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비판의 실천과 교사로서 출가자의 역할

조성택
고려대 교수

1. 들어가면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바야흐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지난 천 년이 기독교가 꽃을 피운 시기였다면 지금은 불교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불교 붐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최근 100년간 지속적으로 그리고 질적 양적으로 불교는 서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정치적 공세나 무력적 억압 혹은 공격적인 ‘선교’ 활동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불교를 통해 근대적 발전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대안적 삶의 양식을 찾고자 하는 서구인들의 자발적 수용의 결과다.

이러한 세계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불교는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조선 500년을 제외한다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는 장차 더 심화되면 되었지 줄어들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은 지난 100여 년간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어 온 것이어서 거의 체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만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불교학계를 보면 학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선 학자의 수에서도 크게 뒤질 뿐 아니라 연구력에서도 세계적 수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불교학의 세계적 수준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국 인문학계에서 불교학의 수준이나 위치 또한 바닥이 아니라고 항변할 사람이 있을까? 불교 신행에서도 종교 인구의 25% 정도가 불교 인구라고는 하지만 그 신행의 질적 수준에서는 1,600여 년의 불교 역사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출가자의 종교적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사회적 권위는 더 말하기 싫을 정도이다. 개신교나 가톨릭과 비교할 때 한국 사회의 파워엘리트 가운데 불교인의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파워엘리트의 종교 분포를 보면 불교는 기독교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판에서 스스로 교회의 장로이고 영세받은 신자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나는 불교인입니다’라고 나서는 정치인이 없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제까지 한국불교는 ‘보살’들의 ‘우리 스님’식의 신심에만 기대어 살아갈 것인가?

그러나 그 한결같은 ‘보살’들의 신심도 오래갈 것 같지 않다. 지금 청소년들의 종교의식을 보면 그들이 장년이 되는 20~30년쯤 후면 불교는 ‘우리 할머니가 믿던 종교’라는 ‘추억의 종교’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한국의 불교가 과연 21세기를 맞을 수 있을까라는 탄식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은 한국불교가 처한 위기적 현실의 정체를 규명하고 이를 토대로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바람직한 출가자의 모습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다음 두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불교와 사회: 불교전통에서 출가의 의미와 한국불교
—현대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역할과 바람직한 출가자상

2. 불교와 사회: 불교전통에서 출가의 의미와 한국불교

청년 싯다르타의 출가로부터 불교가 시작되었지만 출가 제도 자체는 고대인도의 종교 문화적 산물이었다. 전륜성왕의 길이냐 부처의 길이냐의 양자택일 가운데 청년 싯다르타는 부처의 길을 택하였고, 그 길의 시작은 세속으로부터 떠나는 것이었다. 예수를 ‘왕 중 왕(the king of kings)’으로 불렀던 유대 전통과는 달리 인도 전통은 세간(전륜성왕)과 출세간(부처)의 길을 나누었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의 사회에서 출가자는 인도 사회에서 도덕적 권위와 가치의 상징이었으며 재가자들을 위한 복전(福田) 역할을 하였다. 출가자들은 노동하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대신 재가자들이 제공하는 경제적 재화에 대한 교환으로서 공덕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제공해 주었다. 다시 말해 출가자들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한 사회의 종교적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출가자의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사회적 기여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역할이 요구되기 시작하였다. 출가자들은 명상을 통한 수행 이외에 헌신, 희생, 봉사와 같은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기여를 할 것을 요구받았고 이러한 사회적 활동이 수행의 필수적인 항목이 되었다. 이제 출가자들은 단순히 복전이라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지어야 하는 적극적 행위자가 된 것이다. 또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행위는 단지 ‘법의 가르침’을 펼치는 설법으로서만이 아니라 권력자의 통치에 대한 정치적 조언,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휼과 고아들을 돌보는 자선사업, 병든 자들을 치료하는 복지사업 등과 같은 세간적 활동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에서 사찰 공간이 단순히 수행 도량으로서뿐 아니라 마을 단위 공동체의 사회경제적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고, 빈민구제, 의료 활동 등과 같은 국가적 복지사업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 사회적 기여를 출가자의 당연한 책무이자 수행의 일부로 간주하였던 대승불교적 출가 정신과 국가적 차원의 재정적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은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복지사업과 같은 사회경제적 활동의 중심이었다. 출가자의 역할 또한 대중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경제적 활동의 운영자이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복지활동가였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출가자들은 사회적 엘리트로서 당시 사회로서는 거의 유일한 외래 문물의 전래자이기도 하였다.

한반도에서 사찰의 다양한 대사회적 기능은 성리학적 이념으로 사회를 재구조화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억불정책과 함께 크게 위축되었으며 한국불교는 500년의 긴 침체기를 맞게 된다. 조선조 동안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출가자는 무당, 광대, 백정, 기생 등과 함께 천인(賤人)에 속하여 각종 공납의 의무와 함께 산성축조, 수자리 등과 같은 노역은 물론 전쟁에까지 동원되었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서 출가자들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은커녕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환경 마련도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서도 사대부와 교유를 통해 지식인 역할을 하였던 출가자나 뛰어난 선지식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불교계의 역량으로 축적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었고 간헐적이었다.

