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새롭게 선보이는 대형 아파트 단지의 명성은 조경에 좌우된다. 특히 명품 소나무나 어떤 나무를 잘 심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대형 건설사의 광고를 보면 아예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숲과 자연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많다. 자연을 강조하고 친환경을 강조해야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교장으로 처음 부임한 학교는 건물이 오래되고 메마른 운동장만 있어 삭막한 환경이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하루 종일 보내는 학교이지만 부대시설이나 친환경 요소가 너무 부족했다.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데 고정관념들에 의해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뜻을 같이하는 선생님 몇 명과 함께 학교숲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 운동장 전체를 학교숲으로 조성했다. 이제 학교는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러 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학교숲이 아름다운 학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무엇보다 함께 사는 공동체 모두가 행복해한다. 사시사철 다양한 모습의 작은 식물원이 선사하는 볼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불교는 숲의 종교라 할 만큼 숲과 인연이 깊다. 부처님은 숲에서 태어나,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며 깨닫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셨다. 달이 밝은 보름날에도 숲속에서 법을 설하시고 주요 대목에는 항상 숲속에서 법회가 이루어졌다. 부처님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훼손하지 말라고 가르쳤으며, 나무를 심고 숲 가꾸기를 통해 자비와 연기법을 설하셨다.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는 대나무 숲에 지은 절이었다. 우루벨라숲, 룸비니동산, 녹야원 등은 설법의 주요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부처님께서 말라 죽어 그늘도 없는 나무 밑에 앉아 침입을 막은 일화는 유명하다. 나무가 없으면 의존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암시적 비유로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 한국불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주요 사찰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자연의 깊은 맛을 주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장면도 많이 보인다. 사찰별로 주위 환경에 맞는 나무를 잘 심고 관리하고 있는지, 도량 주위에 심어진 꽃들은 격에 맞는지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불자를 비롯한 국민들이 도량을 찾을 때 그곳의 수목이나 꽃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절에 심어진 수목과 화초에 대한 의미나 교육이 체계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시점에 한국 최대 종교인 불교계에서 경전에 나오는 식물이나 불교문화, 사상과 관련된 식물을 한군데로 모은 불교식물원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 환경이라는 테마도 맞을뿐더러 불교 자체가 갖고 있는 자연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불교식물원이 꼭 필요하다. 우선 경전에 등장하는 나무와 꽃들을 연구하고 그 지닌 의미도 교육할 수 있다.

 불교의 상징 꽃인 연꽃 한 분야만 하더라도 수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립수목원을 비롯하여 천리포수목원, 한택수목원 등이 많이 알려졌으며 수도권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아침고요수목원, 평강식물원, 들꽃수목원 등이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침고요식물원과 평강식물원은 기독교 정신을 담고 있으며 아침고요식물원내에는 작은 교회도 있다. 경기도 양주에는 성경식물원도 있어 기독교사상과 연관된 식물을 전시하고 연구하기도 한다. 자연친화적인 불교 사찰이 많지만 전문적인 불교식물원이 없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불교식물원이 조성될 경우 기대되는 효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많다고 본다. 우선 청소년의 학습 공간으로 관찰학습, 전일제 수업 활동, 창의적 체험 활동, 봉사활동(가이드), 수목 연구 활동 공간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불자들에게는 자부심을 길러주는 불교 교육 장소나 방생법회, 명소관람 코스로도 인기를 끌 수 있다. 일반 국민에게는 불교와 한국 역사, 전통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유용하며 세계에서 유일한 불교식물원으로 외국관광객 유치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기존 교구본사급 큰 사찰을 배경으로 식물원을 조성할 경우 수목장(樹木葬) 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불교사상과 연계된 수목과 꽃들을 살펴보면 수목으로는 모감주, 보리수, 보리자 종류, 왕보리수, 향나무, 염주나무, 주목, 파초, 소나무, 차나무, 불수, 불두화, 대나무, 구기자 등이 있으며  꽃으로는 부처꽃, 동자꽃, 금불초(金佛草), 염주황기, 아기동자꽃, 율무, 파초, 고소, 율무 등 매우 다양하다.

연꽃의 경우 백련, 홍련, 청련, 가시연, 어리연, 수련 등을 모아  테마 수목원으로 조성할 수도 있다.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 당시의 보리수, 대나무, 사라쌍수, 우단향, 전단향, 우담발라 등에 관한 식물 연구도 필요하다. 이와 같이 부처님과 관련이 있거나 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초본과 목본을 심어 증식시키고 보전, 전시한다면 사부대중에게 경배심과 신앙심을 새로이 불러일으켜 불교 순례지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학술적인 관점에서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종(種) 다양성 극빈국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귀화식물의 생태적 횡포와 외래종의 무분별한 반입으로 인해 악영향을 끼치는 바람에 우리 고유 식물들이 멸종될 우려까지 생겨난다. 생태위기의 시대에 전통의 종교인 불교가 수목원을 설립하여 불교와 한반도 고유 식물을 보전하고 위기의 종들을 지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상징적인 위치에 조성된 불교식물원은 사찰 식생조경에 대한 상담에서부터 고유한 식물과 불교 관련 식물들을 길러 필요한 사찰에 원활히 공급하는 기능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별 특성을 살려 사찰 조경을 할 수 있고 경쟁력 있는 작은 식물원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야에 독보적인 사찰생태 환경운동가 김재일 선생은 108사찰 생태탐방을 시작하여 사찰생태를 모니터링하였다고 한다. 결과는 우리 전통사찰의 식생조경에 전통성과 일관성이 너무 없다는 점이었다.

삼보사찰이며, 5대 적멸보궁이며, 3대 기도처며, 25개 본사 사찰이며 생각 없이 심은 조경수들이 경내외를 판치고 있는 실정이란다. 사찰 관리자들이 수목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가까운 곳에서 무작위로 무원칙하게 꽃과 나무들을 사다 어지러이 심어 놓은 탓이다.

게다가 지자체의 개발 사업으로 인해 사찰의 전통 조경 식생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더라도 전문 불교식물원이 꼭 필요하다. 인력도 양성하고 연수를 통해 정체성 있는 조경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꼭 이루어야 한다. 거시적 안목으로 볼 때 지금이 선택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어느 조직보다 여건이 좋기 때문에 적극적 의지만 일으킨다면 불교식물원의 꿈은 그리 멀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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