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 속의 예술, 예술 속의 불교

17년쯤 전이다.

뉴욕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신예 작가 강익중의 서울 전시가 있었다. 그가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 중 한 곳인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전시를 마친 후다. 한인 작가로는 보기 드문 선전이었다. 그런 떠오르는 미술계의 별이 들고 나온 작품에는 온통 ‘부처’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초콜릿을 먹는 부처〉 〈오페라를 부르는 부처〉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등. 전시장에는 실제 불상이 모셔져 있고, 다시 부처님을 그린 그의 대표적인 3인치 그림판이 모자이크처럼 둘러 있다. 그렇게 부처와 함께 금의환향한 강익중의 등장은 벅찬 감격이었다.

그 강익중을 2010년 가을 뉴욕에서 인터뷰했다. 이미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과 세계 주요 도시의 공공미술 작업을 통해 거장의 반열에 들었다. 그에게 물은 첫 질문이다. 왜 부처를 택했는가? 그의 답은 ‘내 작품에는 예수도 등장하고, 마리아도 등장한다. 다만 서구인들이 부처에 주목했을 뿐이다’였다.

강익중의 솔직하면서도 즉각적인 답변에서 나의 환상은 부서졌다. 그러나 그의 대답만큼 현재의 서구 화단에 흐르는 표피적 감성을 잘 표현해 주는 설명은 없을 것이다. 가장 상업적이면서도 가장 정치적인 곳이 또한 미술계다. 지극히 숭고한 예술을 추구하는 듯, 스스로 ‘순수’라는 차별적 이름을 사용하지만, 본질은 ‘환상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만큼 대중과의 간격을 유지하는 고가의 상품 생산’이다. 딜러와 작가, 컬렉터가 흥행을 유지하며 걸어가는 현대미술의 궤도이다. 현대미술 산업의 구조 속에 있는 붓다의 위상도 야박하지만 어쩌면 이 정도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현대미술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불교적 작품들과, 작가에게 스며 있는 불교적 사고, 그리고 불자로서 수행과 작업을 하나로 통합하여 선보이는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 미술계 또한 대중예술계처럼 방대한 규모이며 다양한 수위의 작가군이 존재한다. 이번 글에서 다뤄지는 작가들은 이미 수십 년의 작업 속에서 거장의 위치를 탄탄히 지키는 이들이다.

지난 2010년 봄부터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현대미술 거장과의 인터뷰 시리즈에서 만난 분들에 한해 언급하고자 한다. 예술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세계 최고의 대우를 받는 이들이다. 유명한 많은 작가들 가운데에서도 내면적으로 깊은 사유의 세계를 드러내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인터뷰해왔다.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보다 불교적인 면모를 보여준 분들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계의 주류의 분위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모든 인용문은 작가의 뜻을 존중해 변형하지 않고 그저 우리말로 옮겨 놓았음을 밝힌다.

붓다-예술 정찬에 끼워진 산뜻한 디저트

강익중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강익중 작가의 여담 같은 말이 기억난다. ‘세계 무대 속에서 은연중에 익히게 되는 국제적인 감각이 있다. 무엇을 내놓으면 시장에서 주목받게 될지 예측하는 기술이다. 물론 모든 작업을 그렇게 타협해 나가지는 않는다. 다만 활용할 뿐이다. 예를 들어 세련된 정찬을 준비한다고 치자. 주최 측은 그 무엇보다 최고의 서구 주류 요리를 메인으로 장식할 것이다. 그에 걸맞은 전채 요리와 샐러드, 부요리를 차린다.

그리고 마지막 디저트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선보인다. 적당히 주를 해치지 않는 가운데 신선한 퓨전을 내놓는 것이다.’ 뉴욕과 유럽 시장이 이끄는 현대미술계에서 2000년대 들어 각광받는 신선한 구색 맞추기가 바로 ‘붓다’이다. 서구 상류계층의 필수 교양 덕목인 불교와 동양의 역사 문화가 이제는 대중적으로도 긍정적인 가치를 획득한 상태이기에 대중의 관심이 무르익었다. 그리고 지식층의 경우 동양적인 소재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단순히 소재의 신선함에만 이끌리기보다는 작가가 갖춘 사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었기 때문에 불교적 작업들이 세계 최고의 작품으로도 인정받게 된다.

