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준 지음 《불교사회경제사상》

박경준 지음
《불교사회경제사상》
우리나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는 “확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 중이나 되어 버릴까” 하는 푸념은 사회관계 속에서 난관이나 개인의 심리적 갈등을 주체적으로 극복 못 하고 좌절할 때 나오는 말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교는 비사회적이고 개인의 안심입명이나 추구하는 종교라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전래의 한국불교가 대중들에게 보여준 면모는 사회적으로 은둔적이고 비사교적이었음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이런 식의 오해는 한국불교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는 불교 모두에 통용되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세속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수행을 한다는 사실이나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것 등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는 불교가 쉽게 염세주의나 허무주의, 혹은 회의주의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불교를 전통 종교로 삼아온 아시아권의 여러 나라에 지난 세기는 식민지배로부터의 독립운동이나 독재정권과의 반부패·민주화 투쟁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평생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탁하여 불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불교학과에 입학했던 필자에게도 1970,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은 불자로서의 양심을 크게 시험받던 시기였다. 중생구제를 표방하고 발고여락(拔苦與樂)의 자비와 지혜를 이야기하는 불교가 눈앞의 폭압적 현실과는 너무도 쉽게 타협하는 모습들을 목도하면서 과연 부처님 가르침의 참뜻은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고민은 불교의 사회·경제적 정의에 대한 목마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발간된 여익구 저 《민중불교입문》 현응 저 《깨달음과 역사》 법성 저 《앎의 해방, 삶의 해방》 석도수 저 《현대불교론》 여익구 외 공저 《현대한국불교론》 등의 서적들은 그런 불자적 양심의 발로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당시가 정권의 눈에 나면 반체제 인사로 몰아 사회적으로 갖은 탄압을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고, 사찰의 스님들은 종교와 정치는 별개의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선가(禪家)의 깨달음만을 고집하던 때였음을 감안한다면 상대적으로 위에 열거한 책들이 젊은 불자들에게 주는 감화는 그야말로 감로수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라마다 사정은 달라도 불교권 아시아의 많은 불자들에게도 비슷한 양심적 갈등이 있었다. 외신을 통해 전해진 베트남 틱광둑(Thich Quang Duc) 스님의 분신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멱정 역 《불타의 새 얼굴》은 그런 저간의 사정을 한국 불자들에게 소개해 준 책이었다.

동국대 불교학과 박경준 교수가 최근 《불교사회경제사상》을 발간했다. 1993년 〈원시불교의 사회·경제사상 연구〉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이래 꾸준히 추구해 온 불교의 사회적 실천이념에 대한 학문적 노력이 이제 한 권의 전문서로 집대성된 사실은 크게 축하할 일이다. 특히 시판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2쇄를 발행했다는 사실에서, 많은 불자들이 이 방면에 크게 목말라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앞에 열거한 서적들이 당시 눈앞의 현실에 대한 불교계의 대오각성과 사회참여를 호소한 실천적 요구만을 담고 있었던 데 비해, 순수하게 불교의 경전들 안에서 사회사상과 경제사상을 추출하고 그에 따른 불자들의 올바른 사회적 삶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말하자면 보다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입장에서 불교의 사회·경제적 이념을 총망라했을 뿐 아니라 명쾌히 요약하여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막스 베버나 슈펭글러, 베이트슨 등의 견해를 들어 근세 서구에서 불교가 이웃의 행복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로지 개인의 구제만을 위한 종교나 허무주의, 염세주의의 종교로 오해되었던 현실을 개탄한다. 아울러 개항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한국의 불교인 스스로가 새로운 시대상황의 요청에 부응하는 사회적·문화적 이념의 계발을 등한시해 왔던 사실도 지적한다. 그리고 “불타의 교설을 한낱 화석화된 언어와 문자가 아니라 역사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가르침으로 구현해가는 노력이야말로 불교 그 자체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라며 “불타의 근본이념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하고 재해석하여 불교의 새로운 역사적 지평을 열어가는 작업은 오늘을 살아가는 불교인에게 주어진 신성한 과제”라고 말한다. 크게 6장으로 나뉜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에서는 불교 흥기의 배경을 자연환경, 정치적 정황, 사회·경제적 배경으로 나누어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것은 불교가 아무리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성자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며 깨달음이라는 신비적 요소가 다분한 종교적 체험에 기반하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역사 속의 한 문화 현상임을 상기시킨다.

