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이해의 틀은 전환되고 있는가

1. 서구불교/학의 발단

 빅토리아조의 배경 없이는 서구에서 오늘의 불교(학)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빅토리아조에 불교학이 학문으로 정착했다는 사실은 불교학 연구 내용과 그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를 주었다. 우선 빅토리아조 전반까지 풍미했던 이집트학(Egyptology)의 열풍이 가시면서 인도에 대한 관심이 대두한다. 인도학은 F. 슐레겔(Friedrich Schlegel)의 “모든 것, 그렇다. 거의 예외 없이 (서양의) 모든 것은 인도를 시원으로 하고 있다.”라는 인도에 대한 열광적인 낭만주의적 언표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슐레겔은 독일 본대학 산스크리트 학과장이었으며 쇼펜하우어나 셸링과 함께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들 중의 하나였다. 한편 인도를 한 번도 다녀오지 않은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은 《영국 통치사적 입장의 인도사》(History of British India, 3 vols, 1817)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영국 사회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교학은 이런 인도의 열풍이 어느 정도 잠재워진 시기, 그러면서도 아직도 그러한 분위기가 뒷받침하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곧 외젠 뷰르누프(Eugene Burnouf, 1801~1851)의 《인도불교사 입문》(Introduction a’ l’ histoire du Boudhisme Indien, 1844 출간)과 《법화경역주》(Le Lotus de la Bonne Loi, 1852 출간)가 출간되면서 근대 불교학 연구의 효시를 이룬다. 그리고 이 역사적 저술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 이전에 네팔 주재 영국 관리였던 호지슨 경(Sir Brian Houghton Hodgson, 1800~1894)이 네팔 사원에서 수집한 산스크리트 원전의 일부를 뷰르누프에게 보낸 것이 계기가 된다.
곧 불교학 연구는 인도학의 한 분파로 시작되고 정치적으로는 아편전쟁(1839)과 세포이(Sepoy Mutiny, 1857) 반란으로 알려진 벵골사건 전후인 유럽의 제국주의적 권력이 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석권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그리고 절대 권력의 행사라는 무한대의 자기 팽창과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 속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 그리고 궁극적으로 근대적 불교학은 탄생된 것이다.
동양에서 긴 시간을 두고 광범위하게 엄연히 존재했던 불교였지만 이해의 대상, 인식의 대상으로 대두한 것은 이러한 서구적 배경에서였다. 불교는 일종 ‘발견되고’ ‘창안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미대륙이 ‘그곳’에 엄연히 존재했었지만 서구에 의해 ‘발견되고’ ‘새로운’ 오늘날의 미국으로 ‘창안’된 것과 흡사한 과정을 겪은 것이다.
서구의 ‘틀’과 서구인의 ‘머릿속’에서 불교는 새롭게 나름대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 서구적인 틀에 의해 오늘날 ‘불교학’으로 지칭되는 학문으로 정착된 역사는 고작 2세기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이 짧은 시기에 그때마다 단락 짓는 특징이 있었고 그 매듭 하나하나를 성격 짓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또 당시의 정치·문화적 배경이 그들의 특징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근대적 학문으로서 불교학을 개창하고 발전시킨 연구자들이 아시아를 고향으로 하는 불교의 내용을 결정짓고 있는 셈이다. 외젠 뷰르누프(E. Burnouf, 1801~1851)나 리즈 데이비즈(T. W. Rhys Davids, 1843~1922), 또는 종교학의 개창주로 추대되고 있는 막스 뮬러(Max Mueller, 1823~1900)와 같은 학자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발자들에게서 흔히 드러나듯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을 피력한다. 이 시발자들에게는 처음 단순한 호기심 어린 호의성(curious preference)이 배어 있었고, 심각하게 따져보지 않는 편향성(unargued preference)만이 지배하는 상태에서 일정한 학문적 정당성마저 결여한 채 불교에 대한 이해를 시도했다.
그리고 후대의 학문적 체계, 이해의 틀을 마련하게 되기까지는 불교 전통 문헌 속에서 언어^문헌학적인 방법을 통한 조직적 색출 작업이 수반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불교학 연구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언어^문헌학적 방법은 빅토리아조 학문의 특징이었고 불교 연구란 불교 원전을 찾아내어 그 불전에 쓰인 교리와 이론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불교는 책상 위의 불교, 책장 속의 불교로 화한다. 불교는 다루어질 수 있으며(manageable) 서구적 틀을 따라 분류할 수 있는(taxonomical) 대상인 것이다. 곧 불교의 현주소가 동양이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현행의 종교이지만 서구에서는 학자들에 의한 수집·번역·출판이라는 문헌적 과거(textual past)로부터 출현하였고 서양의 동양학 도서관과 연구소 그리고 그 문헌들 속에만 존재한다. 심지어 신행이 일어나고 있는 현지인의 증언은 쉽게 묵살되었다. 그것은 일종 빅토리아조의 이데올로기의 의지였다.
