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책을 한 권 내고 나면 산후 진통을 겪듯, 다음 작업에 바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아 그냥 그러려니 여기려 해도 오가는 생각에 큰 균열이 생긴 느낌이다.

아마도 자연의 대재앙 앞에 인간, 그리고 그 이성이란 것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보여주듯, 일본의 동북부를 강타한 쓰나미와 그리고 원전의 방사능 누출 등이 가져온 이웃 나라의 소식 때문이리라.

거기다 ‘먹튀정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민주주의의 후퇴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후안무치한 행위로 근대적 인간의 이성과 종교 등에 대한 회의 때문이리라. 이 모든 것이 마음속에 오가는 잡사라 숨 한번 깊게 내쉬고 지켜보면 될 일이건만 한 권의 책을 내고 난 후 겪는 ‘산후 진통’과 겹치다 보니 그 여파가 좀 더 심한 듯하다. 그러나 일은 일, 오가는 심사(心思)는 심사, 다시 신발끈을 조인다.

지난해부터 인도불교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는데, 그것은 어떤 식으로 사물을 볼 것인가라는 고민과 맞물려 있었다. 예를 들자면, 뉴턴 역학식으로 사물의 대상과 관찰, 그리고 그 관찰자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자연의 여러 현상에 대한 시공간적인 좌표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펼쳐 보인 시공간 자체가 변화의 대상이기 때문에 대상·관찰·관찰자가 상호작용한다고 가정한다면 연기실상의 세계는 훨씬 복잡하게 다가온다. 관찰자의 관찰 행위에 따라 대상의 움직임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세칭 말하는 퍼지 이론, 양자물리학(Quantum physics)의 세계는 이와 같은 변화하는 시공간을 전제로 두고 있다. 이것을 인도불교사에 적용시켜 보았더니 상당히 재미난 결과가 도출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불교사는 주로 기존 일본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승경전권의 불교는 북인도의 유부의 영향하에 발달한 것으로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까지 전래된 하나의 흐름과 티베트로 전래된 또 다른 흐름으로 나눌 수 있겠으나, 이것을 통해 전체 인도불교사를 조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북인도 까쉬미르라는 대통로를 경과하는 순간, 다른 부파불교는 까쉬미르 불교라는 여과포로 걸러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맨 처음 인식한 일본의 불교학자들은 이 전래 경로와는 완전히 다른 남방의 상좌부 불교를 연구하면서 ‘대승비불설’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강조의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상좌부불교는 부처님이 탄생하고 설법을 베풀다 반열반에 드신 당대 문명의 중심지인 ‘마가다 불교’가 아니라, 문화의 변방이었던 서인도의 불교다. 세칭 말하는 빨리어는 마가다의 변방어로 중인도의 산치 인근의 언어였기에,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대승비불설’을 주장했던 그들이 ‘돌아간 곳’은 연대기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때였지만, 이 또한 원래의 그 가르침이 발생한 곳과는 다른 불교였다.

이와 달리 티베트불교는 인도의 마지막 불교왕국이었던 빨라 왕조의 불교를 그대로 이식하면서 발전해 왔다. 모두가 공히 인정하듯 밀교다. 그렇지만 실제로 티베트 현교(顯敎)를 살펴보면, 인도에서 발달한 점수사상, 즉 보리도 사상을 그대로 보장(保藏)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이것은 티베트불교의 최대 종파인 게룩빠(Dge lugs pa)의 《람림(Lam rim, 보리도차제론)》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학의 체계로 유명한 사까빠(Sa skya pa)를 통해서도 확증된다.

 물론 우리는 한문 경장권에서 널리 알려진 천태지의(天太智顗, C.E. 538~597)의 ‘오시교판(五時敎判)’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만, 이것은 중앙아시아 등을 통해서 전래된 다량의 경전들을 재배열했다는 의미가 크지, 실제로 인도불교사를 파악하는 데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역경사와 역경 시기 등을 통해, 개략적인 원래의 경이 성립되고 집경되었을 시대를 가르쳐주는 데에만 매우 유효하다.

결국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이와 같은 다양한 전파 경로들에 따른 불교의 모습을 상기하면서 인도의 당대 상황으로 눈을 돌려 보는 것이다. 달리 말해, 기존의 일본 불교학자들이 생각하던 뉴턴 역학식의 원시, 부파, 중관, 유식, 밀교 등의 5종의 인도불교사가 아닌, 지금 우리라는 관찰자의 눈을 통해 양자 물리학과 같이 변화하는 역사적인 자료라는 관찰 대상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현재 진행 중인 고고학적인 발견은 이와 같은 관찰자의 자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속된 말로 먹고살 만해져서 그런지, 요즘 각 주(州)마다 종족별로 이루어진 자기주의 전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고고학적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안드라 뿌라데시 남쪽, 즉 전통적으로 남인도로 여겨졌던 끄리쉬나 강의 남쪽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고학적 발굴이다.

지난해 안드라 뿌라데시의 주도인 하이드라바드에서 최근에 발굴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국제학회가 열렸으나, 아쉽게도 달라이 라마의 한국인 법문과 겹쳐 참석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최신 발굴 자료 등을 직접 들어 보지 못해 아쉽지만 그 대략적인 논의는 추측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북인도 중심으로 진행된 불교사와 달리 용수 보살과 친우로 살던 당대의 패자 샤따바하나(Śātavāhana) 왕조의 인정왕(引正王, Gautamīputra Śātakarṇī)의 영토 확장이 북인도 펀잡 지방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남인도를 인도불교사에서 변방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을 비롯해 북인도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인도불교사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증시켜 주는 논의였으리라. 또한 최근에 타밀나두 불교사에 대한 특강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14세기까지 타밀나두에서 융성하였던 것은 다름 아닌 불교였다는 게 그 특강의 요지였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지금 기존의 뉴턴 역학적인, 또는 기계적인 5종의 인도불교사에서 고고학적 발견을 통한 아인슈타인 역학적인, 퍼지와 같은 불교사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서 있다. 역사는 역사학자가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는 역사학자 카(E. H. Carr, 1892~1982)의 언급이 귀에 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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