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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보기,종교적 차원과 심미적 차원 / 이주형
이주형 서울대학교 교수
[32호] 2007년 09월 10일 (월) 이주형 jhrhi@plaza.snu.ac.kr

불상 보기

사진 속의 한 여인이 상을 응시하고 있다(도 1). 여인은 40대 가량의 백인이고, 장소는 미국의 박물관이다. 도심으로 이전하기 전의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이다. 현재 이 박물관의 답답한 전시실들에 비하면 당시 전시실은 전시품은 적었지만 자연광도 들어오고 시원한 느낌이 있다. 그러면서도 다소 어둡고 적막한 분위기는 마치 절간 같기도 하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980년대가 아닌가 한다. 이 여인이 바라보는 상은 중국의 불상이다. 더 세밀히 이야기하면 북위시대(386-535) 말의 불상이다. 로웰 조지아라는 전문 사진가가 찍은 이 사진은 결코 단순한 스냅사진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정도 사진에 특별히 큰 연출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아무튼 이 사진에 제시된 장면을 의도된 대로 현실이라 가정한다면, 이 여인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혹은 본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상식적인 견지에서 판단한다면, 이 여인은 이 불상에서 유럽 전통과 구별되는 인물 표현을 눈여겨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의 조각전통, 특히 추상성이 강한 북위시대의 조각은 유럽 전통에 익숙한 눈에는 매우 색다르게 비칠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그 색다른 조형성을 음미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상을 보면서 중국이라는 이국에 대한 환상을 확인할 것이다.

이 여인은 그 너머로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평균적인 캘리포니아의 미국인이라면 불교라는 종교를 알 것이고 그 개조가 붓다라는 것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불교를, 붓다라는 동양의 성인을, 혹은 신을 이 상에서 느끼고자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상에서 많은 것을 찾아내기에는 그녀의 지식과 견문이 극히 미미할 것이다. 막연히 ‘마음의 평정’, ‘숭고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불교라는 종교의 범주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그녀는 이 상을 신앙의 태도로 보지 않는다. 폭넓은 심미적 경험을 위해 동양박물관을 찾아온 관람객일 뿐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그녀는 오해와 억측으로 이 불상을 보고 있을지 모른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하다. 이 사진은 픽션이고, 여기에서 있었음직한 구체적 상황은 경우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사진을 보면서 떠올린 이러한 생각은 불상에 대한 심미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이 실제 어떻게 엇갈리고 겹쳐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곰곰이 따져보면 이 여인의 불상에 대한 경험은 우리들의 오해나 억측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같은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생활하여 불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무의식 속에 축적된 정보도 훨씬 많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심미적인 차원(그것이 미학이건 미술사학이건)에서 설정한, 우리 의식 속의 불상, 담론 속의 불상이 얼마나 종교적 현실에, 역사적 실체에 가까운가는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이 글에서는 불상에 대한 심미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의 상호 연관과 갈등에 관해 내 경험 속의 몇 가지 사례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내 경험’이라 한 것은 ‘나’를 노출시키지 않고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좋은 불상

“어떤 불상이 좋은 불상입니까? 불상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언젠가 방송에서 나눈 대담의 말미에 진행자가 이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진행자가 불자이고 불교학을 전공하는 교수였기 때문에 당혹감은 더욱 컸다. 나는 미술사 연구자로서도 그런 판단을 하지 않지만,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더욱더 ‘좋은 불상, 좋지 않은 불상’이라는 것을 결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불교미술의 안팎의 의미를 분석하는 사람이지만, 불교를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불자이다. 나는 불자로서 불상을 대할 때 결코 좋고 좋지 않음을 판단하지 않는다.

