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구독신청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해외불교
     
대만 비구니, 그 무궁무진의 세계*/ 엘리스 앤 드비도
엘리스 앤 드비도 / 이상엽 역
[46호] 2011년 03월 01일 (화) 엘리스 앤 드비도 대만사범대 역사학과 교수

1980년대 중반 이래, 대만 사회는 대규모의 종교 부흥을 경험해 왔다. 이는 전통적 민간 신앙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제도화된 불교나 도교 내에서도 발생한 현상이었다. 지금까지 대만의 경제적, 정치적 발전에 집중된 세계 학계와 언론의 관심으로 인해 잊혔던 이 심오한 문화적 현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받아 마땅하다.

대만 사회 내 종교 성장의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세계사에 일찍이 없었던 비구니 수의 극적인 증가이다. 현재 구족계를 받은 비구니와 비구의 수는 대략 3만 명이며 이 중 비구니가 75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통계는 대만의 출가자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는 것인데, 연간 수계(受戒) 기록을 어림잡은 결과와 현장에서의 직접 관측에 기초하고 있다. 대만 출가승들의 단체와 활동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모으고 확인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작업으로서 특히 계엄령이 폐지된 1986년 이후부터 더욱 심해졌다.

나는 대만이 대승불교 출가수행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소견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지 교리, 수행 및 자율적인 출가자 공동체의 발전을 촉진하는 개방적 환경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대만이 상좌부, 티베트, 선을 아우르는 다양한 불교 전통에 속한 아시아 및 전 세계의 여성 불교 수행자들이 교육을 받고 구족계를 받을 수 있는 중심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몇 세기에 걸친 남성 수행자들의 반대로 인해 인도를 포함한 세계 어디에도 이러한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티베트 불교 전통의 여성 출가자들(동양인이거나 서양인이거나)은 서양에서는 주로 ‘비구니(Buddhist nuns)’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들 대부분이 구족계를 받지 못한 ‘사미니(novices)’이다. 그들의 라마가 중국, 한국 또는 베트남의 전통에 의거하여 구족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평생을 사미니로서 수행한다. 15년이 넘도록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불교 내 비구니 승단의 설립을 옹호하여 1997년 11월에는 대만의 시스템을 조사하도록 특사를 보내기도 하였지만, 구체적인 진전이 있는지는 아직 두고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대만의 불교 부흥, 특히 여성 출가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기여의 함의는 풍부하다. 세계의 불교가 대만의 불교 승가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활성화할 것임은 물론, 대만 불교의 부흥은 ‘지상 정토’의 창달이라는 목표에 따라 고취되어 자선 운동, 세속적·종교적 교육, 출판, 매스미디어, 예술, 환경 운동, 반핵 운동, 동물보호 운동, 재난 구호에 대한 주목할 만한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독재 체제 이후의 대만에서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 데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에서 나타난 여성 출가자와 여성 재가신자의 수적 우세는 대만의 1970년대부터 이루어진 전통적 성 역할 해방의 결과물인 동시에 대만 여성에게 보다 다양한 삶의 기회와 선택지를 제공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다만 대만 불교 비구니 대중의 사회 참여 현상이 ‘페미니즘’의 범주와 이론적 틀로 설명될 수 있는지,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지는 복잡한 문제로서 뒤에서 다시 논의하고자 한다.

대만과 여러 나라에서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비구니가 많이 다루어져 왔지만,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중국어, 영어를 비롯한 어느 언어로도 대만 비구니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최근의 성과로는 장찬텅(江燦騰), 딩민(丁敏), 루후이신(盧蕙馨), 천메이화(陳美華), 리위전(李玉珍), 장웨이안(張維安)과 같은 대만의 종교학자들이 비구니 학자인 스자오후이(釋昭慧) 스님, 스젠예(釋見曄) 스님과 함께 논문들을 출판한 것과 더불어 이 주제에 대한 불교 세미나가 조직한 학회들에 참여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찰스 B. 존스의 선구적인 연구서인 《대만의 불교: 종교와 국가, 1660~1990(Buddhism in Taiwan: Religion and the State, 1660-1990)》는 대만 불교에 대한 훌륭한 개요를 제공하는데, 이 책에서 그는 비록 비구니에 대해 특별히 초점을 두지는 않지만 ‘1952년 이후 비구니 승가의 활력’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하 이 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대만에서의 불교, 여성, 시민사회를 주제로 여섯 명의 비구니와 그들이 속한 사원과 여성 재가신자에 대한 분석을 담은, 향후 출간될 책의 일부분임을 밝혀둔다.

