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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과 아랍 민주화의 지각변동 / 이희수
[47호] 2011년 06월 01일 (수) 이희수 lee200@dreamwiz.com

튀니지 돌담길에는 재스민 꽃향기가 그득하다.

하얀 꽃이 사풍(砂風)에 실려 보내는 향기는 강하면서 청순하다. 그래서 아랍 여성 작명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 야스민(Yasmin)이다. 아랍어 야스민이 영어권에서 재스민으로 불리게 되었다.

재스민의 강한 향기가 퍼지듯이 데모의 무풍지대였던 아랍 세계가 연일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민주화 항쟁과 정권 퇴진 투쟁에 휩싸이고 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독립 이후 지금까지 22개 아랍국가 중 단 한 나라도 자유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아랍인들의 새로운 도전과 저항은 분명 21세기 이슬람 민주주의를 향한 의미 있는 출발로 보인다.

튀니지 군부정권이 무너지면서 23년간 집권한 벤 알리 대통령은 금괴를 갖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가장 충실한 우방이었던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마저 힘없이 무너졌다. 33년간 독재자로 군림해 온 예멘의 살레 대통령도 드디어 퇴진을 약속했고.

철저한 통제로 일관하던 시리아에서도 무서운 피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와 인권, 복지와 인간다운 삶을 부르짖으며 시작된 절절한 외침은 국경을 넘어 이제 아랍 세계 전체로 번지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장기 내전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바레인, 오만, 요르단, 모로코, 모리타니아 등지에서도 대대적인 개혁 요구와 민주화 항쟁이 진행 중이다. 남쪽의 친미 순니파 벨트와 북쪽 반미 시아파 벨트 모두가 흔들리는 유례없는 지각변동이다.

그러나 아랍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시위는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미 정권이 무너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정치적 대안 세력의 역부족과 치솟는 물가와 민생고로 인해 또 다른 권위주의 정권이 대두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곧 무너질 줄 알았던 리비아 카다피 정권은 반카다피 진영과 힘겨운 내전의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바레인에서는 시아파들의 정치적 개혁 수용 대신 미국의 방조와 묵인 아래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끌어들이면서 무차별 군사적 진압을 펼치고 있다. 이웃의 시아파 이란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자칫 역내 분쟁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민주화 시위 이후에 과연 진정한 민주정권이 아랍세계에 등장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직은 부정적이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아랍: 튀니지에서 아랍 21개국으로

튀니지에서 출발한 한 국가의 시위가 왜 아랍권 전체에 하나의 흐름으로 번져 나갈 수 있는가? 아랍은 1920년대만 해도 하나의 문화공동체였다. 아랍은 원래 종족적 개념은 아니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주된 종교로 믿으며(이집트, 시리아, 등지에는 아랍 크리스천들도 많이 있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아랍’이라고 주창하는 사람들의 집합 개념이다. 아랍인 중에는 흑인도, 백인도, 함족도, 순수 아랍인인 셈족도 존재한다.

소말리아나 수단은 완전한 흑인 아랍이다. 사하라 사막에 사는 베르베르 인(현지에서는 야만인의 뜻인 베르베르 대신 아마지겐으로 통용)들은 체질인류학 분류로 따지면, 코카서스계 백인에 속한다. 이집트 일부 지역 주민들은 함족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아라비아반도와 걸프만 연안에는 대부분 주류 셈족 아랍인들이 거주한다. 이렇게 보면 아랍은 종족적 공동체라기보다는 문화적 개념이다.

이런 하나의 공동체 개념의 아랍은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 찢기고 저리 쪼개지면서 22개의 개별 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대부분은 왕정국가로 출발했지만 이라크,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시리아 등 많은 나라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사회주의 권위주의 정권으로 탈바꿈했다. 그나마 석유가 나서 복지상태가 좋은 산유국들은 오늘날까지 왕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비산유국이면서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요르단과 모로코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요르단과 모로코 왕가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종교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무력으로 성립한 다른 아랍 왕정국가들과 근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아랍 민중들의 존경과 보호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재의 아랍국가들이 각각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언어적, 종교적, 종족적 동질감을 공유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속력이다. 튀니지 사태를 비슷한 환경에서 억눌리고 있는 자신들의 일로 쉽게 받아들이는 배경이다.