출가자가 다시 활동 공간을 얻게 된 것은 1895년 도성출입금지가 해제되면서부터였다. 이제 한국불교는 오랜 질곡을 벗어나 근대라는 새로운 환경하에서 다양한 개혁과 실험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모색과 시행착오는 결국 불교의 근대적 유용성과 한국불교의 정체성 이 두 가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근대라는 새로운 종교 환경 속에서 전통적 종교인 불교의 유용성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국가주의의 세례를 받은 일본불교로부터 한국불교의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지상과제였다.
그러나 일본의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은 한국의 불교인들을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적 상황에 빠지게 하였다. 유럽 식민지의 경우 식민자들의 종교가 기독교였기 때문에 불교와 같은 전통종교는 민족 담론의 발신지이자 근대화 담론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그 역할을 외래 종교인 기독교가 하게 되었다. 일본의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은 한국불교인들로서는 딜레마였지만 기독교는 그 사실로부터 반사 이익을 얻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의 불교인들로서는 선진적 근대불교의 모델로 인식되었던 일본불교를 따르자니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강조하다 보면 새로운 시대의 사회적 유용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실제 실천의 현장에서 두 과제에 대한 절충과 조화의 시도가 없지는 않았으나 지속적 형태의 운동으로 이어지기에는 내적 추동력이나 구체적 방향성이 부족하였다. 대처의 문제가 한국 근대불교의 핵심적 사안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에서였다. 만해에게 있어 대처제도는 그의 대중불교 제안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근대라는 새로운 종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어쩌면 필수적인 개혁이었다. 그러나 대처제도가 곧 일본불교이고 타락한 불교라는 당시 조선불교계의 인식을 깨고 조선불교계의 일반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였다.

1945년 8월의 광복은 일제 속박으로부터 해방이라는 기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사회 각 부문에서 혼란과 방황도 함께 초래하였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조 오백 년간의 오랜 공백기를 거쳐 식민지 공간에서 새로운 불교를 위한 고민과 모색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에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성철 스님과 봉암사 결사가 한국 근현대불교사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이다. 오늘날 조계종이 한국 최대의 종단이 되는 역사적 계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봉암사 결사에서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봉암사 결사는 해방 이후, 아니 19세기 말 이래 지속되어 온 불교계의 혼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전통복고의 길을 택하였다.

화두참선의 수행종풍을 확립하고 청정지계의 엄격한 생활양식을 실천했을 뿐 아니라 사찰의 비불교적 요소들을 과감히 척결함으로써 수행도량이라는 사찰 본래의 기능을 되살렸다. 그리고 승려의 의제를 정비, 통일하고 재가자와 출가자의 관계를 새로이 설정하여 출가수행자의 종교적 위의와 사회적 지위를 재정립하였다. 이 모두 당시 불교계로서는 절실한 과제였고 이러한 결단과 실천을 통해 지금의 한국불교의 모습이 가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봉암사 결사가 지금의 한국불교의 모습과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만큼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아쉬움도 적지 않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긍정적 평가와 비판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선택’에 대해 절대적 선이나 절대적 악을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쉬움’이라는 것이다. 봉암사 결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어제는 오늘의 기억이다.”라는 경구(警句)는 과거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제’란 지나가 버려 어찌할 수 없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의식에 따라 다시금 평가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란 결국 승자(勝者)의 기록일 뿐이라는 상대주의적 역사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의 노력에 의해 과거는 끊임없이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봉암사 결사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자 하는 것도 오늘 현재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장차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다.

당시 한국불교는 전통과 근대, 출가와 재가, 대중과 엘리트, 탈속 지향과 사회참여, 민족과 보편 등 온갖 모순이 혼효(混淆)한 가운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방황과 혼란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모색과 가능성의 기간이었다. 봉암사 결사는 ‘부처님 법대로’라는 원칙하에 전통 지향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혼란을 종식하고 한국불교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처럼 마련된 근대불교의 다양한 모색과 가능성이 차단되고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봉암사 결사가 지향하였던 ‘출가승 중심의 수행종풍 확립’이라는 목표는, 비록 직접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결국 대처불교는 부처님의 법이 아니며, ‘왜색불교’이고 청산의 대상임을 선포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왜색불교’나 ‘대처불교’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협조한 ‘친일불교’였다. 그것은 민족의 이름 이전에 불법(佛法)의 이름으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대처승만이 아니라 비구승 가운데도 친일 부역자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해방 이후 전개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대처불교는 왜색불교이며 곧 친일불교라는 등식이 마련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사회 엘리트이자 불교계의 훌륭한 인적 자원인 많은 대처승들이 불교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의 대전제이자 원칙은, 간결한 만큼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력하였다. 불교인이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한다는 데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부처님 법대로’를 실천하는 데에는 한 가지 길만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수 있다.