강익중의 붓다 시리즈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작가의식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그의 뉴욕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던 대담 속에서 작가의 불교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익중: 붓다…… 제가 알기로는 제가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붓다가 돼서 영어도 배우고, 초콜릿도 먹고, 이태리 오페라도 부르고 그렇게 작품으로 등장한 거죠. 나와 네가 아닌 모두가 되는 거예요.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 하나의 핵이 있잖아요? 씨가 되는 건데, 그 씨앗을 모두가 공유합니다. 그 씨앗이 부처님이 되는 거라고 봐요. 생명성(生命性)이요. 붓다의 그 작은 핵으로 세상을 보는 거죠.

안희경: 지난봄 성황리에 열렸던 개인전 제목이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고’였습니다. 하나로 어울린 생명에 대한 간결한 설명이라고 봅니다.

강익중: 우리가 바람으로 섞여 있잖아요. 내가 숨을 내쉬면 또 들이마셔야 하는데 그것은 다른 생명이 보내준 거고, 물론 제 것도 누군가 들이키고요. 또 하나, 그 숨을 맑혀주는 나무가 세상에 가득하잖아요? 나무는 뿌리가 땅으로 이어졌어요. 바다가 있지만, 바다 밑에는 또 땅이 있고. 땅으로 가면 결국 흙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렇게 봤을 때 작가의 책임을 굳이 둔다면은 종교인같이 스스로 배수관이 돼서 미래와 현재를 연결시켜야 해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배수관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아집으로 꽉 차 있잖아요? 그런 마음이면, 꽉 막혀 있는 거예요. 내려놓을 때,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되고, 동과 서로 연결되고…….

그런 강익중의 작가의식이 동양과 서양을 뒤흔들고 있다. 50여 개 언어가 사용되는 뉴욕 주 프린스턴 시의 반목하던 이웃들이 그의 작업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화합과 평화를 일구었다. 그의 화합을 이루는 공공미술 시리즈는 인종, 계급 간의 갈등을 풀어내는데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힘을 발휘한다. 바로 너와 나의 경계를 푸는 그의 진실한 보살핌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가 건진 붓다 역시 미술적 소재가 아닌 그의 예술관의 반영이었다.

세계 300여 미디어가 주목한 베르사유 궁전의 붓다

2010년 9월 14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금빛 붓다가 자리를 틀었다. 일본의 세계적 현대미술 작가 다카시 무라카미의 〈오벌 붓다(Oval Buddha)〉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타원형 붓다인데, 높이 5.6m에 너비 3m가 넘는 금박 입힌 현대 붓다상이다. 뒤로는 금테를 두른 베르사유 궁을 배경으로 인공운하를 바라본다.이 오벌 붓다가 세계문화유산이자 프랑스인의 자존심인 베르사유 궁전에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베르사유가 다카시 무라카미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베르사유 궁전은 과거의 문화 유산이 아닌 현대의 프랑스인과도 소통하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자 그를 초청했다.

JARDIN−PARTERRE D’EAU Oval Buddha, 2007-1010, bronze and gold leaf, 568 x 312 x 319cm.

필자가 베르사유 궁의 공식 초청으로 현장을 방문하였을 때 관장인 장 쟈크알라공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17세기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 궁은 당시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적 기능이 있었다. 그러한 궁의 역할을 다시 살려내고자 오늘날 다카시 무라카미 전시를 한다.” 궁을 다카시에게 개방하는 데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었다. 왕당파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반대 데모도 있었다. 전시가 과연 열릴 수 있을까 불안했던 분위기였는데, 그런 그곳 제일 중요한 자리에 작가는 붓다를 앉혔다. 현대적인 악동의 모습을 한 반가사유상이다. 그 이유를 다카시 무라카미에게 물었다.