내 심미적인 취향과 축적된 경험에 따라 좋게 보이는 불상과 그렇지 못한 불상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불자로서 나는 부처님을 대하는 마음으로(‘부처님’이 어떤 의미이건 간에) 불상을 본다. 불상은 부처님에 대한 내 염원이 향하여 마음이 모아질 수 있는 대상이자 통로이다. 그것은 결코 심미적인 감상이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좋고 나쁨에 대한 분별을 초월한 존재이다. 불상을 부처님처럼 대할 때 그 상은 내게 어느 것보다 가장 완전한 존재이다. 물론 부처님의 상에 대해 그런 불경스러운 분별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스스로의 금제(禁制)가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불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마찬가지이다. 불교미술을 연구하거나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불상을 보며 그 조형적 특성을 말하고 양식을 논하며 제작 연대나 시대를 운위할 것이다. 또 이 불상은 어떤 부처를 나타내며 어떤 불교 사상이나 불교사적 배경과 관련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에 대한 신앙의 마음으로 불상을 대할 때 그런 질문은 극히 사소한 것이 되어 버린다.

어느 불상이 어떤 특징적인 형상을 지니는가, 잘 되었나 못 되었나 뜯어본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불상을 ‘부처님의 상’으로 보고 있지 못하다. 불상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좀 아는 사람은 불상이 어떤 부처를 나타내고 도상적인(iconographical) 특징은 어떠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겠으나, 그것은 아마도 현대의 불교미술 연구자들이 주입시켜 놓은 지식욕의 발로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뿐 아니라 역사 속의 신앙인에게도 불상의 개별적인 이름은 실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점은 적어도 밀교가 등장하기 전까지 불상이 그 이름에 상관없이 거의 같은 형상을 취했음에서 드러난다. 즉 불상은 도상적으로 구별하여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신앙의 태도에서는 불상을 보는 데 어떤 규범적인 방법이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부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서 불상을 대할 뿐이다.

지혜와 자비의 형상

불상에 대해 종교적인 태도를 취하면 심미적인 판단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불상의 구체적인 형상이 보는 사람과 교감하며 그 종교적인 태도와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교미술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몇몇 학자들의 글을 살펴보니, 상당수의 글들이 불교미술을 이러한 관계, 기능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A. 불교미술도 미술작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미술이 아닌 불교미술이라면 불교적 신앙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중략) 종교미술은 그 본질상 그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미술작품이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적 의식에 예배의 대상으로 모셔지고 있는 불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인 못 된다면 불교미술이라 할 수 없다. (홍윤식, ??한국의 불교미술??, 개정판, 1999, pp. 21, 24)

B. 불교미술은 불교라는 종교에 의하여 이룩된 종교미술의 한 분야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예술적 표현은 지혜와 자비에 바탕을 둔, 다시 말해서 양대 목적에 순응하는 예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략) 단적으로 말해서 미술이란 인간의 시각에 호소하는 조화된 통일체라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인간감정의 순화에 보다 큰 뜻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장충식, ??한국의 불교미술??, 1997, pp. 45-46)

C. 불교가 일반 민중의 구제를 가장 큰 사명으로 삼는 이상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불교의 진리를 이해시켜야 한다. 민중들은 대부분 지식이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불교의 심원한 교리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시청각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문명대, ??한국불교미술의 형식??, 1997, p. 10)

D. 불교미술이란 불교적인 소재로 조성한 일체의 조형작품을 말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적으로도 어떤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졸하고 숭고한 미이든지, 세련되고 깔끔한 미이든지, 아니면 우아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이라든가 생기발랄하고 명랑한 아름다움이라든지, 또는 넉넉하고 풍만한 미이든지, 사실적이거나 추상적인 미이든지, 그리고 이상적이거나 순진무구한 미이든지 간에 어떤 식의 미를 형태로 조형하여 이를 보는 관자들로 하여금 이를 통해 불교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불교미술이라 하겠다. (문명대, ??한국불교미술사??, 1997, p. 49)

위의 글들은 불교미술이 보는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와 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C와 D의 글은 특히 불교미술을 더욱 방편적으로 보고 있다. 불상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 인간 감정을 순화하며, 심원한 교리를 납득시키는가에 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하다. 아마 단순한 수사(修辭) 이상의 명확한 설명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런 것이 있으리라고 누구나 짐작은 하는 듯하다.

