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서울 조계사 경내에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는 ‘한국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제로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열린 토론회에서는 한국불교가 당면한 현실적문제로 비효율적인 승가교육, 한국사회 담론에 대한 참여부족, 도심포교의 실패, 세계화에 대한 동력 부재,재정 투명성 확보, 재가신자의 역할 확대 부족, 언어체계의 대중성 실패 등이 주제발표자를 통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토론에서는 몇 가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이 쏟아졌다고 불교언론이 전하고 있다.

1,600여 년의 장구한 역사와 전통과 독특한 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온 한국불교가 앞으로도 이 나라 이 민족과 함께 살아남아 발전하려면 이번 토론회에서 표출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근본적인 연구와 대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불교종단 행정조직의 문제, 계율의 문제, 재정의 투명성 보장과 사찰경제의 합리화 문제, 불교종단의 특수성과 선거제도의 합리적 개혁 방안, 포교의 현대화, 사설사암의 근본적 대책, 무속행위와 매불행위에 대한 불교종단의 근본 대책, 49재와 천도재 등 죽은 자만을 위한 불교의식 중심의 사찰운영비 조달 문제, 일부 성직자들 사이에 번져 가는 골프, 스키 등 호화방탕 생활풍조의 발본색원 등등……. 범불교적으로 과감히 개혁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 헤아릴 수도 없이 산적해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최단기간 내에 ‘문맹국가’의 대열에서 벗어나 초고속으로 ‘고학력사회 국가’가 되었다. 유네스코의 통계를 빌릴 것도 없이 우리나라는 세계 최강국이며,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인 미국보다도 문맹률이 낮은 문명국이 되었다. 또한 해마다 70만 명에서 80만 명에 이르는 고교 졸업자, 대학 졸업자, 대학원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 머지않아 ‘초고학력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국민 대다수가 고학력자인 초고도문명 사회에서는 옛날처럼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어떤 종교도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불교는 어떻게 신도들을 가르쳐왔는가.

‘기도만 열심히 해라. 아들딸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것이다. ……불공만 열심히 올려라. 남편의 병이 틀림없이 나을 것이다. ……불상조성, 범종조성 불사에 시주를 하면 큰 복이 올 것이다. ……49재를 올려야 조상이 도와준다. ……천도재를 잘 지내야 모든 조상들이 도와주어 만사형통이 이루어진다.……방생법회에 동참하면 복이 돌아온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불교는 축원을 해주고 복이나 빌어주고, 49재나 지내주고, 천도재나 지내주고, 방생법회를 핑계 삼아 시주를 받아 근근히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불상조성불사, 범종 불사, 탑조성 불사, 법당건립 불사 등등을 빌미로 불자들의 시주를 받아 사찰을 운영해 오기도 했다. 근년에는 문화재사찰 관광사찰을 중심으로 입장료 수입, 문화재 관람료 수입,템플스테이 운영, 국가예산 지원 등등 수입원을 다변화하면서 거액을 만지는 사찰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기독교 측의 질시와 음해와 공격도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광신적인 개신교 측의 방해 공작과 음해 공작이 격렬해져서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

이렇듯 사회여건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불교가 과연 옛날 모습 그대로 답습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반인들에게 불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49재, 천도재나 올리고 종불사, 탑불사, 불상조성이나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멀고, 멀고, 멀기만 한 ‘참선’만을 내세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여길지도 모르는 ‘똥막대기’ ‘뜰앞의 잣나무’ ‘판치생모’ ‘이 뭣꼬?’만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구습을 탈피하지 못한 채 오불관언한다면 국민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며, 앞으로 한국불교가 설 땅은 그만큼 좁아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2천만 불교도’를 자랑한다. 2천만 불교도는 결코 오래된 사찰 건물이 좋아서 불교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요, 스님들이 얼짱, 몸짱이라 불교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다. 스님들이 최고급 외국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멋있어서도 아니요, 골프 잘 치고, 스키 잘 타는 것이 멋있어서도 아니며, 별장급 토굴이 부러워서 불교를 신봉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형제는 물론 세속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버리고 맑고 향기로운 청빈한 삶을 통해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자비롭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도록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이끌어 주시는 그 거룩한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워 스님을 따르고, 스님을 우러르며 단돈 몇푼이라도 정성껏 시주하며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불교가 종단의 온갖 선거에서 잡음을 일으키기나 하고 허영과 사치가 불교계에서 완전히 근절되지 않은 채 자행된다면, 불교종단의 역사와 전통이 수천 년이 넘고, 내세우는 종지와 종법과 가르침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고학력 문명사회에서는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21세기는 물론 세세생생 한국불교가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로서, 인천의 스승으로 계속 살아남으려면 제도적 개혁이나 개선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청빈한 삶을 자랑으로 여기는 무소유 정신과 칼날 같은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 철저한 지계정신, 이 두 가지를 한국불교 미래의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무너지면 어떤 경우에도 불교는, 아니 어떤 종교든 결코 이 땅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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