대만 비구니의 ‘무궁무진한 세계’

대만의 비구니들은 수기나 인터뷰에서 대만이 불교, 특히 비구니에게 있어 ‘천공(天空)’임을 자주 언급한다. 필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용어를 ‘무궁무진한 세계, 무한한 세계(infinite worlds)’로 번역하는데, 이는 첫째로 대만이 비구니들의 성장과 발전에 자유로이 열려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대만에는 하나로 요약될 수 없는 여러 이상적인 비구니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원들 간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의 출가 공동체 내에서도 승려의 세대, 가족이나 교육의 배경, 재능, 기질에 따라 큰 차이가 존재한다. 대만에는 비구니나 비구로만 이루어졌거나 둘 다 공존하는 출가 공동체가 있다.

이쯤에서 대만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카리스마 있는 비구니인 정옌(證嚴) 스님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정옌 스님은 재가신자 단체의 성격이 강한 거대한 국제적 비정부기구인 자제공덕회를 이끌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정옌 법사는 소규모의 비구니 제자 집단도 양성하였지만, 자제공덕회 활동의 초점은 여성 출가 수행자의 교육과 수련이 아닌 재가신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자선사업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자제공덕회에 대해 다루지 않겠다.

필자는 이 글에서 여성 출가자 및 대만 불교학자들과의 인터뷰, 타이베이 내의 모든 공식적 불교 사원들에 대한 전화 설문, 중국어 원전 및 이차 자료, 대만 불교에 대한 몇몇 영어 자료, 세계적인 시각에서 본 여성 불교에 대한 자료들을 이용하였다.
 
계속되는 문제들

세계에서 가장 큰 비구니 대중이 대만에 존재하게 된 것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했다. 비구니와 대만 불교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경제적, 교육적, 정치적, 사회적 요인 및 성 역할의 변화 등,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가능한 원인을 제시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중요한 요인은 대만 내 일본 불교의 성장과 함께한 대만의 독특한 문화적 유산과 관련이 있다. 불교에 영향을 받은 민속 신앙 종파인 ‘재교(齋敎)’ 및 이 종파의 여성 신도인 ‘재고(齋姑)’ 또는 ‘채고(菜姑)’의 존재가 청대(淸代)와 일본 식민지 시대에 걸쳐 확인된다. 이들은 대부분 재가자로서 구족계를 갖춘 비구니가 아니었으며, 청대 대만에서는 중국 불교의 전통에서 수계를 한 비구니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 중 수계를 한 사람도 일본 전통에 따랐을 것이다. 아무튼 대만에는 비록 삼보에 귀의하지는 않았더라도 불교와 동질감을 가지고 있던 규모가 큰 여성 집단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여성이 1952년 이후 중국의 전통에 따라 구족계를 받게 되었다.

두 번째 요인은 대만의 경우 다른 불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에 비해 남녀평등 사상에 입각한 남녀공학 교육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공립학교가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로부터, 특히 1949년 국부천대(國府遷臺) 이후 교육 제도의 현대화 정책에 따라 9년간의 보통의무교육제도가 본격적으로 대만에 도입되었다. 이러한 교육제도는 대만 여성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보통교육을 제공하였다.

세 번째로 본토 중국을 떠나 대만에 정착한 비구들이 현지의 비구니와 여성 재가신자들과 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이들 비구는 수가 적었고 대만에서 연고가 없었기에 지원을 받을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대만의 비구니들과 ‘연사(蓮社)’라고 불리는 여성 재가신도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에 의존해야 했다. 국민당이나 중국불교회(中國佛敎會)와 정치적 끈이 닿지 않는 이상, 이들 승려는 사원 건립이나 제자 모집 등을 위해 여성 재가신자에게 의존해야 했다. 이는 비구와 재가신자 간의 지속적인 협동 관계를 촉발하게 되었다.

