전히 논란이 진행 중인 부분이다. 물론 저자도 제2부 제2장에서 상반된 주장을 충분히 설명하였다.

그러나 뚜렷한 근거 없이 공약삼장의 만해추가설이 학계에 보편적으로 수용되었다고 결론지은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며(265쪽), 더구나 서론 부분에서 만해가 공약삼장을 추가하였다고 단정적으로 기술(14쪽)한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연구자가 연구 대상에 대해 애정을 지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사실의 기술과는 별개의 것이다. 공약삼장의 만해추가설을 주장하는 견해는 이를 불교사상과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짙다.

주로 불교계나 그와 관련된 연구자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만해의 민족운동을 지나치게 불교와 연계시키는 것은 만해의 사상과 활동을 지나치게 협애(狹隘)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만해의 공약삼장 추가 여부는 결정적 자료의 출현을 기다려 판명해야 하지만, 그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훌륭한 독립운동가이다.

저자는 만해의 불교개혁론과 민족운동상의 특징을 부각함은 물론, 그 한계를 지적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만해가 나라가 망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일제 통감부에 승려의 취처(娶妻)를 건의한 사실에 대한 논의(250~251쪽)에서, 이를 식민지 상황이라는 민족 모순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현실인식의 한계로 지적한 것은 매우 적실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제1부 제3장 〈한용운의 불교근대화 기획과 결혼 자유론〉에서는 그의 승려 취처를 불교를 근대화하기 위한 기획이자 대중불교를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또한 유교적 가치관에 부합하고 진화론적 세계관에 의거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만해가 이를 중추원(獻議書)과 통감부(建議書)에 청원한 방법론의 한계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한계를 논의하지 않은 것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분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본서의 제2부에서 연속되는 3편의 논문에 걸쳐 이를 1개의 절(節) 이상으로 편제하여 상세히 논의하였다. 제3장은 이 글의 분석이 논문 제목일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뤘다. 물론 저자는 이 글을 매우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의 분석 내용에 대하여 별다른 이견은 없다. 다만, 이 글이 안고 있는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 글의 모순을 지적하는 것은 만해 독립사상의 흠결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처해 있던 상황을 감안하여 그의 독립의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만해가 저술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은 당시의 독립사상을 대표하는 논설이지만,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낭만적 기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감상적 기대, 그가 이전에 강하게 거부했던 일제에 대한 청원과 탄원 형식의 글쓰기 등은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은 〈조선 독립의 서〉 〈조선독립이유서〉 등으로 불리기도 하나, 만해 자신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라 하였다.

그런데 저자는 김상현 교수의 증언을 소개하며 만해가 친필로 쓴 이 글의 제목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였다고 하면서(267쪽),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논문에 따라 〈조선 독립의 감상〉 〈조선독립의 서〉를 혼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평자는 오래전 만해에 관한 자료를 뒤적이다가 만해가 1931년 삼천리사 기자와 대담하면서 강조한 ‘불교사회주의(佛敎社會主義)’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아직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사상체계에서 중요하게 논의할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만해만의 독실한 불심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밴 독특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서뿐만 아니라, 만해의 불교사상을 논의한 어떤 글에서도 그가 제창한 불교사회주의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만해는 기독교 사회주의가 학설로서 정립되어 있듯이 불교도 불교사회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삼천리(三千里)》 제4권, 1931년 11월호). 불교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의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만해의 답변이 삭제당해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시기에 치성했던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란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불교사회주의는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법론에 관한 만해의 신념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서 향후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만해의 전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럿의 섬돌이 필요할 것이다. 본서는 만해 연구의 굳건한 섬돌 하나를 보탠 귀중한 업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저자의 만해와 불교사에 대한 열정적 연구는 지속된 것으로 확신한다. 후속 업적이 속출되기를 기망(期望)한다. ■

 

박걸순 / 1959년생.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한용운의 생애와 독립투쟁》 《한국근대사학사연구》 《식민지 시기의 역사학과 역사인식》 《시대의 선각자 혁신유림 류인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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