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세기 한국불교의 회고와 반성

1. 들어가는 말

승가의 존재는 불교의 존립에 절대적인 요건이다. 2천6백여 년 전 출현한 불교가 오늘날에도 진리의 가르침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승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승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불교는 부처님 당대에만 존재했을 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불교를 구성하는 세 가지 보배(三寶)에 승가가 들어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불법을 계승하는 주체인 승가의 교육은 언제나 불교교단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불교가 문화를 창달하고 사회발전을 주도하던 시기에는 뛰어난 승가가 존재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원효, 의상 등 기라성 같은 수행자가 즐비했던 신라 시대에는 불교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도원리로서 기능하며 역사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훌륭한 수행자가 많지 않았던 고려 말기에는 불교는 사회발전의 걸림돌로 인식되었고 이후 조선조 5백년간 사회의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승가를 구성하고 있는 수행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준이 곧 승가의 수준을 결정하며, 이는 곧 역사사회에서의 불교의 위상을 결정한다. 이러한 점에서 승가의 수준을 결정하는 승가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새 천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2천년은 단순히 한 해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문명의 전환기에 들어선 것이다. 변화된 환경에서 불교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느냐는 전적으로 승가교육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밝은 미래는 철저한 반성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난 1백년의 승가교육이 어떤 행로를 걸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2. 근현대 한국불교 승가교육 개관

1) 구한말의 승가교육


구한말 개화기의 조선의 화두는 근대화였다. 서구 열강과 일본 등 근대화 세력의 침탈을 맞은 조선은 당시의 세계적 사조인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선진 문물을 배워서 국력을 배양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조선조 5백여 년 동안 암흑기를 통과해온 불교계 또한 1895년 도성출입금지 해제를 계기로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그 동안의 산중 은둔주의를 탈피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하였다.

그러한 노력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승가교육이었다. 일찍이 개화승 이동인(李東仁)의 영향을 받은 이보담(李寶潭) 등은 기존의 전통적인 교육 체계만으로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자각을 하고 불교연구회를 결성하여 1906년 우리 나라 최초의 불교고등교육기관인 명진학교(明進學敎 ; 현 동국대학교 전신)를 설립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수원 용주사의 명화(明化)학교, 고성 건봉사의 봉명(鳳鳴)학교, 합천 해인사의 명립(明立)학교, 동래 범어사의 명정(明正)학교가 설립되었고, 이듬해인 1907년에는 전주의 봉익(鳳翊)학교, 경상북도 지역의 경흥(慶興)학교, 1909년에는 신명(新明)학교, 송광사의 보명(普明)학교가 속속 문을 열었다. 유교 중심 사회였던 조선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일 수밖에 없었던 불교계가 활동의 자유를 얻자마자 이렇듯 교육에 열의를 쏟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명진학교가 불교뿐만 아니라 측량(測量)·주산(珠算)·물리·화학 등 신학문을 교과목에 편성하여 당시의 시대 사조를 반영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불교의 진리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변화된 환경에 조응하여 해석,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학문을 수용, 교육한 것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또한 보통학교에서 승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사회적인 공헌을 한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2) 일제강점기의 승가교육

1910년대 말까지 28개의 전문학교와 보통학교를 설립하는 등 근대적인 교육에 첫발을 내딛은 불교계는 이후 더욱 교육에 역량을 쏟았다. 1917년 당시 30본산 본말사의 지방학림, 불교전문, 보통학교의 학생수가 오늘날의 기초 교육기관인 승가대학(강원) 학생수(동국대학교와 중앙승가대, 기초선원 제외)보다 많은 1,054명이었다는 사실은 교육에 대한 열의를 반증한다.1) 1)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 강원총람, p. 49. 2) 1910년대 강원이 지방학림으로 전환된 이후, 1920년대의 강원 복구와 함께 이른바 구학(舊學) 중시 경향이 나타났다. 주로 옛 강원 출신들이던 학인들은 당시 불교계 모순의 원인을 주로 강원 교육 제도의 미비에서 찾았다. 당시 강당 학인들을 구시대 인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고, 학인들이 취식객적 낭만적 허명적으로 지내고 있다고 자조하고 있었을 만큼, 강원 제도의 미비점 개선을 승가교육 개혁의 실마리로 보았다. 이 대회는 이런 배경에서 열렸다.

