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불교’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길을 따라, 연기, 공성을 체득하여 스스로 깨달은 자가 되기 위해 정진해 간다는 것의 압축된 표현일 것이다. 삶 속에서 붓다가 알려준 길을 따라가려면 먼저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불자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은 어렵다. 스승을 두고 가르침을 배우기가 쉽지 않은 재가불자들이 지혜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을 통해서다. 지혜의 가르침이 담긴 책을 읽으면서 방향을 하나씩 찾으며 나아가는 것. 그러는 과정에서 행으로 옮겨질 수도 있는 것일 테고.

올해가 고려초조대장경이 세상에 나온 지 천 년이 되는 해다. 팔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경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자들은 얼마나 많은 경전을 읽고 이해하고 있을까? 아니 경전이 아니라 일반 불서를 읽는 불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불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절에 가서 기도하고 염불하는 모습이 먼저지, 책을 가까이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불서 읽기 모임이 더러 생겨나고 이미 잘 되고 있는 곳도 있다지만 전체 불자를 놓고 볼 때는 아직 미미하다. 

불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사찰일 테다. 사찰에 도서관이 있다면 절에 오는 불자들이 책과 만나는 기회가 늘 것이다. 사중(寺中)에 위치한 도서관을 전각처럼 지나다니다 보면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면서 책과 어느새 가까워질 수 있다. 흔히 불교를 기복종교 혹은 미신으로 많이 오해하는 까닭도 절에 다니며 그저 기도하고 염불만 할 뿐, 그 염불의 의미조차 모르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고 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면 미신이라든가, 기복이라는 말에 주눅이 들 이유가 없다. 불교가 얼마나 명징한 종교인지 스스로 알게 될 때 스스로가 불자임이 자랑스러워질 것이니까. 연예인들이 불자라는 것을 감추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불자 하면 수준 높다는 등식이 성립될 때, 스스로 종교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 수준 높은 불자,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고, 지혜의 밝음을 생활에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불자들을 위해 도서관이란 바탕은 몹시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교를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하는 데 비해, 서양에서는 모른다는 바탕 위에 불교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를 공부한다. 과연 우리는 불교를 아는가? 알기 위한 공부는 얼마만큼 하고 있는가? 진지하게 앎의 과정으로 가는 길 위에 ‘읽기’는 무척 중요하다. 그 공부를 위한 기본 토양, 그래서 사찰에 도서관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사찰도서관이란?

사찰도서관이란 낱말이 쓰이게 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3년 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이하 총무원)에서 사찰도서관 지원을 하면서 사찰도서관이란 표현이 비교적 널리 쓰인 것 같다. 총무원은 3년 전에 불서 읽기 캠페인 ‘부처님글사랑’을 펼쳤다. 불서에 대한 불자들의 지적 관심을 높이고 불서 읽기 분위기를 조성하며, 불교출판의 활성화를 위해 진행한 사업의 일환으로 생겨난 게 사찰도서관을 선정하고 도서를 기증하는 것이다.

올해 사찰도서관은 6호점 군포 정각사와 7호점 거창 포교당이 문을 열어 모두 7개가 되었다. 총무원에서 지정하는 사찰도서관이 반드시 사찰에 속한 도서관은 아니다. 불자, 혹은 미래 불자들이 많이 올 수 있는 곳을 전략적 거점으로 사찰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도서관이란 말이 과연 적절한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각설하고, 사찰도서관의 정의로 다시 돌아가 보면 사찰이거나 불교포교와 관련된 기관에 많은 사람이 불서를 접할 수 있도록 책이 마련된 공간을 사찰도서관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찰도서관이 필요한 이유 몇 가지

1. 공부하는 불자 양성

앞서 지적했듯이 불교가 기복이라거나 미신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배경에는 공부하는 불자층이 너무 얇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 같다. 사찰에서 행해지는 의식의 의미와 경전의 뜻을 책을 통해 더 깊이 알아가는 모습, 21세기를 사는 불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2. 책을 통한 전법

“불교는 너무 어려워요.”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 아닌가요?”의외로 불교를 밖에서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가 없는 사람, 기존의 종교에 회의를 느낀 사람, 혹은 불교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책은 좋은 전법의 매개체가 된다.