봉암사 결사가 지향하는 전통적 불교의 출가 중심주의와 탈속화의 대척점에는 근대적 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하던 많은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 대처불교는 그 모색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 법대로 살자’라는 봉암사 결사의 강력한 원칙은 한국불교가 장차 열어 갈 여러 다른 가능성을 일거에 차단하고 봉암사 법이 곧 ‘부처님 법대로’의 유일 기준이라는 일반적 인식이 형성되는 계기를 초래하였다.

대처불교의 비전통성 그리고 왜색불교 시비 등 근대불교의 큰 흐름에 비한다면 지엽적일 수도 있는 문제들로 인해, 20세기 초 이래 모색되어 왔던 근대불교가 꽃필 가능성이 모두 차단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전반기 동안 한국 근대불교인들은 놀라울 만큼 매우 폭넓은 사유를 전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 중국을 통해 거의 유럽과 동시대적으로 근대적 가치와 이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근대적 가치이자 지금 우리 삶의 기초가 되는 자유, 인권, 노동과 같은 일상적 가치 그리고 민족개념, 국가이념 등과 같은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에 대한 다원적 인식 등을 불교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불교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을 이루겠다는 문제까지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한마디로 지금의 현대 한국불교에서 고민하고 있는 전통과 근대적 가치의 접합이라는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자기비하가 아니라 이 문제에 관한 한 현재 우리는 20세기 전반의 한국불교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이나 다양성 면에서도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각기 자신의 자리에서 반성하고 분발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근대 한국불교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데에는 ‘전통복고’를 통해 한국불교를 중흥하자는 봉암사 결사와 그에 맞닿은 정화운동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 봉암사 결사는 나름대로 필요한 일이었고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역사적 측면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근대불교사의 과제라는 점에서 볼 때 반쪽의 개혁이었고 미완의 결사인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다른 반쪽은 이제 우리의 몫이며 나머지 반쪽을 채울 때 한국불교를 중흥하고자 한 봉암사 결사의 진정한 정신이 완성될 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오랜 침체와 혼란 이후 불교 수행 전통의 재확립이라는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선종 중심’ 그리고 ‘출가승 중심’이라는 ‘정통복고’에 대한 강력한 지향성으로 말미암아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깨달음, 그것도 확철대오의 최종적 깨달음만을 수행의 알파요 오메가로 여기는 깨달음 지상주의의 병폐는 어쩌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봉암사 결사의 한계는 곧 ‘근대(modern)’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 환경에 대한 역사인식의 한계였다.

3. 현대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역할과 바람직한 출가자상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역할은 무엇이며 바람직한 출가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한편으로 봉암사 결사 이후 한국 근대불교사의 나머지 한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불교의 사회적 유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20세기 이래 우리가 완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 유용성은 당연히 근대 혹은 탈근대로 표현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적실성을 가진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 한국불교의 교세 위축을 염려하는 많은 출·재가자들 가운데 한국기독교의 선교 방식과 사회참여를 모델로 삼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기독교계의 활발한 사회복지 활동과 조직적 신자 관리 그리고 적극적인 선교활동 등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의 이러한 적극적 활동에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면이 많이 노정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기독교의 현재 모습을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한 모델로 삼는 것이 적절한 선택인지는 의문이 든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이후 기독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성과 인류의 진보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과학적 세계관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근대는 기독교에 직격탄을 날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계몽과 해방이라고도 불렀다. 근대 이전 기독교가 제공해 왔던 몽매한 세계관에서 벗어나 과학적 세계관으로 계몽되었으며 지옥과 천당 그리고 최후의 심판이라는 기독교의 이념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성과 지식은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는 힘으로 찬미되었으며 기독교의 교리적 억압은 근대적 윤리로 대체되었다. 그 과정은 한마디로 ‘종교의 세속화’였다. 한편으로 세속화는 징벌과 복종의 신적(神的) 질서로부터 윤리, 자율성, 합리성 등과 같은 인본주의적 질서로의 이행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그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다.

종교의 해석을 빌리지 않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해의 범속함과 욕망에 대한 지나친 긍정은 세속화에 따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교회의 권위가 국가로 이동함으로써 시민사회의 등장을 용이하게 하고 복지사업의 시행과 같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회와 국가 권력이 결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종교가 국익 혹은 애국의 이름으로 권력의 시녀가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요컨대 근대사회에서 기독교의 세속화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또 긍정적인 결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교회가 자본 그리고 정치와 지나치게 유착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이 과정에서 교회는 세속적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측면도 있었다.

한편 18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근대화는 20세기 제국주의 침탈과 함께 한반도에도 그 파장을 몰고 왔으며 이제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의 신장, 산업의 발달과 물질적 풍요, 과학의 발달 등 근대화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혜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회의할 만큼 근대적 개발과 발전이 가져다준 폐해도 크다.

