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화선 연구 동향

한국 학계는 간화선에 대한 관심도 크고 연구물도 적지 않게 발표했다. 2010년 3월 24일 국회도서관 소장을 기준으로, 1990년 이후의 연구만 해도 단행본 10권 이상, 연구논문 160여 편이 발표되었다. 간화선과 직·간접으로 관련한 석사논문이 30여 편이 나왔으며, 간화선을 직접 주제로 연구한 박사논문 14편, 관련 소재로 다룬 박사논문 10편이 발표되었다. 국제학술대회가 2번 열렸으며, 12회 연속 세미나도 진행되었다. 간화선이 학계의 전면으로 부각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외국 학계와 한국 학계의 연구 주제를 분석하여, 한국 학계가 간화선을 연구함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용을 알아볼 것이다.  

1930년대 초반 스즈키 다이세쓰(1870~1966)는 선(그의 용어로는 ‘선불교, Zen Buddhism’)을 서구에 소개했다. 그는 영어로 발표한 책, Essays in Zen Buddhism에서 간화선을 다루었는데, 이 작품은 전문학술서라기보다는 고급 교양서적에 가깝다. 영어권의 학계가 간화선을 접한 것은 스즈키가 선을 영어로 소개한 덕분이다. 스즈키는 이 책과 이후로 발표한 논문에서 선 체험, 깨달음의 경지는 인간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며,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분별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선의 깨달음과 그 과정은 논리 추론의 영역 밖이란 점에서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는다.

스즈키 이후 서구 학계 혹은 지식인들은 선을 비이성적인 신비주의로 받아들였다. 특히 지식과 논리를 거부하고 한꺼번에 무엇인가를 알아낸다(Satori: Enlightenment)고 하는 체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있다고 단정하지도 못하는 신비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체험을 위한 장치인 ‘공안(公案)’은 해독 불가능한 신비 장치였으며, 공안에 대한 주석 모음집인 공안집은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미궁에 빠지는 모래 늪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기에 한동안 간화선은 언표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졌다.

한동안 영어권의 학자들은 간화선과 관련하여 이른바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한 종교 체험’을 살짝 비켜 가서 논리와 자료로 접근할 수 있는 ‘공안의 역사’를 주요 탐구 주제로 삼았다. 현재 공안을 신비한 종교 체험의 영역으로 남겨 두려는 일군의 학자가 있고, 이와는 반대로 공안을 불교 교학과 논리로 해석하려는 학자도 있다. 이런 상황은 간화선과 공안집이 종교체험의 심리현상에 관련되었다는 점에서도 기인하지만, 스즈키가 선 특히 간화선(그의 표현으로는 “공안 수행, The Koan Exercise”)을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한 종교 체험이라고 기술했고, 학자들이 스즈키의 표현을 암묵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간화선에 관한 학술 연구는 일본 학계에서 비롯되었다. 간화선 연구 이전의 일본 학계의 선에 관한 연구는 주로 문헌학적 작업이었다. 아라키 겐고(荒木見悟)는 당(唐)·송(宋)·원(元)·명대(明代) 중국철학의 발전이란 스펙트럼으로 불교와 유학을 연속선상에 놓고 화엄과 선을 연구하면서 간화선을 주목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대혜(大慧)가 당대 조사선을 계승하면서도 송대 신유학과 소통하면서 발전시킨 것이 간화선이다.

그는 서간문 형식의 법문을 정리해서 발표했는데, 그것이 최초의 학술서적으로 출간된 《서장(書狀)》 판본이다. 아라키 겐고의 연구는 대혜의 간화선을 본격 학술 주제로 다루었다는 의미를 지니며, 동아시아 철학의 발전의 관점에서 선을 유학과 관련하여 조망했다는 기념비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물을 엄격하게 분석하자면, 그가 간화선을 포함한 선에 정통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그의 관심은 간화선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서 간화선을 전문 주제로 분석한 원류는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의 연구라 할 수 있다. 그는 ‘무자(無字) 공안과 간화’ ‘간화선에서 믿음과 의심’ ‘간화선과 묵조선의 비교’ ‘임제종의 발전과 간화선’ ‘간화선과 선문답’ 등의 세부 주제를 발굴했다. 

