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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불교학 (16)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 / 이용현
이용현 원광대 교수
[32호] 2007년 09월 10일 (월) 이용현 yhlee1100@yahoo.co.kr
1. 머리말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가 사물의 본성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많은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으로 불교 딴뜨라에서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지식이 공성을 아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그러나 힌두 딴뜨라, 특히 그 핵심을 이루는 쉬바나 샥띠를 숭배하는 샤이바 딴뜨라들에서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지식은 ‘모든 것이 쉬바이다’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즉 샤이바 딴뜨라들에서는 사물의 실체성이 긍정되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샤이바 딴뜨라들에 있어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상호 관련성이 강조되어진다. 또한 독립적인 나(aham) 혹은 나의 것(mama)이라는 관념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두 관념은 가장 원숙한 불교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이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 불이원론을 취하는 한, 불교 딴뜨라들의 수행자들에 의해서도 받아들여 질 수 있다. 이처럼 사물의 본성이나 궁극적 실재에 대한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의 차이점이나 공통점은 양자와 관련된 어떠한 논쟁에 있어서도 고려되어야 한다.

한편 이제까지 많은 학자들은 어째서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가 그처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가를 추구해 왔다. 예컨대 데이비드 사이포트 루에그(David Seyfort Ruegg)나 스테판 바이어(Stephan Beyer)는 양자에는 공통적인 ‘종교적 기층(a religious substratum)’ 혹은 ‘동일한 종교적 숭배의 축적(the same cultic stock)’이 놓여 있다고 추정한다. 또한 베노이토쉬 바타차랴(Benoytosh Bhattacharyya), 주세페 투치(Gueseppe Tucci), 라니에로 뇰리(Raniero Gnoli) 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종교적 기층’이 실제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추정한다. 이들에 따르면, 이 ‘종교적 기층’은 여신들의 숭배 등 인도의 농촌에 깊이 침투된 소위 비아리안 혹은 드라비다 문화의 요소들이다.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에 있어서 ‘종교적 기층’ 가설은 최근 옥스퍼드 대학의 알렉시스 샌더슨(Alexis Sanderson)에 의해 신랄하게 비판되었다. 샌더슨의 주장은 다음처럼 두 가지로 압축되어질 수 있다.

첫째, 우리가 항상 딴뜨라를 지칭할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불교나 쉬바 파, 혹은 비슈누 파의 어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설명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서 ‘종교적 기층’ 가설에 의존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오로지 ‘텍스트 비판(textual criticism)’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딴뜨라들 사이의 상호관련을 확정지을 수 있다. 그 후 샌더슨의 주장은 딴뜨라 연구에 있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루에그, 로날드 데이비드슨(Ronald Davidson), 프란체스코 스페라(Francesco Sferra) 등의 비판이 뒤를 이었다. 본 에세이는 이 논쟁의 핵심인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2. ‘종교적 기층’ 가설과 요기니 딴뜨라에 대한 도상학적 고찰

‘종교적 기층(substrat religieux)’이라는 표현은 원래 루에그에 의해 그의 불어로 된 논문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루에그는 딴뜨라 불교 특히 가장 후대에 성립한 요기니 딴뜨라들이 비불교적인 근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근원이 불교 딴뜨라나 힌두 딴뜨라보다 더 깊은 층에 놓여 있다고 추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근원을 인도의 ‘종교적 기층’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들 사이의 많은 공통점들은 가능한 한 한쪽이 다른 쪽에 의존했다기보다는 공통적인 근원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유래한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또한 바이어는 요기니 딴뜨라들의 신성들에 대해 다음처럼 유사한 가설을 제창하고 있다.

비록 이들 일반적이며 상위에 있는 보호의 신성들 사이에 도상학적인 변용들이 있지만, 그들은 즉 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유사성들을 공유한다. 그들 모두는 쉬바적인 모습을 산출한 동일한 ‘종교적 숭배의 축적’으로부터 끌어낸 것이다.

한편 요기니 딴뜨라에 대한 도상학적 고찰을 하기 전에, 이 장르에 속한 딴뜨라들이 과연 어떠한 문헌들인가를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딴뜨라 불교에 있어서 성불(成佛)을 위해 확실한 방편을 제시하고, 그 후의 모든 발전에 토대가 된 딴뜨라는 대략 서기 7세기 후반 경에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금강정경》(金剛頂經, 싼쓰끄리뜨 명칭은 Sarvatath?gatatattvasa?graha)이었다. 그러나 성적 수행이 성불을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혁신적인 사상은 ‘비밀집회’를 의미하는《구햐싸마자 딴뜨라(Guhyasam?jatantra)》에서 처음으로 설파되었다.