1920년대 기존의 근대 교육기관에 불교학원 등 3개의 전문학교와 보성고등보통학교 등 중등 교육기관 3개, 대자(大慈)유치원 등을 더한 불교계는, 1928년 3월 14일부터 4일 동안 서울 종로 수송동 각황사(覺皇寺)에서 열렸던 조선불교학인대회(朝鮮佛敎學人大會)2)를 계기로 승가 교육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이 대회에서 학인들은 ‘내전(內典) 연구과’(고등 강원)의 설치를 골자로 한 전통 강원의 개선을 요구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명진학교 등 근대 교육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김광식, <1930년대 강원제도 개선 문제>, 승가교육 2집, pp. 299∼300,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 1998.

당시 불교계는 엘리트를 선발하여 국내의 근대교육에 힘쓰는 한편 일본 등지로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유학을 갔다온 많은 인재들이 불교에 복귀하는 것보다는 속퇴하는 경우가 많아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던 것이다. 학인대회 후 논의와 진통을 거듭하던 강원제도 개선안은 1933년에 이르러 구체적인 제도 정비와 함께 예산의 충당, 체제, 교과 내용, 세부 규칙 등이 마련되었다.

1933년 3월 22일 열린 제 5회 종회에 제출된 선교양종 중앙교무원 교학부 보고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강원제도를 개선함에서는 먼저 불교교육의 체계를 확립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일치되고 기(其) 체계는 보통학교 졸업자를 전제로 하여 강원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좌기(左記) 사항을 결의하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불교 교육 체계와 강원의 지위는 ‘보통학교 → 강원(고등보통학교) → 불교전문학교(전문학교 및 대학) → 불교연구원’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학인들이 요구한 개선안에 비해 강원 위주의 교육 제도를 지양하고, 보통학교 졸업을 기본으로 하며, 강원과 고등보통학교를 대등하게 설정하는 등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학인대회에서 제시한 고등강원은 개선안에서 불교연구원으로 이름만 달리할 뿐 같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 각 교육기관의 예산은 전국을 4개 구역으로 나누어 해당 구역에 속한 각 본산이 예산을 충당하기로 하였다. 예산 충당을 매우 구체적으로 소요 항목과 비용을 정확하게 산출하여 정하였다.

이 보고서는 이 밖에도 학칙과 직제, 교육 내용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학과 과정 및 시간표에서 보이는 교과목이다. 교과 시간표는 계율, 종승, 종승의 개론, 종승의 각론, 불교사, 조선어 및 한문, 일본어, 영어, 역사, 지리, 수학, 이과, 실업, 음악 체조 등의 과목에 각 학년별로 매주 28∼29시간을 배정하였다.3) 3) 이상 1930년대 강원제도 개선안에 관한 내용은 앞에서 인용한 김광식의 논문 <1930년대 강원제도 개선문제>에서 발췌한 것이다. 승가교육 2집, pp. 308∼313.

이러한 개선안이 이후 불교계 상황과 맞물려 제대로 시행되지는 못하였지만 그 의미는 적지 않다. 당시 불교계가 안고 있던 모순의 원인과 모순의 해결을 교육 제도와 그 개혁에서 찾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또 학인들에 의해 시작된 최초의 교육개선 노력이라는 점과 시대의 조류를 앞서가고 있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다만 상대적으로 전통의 계승 부분은 소홀한 감이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근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적인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근대 교육에 대한 문제점 노출과 더불어 전통적인 교육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또한 활발하였다.

선수행을 우위에 두고 승가교육을 발전시키려는 방한암(方寒巖)·송만공(宋滿空) 등 선승들은 전통사찰을 수호 중건하며 선(禪)의 중흥을 승가교육의 요체로 삼았다. 이러한 선승들의 노력에 힘입어 1913년에는 전국의 선원이 72개소에 달했다. 한편 박한영(朴漢永)을 비롯한 전통적인 강백들은 전통 강원 교육에 힘써 1913년에는 강원이 62개소에 이르렀다.4) 이렇듯 일제강점기의 승가교육은 근대교육과 전통 교육의 혼재로 특징지어진다.4) 지방승가대학의 역사와 현황, 승가교육2호(1995),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

3) 해방 이후의 승가교육

해방 이후의 승가교육은 어떤 면에서는 일제강점기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오히려 후퇴한 감이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한국의 현대사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승가교육의 부진은 조계종 교육원에서 발간한 강원총람의 해방 후 강원 연표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1946년부터 1966년까지 온통 동국대학교의 확장으로 차 있다.