C의 글에서는 지식이 부족한 민중에게 불교미술이 불교의 심원한 교리를 납득시킨다고 했는데, 이것은 불교의 ‘심원한 교리’를 납득시킨다기보다 ‘심원한 불교’의 교리를 납득시킨다고 읽어야 하겠다. 필연적으로 말과 개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심원한 교리’를 불교미술이 가르쳐 주기란 매우 어렵다. 단지 초보적인 교리를 그림이라든지 그에 준하는 조형물을 통해 시각적으로 쉽게 보여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이 서양의 기독교미술에 존재했다. 역사적으로 불교미술도 그러한 기능을 수행한 사례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정보를 비교적 명시적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림에 비해 불상의 경우는 시각적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마저 쉽지 않다. ‘지식이 부족한 민중’에게 불상이 무엇인가를 전해 준다면 ‘부처님은 이런 분이다’ 하는, 모호하며 막연한 시각적인 메시지 정도일 것이다.

불상이 ‘심원한 교리’를 납득시킬 수는 없으나 일깨울 수는 있다. 즉 이미 ‘심원한 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그 이해하는 바와 일치한다고 느끼는 바를 부처님이라는 형상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동일시(同一視)는 어디까지나 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 반드시 두 가지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이보다 더 낮은 수준에서도 불상은 보는 사람에게 불교에 대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정서적으로 더 두텁게 해 줄 수 있다.

즉 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부처님이나 불법에 대해 느끼는, 궁극적인 것에 대한 지향, 숭고함에 대한 경의, 그것을 목표로 하는 실천 덕목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첫 장에서 본 사진의 미국 여인이 불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과 호감을 갖고 있었다면, 그녀도 그러한 체험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면 불상에 구현되는 어떤 조형적 표현이 그러한 것을 가능하게 했는가? B글에서는 그 기반을 지혜와 자비라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이견을 표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부처는 지혜와 자비를 통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존재이며(인격적 존재이건, 인격적 상징을 활용한 비인격적 존재이건 간에), 불상은 그런 존재를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혜와 자비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불상을 ‘좋은 불상’이라 할 수도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불상은 이러한 조건을 의식하고 만들어지며 그 특성을 반영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와 자비가 불상에 얼마나, 어떻게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는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주관적이다. 철저히, 보는 사람의 판단과 마음에 달린 것이다. 보편적인 판단이나 평가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지혜와 자비를 구현했다고 하는 ‘인물 조각’으로서의, 인간을 닮은 조형물로서의 성공도에 대한 판단일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판단은 대체로 기술적인 정묘함, 표현의 적절함, 적당한 재현성 등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 불상에 지혜와 자비가 구현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형상이 불교에 특유한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인도 굽타시대의 불상은 높은 상찬(賞讚)을 받지만, 실상 당시 힌두교 조각과 표현 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인도에서는 불상을 만드는 사람과 힌두교 조각을 만드는 사람 사이에 구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우리가 이런 상에서 받는 감화가 있다면, 그것은 불교의 감화라기보다 일반화된 정신적 이상의 감화일 수 있다. 상이 ‘불교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불교의 감화라고 착각할 뿐이다.

부처와 불상의 본질

흥미로운 점은 지혜나 자비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불상도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헤이안(平安)시대의 한 불상은 일본불교미술사에서 빠짐없이 언급되어 나도 ‘미술사 수업시간’에(종교적 맥락이 아님)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상이지만, 늘 내게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이다(도 2). 불상은 앞으로 고개를 내민 축 처진 자세로 앉아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두터운 입술은 기묘한 인상을 준다.

이 불상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작자는 지혜와 자비의 표현을 의도했으나,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거나 그것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혜와 자비의 표현이 그만큼 다양하고 주관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작자는 지혜나 자비와 무관하게 붓다에 대한 나름의 느낌 혹은 인식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부처에 대한 좀더 특수한―혹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유효했던― 관념이나 해석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불상은 ‘부처는 인간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런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할 수 있다. 부처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명한 한 학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읽어 본다.