딴뜨라 불교의 역사에서 극히 중요한 이 딴뜨라는 대략 8세기 후반 경에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데,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성적 수행 이외에도 순수함과 불순함이라는 세간의 이분법을 초월하기 위해 소위 다섯 감로로 불리는 불순한 것들의 섭취가 장려되었다.《구햐싸마자 딴뜨라》는 약간 후대에 성립한 요기니 딴뜨라들과 구별하기 위해 부(父) 딴뜨라(pit?tantra), 방편 딴뜨라(up?yatantra), 혹은 요고따라 딴뜨라(yogottaratantra)라고 불렸고, 이 장르에 속한 딴뜨라들의 근본 성전이 되었다. 또한 이 딴뜨라는 요가 딴뜨라라는 장르의 근본 성전인《금강정경》과 구별하기 위해 마하요가 딴뜨라(mah?yogatantra)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한편으로《구햐싸마자 딴뜨라》는 만다라의 관점에서 요기니 딴뜨라와 대비를 이루기 위해《금강정경》과 함께 요가 딴뜨라로도 분류되었다.

한편 8세기 후반이나 9세기 초반부터《구햐싸마자 딴뜨라》와 계통을 달리하는 《헤바즈라 딴뜨라(Hevajratantra)》나《라구삼바라 딴뜨라(Laghusa?varatantra)》 등의 요기니 딴뜨라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헤바즈라 딴뜨라》는《라구삼바라 딴뜨라》와 함께 가장 유명한 요기니 딴뜨라로, 헤바즈라계 딴뜨라들의 근본 성전이 되었다.《라구삼바라 딴뜨라》는《헤바즈라 딴뜨라》에 비해 약간 이른 시기에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데, 방대한 양의 삼바라계 딴뜨라들의 근본 성전이 되었다.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의 수행자들은 요기니 딴뜨라들을《구햐싸마자 딴뜨라》로 대표되는 요고따라 딴뜨라들과 구별하기 위해, 이들을 ‘능가할 수 없는 요가 딴뜨라’라는 의미의 요가니르우따라 딴뜨라(yoganiruttaratantra)라고 불렀다. 또한 요기니 딴뜨라들을 부 딴뜨라 혹은 방편 딴뜨라와 대조적인 의미에서 모(母) 딴뜨라(m?t?tantra) 혹은 반야 딴뜨라(praj??tantra)라고도 불렀다. 물론 요기니 딴뜨라들의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요가 딴뜨라와 대응하는 요기니 딴뜨라였다.

결국 인도와 티베트의 딴뜨라 불교에서는 요고따라 딴뜨라들이 요기니 딴뜨라들과 함께 ‘최고의 딴뜨라’를 뜻하는 아누따라 딴뜨라(anuttaratantra)의 장르로 분류됐다.

한편 요가 딴뜨라와 요기니 딴뜨라라는 이분법을 초월한 독특한 딴뜨라로 인도불교의 최후를 장식한《칼라차크라 딴뜨라(K?lacakratantra)》가 있다. 티베트의 위대한 학승 부퇸 린첸둡은 이 딴뜨라를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들 중에서도 최고로 평가하며, 요가 딴뜨라와 요기니 딴뜨라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불이(不二)딴뜨라(advayatantra)로 분류했다. 그러나 쫑카빠를 위시한 티베트의 대부분의 학승들은 그 수행 방법이 요기니 딴뜨라에 가깝다는 점에서《칼라차크라 딴뜨라》를 요기니 딴뜨라로 분류했다. 또한 이 딴뜨라의 지존인 칼라차크라는 요기니 딴뜨라들의 지존들과 보다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요기니 딴뜨라에서는 요고따라 딴뜨라처럼 적어도 표면적으로 성적 수행이나 다섯 감로 등의 섭취가 장려된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다음과 같이 커다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요기니 딴뜨라의 만다라는 여성 중심으로 되어 있다. 즉, 만다라에서 일반적으로 요기니들이 지존을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요소가 바로 이 장르의 딴뜨라들이 요기니 딴뜨라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또한 지존이 여신인 경우들도 존재한다. 그 반대로 요고따라 딴뜨라 혹은 더 일반적으로 요가 딴뜨라의 만다라는 남성 중심으로 되어 있다.

둘째, 요기니 딴뜨라에서는 요고따라 딴뜨라와 달리 소위 불교적인 꾼달리니 요가라고 할 수 있는 짠달리 요가(ca???l?yoga, 티베트어로는 뚬모 gtum mo) 등의 생리 요가에 대한 수행이 강조된다.