3. 불서출판의 엔진

불서는 초판이 나왔을 때 사 두지 않으면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재판을 찍을 여력이 안 된다는 의미다. 그 까닭은 구매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게 일차적인 이유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어도 팔려야 또 찍어낼 수 있다. 불자들이 책을 읽는다면, 그리고 전국에 많은 사찰도서관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신간 구입을 한다면 좋은 불서출판의 엔진이 될 것이다.

4. 지역문화에 이바지

타 종교 도서관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동네에 사랑방 역할을 하는 사례가 많다. 작은 도서관이 붐을 이루다시피 많아지기도 했다. 사찰도서관도 종교의 문턱을 낮추고 많은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으로 열려 있을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알아 갈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결국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게 붓다의 가르침 아니던가. 부처님 법을 알아갈 기회를 나누는 것, 따뜻한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데 훌륭한 초석이 될 것이다.

사찰도서관의 현황 및 사례분석

총무원 문화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찰도서관은 현재(2011년 7월 15일 기준) 인천불교회관을 1호점으로 해서, 조계사 불교대학, 완도 신흥사, 남양주 불암사, 남양주 봉영사, 군포 정각사, 그리고 거창 포교당까지 총 7군데다. 사찰도서관은 총무원 문화부에서 공고를 내고 신청자를 받은 뒤, 문화부에서 마련한 기준에 따라 심사를 해서 선정한다. 선정 기준으로 접근성, 지속성, 주지 스님의 의지를 꼽았다.

접근성은 여러 사람이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고, 대출과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이 되었다. 두 번째 지속성은 세 번째에 있는 주지 스님의 의지와 겹치기도 하는데, 한번 만들어진 도서관이 꾸준하게 유지 발전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다. 오래도록 도서관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의미가 있다. 이왕 만들어진 도서관을 관리, 유지하는 일은 처음 도서관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허울뿐인 사찰도서관이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유용한 도서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꾸준히 유지 발전’이라는 부분에 특히 방점을 찍고 싶다. 게다가 사찰의 특성상 스님들이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보니 도서관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도서관의 존립은 바람 앞의 등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찰도서관 1호점, 인천불교회관

3년쯤 전에 처음 생긴 사찰도서관이다. 인천불교회관은 전법도량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도량이다 보니 일찍부터 책과 가까웠다. 도량 안 한편에 책을 꽂아두었더니 오가는 사람들이 더러 ‘빌릴 수 있느냐’는 요청이 있었고 급기야 총무원 문화부 쪽에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의지를 피력하여 마침내 1호점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 불교신문, 포교원, 조계종출판사 등에서 기증받은 책과 기존에 있던 약간의 책을 포함 2천 권 정도의 장서로 시작했고, 3년이 지난 지금은 8천여 권의 장서로 성장했다. 그동안 꾸준히 도서를 기증받았고 1년 전부터는 새 책을 정기적으로 구입하고 있다. 전문 도서관리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자원봉사자들이 수기로 엑셀에 입력하여 책을 관리하고 있다.

책 대출과 반납을 하지만, 대출 기간이나 대출 권수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이용자들의 자율에 따라 장부에 기입해 두고 대출과 반납을 한다. 상근자가 따로 있지 않고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봉사하고 수시로 오는 이용자는 바로 옆에 있는 종무소에서도 보조업무를 하며 도서관을 꾸리고 있다. 일요일에는 도서관에서 어린이청소년법회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일요일 법회 시간 전부터 와서 편하게 책을 읽는다. 어린이들에게 불서를 가깝게 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불교회관은 상가 밀집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가까이에 인천지방경찰청이 있는데 경찰청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이용, 짧은 시간에 와서 책을 빌려 간다고 한다. 백화점, 학교 등이 인근에 있어 도서관을 통한 전법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주지 스님, 종무소 직원, 도서관 자원봉사자 그리고 절에 오는 신도들까지 마음을 한데 모아서 야무지게 도서관을 꾸리고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좀 더 홍보가 된다면 훨씬 많은 이용자들이 찾아가서 좋은 책과 만나는 기회가 될 듯하다.