 환경과 기후변화 등과 같은 자연적 재앙에서부터 자본과 정치권력의 합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위기들 이를테면 전쟁, 에너지, 식량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온갖 문제가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시스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초고도의 위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위험은 제도적인 혹은 시스템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몇몇 정치적 지도자나 자본가의 각성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늘날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근대적 산물’로 치부하고 근대에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근대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개발과 발전’에 대한 맹신과 ‘욕망’에 대한 지나친 긍정이 바로 근대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근대는 인간의 자연 지배를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라고 이해/오해하였으며, 인간의 욕망을 제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성취되어야 할 것으로 긍정하였다. 인간의 이기심을 성취동기로 자본의 탐욕성을 시장원리로 이해/오해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기독교는 자신에게 직격탄을 날린 ‘근대’를 적극 수용하는 길을 택하였다. 다시 말해 근대가 부정하였던 신(神)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고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적극 수용하였다. 그것은 신학적으로는 세속화의 과정이었지만, 선교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정당 활동이나 사회복지 사업 등을 통한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길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욕망’과 ‘개발·발전’이라는 근대적 가치 또한 적극 수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러한 가치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고 교회 스스로 이를 내면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기독교 교회는 근대사회를 이끌어 온 욕망과 발전이라는 기관차의 엔진 역할을 스스로 자임하게 된 것이다.

근대적 성장과 개발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였고 근대적 제도와 시스템의 폐해가 속출하는 이 시점에 근대의 한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기독교의 모습을 불교의 미래 모습으로 벤치마킹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다면 불교가 근대 기독교의 역사적 과오를 밟지 않고 사회적 유용성을 확보하는 길은 없을까? 이러한 고민과 함께 우리는 현재 불교가 놓여 있는 근대적 종교 환경이라는 현실을 함께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시대와는 달리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는 오늘날 사회를 생각할 때 불교가 사회의 전면적 개혁과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한 것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생명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불교가 스스로의 종교적 이념과 가치를 포기하고 근대 기독교가 그러했던 것처럼 세속의 변화에 편승할 수도 없다.

이러한 현실 상황을 인정하는 가운데 나는 가장 불교적이면서 오늘날 사회에 유용한 불교의 역할로서 ‘문명비판’의 역할을 제안하고자 한다. 근대적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당장의 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오늘날 근대문명의 심각한 폐해를 생각한다면 비판 자체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인류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계기를 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명비판의 핵심은 물론 ‘욕망’과 ‘발전’이라는 근대적 신화이다. 그리고 비판의 준거는 모든 생명의 행복이라는 가치의 실현이다. 모든 생명의 행복은 불교의 핵심적 이념이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처음 60명의 제자에게 전법을 명하신 바도 바로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적, 사회적 불행의 많은 부분은 바로 욕망의 과잉과 발전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지난 200년간 혹은 100년간 우리는 욕망의 성취와 개발을 통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 왔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더 불안하고 더 불행해졌다고 봐야 한다.

‘불안’과 ‘불행’은 현대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는 단어들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를 찾는 것도 불안하고 불행하기 때문이다. 점집을 찾고 무당을 찾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대 정신의학의 경우 약물투입을 통한 즉각적인 개선의 효과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으나 근본적인 치유를 기대할 수 없으며, 점집과 무당의 경우도 일정한 심리적 안정과 위안 이상의 근본적인 치유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인의 경우만이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 또한 집단적 불안과 히스테리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 무분별한 자연개발을 성장과 발전으로 믿고 있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곧 행복의 기준이라 믿고 있는 지금의 가치관에 대한 전면적 수정 없이는 근대적 폐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필자만의 주장이 아닐 것이다.

불교는 욕망의 실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욕망의 감소를 통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 근본 가르침으로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불교전통의 모든 교리와 수행은 결국 ‘욕망’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는 초기불교 이래 다양한 고찰을 통해 ‘욕망’의 실체를 매우 정교한 이론으로 설명해 왔으며, 또 욕망을 제어하는 다양한 수행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왔다. 또 출가라는 제도는 바로 이러한 교리와 수행을 실천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불·법·승 삼보(三寶)는 이미 그 자체로 욕망 과잉의 오늘날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불교가 진실로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솔직히 부끄러움이 앞선다. 출·재가를 막론하고 지금 한국의 불교인들은 타 종교인들이나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한 가지 예로 나를 포함한 한국불교 재가자들의 기복적 불교신앙을 들 수 있다.

시주(施主)의 의미에 대해 국어사전에서는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스님에게 재화를 베풀어 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시주란 출세, 합격, 승진, 재산, 명예 등과 같은 세속적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 행위가 되어 버렸다. [물론 자비심에서 우러난 진정한 시주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출가자들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재가자들을 부추겨 왔다고 하는 것은 과장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방관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기복을 위해 시주하는 것은 그 순수성의 측면에서 볼 때 연말정산의 세금혜택을 위해 정치인에게 기부하는 것보다도 못하고, 비종교인들의 자선적 기부 행위보다는 더욱더 못한 것이다. 기복을 위한 시주가 아무리 많고 넘친들 그것이 진정한 불교의 중흥이고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출가 스님들의 불사(佛事)도 마찬가지이다.