셋째, 요기니 딴뜨라의 신성들은 요고따라 딴뜨라의 신성들과 달리 인간의 뼈로 된 장식품들을 달고 있거나 갖고 있는 등 샤이바 딴뜨라의 극단적 전통인 까빨리까(K?p?lika)적 요소가 농후하다. 이 세 요소들, 특히 그 중에서도 첫 번째와 세 번째 요소가 바로 루에그와 바이어로 하여금 ‘종교적 기층’ 가설을 제창하게 하고, 거꾸로 샌더슨으로 하여금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이 일군의 샤이바 딴뜨라들에 있다고 주장하게 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샌더슨은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아직 출판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싼쓰끄리뜨 사본들에 대해 치밀한 텍스트 비판을 수행해 왔다.

한편 불교 딴뜨라의 지존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아바야까라굽따(Abhay?karagupta, 서기 11세기 후반-12세기 초반)의 명저《니쉬빠나요가발리(Ni?pannayog?val?)》가 가장 유용하다. 이 만다라 관상집은 전부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그 중에서 총 16장(즉 3장-14장, 제 16장, 24장-26장)이 요기니 딴뜨라들에 속해 있고, 제 7장과 제 16장을 제외하고는 까빨리까적 요소들이 농후하다.

한편 요기니 딴뜨라에 대한 도상학적 고찰은 그 지존과 배우자의 도상학적 고찰을 통해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가장 유명한 요기니 딴뜨라의 하나인『헤바즈라 딴뜨라』와 관련된 제 8장의 경우, 지존 헤바즈라(Hevajra)와 그의 비(妃) 나이라뜨먀(Nair?tmy?) 여신은 다음과 같이 까빨리까적 요소들이 농후하다.

궁전의 가운데에 있는 이중 연꽃의 과피 위로 브라흐만, 비슈누, 쉬바, 인드라의 형태를 한 4인 의 마라가 똑바로 누워 있다. (지존 헤바즈라는) 벌거벗은 채, 그들의 가슴에 놓여 있는 태양 원들을 네 발로 밟고 서 있다. 그는 연극의 9개 감정들을 모두 갖고 있으며, 두 발로 ‘반쯤 교차된 다리로 선 자세(ardhaparya?ka)’ 를 취하며, 다른 두 발로는 '오른쪽 다리를 쭉 펴고, 왼쪽 다리를 구부려서 선 자세(?l??ha)'로 춤추고 있다.

그의 머리털은 이중 금강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불타며, 위로 치솟아 있 고, 붉은 밤색을 띄고 있다. 그의 이마는 완전히 말라붙은 다섯 개의 사람 머리로 장식되어지고, 다섯 부처님으로 된 왕관을 쓰고 있고, 그(의 몸)는 검은 색이다. 그는 16개의 팔들과 여덟 개의 얼굴들을 갖고 있다. 각각의 얼굴에는 붉고 둥근 세 개의 눈들이 있고, 가운데 얼굴은 검은색이며, (세 개의) 오른쪽 얼굴들은 각기 흰색, 검은색, 검은색이며, (세 개의) 왼쪽 얼굴들은 각기 붉은색, 검은색, 검은 색이다. 위로 향한 얼굴은 회색이며, 추하게 일그러져 있다.

모든 얼굴들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며, 입술 밖으로 어금니가 삐쭉 나와 무섭게 보인다. 여덟 개의 오른손들로 들고 있는 (벌레들에) 갉아 먹힌 (여덟 개의) 해골바가지들 속에는, 각각 코끼리, 말, 낙타, 소, 물소, 사람, 샤라바(즉 전설 속의 동물), 고양이가 들어 있다. 여덟 개의 왼손들로 들고 있는 (여덟 개의) 해골바가지들 속에는, 쁘리뜨 위(P?thv?), 바루나(Varu?a), 바유(V?yu), 떼자스(Tejas), 짠뜨라(Candra), 아디땨(?ditya), 야마 (Yama), 다나다(Dhanada) 신들이 들어 있다. 해골로 된 왕관,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로 장식하 고, (온 몸에 재를 뿌리고), (피에) 젖은 50개의 사람 머리들로 된 화환을 두르고 있고, 위팔 장식과 발목 장식을 두르고 있다.

그의 비인 나이라뜨먀는 벌거벗고 있으며, (몸은) 검은 색이다. 그녀는 작두와 해골을 들고 있는 두 손으로 지존을 포옹하며, ‘왼쪽 다리를 쭉 펴고, 오른쪽 다리를 구부려서 선 자세(praty?l??ha)’ 로 춤 추고 있다. 다섯 개의 해골 장식들(즉 왕관, 귀걸이, 목걸이, 팔찌, 허리띠)로 장식하고 있으며, 붉고 둥근 세 개의 눈을 갖고 있으며, 입술 밖으로 어금니가 삐쭉 나와 얼굴은 무섭게 보인다. 그녀의 머 리는 불타며, 위로 치솟아 있고, 붉은 밤색이다. 이마를 다섯 개의 사람 머리로 장식하고 있으며, 목 에 말라붙은 사람 머리들로 된 (화환을) 걸고 있고, 발목 장식 등으로 장식하고 있다.