1966년의 동학사 승가대학 개축이 따로 실려 있을 정도5)로 이 시기 승가 교육은 철저하게 침체되었다. 정화 이후 1962년 통합 종단이 출범하면서 도제양성·역경·포교를 삼대 사업으로 내걸었지만 교육에 대한 지원이나 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동안 교육에서 소외되어 있던 비구니의 교육을 위해 동학사, 운문사, 봉녕사 등이 비구니 전문강원을 개설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통합종단 출범 이후에도 계속되었던 각종 종단 분규로 말미암아 정체에 빠져 있던 승가교육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중앙승가대학의 개교, 1983년의 교육법 개정, 1990년 선우도량의 창립, 1994년 교육원의 설립 등이다. 5) 강원총람, pp. 780∼781.

1979년 의식있는 소장 승려들에 의해 의정부 쌍룡사에서 중앙승가학원으로 개설된 승가대학은 1990년 각종학교, 1996년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에는 종단기본교육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전통적인 강원 교육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섭렵, 변화된 사회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설립된 중앙승가대학은 현대 승가교육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각종 종단분규에 휘말림으로써 일정한 한계를 노정하기도 했다. 1983년의 교육법 개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종단 차원에서 행자교육원을 설치토록 한 것이다. 교육법에서는 ‘모든 사찰의 주지는 행자들을 행자교육원 과정에 취학시킬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였는데, 이 조항은 오늘날 종단 차원의 승가교육의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교육법은 선원, 염불원, 율원, 강원, 행자교육원, 승가대학, 동국대 선학과 등으로 교육기관을 설치토록 하기도 하였다. 1990년 설립된 ‘선우도량’은 승가교육의 문제제기, 개혁의 논의에 불길을 당겼다.

출범과 동시에 선우도량은 승가교육 개혁에 관한 공청회와 토론회, 학술발표회 등을 끊임없이 펼쳐, 1993년 11월 그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당시에 발표된 개혁안은 승가교육 문제가 종단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며, 승가교육을 지속적으로 담당할 기구 발족을 제시하며 다음의 4가지를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① 교육부를 신설하여 기초, 기본, 전문, 특별 등의 승려교육과 기타 신도교육의 제반행정을 담당하도록 한다.
② 종헌·종법에 규정된 교육위원회를 현실적으로 활성화하여 종단교육 문제를 연구·지도하도록 한다.
③ 종단교육비(분담금, 특별분담금, 관람료 중 교육비, 기타 교육헌금)와 교육예산을 현실화하여 엄격히 집행되도록 해야한다.
④ 교육 관련 법령을 대폭 개정하여 드러난 문제점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6) 6) 선우도량 제6호, p. 454, 대한불교조계종 선우도량, 1994.

1994년 개혁종단의 출범으로 교육원이 설립된 것도 현대승가교육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정화 이후 각종 종단분규로 인하여 체계적인 교단의 정비와 승가 교육의 개혁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던 불교계가 면모를 일신할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1995년 1월 13일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한 교육원은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 행정을 담당할 교육부, 삼장(三藏)의 연구를 담당할 불학연구소, 교육 정책을 입안할 교육위원회, 역경 및 교재 편찬 담당 위원회 등 승가교육에 필요한 체계를 갖추었다. 1996년에는 선원령이 제정되어 기본교육기관인 기초선원이 개설되었고, 전문학림과 승가대학원 등도 개설되었다.

3. 현행 승가교육의 문제점

현재 조계종의 교육 기관은 ① 행자교육원(기초교육기관) ② 승가대학 (기본교육기관) ③ 학림, 승가대학원, 율원, 선학연수원(전문교육기관) ④ 중앙연수원 ⑤ 특수학교 등으로 정해져 있다.