사찰도서관 2호점, 조계사도서관

서울 종로 조계사 내 도서관은 사찰도서관 2호점으로 지정이 되어 1년간 운영이 되었지만, 공간이 부족하여 도서관 공간이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현재는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시내 중심가에 있고 많은 인원이 오가는 곳이면서 조계종 총본산이어서 대표성을 띨 수 있는 곳이 조계사도서관이다. 앞으로 조계사 불사가 이루어지고 공간 확보가 된다면 조계사도서관의 기능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사찰도서관 4호점, 남양주 불암사

불암사 경내에 있는 ‘차가람’이라는 찻집 한쪽에 책이 비치되어 있어, 등산객이나 신도들이 오가다 들러서 책을 보는 곳이다. 책이 분류되어 있거나, 전산시스템으로 관리되지는 않는다. 장서가 총 몇 권인지 파악이 쉽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용자들에게 책을 권장할 만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두 명의 봉사자가 지키고 있다. 아직 대출해 가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사찰도서관 6호점, 군포시 정각사

신도뿐만 아니라 군포시민에게도 책을 대출한다. 군포시는 도서관운동이 워낙 활발한 곳이어서 곳곳에 도서관이 많다. 그래서 군포시민들에게 도서관은 무척 친숙한 곳일 테다.  정각사는 상가 건물에 위치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쉼터를 제공하고 부처님 법을 만나기에 적절한 장소다.

서가에 책이 전문적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고, 소설, 수필 하는 식의 큰 카테고리의 구분 정도다. 이용자가 직접 책을 골라 대출기입장에 적고 가져간다. 대출 권수나 대출 기간 등도 정해져 있지 않아, 보통 재일이나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반납과 대출을 한다. 한 명이 상주하면서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 지난 6월에 사찰도서관으로 선정되면서 백천불교문화재단으로부터 1천 권의 도서를 기증받았다. 도서관 공간이 좁다 보니 기존에 있던 책의 대부분은 군포시나 기타 책이 필요한 다른 곳으로 보냈고, 새로 기증받은 책으로 서가가 채워졌다.

불광사 불광도서실

사찰도서관의 시작이라면 아마도 불광도서실을 꼽을 수 있을 듯싶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 있는 불광도서실은 1996년 개관했다. 불광도서실은 처음부터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도서를 분류, 등록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도서실의 운영과 도서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2천여 권의 장서로 시작해서 현재 1만 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하게 되었다. 불광사 홈페이지를 통해 외부에서 도서 검색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대출 상황, 최근 구입한 신간에 대한 정보까지 가능하도록 2003년 전산프로그램을 교체했다. 이용자의 입장에서 도서관 이용이 편리하다. 불광도서실은 한참 뒤에 생겨난 길상도서관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불광도서실의 불교문학 파트 분류번호는 나중에 생겨난 몇몇 도서관에서 공유하게 되었다.

불광도서실은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고 불자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주민에게 개방되어 있어 지역의 문화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회원등록은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이름만 기록하면 누구나 회원으로 등록되고 대출할 수 있다. 신간은 불서 위주로 구입하지만 어린이 책과 베스트셀러도 구입을 해서 이용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최근 불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불광도서실은 불광교육원 2층에 있어서 교육원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든든한 참고서 역할을 했다.

아쉬웠던 점은 공간이 좁아 도서실에서 책을 읽기가 다소 불편했고, 계속 늘어나는 장서를 수용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서가가 빽빽하게 차 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불광사 불사가 진행 중이어서 향후 3년 동안 도서실이 문을 닫아 많이 아쉽다. 아마도 근처 주민들에게도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일 것 같다. 불사가 끝나고 새롭게 개관할 때쯤엔 훨씬 넓고 안락한 도서실로 바뀌길 기대한다.

해군 군법당 통해사도서관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해군 군법당 통해사에 도서관이 생겼다. 2011년 1월에 당시 군법사였던 무연 스님이 군인들도 불서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데 뜻을 두고 1,700여 권의 장서로 도서관 작업을 시작해 3월 말에 개관했다. 해군 군법당이란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통해사가 위치한 곳이 신길동 주택가라 그 지역에 작은 도서관으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7월 현재 장서는 3천여 권이고 자원봉사자는 6명이다.