불교의 요기니 딴뜨라들이 얼마나 까빨리까적 요소들이 농후한가는『헤바즈라 딴뜨라』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라구삼바라 딴뜨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샌더슨은 그의 유명한 논문에서 요기니 딴뜨라의 지존과 그의 배우자가 얼마나 까빨리까적 요소가 농후한가를 보이기 위해《니쉬빠나요가발리》의 제 12장의 앞부분을 영역했다. 다음은 지존 차크라삼바라(Cakrasa?vara)와 그의 비 바즈라바라히(Vajrav?r?h?)의 모습이다.

삼바라 만다라에 있어서 금강 초롱의 안에 수메루 산이 있다. 그 위로 이중 연꽃의 과피에 놓인 이중 금강의 위로 제단이 있다. 그 위에 놓인 궁전의 가운데에서, 지존 (차크라삼바라)은 이중 연 꽃의 수술 위에 있는 태양 원에 놓여 있는 바이라와(Bhairava)와 칼라라뜨리(K?lar?tr?)를 양발로 ‘오른쪽 다리를 쭉 펴고, 왼쪽 다리를 구부려서 선 자세’를 취하며 밟고 있다. 그(의 몸)는 검은 색이 며, 검은색, 녹색, 붉은색, 노란색으로 된 네 개의 얼굴들은 각기 동쪽, 북쪽 등을 바라보고 있다.

각 각의 얼굴에는 세 개의 눈들이 있고, 아래는 호랑이 가죽을 걸치고 있고, 12개의 팔들을 갖고 있다. 금강과 금강 종을 쥔 양손으로 바즈라바라히를 포옹하고 있으며, 다른 양손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흰색의 코끼리 가죽을 등에 걸치고 있으며, 다른 (네 개의) 오른손들로 다마루 북, 도끼, 작두, 삼지 창을 들고 있고, 다른 (네 개의) 왼손들로 금강으로 장식된 카트왕가 지팡이, 피로 가득 찬 해골바가 지, 금강 올가미, 브라흐만의 머리를 들고 있다.

그는 목에 (피에) 젖은 50개의 사람 머리들로 된 화 환을 걸고 있고, 여섯 개의 무드라(즉 까빨리까 요기의 다섯 개의 해골 장식들과 화장터의 재)로 장 식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힘줄로 된 (브라만의) 성스러운 끈을 걸고 있으며, 이마 위에는 다섯 개의 해골들로 된 화환이 놓여 있다. 그의 머리는 보석, 왼쪽으로 구부러진 초승달, 이중 금강으로 장식되 어 있으며, 검은색이며, 흐트러진 머리는 틀어 올려져 있다. 그의 얼굴은 추하게 일그러져 있고, 벌 린 입으로 어금니가 삐쭉 나와 있다. 그는 연극의 9개 감정들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바즈라바라히(의 몸)는 붉은 색으로, 세 개의 눈들이 있는 한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그녀 는 부분적으로 대머리로, 남아 있는 머리털은 흐트러져 있으며, 벌거벗고 있다. 엉덩이를 해골 조각 들로 살짝 가리고 있고, 포옹하고 있는 손으로 들고 있는 해골바가지로부터 떨어지는 월경의 피로 지존을 마시게 하고 있다. (또한) 금강을 쥔 손의 위로 쭉 뻗은 두 번째 손가락으로 악들을 위협하 고 있다. 핏기가 완전히 가시고 말라붙은 인간의 머리들로 된 화환을 두르고 있으며, 태양의 광휘로 된 후광을 갖고 있다. 그녀는 다섯 개의 해골 장식들을 하고 있으며, 살짝 웃고 있다. 그녀는 월경하 며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만다라에서는 비록 지존 차크라삼바라가 까빨리까 전통의 지존인 바이라바 신을 밟고 서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헤바즈라 이상으로 까빨리까적 요소들이 농후하다. 차크라삼바라와 바즈라바라히는 24개의 ‘권능의 장소(p??ha)’를 상징하는 24인의 요기니들(혹은 다끼니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녀들은 또한 그녀들에게 종속적인 24인의 다까(??ka)들과 포옹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 또한 샤이바 딴뜨라들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3.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샌더슨의 이론

