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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논단] 깨달음이 불교의 목적인가
2011년 1월 20일 불교평론 회의실
[0호] 2011년 01월 20일 (목)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무엇이 최고의 행복인가

무엇이 최고의 행복인가

 

병 없이 건강한 것이 가장 큰 이익이요, (無病最利)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큰 재산이다. (知足最富)
믿고 의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벗이요, (厚爲最友)
열반에 이르는 것이 최고의 복락이다. (泥洹最快)

<법구경> 15장 안락품 204구

   
열반이란 무엇인가

열반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이 장로제자 사리풋타(舍利弗)와 함께 마가다국의 나알라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사리풋타의 옛친구 잠부카다카(閻浮車)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잠부카다카는 외도를 따르는 수행자였는데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그의 제자로 있는 사리풋타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가 사리풋타를 찾아온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고자 해서였다. 그는 무려 40여가지의 중요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다.

"친구여,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당신의 스승은 자주 열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열반이라는 것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가."

"친구여, 열반이란 것은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분노가 영원히 다하고, 어리석음이 영원히 다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네.(貪慾永盡 瞋恚永盡 愚癡永盡 是名涅槃)"

"그러면 한가지만 더 묻겠네. 우리가 그 열반에 이르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열반을 얻게 되는가."

"열반으로 가는길을 물었는가. 그 길은 여덟가지가 있네. 이를 팔정도라 하네. 팔정도란 바른 소견(正見), 바른 사색(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직업(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생각(正念), 바른 명상(正定)이네. 어떤 사람이든 이 여덟가지 길을 걷게 되면 열반에 이를 수 있네."

사리풋타의 간명한 대답을 들은 잠부카다카는 기쁜 얼굴로 돌아갔다.

잡아함 18권 490경 <염부차경(閻浮車經)>

부처님의 출가동기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이런 회상을 했다.

"내가 출가하기 전 아버지 숫도다나왕은 나를 봄, 여름, 겨울 세 개의 궁전에 머물게 했다. 궁전 가까운 곳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언제나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흰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내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시종들이 온몸에 전단향을 바르고 비단옷을 입혀주었으며, 언제나 일산을 받쳐들고 밤에는 이슬에 젖지 않고 낱에는 볕에 그을리지 않게 도와주었다. 나는 항상 진기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배고픈 줄 몰랐다. 내가 별궁에서 놀 때는 늘 아름다운 미희가 옆에서 즐겁게 해주었으며 들로 나가 놀 때는 날랜 기병들이 주위를 경호했다. 나는 이렇게 풍족하게 지냈다.

어느 날 나는 농부가 밭을 갈다가 쉬는 것을 보고 나무 밑에 앉아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 건강하다고 언제까지 건강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젊다고 언제까지 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직 살아있다고 언제까지 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병들고 고통을 받는다. 지금 나의 건강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또 누구나 늙고 쇠약해져서 고통을 받는다. 지금 나의 젊음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또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지금 나의 삶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범행을 닦지 않는다. 젊고 건강하다고 거들먹거리며 방일하고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깨달은 나는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중아함 29권 117경 <유연경(柔軟經)>

 

   

 

육신과 자아를 관찰하는 법

부처님이 바라나시의 녹야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부처님은 다섯비구에게 설법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다.

"비구들아. 내가 물어볼 테니 아는대로 대답해 보아라. 육체(色)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냐 시시각각 변해서 무상한 한 것이냐?"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무상한 것이라면 즐거운 것이냐 괴로운 것이냐?"

"모두가 괴로운 것(皆苦)입니다."

"육체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것(我所)이며, 나(我)이며, 나의 본체(我體)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가 아닙니다(無我)"

"그러면 정신의 세계인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지(行)와 의식(識)은 어떠한가?"

"그것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며, 즐거운 것이 아니며, 나의 것도 나의 본체도 아닙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그렇게 관찰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나의 성스러운 제자들은 모든 존재(五蘊=色,受,想,行,識)를 싫어하게 된다(厭離). 모든 존재를 싫어하면 탐착하지 않게 되고(離貪), 탐착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解脫)을 얻게 된다. 해탈을 얻게 되면 '이제 미혹한 삶은 끝났다. 더 이상 미혹의 삶(輪廻)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잡아함 1권 34경 <오비구경(五比丘經)>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나

나는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은 정각(正覺)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루벨라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한번 결가부좌한 그대로 7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면서 앉아 계셨다. 7일이 지난 후 초저녁 경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기(緣起)의 법을 생각했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즉 무명(無明)에 의해서 행(行)이 있다. 행에 의해 식(識)이 있다. 식에 의해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에 의해 육입(六入)이 있다. 육입에 의해 촉(觸)이 있다. 촉에 의해 수(受)가 있다. 수에 의해 애(愛)가 있다. 애에 의해 취(取)가 있다. 취에 의해 유(有)가 있다. 유에 의해 생(生)이 있다. 생에 의해서 노(老), 사(死), 수(愁), 비(悲), 고(苦), 우(憂), 뇌(惱)가 있다. 모든 괴로움은 이렇게 해서 생기는(滅)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일의 연유를 알고 그때의 감흥을 게(偈)로 읊었다.