그러면 빅토리아조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었던가? 무엇보다도 타자에 대한 상상을 통한 자기 확대, 그리고 결과적으로 빚어진 제국주의적 지배가 빅토리아조의 성격이었다면 서구의 불교의 발견은 이 경우에 그대로 맞아떨어진 한 경우였다. 지금도 서양에서 불교의 발견과 불교에 대한 열정적인 찬양의 예로 에드윈 아널드(E. Arnold, 1832~1904)의 〈아시아의 빛〉(1879)을 들고 있다. 이국적인 것의 상상력을 그대로 대변시켰고 그 주제는 불교와 부처님의 청순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열광의 상상력 배면에는 타자에 대한 배척과 지배를 내포하고 있었다. 기독교의 반응과 선교주의가 그것이었다. 오히려 인도와 스리랑카의 선교사로 활약했던 리처드 콜린스(Richard Collins, 1828~1900)의 반응은 이 점을 잘 웅변하고 있다. 그는 아널드의 부처님과 역사적 부처님을 대비시키면서 “아시아의 빛으로서의 부처님은 진정한 실제의 부처상(像)일 수 없다. 마치 알프레드 테니슨의 아서(Arthur) 왕이 진정한 아서 왕의 상(像)이 아니듯 말이다”라고 발설한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까지 표명한다.

“어떻게 가장 조악한 암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시아의 빛’일 수 있겠는가. 신사숙녀 여러분, 나는 감히 여러분에게 이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이 되었건 불교 추종자들보다 더 철저하게 유혈과 인간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를 묻겠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고통과 인간생활에 대해 이토록 사악하고 끔찍한 무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동물의 생활에 대해서 알뜰하게 생각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바로 ‘아시아의 빛’으로부터 유출되는 암흑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세계의 빛’을 희구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아시아의 빛’이 된다는 말입니다(박수)…….”

일종의 야유적인 비판을 가한다. 불교에 대한 열광적인 찬사와 비판적인 배척의 태도는 서구가 불교를 받아들이는 야누스적인 이중성이었다.
결국 우리는 불교의 발견이 서구의 종교·문화적 배경 아래서 이루어졌고 낭만적 빅토리아조의 열광과 냉혹한 제국주의적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게 된다. 나아가 여기서 소위 서구가 아시아를 석권할 때 드러나는 두 가지 패턴, 곧 한편으로 선교활동을 통해 서구적 가치를 밀어 넣는 일과 다른 한편 언어 문헌적 작업을 통해 역사적 현장의 맥락을 끊어 버리면서 불교를 끄집어내는 이원적 작업이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밀어 넣고’ ‘끄집어내어’ 창안하는 일이 거의 동시에 행해졌고 그것이 오늘날 서구 불교학의 탄생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로 인한 곤경(Predicament)을 동시에 안겨 주었다. 서구학자들의 선교적 입장이나 불교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 자신의 기독교 신자성을 극복하려 시도한 역사적 실증이 많다 하더라도 아직도 한 연구자가 위치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사회적 위상은 어쩔 수가 없다. 서구 불교학자들의 이러한 학문적 곤경은 루이스 고메스(Luis Gomez)의 발언에서 극명해진다.
불교학 연구란 비서구적인 문화 산물에 대한 서구적 작업을 지속하는 일이며, 고도의 전문적인 비불교도 청중을 위한, 비서구적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불교에 대한 담론이다. 이 전문인들의 지적 작업은 서구의 문학·예술^철학의 주류 흐름에서 떨어져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현행 불교에 교리적 성찰의 흐름에서도 격리되어 있다. 불교연구와 그 청중은 공동의 언어와 그에 대한 확신을 결여하고 있다.