대부분의 장서는 기증이었지만, 앞으로 새 책을 구입할 계획도 갖고 있다. 장서는 ‘북코리아’라는 전산프로그램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책 분류는 KDC분류법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불교문학의 분류번호는 불광도서실, 길상도서관과 공유한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대출을 하고 있는데 개관 당시에는 조계종 신도증이 있는 사람에 한해 대출을 했었고 현재는 통해사 신도면 누구에게나 대출이 가능하다.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한 달 평균 대출 권수가 아직은 20여 권 정도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해군본부가 대전으로 이동해서, 현재는 통해사 신도 중 군불자가 10% 미만으로 이용하는 군인도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출 이용자들의 범위를 확대한다면 밀집한 주변 주택가에 있는 불자, 비불자들이 이 도서관을 이용할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이용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로 비교적 늦은 시각까지 도서관을 열어놓고 있는데 그 까닭은 직장인이나 젊은 학생들이 와서 공부하고 책을 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젊은 불자들에게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불서를 보다 가까이서 접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통해사도서관의 경우, 도서관 공간을 활용해서 다양한 문화강좌를 열고 있다. 발도로프인형 만들기, 한글 서예, 사경, 요가 등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문화강좌가 진행되고 있고, 강사는 자원봉사자들이 맡아 한다. 한 달 수강료가 주 1회 기준 1만 원으로 동네 복지관 수준이다. 노령화되어 가는 불자 인구에 젊은 불자를 확보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문화강좌가 생각보다 인기가 높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문화강좌가 열리다 보니 문화강좌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 도서관 서가로 향하게 되고 결국엔 부처님 법과 만날 기회가 생기게 된다.

길상사 길상도서관 사례분석

서울 성북동 길상사 내에 자리한 길상도서관은 사찰도서관으로 지정된 곳은 아니지만, 도서관의 조건을 비교적 잘 갖춘 도서관으로 꼽을 수 있다. 길상사 지장전 아래 위치한 길상도서관은 2005년 지장전 불사 때, 법정 스님이 도서관 공간을 만들라 당부해서 생긴 곳이다. 법정 스님은 자신에게 책이 쌓이면 길상사로 보내곤 했다. 그 책들이 쌓여 처음엔 극락전 뒤 작은 방에 마련된 도서실에 보관해두다가 지장전 불사가 마무리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오게 되었다. 2009년 8월에 도서전담팀이 꾸려져 6개월간의 작업 끝에 2010년 2월 말에 개관했다. 대출은 2010년 5월부터 시작했다.

① 전산화작업

2009년 8월에 도서관전담팀이 꾸려져서 그동안 서가에 정리되 않은 채 쌓여 있기만 하던 책들을 도서전문 관리프로그램 ‘책꽂이’를 도입해서 전산화했다. 전산화를 할 경우 초기 투자비용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서와 이용자의 체계적인 관리에 유용하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통계를 뽑아서 도서관의 비전을 세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가령 대출이 많이 된 책을 통계 내 보는 것으로 이용자들의 책에 대한 취향 파악이 가능하고 신간구입에 좋은 자료가 된다. 미납된 도서에 대한 관리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월별로 대출 권수를 통계 내 보면 대출되는 추이도 파악할 수 있다(다음 페이지의 [표] 길상도서관 대출 현황 참조).

[표] 길상도서관 대출 현황
년/월 대출권수 년/월 대출권수
2010.5 68 12 262
6 129 2011.1 255
7 205 2 284
8 212 3 284
9 285 4 285
10 234 5/18 현재(18일간) 210
11 262 대출권수 합계 2,975
( 2010년 5월~2011년 5월 18일까지의 대출도서 현황)

②분류

도서를 십진분류법(KDC)에 따라 분류했다. 불교 관련 도서 가운데 스님들의 저서인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은 십진분류법에서 특화시켜서 220.4 불교문학으로 분류하고, 다시 불교문학을 세분화해서 220.41 불교시, 220.42 불교희곡, 220.43 불교소설, 220.44 불교수필로 따로 분류해서 사용하고 있다. 불교문학 가운데 스님들의 저서가 공공도서관에는 문학 파트인 800번에 분류되어 있는데 불자들이 그 가운데서 스님들의 저서를 따로 보기란 너무 불편하다. 사찰도서관이라면 불교분류번호인 220번에 스님들의 저서를 배치해 접근을 쉽게 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이 분류기호는 잠실 불광사도서실, 통해사도서관과 공유하고 있다.

③확보된 공간

도서관 면적은 250여 평 정도로 책을 꽂은 서가와 정기간행물 코너, 경전을 사경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일하는 공간이 있다. 대출과 반납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10여 명 있어서 도서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2010년 개관할 당시 4천여 권이던 장서는 2011년 7월 현재 8천500여 권이 되었다.

④기증문화 활성화

도서 대부분이 기증이어서, 길상도서관에서는 기증도서에 붙이는 스티커를 자체 제작했다. 길상사는 경내에 참나무가 많아 도토리 모양으로 스티커를 만들고 그 안에 ‘나눔’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기증되는 도서에 기증스티커를 붙여 ‘기증 문화’를 띄우는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기증하는 사람들이 원할 경우, 도서관리프로그램에 기증자 이름를 기록하고, 도서관 외벽에 있는 게시판에 기증자 리스트를 달마다 만들어 게시한다.