“베르사유 정원은 왕과 왕비의 방에 전시하는 것보다 상징하는 바가 더 큽니다.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타원형 부처님을 택했습니다. 뒷모습은 일본 도깨비상과 비슷합니다. 제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소셜 몬스터의 한 이미지입니다. 오벌 붓다는 매우 큰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를 두 개 들고 있는 셈이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한없이 커져서 표면적으로는 명상하는 반가상의 모습으로 눈을 지그시 반개하고 바라보지만 뒷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크게 벌려 한입 베어 물으려는 입을 하고 있어요. 이 커다란 머리에는 세 개의 작은 몸들이 메달려 있습니다. 아기처럼 몸부림치죠. 이는 우리 현대 사회를 그린 겁니다. 심각한 고령화 사회, 인터넷 사회,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넘쳐나는 지식. 결국 우리는 위축되고 병들게 됩니다. 인간의 정보에 대한 욕망과, 그에 대한 반대급부, 그런 잘 맞지 않는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시를 제의받은 2년 전부터 베르사유에 여섯 번 정도 왔습니다. 기획하면서 발견한 것은 역시 그 태양이라는 닉네임, 그리고 전시장에서 작품과 가장 잘 맞는 색이 금색이라 것.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금박을 입혔습니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오벌 붓다입니다. 불교미술의 전통을 살려냈습니다.”
2010년 9월 10일 4시 30분 베르사유 궁에서 진행되는 다카시 무라카미 인터뷰 모습. 300여 취재진 가운데, 3개의 미디어만을 선별해 단독 인터뷰 기회를 주었다. 한정된 시간이었기에 인터뷰에 몰입하고자 다카시 무라카미는 시종 눈을 감고 대답했다.
일본 전후 세대들이 갖고 있는 가장 일본적인 정서를 들고 세계 시장에 나타난 다카시 무라카미는 앤디 워홀의 명성을 능가하는 팝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미국 팝아티스트의 상징인 앤디 워홀이 소비문화를 표현했다면 다카시는 그보다 한 층 깊은 사회 구조 속 갈등을 희화화시켰다. 그 배경은 아마도 다카시 무라카미가 걸어온 전통 미술 수업과 역사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는 동경미술대학에서 일본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구화된 전후세대 웨스턴보이로서 일본의 전통미를 그의 눈으로 다시 발굴했다. 〈오벌 붓다〉의 경우도 여러 가지 해석 가능한 비판의식이 중의적으로 담겨 있다.

전통적 일본 정서 속에서 연못 속 도깨비가 갖는 서정을 베르사유 운하의 비극과 연결 지은 걸로도 읽힌다. 지역 영주들의 봉기를 막기 위해 볼모로 데려다 놓은 봉건 귀족들을 사로잡고자 왕은 연일 파티를 벌이면서도, 하층민들은 끌어다가 죽음에 이르는 노역을 시켰다. 그렇게 건설한 운하가 바로 오벌 붓다가 내려다보는 완벽한 조형미의 인공호수다. 고요한 수면 깊이 녹아 있는 지옥도를 오벌 붓다는 흔들림 없이 보고 있다.

그런 하층민의 한을 달래는 듯 엿보이는 이유는 그동안 다카시 무라카미가 보여준 권력과 서구 자본에 대한 반항적 표현 때문이기도 하다. 다카시의 만화적인 표현들은 일본 미술의 전통 회화적 표현을 차용해 왔다. 다양한 붓다상들도 형상화된 모습을 보면 연화대나 거북이를 등장시키는 등 전통적인 틀을 놓지 않는다. 또한 매우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세계적인 문제작 〈론섬 카우보이(My Lonesome Cowboy)〉와  〈밀키웨이(Milky Way)〉도 언뜻 보면 포르노 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공간을 가르는 일본 전통 회화의 강렬한 구도를 차용함으로써 저급해질 수 있는 선정성을 동양 전통 형식을 통해 극복하였다.