이들 기관은 ‘보살도를 실천함에 필요한 교육을 시행하여 불국토 실현에 이바지할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조계종 교육법에 의해 설치 운영되고 있다. 교육 개혁의 여러 분야 중 제도의 정비와 체계화 등 하드웨어 분야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원 주도하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교육 내용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1) 시대에 뒤떨어진 교과과정

동국대학교와 중앙승가대학, 기초 선원을 제외한 승가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기본 과목으로는 사미과의 사미율의와 치문, 사집과의 도서와 절요, 사교과의 금강경과 원각경, 능엄경, 대교과의 화엄경 등으로 되어 있다. 이 교과과정은 350여 년 전 조선 중기에 확립돼 거의 변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이 정립될 때는 그럴 만한 사정과 정당성이 있었다.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것은 선이었다. 그러므로 선을 중심으로 하는 교과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당시의 수준이나 사정을 감안하면 선만이 아니라 교학을 배려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런 만큼 당시에는 타당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훌륭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진리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교과과정이 정착된 당시와 지금은 여건과 환경이 엄청나게 다르다. 환경이 바뀌면 시대정신도 변하며 개인이나 사회의 요구도 바뀐다. 조선 중기에 이 과정이 확립된 것도 시대 환경에 조응하기 위해서다. 주체적으로 환경에 적응하여 불교를 널리 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현대에 들어서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 내지는 발전을 모색하지 않는 것은 대단한 무신경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현행 교과과정의 두번째 문제는 부처님의 생애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종교를 구성하는 요소는 그 종교를 창시한 교조와 그 가르침, 그리고 전승집단인 성직자다.

불교는 이를 삼보로 하고 있거니와 이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불교에 입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귀의할 교조인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명확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불교에서 부처님은 귀의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 부처님은 여타의 다른 종교의 교조처럼 접근 불가능한 절대적 타자가 아니라 불자들이 본받고 닮아가야 할 삶의 모범이다. 부처님은 탄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신 분이다. 부처님의 생애가 불자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가교육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면밀히 검토하고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혹자는 부처님의 생애쯤은 출가 전에 또는 행자교육 과정에서 이미 공부했다고 할는지 모른다. 출가 전에 이미 부처님의 생애를 배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출가 이후에는 그 이해도에서 달라야 한다. 출가는 삶 자체를 혁명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는 단순히 불교신자가 아니라 자신이 귀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출가자는 자신이 전범으로 삼고 따라가고자 하는 부처님의 생애를 좀더 면밀하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행자교육원에서 이루어지는 부처님 생애에 관한 교육도 턱없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행자교육원은 3주 과정에 총교육시간이 345시간이다. 이중 예불 등 예경실수(禮敬實修) 110시간, 습의(習儀) 54시간, 철야정진 100시간, 운력 35시간을 제외하면 46시간이 남는다. 46시간 동안 사미율의·초발심자경문·유교경(遺敎經)·부처님의 생애를 배운다. 이 시간 동안 부처님의 생애를 진지하고 면밀하게 배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왕자로 태어나서 4번의 성문밖 여행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서 출가했고, 성도했다.’ 이 정도의 판에 박힌 내용 외에는 가르칠 시간이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부처님이 수행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운 일, 전도하면서 겪었던 일, 제자를 가르치면서 겪었던 일 등 율장과 아함부 경전에 남겨져 있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치밀하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겪었던 일은 지금 우리도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부처님이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대처했는가를 배워서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노릇의 알파와 오메가다. 승가교육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생애다. 세번째는 현재의 교과과정으로는 불교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본다는 것은 백화점식으로 모든 불교학을 다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불교라는 종교를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파악하자는 것이다.