지금 딴뜨라 연구의 세계 일인자로 일컬어지는 샌더슨이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이 일군의 샤이바 딴뜨라들 속에 있다고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에 독일의 함부르크 대학에서 있었던 일련의 세미나들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정식으로 발표된 것은 1988년에 출판된 논문 <샤이비즘과 딴뜨라 전통들(?aivism and the Tantric Traditions)>의 단편적인 주장이 최초였다. 그러나 샌더슨은 1994년에 발표한 논문 <금강승: 기원과 기능(Vajray?na: Origin and Function)>을 통해 딴뜨라의 연구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논문은 요기니 딴뜨라들이 그 기원에 있어서 일군의 샤이바 딴뜨라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샌더슨의 주장을 아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원래 샤이바 딴뜨라들과 카쉬미르 샤이비즘(Kashmir ?aivism)의 전문가인 샌더슨은 2001년까지 이 주제에 대해 거의 발표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2001년에 발표한 야심적인 논문 <샤이비즘, 빵차라뜨라, 그리고 불교의 요기니 딴뜨라의 연구에 있어서 텍스트 비판을 통한 역사(History through Textual Criticism in the Study of ?aivism, the Pa?car?tra and the Buddhist Yogin?tantra)>에서 약간의 지면을 이 주제에 할애했다. 샌더슨은 삼바라계의 딴뜨라들이 표절에 가까울 만큼 일군의 샤이바 딴뜨라들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그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에 그는 2006년 9월에 일본의 고야산 대학에서 있었던 ‘비밀 불교에 대한 국제 학술대회(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Esoteric Buddhism)’에서 문헌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통과의례(abhi?eka)에 있어서 《라구삼바라딴뜨라》가 샤이바 딴뜨라의 하나인《삐쭈마따 브라흐마야말라 딴뜨라(Picumata-Brahmay?malatantra)》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샌더슨이 오래 전부터 공언해온 문헌학적인 증거들을 제시하는 모노그라프(monograph)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샌더슨의 주장에 따르면, 요기니 딴뜨라들, 특히《라구삼바라딴뜨라》를 위시한 삼바라계의 딴뜨라들이 표절(?)한 일련의 샤이바 딴뜨라들은 정확하게는 비댜삐타(Vidy?p??ha)에 속한 바이라바 딴뜨라(Bhairavatantra)들과 샥띠 딴뜨라(?aktitantra)들이다. 이들 샤이바 딴뜨라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적으로 까빨리까 전통의 강한 영향 하에 놓여 있고, 그 근저에는 더 오래된 전통인 요기니 숭배가 있다는 점이다.

샌더슨은 주로 네팔에 보존된 아직 출판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싼쓰끄리뜨 사본들을 해독하며, 이 기괴하며 심오한 전통들을 연구했다. 지금 우리가 약간이나마 이들 전통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공로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위 까빨리까 요기니 숭배가 어떠한 전통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다음은 이 전통에 대해 샌더슨의 1988년 논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샤이바 딴뜨라에 속한 까빨리까 전통은 인간의 뼈들로 된 장식품들과 화장터(?ma??na)로 상징되며, 비댜삐타에 속한 바이라바 딴뜨라들의 배경이 되고 있다. 원래 까빨리까(k?p?lika)라는 싼쓰끄리뜨 단어는 해골을 뜻하는 까빨라(kap?la)에서 파생된 말로, 까빨리까 요기들이 인간의 뼈로 된 여러 가지 장식품들을 달고 있던 데서 유래한다. 예컨대 전형적인 까빨리까 요기는 그의 흐트러진 머리를 인간의 뼈로 된 핀을 꽂아 틀어 올리고,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데 해골바가지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시체의 머리털을 꼬아서 브라만 계급의 상징인 성스러운 끈을 달고, ‘여섯 개의 표식(?a?mudr?)’으로 불리는 인간의 뼈로 된 왕관(cakr?), 목걸이(ku??ala), 귀걸이(ka??h?), 팔찌(rucaka), 허리띠(mekhal?)를 몸에 장식하며, 화장터의 재(bhasman)를 온 몸에 뿌렸다. 해골이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카뜨왕가(kha?v??ga)로 불리는 긴 막대기나 양쪽으로 두드릴 수 있는 다마루(?amaru) 북도 까빨리까 요기의 중요한 징표들이었다. 그는 또한 두띠(d?t?, 여성 전령)라고 불리는 요기니와 함께 그들의 성적 분비물을 얻기 위해 성행위를 하곤 했다. 때때로 이러한 성적 분비물은 ‘짜루(caru)’라고 불리며, 자신의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최고의 공양물이었다.