비서구적 산물을 서구적 지성에 의해 서구적 방향으로 이끌어간 불교 연구의 성격을 놓고 고메스는 불교를 다루는 학자로서의 곤경을 그렇게 실토했다. 이 곤경의 시작이 소위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
이제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관용적인 이해를 표방하거나 그것을 신행(信行)하겠다고 할 때 부딪치는 어려움은 바로 서구가 만든 불교에 대한 개념의 틀, 이해의 틀의 한계였고 그것이 온전한 불교 이해의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2. 근대 불교학 극복의 틀―불교신학(Buddhist Theology)

학문의 주제가 현실을 일탈하든지 혹은 현실과의 괴리가 심할 때, 전문학자들 사이에 자기비판적인 말이 떠돈다. 아직 가렵지도 않은 부분을 긁어 놓아 상처를 내는 일이거나 혹은 신발을 신은 채 긁고 있어 아무리 긁어도 가려움이 가시지 않는 일이다. 혹 불교신학(佛敎神學, Buddhist Theology)이란 주제가 현실로 나타나지도 않았거나, 현실을 짚어내지 못한 현장을 놓고 종교학이나 불교학의 ‘긁어 부스럼’이나 ‘신발 신고 긁어대는’ 무용한 일을 도모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존의 학문체계에 만족해 있는 학자들에게는 불필요한 작업으로 비칠 수 있고 일종의 옥상옥적(屋上屋的)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불교학의 출발이나 그 방법론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한계를 인식하는 학자들이나, 자신의 실존적 참여를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학자들에게, 불교신학은 옥상옥이기보다 사상누각적(沙上樓閣的)인 서구 불교학이 이제껏 걸어온 허점을 보완시키려는 노력의 일단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어떻건 불교신학(Buddhist Theology)이란 말은 낯설게 들린다. 우리에게만 낯선 어휘가 아니라, 이 말을 창안한 서구 불교 전문인들에게마저 애매모호한 기형의 창안물처럼 비친다. 동양의 불교와 서구 기독교의 학문근거인 신학이 결합되어 있는 불교신학이라는 말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을 의도하는 말일까? 불교와 기독교 간의 대화를 위한 체계화란 말인가? 혹시 불교를 기독교적인 틀에 의해 설명하거나, 아니면 그 역(逆)을 말하려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지난날 격의불교(格義佛敎)에서 경험한 것처럼 서양 땅에 불교를 이식시키거나 동양 문화에 기독교를 정착시키기 위한 상호 문화적 틀을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불교와 기독교라는 이질적인 종교를 놓고 상상할 수 있는 질문이 계속 쏟아질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질문은 전부 적합하지 않다.
 불교와 기독교가 조우한 이래 서로가 지닌 문화 전통과 사상의 특징 때문에 상호이해보다는 오해가 앞섰고, 또 각각의 종교가 지닌 특성 때문에 상대를 흡수하거나 동화시키려는 의도가 선행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 기독교의 경우 거의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불교와 기독교를 대치적으로 병렬시킬 때마다 제기되는 두 문화의 충돌이나 종교 간의 갈등을 해소시키려는 이런 질문이 손쉽게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지금 불교와 기독교는 서로에게 잘 노출되어 있으며 원하기만 하면 각자가 지닌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오해를 야기할 새로운 조어(造語)로서 불교+신학(Buddhism+Theology)이란 이종교배적인 말을 창안하고 있는 것일까? 더욱이 서구에서 불교 연구가 시작된 이래 서양적 개념과 기독교적인 어휘의 전제들을 배제시키려고 부단한 노력이 경주되는 중인데도 말이다. 불교 교설의 어떤 부분이든 그것을 서구어로 표현하려고 시도할 때 그 불교 내용은 서구적 개념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을 영화 제목처럼 통역/번역 중에 상실된 의미(Lost in Translation)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그것을 피하고자 서구어에는 없는 혼성어가 만들어졌는데, 그 혼성어는 서양의 교양인들마저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 되고 만다. 통칭 혼성영어(Hybrid English)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한 노력을 들인 과거의 역사가 있었음에도, 어째서 새삼 다시 불교신학이라는 말을 차용하여 과거로 역행하려는 듯하고 있을까?
곧 불교신학이란 어휘가 이런 혼란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전환을 위한 창의성인 것도 분명하다. 서구 불교학의 연구 방향을 재평가하려는 비판적 시각이고 이러한 비판적 재평가를 거치면서 학문의 틀을 전환시켜 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어휘가 주는 혼동보다는 내용이 가져다줄 이익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이제 동양학의 한 부문으로 불교학이 겪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의 곤경을 극복하는 한 시도로도 생각된다.