불교의 기초교의, 특성, 정확한 법의 개념 등이 명확하게 정립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경전을 배우더라도 가장 부처님의 원초적인 육성이 담겨 있는, 불교의 기본교의를 형성하고 있는 아함경을 철저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함경을 교수하고 있는 강원은 필자가 알기로는 송광사 강원밖에는 없다. 한마디로 현재의 강원 과목을 보면 기본교육이 아니라 기본교육을 완전히 마스터한 후에나 필요한 특수교육, 그것도 산중 은거형 선정주의 교육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불교가 어떤 종교, 어떤 사상인지도 모르고 스님이 되고, 선수행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난센스다. 불교의 기초교의, 불교적 가치관,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선으로 직행하는 것은 개인적인 체험을 절대화할 위험이 있다. 현재 한국선이 도가적 신선도나 도통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불교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선수행으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선수행을 위해서도 기초 교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네번째는 불교 이해가 아직도 중세에 이루어진 교판(敎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신론, 금강경, 화엄경 등의 차제적 과목 설정은 수나라 천태의 교판이다. 천태 대사의 교판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당시는 경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성립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인도로부터 무작위로 수입된 경전은 주장하는 내용이 상호 배척되기도 하고 높낮이에서도 차이가 많았다. 모든 경전을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라고 믿었던 당시에는 대단히 당혹스러운 문제였다. 따라서 방대한 경전을 나름의 안목에 의해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분류는 대단히 탁월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근대학문의 발달로 인해 문헌비판이 이루어짐으로써 모든 경전이 부처님에 의해 설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이 직접 설하지 않은 것은 불교 경전이 아니라든가 또는 저열한 경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실이 상식이 되고 있는 시대에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요컨대 천태 대사의 교판을 그대로 답습함으로 인해서 천태 대사의 탁월한 문제의식을 계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태 대사는 그 시대의 문제에 즉해서 교판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문제의식에 의해서 경전이나 사상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의식으로 우리의 언어로 경전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는 복잡다기한 사회이다.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화엄사상, 천태사상, 유식불교, 율장 등의 분류에만 집착하기보다는 불교심리학, 불교윤리학 등으로 경전을 보는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경전이 새롭게 편찬되고, 새로운 불교사상이 생긴 것, 예컨대 근본불교에서 부파불교가 나오고, 다시 반야, 중관, 유식이 나온 것은 모두 그 시대의 문제의식에 충실했던 결과였다. 사실 좀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커리큐럼을 재조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결집(結集)이 필요한 때이다. 다섯번째, 외전(外典) 과목의 강화가 필요하다. 물론 현재도 외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를 비롯해서 영어, 일어 등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수준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는지 모른다. ‘승려가 그런 것까지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은 다른 데서도 가능하다.’ ‘승려는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본질적인 것을 해야 한다.’ 일견 옳은 지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승려는 스스로 도를 구하는 구도자임과 동시에 중생을 교화하는 도사(導師)이다. 가장 탁월한 도사였던 부처님의 별호 가운데 하나가 세간해(世間解)이다. 중생들이 삶을 영위하는 세간을 잘 이해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이 증권투자를 잘하는 법을 아신 분이라거나 정치를 잘 아는 분, 컴퓨터를 고칠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다. 중생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구조를 여실히 아는 분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할 때 근기에 따라 수기설법(隨機說法)을 베풀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수기설법을 하려면 중생의 고민과 능력, 그들이 처한 삶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삶을 알려면 세속학문 또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세속학문을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현대의 사상적 흐름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외전 과목 중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비교종교이다. 현대는 다종교사회다. 종교다원주의 사회다.

온갖 종교가 때로는 협력하며 경쟁을 한다. 경쟁을 하든 협력을 하든 다른 종교를 알아야 가능하다. 더구나 우리 나라는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종교문제가 심각하다. 한 가정에서도 종교가 다르고, 그로 인해 불화가 일어나고 가정이 파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표적인 전통종교인 불교가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불교는 타종교를 무턱대고 배척하지 않으며, 오히려 타종교가 문제일 뿐이라고 외면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런 만큼 오히려 그들의 종교를 배우고 이해해서 화합의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또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비교를 통해, 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보더라도 비교종교는 반드시 강화되어야 한다. 더구나 타종교에서는 성직자 교육에 불교과목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불교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들에 의해서 불교 교재가 편찬되기도 하며, 외국에 한국불교를 소개하는 사람들의 많은 부분을 그들 타종교 불교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2) 열악한 교육환경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의이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에 대한 열의가 사무치고 지극하다고 해도 교육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교육은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승가교육의 환경은 아마도 여타의 어느 종교보다 열악할 것이다. 먼저 교수인력의 절대부족이다. 강주 1명, 강사 2∼3명이 전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분들은 오랜 기간 동안 교학을 수련하고 연찬한 훌륭한 분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소수의 인원으로 전과목을 교수한다는 것은 문제다. 무엇보다 교역자에게 부담이 너무 크다. 그리고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교육의 질 또한 저하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시 전체 승가의 수준 저하로 이어진다. 교역자를 늘이지 못하는 것은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첫번째는 예산의 문제이다. 강원이 독립된 예산집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 사찰의 예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교육을 시키려고 강원을 유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름을 내려고 유지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찰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강원을 운영하는 것인지 모를 경우가 적지 않다.