〈론섬 카우보이〉는 1,350만 달러(약 167억 원)에 거래되었고, 〈밀키웨이〉는 50만 달러(약 6억 원)에 팔렸다. 다카시는 현대사회의 일탈을 풍자함에 있어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불상의 도상들을 이용해 중첩된 의미를 살려냈다. 17세기 우키요에(浮世畵)뿐 아니라 16세기 가노 에이토쿠의 정통 일본화, 그리고 불교미술까지 현대적 옷을 입혀 세계 무대에 재등장시켰다.

다카시 무라카미의 작품 세계에서 불교미술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은 만큼 2010년 그에게 가장 중요한 전시였던 베르사유 궁 전시에서도 불교 소재 작품이 3분의 1을 차지했다. 육환장을 든, 동자 모습을 연상시키는 〈카이카이와 키키(Kaikai & Kiki)〉, 천수관음보살을 형상화한 듯한 7m가 넘는 〈통가리 쿤(Tongari-Kun)〉 〈실버 붓다〉 등은 모두 그의 대표작들이다.

어쩌면 다카시 무라카미의 경우는 현대 팝 불교 아트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고가의 작품 매매를 이루고 있으면서 또한 세계의 권위적인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제의하는 그의 작업 속에서 불교적 상징들은 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과 교감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바꾼 아방가르드들을 사로잡았던 불교

이번에는 불교적 소재보다는 작품 속에서 불교적 사유를 볼 수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건 속에서 불교적인 의미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서구의 주류 역사가 흘러온 관념의 습관에 제동을 걸어온 작가를 살피고자 함이다. 그들 가운데 특히 불교적 언어가 읽히는 작가를 소개하는 바다.

아방가르드로서 플럭서스 활동을 보여준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백남준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미술에는 규칙이 없는데, 지켜야 할 규칙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규칙을 깨는 것이다.”

20세기 두 개의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술계 역시 가치의 혼돈을 맞는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작품의 결과물보다는 작업의 의도 진행방식에 더 초점을 맞추는 개념미술이 주류를 위협할 정도로 앞다퉈 선보였다. 그 앞에 선 이들이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라우센버그, 비토 아콘치 등이다. 이들의 활동은 월남전 이후 비디오아트라는 시간을 기록하는 영상물과 결합되어 더욱 폭을 넓히게 된다.

그중 현재까지 활동하는 인물로 브루스 나우만, 리처드 세라 등이 있다. 조각가로 더욱 유명한 거장 리처드 세라의 비디오 중에는 납덩어리 하나를 머리 위에서 떨어뜨리고, 그것을 손으로 잡는 작업이 있다. 〈납 잡기〉이다. 화면엔 그의 오른 팔만 나온다. 떨어지는 납을 놓치는 모습, 그러다 잡는 모습 딱 두 가지가 긴 시간 이어진다. 리처드 세라에게서 지난 10월 들은 설명에 의하면 팔과 손이 도구로 기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뇌의 기능이 작용하는 인식하는 낙하물 잡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식과 몸이 분리되면서 팔은 스스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이 의식의 지배를 받는 것인지 아니면 몸에 기억되어 있는 습관의 지배를 받는 것인지, 굳이 가부좌 틀고 참선자리에 앉지 않고도 리차드 세라의 비디오 속에서 그 일면을 엿보게 된다. 이렇듯 기존의 가치를 의심하고 비틀고 실체를 찾고자 노력해 온 아방가르드 가운데, 미국의 대표적인 참선하는 작가로 회자되어 온 엘리노어 앤틴을 만났다. 2010년 7월 그녀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집에서였다.

엘리노어 앤틴은 개념미술의 선구자이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전이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렸다. 미국 미술 200년을 정리하는 전시로, 그 곳에 엘리노어의 작품도 전시 되었다. 휘트니 미술관은 비엔날레를 통해 현대미술을 선도해 가는 위치에 있다.