필자는 이전에 쓴 논문에서 서구에서의 불교학 연구의 문화·사상적 배경을 다루면서 서구 불교학 연구의 한계성을 지적한 바 있다.
따라서 불교학 연구는 골동 애호적 지식이나 유물 관리적 지식으로 변모되었으며 사이드(E. Said)가 지적하듯 ‘패러다임적 화석화(paradigmatic fossilization)’가 이루어졌다. 불교는 전통의 찌꺼기로 잔존하여 부패한 정권의 하수인이 되거나 사회의 갈등을 조성하는 저해적 요인이 되거나 혹은 그와는 반대로 활성화되어 새 시대의 정신적 자양이 되거나, 어떤 형태로든 살아 움직이는 신행의 종교가 아닌 하나의 추상물로 존재하게 되었다.
불교의 이러한 추상화 과정은 서구 불교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그 일부를 전수한 동양의 호교론적 불교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불교가 정착된 다양한 지역의 역사적 현실, 문화적 현장의 실제 상황을 끊임없이 무시해 버리는 교리적 연구에 빠진 것이 이제까지의 실정이었다. 이 교리적 연구는 ‘원형 찾기’ ‘근본 찾기’의 시도를 하며 연구자들로 하여금 원형에서 일탈된, 무언인가 결여된 자의식을 지니게끔 하고 잃어버린 ‘부처님 시대’를 갈망하게 하였다. 근대 불교학 연구가 의도적으로 이런 방향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경향을 지울 수는 없게 되었다. 특히 불교가 한 지역의 문화·정치의 지표 노릇을 하는 곳에서 정치적 갈등이 일어나고 인종 문제가 제기될 때 불교는 천박한 정치구호이거나, 한 종족을 보존하는 프로파간다로 전락하게끔 한다. 불교의 현장적 모습이란 타개의 대상이 될 뿐이다. 동남아시아 불교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감들이다. 한마디로 아시아의 낙후성과 불교의 파행성이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불교는 더 이상 정신적 지표로 삼기 어려운 그 지역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본질적 불교’라는 ‘원형’에서 일탈된 불교는 현실의 퇴락적인 모습만을 드러내는 전통으로 아시아인들로 하여금 자기 전통에 대한 모멸감을 갖게 한다.
그것이 문헌적 연구이건 교리적 연구이건, 근본 찾기가 가져다준 연구 결실의 일단일 수 있다. 예컨대 탐비아(Stanley J. Tambiah)는 외형상 인류학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는 현실 위주의 불교 현장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스리랑카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불교를 보는 원형적 관점의 모순을 지적한다. 곧 자비와 포용의 불교가 어떻게 인종 분쟁을 불러오고 살생과 폭력을 일삼았느냐는 질문을 제기한다. 불교도 폭력과 살생과 무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사랑과 용서의 종교인 기독교를 반대의 예로 들면서 응답한다. 십자군의 대량살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들, 그리고 아직도 권력 메커니즘 속에서 기독교가 국제사회의 온갖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사실을 놓고 우리는 기독교를 원형적인 시각에서 보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이렇게 되면 서구의 본질주의적 시각이 가져다준 불교 연구는 새로운 방향을 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기성의 불교 연구가 초래한 부정적 결과와 그 영향들에 대한 깊은 반성은 이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어느 한 학자의 연구 특징이나 그 결실에 가져다준 자기주장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불교학의 반성을 도모하는 국제불교학회의 다음과 같은 선언은 이런 추세를 특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뤼에그(David Ruegg)는 불교는 학문의 대상을 넘어선 ‘삶의 한 방식(a way of life)’이며 ‘존재양식’임을 선언한다. 따라서 이제껏 진행되어 온 골동 애호적 불교연구와 무분별한 실증주의적 연구가 가져다준 결함을 경계한다. 그는 “불교는 좋은 의미를 사용하더라도 철학이자 종교이며, 또는 철학이든지 종교가 될 뿐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고 존재양식이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체계이며, 이 체계는 불교 추종자들이 세계의 방대한 지역에서 그들의 세속적·정신적 삶을 구축하게 한다.”고 말한다. 앞서 보았던 서구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 변화를 일으키고 그 새로운 방향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 시대 서구 불교학 연구의 거목이었던 라 발레 푸생(De la Vall-ee Poussin)이나 에티엔느 라모트(E. Lamotte), 그리고 아직도 기술적(descriptual) 불교학 연구의 조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드 용(J. W. de Jong)과 같은 대가들의 업적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불교의 현실·현안 문제를 무시한 ‘긁어 부스럼’을 내거나 ‘신발 신고 발등 긁는’다는 학문적 추구를 항의받고 반론을 일으키게끔 하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현장 존중의 태도, 그리고 삶의 방안으로서 불교의 위치를 재확인하려는 입장이 불교신학 제안의 배경을 이룬다.