불상은 부처를 조각한 것이다. 여래를 조각한 것이다. ‘깨달은 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각에 있어서의 양감, 면, 표면구조 등 조형언어를 통하여 부처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각이야말로 경전보다도 더 직접적인 불교사상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구체화한 것이 불상이기 때문이다. 그 조형언어를 올바로 읽을 줄 알게 되었을 때, 부처의 본질에 닿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중략) 조형언어를 통하여 불성(佛性)과 교감할 수 있다면, 그 조형언어를 훌륭히 구사한 예술품은 위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우방, ??원융과 조화??, 1990, p. 25)

이 견해는 깨달은 자를 형상화한 것이 불상이라고 하며 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상이 지니는 의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불상이야말로 경전보다 더 직접적인 불교사상의 표현이라 한다. 정말 그런가? 불상은 시각적인 형태를 얻었다는 점에서 구체적일지는 몰라도 직접적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또 구체적이라 하더라도 ① 불교사상과 ② 불상이라는 조형물, ③ 보는 사람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는 사람과 불상간에 지각적인 면에서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겠으나, 불상과 불교사상간의 관계가 직접적이라 할 수는 없다. 불상이 불교사상을 반영한다 할지라도 그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는 매우 모호하다. 불상이 경전보다 더 명시적으로 불교사상을 표현할 수는 없다.

또 ‘불교사상의 표현’이라고 했는데, ‘불교사상’은 문맥으로 보아 ‘가장 추상적인 개념’, ‘부처의 본질’, ‘불성’과 상통하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부처의 본질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초기불교부터 대승을 거쳐 선불교나 밀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사상사에 등장했던, 부처에 관한 수많은 견해와 해석을 상기하면, 이 말은 대단한―혹은 무모한―용기 없이는 쓰기 어려운 용어이다.

형이상학적이며 다양한 함의를 지녔던 부처의 본질이 과연 어떻게 불상에 구현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을 평이하게 지혜와 자비라고 한다면, 앞장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은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더 심오한 것―혹은 가장 추상적인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으로 옮겨져 전달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불상이 얻은 구체적 형상이 정신적 성찰 속의 이상이나 관념과 어떻게 일치하는가 하는 것은 중대한 의문이다. 그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근대 이전 역사 속의 불상의 작자가 반드시 그러한 심오한 부처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또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은 그것을 형상으로 옮길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 생각을 어떻게 만드는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었을까? 그것이 언어를 통한 지시로 전달될 성격의 것인가? 또 보는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가? 조형물은 구체적일지는 몰라도 말이나 글과 같이 직설적이 아닌 만큼, 참배자가 본 것이 원래 의도된 것과 같은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보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을 본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본다고 믿는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신이 아는 것과 일치한다고 느끼는 바를 부처님이라는 형상에서 아이덴티파이하는 것이다. 한정된 집단―시간적 의미이건, 지역단위의 의미이건, 혹은 종교공동체적 의미이건― 내에서 그러한 동일시가 관습적으로 특정한 형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는 있다.

또 불상의 작자는 보는 사람들의 관습적인 기대에 맞추어 그러한 형상을 의도적으로 산출해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형상은 애초부터 ‘가장 추상적인 관념’이나 ‘부처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보는 사람의 정서적인 공감을 유발하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또 그 형상은 그 내용을 위해 특별히 창안된 것이라기보다 불교(혹은 불교미술) 밖의 맥락에서 차용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앞서 본 헤이안시대의 불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형상을 얻게 되었으며, 어떤 의미로 의도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떤 경우이든 이 불상은 평범한 심미적 감상이나 지적 이해를 거부하는 듯하다. 적어도 나는 형상을 통해 구현된 이 불상의 의미층에 접근하는 데 힘겨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의식과 의문을 배제하고 이 불상을 단순히 부처님으로서 대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불상과 영험

사람들은 불상에서 지혜롭고 자비로운 형상이나 부처의 본질을 일깨우는 형상을 통해서만 감화를 받은 것이 아니다. 불상을 보는 사람들은 불상에서 그 이상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많은 불교 역사문헌들이 불상에 관해 기록한 것은 불상이 신비로운 이적(異蹟)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감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불상의 신비로운 이적은 ① 불상이 보이는 모습이나 행동, ② 참배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의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인간을 본뜬 형상을 갖추고 있다는 점 때문에 불상에서 일찍부터 사람들은 신비로운 변화를 보아 왔다. 불상은 흔히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빛을 뿜으며, 스스로 방향을 돌리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상을 깊은 신앙심으로 경모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그런 모습이 보일 수 있다. 정신적 현실도 현실이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 땀을 흘리는 이적은 신앙심과 무관하게 요즘도 간간이 목격된다.