Eleanor Antin, Carving A Traditional Sculpture, 1972, 148 black-and-white photographs with explanatory text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Ronald Feldman Fine Arts, New York.
휘트니가 선정한 앤틴의 작품은 〈CARVING: A TRADITIONAL SCULPTURE, 1972〉였다. 이 작업은 수천 년 동안 조각의 대상을 찾아 헤매온 조각가들에게 그 주체가 바로 조각가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선(禪)적인 접근을 했다. 작품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다.

앤틴: 휘트니 미술관이 조각 비엔날레에 나를 초대했습니다. 나는 ‘CARVING 조각하기’라는 작품을 전통 그리스 조각으로 빗대어 했습니다. 오직 다른 거라면 대리석을 쓰지 않고 내 몸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늘 여성의 몸이 특별한 패션과 아름다움의 유행으로 강요되어 왔으니까 이 몸은 이미 조각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전통 그리스 조각도 대리석이든 나무든 완벽한 형태가 나올 때까지 작가가 돌아가며 깎아냅니다. 우리가 다이어트할 때 몸무게 빼는 형식과 마찬가지예요. 미켈란젤로가 말했어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곤 이미 대리석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오는 것뿐이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오! 그래 나도록 굶기엔 자신 있으니까. 빼내어 보자.’ 그런데 ‘대리석’에서 꺼내올 수 있는 내 살과 피로 뭉쳐진 조각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슈퍼모델로 대변되는 이상적 모습은 아니었죠. 그래서 미켈란젤로가 얻을 수 있는 완벽한 몸이 나왔다고 느끼고 멈췄던 것처럼 나도 멈췄습니다. 그런 다음 휘트니에 보냈죠. 거절당했어요. “이것은 조각이 아니다. 개념예술이다.”

1972년의 일이다. 그러나 28년 뒤 휘트니는 이 작업을 미국 대표작으로 선정하여 전시했다. 기존의 개념을 흔들고 부숴내는 아방가르드의 시도는 시간 속 대중의 검증 속에서 주류 아트로 자리 잡혔다. 작가의 시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기존 가치를 뒤집어 내는 작가였던 앤틴은 샌디에이고 선원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며 용맹정진하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선승들의 괴팍한 일화도 그녀를 깨워주는 불교 가르침이라고 했다.

세계 거장에게서 엿보는 불교적 통찰력

Christian Boltanski, Personnes, 2010. Installation for Monumenta in Le Grand Palais, Paris. Courtesy Christian Boltanski et Galerie Marian Goodman, New York Paris. Tous droits réservés.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2010년 작품. 불어 원제 ‘Personnes’에는 ‘누구나’ 혹은 ‘아무도 아닌’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또 한 명의 작가가 있다. ‘부재(不在)’를 증명하는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이다. 그는 프랑스 생존 작가 가운데 가장 큰 신망을 받는다. 40년 넘게 우리에게 죽은 이들과 함께하는 현실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자극해왔다. 신문 부고란에 올라 있는 사진뿐 아니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진, 연고 없는 이들의 자취까지 보여준다. 2010년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는 이색적인 전시가 있었다. 잠실실내체육관만큼 거대한 공간에서 벌어진 볼탕스키의 〈페르손느(Personnes)〉라는 작품이다. 분할된 방도 없고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았다.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크레인이 중심에 있고 그 아래 헌 옷이 산처럼 쌓여 있으며, 크레인이 무작위로 옷을 집어 다른 곳에 놓는다. 볼탕스키에게 헌 옷은 곧 한 사람의 인생을 나타낸다. 누군가 이 세상에 왔다 벗어 놓은 흔적이다. 이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수천 명의 심장 박동 소리도 함께 듣는다. 세계 곳곳에서 살았고, 어쩌면 지금도 살아 있을 사람들의 심장 소리이다. 그는 ‘부재(不在)’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상’이라고 받아들였다.