⑤꾸준한 신간 구입

달마다 30~50만 원 가량을 신간구입비로 지출한다. 한 달은 불서, 한 달은 비불서를 구입한다. 새로 나온 책 가운데 좋은 책은 불서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구입한다는 게 이 도서관의 원칙이다. 기증도서가 장서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새로운 책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게 꾸준한 매력이 될 수 없다. 새 책은 외벽 게시판에 새 책 구입 리스트를 게시한다. 열람실 안에는 새 책 코너를 따로 두고 석 달 정도는 새 책을 그대로 두어서 이용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달마다 들어오는 새 책은 스티커를 색깔별로 붙여서 구분을 두고, 석 달이 지나면 붙였던 스티커를 제거하고 서가로 옮겨간다. 그리고 열람실 한쪽에 희망도서 신청카드를 비치해 두었다.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파악하여 신간구입에 참고한다. 가능하면 구입한다는 원칙이다. 이용자들은 새 책 코너에서 관심있는 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새 책이라고 해도 반드시 신간이 아니라 기존에 나온 책 가운데서도 양서일 경우 새로 구입하면 이용자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다. 책으로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 가운데 새 책은 꽤 괜찮은 당근인 셈이다.

⑥회원관리

도서관 대출회원은 서울,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고 타 종교인들에게도 도서관을 개방하고 있다. 회원등록은 신분증을 가져와서 신분확인이 되고 연락처, 이름 등 간단한 신원을 기재하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대출 기간 2주, 대출 권수 2권으로 사찰도서관으로 지정된 곳들 대부분이 이용자들의 자율에 맡기는 것과 달리, 길상도서관은 비교적 공공도서관의 시스템을 많이 따르고 있다.

도서 반납 3일 전에 자원봉사자들은 반납 안내문자를 발송하고 미납 3일 후와 1주일 후에 각각 문자와 전화로 미납 상황을 이용자에게 알려 미납 사례가 전체 대출의 1%를 밑돈다.

⑦길상도서관의 다양한 역할

절에 기도하러 오던 신도들이 도서관이 있는 걸 알게 되면서 들르게 된다. 처음 온 이용자들은 쉬운 불교상식이나 불교에 대한 교리에 관심이 있다. 이때 도서관은 이용자들에게 붓다의 법으로 가는 ‘길 안내자’역할을 한다. 또 길상사는 시민선방이 있어서 선방 회원들은 주로 참선 관련 도서를 많이 찾는 편이다. 이때 도서관은 참선의 깊이를 한층 더할 수 있게 ‘튜터’ 역할을 한다. 템플스테이가 한 달 평균 두 번꼴로 있다 보니까 템플스테이 막간을 이용해 도서관에 들러 책을 구경하러 오는 이용자도 있다. 이 경우에 도서관은 ‘불서에 관한 정보제공’ 역할을 한다 하겠다. 길상사 하면 등식처럼 돼버린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보러 일부러 찾는 이용자들도 꽤나 많다. 한때 스님의 책이 절판되면서는 거의 경쟁적으로 빌리기도 했다. 여하튼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법정 스님 저서와 함께 여러 스님들의 저서가 어깨를 맞대고 꽂혀 있다 보니까, 법정 스님의 저서를 읽은 이용자들은 이웃한 책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때 도서관의 역할을 새로운 책으로 관심을 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⑧길상도서관의 문제점

많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첫째, 길상도서관은 이용자들의 접근성이 많이 떨어진다. 도보로 접근할 수 있어야 이용이 쉬운데, 성북동 꼭대기까지 올라오기가 만만치 않다. 주변이 주택가라고는 하나 고급주택가에다 수가 작다. 지역주민에게 많은 혜택을 주기에 지리적으로 아쉽다.

둘째, 길상도서관은 책임자가 없다. 책임자가 없이 자원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지다 보니 도서관 일이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 밖에, 아직까지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책을 열람할 수 있는 기능, 도서관을 중심으로하는 문화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개관한 지 이제 일 년 남짓 되었으니 앞으로 그러한 활동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왕성하게 진행되었으면 한다.