불상은 이보다 더한, 상식적으로는 쉽게 납득되지 않은 이적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승전??(6세기 전반)의 도안전(道安傳)은 중국의 단계사(檀溪寺)에 있던 불상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전하고 있다.

빛나는 모습은 60척이나 되고, 신령한 상호(相好)가 밝게 드러나 매일 저녁 빛을 발하니, 전당에 있는 불상의 뒷면까지 비추어 환하게 빛났다. 또한 불상이 스스로 걸어가서 만산(萬山)에 이르렀다. 온 고을 사람이 찾아가 우러러보고 예불하였더니 다시 움직여 절로 돌아왔다.

불상이 스스로 걸어가는 환상을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낙양가람기??(6세기 중엽)에는 심지어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보태(普泰) 원년(531)에 이 절[歸覺寺]의 금으로 된 상에서 눈썹과 머리에 털이 나 전체를 덮었다. 상서좌승(尙書左丞)인 위계경(魏季景)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장천석(張天錫)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뒤 나라가 망했다. 이것도 상서롭지 못한 조짐이다”라고 했다. 다음 해에 이르러 광릉(廣陵)이 죽음을 당했다.

나는 이 기록을 읽을 때마다 늘 기이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기록상 불상이 보인 이적 가운데 합리적으로는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것으로 느껴져 왔다.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았을 것이라 상상하는 수밖에는 없다.

불상이 신비로운 이적을 보이는 두 번째 형태인, 소원을 들어준 이야기는 문헌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영험이 큰 불상으로 꼽히는 팔공산의 갓바위 불상에 늘 수많은 신도들이 각자의 염원을 지니고 운집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갓바위 불상의 무엇이 그리 특별한가? 그곳까지 올라가기가 제법 힘이 들고, 올라가면 경관이 좋다는 점이 첫눈에 느껴진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조 불상 자체에―적어도 시각적으로는―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불상 앞에 모여 시간을 잊고 간절히 정례(頂禮)를 드리는 신도들 가운데 불상의 형상에 관심을 쏟는 이는 없다. 여기서는 불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고사하고, 지혜로움과 자비로움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지조차도 물음이 되지 않는다. 내가 불상에 대해 정례하고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이 그러했던 것처럼, 불상을 영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눈은 심미적인 경험이나 영역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

불상의 물적 특성

불상은 분명히 인간의 모습을 닮아 있다. 불상이 움직이기도 하고 여러 영험을 일으키는 것은 불상이 인간 모습을 띠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불상은 유기물이 아니고 돌이나 나무, 마른 점토, 금속과 같은 무기물질로 되어 있다. 이런 물질이 부처를 대신하는 성물(聖物)로 전변(轉變)되는 과정이 있다. 주로 개안(開眼)의식이 그러한 전변 과정을 담당한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과정에서 불상에 부처의 성스러운 유골인 사리를 넣기도 하고 그 밖의 복장물(腹藏物)을 넣기도 했다. 고대 간다라의 불상 가운데에는 정수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들이 있는데, 나는 이 구멍들을 사리공(舍利孔), 즉 사리(부처의 骨身사리)를 넣었던 구멍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러한 구멍이 사리공이 아니라 부처의 몸에 충만한 에너지가 분출되는 구멍으로 부처의 중요한 신체적 특징을 재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런 구멍이 정수리의 중앙이 아니라 그 뒤쪽에 뚫린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아 후자의 견해는 설득력을 잃는다. 이러한 불상의 정수리 구멍은 이 지역뿐 아니라 인도 후기 불교의 중인도, 또 스리랑카의 불상에서도 보이기 때문에 이런 관습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모양으로 보아 대부분의 정수리 구멍은 불상이 대부분 모습을 갖춘 다음에 뚫어졌음을 알 수 있다.