“옷이란 것은 사람들을 찍은 사진과도 같습니다. 또 심장박동과도 같지요. 크레인이 사람들을 무작위로 집어 올려 다른 곳에다 데려다 놓는 것과 같습니다. 우연에 내맡겨진 사람의 흔적이 옷이죠. 심장박동 소리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독자적인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5년째 사람들의 심장 소리를 수집해서, 일본 남쪽에 있는 섬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를 돌며 4만 명의 심장 소리를 모았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참여했어요. 수집된 심장 박동 소리는 몇 년 안에 죽은 자의 심장 소리가 될 겁니다. 이 작업과 관련해서 어제 친구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한 어머니가 딸의 심장 소리를 들으러 유럽에서 일본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다섯 살인데 살해당했답니다. 심장 소리라도 들어야겠다며 울부짖었다는군요.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보존한 것은 아이의 심장 소리일 뿐 그 아이가 아니라구요.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향한 길 위에 내가 있다는 감이 옵니다. 깨달음이죠. 그 많은 죽음을 맞은 이들이 그리 특별한 이유 없이 가버렸다는 거 말입니다. 당신의 죽음도 그저 심심한 사실일 뿐입니다.”

Christian Boltanski, Ile de Teshima, Japon. Lieu d’établissement des Archives du Cœur, 2010.
Courtesy Christian Boltanski et Galerie Marian Goodman, New York Paris. Tous droits réservés.
일본에 있는 테시마 섬. 세계인의 심장 박동 소리 저장고.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1970년대부터 세계 미술계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작품은 파리 현대 미술관, 쿤스트할레 비인, 시카고 현대 미술관, LA 현대미술관, 등 세계 곳곳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2011년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 대표작가로도 선정되어 참여했다.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이란 신에 대항하여, 그 권능에 맞서는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오기 전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비록 모두 다 잊힐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미래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 사는 것이 앞 세대들의 혼합물이라고 봐요. 내 코는 증조할아버지이고, 귀는 아마도 그 윗세대 어떤 분의 것일 겁니다. 우리가 개성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앞선 세대의 집합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연속이라는 아이디어죠. 우리 인간 스스로도 신과 대응하는 또 다른 권능과 기회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탄생을 통해 우리 이전의 누군가를 보존해 나갑니다. 이것이 내가 갖는 유일한 종교적인 질문입니다. ‘운명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나는 우연을 믿습니다.”

내게 그의 주장은 볼탕스키의 언어를 통해서 만나는 ‘연기’에 대한 설명으로 들렸다. 그의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작품도 이 ‘만들어지는 우연’을 관객이 직접 참여하여 느끼는 기계장치로 이뤄졌다. 이미 현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었고, 현재도 사색의 여정을 이어가는 볼탕스키에게서 불교적 통찰을 엿보게 된다.

두 개의 의자로 뉴욕을 깨운 마리나 아브라모치,
그녀 스스로 관객을 현재로 인도하는 열쇠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불자이면서 자신의 수행 속으로 대중을 초대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녀는 명실공히 21세기 최고의 행위예술가이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음으로써 대중적 지지 기반도 확실하게 다져 놓았다. 그런 그녀에게 전 뉴욕 인구가 열광했던 3개월이 있었다. 2010년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뉴욕 근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빅의 회고전 “작가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이다. 뉴욕 인구에 맞먹는 85만 명이라는 인파가 몰렸다. 모마 개관이래 최고의 관객 동원이다. 더불어 새 프로젝트인 “The Artist Is Present”가 아트리움에서 선보였다. 미술관이 문을 여는 시간부터 문을 닫는 저녁까지 마리나 아브라모빅이 의자에 앉아 단 1분도 움직이지 않고 관객 중 한 명과 마주앉는 것이다. 관객은 앉고 싶은 시간만큼 앉아 있을 수 있고, 일어나면 다음 관객이 자리에 앉는다. 총 736시간 30분 동안 진행되었다. 유명 대중 예술인들까지 밤부터 기다려 마리나와 마주앉았다. 전시장을 찾기 전 나는 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예술적 실험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목격한 것은 고통스러운 인내가 아닌 장엄한 소통이었다.