많은 연구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무자 공안’과 관련하여, 학자들은 그의 연구 이후로 간화선을 무자 공안과 연결시켜 분석했다. 심지어는 무자 공안을 참구하는 것이 간화선이라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대혜가 무자를 즐겨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자를 참구해야만 간화선이라고 한다면 간화의 기본 철학을 오해했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다.

또 간화의 핵심 주제인 ‘간화선에서 믿음과 의심의 문제’에 관해, 그는 《화엄경》 《임제록》과 《서장》에서 ‘신(信)’과 ‘의(疑)’의 용례를 각각 추출하여 비교했다. 그는 대혜가 《화엄경》과 《임제록》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던 ‘의심’을 돈오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설정했다고 정리했다. 간화선 전공자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그의 주장은 이후의 연구에서도 반복되었다.

간화선 연구 주제의 발전보다 더 주목할 내용이 바로 연구 방법론의 진화이다. 현재 간화선에 대한 외국 학계의 연구 방법론은 매우 실증적이다. 일본 학계는 문헌학을 바탕으로 선문헌 분석에 치중하고 있다. 이시이 슈도는 《대혜어록》과 《대혜연보》를 조목조목 분석하여 자료를 정리했는데, 그가 정리한 자료는 이 주제의 연구에 기본 데이터베이스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학계는 현장 자료 조사(Field Work)를 거쳐 선문헌 이외의 자료를 분석하여 숨어 있는 동인을 분석하고 있다. 지멜로는 간화선과 황실의 후원 관계에 주목하는 연구물을 발표했는데, 그의 방법론과 유사는 연구가 속속 진행되었다. 

이미 간화선의 개괄적인 모습과 주요 주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조금 과장한다면, 야나기다 세이잔 이후의 수많은 연구들은 그의 연구에 대한 주석 혹은 부연설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간화선 연구의 대부분은 아직 야나기다 세이잔과 이시이 슈도의 문제의식을 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영어권 학계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선문답과 공안’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해석의 목적은 ‘신비롭다고 하는 선을 알아보자’였고, 그 방법은 기존의 생각 뒤집기였다. 대표적인 학자는 로버트 샤프와 그리피스 폴크인데, 그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 중국과 일본에서 진행된 과거의 연구는 선을 ‘반지성 전통’으로 보며, 지적 능력을 차단하고 사고를 억제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공안이 고안되었다고 본다.

그들이 선을 논리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공안을 해석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호교적(護敎的)인 경향 때문이다. ⒝ 선어록을 불교교리와 철학으로 따져 보고, 선사의 생활과 수행을 실증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샤프와 폴크는 선어록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선원의 도상(圖象)을 분석하여, 선사들의 ‘그들만의 대화’는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종교 의례로 간주했다. 슐뤼터는 송대의 대혜를 비롯한 간화선 측이 묵조선을 비판한 숨겨진 진짜 목적은 재정 후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공안과 선문답을 비롯한 선사의 교육 방안은 ‘신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세력 확장과 의례 집전을 위한 종교 행위이다. 이로써 간화선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 한국 간화선 연구의 역사

1) 연구의 출발과 기폭제 : 지눌 연구, 돈점논쟁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선을 소재로 한 연구 결과물이 발표되었지만, 인문학 일반의 학문적 엄밀성과 객관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선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온 시점은 그리 오래지 않은 1980년대부터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시점을 기준으로 보자면 한국의 선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를 벗어나 본격 단계로 진입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지눌(知訥, 1158~1210)의 선에 관한 연구가 가장 많고 질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이다. 길희성, 심재룡, 강건기, 최병헌의 연구가 1세대 지눌 연구를 대표한다. 이들의 학위논문은 번역·증보되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길희성의 지눌에 관한 연구는 《지눌의 선사상》(소나무, 2001)으로 소개되었는데, 연구의 주요 주제는 지눌 선의 ‘교학적 성격과 구조’이다.

심재룡의 연구는 《지눌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2004)로 집대성되었는데, 연구의 주요 주제는 지눌 선의 ‘교학적(혹은 철학적) 기초’이다. 이들 이전의 선 연구가 해당 선사의 전기와 사상을 소개한 것에 비해, 이들의 연구는 철학적 분석에 집중했으며 한국 선에 끼친 지눌 선의 영향을 조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연구는 한국 선 철학화의 효시라 할 수 있겠다.