두번째는 종단에 팽배해 있는 그릇된 사고방식이다. 법랍이 수십년이고 오랜 기간 교학을 연찬하고 승려를 배출한 강주나 강사들이 종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보잘것없다. 심하게 말하면 선방 몇 년 다닌 수좌들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능력이 있더라도 교역자 되기가 쉽지 않다. 교육환경과 관련하여 두번째 문제는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데 필요한 부대시설의 미비다. 어느 교육기관이고 간에 가장 중요한 시설이 도서관이다. 그런데 우리 강원의 경우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도서관을 갖춘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정신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승려의 교육기관에서 세속의 중고등학교보다 못한 도서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세번째 문제는 세속 학교와 다를바 없는 분위기이다. 전통강원은 오랜 수행 경력이 있는 노장 스님, 대덕 스님의 훈도를 받을 수 있고, 대중생활을 통해서 서로를 탁마할 수 있지만 현재의 중앙승가대학이나 동국대학교의 경우는 승려교육에는 맞지 않는 환경이다. 적어도 기숙사나마 수도도량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 철저한 대중생활과 엄격한 수행생활이 되도록 교수 스님들의 훈도가 절실하다.

3) 재교육의 부재

조사 스님들 말씀에 이런 것이 있다. “처음 출가할 때는 부처님이 눈앞에 있고, 출가 2년에는 부처님이 서천(西天)에 있으며, 출가 3년에는 부처님한테 돈을 달라고 한다.” 이 말은 출가 수행자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난 말이다. 누구나 처음 출가할 때는 장한 마음으로 출가한다.

생사를 결단하고 출격장부가 되겠다는 기상이 넘쳐난다. 그러나 깨치기 전에는 범부인지라 해태심도 일어나고 현애심도 일어난다. 그때 이 병을 고치지 못하면 속된 말로 ‘중도 아니고 속도 아니게 된다.’ 많은 경우 자포자기하여 수행자의 길을 포기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옷을 파는 매불(賣佛)의 무리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수행자들이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교정할 과정이 없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불교의 수행생활만이 아니라 성직자라는 길 자체가 고행이다. 그래서 타종교의 경우 이런 일에 대비하여 다양한 상담기관이나 재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필자가 과문해서인지는 모르나 우리 불교에서는 아직 그런 것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혹자는 하안거와 동안거가 그런 재교육 과정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느냐고 할는지도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안거 제도는 새롭게 발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많은 안거를 거치고도 안심(安心)을 하지 못해 방황하고, 각종 신종 수행법을 찾아나서고 있는 수행자가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철저하게 반성할 일이다. 또 혹자는 교육원이 별원으로 격상된 이후 재교육을 실수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원이 실시하는 재교육은 본말사 주지나 중진의 행정 연수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 맺음말

지금까지 근현대 승가교육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여러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느낀 것을 적어보았다. 이상의 여러 문제점은 필자가 처음으로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선배 스님들이 목이 아파게 지적해 왔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여전히 어제의 문제가 오늘의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육에 대한 열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종단에 소소한 문제(생각에 따라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는 할 것이다.)만 생겨도 종회에 무슨무슨 특별위원회가 구성되는데 교육에 관한 위원회가 생겼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불교가 이만큼이라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들의 피땀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법을 홍포하기 위해 순교를 서슴지 않았던 선배 스님들이 있지 않았던들 불교는 이땅에 널리 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까이는 조선조의 혹독한 탄압, 멸시를 견디며 도량을 일구고 후학을 양성하지 않았던들 불교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가난한 단월들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공양미를 올리지 않았던들 불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 승가가 해야 할 일은 선배 스님들의 노고를 헛되이 하지 않고 단월들의 단심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처님을 본받고 닮아가야 한다. 부처님이라면 이 시대의 수행자로서 어떻게 하셨겠는가를 염두에 둔다면 오늘날 우리의 승가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도 결론이 나리라 생각한다. <끝>


법인
천운스님을 은사로 득도. 중앙승가대학과 실상사 화엄학림 졸업.현재 화엄학림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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