‘불교 유물 지킴이’ 역할을 하였던 불교학자들의 입장을 삶의 한 양태로 전화시키려는 과정이 불교신학 창안의 배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불교를 다루고 있는 학자들의 학문적 입장(scholarship)의 새로운 정립은 신학자들이 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지니는 태도와 한 치의 차이도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신학의 긍정적 내용에 전용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3. 불교는 학문만의 대상인가

오늘날 티베트 불교의 유행은 티베트 불교 전문가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티베트 연구의 효시를 이루었던 드 코로스(de Koros)나 슈타인(R. Stein)과 같은 학자들이 태생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었던 제국주의적 환경은 다음 세대에 이르러 부식되고 있으며 거꾸로 티베트 불교 실수행의 불자들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티베트 불교의 확장은 괄목할 만한 것으로 미국의 불교학의 실질적 내용을 형성한다. 대표적인 학자들은 버지니아대학의 제프리 홉킨스(G. Hopkins)나 컬럼비아 대학의 로버트 서먼(R. Therman)과 같은 학자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학자일 뿐 아니라, 이미 티베트 불교에 입적되어 있는 승려들이다. 서먼 교수는 서양인으로서는 최초의 티베트 승려가 된 사람이며, 홉킨스 교수는 달라이 라마 해외 담당 비서 겸 문화상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UCLA 대학교수인 로버트 보스웰(R. Boswell)이 구산(九山) 스님 문하에서 수련을 받고 한국불교에 대한 학문적 추구 이외에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전통으로서 한국불교를 선양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에서의 티베트 불교의 출현과 부활은 또 하나의 불교 연구 현장을 개발시킨 것이 아니라, 불교학 연구의 새 차원을 여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개척적 서양 승려 겸 학자들 밑에서 연구하였거나 그다음 세대로 지칭되는 일군의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의 학술 활동은 서구 불교학 연구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곧 고메스(Lewis Gomez, 미시간대학교 불교학 및 심리학 교수), 로페즈(Donald S. Lopez Jr. 미시간대학교 불교학 및 서장학 교수), 카비존(Jose Ignacio Cabezon, 일리프신학대학 철학박사), 마크란스키(John J. Makransky, 보스턴칼리지 불교학, 비교신학 교수), 그로스(Rita M. Gross, 위스콘신대학교 철학과, 종교학과, 비교종교 교수), 잭슨(Roger R. Jackson, 칼턴대학 종교학과 동남아시아 종교 교수), 앤 클라인(Ann C. Klein, 라이스대학 종교학과 교수) 등과 같은 신진학자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제국주의적 분위기, 절대적 권력, 기독교적 전통에서 자유로워진 불교학 및 종교학의 새로운 세대이며, 대부분 수계를 받았거나 각자가 전공으로 삼는 해당 지역의 불교 사원에서 종교적 체험을 거쳤다. 특히 리타 그로스나 앤 클라인과 같은 여성 불교학자는 불교학 연구에서의 여성문제를 중요한 과제로 삼아 여성, 불교신앙 그리고 학문이라는 삼원적(三元的) 차원의 연구를 동시에 시도한다.