이처럼 전형적인 까빨리까 요기는 화장터에서 살며, 그의 소름끼치는 신들을 모방하며, 피, 고기, 술, 짜루 등으로 그들을 공양하곤 했다. 그리고 짜루를 얻기 위해 의례적인 성행위를 할 때, 보통 상호간의 카스트의 구별은 무시되곤 했다. 이러한 것들은 브라만 계급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그들의 순수함을 더럽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까빨리까 요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브라만의 순수함은 더럽혀진다고 믿어졌다. 비록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에게는 술과 고기가 전혀 금기시되지 않았지만, 브라만에게는 부정(不淨)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통 브라만은 오직 채식만을 그의 신에게 공양하고, 성행위는 그의 숭배(p?j?)에서 완전히 금기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형적인 까빨리까 요기는 채식 대신에 고기를, 우유 대신에 술을 공양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오로지 사회적인 터부를 깨는 것에 의해서만, 그가 추구하는 초능력(siddhi)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비댜삐타에 속한 샤이바 딴뜨라들의 이해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 근저에 놓여 있는 후세에 까울라(kaula) 전통이라고 불리게 된 요기니 숭배이다. 요기니 숭배는 원래 까빨리까 전통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 이 둘이 결합하여 딴뜨라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한 까빨리까 요기니 숭배를 성립시켰다.

원래 요기니는 권능의 장소(p??ha)로서의 화장터에 출몰하는 여신으로, 인육을 먹는다는 다끼니(??kin?)는 그 동의어이다. 까빨리까 요기나 까울라 요기의 주된 목적은 이들 요기니들을 자신의 앞에 모이게 하고, 그를 그들의 무리에 받아들이게 하여 초능력을 공유하려고 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 여신들로서의 요기니들은 인간 요기니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이들은 대개 권능의 장소 근처에서 사는 8세, 12세, 혹은 16세의 소녀들이거나 다끼니들로 불린 27세 이상의 불가촉민 여성들이었다.

보통 64인으로 알려진 요기니들은 짜문다(C?mu???) 등 8인의 모(母) 여신들에 속한 씨족(kula)들 중 어느 것인가에 속해 있었다. 까울라 딴뜨리즘의 입문자는 통과의례를 가질 때, 신성의 힘이 강림하여 망아의 상태에서 꽃을 이들 모(母) 여신들이 안치된 만다라에 던진다. 꽃이 떨어진 장소에 모셔진 여신이 그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데, 그녀의 씨족에 속한 요기니들도 자동적으로 그와 강한 유대를 갖게 된다. 따라서 통과의례를 마친 입문자는 자신의 모(母) 여신에게 성스러운 날, 그의 씨족에 속한 요기니를 찾아 나선다. 초능력과 초자연적인 지식을 얻는 것을 열망하며, 그는 그녀를 숭배한다.

까울라 딴뜨리즘은 보통 그 전승의 방향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눠진다.

첫 번째의 동쪽 전승은 여신들에게 둘러싸인 꿀레쉬바라(Kule?vara)와 꿀레쉬바리(Kule?var?)를 쉬바와 샥띠로 숭배한다. 후대에 카쉬미르 샤이비즘의 아비나바굽따(Abhinavagupta, 서기 1000년 경)로 대표되는 뜨리까(Trika) 딴뜨리즘은 이 동쪽 전승으로부터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의 북쪽 전승은 무서운 여신 구햐깔리(Guhyak?l?)를 숭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역시 아비나바굽따로 대표되는 끄라마(Krama) 딴뜨리즘은 이 전승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세 번째의 서쪽 전승은 곱사등이 여신 꾸브지까(Kubjik?)를 숭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후대의 힌두 딴뜨라들에서 보이는 6개의 짜끄라(cakra) 시스템은 이 전승에서 최초로 체계화되었다.

네 번째의 북쪽 전승은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신 뜨리뿌라순다리(Tripurasundar?)를 숭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이 전승은 후대 남인도의 슈리 비드야(?r? Vidy?) 전통의 기초가 되었다.

한편 샌더슨이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불교 딴뜨라의 문헌은 A아바야까라굽따의 대표작인《바즈라발리(Vajr?val?)》,《니쉬빠나요가발리》의 제 12장에서 기술된 삼바라만다라, 그리고 무엇보다도《라구삼바라 딴뜨라》를 위시한 방대한 양의 삼바라계의 딴뜨라들이다. 샌더슨은 우선 요기니 딴뜨라들의 의례 시스템에 근거한《바즈라발리》의 통과의례를 고찰함에 의해,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에 속한 통과의례 시스템이 까빨리까 전통의 강한 영향 하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의 통과의례 시스템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비밀의 통과의례(guhy?bhi?eka)’와 ‘반야의 지식에 대한 통과의례(praj??j??n?bhi?eka)’였다. 《바즈라발리》에 따르면, ‘비밀의 통과의례’는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행해진다.

