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은 사진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깝다면서 가까운 춘천으로 출사(出寫)라도 가자고 전화가 왔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소양강의 상고대는 매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아주 추운 날, 새벽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나뭇가지에 얼음꽃인 상고대가 피는 것이다. 상고대는 2시간 정도 활짝 피어 있다가 햇빛이 나오면 사라지는 신기루와도 같은 꽃이다. 새벽 추위를 견딜 자신도 없었지만, 바로 코앞에서 햇빛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그 허무함을 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굳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아도 꽃의 일생은 길어야 열흘이요 짧으면 신기루와도 같이 잠깐이다. 꽃은 무상함의 속성을 지녔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애닯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꽃들이 한때 투기의 대상이 되었으며 허영심을 채워 주는 대상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일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이 투기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귀족 부인들 사이엔 튤립 꽃을 모으는 것이 유행하였고 이런 풍조는 점차 중간 계층인 자산가와 상인 그리고 평민들 사이에도 번져나갔다. 튤립은 부의 상징과 함께 사회적 지위의 표시가 되었던 것이다. 온 나라 안은 ‘튤립 열풍’에 휩싸였으며, 튤립 구근 1개 가격이 황소 100마리, 노동자의 20년 급여에 해당하는 엄청난 가격을 형성하였다. 자고 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니,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어쩐지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말로 하자면 ‘묻지마 투자’가 횡행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 당나라 때 장안을 비롯하여 전국이 모란 열풍에 휩싸였는데 그때 장안의 10만 가구가 파산하였다고 한다. 시인 백거이는 장안의 모란 열풍에 대해 〈꽃을 사다〉라는 시를 남겼다.

장안의 봄이 이울려고 하니, 시끌벅적 마차들이 다닌다/ 모두들 모란의 계절이 왔다며, 너도나도 꽃을 사러 간다/ 꽃은 귀천 따라 일정한 값이 없으니, 낸 돈만큼 꽃송이를 보게 될 터/ 불타는 듯 한 일백송이 붉은 꽃, 자잘한 다섯 묶음 하얀 꽃/ 위에는 장막을 쳐서 가려주고, 옆에는 대울타리 짜서 보호한다// 집집마다 따라들 하니 풍속이 되어, 어리석은 사람들 깨닫지 못한다/ 어느 늙은 농부가, 우연히 꽃 파는 곳에 왔다가/ 고개 떨구고 홀로 장탄식하건만, 그 한숨을 알아채는 이 아무도 없다/ 한 포기 짙은 색 꽃이,중농 열 집의 세금이로다

모란 한 포기의 가격이  중농 열 집의 세금과 맞먹는 괴이한 형국을 두고 백거이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심정으로 시를 읊었다. 나라 전체가 돈을 아까워하지 않고 모란 한 송이에 수십 수천 전(錢)을 내고 사는 이 풍조에 대해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한탄의 글을 남겼다. 

모란이 필 무렵이면 황제도 신하들에게 “지금 장안의 어느 집 것이 으뜸이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권세 있고 부유한 집에서는 온갖 사치를 부리며 이 꽃을 즐겼다. 양귀비의 사촌오빠인 양국충은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수레 위에 화단을 꾸며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완상하였다고 전한다. 장안에 모란이 필 무렵이면 “비단수레 구르는 소리가 마른천둥이 치는 듯”하다고 했으니 귀족층들의 그 요란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궁전수비대에 소속된 사람들은 절과 도교 사원까지 세력을 뻗어 모란을 심어 많은 이익을 남겼고, 모란 한 그루에 수만 전(錢)씩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사회지도층이 모란의 투기와 열풍을 조장하고 부추긴 형국이다.

집 안에 모란 한 포기도 없는 사람들은 수치심과 함께 상대적인 빈곤에 시달렸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걷잡을 수 없는 모란에 대한 사치풍조는 장안의 십만 가구가 파산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사치풍조가 당의 멸망을 재촉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꽃에 대한 욕심은 아름답고도 맑은 욕심일진대, 꽃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린 그 시절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시대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양산해 내고 있고, 대중은 매스미디어가 양산해내는 가치관에 흔들리기 십상이다. 튤립의 투기와 모란의 열풍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그 당시 사람들 역시 시대와 사회가 만든 가치관에 따랐을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회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대중매체들은 끊임없이 “넌 이것만 가지면 행복할 거야”라고 속삭인다.

우리가 가지고 싶고 사고 싶은 것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말하자면 정서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싶지만 그 행복은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 어쩐지 꽃의 속성과 닮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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