이어 제2장 불교사상의 실천적 기조에서는 다시 막스 베버나 올덴베르그, 베이트슨 등의 견해를 들어 불교가 비사회적이며 유물론, 염세주의, 허무주의, 이기주의로 오해받고 있는 사실을 적시하고, 그에 반해 열반(涅槃)이나 사성제(四聖諦), 무상(無常), 무아(無我) 등 초기불교의 근본 교의에 대한 상세한 고찰을 통해 불교가 얼마나 실천을 중시하는 종교인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열반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이자 최고선’으로서 ‘수행과 실천의 문제요, 체험과 증득의 문제’이므로 논의가 결코 쉽지 않은데, 비스베이더가 욕망을 버리려는 것 또한 욕망이 아닌가 하는 ‘욕망의 역설’을 들어 열반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에 대해 법욕(法欲, dhamma chandana)과 탄하(taṇhā)로 욕망을 구분하여 깊이 있게 고찰함으로써 욕망의 역설이 관념적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실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여러 경전들의 사례를 들어 불교의 실천적 가르침들을 소개하고 있다.

제3장 불교의 사회사상과 제4장 불교의 경제사상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는 한 장으로 묶여 있던 것인데, 이 책에서는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 보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도하고 있다. 불교의 사회관, 승가의 사회적 기능, 불교의 이상사회론, 인간관계의 윤리, 재(財)의 효용성, 생산론, 분배론, 직업론, 소비지출법과 4분법, 불교의 노동관 등 목차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경전 속에 운위되는 사회와 경제에 대한 부처님의 여러 교설을 거의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이 분야에 관한 한 교과서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제4장 말미에는 인도, 중국, 한국의 불교 교단경제사를 게재함으로써 불교의 경제사상이 현실의 교단에서는 어떻게 반영되어 왔는지 제시하고 있다.

제5장은 현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불교적 조명이라 하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이념적 대립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러 경전의 교설에 근거하여 “불교는 동기론적 자유주의요 결과론적 사회주의”라고 정의하면서 양자택일적 사고방식을 부정하고 있다. 이는 아직까지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대립만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여 살펴보기를 바라는 불교적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제6장 불교의 사회참여사상은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학위논문에는 없었는데, 나중에 발표된 것들 중 일부를 가려 뽑아 수정, 보완했다. 그 가운데 제1절 공업설(共業說)로 본 사회참여사상은 불교의 기본 개념 가운데 하나인 업보설(業報說)이 자칫 개인의 업과 그 과보만을 문제 삼아 숙명론처럼 오해되는 데 대해 아비달마논서(阿毘達磨論書)에 기세간(器世間)의 조성원리로 등장하는 공업이라는 개념을 부각시켜 철학적으로 심도 깊게 고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불교인의 사회적 실천은 이른바 정언명령(定言命令)”이며 “불교 승가는 본래 세속으로부터의 은신처라기보다는 일종의 대안사회”였으므로 “승가 본연의 사회적 기능을 우리는 공업사상의 실천윤리를 통해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2절 대승불교사상과 깨달음의 사회화는 불교계 일각에서 신대승(新大乘) 운동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대승불교 사상 일반을 몇몇 관점에서 재검토하여 “대승불교는 불교 본연의 종교적 생명력을 회복하여 사회 대중과 소통하며, 그들을 고통과 미혹에서 구제하려는 실천불교 내지는 참여불교”라고 밝히고 있다.

3절 현대 아시아의 참여불교운동과 4절 한국 민중불교운동의 재평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인도,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티베트, 일본과 1970, 80년대 우리나라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불교의 사회개혁운동 내지는 사회참여운동들을 리뷰한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일었던 민중불교운동의 전개 과정을 소상히 살피고 그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제4절의 글들은 앞으로 한국불교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크나큰 지남이 되어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을 통독하며 느낀 것은 저자의 땀과 노력으로 점철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인용은 저자가 우리 시대 대표적 학자의 한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불자들의 사회적 실천은 이제 정언명령이라는 저자의 단언은 두고두고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비율 세계 최고 수준, 극심한 청년실업, 자살률 급증과 출산율 급감, 고령화 속도 세계 1위,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세계 최고 수준,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율과 OECD 최장 노동시간 등, 조금만 훑어봐도 정말 일반 서민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제 및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전방위적인 불량국가이자, 엽기적인 나라다.”

이것은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 “프랑스보다 더 불량국가인 한국, 우리도 분노하자”의 일부이다. 한국의 불자로서 분노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대오각성하고 고민해야 할 현실 아닌가 싶다. 몇 해 전 정권의 종교편향 사태에 대해 원로 김종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글을 맺는다.

“현재의 종교편향은 그동안 불자들이 사회적 실천을 등한히 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므로 불자들이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면 해결될 일이다.” ■

 

이영근 / 불교출판인.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과정 수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의장,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연구간사, 도서출판 열린불교 대표, 천태종 출판부장 등 역임. 현재 미디어 8400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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