진지한 열성을 다해 사유했던 수행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 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모든 법은 그 원인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어서 부처님은 12연기가 소멸해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다음과 같은 감흥게를 읊었다

진지한 열성을 다해 사유했던 수행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 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모든 법은 그 원인이 사라짐을 깨달았기 때문에

남전 소부경전 <자설경(自說經)>
   

 

누가 진리를 만들었는가

부처님이 쿠루수의 조우마을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젊은 제자 한사람이 찾아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부처님. 이른 바 연기법(緣起法)은 부처님께서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누가 만든 것입니까."

이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연기법이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여래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았거나 법계에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연기법을 스스로 깨닫고, 깨달음을 이룬 뒤에 모든 중생을 위해 연설하고 드러내 보일 뿐이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지고 사라진다(此滅故彼滅)'고 말하는 것이다."

잡아함 12권 299경 <연기법경(緣起法經)>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

부처님이 코삼비의 코시타동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부처님을 시봉하는 아난다에게 한 외도가 찾아와 이런 것을 물었다.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집을 나와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는지요?"

아난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기 위해서지요."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에 무슨 허물이 있기에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지요?"

"탐욕에 집착하면 마음이 캄캄해져 자기와 남을 해치게 됩니다. 그러면 현세에서도 죄를 받고 후세에서도 죄를 받기 때문이지요. 분노와 어리석음에 집착해도 또한 그와 같지요. 탐진치 삼독에 집착하게 되면 그 순간 사람은 장님이 됩니다. 지혜가 없고 판단이 흐려집니다.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요, 밝은 것도 아니며,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 그래서 삼독을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삼독을 끊으면 어떤 이익과 공덕이 있는지요?"

"삼독을 끊으면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현세에서도 죄를 받지 않고 후세에서도 되를 받지 앟게 됩니다. 마음은 언제나 기쁘고 즐거우면 번뇌를 떠나 현세에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삼독을 끊을 수 있는지요?"

"부처님이 가르친 성스런 여덟가지 바른 수행(八正道)을 실천하면 됩니다."

아난다의 자상한 설명을 들은 그는 기쁜 얼굴로 돌아갔다.

잡아함 35권 973경 <전타경(旃陀經)>

중생이 중생일 수밖에 없는 까닭

부처님이 마구라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오느날 시자인 라다비구가 평소에 궁금해 하던 문제 한가지를 여쭈었다.

"부처님. 이른바 중생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부처님은 이렇게 답변했다.

"라다여. 나는 물질(色)에 집착하고 얽매이는 사람, 또한 어떤 대상을 느끼고(受) 생각하고(想) 행위하고(行) 의식(識)하는데 집착하고 얽매이는 사람을 중생이라 한다. 라다여. 나는 평소 너희들에게 오온에 의해 생기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없애버려야 한다고 가르쳐 왔다. 그래서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으면 괴로움이 다할 것이며, 괴로움이 다하면 '괴로움의 끝을 본 사람(해탈한 사람)'이라고 말해 왔다. 그것은 비유하면 이렇다.
어떤 어린아이들이 흙으로 성을 쌓거나 집을 지어놓고 거기에 집착하면 사랑이 끝이 없고 욕망이 끝이 없으며 생각이 끝이 없으며 안타까움이 끝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이 성과 집은 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이 한갓 흙무더기인 줄 알게 되면 그것을 발로 차고 허물어 버리면서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라다여. 이와 같이 중생도 물질에 대한 집착을 흩어버리고 무너뜨리고 없애버리면 사랑이 다할 것이고 사랑이 다하면 괴로움도 다하고 괴로움이 다하면 괴로움의 끝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중생이란 허물도 벗게 되는 것이다."

