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학자, 아름다운 사람

안옥선

■ 1962년 전남 광주 출생.
■전남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1988년 〈바가바드기타의 박티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와이대학교에서 세계적 불교학자 칼루파하나 교수의 지도로 1995년 〈자비와 인(仁): 초기불교와 선진유교의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불교평론》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2003년 9월부터 순천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10년 10월 27일 지병으로 4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불교윤리와 페미니즘의 보살핌의 윤리〉 〈초기불교에 나타난 여성 성불가능성의 반불교성 고찰〉 〈불교와 기독교 윤리에서의 자기애와 사랑〉을 비롯해 50여 편의 논문을,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 《불교와 인권》 《불교의 선악론》 등 10여 권의 저술(공저서 및 역서 포함)을 남겼다.
■ 수상 : 철학연구회 올해의 논문상(1999), 불교출판문화우수상(2008, 《불교와 인권》), 청송학술상(2009).

 

얼마 전 하이쿠 한 수를 읽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이싸,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엮음, 이레출판사)

병원에 몇 번 실려간 적이 있는 나는 이 하이쿠를 읽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하고 기뻤다. 그런데 며칠 후 아내에게 당신보다 앞서 만났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과 결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던, 절친하게 지냈던 벗 안옥선 교수가 귀천(歸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고 지금도 먹먹한 심정이다.

내가 안 교수와 친교를 갖게 된 것은 안 교수와 하와이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한 지인을 통해서다. 하와이대에 가서 보니 아주 강단 있고 성실한 학인이 있다, 자신이 해야 할 목표를 세워 놓고, 기간을 정해서 맹렬히 돌진한다, 성품도 아주 좋다며 곧 학위를 받고 귀국할 테니 꼭 만나보라고 했다.

이런 인연으로 안 교수와 처음 만났다. 광주에 거주하고 있던 안 교수가 일면식도 없던 나를 만나려고 박사학위 논문을 가지고 서울까지 온 것이다. 첫인상이 좋았다. 눈이 맑고 얼굴은 조각미인은 아니지만 선하고 단아했다. 안 교수가 주고 간 논문을 펼쳐 보니, 배움도 짧고 영어에도 어두운 나는 한 페이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총명하고 영어도 잘하는 후배 기자에게 논문을 넘겨 주면서 잘 읽어보고 신문에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후배는 그 다음 날 나를 찾아와 자기도 불교를 잘 모르지만 기존의 논문과는 확실히 다르고 탁월한 것 같으니 꼭 소개하겠다고 했다.

이 일 이후로 안 교수와 자주 통화했다. 주로 내가 아쉬울 때였다. 불교 전문서적 출판사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던 나는 불교학 전공자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어려운 불교 개념에 헤맸다.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서점에 달려가 책을 찾아보고 간신히 해결하곤 했는데,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것이다. 책으로 낼 만한 원고가 없어 애를 태우는 나를 위해 대형 출판사에서 탐내던 원고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 《불교와 인권》을 나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는 큰스님과 사부로 여기는 불교계 선배의 주도로 계간 《불교평론》을 창간하게 되었다. 나는 별 능력도 없는데, 창간 편집장을 맡고 편집위원을 위촉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때 첫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안 교수였다.

안 교수라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반, 광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반이었다. 내가 어차피 해야 할 일 저질러 보자, 무작정 전화를 했다. 안 교수는 단번에 허락해 주었다.