바로 이들 학자에 의해 불교신학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모임이 형성되는 것이다. 1996년 미국 종교학회(America Academy of Religion) 연례대회에서 새로운 분과로서 불교신학(Buddhist Theology) 연구 그룹을 발족시켰다. 종교학이라는 큰 테두리 속에 불교학이라는 분과가 존재하고, 이 불교학 분과의 또 하나의 분화로서 불교신학이라는 세분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 근대 학문의 계속적인 미시화·세분화의 경향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적인 말단화이거나 학문의 세분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곧 그 이상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개관하였던 과거의 불교 연구에 대한 자기비판이야말로 그 핵심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불교신학이 표방하는 것을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인가? 관계된 학자들의 주장과 전망이 각기 달라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추출해 볼 수 있는 공통점 중의 하나는 ‘불교의 현대사회에 대한 계속적인 기여(the on-going contribution of Buddhism to the modern world)’를 특징으로 삼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현대사회’에 대한 것이 최대의 이슈라는 점이다. 이제껏 과거 지향적 문헌 속에 갇혀 있던 불교를 현장의 것으로 끌어내어 지속적인 문제로 삼겠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포괄적인 표현으로 보이는 ‘현대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언표는 실제로 불교연구에서 암묵적으로 제외되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불교학을 다루어왔던 기왕의 불교학자들의 학문상 입장이나 개인의 종교적 입지를 확인하고 동시에 그런 암묵적인 태도와 확연히 차별화하는 것이다. 종래의 불교학 연구가 하나의 종교를 그 전통과 현장에서 분리시키고 그것을 분석·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서구 아카데미에 관심 있는 이론을 개발시키는 것을 주안점으로 둔 점과 구별시키는 것이다. 불교신학의 접근은 과거와는 달리 오히려 그 전통(불교)의 내부에 위치하려 한다. 곧 내재적 연구라고도 할 수 있다. 분석^비판하는 방법은 종전과 동일할 수 있으나 그 목적은 전혀 다르다. 곧 전통의 근거들을 비판적으로 연구하여 그것을 현대 세계에 대한 새롭고, 자생적인 목소리로 소통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 학자들은 자신이 접하고 경험하는 각기 다른 지역의 다양한 불교 지식과 체험을 근거로 전통적인 스승들에게서 배운 것을 불법적(佛法的, Dharmically)으로 이해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연구 방법은 역사적일 수도, 철학적일 수도 또는 사회학적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두 가지 방향을 지키고 그 지침 안에서 불교를 조명시키고자 한다. 첫째는 불교 사상의 여러 국면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이고 둘째는 현대 사상의 여러 국면을 불교의 비판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이 그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학자들이 기독교라는 한 종교 전통 ‘속에서’ 그 내용을 검토하고 훈련받는 것과 동일한 방법을 불교에 적용시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이 전개하고 있는 현대 세계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그대로 불교에 끌어들이는 셈이다. 이렇게 표방된 불교신학은 계속 신학의 교조적 규범성이나 유신적(有神的)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 근대불교의 상당한 부분은 이미 “프로테스탄 불교(Protestant Buddhism)”라 특징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불교와는 모든 면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신학이란 용어를 채택하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교 전통 자체 내에서의 적합한 용어를 색출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전 시대의 유물로 사용된 불교의 서구어 표현인 부디즘(Buddhism)이 얼마나 부적절한 표현이 되는가 하는 점은 새삼 다시 지적될 필요가 없다. ‘Buddha[佛]’에 주의를 갖다 붙인 무분별성을 다시 검토한다고 하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불교학은 ‘Buddha(혹은 깨달음)’에 대한 연구이니 ‘Buddho/alogy(佛學)’는 어떨까 하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는 학자들에 의해 불교학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그 맥락은 다르나 불학이란 말을 쓰고 있는 학자도 있다. 또 불법(佛法, 부처님의 진리)에 관한 연구이니 ‘Dharmo/alogy(佛法學)’로 표시하면 합당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는데, 이 어휘는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불교 자체의 전통적인 용어로는 아비달마(Abhidharma)가 있다. 불법에 대한 전통적인 이론적인 논의가 이 아비달마이니, 그것을 불교에 대한 현대적 주석 내지는 불교 해석학으로 재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견해나 관점을 의미하는 ‘Darsana’도 가능하고, 논리적 전개라는 측면에서는 ‘Pramana’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진리(法)라는 고전적인 말로 ‘Buddhadharma(佛法)’가 있고 영어와의 새로운 합성어로 ‘Dharma Discourse(佛談論)’가 불법에 대한 여러 형태의 논의에 가장 가까운 용어가 된다. 소위 신학을 ‘God-Talk’라고 하였을 때 그에 상응하는 불교 용어는 ‘Dharma-Talk’이고 그것을 전문어휘로 정착시키면 ‘Dharma Discourse’가 합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구풀이적 어휘 선정은 각양각색이겠지만, 그 배경이 이제껏 사용했던 불교학 연구라는 말이 가져다준 한계성을 극복하고 금후의 작업을 차별화하자는 의도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행하는 사람들을 불교학자로 표시하였으며, 통속적 영어 표현으로 ‘Buddhist Scholar’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말 역시 적절한 표현이 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말은 자신이 불교도이면서 불교를 연구할 수도 있고, 생물학, 물리학 또는 영문학, 사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종교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불교를 학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지시하는 말이 아니다. 이런 사람은 ‘Buddhist Studies Scholar’여야 한다.