거의 완성된 모습의 불상, 때로는 이미 완성된 불상의 머리에 구멍을 뚫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기괴하게 보이는 장면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불상에서 우선하는 것은 상(像)인가, 아니면 구멍에 넣어지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관습적으로 우선시하는 상의 조형적인 생김새는 이 경우에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불상은 마치 사리를 넣은 기물(器物)과도 같이 느껴진다.

한국의 조선시대 불상들에도 대부분 상의 내부에 복장물이 들어 있다. 상의 밑바닥이나 등에 큰 구멍을 내어 그 안에 수정구슬, 거울, 병, 곡식, 약재, 향료, 사리합, 후령통, 각종 다라니 등의 복장물을 넣고 막은 것이다. 이러한 복장물이 상의 일부로서 갖는 의미와 기능, 상과의 관계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이다. 이들 복장물은 앞서 이야기한 부처의 골신(骨身)사리나 때때로 상에 넣어졌던 모조 장기(臟器)와 성격이 일치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며, 이 점은 상의 의미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창의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근래 본격적인 자료 정리가 개시되면서 윤곽이 파악되고 있는 조선시대 후기 불상들은 상(像)이라고는 하나 거의 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규격화된 형태를 지니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도 3). 부처님의 상인 것은 틀림없겠으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불당내 장엄과 그 안에서 전개되는 의식(儀式)의 일부분으로서의 기물 같은 느낌마저 준다. 우리가 이러한 불상에서 보는 것은 무엇인가? 내 경험에서 이야기한다면, ‘보면서 보지 않는다’는 느낌도 든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한 상을 보면서 그 구체적인 생김새에는 그리 심각한 눈길을 주지 않는 듯하다.

불상의 물(物)로서의 성격은 그것이 성소(聖所)의 중심에서 부처님을 대신하는 성물이기도 했지만 복을 얻기 위한 봉헌물이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고대 간다라의 불교사원에는 수많은 불상이 봉헌물로 바쳐졌다. 한 사원에서 적게는 수십 점, 많게는 수백 점이 불상이 발견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불상들은 그룹에 따라 일정한 면모를 보여준다(도 4). 그 일정함은 보기에 따라서는 지루한 반복성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공방에서 수많은 불상들이 봉헌물로 쓰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제작되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한 불상들에 부처의 본질은 얼마나 구현되었을까? 또 그곳에서 불상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 수많은 불상 가운데 우리가 좋은 불상이라는 것을 선택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일까? 실은 이것은 간다라와 같이 대량 봉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후기의 불상에서도 아주 유사한 느낌을 받고 비슷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불상 보기

다시 한 박물관으로 돌아온다.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이다. 3층의 불교조각 전시실의 유물들은 대부분 통로와 같은 공간에 놓여 있다(도 5). (한 쪽 벽에 불상 머리만 올려져 있는 모습은 확실히 기괴한 느낌마저 준다.) 다만 한 상만이 별도의 독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상만이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잘 알려진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어두운 실내 중앙의 대 위에 앉아 우리를 맞는다(도 6). 이 반가사유상이 특별히 선택된 것은 박물관의 학예직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통로에 놓인 어느 상보다도 이 상이 뛰어난 예술품이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상만을 위해 고대의 예배공간의 아우라를 재현하여 마치 그곳에 안치된 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자 했을 것이다.

이 상만이 이렇게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또 이 공간은 얼마나 역사적 진실에 가까운가? 상을 보호하기 위한 유리장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공간은 너무 어두워서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이러한 재현은 여러 면에서 어디까지나 픽션이다. 현대에 들어와 재현되고 재구성된 불교미술사에서 높이 평가받게 된 이 상에 문자 그대로 ‘특별한 위치’를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이 상을 좋은 불상(이 경우에는 넓은 의미의 불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미술사 연구자로서 나도 이 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상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로부터 남아 있는 소수의 불교조각 유품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귀중한 두 개의 대형 금속 상 가운데 한 점이다. 이 상과 쌍을 이루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두 상은 조형적인 표현에서도 매우 우수하다는 것이 정평이 나 있다. 이 두 상이 없다면 우리 고대불교조각사를 그럴듯한 모습으로 그려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국보 83호 상은 흔히 미륵보살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성행한 미륵신앙을 반영하는 유물로 이해되고 있다. 또 우리 고대문화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을 나타내는 상징으로까지 여겨진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을 잘 안다. 또 이 상이 뛰어난 조각품이라고 스스로도 느껴 왔다. 그러나 나는 이 상이 모셔진 공간에 들어서면서 이 상을 심미적인 관점에서 조형물로만, 또 역사의 유물로만 볼 수 없음을 느끼며 갈등한다. 내 의식과 감각을 성찰하고 반추하면서 이 상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에 대한 수많은 찬탄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을 읽는다.

