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하비 지음, 허남결 옮김 《불교윤리학 입문》

윤리의 옷을 입은 불교

피터 하비 지음, 허남결 옮김
《불교윤리학 입문》

요즘 한국불교의 이슈는 권력에 의한 종교 차별이다. 불교계는 공적 영역에서 진행되는 차별에 맞서 20만의 불자들을 동원하여 항의 집회까지 열었다. 물리적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종교 갈등은 자칫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불자들은 이런 문제와 직면하면 자비와 관용이라는 교리와 정법수호라는 당위가 충돌하는 혼란을 겪는다. 실제로 군중집회를 여는 것은 불교적 대응이 아니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종교적 갈등으로 권력과 교단의 충돌이 빚어졌을 때 불교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이런 고민은 비단 교단 내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작년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한 처벌 규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리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성경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인권위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도 동성애차별금지법에 대해 전통 사상의 근간과 사회적 통념을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의 서명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역시 성적 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상의 두 사안은 현재 한국불교가 직면해 있는 현안들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이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책임 있는 종교로서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청받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교와 별반 상관없을 것 같은 동성애와 젠더 문제 등 갖가지 사회윤리적 현안에 대한 불교적 입장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학계가 이런 문제의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지만 학계는 원론적 차원의 문제에만 치중해 왔다.

이에 따라 일상적 삶의 진퇴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들은 사소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들 문제에 대한 불교적 입장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지혜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바로 이 같은 상황에 해답을 줄 만한 유용한 책이 출간되었다. 피터 하비(Peter Harvey)가 쓰고 허남결이 번역한 《불교윤리학 입문》이 바로 그 책이다. ‘토대, 가치와 쟁점, 불교가 윤리학의 옷을 입다’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불교윤리학의 이론적 토대는 무엇이며, 가치와 쟁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불교사상과 교리에 윤리학이라는 옷을 입힌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옷을 입히는가에 따라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불교 또한 불교적 주제와 개념에서 벗어나 현대적 문제의식을 통해 윤리학이라는 옷을 입게 되면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원론적이고 형이상학적 주제로 구성된 책은 굳이 내가 읽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다룬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윤리학의 옷을 입은 불교는 친근하게 느껴지며, 밥이라도 한 끼 사야 할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영국의 대표적 불교학자의 역작

피터 하비는 영국에서 최초로 불교학을 전공한 교수로 명성이 높다. 선덜랜드 대학의 불교학 교수인 하비는 영국불교학회의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며, 불교 관련 인터넷 잡지 《불교윤리학 저널》과 《현대불교연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역자 허남결은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역자는 윤리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불교를 재해석하고,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의 이런 노력은 10여 년 전에 번역 출간한 데미언 키온의 《불교와 생명윤리학》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이 책은 불교윤리학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우리 학계에 응용불교학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나아가 현대적 문제에 대해 불교적 해답을 모색하는 불자들에게 유용한 지침이 되어 왔다. 이처럼 이 책의 저자와 역자가 모두 이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 책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더하게 만든다.

역자는 “불교학자들도 정통 교학 중심의 연구 풍토에서 벗어나 일반 불자들의 일상적인 삶을 구체적으로 안내해 줄 수 있는 불교윤리학에 대해서도 좀 더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한다. 역자의 바람대로 이 책은 불교윤리학에 대한 체계적인 입문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책의 내용 자체가 학자는 물론 불교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불교 책이 불교적 관점에서 불교의 언어를 통해 불교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불교를 해석하고 구체적인 실천윤리와 행동지침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접근은 불교를 우리의 삶과 행동을 결정하는 살아 있는 행위윤리로 수용하도록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대사회의 제반 문제에 대한 불교윤리적 접근

이 책은 48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현대사회가 직면해 있는 제반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먼저 1장과 2장은 불교윤리학이 도덕적 판단의 준거로 삼아야 할 경전적 토대와 여기서 나온 불교의 핵심적 가치들을 조목조목 되짚는다. 저자는 불교윤리의 공통적 토대로써 윤회와 업, 사성제와 행위의 선악 판단 기준 등을 꼽고 있다. 또 불교의 핵심적 가치에 대해서는 업의 열매를 공유하는 보시, 재가자의 윤리인 5계, 조화와 공유 그리고 동료애 등으로 압축되는 사원의 가치, 부모와 자식 그리고 사람들 간의 윤리 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3장에서는 보살의 실천 등 대승불교의 윤리사상을 다룬다. 이들 내용을 통해 저자는 불교사상의 기본적 특징과 불교윤리의 토대와 가치를 확인한다.