계엄령 및 백색테러가 지속되는 참혹한 조건하에서도 이들 승려는 비밀리에 포교 활동을 이어갔다. 국민당의 정치적 보호를 받지 못한 승려들은 체포되거나 침묵이 강요되기도 하였다. 불교를 대중화하기 위한 움직임 중에는 인순(印順) 스님의 인간불교의 광범위한 영향이 대승 정토불교를 현대화하고 부활시키기 위한 시도에서 두드러졌다. 또한 천주교와 개신교가 대만의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였던 포교 방법을 도입하여, 1960년대부터 불교도들은 직업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스터디그룹과 장학기금을 설립하고, 대중적 출판물과 교육용 강의, 불경, 기도, 찬불가가 담긴 테이프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많은 잠재적인 비구니와 비구들이 이러한 경로를 통해 모집되었다.

1949년 국부천대 이후의 상황에서 중국의 대승불교 전통을 전파하기 위해 대만에 건너온 비구들에 의해 비구와 비구니를 위한 정식 계율이 전래되었다. 이로써 대만 불교는 제도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만의 영향력 있는 승려들은 비구니 승단의 발전을 장려하며 비구니들의 교육과 수련을 강조하였다. 인순, 싱윈(星雲), 성옌(聖嚴) 스님을 비롯한 대표적 법사들은 역사적으로 비구니를 비구에게 종속적이며 열등한 위치에 두었던 이른바 팔경법(八敬法)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비구와 비구니의 평등한 관계를 주장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만에는 극적인 사회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대만의 놀랍고도 급속한 경제 성장에 직접적으로 수반된 발전이었다. 이 기간 동안 대만의 시민들은 국가를 떠나 관광을 하거나 유학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어느 정도 얻게 되었다. 계엄령의 철폐는 시민사회 발전을 가능케 하였고 내정부(內政部)와 중국불교회가 대만 불교계를 감시하는 일을 어느 정도 제한하였다.

또 하나의 요인은 대만 사회와 유학파 비구니들에게 미친 페미니즘 사상의 영향이었다. 다만 페미니즘 사상의 영향은 입증해 내기가 어렵다. 몇몇 남성학자들은 페미니즘의 영향이 “명백한 주된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인터뷰한 비구니들은,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견해를 보였다.

비구니들과 그들의 발전에 동조적인 비구 지도자들의 수년에 걸친 집요한 노력으로, 1952년 비구니의 정식 수계가 시작된 이래 비구니들은 대만 사회 내에서 높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비구니가 처해 있던 상황과는 달리 대만의 비구니들은 교육, 자선, 출판, 매스미디어와 같은 사회 전반에 걸쳐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승단의 일과 관련하여 지도적인 위치를 누리고 있다. 또한 비구니들은 사원의 지원을 통해 대만 및 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이어갈 기회를 얻기도 한다.

비구니들은 그들의 진전된 사회적 지위가 여성을 위한 교육 기회의 증가, 중국으로부터 제도화된 불교 승단의 유입, 비구니를 위한 출가 수행자 교육을 대중화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각고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이 정통적 불교 전통 내에서 1949년 이후에야 확립하게 된 지위의 정당함을 확인받으려는 비구니들의 희망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들은 긴 수련 기간과 고된 노력, 그리고 몇백 년 된 대승불교의 정토 신앙 전통이 대만의 이른바 이단적이고 미신적인 민간 종교를 추월하게 되기까지의 희생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역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분석이 공통적으로 서구 페미니즘의 유입이나 계엄령 철폐와 같은 정치적 진보를 대만 비구니 성공의 요인으로 거론하는 반면, 비구니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왜 비구니가 되는가?