무함마드 부아지지 분신이 지핀 민주화 열기

재스민 혁명은 한 평범한 아랍 청년의 분신자살에서 촉발되었다. 26세의 무함마드 부아지지는 튀니지 남쪽의 자그만 마을 시디 부지드의 과일행상이었다. 무허가 과일 리어카를 끌고 가던 부아지지는 그날도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그를 기다리고 있을 8명의 가족을 생각하며 애원을 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자 결국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10디나르(약 8,500원)의 벌금을 내야만 했다.

그때 여자 경찰의 모욕이 그를 자극했다. 죽은 아버지를 들먹이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명예와 자존을 먹고 사는 아랍 남성들로서는 여경에게 당한 수치와 침의 모욕은 이미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것은 ‘영적인 살인’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성을 잃지 않고 시청에 찾아가 여경의 부당함을 고발하고 항변했다. 하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부랑아 취급을 하며 쫓아냈다. 2010년 12월 17일 오전 11시 30분 그는 석유통을 들고 다시 시청에 찾아가 그의 몸을 적신 석유에 불을 붙였다.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고한 처절한 항변이었다.

그의 분신은 트위터와 유튜브 등을 통해 삽시간에 아랍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분노의 폭발음이었다. 그동안 권위의 위협에 억눌려 왔던 잃어버린 존재감이 함성으로 되살아났다. 30~40년 권위주의 정권이 누적해 온 부정과 부패, 치부와 인권적 억압은 한계치를 넘고 있었다.

더욱이 최근의 식량난으로 생필품 값이 폭등하고 사회의 주류 계층인 청년들의 실업이 늘어 가면서 일자리 기회는 점점 힘들어져 갔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자신들을 돌본다고 선전하던 지도자들과 그 자식들의 더러운 치부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소셜 네트워크의 힘을 타고 분노는 뭉쳐지고 뭉친 힘은 철권통치 체제를 무너뜨렸다. 이렇게 하여 재스민 혁명은 억눌린 반세기를 되찾기 위한, 인간의 근원적 자유를 향한 민주화 시위로 승화되었다.

리비아 내전은 민주와 독재의 구도가 아니다

카다피 정권의 조기 붕괴는 서방의 오판이었다. 나쁜 정권이니까 무너져야 한다는 것과 쉽게 무너진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카다피는 폭압정권이지만 나름대로 단단한 충성지지 계층이 형성되어 있다. 그동안 ‘리비아’와 ‘카다피’는 거의 동의어였다. 그리고 오늘날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린 카다피를 놓고 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지만, 집권 초기 20년 가까이 카다피가 리비아 국내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서방세계가 놓쳐 버린 부분이다.

