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히말라야 트레킹.

그리 쉽게 오는 기회도 아니고 선뜻 떠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히말라야 트레킹이다. 피케이 픽(Pikey Peak, 4,068m) 코스를 걸었다. 해발 1,950m 지점에서 출발해 10일 동안 4,068m 피케이 제1봉을 찍고 돌아오는 코스다. 2009년 가을이 이어 두 번째다. 피케이 픽은 네팔의 동쪽 에베레스트가 있는 솔로 쿰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오칼둥가 지역의 봉우리다.

트레킹은 지리(JIri, 1,950m)에서 시작됐다. 히말라야의 많은 소수종족 중의 하나인 지랄족이 사는 작은 산골도시다. 지리는 트레킹에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카트만두에서 차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여 장비와 스텝들을 챙기고,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되는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솔로 쿰부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경비행기로 루크라까지 날아간다. 그래서 지리에서 루크라까지 일주일 정도의 걷는 시간을 생략해 버린다. 루크라에 비행장이 없었을 때는 지리에 비행장이 있었다. 지금 지리의 비행장은 폐쇄됐다.
피케이 픽은 지리와 루크라의 중간쯤에 있다.

 이 코스는 트레킹의 교과서다. 트레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소증과의 싸움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공기 속 산소량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호흡곤란을 비롯한 여러 증상으로 구토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의 증세로 드러나는 고소증. 고소증을 피하는 길은 오직 예방과 적응뿐이다. 지리에서 시작되는 피케이 픽 코스는 고소증에 적응하며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마을과 웅장한 설산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코스다.

쿠커들이 설거지를 할 무렵 일행은 출발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포터들은 이미 우리의 짐을 등에 지고 떠났고 가벼운 배낭을 메고 두 손에 스틱을 움켜쥔 일행은 지리 바자르(시장) 골목을 지나 솔숲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시작이다. 히말라야 안에서 히말라야를 향해 히말라야의 길을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난 추억들이 몇 개의 키워드로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누대의 생명력 다랑이 밭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시루떡을 잘라 놓은 듯 켜켜이 산허리를 일군 다랑이 밭들이 장관이다. 한 뙈기의 면적이란 게 흥부네 마당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뙈기밭이 수백 켜를 이루고 산허리를 둘러 있다.
저 다랑이 밭이 바로 히말라야의 역사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땅에 밀과 꼬도(피) 혹은 보리나 감자를 심어야 한다. 산이 막혀 외부와는 차단된 지역, 철저한 농경사회의 역사가 저 다랑이 밭에 한 장씩 쓰여 있다. 수 없이 대를 이어 한 뙈기씩 늘려 왔을 다랑이 밭, 그 밭 가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하루 예닐곱 개의 마을을 지났다.

햇볕에 그을린 농군들과 꼬질꼬질한 아이들, 기울고 허물어진 변소, 병아리를 몰고 다니는 암탉과 게으른 하품을 해대는 물소, 뾰족한 입으로 뾰족한 새잎을 뜯느라 정신없는 염소들이 다랑이 밭과 어우러진 오칼둥가 산마을의 봄 풍경이다.

지상에 뜨는 별과 그리움

밤이 오면 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하다. 원래 하늘에는 별이 저렇게 많았나 하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빛나는 별들의 잔치에 넋을 놓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풍경에 빠져든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도 별이 뜨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에는 태양열을 모아 전기를 저장하는 집열판이 있고 그것을 통해 30촉 전구 두어 개를 밝히고 라디오를 들을 정도의 전력을 얻는다. 가난한 집의 가난한 전기. 그런데 이 깊은 산골 사람들은 밤이 되면 집집이 외등을 하나씩 밝힌다.