‘불교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역사·정치·사회현상을 불교적 시각에서 분석 비판 조명한다, 이를 위해 기성과 신인·학력을 구분하지 않으며 도전적이고 건전한 비판을 환영한다’는 《불교평론》의 모토에 적극 찬성해 준 것이다. 고맙고 미안하게도 안 교수는 편집회의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주었다. 회의비라고는 왕복 교통비밖에 주지 않았는데도 그 먼 광주에서 서울까지 와서 회의에 참석하고 당일로 막차를 타고 내려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원고가 펑크 나면―당시 주간은 마감이 늦어지면 불같이 화를 내고 나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다―나는 안 교수에게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했다, 도와달라고. 안교수는 밤을 새워서라도 땜질을 해 주든지, 당신의 지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안 교수는 극심한 고통이 따르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의연했다고 한다. 명상과 수식관을 통해 몸을 추스르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지난 9월부터는 강의도 재개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접고 요양에만 집중했다면 이렇게 일찍 가지 않았을 것인데 미련할 정도로 지나치게 성실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안 교수가 남긴 학문적 성취와 인간적 풍모는 학계 지인들의 회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불교윤리를 통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학자였다. 불교학계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고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전남대 철학과 이중표 교수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응용불교학을 지향하는 나는 안 교수의 논문과 저술을 보고 깜짝깜짝 놀랐다. 성실하게 학문에 임하는 자세, 뛰어난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항상 겸손했던 인간적 풍모는 본받아야 할 학자, 선비의 전형이다.

―동국대 불교학과 박경준 교수

매우 부지런하고 탁월한 불교학자였다. 천재와 예쁜 사람은 이렇게 일찍 하늘로 가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

그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유학 갔다 온 이후 너무나 열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안 교수가 남긴 논문과 저술의 양이 이를 입증한다. 불교학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가 응용불교학이다. 불교를 완전하게 이해해야 하고 다른 학문에도 해박해야 한다. 안 교수는 이 모든 것을 갖췄다. 철저하게 불교경전에 근거하여 재해석하고, 타 학문과 접목을 통해서 새로운 학문체계를 개척했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김성철 교수

학문과 삶을 이원화시키지 않고 자신이 학문적으로 궁구하는 윤리적 삶의 태도를 자신의 삶에서 몸소 실천하고자 하는 분이다. 탐진치를 제거한 부처님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고통받는 일체 생명에 대한 자비의 마음뿐이듯 안 선생의 마음에도 그런 따뜻함이 있는 듯싶다.

―이화여대 철학과 한자경 교수

내가 아는 한 가장 성실한 학자다. 초기불교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초기불교에만 매몰되지 않고 원효사상을 연구하고 한국불교에 대한 현실에도 관심을 갖고 천착했다. 많이 배우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인문한국연구센터 석길암 교수

2010년 10월 27일 안옥선 교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옥선 언니는 제가 아는 분 중에서 가장 큰 분입니다. 언제나 여전할 줄 알았고 그렇게 믿었는데 그 여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허무가 되었습니다. 저는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가 있는 마을에서 자랐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제외한 삼촌 고모들이 모두 기독교인이고 나도 내가 언제부터 교회를 다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교회를 다녔기에 유년시절 교회는 나의 놀이터였고, 나의 생활공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여기 일본문화아카데미에 오게 된 것은 안옥선 언니에 대한 존경심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습니다. 안옥선 언니, 언니 그 자체가 불교였습니다.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어떤 가르침을 받았기에 저렇게 큰 사람일 수 있을까 하는 그 마음이 나를 여기로 이끌어 왔을 것 같습니다.

―김남숙 시인의 블로그에서

지인들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안 교수는 성실하고, 품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불교를 전공하고 사랑했으며, 불교에 갇히지 않고 타 종교를 이해하고 소통했다. 안 교수에 대한 지인들의 찬사가 그저 망자에 대한 예의와 추모 때문이 아님은 안 교수가 남긴 논문과 저술을 통해 확인된다.

안 교수는 50여 편이 넘는 논문과 10여 권의 저술(공저서 포함)을 남겼다. 짧은 시간에 이만큼의 성과를 내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안 교수는 식사 시간과 1시간여의 산책, 5~6시간의 수면 시간을 빼고는 서재에 스스로를 유폐하고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안 교수는 상아탑에 안주하는 학자가 아니었다. 한 불교계 신문(〈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사회가 산업화, 정보화되면서 기존 전통문화의 질서마저 급격히 무너져 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불교학이 ‘학문을 위한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내 삶, 내가 사는 사회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만 고집하면 오히려 그 하나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순수불교학이 근간이 되어야 하겠지만 불교학의 현실참여와 연구 주제의 다양화도 필요하다. 나는 한국이란 사회에서 불교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주어진 생활 자체가 모두 불교학의 주제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여건 속에서 불교학을 통해 모순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안 교수의 이러한 학문적 자세와 실천은 단연 돋보였다.