불사란 본래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사찰의 외형을 확장하는 일로 그 의미가 변형, 왜곡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찰의 미학은 본래 자연과의 조화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이제 전통사찰에서조차도 근대 산업문명의 쓰레기와 갖가지 탐욕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한 단면이다.

진정한 자기비판과 성찰을 통해 한국불교는 거듭나야 한다. 그럴 때 불교 본연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문명비판’의 기능을 회복하고 한국사회는 물론 인류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성찰’을 약속한다는 전제하에 문명비판자로서 한국불교의 구체적 역할을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문명비판이란 ‘욕망’과 ‘발전’의 신화가 만들어 낸 근대문명의 잘못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과 개혁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 비판의 영역이나 실천이 특정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시의성과 시급성을 감안하여 다음의 세 가지 실천을 제안하고자 한다.

—환경운동의 실천
—화쟁의 실천
—‘전(全) 생명적 연대’의 실천

1) 환경운동의 실천
환경문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하고 있는 근대문명의 가장 직접적인 폐해 중의 하나이다. 동서양의 많은 지식인은 동양사상, 그중에서도 불교에 오늘날의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삶의 가르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불교는 연기적 세계관과 생명존중 사상 등과 같은, 근대적 삶의 양식을 바꾸고 그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적이며 친환경적 내용을 매우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국내외 학계에서 환경과 생태적 위기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 왔으며 또 실천의 면에서도 불교계가 우리 사회에서 환경과 생태의 아젠다를 선점하고 어느 정도 주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할 때 그 실천의 강도나 사회적 확산이란 측면에서 불교계의 환경운동은 개선해 나가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몇몇 스님들의 선각적 의지와 개인적 활동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간헐적으로 특정 사안에만 매달릴 뿐 범사회적인 일상적 실천운동으로 이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지난 100년 이래 한국 종교계에서 처음으로 불교계가 선점한 사회적 아젠다를 이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계종단 내에 환경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으나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이며 불교환경연대 또한 수경 스님 이후 활동이 매우 위축된 형편이다.

이제 한국불교계와 출가 스님들은 환경과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류의 희망이고 한국사회에 유용한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적 실천이다. 천성산과 사패산 터널, 그리고 4대강 사업과 같은 국가적 규모의 큰 사안에 제대로 힘을 쏟기 위해서도 일상적 실천이 전제되어야 한다.

온갖 불사(佛事)와 불교 의례를 하는 가운데 환경훼손은 없는지, 사찰과 스님들의 의식주 가운데 반환경적인 요소는 없는지 부처님 오신 날 거리를 장식하는 ‘비닐’ 연등이 환경적으로 괜찮은 것인지, ‘방생’이란 명목으로 생태를 어지럽히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등등 불교와 관련한 모든 일상사와 행사들을 세심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생태환경에 대한 세심한 고려와 함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연기법, 불살생, 초목성불론 등과 같은 교리가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그 실천의 일상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토회가 지난 8년간 실천하고 있는 ‘쓰레기 제로’ 운동은 매우 모범적 사례이다. 정토회는 환경에 대한 의식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대안과 함께 시스템적인 변화를 추구해 왔다. 이러한 실천이 지속 가능한 것은 그 실천을 뒷받침하는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토회는 신도를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요구’를 한다. 돈이나 시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와 실천을 요구한다. 그 요구가 마땅찮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정토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요구―의식의 변화와 실천―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시스템적인 지원을 통해 비로소 ‘쓰레기 제로’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를 비롯하여 많은 종교가 신자/신도에 대한 ‘서비스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정토회의 신자들에 대한 이러한 변화와 실천 ‘요구’는 매우 신선하며 이것이 불교 본연의 위의이고, 당연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불교 사찰은 친환경적 삶의 실천 장소이자 생태적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스님들은 친환경적 삶의 실천가이자 재가자들을 위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이 스스로 불교를 찾고 스님을 받들고 삶의 스승으로 모시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불교적인 것은 곧 생태적이며 친환경적인 것이다. 이 사실을 출가 스님들이 스스로 실천하고 증명할 때 한국불교는 “떠나갔던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교가 ‘서비스업’이라는 제3차 산업으로서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교사로서 본래의 위의와 본분을 찾게 될 것이다.

2) 화쟁의 실천
오늘날 한국사회는 다양한 갈등과 분쟁의 현장이다. 지난 100년간 우리는 식민지, 분단, 전쟁, 쿠데타, 산업화, 군부독재의 시련과 민주항쟁 등 20세기 전 인류가 겪어 온 거의 모든 역사적 사건을 압축적으로 경험해 왔다.