곧 ‘Buddhist Scholar’는 불교 내부인을 지시하고 ‘Buddhist Studies Scholar’는 불교에 대해 학문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이기는 하지만 그는 불교 내부인일 수도 있고, 외부인일 수도 있다. 불교도 학자는 불교학을 연구하는 학자일 수도 있지만 불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불교도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곧 신학자나 회교도로서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정의이다. 마치 어휘가 잘못 드러낸 면을 두고 말장난하는 듯한 느낌이 드나, 실제로 ‘Buddhist Scholar’이거나 ‘Buddhist Studies Scholar’로 통상적으로 사용한 말의 뒤에 드리워진 불교에 대한 연구의 현장과 한계 그리고 그 역사적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라 발레 푸생이나 에티엔느 라모트를 위시한 전 세대 서구 불교학 연구자들은 가톨릭 신부이거나 기독교 신앙인 혹은 신학자들이었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개인의 종교적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불교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철학적 연구를 진척시켰고, 그 결실로 현대적 불교학의 초석을 쌓아 놓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기독교적 방향 설정, 서구적 이념의 흔적이 배어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과거의 불교학 연구 유산을 제국주의적 산물이거나, 오리엔탈리즘적 창안이거나 ‘나이브’한 비교주의의 산물로 거부할 수는 없다. 과거가 전수한 전통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이 시대의 불교학자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것이 지금 말하는 ‘Buddhist studies scholar(불교학자)’가 지녔던 한계성과 이중성을 극복하는 길로 생각된다. 그리고 신조어로서 불교신학이 새롭게 정착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객체화된 ‘불교 유물 지킴’의 상태에서 삶의 변모적 수행(遂行)을 겪는 한 방안으로서 불교에 대한 연구는 불교에 연루된 여러 형태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변모적(變貌的, transformative)이며 수행적(遂行的, performative)인 작업들이 불교학 연구에서 예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불교교리를 구원론적 경험(salvific experience)의 안내역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학문적 추구의 궁극적 관심은 사실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기보다 변모적 경험(transformative experience)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서구 중론 연구의 전환점을 이룬 스트렝(Frederic Streng)의 공(空) 사상에 대한 이해가 그 한 예가 된다. 그는 공 개념을 철학적 사변의 내용이기보다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공의 불교적 개념은 그것이 성례(聖禮, sacrament)적이거나 신비적인 기능을 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것이다. 궁극적 실재를 나타내기 때문에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공 개념이 궁극적 변모(ultimate transform)를 가져다주는 구원론적(soteriological) 기능을 하기 때문에 종교적이라고 간파하고 있다. 불교에 대한 사상적·종교적 연구가 가져다준 결실이 자기 변화를 일으키는 수행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불교의 이런 기능과 종교적 전환을 받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마련되어 있지 못했던 것이 과거의 불교학이었다.
불교신학은 외형상 현대신학이 물려준 기술적인 장점들인 문헌학, 비판적 관점, 현대적 해석이라는 틀을 흡수하며, 종교로서의 역할을 재생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불교학은 학문만의 대상이 아닌 신학을 귀감으로 하는 재생성이란 새 차원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것이다.


4. 불교학은 종교적인가

불교가 동양 시원의 종교이며 그것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교학은 종교적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는 일은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우문(愚問)이 제기된다는 사실은 거꾸로 불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미 종교성을 상실한 것으로 진단될 조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적 관심보다는 객관적 접근이 강조되고 신앙상의 양심과 도덕성보다는 합리적 정합성을 추구하는 불교학에서 종교성의 부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앞에서 제기된 불교학이 위치했던 역사·문화적 배경은 이 우문 같은 질문이 보다 더 불교학의 위상을 정확히 짚어낸 현문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문제시하고 있는 불교신학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이기도 하다.