1969년 9월 1일, 27세의 청년 카다피가 혁명을 성공시키고 반외세 반굴종의 기치를 내걸며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도덕적 자주국가를 표방했을 때, 리비아 국민은 물론 많은 제삼세계 청년들에게 카다피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였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 대신한 국민집회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도덕적 경제와 이슬람 사회주의, 여성해방과 남녀 역할 분담론, 완고한 이슬람 율법체계에 대한 과감한 개혁 등을 통해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또 하나 카다피가 아랍 세계를 위한 큰 공헌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자극하여 원유 제값 받기 운동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다. 1970년대까지 국제유가는 배럴당 겨우 2달러 수준이었다. 그는 메이저 석유회사 대신 주로 리비아 석유에만 의존하던 개별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원유가 인상을 성사시켰다. 그 결과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우리나라와 서방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지만 배럴당 15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며 누적된 가격착취 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리비아 시위의 본질은 독재와 민주의 구도가 아니었다. 부족 간 갈등, 권력투쟁, 석유 이권의 공정한 분배, 권력 소외계층의 반발 같은 고질적인 이해관계의 다툼이 본질이다. 그래서 반카다피 세력은 처음부터 무장투쟁으로 시작했다. 그것은 완벽한 내전의 성격이었다. 반카다피 진영의 리더들도 하나같이 민중과 고통을 함께한 적이 없는, 어제까지 카다피의 품에서 호의호식하던 온갖 부정, 부패의 공범자들이었다. 많은 리비아 국민이 그들을 향해 변절자, 배신자 딱지를 붙이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지금 카다피의 기이한 궤변과 행태를 보면 정신이상자로 낙인찍어 마땅하지만, 초기의 정치적 이상을 공유한 단단한 기득권층이 그를 떠받들고 있다. 카다피를 제거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군부를 그의 아들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도 카다피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위해 비싼 아프리카 용병들을 사들이고 자신의 국민을 학살하는 카다피가 물러설 곳은 더 이상 없다. 충성파 국민들이 아무리 혁명 지도자의 과거 영광을 기억한다 해도, 옆에서 죽어 가는 가족과 이웃들의 학살에 더 이상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왜 개입을 주저하는가?

리비아 사태에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피했다. 걸프전 후 지금까지 미국이 취해 왔던 정책과는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목을 조이는 재정적자 문제 때문일 것이다. 금년에만 해도 재정적자는 1조 4,000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은 전비만 해도 1조 2,000억 달러를 넘었다고 하니 리비아에서 또 다른 전선을 형성할 정치적 상황이 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둘째는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반정부군이 미국과 서방의 개입을 요청하고는 있지만, 지난 40여 년간 워낙 단단한 반미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미국과 협력 가능한 정권의 등장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처절한 교훈에 비춰 본다면 출구가 불확실한 것이다.

오히려 반군을 지원했다가 지금 카다피 정권보다 더 강경한 이슬람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카다피를 주저앉히는 대신 온건한 그의 아들 하나로 하여금 정권 안정을 꾀하게 하고 야권과 권력 분점을 통한 느슨한 연방제도를 더 선호할지도 모른다. 결국 아랍연맹이나 중립적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당사자 사이의 협상을 통해 카다피 출구전략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유엔평화군을 양 진영의 중립지대에 파견하여 내전 장기화로 인한 민간인 희생을 막고 시간을 두면서 협상을 진행시키는 방안도 유력하다. 물론 카다피의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국의 근원적인 변화가 아랍 민주화 성공의 관건

아무리 아랍 민주화가 급물살을 탄다고 해도 그 성공 여부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미국의 태도와 중동정책의 변화 여부다. ‘이스라엘 안보 보장’과 ‘석유이익의 안정적 확보’ ‘효율적인 이란 견제’라는 세 개의 중동정책 축을 바꾸지 않는 한 중동의 민주화는 결실을 보기 어렵다.

사실상 중동 민주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의 잘못된 중동정책 때문이었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튀니지, 이집트, 예멘, 이라크, 리비아 등의 권위주의 장기독재 정권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폭압적 왕정을 비호하고 지원해 왔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도 중동 비핵화 정책은커녕 이웃 중동국가들의 평화적 핵 프로그램이나 국제적 핵 주권까지 용인하지 않는 이중적 태도에 아랍권이 반발하는 것이다.

국제법이나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마구잡이로 무시하면서 남의 주권 영토를 점령하여 영구화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에 미국이 견제와 비난은커녕 동조하고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중동 분쟁이 안고 있는 아픔이다. 따라서 아랍 민주화가 진정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미국이 공정한 국제사회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다하면서 비록 아랍 각국이 이슬람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이슬람 정권이 선택되더라고 이를 받아들이고 협력할 수 있는 정상적인 정치철학을 취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것이 관전 포인트다. 그런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비극이다.