 압축적 근대화 속에서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는 조화되지 못한 채 우리 사회의 극심한 문화 지체와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민족 간 분단과 전쟁의 역사적 경험이 평화와 공존을 위한 교훈이 되지 못하고 극심한 이념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경제적 성장에 정신적 가치가 따라가지 못하는 가운데 계층 간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은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하지만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이상의 실질적인 ‘민주’의 내용과 의미를 만들어 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대, 성별, 계층 등에 걸친 갈등과 분쟁의 양상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 걸쳐 나날이 복잡하고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법적 제도와 사회적 기구는 갈등과 분쟁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정 장치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오늘날 한국사회를 생각할 때 이러한 현실 인식 이외에 고려해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다원성의 문제이다. 다원성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중요한 특징이자 조건이 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유입과 국제결혼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는 상황이며, 또 종교적으로도 불교, 가톨릭, 개신교, 유교, 이슬람 등 다양한 전통과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 척도나 기준을 설정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보편’이라는 관점 자체가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

갈등과 분쟁 그리고 ‘하나’만의 관점을 관철할 수 없는 다원성이라고 하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 상황에서 원효(617~686)의 화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화쟁이 출발하는 지평은 원융무애한 깨달음의 지평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다투고 경쟁하는 현실세계의 지평이기 때문이다.

 7세기 당시 한반도 불교의 상황은 여러 다른 성격의 불교 경전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는, 한편으로 사상적으로 풍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보면 경전적 권위를 서로 다투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원효는 당시 백가쟁명 하던 다양한 교판과 경전적 해석을 하나의 이해 가능한 체계로 만들기 위해 종요(宗要)·개합(開合)이라는 독특한 해석학적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원효는 개별 경전의 개성과 독특성을 인정하면서도 불설(佛說)이라고 하는 하나의 체계로 그 다양성들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화쟁적 입장은 교상판석을 중심으로 한 당시 동아시아불교의 위계적 경전 이해와는 구별된다. 원효에게 화쟁은 그 자체 진리이거나 진리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진리에 이르는 절차와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개시(皆是, ‘모두 옳음’)의 대긍정을 통해 차이를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개비(皆非, ‘모두 그름’)의 대부정을 통해 개별적 차이의 ‘다름’을 넘어 더 큰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실천적 노력이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실감할 만큼 분쟁과 갈등이 일상화되고 정부가 분쟁 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분쟁의 한 당사자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 종교계 특히 불교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쟁적인 이익 다툼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사회 어느 부문도 ‘자신의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은 종교계 또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볼 때 그리고 그 본연의 이념과 대사회적 역할을 생각할 때 종교계는 어쩌면 분쟁의 진정한 조정자로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회 부문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생과 상생의 세계관 그리고 대승불교의 열린 태도를 생각할 때, 오늘날 한국사회의 다양한 분쟁과 갈등의 조정자로서 불교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분쟁과 갈등의 조정자로서 역할 또한 환경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이라는 불교 전법의 목적과 일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쟁의 현대적 의미란 공존과 상생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실천에 다름 아니다. 지난 1970~80년대 ‘민주’와 ‘정의’라는 사회적 공동선의 실천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앞장섰던 것처럼 지금 공존과 상생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공동선을 위하여 불교는 화쟁의 실천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속사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이 매우 복잡한 여러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화쟁의 역할이 그냥 이웃집 아이들 싸움 말리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화쟁의 철학적 의미와 불교적 정신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화쟁의 대원칙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대원칙은 분쟁과 갈등을 바라보는 기본 입장이며 총론적인 원칙이다.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개별적 분쟁과 갈등의 사안들은 바로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부문별 전문가를 포함하는 사부대중의 지혜를 모아 각 사안별로 그 구체적 해결과 조정의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공존과 상생을 실천하기 위한 화쟁의 대원칙

▶ ‘선설불설(善說佛說)’의 열린 진리 정신에 입각하여 초교파적 입장을 견지하고, 개별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사회적 공동선을 구현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한다.

▶ 종교, 정치, 사상, 이념 등에 있어 특정 입장의 진리나 선을 전제하거나 옹호하지 않는다. 화쟁의 사회적 실천은 곧 ‘참여’와 ‘민주’라는 시민적 가치의 구현이며, 그 내용과 형식에서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정신과 다르지 않다.

▶ 갈등과 분쟁은 ‘문제적 상황’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에너지이며 진리를 확인하는 기회이다. 따라서 모든 분쟁과 갈등의 당사자는 동등하게 자기표현과 의견 개진의 기회를 갖는다. 어떤 입장도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것은 아니며 각각의 의견은 부분적 진리성을 가지고 있다.

▶ 사회적, 경제적 정의의 실천에 있어 특정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른 정의(正義) 실현의 원칙을 전제하지 않으며 절차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를 다 함께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또한 사회적 보상과 교정의 원칙에 입각하여 사회적·제도적 약자의 의견과 입장을 소중히 한다.

