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스님께서는 꼭 돼지같이 생겼소이다.”라고 농담을 하자 무학대사는 “왕께서는 꼭 부처님 같소이다”라고 응대를 하였다. 이성계가 “나는 그대에게 좋지 않은 농담을 하였는데 그대는 어찌 좋은 말로 응대를 하시오.”라고 묻자 무학대사는 “돼지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모두 돼지 같아 보이지만, 부처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모두 부처로 보이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무학대사의 재치가 엿보이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떠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훌륭한 얘기라고 생각된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남보다 앞세우려는 공명심이 있어서 그 때문에 상대방을 비난하고 끌어내리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특히 상업방송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다. 이른바 예능프로에서 출연자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실수나 약점을 지적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재치를 자랑하면서 웃음을 유발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예능프로가 사람들에게 상대방에 대한 지적과 비난에는 익숙하고 칭찬에는 인색하도록 하는 역기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의 대화를 보면 상대방에 대한 지적과 욕설이 아주 자연스러운데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거칠고 투박하고 순간적인 감정의 무절제한 표출이 심화되는 사회로 가는 것이 아닌지도 걱정이 된다.

나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위하여 노력은 하지만 순간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불필요하고도 과도한 비난의 감정에 사로잡힐 경우가 있는데, 차를 운전할 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급하게 차선변경을 하거나 무모하게 끼어들거나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호를 무시하고 급하게 달려오는 경우에는 그 상대방에 대해 비난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러한 경우 상대방에게 급박한 사정(예를 들어 임산부가 출산이 임박하여 병원으로 가거나 너무도 중요한 일에 늦은 경우 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는 질서를 무시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무학대사의 얘기로 보자면 나도 질서를 무시하면서 자기 이익만 좇는 나쁜 사람이어서 상대방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고 과연 나는 운전 중에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겠는가 하고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진다. 

올해에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상대방 운전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당시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신뢰를 가지도록 노력하고, 비단 자동차 운전만이 아니라 여러 인간관계에서도 부처의 눈으로 부처를 보려고 노력하자고 다짐해 본다.

사실 나를 재단하는 눈금이 듬성듬성한 자와 상대방을 재단하는 눈금이 촘촘한 이중의 잣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 또한 상대방을 부처가 아닌 모자란 중생으로 간주하는 버릇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와 딸, 부모님, 동생들, 친구들, 직장 식구들, 그 외 내가 알거나 모르는 모든 사람들 등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부처들에게 진심으로 경배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신묘년의 생활 지침은 “부처의 눈으로 그대 안의 부처를 보고 경배합니다.”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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