아랍의 미래는?

아랍 세계는 근대화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변화의 몸짓을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아랍 세계가 치열한 투쟁을 거쳐 곧바로 민주정권을 수립한다는 보장은 없다.

나라마다 사정이 너무 다르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이웃의 장기독재 정권인 알제리와 예멘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걸프 지역의 산유국 왕정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수니파 소수 집권세력에 맞서 시아파의 정치적 요구가 거센 바레인은 상당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은 민주화 지수는 낮아도 자국민들의 높은 소득 수준으로 미루어 왕정 붕괴라는 극단적 반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절대왕정 체제를 유지하면서 왕족들이 국가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반민주, 반인권, 반여성적 체제로서 일차적 개혁 대상이다. 그렇지만, 사우디 왕정 붕괴로 세계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워낙 크기 때문에 미국은 결사적으로 사우디 왕가를 보호해 줄 것이다. 이번 아랍 민주화 시위가 주는 중요한 변화는 설령 정권교체라는 최종적인 꿈을 이루지는 못해도, 나라마다 대대적인 개혁과 인권개선, 분배정책을 통한 빈부격차 해소, 새로운 제도도입 등으로 엄청난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일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화 시위 이후가 더 걱정이다. 민주주의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랍 국민이 겪을 혼란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는 덜하지만 또 다른 폭압적인 권위주의정권이 등장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도기적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슬람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면서 서구와 협력하고 공존하는 이슬람식 민주주의가 정착할 것이란 점이다.

 21세기에 들어 급진적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잃은 지 오래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과 전쟁이 치열한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 정치집단들의 영향력이 더 세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지 대중적 지지기반을 근거로 한 안정적 집권문화가 아니다. 그래서 이집트나 알제리 등지에서 이슬람 정치집단이 정권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전망이다.

이슬람 정당으로 서구와 협력관계를 지속하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국제적 이슈에 주도적 중재자로 역할을 다하고 이는 터키 모델이 현재로서는 아랍국가들이 추구하는 롤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이러한 과정을 수긍하면서 기다려 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과도기적 이슬람정권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고 무리하고 인위적인 정권교체를 감행한다면 아랍의 민주화는 다시 5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중동 인식과 준비는?

우리가 이슬람 문화권을 보통 극단적으로 편견과 증오로 채워 놓고 글로벌 경쟁이나 무한경쟁 시대의 국가전략을 논한다는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반미/친미라는 무모한 21세기 이데올로기 논쟁을 뛰어넘고 이제,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서 우리가 인식의 주체로서 팩트에 기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문화 다양성에 바탕을 둔 공존과 협력이야말로 21세기 인류가 부닥쳐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그대로 편견 없이 끌어안을 수 있는 국가적 전략이 경쟁력 갖춘 선진국가의 성숙된 국민이 아닐까?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중동-이슬람권 연구 분야에서 전문가 숫자나 연구 축적 면에서 단연 최하위권이다. 아랍만 해도 22개국인데 아랍 세계 전체를 관리하는 시스템도 없는데 어떻게 개별 국가 단위의 고급 정보 획득과 전문가 양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9ㆍ11 테러로 우리의 대중동 인식과 전문가 부족을 절감하고, 그 후 김선일 씨 사건,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사건 등이 터질 때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나 기업 누구도 체계적인 중동 연구의 틀을 다지려는 시도는 뒷전이었다. 이슬람의 문제를 함께 살아가야 할 문화적 협력 파트너가 아닌 깨어 부서져야 할 종교적 악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리나라 일부 왜곡된 종교지도자들의 인식도 큰 문제다. 이제라도 해외지역연구원 같은 전문적 기구를 설립하여 급변하는 중동-아랍 세계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중동지역학 석사, 이스탄불대학교대학원 역사학 박사. 이슬람회의기구 연구원, 터키 마르마라대학 교수, 한국중동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터키친선협회 사무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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