1999년 강사 시절 발표한 〈불교의 윤리와 페미니즘〉(《백련불교논집》 7집)으로 철학연구회의 ‘올해의 논문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신진학자 1명에게 시상하는데 불교 논문으로서는 최초였다.

2009년에는 ‘청송학술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회는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불교시대사 간) 《불교와 인권》(불교시대사 간)이란 저서는 윤리학과 사회철학분야에서 동서양 철학 사이의 학문적 가교를 굳건히 건립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는 2001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됐다. 그간의 연구 성과와 프로젝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6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집필한 《불교와 인권》은 2008년 제5회 불교출판문화우수상, 2009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됐다.

안 교수는 평소 닮고 싶은 학자로 주디스 버틀러와 한나 아렌트를 꼽았다 한다. 주디스 버틀러는 동성애자 이론의 창시자다. 페미니즘을 주창하여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도 아래 진행되던 페미니즘의 주류를 반대하고, 조화를 추구했던 학자. 한나 아렌트는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에게 실존철학을 공부했던 학자로,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가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명저를 통해 당시 문맹률이 가장 낮았던 독일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구하고, 사회문제에 실천적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안 교수는 학문적 멘토로 삼았던 이들 학자처럼 사회의 소수자, 약자를 자신의 실천적 연구 주제로 삼았다. 구체적으로는 인권, 생명, 트렌스젠더, 여성, 비구니, 동물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인권 문제는 안 교수가 깊이 천착했던 분야였다. 안 교수의 연구 성과가 발표되기 전에 서양철학계에서는 불교에는 인권 개념 자체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인권은 자아의 확립이 전제조건인데 자아의 소멸을 말하는 불교에 인권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서양에서 불교윤리학의 선구적 개척자인 데미안 키온도 “불교에 인권의 개념이 미발달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불교평론》에 발표한 〈불교에 인권이 있는가―키온의 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인간의 존엄성 내지 불교의 권리 개념은 서양 근대 시민 사회 이후 자유주의 윤리에서처럼 자아를 원자적이고 개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으로 이해하여 윤리의 주체인 자아에 대해 판이한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즉, 권리의 개념 또한 무아, 연기, 공의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무상·무아이기 때문에 불교에 독특한 인권사상이 있다, 무상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 불교와 페미니즘을 말해야 하는가〉(《불교평론》)에서는 불교의 이중성을 해부하고, ‘불교와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불교계의 성 불평등적 의식과 제도를 드러내고 교정해야 한다’ ‘여성의 관점에서 한국불교의 역사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안 교수의 논의는 인간의 범위를 넘어 동물의 존중에까지 미쳤다(〈인간과 동물의 무경계적 인식과 실천: 불교와 동물해방론의 경우〉(《범한철학》 31집, 2003년), 〈업설에 나타난 불교 생명관의 한 특징: 인간과 동물의 평등〉(《철학연구》 89집, 2004년)). 뿐만 아니라 〈트랜스젠더리즘과 불교의 ‘성(별) 공성’〉(《불교학연구》 제23호, 2009년) 등 소수자, 약자에게 관심을 놓지 않았다.

품이 넓고 자비로웠던 아름다운 사람 뛰어난 학자는, 아쉽게도 너무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슬프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으려고 한다. 부디 열반락을 누리시길 빈다.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당나라 시인 왕발의 시 한 구절을 끝으로 안 선생과 이별을 고한다.

진정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이라도 이웃과 같으리.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   

 

 

고광영 
전 《불교평론》 편집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일어과를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인간론을 중심으로 살펴본 다산 정약용 사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불교 전문 출판사 불교시대사 대표를 역임했다. 저서로 《백문백답―불·보살·신중편》(고명석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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