다른 사례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2002년 9월에 문을 연 사설 작은 어린이도서관이다. 금천구에 있는 동화읽는어른모임과 지역에 뜻있는 분들이 마음을 내서 마련한 순수 시민이 세운 도서관이다. 지역에서 아이들 책을 읽는 어른들이 주축이 되어 도서관 개관을 준비할 때, 각자 형편에 따라 책으로, 돈으로 그렇게 뜻을 모아 장서를 마련했다. 출판사에 공문을 띄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해서 3천 권 정도의 장서가 모여 지역의 어린이도서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도서관은 반드시 책을 모아 꽂을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경우, 월세로 처음 시작을 했다. 여력이 안 되는 회원들의 경우 카드로 할부를 하면서까지 뜻을 모아 이루어냈다.

여전히 그곳은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들이 모여서 도서관 자원봉사도 하고 책 읽기 모임도 한다. 관장 한 명과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상근자가 한 명 있어서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아 하며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도서관 업무를 돕고 있다. 재정 마련을 위해 약간의 회비를 내고 회원이 된다는 게 공공도서관과 다를 뿐, 인근 지역의 아이들이 방과 후 찾아와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데서 도서관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올해 3월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자원봉사센터에서 하는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았는데 이 교육을 계기로 자원봉사를 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원봉사자로서 자부심을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자원봉사센터는 각 구별로 있어 원할 경우 신청을 하면 출장강의를 나오기도 한다. 얼마 전 봉사자들은 도서관사서협회로부터 사서교육을 받았다. 수서와 장서관리 및 분류에 대한 강의였는데, 전문사서가 없는 도서관의 경우 이런 교육을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

기쁜교회어린이도서관

경기도 평택에 있는 감리교 소속 기쁜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쁜교회어린이도서관은 2004년 11월에 개관했다. 현재 장서량은 1만 3천여 권이다. 오랫동안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했으며 어린이 책에 관해 전문지식이 있는 경험자가 도서관장으로 있고, 도서관의 전반적인 업무를 책임지고 맡아 하는 상근자가 한 명 있다. 이 상근자는 원래 교회 소속 교인이었고 도서업무는 전혀 몰랐지만, 도서관에 상근하면서 도서관리 업무를 익혔고, 현재는 문헌정보대학원을 다니며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어린이도서관답게 아기자기하고 다락방도 만들어 놓아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공간 배치에 신경을 썼다. 종교 관련된 책은 한편에 따로 코너를 두었고 대부분은 종교와 상관없이 그냥 아동도서다(다음 페이지 사진 참조).

이 도서관의 책 분류 방법은 어린이도서관들만의 특정 분류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조만간 KDC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장서는 도서관을 개관하고 3년 정도는 주로 기증에 의지했는데, 2007년부터 일 년에 천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새 책을 구입하고 있다고 한다.

이 도서관의 가장 좋은 점은 관장이 어린이 책에 대한 이해가 깊다 보니, 지역에 있는 학부모들을 어린이 책 공부라는 매개로 교회 안 도서관으로 끌어들여, 함께 활동을 하는 것이다. 부모가 공부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범위가 확대되어 가면서 교인들이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도서관의 위치도 일 층에 있어 교인들이 들러서 책을 보기에 괜찮은 구조다.

교회 안에 어린이집이 함께 있어, 수업 과정 중 하나로 도서관을 찾는 시간이 있다. 도서관에 온 아이들에게 정해진 봉사자가 돌아가며 어린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상설 진행되고 있다. 15명의 어린이가 와서 한 시간 동안 책 읽어주는 것을 경청하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책을 읽어주는 봉사는 자연스레 도서관에서 함께 동화공부를 하는 어른들의 몫이 되었다. 조만간 이미 확보된 부지에 어린이도서관뿐만 아니라 공공도서관에 버금가는 정식 도서관으로 교회 안에 건물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감리교회 어린이도서관협의회 ‘동네북’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은 전국에 상당수가 있다. 그 밑거름에는 감리교회어린이도서관협의회 ‘동네북’이 있다. 동네북은 교회도서관 운영자들끼리의 단단한 구심점이 된다. 십수 년 전에 안성용 목사(서울, 사랑교회)가 제안하면서 만들어진 협의체가 ‘동네북’인데, 대형 교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들이 서로 기대고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 도서관운동을 벌인다. 동네북 소속 교회는 40~50개 정도로 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작은 교회들이다.