제로 길희성, 심재룡, 강건기 그리고 최병헌은 지눌의 간화선을 핵심 연구 소재로 삼았다기보다는 주로 고려시대의 교학과 선의 회통에 관심을 지녔다. 이들은 교학 학습을 통한 이해(解悟=지눌의 頓悟)를 거친 선 수행(悟後修)이 진정한 수행이라는 지눌의 선교일치 수행관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1세대 지눌 연구는 ‘선교일치’를 주목했지 간화선을 파고들지 않았다.

1981년 출판된 《선문정로》에서 성철(性徹, 1912~1993)이 선교일치는 정통 선이 아니고 돈오돈수야말로 본래성불의 정수라고 선언했다. 이에 지눌 연구자가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른바 ‘돈점논쟁’을 진행했다. 성철이 지눌을 “지적 이해로 선에 접근하는 자(知解宗徒)”라고 평가하고 지눌은 조계종의 종조가 아니라고 하자, 지눌 연구자 쪽에서는 성철은 한국불교의 회통 정신을 훼손했다고 반박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선종 엘리트 중심의 종파주의자”이다. 성철의 입각점에 따르면 선은 철저하게 본래성불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며, 지눌 연구자에 따르면 한국불교는 회통 정신을 기본으로 해야 하며 지눌은 “중생 중심의 보편주의자”라는 것이다.

논쟁은 완결되지 못하고 논란거리는 아직 잠복된 채로 남았다. 논란거리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성철과 같은 근본주의는 여타의 불교를 배제해야만 하나? 둘째, 지눌 이후 한국불교의 회통성은 선의 기본정신과 충돌하나? 셋째, 간화선은 교학을 배제하나? 어찌 되었건 1980년대 돈점논쟁은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불교사적 기원을 밝혀냈다. 그러나 그때의 논쟁은 돈오돈수·돈오점수의 철학적 성격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에, 2010년 현재 국내 학계가 간화선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좋다. 거꾸로 보면 간화선의 성격이 정밀하게 규명되지 않았기에 돈점논쟁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철의 지눌 비판과 지눌 전공 학자들의 반론으로 인해 선이 학문의 영역으로 포섭되고, 세계 불교 학계에 한국의 선이 주목받은 계기로 작동한 점만은 틀림없다. 한국 학계의 돈점논쟁을 모은 책이 《깨달음, 돈오점수인가 돈오돈수인가》(강건기·김호성 편, 민족사, 1992)이며, 돈점론에 관한 영어권 연구를 집대성한 연구물이 Sudden and Gradual: Approaches to Enlightenment in Chinese Thought(Peter N. Gregory Ed. Studies in East Asian Buddhism 5, Honolulu: Univ. of Hawaii Press, 1987)이다. 두 연구물의 주요 관심사는 돈점논쟁의 불교사적 기원에 관한 것이다. 이 두 전문 서적에서 간화선은 주요 주제였다.

2) 한국 학계의 간화선 연구 주제

전체 연구의 거의 절반이 ‘한국 선사의 간화선’을 소재로 했다. 그 이유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나 추정하자면 이렇다. ‘선을 본격 학문의 대상으로 취급한 연혁이 그리 오래되지 않다 보니 한국 선사의 선을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선은 고려 중·후기 이후에 세력을 확장했고 이에 맞물려 간화선이 한국에 수용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로도 간화선은 한국 선의 대표이다. 따라서 한국의 선을 분석함에 고려 중·후기 이후의 간화선을 이해함이 첩경이었을 것이다.’

그중에서 지눌의 간화선이 가장 먼저 연구되었다. 지눌의 선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상당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명시적으로 선언하지는 않지만) 지눌이 간화선을 실수(實修)했고 수선결사에서 간화선을 교육했으며 《간화결의론》은 지눌의 저작이라고 추정하는 듯하다. 지눌이 간화선을 직접 수행했는지, 그가 간화선을 지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또 《간화결의론》도 지눌의 저작인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간화결의론》에 소개된 간화선 관련 내용은 《대혜어록》을 발췌하여 수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지눌의 선(혹은 간화선)에 관해서는 자료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해야, 그 진면목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혜심(慧諶, 1178~1234)의 선을 연구하면서 한국의 간화선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수선사에서 간화선을 지도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저술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 그의 간화선을 알 수 있다. 특히 《선문염송》은 《벽암록(碧巖錄)》 등의 공안집과 《전등록》에서 공안을 정리한 것으로서, 이 책을 통해 그가 간화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알 만하다. 실상 한국 간화선의 면모가 구체적으로 확립된 바는 혜심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술 번역도 활발하다.