4장부터 본격적으로 불교윤리학에 해당하는 주제를 다룬다. ‘자연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자세’라는 주제하에 살생과 육식 같은 주제에서부터 해충 박멸과 동물실험 등까지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다룬다. 나아가 나무와 숲, 환경주의 등으로 불교윤리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 5장에서는 불교윤리학의 현대적 쟁점에 해당하는 경제윤리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올바른 경제윤리로서 정명(正命), 수입의 적절한 사용, 부(富)에 대한 불교적 태도 등 실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그것이다. 사원경제, 불교와 자본주의, 불교경제학 같은 주제도 눈여겨볼 만한 내용들이다.

6장에서는 전쟁과 평화를 다룬다. 갈등의 원인에 대한 불교적 분석과 해결책, 폭력적 세상에 대한 성찰과 비폭력의 문제, 종교차별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했던 불교사의 사례도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7장과 8장에서는 자살과 안락사, 낙태와 피임 같은 전통적 문제가 나온다. 이 주제는 데미언 키온의 저작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다. 따라서 역자는 하비의 책과 키온의 책을 비교 탐독할 것을 권한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9장과 10장에서는 성적 평등과 동성애, 성적(性的) 소수자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여성의 정신적 잠재력과 성취, 젠더 문제와 여성의 지위, 불교문화 속에서 본 여성의 종교적 역할 등을 조명한다. 끝으로 10장에서는 오늘날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와 성전환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주제들은 우리 학계나 불교계가 전혀 다루지 못한 분야인 관계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다.

불교적 재료와 서양적 레시피

이상과 같이 《불교윤리학 입문》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경제문제, 전쟁과 평화, 안락사와 낙태, 성적 평등과 동성애 등 대단히 폭넓은 주제들을 다룬다. 현대사회는 이런 문제들과 직면해 있으며, 불교 또한 이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고 있다. 저자는 이런 요구에 대응하여 전통적 불교문헌과 불교권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해답을 모색한다. 그러나 하비는 이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중관이나 유식학 같은 복잡하고 심오한 교리를 동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전에 드러난 언어와 교설을 활용하여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소할 해법을 찾는다. 이를 통해 윤리가 복잡한 교리와 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것은 윤리가 실천의 문제이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내용을 재해석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접근임을 알 수 있다.

경전과 교리가 원재료와 같은 것이라면 사회적 이슈를 통해 재해석된 이 책의 내용은 가공된 상품에 해당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리와 경전을 활용해서 불교윤리학이라는 밥상을 차린다. 그것도 전통적 밥상이 아니라 불교적 재료를 사용하되 서양적 레시피에 의거한 퓨전요리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이 다루는 요리는 단품 요리가 아니라 뷔페 식단처럼 풍성하다. 그런 이유로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담백한 맛은 좀 덜한 편이다. 마치 풍성한 뷔페에서 실컷 먹고 나왔을 때처럼 다소 더부룩한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독자는 저자가 소개하는 레시피를 참조해 각자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주목할 또 다른 대목은 저자의 태도이다. 하비는 권위 있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그는 세밀하게 주석을 달고, 방대한 자료를 제시한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태도를 견지할 뿐 최종적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물론 이런 태도는 학문적 엄격성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위윤리를 통해 삶의 진퇴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면 다소 맥 빠지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불교윤리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참고서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 책 자체가 구체적 실천지침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저자 스스로가 그런 역할을 사양하고 독자에게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윤리 지침은 학자의 영역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의 영역이다. 저자는 당위적 윤리 지침을 제시하는 종교가이기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학자의 입장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다양한 주제와 이에 대한 풍부한 교리적 해석, 그리고 역사적 사례는 이들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는 데 유용한 정보와 방향을 제공한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 학계는 불교윤리학을 풍성하게 만드는 지침을 얻고, 불자들은 불교를 현대적 레시피로 조리해 낼 수 있는 신선한 영감을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

 

서재영 /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동국대학교 선학과에서 〈선의 생태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TV에서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인터넷 포교사이트 ‘서재영의 불교기초 교리강좌(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 강사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거쳐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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