비구니들이 자신은 어려서 ‘불교’ 가정에서 자랐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근래까지 대만에서 우세했던 불교 신앙의 양상은 많은 경우 관세음보살에 대한 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 신앙’이었다고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비구니가 직업학교,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공식적인 불교 스터디그룹에 참여함으로써 정통적인 불교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다. 이들 학생 대부분은 무엇보다도 불교의 종교적이면서 이상주의적인 면에 매력을 느낀다. 인문과학, 경영학, 컴퓨터공학 또는 직업훈련 공부에 바쁜 젊은 여성들이 자기계발 수단으로서 보다 더 집중적인 불교 공부를, 그리고 해탈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런 젊은 여성들이 대만의 가족 관계와 교육 체계라는 안전한 환경을 떠나 세상과 마주하게 됨에 따라 종종 그들은 정체성이나 가족 관계에 관련된 개인적 위기와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한 전기를 맞이하여 몇몇 여성들이 출가를 고려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소수의 여성만이 강도 높고 여러 단계에 걸친 규율의 준수, 시험, 평가의 필수 과정을 통과하여 사미니에까지 이르게 된다.

출가 생활에 끌리는 젊은 여성들은 이미 상담, 의학, 어린이 교육과 같은 영역에서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또한 종래 교수법의 의의와 효과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껴 오직 종교, 특히 불교를 통해 세속적 지식 너머의 탐색이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선생님들도 있다. 한편 학술, 출판, 통신, 예술, 사회사업, 성인 교육이나 지역 공동체 교육, 적극적 사회봉사와 같은 영역의 경력을 염두에 두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 각각의 전업을 도맡은 특정한 출가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러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이 출가 생활에 이끌리는 또 다른 요인으로, 불교 사원들이 종종 소속 비구니들의 대만 더 나아가 외국에서의 대학원 공부를 후원한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 수단이나 가족의 뒷받침이 부족한 젊은 여성에게, 이는 고등 학위를 취득할 둘도 없는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가령 향광사(香光寺) 주지를 맡고 있는 밍자(明迦) 스님의 경우 미국에서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하지만 개인의 경력을 쌓기 위해서라면 재가신자로 남아 있어도 무관하기 때문에 반드시 비구니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행자나 사미니를 선발하는 긴 과정의 목적은 평생의 독신을 서약한, 규율에 따른 공동생활 환경에서 살고 일하는 데에 적합한 사람들을 추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그 특정한 사원의 관심과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헌신적인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다. 승려가 종사할 세속적 사업이 어떠한 것인지와 별도로 모든 사원의 중심적 목표는 무엇보다도 법을 전파하는 것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명망이 높고, 자원이 풍부하며, 사회적 참여가 활발한 비구니 사원들(이른바 인간불교의 ‘꼭대기[山頭]’라고 불리는)을 보고는 대만의 비구니에 대해 섣부른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사원들 외에도 젊은 여성은 대도시를 벗어나 중부나 남부 대만에 위치한 수많은 소규모 사원들에 참여할 수도 있다. 50세 이상의 비구니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런 사원들은 명상적 삶을 강조한다.

이런 사원의 비구니들은 장례식이나 애도 기간 중의 추모식과 같은 전통 불교 의례를 거행해 달라고 초청받지 않는 이상 거의 사회로 나가지 않는다. 대만의 비구니 사찰들 간의 차이점에 대한 보다 철저한 조사는 인간불교로 알려진 교리와 수행의 체계가 대만 불교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 주류가 되었는지, 또는 앞으로 주류가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페미니즘 문제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중요한 질문 중 하나로 대만의 비구니들이 세계적인 비구니 운동의 일환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비구니 승단을 강화하려는 노력, 비구들과 평등을 누리려는 노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 또 다른 질문은 대만의 비구니들이 대만 내 페미니즘 운동과 동질감을 느끼는가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들의 평등한 기회를 비롯하여 법적 지위,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노력하는 운동으로 정의된다. 근년 모든 불교 전통의 비구니들 사이에서 불교 승단 내에서 비구와 비구니 간의 보다 평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운동이 증가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불경과 역사적 주석에 내재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과 비구니의 지위, 본성에 대한 모순적 입장들을 중점적으로 논쟁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비구니들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고 구축하는 것과 구족계를 받은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는 전통의 여성 수행자들을 위해 구족계를 전하는 일에 초점을 두기도 한다.