(1) 제자는 ‘비밀의 통과의례’를 위해 반야모(般若母, praj??)로 불리는 요기니를 구루에게 데려 온다.
(2) 제자는 원초불인 바즈라싸뜨와(Vajrasattva)와 구루를 동일시하고, ‘비밀의 통과의례’를 청원한다.
(3) 구루는 지금 행해지고 있는 통과의례가 근거한 만다라의 관상을 하며, 그 지존에 대한 ‘신성 요가(devat?yoga)’를 행한다.
(4) 구루는 제자로 하여금 천으로 눈을 가리게 하고, 반야모와 성교한다.
(5) 그 후 제자는 구루의 정액을 마신다.
(6) 제자는 또한 반야모의 애액을 마신다.

또한《바즈라발리》에 따르면, ‘반야의 지식에 대한 통과의례’는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행해진다.

(1) 구루와 요기니는 제자를 격려한다.
(2) 제자는 그 자신과 요기니를 각기 만다라의 지존과 그의 비로 관상한다.
(3) 제자는 요기니를 통해 성적 환희를 경험한다.
(4) 제자는 그들의 성적 교섭으로부터 산출된 분비물을 마신다.

이처럼 성적 분비물을 초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고 섭취하는 것은 남아시아, 즉 인도에서 기원한 딴뜨라의 핵심이며, 까빨리까 요기니 숭배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비밀의 통과의례’나 ‘반야의 지식에 대한 통과의례’의 경우, 제자가 구루의 정액이나 성적 분비물을 마시는 것은 까빨리까 전통에 속한 짜루의 영향으로 보인다.

샌더슨은 또한《바즈라발리》의 후속 의례들인 ‘행위에 대한 서약의 수여(cary?vratad?na)’나 ‘영웅들의 행위에 대한 서약(v?racary?vrata)’, 혹은 ‘바즈라 까빨리까 서약(vajrak?p?likavrata)’ 등에 주목하고 있는 데, 이들 의례들은《헤바즈라 딴뜨라》나《라구삼바라 딴뜨라》, 혹은《쌍뿌따 딴뜨라(Sa?pu?atantra)》등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 후속 의례들은 불교 딴뜨라의 내부에 까빨리까 요기들을 모방해서 그들과 흡사한 수행을 한 바즈라 까빨리까 요기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니쉬빠나요가발리》에도 비댜삐타에 속한 까빨리까 색채가 농후한 샤이바 딴뜨라들의 영향이 보이는 데, 예컨대《헤바즈라 딴뜨라》와 관련된 제 8장의 만다라에서 헤바즈라와 나이라뜨먀는 가우리 등 8인의 요기니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 구성은 까빨리까적 색채가 농후하며, 비댜삐타에 속하는『삐쭈마따 브라흐마 야말라 딴뜨라』의 만다라를 연상시킨다. 거기서 지존 까빨리샤(Kap?l??a)는 그의 비 까빨리니(K?p?lin?)와 함께 락따(Rakt?) 등 8인의 요기니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특기할 점은《니쉬빠나요가발리》의 제 6장과 제 16장에서 묘사된 만다라들은 까빨리까적 색채가 농후한 비댜삐타의 깔리(K?l?) 여신에 대한 숭배와 흡사하다.

즉 그들은 지존인 여신이 요기니들이나 여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요기니 짜끄라(yogin?cakra)’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샌더슨은 방대한 양의 삼바라계 딴뜨라들로부터 이 전통의 딴뜨라들이 얼마나 비댜삐타에 속한 딴뜨라들에 의존하고 있는가를 문헌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예컨대 샌더슨에 따르면,《라구삼바라 딴뜨라》의 제 15-17장은 자야드라타야말라 딴뜨라(Jayadrathay?malatantra)의 일부인 요기니 쌍짜라(Yogin?sa?c?ra)의 싸마야짜라체스따비다나(Samay?c?racest?vidh?na) 장, 제 19장은 씨다요게쉬바리마따(Siddhayoge?var?mata)의 제 29장, 아바다노따라 딴뜨라(Abhidh?nottaratantra)의 제 43장은 삐쭈마따 브라흐마야말라 딴뜨라의 제 85장을 거의 표절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샌더슨은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불교 딴뜨라의 문헌들뿐만 아니라, 힌두 딴뜨라의 문헌들도 활용했다. 예컨대 그는 13세기의 카쉬미르 지방의 문헌들로부터 이미 힌두 딴뜨라의 수행자들이 불교의 요기니 딴뜨라들의 저자들이나 편찬자들이 비댜삐타에 속한 샤이바 딴뜨라들을 표절한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샌더슨은 비록 요기니 딴뜨라들이 다양한 의례 등 그 기원에 있어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상당히 모방했지만, 요기니 딴뜨라들은 불교의 딴뜨라로서 샤이바 딴뜨라들을 배척하며 훌륭하게 기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4. 샌더슨의 이론에 대한 비판

지금까지 샌더슨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세 가지 정도가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옥스퍼드 대학의 ‘건드릴 수 없는(untouchable)’ 천재적인 학자에 대한 첫 번째의 비판은 루에그의 반론이었다. 루에그는 2001년에 발표된 <불교 문헌과 도상학에 있어서 불교와 힌두 신성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노우트: 세속과 초월의 대조와 인도의 ‘종교적 기층’에 대한 관념(A Not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uddhist and ‘Hindu’ Divinities in Buddhist Literature and Iconology: The Laukika/Lokottara Contrast and the Notion of an Indian ‘Religious Substratum’)>에서 ‘빌린 모델(a borrowing model)’과 ‘기층 모델(a substratum model)’을 제창했다.

