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림 시인
“우리 언제 헤어질까.” 오늘도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왜 아니랴. 10년을 함께 해온 사이 아닌가. 내가 있는 자리에 그가 있었고, 그가 서 있는 곳에 내가 있었다. 소 갈 데 말 갈 데 아니 간 데 없었다. 밝고 깨끗하고 자랑스러운 곳도 있었겠지만 어둡고 더럽고 부끄러운 자리도 허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밤길 새벽길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먼 길 험한 길이라 불평하지 않았다.

직장이 멀어서 출퇴근만 해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을 것인데, 투정 한 번 말썽 한 번 없었다. 게다가 역마살까지 붙은 짝을 만났으니 그의 팔자가 어떠하였을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툭하면 부산으로 목포로 내달렸고, 뛰었다 하면 천 리 길이었다.

고맙게도 그는 타고난 건강을 자랑했다. 하룻밤에 몇 고개를 넘어도 끄떡없었으며 바닷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내려도 멀미 한번 없었다. 몇 번인가는 그의 품에서 함께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나는 그보다 더 좋은 잠자리를 택했고, 그는 번번이 한뎃잠을 잤다.

아침이면 언제나 짠했다. 겨울날,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거나 온통 눈에 덮인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말할 수 없이 죄스럽고 미안했다. 물론 그의 잠자리가 늘 그렇게 처연했던 것만은 아니다. 집에 들어오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를 고르기 위해 신경을 썼고, 나가면 그의 잠자리를 살펴서 여관을 골랐다. 숲이나 들판에서도 그랬다. 덕분에 꽃 이불을 덮고 잔 봄날도 있었고, 머리나 어깨 위로 색색의 낙엽을 쓰고 잔 가을날도 있었다.

그러면 무엇하랴. 그도 이제는 늙었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 지나서, 그의 젊은 날도 저만치 물러가 버렸다. 내가 삭고 낡은 만큼, 그의 건강도 많이 기울었다. 숨소리가 옛날 같지 않고, 윤기 흐르던 몸뚱이에서 살비듬이 일어난다. 용기와 투지도 그만큼 빠졌다. 멀리 가기를 두려워하고 가파른 길은 주저한다.

아내는 이제 결단을 내리자고 한다. 단호하게 헤어지라고 종주먹이다. 더 미련을 가졌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면서 지청구다. 물론 나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직은 나이에 비해 건강하지 않느냐, 살살 구슬리면 한 삼 년은 더 함께 지낼 수도 있을 거라며 아내의 제안을 일축한다. 아내는 그런 내가 참으로 답답하고 못마땅하여 죽겠다는 표정이다. 무슨 사람이 그렇게 변화를 싫어하느냐며 혀를 찬다. 대체 그와 함께 어디까지 갈 셈이냐며 고개를 젓는다.

“어디까지?” 좋은 질문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그 물음에 답해야 할 모양이다. 나는 정말 그와 어디까지 함께 가고 싶은 것일까. 순간, 어떤 무덤들이 떠오른다.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저 고려의 윤관(尹瓘) 장군 묘역 입구에 있는 작은 무덤 둘이다. 전마총(戰馬塚)과 교자총(轎子塚). 앞엣것은 장군이 타고 다니던 말의 무덤이요, 뒤엣것은 가마의 무덤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자동차 무덤이다. 세상에! 나의 조상이기도 한 그분은 말과 가마를 저승까지 함께 데리고 간 것이다. 거기 가서도 타려는 뜻이었을까. 싸움터로 일터로 일생을 끌고 다니며 고생을 시켰으니, 그만 평안히 쉬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고려의 말과 가마에 내 자동차가 포개진다. 나의 자동차 또한 전마와 다를 바 없다. 삶의 무대가 곧 전장(戰場) 아닌가. 그는 나를 태우고 좌충우돌 달렸다. 싸움이 끝나면 사인교(四人轎)가 되어 나를 모셨다.

그를 어찌할 것인가. 아무에게나 팔아넘길 것인가. 아니면 내 손으로 폐차를 부탁하여 삶을 마감하게 할 것인가. 둘 다 어려운 일이다. 기계가 생물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는 중고차여서 내가 탄 햇수는 고작 서너 해 정도였는데도 이별은 가혹했다. 견인차에 끌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쏟아져서 혼이 났다. 한동안 그가 눈에 밟혀서 한동안 같은 종류의 자동차를 똑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좀 모자라는 사람인 것 같다. 자동차와 이별 하나 능숙하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은 사람들과의 작별을 평화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쨌거나 나는 올겨울과 내년 봄 사이에 그를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다비장(茶毘場)으로 보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나무 관세음보살.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