고려 말 태고(太古, 1301~1382)의 간화선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는 중국 임제종을 수용한 인물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임제선 수용 과정에서 태고의 역할에 관한 연구는 상당히 진척되었다. 간화선과 관련하여 태고 선 연구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태고의 간화선은 지눌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대혜나 고봉(高峰)의 간화선에 훨씬 가깝다. 지눌이 다양한 근기를 인정하면서 교학을 아울렀던 바에 비해, 태고는 간화선만을 제시했다. 이런 점에서 지눌의 선은 현실주의, 포용주의라고 할 수 있고, 태고의 선은 정통파, 근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대혜나 고봉의 간화선을 기초로 태고의 간화선을 연구한다면 한국 간화선을 이해함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옹(懶翁, 1320~1376)의 간화선을 주제로 한 연구도 적지 않다. 나옹은 임제선의 대표이자 간화선을 철저히 중시했다.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완주가(翫珠歌)〉 〈고루가(枯髏歌)〉와 더불어 나옹 간화선의 진수를 알 수 있는 작품인데, 형식상 몽산(蒙山)의 십절목과 상통하며, 내용상 고봉의 《선요(禪要)》의 영향을 받았다. 〈공부십절목〉을 주제로 한 연구도 발표되었다.

백운(白雲, 1299~1374)은 최초의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의 편찬자로 잘 알려진 만큼, 이 주제를 다룬 연구도 많다. 그의 선은 조사선에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그는 아예 〈조사선(祖師禪)〉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선을 무심선(無心禪)으로 정리하는 연구도 적지 않지만 〈조사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간화선을 중시했다. 백운이 대혜의 《종문무고(宗門武庫)》 그리고 오조(五祖)와 원오(圜悟)의 문답을 인용한 대목, 향엄(香嚴)과 앙산(仰山)을 거론한 내용은 전형적인 간화선이다. 그의 이름값에 맞게 그의 선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지만, 엄격히 말해 그의 간화선을 세밀하게 다룬 연구는 미미하다.

지눌, 혜심과 여말(麗末) 삼사에 의해 정착되었던 간화선은 조선 중기 이후에는 생명력을 잃었다. 꺼져가던 등불을 되살린 것은 경허(鏡虛, 1849~1912)와 만공(滿空, 1871~1946), 한암(漢巖, 1876~1951)의 활약 덕분이다. 경허는 스스로 〈오도송(悟道頌)〉에서 한탄한 바와 같이 ‘전해 받고 전해 줄 사람이 없던’ 시절에 한 줄기 빛을 선사했다. 그의 선에 관한 연구는 적지 않다. 최근 그의 간화선에 집중한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좀 더 세밀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성철의 간화선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다. 그가 주도한 봉암사 결사는 현재 한국 간화선이 살아 있게 한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하였으며, 그의 지눌 비판은 간화선이 본 면목이 어떠한 것인가를 따져보게 했다. 봉암사 결사와 성철의 선을 단독 주제로 한 기념 세미나가 기획될 정도로 성철의 돈오돈수 간화선에 관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한국 간화선 연구에서 연구가 심화된 주제가 간화선의 수입과 정착이다. 조명제는 정치사회적 배경, 《몽산법어》와 《선요》 등의 선어록의 수입, 사대부의 간화선 이해 등 이전의 연구에서 소홀히 했던 주제를 발굴하여, 고려 간화선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 주제에 관한 그의 연구는 단행본으로 정리되어 출간되었다. 최연식도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간화선의 정착을 다루었다.