▶ ‘모든 생명’의 본원적 평등성과 상호의존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현재의 생명뿐만 아니라 미래의 생명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3) 전(全) 생명적 연대의 실천
불교는 ‘신(神) 중심’의 종교도 ‘인간 중심’의 종교도 아니다. ‘생명 중심’의 종교이다. 불교에서 생명이란 인간만의 생명이 아니라 모든 존재−감정과 인식 능력이 있는 모든 존재−를 포함한다. 담론의 문맥에 따라 초목과 같은 식물까지 그 생명의 범위를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생명에는 그 행위[業]에 따라 상하, 귀천의 차이가 있을 뿐 존재 자체의 우열은 원칙적으로 없다. 더 나아가 모든 생명의 본원적 평등과 상호의존성을 불교에서는 존재의 실상(實相)으로 이해하고 있다. 생명과 그리고 생명 상호 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불교의 이러한 입장은 탈근대를 지향하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많은 지적 영감과 풍부한 감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불교인들에게는 이러한 생명관이 교리적 이해에 그치고 말기 때문에 일상적 실천의 준거가 되지 못하고 있다. 불살생과 비폭력은 살생과 폭력에 대한 업보(業報) 때문에 금(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을 고통에 대한 동정과 공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많은 불교인들은 불살생의 윤리를 업보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돌아올 업보가 무서워 살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오늘날 산업구조에서 볼 때 직접 살생에 가담하는 경우는 범죄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단히 예외적이다. 이른바 고도의 분업으로 인한 간접 살생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축장에서조차도 직접 소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공정 속에서 이루지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살생에 대한 직접적·인과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렇듯 고도의 분업화된 산업 시스템 속에서 누구의 책임도 없는 가운데 많은 생명들이 고통받고 살해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편 도축의 경우와 같이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살생의 경우만이 아니라 고급화된 문명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간접적인, 그러나 연기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인과의 관계가 명확한 폭력과 살생의 행위 또한 무수히 많다. 이렇게 볼 때 생산−유통−소비로 나누어져 있는 현대의 분업적 산업 시스템에서 결국 인과적 책임의 시작과 최종은 결국 소비자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도축의 경우를 예로 살펴보자. 한국의 경우 1980년대에 들어와 본격화된 육식문화는 결국 많은 축산농가를 필요로 했고 한정된 땅에서 많은 개체 수를 단기일 내에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게 되고, 좁은 공간에서 보다 많은 개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동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입이 고급화되면서 등심이 아닌 소위 꽃등심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축산농가들은 수입증대를 위해 보다 많은 꽃등심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꽃등심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는 온갖 질병의 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에서 소는 거의 ‘병신’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살에 ‘지방’이 제대로 퍼지기 위해서는 일단 살이 쪄야 하고 이후 내장 비만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비로소 살에 지방이 끼게 되는 것이다. 살에 적당한 기름이 끼게 되는 소위 ‘마블링’이 잘된 꽃등심을 만들어 내기 위해 소는 인간으로 치면 당뇨, 동맥경화, 지방간 등 온갖 성인병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도 결국 인과의 최종 책임은 ‘입에 단것만을 찾는’ 소비자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육식문화에서 빚어지는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주 전 부문에 걸쳐 이러한 간접 살생과 폭력의 경우가 벌어지고 있다. 부잣집의 바닥을 장식하기 위한 카펫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3세계 아동들이 학대를 당하고, 좋은 커피를 싸게 마시고자 하는 우리의 탐욕 때문에 아프리카와 남미의 농부들은 최저 이하의 임금 노동자가 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실상이다.

한 여자의 따뜻한 겨울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밍크와 여우가 죽어야 하며, 또 남자들의 ‘힘찬 남성’을 위해 곰은 얼마나 오래 자신의 장기에 쇠파이프를 박고 살아야 하며 물개들은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 미식가들의 입을 위해 철갑상어들은 알을 빼앗기고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흘리며 바다를 떠다니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지금 이 세계에서 인간들의 고급소비를 위하여 다른 생명이 받고 있는 고통을 나열하자면 몇 날 며칠을 얘기해도 모자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 생명의 종교임을 자부하고, 윤회를 이야기하는 불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불교와 출가자들은 오늘날 뭇 생명이 처한 이 실상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그 생명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스스로의 사회적 실천과 함께 재가자들을 위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유럽과 같이 사육과정에서 가급적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도축의 과정에서도 그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동물권(animal right)’의 법제정을 위한 청원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적은 것이 더 많다(The less the more)’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재가자들에게 교육하고 전파하는 교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원래 서구에서 웰빙(well-being)이란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적게 먹고 적게 쓰며 많이 걷고 많이 노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웰빙은 일종의 고급소비 트렌드를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다. 한편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많이 걷는 ‘불편한 삶’에 자족하는 것이 본래 전통적인 출가자의 삶이었다. 웰빙은 그 기원을 굳이 서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가, 한국의 출가자들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었다.

한국불교는 전 생명적 연대를 교리나 거시적 담론으로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그리고 제대로 된 소비문화를 실천하고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사회에서 구현하는 또 하나의 사회적 실천이 될 것이다. ‘모든 생명이 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불교의 생명사상은 세상의 어떤 종교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불교만의 정신이다. 전 생명적 연대의 정신은 가장 불교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천은 한국불교와 출가자들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한다.