그리고 샌더슨은 후자를 거부하고 전자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에그는 ‘기층 모델’의 거부는 ‘어떠한 조건’ 하에서 불교가 쉬바 파에 의존했는가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자기 충족적인 종교 시스템들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득력 있게 지적했다.

또한 현재 딴뜨라 불교의 연구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학자의 한 사람인 프란체스코 스페라는 2001년 발표된 그의 논문 <불교와 힌두 딴뜨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몇몇 고려들(Some Consideration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Hindu and Buddhist Tantras)>에서 이러한 ‘어떠한 조건’에 대해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문헌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단지 불교나 쉬바 파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에 있어서는 이러한 표절이나 개작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을 증명하고 있다. 스페라에 따르면, 특히 불교 딴뜨라와 샤이바 딴뜨라가 궁극적 실재에 대해 불이원론을 취하는 한, 이러한 표절이나 개작은 더욱 용이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한편 가장 최근에 샌더슨의 이론을 비판한 학자는 로날드 데이비드슨으로 보인다. 그는 2006년 7월 영국의 에딘버러에서 있었던 ‘제 13차 세계 싼쓰끄리뜨 학술대회(The 13th World Sanskrit Conference)’에서《라구삼바라 딴뜨라》와 샤이바 딴뜨라인《딴뜨라 싸드바와(Tantrasadbhava)》 속에 있는 비밀스런 제스쳐인 쁘라끄리뜨어 초마(chomm?)를 검토하여 샌더슨을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라구삼바라 딴뜨라》에 있는 초마에 대한 부분은 샌더슨이 주장한 것처럼《딴뜨라 싸드바와》에서 차용했다기 보다는, 보다 더 복잡한 환경으로부터 끌어낸 것이라고 한다.

5. 맺는 말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공통적인 토대로 일종의 ‘종교적 기층’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20세기의 많은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 가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샌더슨에 의해 도전받았다. 샌더슨이 ‘종교적 기층’ 가설에 의문을 품는 직접적인 이유는 ‘종교적 기층’이라는 것이 결코 지각되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추론되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데에 있었다.

즉 우리가 딴뜨라로서 지각하는 것은 항상 샤이바 딴뜨라거나 바이슈나바 딴뜨라거나 불교 딴뜨라거나 혹은 어떤 구체적인 전통에 속하는 딴뜨라일 뿐이다. 따라서 ‘종교적 기층’ 가설은 불교 딴뜨라와 힌두 딴뜨라, 특히 요기니 딴뜨라들과 샤이바 딴뜨라들의 많은 공통점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전혀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샌더슨의 이론은 루에그, 스페라, 데이비드슨 등에 의해 비판되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 옳든 간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라뜨나까라샨띠(Ratn?kara??nti)나 아바야까라굽따 등 인도의 후기 딴뜨라 불교의 위대한 학승들이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을 문제 삼은 자료가 지금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딴뜨라 불교가 적절한 불교적 의미를 주는 상징주의에 의존하면서, 이교적인 요소들을 흡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명확한 의미가 그러한 요소들에 주어지면, 그들의 불순함은 제거되고, 그들은 불교의 이상을 표현하는 강력한 상징들로 탈바꿈하였다.

예컨대 요기니 딴뜨라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다섯 개의 뼈 장식들은 까빨리까 전통으로부터 기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부처님을 상징함으로써 불교적 의미를 완전히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단 하나의 예외는 갓 출현했을 때의《칼라차크라 딴뜨라》로 보이는 데, 그 이유는 이 딴뜨라에 있어서는 이교적인 요소들에 늘 불교적인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샌더슨이 주장한대로 요기니 딴뜨라들이 그 기원에 있어서는 샤이바 딴뜨라들에 의존했지만, 완전히 불교의 딴뜨라로서 기능했던 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용현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요가학과 교수. 홍익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일본 쯔꾸바 대학 비교종교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불교학 박사. 현재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교수자격논문(Habilitation)을 위해 주로 쌍뿌따 딴뜨라의 싼쓰끄리뜨 교정본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Ni?pannayog?val? by Abhay?karagupta: A New Critical Edition of the Sanskrit Text(Revised Edition)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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