‘무자’ 화두 등 간화선의 핵심 내용으로 이 주제를 세밀하게 다룬 선구는 인경의 연구이다. 그는 한국 선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어록인 《육조단경》 덕이본의 내용을 분석하고 여말 삼사의 간화선에 끼친 몽산덕이의 영향을 정리했다. 박재현은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주제어로 간화선의 수입과 발전을 탐구했다. 그는 지눌, 혜심, 여말삼사, 휴정의 선을 분석하여 한국 간화선의 발전을 정리했다. 또 정영식도 송대 대혜의 간화선[公案禪]에 내재한 교학적 기초를 밝히고, 지눌과 혜심의 선에서 간화선의 추출하여 분석했다.

3. 간화선 연구의 쟁점

2005년에 보조사상연구원이 주최한 ‘간화선 수행 전통과 현대사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간화선의 개요, 중국 송대의 간화선, 일본·미국·유럽의 간화선을 소개했다. 새롭게 주목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2006년에서 2009년까지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가 12회에 걸쳐 주최한 연속 세미나의 주제는 간화선의 기원, 한국의 간화선 전통, 간화선과 위빠사나, 간화선과 심리치료, 간화선 수행의 문제점과 과제, 간화선의 대중화·사회화·국제화였다.

그중에서 간화선 수행의 과제, 간화선의 대중화·사회화·국제화에 관한 발표물은 기획이 참신했으나 전문 학술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느낌이다. 그 이외의 논문은 전문 학술 주제를 다루었지만 대부분 기존의 연구물을 정리한 것이고 정밀한 논지를 전개하지 못했으며 수행 현장에 도움이 되는 글이 없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없다.

2010년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기획한 간화선 국제학술대회는 몇 가지 점에서 눈에 띄었다. 첫째, 한국의 대표적인 수좌(首座)들이 법문을 했다. 그중 어떤 것은 내용과(and/or) 형식에서 선어록에 등장하는 격외문답의 전통을 간직했다. 현재 학계에는 간화선을 과거의 유물 혹은 죽은 화석으로 여기고 문헌 내용 정리를 주요 과제로 설정하는 추세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조사선의 면목을 지키는 수좌들의 분투는 국내외 학계에 자극이 아닐 수 없다.

둘째, 국내외의 대표적인 선 학자들이 간화선 전문 연구물을 보고했다는 점이다. 특히 몇몇 논문은 첨예한 이슈를 서슴없이 건드렸다. 또 다른 측면에서 2010년의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확인된 내용도 있다. 두세 논문을 제외하고는 간화 실참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문헌만을 분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샤프의 〈선 공안,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How to think with Chan Gongans)〉는 간화선의 첨예한 쟁점 중의 하나인 ‘공안을 지적 분석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신만만한 필치로 논지를 전개했다. 샤프는 공안을 “의례적 집행”의 도구(대본), “개념의 덫을 피하기 위한 수사적 전략”으로 본다. 그는 공안을 면밀히 분석하면 그 뜻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하면서, “호교적인 신비화 때문에 공안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일부 학자의 태도에 대해 극도로 비판적이다. 그의 논문은 현재 영어권 학자의 시각을 반영한다.

그런데 수좌 혜국(慧國)은 이렇게 말했다. “간화선은 말길이 끊어진 자리다. 간화선에서 볼 때 지금까지의 모든 말과 글로 부득이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중언부언 허물을 쌓는 일이다.” 또 진제(眞際)는 이렇게 말했다. “선지식이 던진 진리의 법에 대한 물음에 갖는 간절한 의심을 말하는 것이니, 무엇보다도 선지식으로부터 참된 화두를 받아 지녀야 한다. ……화두일념(話頭一念)만 지속이 되면 그 깨닫는 과정은 찰나이다.” 수좌의 간화선에서 화두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고 알려고 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한마디로 학자들은 선어록을 불교교리를 동원해서 냉정히 분석했고, 수좌들은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기에 현재 한국 수좌들이 실참하고 교육하는 간화선의 ‘화두’와 샤프를 비롯한 학자들이 연구하는 간화선의 ‘공안’은 다르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다. 논자는 간화선을 주제로 한 논문에 대해 논평을 하곤 한다. 그중 논문의 완성도나 논지의 찬성 여부와 관계없이 기억에 생생한 논문이 있다.