동네북 회원들이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에 한 번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돈이 들어 형편이 어려운 작은 교회에서는 그도 부담이 되어 지금은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만난다고 한다. 대신 카페가 있어서 온라인상으로 서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소식을 전하며 서로의 의지처가 된다. 다달이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연말에는 가장 형편이 어려운 교회에 신간을 선물한다.

각각의 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자잘한 행사들이 동네북을 통해 공유되면서 감리교회 소속 어린이도서관은 훨씬 알차게 유지 발전되어 가고 있다. 동네북 소속 한 회원의 교회는 교회 창립 60주년 기념으로 도서관을 만들었다. 장서 1,500여 권, 30여 평 공간으로 시작했고, 그 교회 목사는 UMC목회를 하다 와서 아이들에게 영어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계획 중에 있다.

동네북의 총무를 맡고 있는 이진용 목사가 사목하고 있는 합천 초계교회에는 예배당이 없다. 도서관이 예배당이다. 교회라는 공간이 자칫 마을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편하게 지역 주민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고, 결국은 도서관이었다. 시골 청소년들에게 근사한 직업을 가진 미래를 꿈꾸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동네에 도서관이 생기면서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쉼터이며 꿈을 키우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은 교회 건물의 일부를 평일엔 카페로도 운영하는데 이진용 목사가 바리스타다.

도서관 운영에 들어가는 재정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커피를 팔아 생기는 이익금, 평상시에 목사가 직접 고물을 주워 팔아 생긴 약간의 수익, 그리고 효소 등 농촌에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팔아서 도서관 운영비를 마련한다. 시골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음악회 등 문화행사도 열어서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많이 열었다. 대형화되어 가는 도시 목회가 싫어서 농촌을 택했고 지역공동체로 거듭나는 데 일조할 방법들을 꾸준히 찾고 있다. 특히 청소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많이 생각하고 다문화가정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도 현재 진행 중이다.

사찰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들

‘사찰도서관’을 통한 불서 읽기 캠페인이 각 사찰에 불서 읽는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책 읽는 불자로 이끄는 징검다리 역할이 사찰도서관이라는 설정도 좋다. 그러나 이런 사찰도서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 또한 적지 않다. 이런저런 문제들은 사찰도서관이 제대로 자리 잡아가기 위해 풀어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①불서 목록이 절실하다

새롭게 도서관을 만들려고 할 때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불서 목록이다. 도서관이라면 당연히 책이 서가에 채워진 곳인데 대체 어떤 책으로 서가를 채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일단 처음 도서관을 만들 때 몇 권의 장서로 시작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도서관을 만드는 곳의 사정에 따라 다른데 보통 기증받는 도서가 있다면 기존의 도서가 몇 권이냐에 따라 추가되는 도서의 양은 달라질 수 있다. 혹은 기증 없이 새롭게 도서관을 꾸릴 경우 적어도 3천 권 정도의 목록이 있어야 한다. 어찌 됐든 사찰도서관이라면 적어도 이런 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불서 목록은 필요하다. 도서관용 불서 목록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②장서 관리 전산화

도서관 장서를 전산프로그램으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장서에 대한 관리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규모가 커졌을 때, 효율적 관리가 불가능하다. 또 이용자 수, 대출 권수 등에 대한 통계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도서관의 비전을 세울 때 근거가 될 자료를 알 길이 없어 도서관 행정이 주먹구구가 될 공산이 크다.

③도서관에서 생기는 복본(複本)의 처리 문제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새 책이 들어오면 기존 장서 가운데 복본인 책을 보낼 곳(사찰, 어린이집 등)을 찾게 된다. 개별 사찰의 인연이 있는 곳으로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책이 필요한 곳의 명단을 사찰도서관끼리 공유해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한다면 좋을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전체 사찰도서관이 복본 보내기 행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④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도서관의 역할 기대

현재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조계사도서관이 도서관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일이 시급하다. 도서관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서 제대로 된 DB를 갖춘다면 새롭게 생겨나는 사찰도서관은 조계사를 참고할 수 있어 사찰도서관 건립이 훨씬 쉬울 것이다. 사찰도서관 세트업(Set-up)에 관한 ABC를 만들어서 조계종 교단에 등록된 사찰은 적어도 조계사도서관이 구현했던 방식만 따라도 도서관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⑤사서(혹은 전문지식이 있는 상주직원)의 필요성