한국의 삼산관 사유상은 자신감 넘치는 신체 모델링으로 만든 생명력이 충만한 조각이다. 동안(童顔)에 귀여운 손가락, 편평한 가슴에 가는 허리 등은 어린 소년의 모습이다. 신체는 조용히 명상에 잠긴 듯한 자세이고 치마는 매우 두텁고 미풍에 날리는 듯하지만, 더 없이 강한 율동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정(靜)과 동(動)이 조화를 이루어 생명감을 고조시키는 조각도 드물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이 사유상 형식의 복잡한 구조를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조각한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불상은 인체 표현에 있어 동양 조각사뿐만 아니라 세계 조각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작품이라 생각된다. (강우방, ??한국 불교조각의 흐름?? 개정판, 1999, pp. 164-166)

나는 이 설명에 선뜻 공감할 수 없다. 여기 어디에도 이 상이 왜 종교적으로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혹은 종교적인 것이 심미적인 것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생명력이나 인체표현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은 이 글뿐 아니라 어느 누구의 어느 글에서도 도상학적이나 신앙적인 면에서가 아닌, 이 상의 종교적 의의를 설득력 있게 피력한 것을 이제까지 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에서 종교적인 감화를 받았다고 믿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상의 조각으로서의 성취를 보면서 받은 심미적인 감흥을 종교적인 감화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래 전 어느 절의 불당에서 새벽 예불 시간에 불상을 보며 황홀해 했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 낮에 보는 그 불상은 특별히 생명감이 넘치지도 않았고 비례가 잘 짜여 있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둠 속의 불당에 불이 켜지고 예불의 게송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앞에 앉은 불상은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불상은 갑자기 찬란히 생기가 넘치고 부처님이 마치 그 자리에 와 계신 듯했으며, 그 속에서 나는 부처님과, 게송의 범음(梵音)과 하나가 되었다.

물론 형상이 세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며, 내 감동은 상의 시각적인 특성 때문이라기보다 불당 안의 모든 것이 어우러진 종합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박물관이나 적막한 불당 내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박물관에 ‘예술품’으로 놓인 불상을 보면서, 그 형체의 생명감과 훌륭한 비례를 보면서 부처님의 본질을 느낀다고 믿는다면, 혹 그것은 단순히 딜레탕트의 유미적(唯美的) 심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어차피 삼라만상이 부처님이라 한다면, 불상이라는 물(物) 하나의 형상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나는 이 반가사유상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정례를 드리지 않는 한 의구심과 갈등으로, 또 한 번 오해와 억측으로 그 상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진 캡션:

1. <불상을 보는 여인>(로웰 조지아).

2. 목조 미륵불좌상, 일본 헤이안시대, 9세기, 나라(奈良) 토다이지(東大寺).

3. 창녕 관룡사 목조 불좌상, 조선시대 1629년.

4. 간다라 불상.

5. 국립중앙박물관(용산) 불교조각 전시실.

6. 국립중앙박물관(용산)의 불교조각 전시실 별실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이주형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불교미술 및 인도미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2년부터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로 있다. 간다라미술의 국제적 전문가이며, <간다라미술>(2003),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2004),<인도의 불교미술>(2006) 등의 저서와 <Early Mahayana and Gandharan Buddhism>, <Bodhisattvas in Gandharan Art>, <한국 고대 불교미술의 상(像)에 대한 의식(意識)과 경험>, <인도·중앙아시아의 원형당(圓形堂)과 석굴암>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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