해발 2,300m 부싱가 마을의 밤. 하늘에서는 별빛이 쏟아질 것 같은데 사람의 마을에서는 집집이 외등이 별로 떠서 그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리에서 걸어서 사흘 만에 도착한 이 부싱가에서 건너다보이는 마을의 외등. 외등 하나가 지상의 별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열악한 전기 사정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외등을 밝히는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들의 기다림은 사람이 별이 되고 별이 사람이 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바람(風)으로 나부끼는 바람(願)들

길을 걷다가 히말라야 사람의 정성과 기원이 담긴 성물(聖物)들을 자주 만난다. 길을 가는 사람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도록 정성껏 쌓은 돌계단의 이름은 쩌우따라. 죽은 조상의 영혼이 편안하길 비는 뜻에서 쩌우따라의 중간에는 조상들의 이름을 새긴 석판을 신주처럼 모셔 두었다. 마을 어귀나 산 능선에는 길고 높게 돌을 쌓아 만든 마니탑이 있다. 판판한 돌에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진언을 새겨 외곽을 장식한 탑이다.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진언은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로 중생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내용이다.
대부분의 집 마당에는 커다란 장대를 세우고 펄럭이는 기를 달아 두었다.

길게 늘어뜨린 깃발에는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진언이나 경전이 새겨져 있다. 이 깃발과 장대를 타르쵸라고 한다. 자다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깃발에 새겨진 진리의 말씀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길 기원하는 것이다. 깃발은 5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파랑 빨강 하양 녹색과 황색이다. 파랑은 하늘을 빨강은 태양을 하얀색은 구름을 의미한다. 녹색은 자연이고 황색은 대지다. 이를 우주를 구성하는 불, 물, 나무, 쇠, 흙의 상징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깃발은 일 년에 한 번씩 바꿔다는데 그날은 집안의 축일이다. 

운동회 때 하늘을 장식하는 만국기처럼 줄에 경전이 새겨진 오색기를 달아 나무와 나무 사이나 건물과 건물 사이 등에 걸쳐 놓고 바람에 휘날리게 하는 것을 룽다라고 부른다. 룽다가 펄럭이는 언덕에는 바람이 많다. 룽다에 새겨진 주문들이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흩어져 평화와 행복을 구현하는 공덕이 되길 바라는 소박한 히말라얀들의 마음. 바람(風)으로 나부끼는 그들의 바람(願)은 오늘도 하염없이 내 가슴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트레킹을 넘는 트레킹

파쁘레 마을의 잔치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파쁘레 마을 사람들은 우리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라리구라스 꽃으로 아치문을 만들고 수십 개의 꽃목걸이를 만들고 수십 장의 가타를 준비했다. 집집이 술을 거르고 수제비를 준비한 집도 있다. 해발 2,600m의 이 오지 마을에 한국인 트레커들은 손님 그 이상이다. 이 트레킹 동참자들이 약간의 기금을 모아 이 마을 유치원학교에서 일 년 동안 쓸 교보재와 장난감 등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용한 포터들도 모두 이 마을 아저씨들이다.

셀파족인 이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 노래와 춤, 술과 음식으로 우리를 반겼다. 여럿이 합창하는 셀파족의 노동요는 구성진 가락에 왕성한 기운이 느껴졌고 안동소주보다 독한 그들의 전통주 럭시는 잘못 마셨다가는 기절할지도 모를 정도다. 감자 수제비는 구수한 국물이 일품이고, 방금 짠 야크 젖을 살짝 끓여 만든 짜이는 도시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오지 마을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그곳 사람들과 형제의 정을 나누는 것, 우리의 트레킹은 트레킹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는 곳에서

정상은 언제나 벅찬 곳이다. 더 오를 곳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 정상에 오른 사람의 고뇌다. 일행 전원이 정상을 밟고 장엄한 일출을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원이 정상에 섰고 보석같이 빛나는 설산의 일출을 만끽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트레킹의 기억을 살아가는 날의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일. 사람에 따라 그 용량은 다르겠지만, 어떤 방식 어떤 형태로든 살아가는 동안 이 에너지가 작용할 것이다. 뒤돌아볼 일이 아니다. 산길의 뒤쪽은 아름답고 감격스러웠을지 몰라도, 살아온 길의 뒤쪽은 오래 돌아보면 병이 된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심은 인과의 씨앗마저 떨쳐 버리라고 하지 않던가? 누구나 오늘을 사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이제 내 가슴속의 산이 되었다. 갈 수 없는 산도 아니고 오를 수 없는 산도 아니다. 언제나 내 가슴에 살아 있는 히말라야다. 내가 히말라야다. 피케이 픽을 오르는 트레킹에서 배운 것은 바로 내가 히말라야, 내가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얻은 깨침의 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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