4. 맺는 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은 지금 위기 상황이다. 각종 조사 통계를 살펴보면 출·재가자의 학력 수준 사회의식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은 주요 종교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10대~20대 젊은 층의 종교 분포를 보면 한국불교의 미래는 더욱더 절망적이다. 현재의 어려움은 그럭저럭 견딜 수도 있겠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우리를 더욱더 난처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이 ‘불교’라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상황과는 정반대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지식인뿐만 아니라 대중 가운데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으며 불교는 어쩌면 부처님 당시 이래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가 문제가 아니라면 ‘한국불교’의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의 위기 상황을 역사적으로 설명할 수는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식민시기 일본의 종교가 불교라는 사실 때문에 기독교는 오히려 큰 반사이익을 얻게 된 반면에 한국불교는 근대적 유용성과 정체성이라는 딜레마적 위치에 처하게 되고 근대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설명은 어디까지나 사후적(事後的, ex-facto)인 설명에 불과하다. 역사의 과정에는 항상 필연적인 것만이 아니라 얽히고설키는 우연적 요소가 작동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항상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남녀가 만나게 되는 데는 우연의 과정이 있었겠지만 아이를 낳게 되는 것은 두 사람의 선택과 결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한국불교가 처하게 된 현실 상황을 역사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바깥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즉 한국불교 안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승가의 주체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출가 스님들에게 감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불교에서 출가 스님들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고전적으로 말한다면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 하겠지만, 우리 한국불교에서 아직도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상구보리하면 하화중생은 절로 되는지, 아니면 선후의 관계에 있는지, 혹은 역할 분담의 문제인지 등등에 대한 정립된 입장이 아직도 없는 것 같다. 또 단적으로 상구보리도 하화중생도 하지 않는 일부 스님의 역할을 우리는 불교전통 내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구보리의 문제는 재가자인 필자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불교의 오랜 전통에서 등장한 많은 수행법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에서도 정기적인 안거를 통한 수행 방법도 있고 토굴 수행의 전통도 있고 또 행주좌와의 일상을 통한 수행 등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수행법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도 어디까지나 수행의 당사자인 스님들 혹은 종단에서 논의해 나갈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하화중생의 문제는 재가자 그리고 세속사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정 부분 재가자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나는 불교의 오랜 전통을 고려하고 또 현대사회가 처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감안할 때 문명비판의 실천가로서 그리고 중생들을 위한 교사로서 출가 스님의 역할이 가장 적절하며 시급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불교는 20세기 이래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기독교 교회의 사회참여 방식을 많이 모방해 왔다.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관심이라든지 대학교나 방송국 설립 등, 어찌 보면 그들이 하는데 우리도 해야 한다는 약간의 경쟁의식도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냉정하게 본다면 불교계가 지금까지 해 온 사회사업, 대학교 운영, 방송국 운영 등은 그 규모나 운영 방식에서 기독교에 항상 약간 모자라는, 일류가 못 되는 ‘이류급’ 정도라고 평가하는 것이 보다 객관적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불교의 교세가 급격하게 위축되는 상황에서 불교계가 기독교의 선교 방식이나 신자 관리를 벤치마킹하려는 경향도 생겨나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종교에서 잘하는 것은 배워야 하고, 따라잡는 정도가 아니라 더 잘해서 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가운데 불교 고유의 정신과 이념적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문명비판’으로서 불교의 역할을 통해 기독교가 일조해 온 근대문명의 폐해에 해독제 역할을 우리 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이라는 불교 고유의 가치이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근대문명의 핵심적 추동력이라 할 수 있는 ‘욕망’과 ‘발전’이라는 신화를 스스로 내면화하고 또 부추기면서 교세를 확장해 왔다. 근대문명의 피로감과 폐해가 거의 임계점에 다다른 지금, 문명비판의 실천가로서 불교의 역할이 절실하다. 서구에서 불교가 대중적 관심을 얻고 있는 것도 바로 불교의 내면화된 문명비판적 성격과 그 실천력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출가 스님들의 중생을 위한 교사로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교사의 역할은 가르침만이 아니라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가 신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교세를 유지 확장하는 것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으며 또 부러워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비스’는 한국의 스님들이 잘할 수 있는 ‘주 종목’도 아니고 무엇보다 종교가 신도들의 세속적 욕구를 달래 주는 ‘서비스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신도/신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그들을 위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문명비판의 실천가이자 교사로서의 역할이라는 것이 불교 전통에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본래 출가자의 삶은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소욕지족’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성철 스님의 말씀은 지금 여기서도 유효하다. 문명비판이란 부처님의 법을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실천하는 한 방법이다. 출가 스님들의 삶은 바로 그 모범이며 중생들에게 가장 적은 것을 통해 가장 많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사이기도 하다. 출가 스님들이 문명비판의 실천가이며 중생들을 위한 교사가 될 때 한국불교는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인류사회의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며 또 다른 중흥의 때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간단한 실천, 불교 본래의 삶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조계종으로 대표되는 한국불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  

 

조성택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고려대 영문과와 동국대 대학원(불교학 석사),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철학박사)을 졸업했다. 뉴욕주립대학교 비교종교학과 교수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부원장, 불교평론 주간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깨달음의 사회화에 관련한 몇 가지 고찰〉 〈서구에서의 불교의 미래: 불교의 개방성과 친화력에 관한 새로운 실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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