불경은 ‘모든 사람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국 불교의 출가 수행 전통에서는 비구나 비구니가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똑같이 체발을 하고, 수계와 함께 계파(戒疤)를 받는다. 비구나 비구니가 받는 법명 또한 성별에 따른 것이 아니다. 역사적 전례에 따라 ‘대장부’라는 별명이 비구나 비구니 모두에게 통용된다. 또한 천주교 교회와는 달리 비구와 비구니는 불교 의식들에 참가하고, 불교 의식들을 수행하고, 제자를 받아들이고, 법사의 지위를 가지게 되고, 불교와 관련된 일에 투표를 하고, 교육을 이어나가고, 포교를 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여성 혐오와 비구니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는 예들도 드물지 않다. 여성들의 ‘악업,’ 다양한 약점,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부도덕적 경향성 등 부정적 고정관념 외에도, 일상적인 사원 생활에도 많은 구속이 존재한다. 비구들에게는 250개의 계율이 주어지는 한편 비구니들은 348개의 계율을 지켜야 한다. 남성 법사는 비구와 비구니를 모두 제자로 삼을 수 있지만, 여성 법사에게는 비구니만 제자로 허용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백한 예는 팔경법으로, 비구니를 비구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고 있다.

하지만 대만에서는 앞서 설명한 요인들에 의해 비구니 승단이 융성하게 되었다. 비구니들은 비구들보다 그 수가 많을 뿐 아니라, 대만의 시민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 비구니는 대만의 페미니즘 운동에 동질감을 느끼고 또 그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과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자립적이고 비구니들에 의해 직접 관리되는, 능력 있고 근면한 대만의 비구니 공동체들은 과연 그러한 인상을 줄지도 모른다. 가냘픈 대만 비구니들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공구를 사용하여 부엌에서 사용하기 위한 땔감을 쪼개는 일은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니다. 이러한 예를 보거나 또는 아침저녁의 불교의식 내내 북과 종을 치는 데에 드는 엄청난 힘과 지구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중국어로 유능하고 진취적인 ‘비전통적’ 여성을 가리키는 ‘뉘챵런(女强人)’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인터뷰 도중 비구니 법사들은 반복해서 현대화와 자유화가 대만 사회 내에 많은 기회와 선택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고 강조하였다. 결혼하여 가족을 꾸리는 전통적 경로 외에도 오늘날의 여성들은 고등교육과 경력을 추구하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밍자 스님의 말에 따르면 여성들은 이제 “부엌에서 나와 교육을 받고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의 가족이나 남편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필자가 새로 수계를 한 비구니들에게 왜 출가승의 삶을 택했느냐고 물을 때 흔히 듣는 대답은, “이렇게 해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재능을 남편, 자식, 시댁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사람과 사회 전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 깊게 질문해 보면 마흔을 넘긴 많은 비구니 법사들은 아직도 ‘중국식’ 여성성의 본질적 개념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에 비구니가 많은 이유를 묻자 산후이 스님은 “여성들은 자비롭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답했다. 밍자 스님은 “여성들은 불교 공부와 수련의 힘든 길을 택하기에 특히 알맞다. 여성들은 침착함, 참을성, 세심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으며, “대만 남성들의 경우 유교적 잔재 때문에, 가정과 사회와 관련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여성들보다 심하다.

따라서 남성은 출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여성에 비해 적다.”고 대답했다. 우인(悟因) 스님은 “여성들은 특성상 특히 간호사에 적합하고, 치료나 상담 일에 뛰어나다.”라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스님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단체생활에 더 적합한데 이는 여성의 겸손하고 자기희생적인 본성 때문”이라며 “비구니들은 대만 여성의 꿋꿋함, 인내심, 근면성 같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헝칭(恆清) 스님은 “여성들은 문화, 고등 교육과 학문, 불교 교육, 성인/공동체 교육에 뛰어난 소질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불교와 여성: 불교 내 남성 쇼비니즘 해체하기》라는 저술에서 자오후이 스님은 “비구니들이 대만에서 불교 포교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에게 봄바람 같은 느낌을 주는 온화한 여성적 본성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들 비구니 법사들은 양성평등주의적 이상을 주장하기보다는 비구니의 장점은 바로 남성과의 차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여성성’으로 여기는 특징들로서는 온화함, 자비, 조화와 평화에의 욕구, 침착함, 참을성, 불교의 이상을 따르는 희생 등이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본성상 직업적인 출가 생활을 영위하기에 남성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비구니들은 서구 페미니즘의 양성평등에 대한 ‘자각’ ‘투쟁’을 대만인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의 대상이 되었던 비구니들은 대만의 페미니즘 운동가들과는 성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대부분의 비구니는 자신을 대만 사회 전반의 공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여길 뿐 특별히 여성과 관련된 이슈를 강조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은 여성들을 위한 고등교육과 여성들의 가능성 자각을 중요시하지만, 이러한 일을 사회 전체의 후생 관점에서 접근한다.