Marina Abramovic, The artist is Present, 2010, The Museum of Modern Art.
2010년 봄 뉴욕 근대 뮤지엄에서 열렸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장면.
가장 단순하게 절제된 행동 속에서 거대한 두 우주가 마주하는 폭발이 터져 나왔다. 겹겹이 둘러싸인 관객도 함께 감동하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통을 이루었다. 그 회고전에 대해 2010년 11월 그녀의 아파트에서 들었다.

“내가 처음 예술에 발 디딜 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작업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젊은 시절엔 항상 복잡하게 작업하려 듭니다, 물질에 뭔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죠. 결국은 우리의 불안을 이런 저런 장치와 요소 속에 감추는 겁니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 더욱 확실한 결론에 도달했답니다. 가야 할 오직 한 길은 단순함이라고요. 이 퍼포먼스도 단순한 구조로 시작했어요. 두 개의 의자와 한 개의 탁자, 그런 다음 그 탁자마저 치웠죠. 사람들은 내 앞에 앉고자 밤부터 기다렸습니다. 그때 하나 더 배웠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이 작업의 일부라는 거요. ‘시간’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테크놀로지와 스피드로 점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술은 좀 더 느려야 한다고 믿어요. 이것이 내 앞에 앉아 있는 상대에 대해 어떠한 시간 제약도 두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3초, 5분 또는 5시간이나 7시간…… 원하는 만큼 앉아 있도록 했습니다. 일단 그 공간에 들어오면 얼마 되지 않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존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거기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있는 거예요. 나는 단지 그들의 의식 속에서 거울을 작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현재, 과거 미래의 삶이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고통을 쏟아냅니다. 울음을 터뜨리죠. 그 고통을 함께 느끼며 앉아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내 사랑을 전달합니다. 이것이 내가 하려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영혼을 볼 수 있었어요.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몸 전체로 볼 수 있답니다. 당신의 등, 손, 발 모든 곳에 눈을 달게 됩니다. 그런 다음 모든 것이 아주 강하게 증폭됩니다. 바로 그 ‘현재’입니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더 깊은 마음 상태로 들어갑니다. 상대는 내 에너지를 더 많이 느끼게 되지요. 그들과 나의 삶을 진정으로 바꿔내는 경험이었습니다.”

회고전이 열리는 3개월 동안 미술관은 선방이 되었고, 안거에 들듯 마리나는 관객과 함께 명상을 했다.

“사실, 시간의 흐름 속에 현재란 없습니다. 현재란 개념입니다.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때만 존재하죠. 그 시간 없는 공간이 우리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축복받은 곳입니다. 누구나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꼭 머물 수 있습니다.”

마리나는 모든 사람은 본디 착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마음을 꺼내는 열쇠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자신의 퍼포먼스 자리로 관객을 초대한다.

Marina Abramovic, Carrying the Skeleton, 2008. C-Print. 206.4* 183.5cm.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Gift of Agnes Gund.
“인도 히말라야에서 겪은 일을 잊지 못합니다. 동굴에서 10년 동안 명상 수행을 하신 스님께서 드디어 세상에 나오시는 날이었습니다. 마침 그 절에 손님으로 머물던 차라 그 엄청난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스님 옆에서 저는 화로 앞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환희롭고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10년 동안 명상적인 상태에 있으면서 시간의 흐름이 없는 스스로의 중심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의 긍정 에너지는 증폭되었고 있는 존재만으로 둘러싼 모든 이를 감화시킬 수 있었던 거죠. 이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집중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첫번 째 일입니다.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내게서 이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먼저 비워내자는 뜻이다. 그리고 그녀는 달라이 라마 성하의 말씀을 전했다. “오직 그대가 용서를 배울 때만, 그대는 살육을 멈출 수 있다. 인류는 단 한 번도 용서하기를 배워 보지 못했다.” 그녀가 ‘나’를 비워내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꺼내놓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과 불교의 진정한 소통은
작가의 구도 속에서 이루어진 산물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마지막으로 소개한 이유는 그녀의 예술 행보 속에 한국불교가 얻을 수 있는 현실적 교훈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더욱 많은 이들이 물질문명의 벽을 느끼며 해답을 찾아 불교적인 심연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는 고도의 문명사회가 몰고 가는 어쩔 수 없는 물결이다. 미국에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것은 이제 이들에게 있어 불교는 더 이상 신비로움의 대상이나 흥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상층 사회와 지식층뿐 아니라 중간계급까지 불교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고급문화를 대변하는 현대미술에서는 젠센터를 찾거나 불교서적을 탐구하고 명상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활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무르익었다.