사서가 있어야 도서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수서, 장서, 정기간행물에 대한 관리, 기타 자료 활용 등의 기본적인 도서관 업무 외에도 이용자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한 도서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개선되려면 사서가 필요하다. 덧붙여서 이용자가 도움을 청할 경우 적절한 불서를 추천할 수 있는 정도로 책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어서 책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⑥문화활동

확보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이용자들의 도서관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도서관에서 문화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불서 읽기다. 현재 ‘붓다와 함께하는 책 여행’이라는 불서 읽기 모임을 비롯해서 여러 불서 읽기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데, 각 사찰에서도 얼마든지 도서관을 중심으로 불서 읽기 모임이 가능하다. 또 젊은 층 불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을 펼쳐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통해사도서관의 경우 불자의 젊은 층 확산을 위해 ‘발도로프 인형 만들기’ ‘요가’ 등의 강좌를 마련하여 청장년층 불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화강좌에 불자가 아닌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서 일반인들이 불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⑦사찰도서관 사이의 분류번호 공유

동국대학교 불교도서관과 링크해서 공유했으면 좋았을 텐데, 동대 도서관의 경우 DDC(듀이의 십진분류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불광도서실이나 길상도서관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공도서관이 KDC(한국십진분류법)를 사용하고 있어 동대 불교도서관과 공유가 불가하다. 그러므로 사찰도서관들만이라도 분류번호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 앞으로 자료를 링크하는 부분에서도 바람직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불서 관련 분류번호 가운데 오류가 많다. 그래서 도서관을 만들면서 분류할 때 어려운 점이 많다. 사찰도서관 담당자들끼리 불서의 분류번호를 공유하고 통일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다.

⑧자원봉사자교육

각 지역 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자원봉사 교육뿐만 아니라 총무원 차원에서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보살행을 한다는 점에서 자원봉사의 의미를 교육을 통해 알려줌으로써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껴야 그만큼 가치 있는 봉사를 할 수 있다.

⑨사찰도서관끼리의 연대

사찰도서관끼리의 연대가 필요하다. 서로 좋은 정보를 교류하고 신간에 대한 소식도 공유하며 도서관 운영에 관한 어려움 등 여러 일들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연대감은 사찰도서관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데 큰 힘이 된다. 온라인상으로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⑩사찰 어린이도서관 제안

미래 불교의 발전을 위해 어린이 포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포교의 거점이 어린이도서관이 된다면 어떨까?

나오며

최초의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의 탄생 배경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당시 과학과 예술에 관한 수많은 저작을 모아둔 개인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죽은 뒤, 그 방대한 장서를 고민하던 제자가 왕에게 권유해서 도서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다. 결국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그 시작점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스승인 플라톤, 또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결국 도서관이란 철학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란 무엇인가?

“‘필로소피(Philosopy)’가 담고 있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란 뜻과 산스크리트어의 ‘앎’과 ‘지혜’ 또는 ‘깨달음’ 등을 뜻하는 ‘비드야(vidyā)’는 여러모로 매우 유사하다. ‘지혜’의 반대 개념인 ‘아비드야(avidyā)’ 즉 무명(無明), 이 ‘알지 못함’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십이연기의 출발점이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무명으로 인해 우리는 고통의 바다를 떠돈다. 그러므로 앎(지혜)을 통해 우리는 고통의 본질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신상환 《용수의 사유》 도서출판b) 지혜란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 결국 지혜를 통해 고통의 본질을 깨닫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서관인 것이다.

도서관을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고스란히 지켜주는 견고한 성곽에 비유해 본다면, 사찰도서관은 붓다의 가르침이 담긴 법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커다란 그릇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삶에 의문이 생길 때, 힘들어 위로받고 싶을 때, 어둠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붓다의 가르침을 만나게 되는 그곳이 도서관이면 좋겠다. 누구든 마음자리를 살피고 싶을 때 물어볼 스승이 있는 곳, 그곳이 도서관이어도 좋겠다. 이미 지나가 버린 크나큰 스승의 흔적이 그리울 때 찾는 그곳이 도서관이라면 좋겠다. ■

 

최원형 / 사찰도서관 컨설턴트.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일했으며, 시민단체에서 도서관위원회 활동을 했다. 2009년 8월 길상도서관의 전산화작업을 처음 제안했고 6개월 동안 작업 끝에 2010년 2월 말 개관시켰다. 2009년 8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길상도서관 자원봉사팀장을 지냈다. 해군 군법당 통해사의 도서관 오픈작업에도 참여해 컨설팅했다.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