과연 한 종교학자나 불교학자가 연구하는 전통이 종교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종교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라거나 그렇게 규정된 종교를 연구하는 것은 의당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는 단선적인 답변은 효과적인 대답이 될 수 없는 듯 보인다. 혹 호교론적 입장의 한 종교 전통의 변호적인 내용은 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종교학적인 관심을 중심에 두고 한 종교에 대한 연구의 종교성을 문제시하고 있다. 호교론의 존재 이유는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으나, 불교학에 관한 한 객관적 기술학을 거쳐 정착된 만큼 불교학을 호교학으로 환원시키는 변호학적 입장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일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성이나 중립성을 유지한다는 일이 얼마나 효과적이며, 그리고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다시 대두된다. 객관성을 지탱한다는 것이 종교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호학적인 호교론이 선교적 도그마로 이끌고 있다는 이중의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이 지금의 불교학의 종교성 문제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해 이 시대에 불교를 다루는 것이 순수한 의미의 비동반자적인 냉정한 입장을 견지하며 연구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 타당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인문학의 다른 분야들, 예컨대 문학의 가치를 따질 때 그 문학에 대한 열정과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자유로워진 문학 이해가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종교학으로서) 불교학이란 아카데미즘의 존중성이 중립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강의실 현장에서의 모습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 강의실의 문이 닫히고 담당 교수가 이 학문의 객관성에서 벗어나고 있을 때, 그리고 학부 학생들의 불안정한 기억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강의의 객관성을 보고할 아무런 근거도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과연 신학이나 불교학이 목회·설교학적인 단계나 호교론적 설법에 빠지지 않고 종교학에서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일이 가능하겠으며 그것은 또 바람직스런 일인가?
실제로 우리의 신학대학에서 종교학 강의, 불교 강의가 개설되고 있으나 위와 같은 현상을 지적하고 질문을 제기할 때, 우리는 어떤 내용의 강의와 어떤 자세의 강의를 하고 있는지를 자문할 수밖에 없다. 불교 종립대학에서도 종교학 강의, 기독교 개론과 같은 강의가 개설된 적이 있으나, 그것을 누가 담당하고 그 강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서구에서 종교학이나 불교학 더 나아가 신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거의 동일한 문제가 한국의 불교학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으며 종교학적 입장의 곤혹스러운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전 시대의 신학과 불교 호교론이 지향했던 종교적 가치의 문제가 종교학, 불교학의 기술학과 어떻게 새로운 위치를 지닐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이다. 이 기술학과 가치학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으며, 전통에 대한 연구와 전통의 창조적 재생 사이의 경계가 흐트러지고 있다. 그리고 불교신학은 이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불교신학이 문제점을 제기하였다고 하여 해결 방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시대에서 불교학이 종교적일 가능성은 단순할 수 없다. 기성의 종교전통과 일치시키는 일이거나 객체화된 종교현상 찾기가 종교학의 종교성이고 불교학의 종교성은 아닐 것 같다. 신학이 호교론이나 변호학을 벗어나며 겪는 문제점만큼이나 불교학이 종교적으로 되는 과정은 다면적이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불교전통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적응시켜가며 불교의 가치를 재발현시키는 작업은 단순할 수 없다. 종교학과 불교학이 이 과정을 지켜보며 참여적인 동참을 할 수밖에 없으며, 그 일단의 학문적 표현이 불교+신학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건다. 전문어의 터미놀로지(terminology)에 관한 수사어(修辭語) 선정의 문제가 아니라, 불교신학이 주는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맥락에서의 재생성의 화두는 이제 대두되었다고 본다.


5. 나가면서

서구의 불교 접근은 단순한 경로를 거치지 않았다. 중국을 위시한 동양 여러 국가가 겪은 문화, 정치, 사회적 여건 못지않은 경유 과정이 있다. 더욱 근대라는 짧은 시간의 집약된 변화와 이질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근대성이 가져다준 여러 분야의 나름대로의 난제들을 해결하려 하고, 자기극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이슈들은 계속 검토되고 우리와 함께 공동의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① 서구는 현대적 변용으로서의 새로운 불교를 창안하고 있는가?
신승(新乘, Navayana)의 문제, 틈새 상가(in-between Sangha), 비승비속의 불자, 참여불교의 문제, 여성불교의 문제, 불교와 psychotherapy의 문제 등.
② 불교가 서구적 근대성으로의 전환과 변화를 시도할 때 우리는 전통 속의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Lost in translation)?
③ 서구적 개인 체험과 명상 주도의 불교 수행은 우리에게서 전통의 혜택을 차단하는 것은 아닌가? ■

 

이민용
한국불교연구원 원효학당 강좌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인도사상사)·박사(인도불교사)과정, 하버드대 박사과정(불교사상사) 이수. 미주 한인신문 칼럼니스트, 한국종교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동국대 객원교수, 영남대 국제교류원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 〈미국 속의 불교와 불교의 미국화〉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인가?〉 등이 있으며, 역서로 《성스러움의 해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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