그 논문은 ‘공안집의 공안을 분석하면 중도를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자는 선어록과 공안집을 읽을 때마다, 지금까지도 그 논문의 논지를 떠올리곤 한다. 샤프의 관점은 그 논문의 연장선에 있다. 샤프의 논지 전개가 훨씬 세련되고 철저했지만 말이다.―물론 샤프의 논지 전개에도 허점이 있다. 그가 예시한 백장야호(百丈野狐)에 대한 원문 번역에 결정적인 오류가 있고, 2차 해석도 논자의 생각과는 다르다.       

두 수좌와 샤프의 공안(화두) 그리고 (간화)선에 대한 생각은 양립 불가능할 정도로 다르다. 분명한 것은 샤프는 현재 동아시아 불교학계를 대표하는 학자이고, 혜국과 진제는 간화선의 전통을 철저히 지키는 대표적인 선승이다. 원오는 100개의 공안을 제시하고 비교적 상세히 해설했다. 대혜는 원오의 공안 해설집 《벽암록(碧巖錄)》을 불태우고 논리와 지식을 버린 채 화두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한참이 지난 1304년 삼교노인(三敎老人)은 이렇게 물었다. “원오가 옳을까, 대혜가 옳을까?” 그러면서 그는 “둘 다 옳다고 대답하겠다.”라고 스스로 답했다.

“공안을 해설한 원오가 옳을까, 공안 해설집을 불태운 대혜가 옳을까?” “공안(화두)을 논리와 지식으로 해석하고 간화선은 종교적 권위를 위한 의례라고 주장한 샤프가 옳을까, 말의 길과 뜻의 길을 끊고 간화하면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혜국과 진제가 옳을까?” 오늘날 삼교노인이 “둘 다 옳다고 대답하겠다.”라고 할 수 있을까?

이미 공안(혹은 화두)의 해석 가능성, 그리고 간화선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상당히 진척되었다. 선의 철학인 ‘교외별전’ ‘불립문자’와 간화선의 관계에 관해서도 정밀하게 문헌을 분석하여 진일보한 성취를 이루어 냈다. 한국 학계는 이런 전문 주제에 대해 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 전망과 제안

논자가 보기에 한국 학계 간화선 연구는 양적으로는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그 내용은 최근 몇 년간 발전이 정체되었다. 더욱이 그간 한국의 간화선 연구는 일본 학계의 연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최근 10여 년간 영어권 학계의 주제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간화선을 연구한다고 하면서도 간화선의 핵심에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맴 돌거나 남의 주제를 답습하는 데에는 다 까닭이 있다. 간화의 격언대로 간화선을 바라보지 못하고, 간화선을 연구하면서도 진짜 의심을 일으키지(眞發疑) 못하기 때문이다.

연구의 정체를 해결할 길을 생각해 본다. 그 일환으로 간화선을 연구함에 간화선의 비결을 적용시키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 간화선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모두 놓아버리고 다시 시작하자.(殺活, “죽어야 살아난다.”)
∙ 간화의 취지를 크게 의심해 보자.(大疑之下 必有大悟, “크게 의심하야 확고하게 깨칠 수 있다.”)
∙ 선어록과 공안집을 낯설게 읽자.(生熟, “낯선 것은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낯설게 한다.”)

그 연구 방법을 이렇게 제안해 본다. 

첫째, 문헌을 보다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당송 대의 선어록을 제대로 읽으려면 고전 한문뿐만 아니라 어류 백화문도 주의 깊게 탁마할 필요가 있다. 자구 해석에 그치지 말고 그 속뜻을 알아내야 한다.

둘째, 인류학적 근접 접근이 필요하다. 실참 현장과 전문 연구자, 양자의 간극을 줄이는 방안으로 현장 연구(Field work), 그리고 실참 수좌와 전문 연구자의 대화가 긴요하다.

셋째, 불교 철학과 간화선의 연계가 절실하다. 니까야, 《화엄경》 《능엄경》 《금강경》을 비롯한 경전에 나타난 철학적 전제와 수행론을 간화선의 그것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초기불전에 근거하지 않은 수행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각묵의 지적은 간화선 연구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불교와 간화선의 접목을 시도하는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간화선 연구자와 초기불교 연구자의 토론과 공동 연구도 필요하다. ■

 

변희욱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대혜 간화선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취득. 〈공안, 왜? 어떻게?〉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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