앞으로는 195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수계를 한 장로 비구니들의 사회적 활동이 줄어듦에 따라 더 젊은 세대의 비구니들이 대만의 페미니즘 운동과 보다 밀접하게 보조를 맞추게 될 가능성이 크다. 몇몇 젊은 비구니들과 사미니들은 여성학을 공부하거나 유학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간과할 수는 없다. 대만 사회의 자유화가 강화됨에 따라 자식의 여부와 관계없이 미혼 커리어우먼의 삶을 영위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보다 용이해진다면 굳이 출가 생활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어질 수도 있다.
1980년대에 비구니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당시에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카리스마 있는 불교 지도자들과 대만의 불교 사회 운동에 앞장선 비구니들에 이끌렸다. 향광사의 밍자 스님은 이에 관해, “미래의 젊은이들은 특정한 스님의 강한 존재감보다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불교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 출가하려 할 것이다. 현대의 ‘정보사회’에서는 세속적 세계의 압박과 유혹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출가 생활의 종교성에서 매력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라고 한다. 밍자 스님 새로이 수계를 한 비구니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하였지만 한편으로 숫자보다도 중요한 것은 더욱 철저하고 통합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비구니의 자질을 꾸준히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불교 공동체들이 계속하여 해외로 진출하고 사회 참여적인 비정부기구가 되어 감에 따라 그들이 이룩해 낸 성과도 계속하여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대만의 불교 사회는 앞으로 세계적인 불교 여성운동의 고충과 비판에 호응할 것인가? 이미 대만 불교의 보존되고 발달된 계맥(戒脈)과 사원 규율, 비구니를 위한 구족계 의식, 그리고 뛰어난 비구니 공동체를 만들어 낸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대만 불교는 세계 곳곳에서 비구니 승가가 발전하는 데에 중심적 역할을 도맡고 있다. 자오후이 스님은 자신을 ‘페미니즘 불교도[一箇佛敎的女性主義者]’로 정의하며 명망가로서 대만 내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물 보호와 환경 보호를 위한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은 대중의 이목을 불교 여성의 이슈로 집중시켰다. 2002년 6월 타이베이의 화범대학(華梵大學)에서 열린 제7차 세계여성불자대회에서 대만의 비구니와 여성 재가신자들이 세계적 불교 여성운동과 참여불교 운동과의 연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대만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세계 불교계에 영향을 끼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대만은 다른 국가와 다른 불교 전통 출신 여성 수행자들에게 구족계 의식을 행해 주고 있다. 또한 대만의 비구니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향상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어 다른 국가와 불교 전통에 역할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대만의 사원들은 자원이 풍부하여 불교와 세계 불교 내 양성평등을 촉진하는 데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중국불교회의 이사장 징신(淨心) 스님은 “대만 불교의 미래는 비구니들의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지금까지의 대만 비구니들의 활력과 헌신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앞으로 세계 불교의 미래에 큰 공헌을 할 것이 분명하다. ■

 

엘리스 앤 드비도(Elise Anne DeVido) 
국립대만사범대학 역사학과의 부교수이자, Taipei Ricci Institute의 연구원으로서 대만 불교에 대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에는 SUNY Press에서 대만 비구니에 대한 학술서인 Taiwan’s Buddhist Nuns를 출간하였다.

이상엽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중국불교철학 전공) 재학 중. 주요 논문으로 〈혜원 신불멸론의 불교사상적 의의〉 〈《범망경》 보살계와 유식학파 보살계의 비교 연구〉가 있다.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