잡아함 제6권 122경 <중생경(衆生經)>

고행은 무익한 짓이다

부처님이 베살리 교외 숲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과거 정각을 이루기 전 고행을 하던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정각을 이루기전 대외산(大畏山)에 머물고 있었다. 낮이면 햇볕으로 대지가 달구어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바깥에 나왔다가 밤이 되면 숲으로 들어갔다. 또 몹시 추운 밤에는 바람과 눈을 맞으며 바깥에 나갔다가 낮에는 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덤 사이로 가서 죽은 사람의 옷을 주워 몸을 가렸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나무를 꺾어 때리거나 귓구멍이나 콧구멍을 찌르기도 했다. 나를 향해 침을 뱉거나 흙을 뿌리거나 오줌을 깔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모욕을 받고도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배가 고프면 외양간에 가서 송아지 똥이나 소똥을 집어먹고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연명이 어려움을 알고 다음부터는 하루에 깨 한 알과 쌀 한 알씩 먹었다. 몸은 쇠약해져 뼈는 서로 맞붙고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겨 가죽과 살이 절로 떨어졌다. 눈은 깊은 우물 속에 별이 나타나는 것과 같았다. 내 몸은 낡은 수레가 부서져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엉덩이는 낙타 다리 드러났다. 손으로 배를 만지면 곧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지면 뱃가죽이 손에 닿았다. 용변을 보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면 곧 쓰러졌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죽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처럼 쇠약해진 것은 제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몸을 괴롭히는 수행을 했다. 가시나 널판자 위 쇠못위에 눕기도 하고, 두 다리를 위로 올리고 머리를 땅에 두기도 했다. 다리를 꼬아 걸터앉고 수염과 머리를 길러 깎지 않기도 했다. 한겨울에 얼음 물속에 들어가 앉기도 했다. 때로는 옷을 벗고 때로는 헤어진 옷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행은 끝내 아무런 이익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은 도를 성취하는 근본이 되지 못한다. 반드시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출가하기 전 나무 밑에 앉아 음욕과 욕심이 없이 선정에 들었을 때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던 것을 기억해내고 그 길이 옳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얼마만큼은 기력이 있어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약간의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그러자 같이 수행하던 다섯 사람은 나를 가리켜 ‘참법을 잃고 삿된 길로 들어선 타락한 수행자’라며 떠나갔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길상이라는 범지가 부드러운 풀을 베고 있었다. 나는 그 풀을 얻어 나무 밑에 깔고 앉아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운 성현의 계율과, 지혜와, 해탈과, 삼매를 얻기 위해 명상에 잠겼다. 그렇게 수행을 하는 동안 탐욕이 사라지고 온갖 나쁜 생각이 사라지고 감각기관은 편안해졌다. 선정은 깊어졌고 마음은 깨끗해져서 모든 번뇌와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는 드디어 번뇌가 다하여 해탈을 얻고, 위없는 진리를 깨달아 참된 도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그대들도 열심히 수행하여 참다운 도를 이루도록 하라.”
부처님이 이렇게 말하자 제자들은 기뻐하며 그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였다.

증일아함 제23권 증상품(增上品) 제8경

극단을 피하는 중도수행의 길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소나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아무리 수행을 해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는 실망 끝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나름대로 제법 열심히 수행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번뇌를 다 소멸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세속으로 되돌아가 널리 보시를 행하면서 복이나 짓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소나비구의 고민을 알아차린 부처님은 조용히 그를 불러 상담을 했다.

"소나여, 그대는 집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집에 있을 때 악기를 잘 다루었습니다."

"어떠한가. 거문고를 탈 때 줄을 너무 느슨하게 하거나 반대로 팽팽하게 하면 미묘한 소리가 나겠는가."
"아닙니다. 고문고 줄은 너무 조이거나 늦추면 미묘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소나 비구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수행도 그와 같다. 너무 급하면 오히려 피곤해지고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게을러진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이 두 가지 이치를 잘 알아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게 수행해야 한다."

소나 비구는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했다. 그리하여 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잡아함 9권 254경 <이십억이경(二十億耳經)>

팔정도를 따라 걸어가라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울 때의 일이다. 어느날 부처님에게 한 비구가 찾아와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팃사비구의 수행에 대해 말했다.

"부처님. 팃사비구가 몸과 마음이 혼면하여 수행을 게을리 하고, 교법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잇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부처님은 즉시 팃사를 불러 물어본 뒤 다음과 같은 비유로 가르쳤다.

"팃사여, 어떤 사람이 훌륭한 성을 찾아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어서 길을 잘 몰랐다. 그래서 길을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가르쳐 주었다.

'나그네여,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두갈래 길이 나올 것이다. 그 때 그대는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 쪽으로 가라. 한참을 가다보면 큰 숲과 깊은 늪과 험준한 산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멈추지 말고 계속 가다보면 마침내 그대가 가고자 하는 성에 도착할 수 있다.'

팃사여, 여기서 내가 비유로 말한 나그네는 범부를 말하는 것이며, 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여래를 말하는 것이다. 또 두갈래 길이란 의혹을 말하는 것이며, 왼쪽 길이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은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또 오른쪽 길이란 여래가 가르친 여덟가지 성스럽고 바른 길을 말하는 것이다. 바른 길이란 곧 바른 견해(正見), 바른 뜻(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생각(正念), 바른 선정(正定)이다. 또 큰 숲이란 무명, 깊은 늪이란 오욕락, 험준한 산이란 분노와 근심과 걱정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도달한 성이란 열반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팃사여, 그러므로 그대는 기쁜 마음으로 정진해야 한다. 여래가 이렇게 너에게 열반에 이르는 길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으니 게을러서 후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잡아함 10권 271경 <저사경(低舍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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