반면에 아쉬움을 주는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의 포교 형식이다. 서구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사찰음식도 미니멀한 맵시를 자랑하는 불교용품도, 격조 있는 불교미술품도 아니다. 바로 부처님 법이다. 그 법을 드러내 주는 법다운 모습을 찾아 티베트불교도 만나고, 위빠사나 수행도 해 보고, 한국 스님도 찾아간다. 서구인들은 책을 통해서 불교를 접하는 복 없는 출발을 했다. 그래서 스스로 수행해 보려는 귀한 도전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도 상품으로 전달되는 불교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법을 깨우쳐 줄 스승을 찾는다.

한국불교의 세계화, 현대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필자는 그 답은 결국 ‘수행’뿐이라고 생각한다. 산문을 걸어 잠그고 정진하는 모습, 큰 스승께서 움직이실 때 여법하게 따르는 무리들의 기상. 그 모습만이 불교백화점에 있는 서구인들을 깨울 수 있다고 본다. 현실불교 시스템이 적극적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은 불교 홍보나, 현대인들의 조급함과 타협하는 의례의 간소화가 아니다. 법다운 법이 설 수 있었던 구습을 지켜내며 수행할 수 있도록 ‘수행터’를 지키고, 대중이 스승을 만날 수 있도록 수행자를 지켜줘야 한다. 한 명의 예술가가 세상을 울리기까지 뒷받침이 되어 준 제도와 지원이 있었다. 그 제도와 지원은 예술계의 몫이다. 불교계는 그 예술가들에게 배움을 주었던 스승을 배출해야 한다.

기존의 물질문명과 타협해 들어가는 불교상품 개발을 시스템이 전적으로 나서서 할 일은 아닐 것이다. 패션쇼를 예를 들면, 현대미술이 바로 패션쇼와 같다. 현재 우리 눈에 익숙한 색감이나 디자인, 그러니까 시장에서도 사서 입을 수 있는 상품으로 된 아이디어(관념)는 이미 3, 4년 전에 밀라노 런웨이에서 걸어갔던 옷들이다. 현재 최고의 작가들과 소통하는 불교는 부처님의 법이다. 그들은 사찰음식에서 아니면 사찰 사진에서 그런 아이디어를 가져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대 문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서구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한 불교도 시장에서 사는 그런 불교 제품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수행하는 그 과정이다.
이 점에 집중하면 요즘 흔하게 들리는 한국 불교 세계화, 현대화의 외침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진선미(眞善美)…… 미(美)를 이루고 선(善)을 통해 진리로 들어가듯 앞서 살핀 작가들의 경우 예술적 깊이 속에서 진리의 경지에 닿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대미술 속에서 불교가 응답해 나가야 하는 지점이다. 진리를 드러내는 자리. 더욱 많은 예술가들이, 또한 관객들이 부처님 법을 물어 올 것이다. ■

 

안희경 / 저널리스트, Art/Mindfulness.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국대학교 대학원(불교미술 석사)을 졸업했다. 불교방송 PD로 활동할 당시,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여러 매체에 미국의 시사 문화와 불교에 관해 소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 석학들과 현대미술 거장들을 인터뷰하고 명상적 시각에서 해석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환경을 지키는 책 《우리가 머무는 세상》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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